2006 전쟁과 변혁의 시대에 다녀왔다. 연휴 내내 계속된 장마비로 심각한 갈등을 하였으나 결국 갔다왔고 돌아보니 잘 갔다왔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집에 있었어봤자 별로 한 것이 없었을게 뻔하니까. 그나마 귀동냥에 눈동냥이라도 하였고 무엇보다 요즘 젊은 것들의 화려한 패션을 보고 오니 눈이 확 맑아진 느낌이다. (이 느낌 오래갈려면 지역 사람들을 안만나야 할텐데...-_-;;)

 

고양시에서 함께 가기로 했던 당원들이 펑크를 내는 바람에 승용차가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해 행사장소인 경희대까지 갔다. 오랜만에 지하철 1호선을 타고 회기역에 내렸다. 예전의 우중충한 플랫홈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주 깔끔하게 변해있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회기역에서 나오자마자 커다랗게 씌어진 '전쟁과 변혁의 시대' 안내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셔틀버스도 운행한단다. 주최 측이 꽤 꼼꼼히 준비했나보다.

 

1토론은 박노자씨의 '한반도와 제국주의'. 들어가는 입구에서 작은책 안건모 선배님을 만났다. 이곳에서 고양시 당원을 만나니 너무 반가왔다. 물론 안선배님은 작은책 홍보를 위해서 오신거였지만...비가 오는 어수선한 분위기라서 홍보를 잘 하셨을래나 모르겠다.

강의 장소인 크라운관은 얼추 500~600명이 들어가는 곳이었는데 강의가 시작할때까지 3분의 2정도가 찼다. 지난번 연세대 강연때는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꽉 찼는데, 아마도 갑자기 굵어진 폭우로 인해 많이 못온 것 같았다. 그러나 강의가 시작되고 조금 지나자 자리가 모두 찼다.



박노자씨는 시기가 시기이다보니 한미FTA와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하였다. 그는 한미FTA반대 집회에서 한미FTA가 '제2의 을사늑약'이라거나 '주권을 지키자'고 외치는 것에 대해 의문을 던졌다. 을사늑약은 고종을 비롯해 조선의 지배엘리트 상당수도 반대했던 데 반해 한미FTA는 대통령부터 관료집단, 정치인, 재벌집단들이 모두 합심하여 추진하고 있지않나? 그리고 을사늑약체결때 의병장 유인석이 고종에게 해외로 도피해서라도 항쟁을 계속 하자는 제안을 했으나 고종이 거부했음을 상기시키면서 '누구의 주권'인가가 더 중요함을 역설하였다.

플로워 토론에서는 민족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그런데 첫번째 발언자로 나온 사람이 고양시 당원이고 이번 선거때 출근명함배포를 도왔던 분이었다! MBC스포츠 기자라 최근까지 독일에 가있었던 걸로 알고 있었는데 아마 최근 언론노조의 FTA저지 총파업에 참여하면서 업되신 것 같다. 이 분은 점잖은 아나운서 톤의 목소리로 민족주의 이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공동행동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박노자 강연을 마치고 다음 강연으로 이동하다가 또 고양시에서 온 사람들을 만났다. 대학노조와 전교조에서 활동하는 부부당원이다. 너무 반가왔고 밥을 같이 먹기로 하였다.

2토론부터는 대학동기인 상렬이와 함께 다녔다. 2토론 시간에는 무려 6개의 주제가 배정되어 있었다. 상렬이와 잠깐 고민하다가 '네팔은 혁명 직전인가?'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2토론 강의실은 1토론과 달리 50명 정도 들어가는 조그마한 강의실이었다. 3~40명 정도가 앉아 있었는데 네팔분들로보이는 이주노동자들도 5~6명 있었다. 연사는 다함께 신문의 국제담당기자이고 각종 책들을 번역하기도 한 김용욱씨였다. 일단 잘 모르는 내용들이라 사실관계 자체를 듣는 것도 생소했다. 네팔의 마오주의자들이 권력장악하는 것에 대해서 마오주의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중국공산당이 중국의 국가이익때문에 꺼림직해하는 것은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중국은 최근 마오 열풍을 조장하면서 교과서에서도 마오에 관한 내용을 늘렸다고 하는데... 플로워토론에서는 중국이 사회주의인가에 대해서 약간 열띤 토론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3토론에도 5개의 주제가 있었는데 난 일찌감치 '이주규제, 인종차별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의 저항'이라는 주제를 선택하였다. 연사는 이주노조 위원장 아노아르씨와 다함께 활동가 이정원씨다. 역시 이주노동자들 10여명도 참여하였다. 아노아르씨는 1년 넘게 보호소에서 있으면서 겪었던 갖가지 인권침해 사례를 폭로하였다. 이정원씨는 최근 이주노동자에 대한 규제가 전세계적으로 강화되고 있음을 지적하였고 한편으로 한국의 이주노동자관련 NGO들의 한계와 노동운동의 한계를 지적하였다.

이 토론은 연사들 발제도 좋았지만 플로워토론도 매우 활발하였다. 특히 한 참가자는 단속반의 추격을 피해 차 밑으로 도망갔던 이주노동자가 차에 출발해 깔려 죽었던 사례를 이야기하다 울먹여 참가자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아, 그리고 3토론 전에 점심식사를 하였다. 행사장소인 경희대에서 잘 협조를 해주지 않는 관계로 인근 외대학생식당을 이용하였다. 외대대학노조의 도움으로 일요일인데도 참가자들에게 2,2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식사를 제공하였다. (물론 식사의 질은 딱 2,200원 정도였다.-_-;;)

 

이제 쓰는 것도 점점 지겨워진다. 4토론 시간에는 2가지 주제가 배정되어 있었는데 우리는 '이강택 PD가 영상과 함께 말한다 - NAFTA가 보여준 한미 FTA의 미래'를 택했다. 이강택 PD는 최근 'NAFTA의 명과 암'을 제작한 KBS 스페셜의 PD로 재직중이다. 당원인 것으로 알고 있으며 고양시 풍동에 살고 있어서 지난 선거때 우연히 만나기도 하였다. (그때는 이렇게 유명한 분일줄 몰랐다.) 내용은 전날 지역위에서 주최했던 정태인씨 초청강연회와 많이 비슷했다. 사실 이강택 PD의 설명을 듣는 것보다 자료로 틀어주는 영상(KBS스페셜방영분)이 훨씬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그래도 직접 멕시코에서 보고 들은 것을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알 수 없는 '포스'가 느껴질 수 있었다. 더욱 FTA반대에 대해 확신을 갖게한 토론이었다.

 

 

마지막 5토론은 그냥 집으로 갈까하고 망설이다 참석하였다. 4개의 주제가 있었는데 '개혁인가 혁명인가 구분은 무의미해졌는가'라는 주제를 선택했다. 연사는 주로 로자룩셈부르크와 베른슈타인 사이의 논쟁을 소개하면서 오늘날 갖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오랜만에 고전을 듣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편으로 고전의 생명력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 토론이기도 하였다.

 

5토론이 끝날무렵 사회자가 이후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소울그룹 윈디시티와 이주노동자밴드 스탑크랙다운의 합동공연이 있다고 했다. 가 볼까하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하였으나 시간도 늦었고 '젊은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부담스러워 그냥 집으로 갔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윈디시티라는 그룹이 그냥 허접한 민중가요 밴드가 아니라 요즘 굉장히 인기있는 소울그룹이라고 한다. 심지어 그들의 노래 중에는 내가 라디오에서 들어본 적이 있는 노래도 있었다. 이런 그룹의 리더가 극좌파 '다함께'의 회원이라고 하니 더욱 놀랄 일이다.

 

하여튼 비 퍼붓는 연휴 중 하루를 여러 좋은 경험을 하며 보낼 수 있었다. 플로워 토론에서 '다함께'에 가입한지 얼마 안되었다고하는 한 젊은 여성의 말이 생각난다.

 

"여기서 토론할 때는 금방이라도 뭐가 될 것 같은데...집에 가면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 자리에서는 웃었지만 정말 핵심적인 이야기였다는 생각이다. 마지막 토론이었던 '개혁인가 혁명인가'의 연사는 또 이렇게 말했다.

 

"전쟁이 일어나고 경제공황이 닥쳐 지배자들이 심각하게 분열하는 상황이 언제 올지는 알 수 없지만, 미리 조직된 좌파세력이 없다면 그 기회를 제대로 살릴 수 없을 것이다. 역사적 경험상 그것은 엄청난 피바다를 부르는 재앙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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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17 23:57 2006/07/17 2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