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개혁세력

(http://gyuhang.net/archives/2006/07/ 에서 퍼왔음.)

 

(질문에 답하기 전에 ‘진보개혁세력’이라는 개념에 대해 몇 자 적습니다. 지금 ‘진보개혁세력’이라는 말이 상용되고 있고 귀 신문의 기획 역시 그에 근거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진보’와 ‘개혁’이라는 전혀 다른 개념이 한 묶음으로 쓰임으로써 우리 사회에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고 봅니다. 질문에 대한 답은 이 문제가 정리된 후로..)

‘진보개혁세력’이라는 말은 ‘좌파우파세력’이라는 말과 같다. 이런 개념적 혼란이 담긴 말이 생긴 배경은 옛 독재-민주화 구도다. 흔히 옛 독재세력을 잇는 세력은 ‘수구기득권세력’이라 민주화운동을 잇는 세력은 ‘진보개혁세력’이라 부른다. 민주화운동을 잇는 세력을 진보개혁세력이라 부르는 건 민주화운동이 두 세력의 연대였기 때문이다. 민주화운동은 군사독재라는 공동의 적과 싸우기 위한 자유주의적 우파(현재의 개혁세력)와 변혁적 좌파(90년대 이후 개혁세력에 의해 배제되어 온 진보-좌파세력)의 연대였다.



그러나 이미 군사독재가 물러나고 절차적 민주화가 시작된 지 20여년 이 지났다. 9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의 적자를 자임하며 사회적 헤게모니를 장악해온 개혁우파 세력은 늘 독재-민주화 구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왔다. 수구기득권(극우) 세력이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라고 말하면서, 개혁우파와 극우파의 대립을 우리사회의 중심 갈등으로 설정함으로써, 진보운동을 배제시켜왔다. 나도 조선일보 반대운동에 초기부터 참여한 바 있지만 오늘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극우 세력이 아니라 바로 개혁우파 세력이다. 90년대 이후 사회문화적 개혁으로 대중들의 관심을 유도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올인하여 우리 사회를 파탄으로 몰고 가는 개혁세력 말이다.
‘진보개혁세력의 위기’가 아니라 ‘개혁세력의 위기’다. 그들이 진보/좌파를 참칭해오다 그들 스스로 민중의 적대세력임이 밝혀지고 있다. 진보세력은 90년대 이후 ‘오늘의 진보’를 자임하는 개혁세력에 의해 사회적 영향력에서, 대중들의 관심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왔다. 개혁과 진보를 하나로 보는 개념적 혼란은 개혁세력에 대한 실망을 진보세력에 대한 실망으로 확대시키기도 한다. 5.31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압승은 그런 현상이다. 그러나 현실은 더 이상 혼란을 용납하지 않는다. FTA 문제는 대중들로 하여금 그런 현실을 직시하고 개혁과 진보의 차이를 발견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 대중들은 FTA가 자신들의 삶을 파탄으로 몰고갈 것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있다. 그런데 한나라당과 열우당은 FTA를 찬성하고 제도정치권에서 FTA를 반대하는 건 민노당뿐이다. 대중들은 또한 민노당보다 진보적인 제도정치권 밖의 진보운동 세력을 조금씩 파악해갈 것이다.
절차적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우파끼리 좌우를 갈라먹음으로써 진보-좌파가 배제되어 왔다는 것이다. ‘진보개혁세력의 위기’, 즉 개혁세력의 위기는 진보와 개혁을 하나로 보는 습성에 의해 진보세력에게 피해를 주지만 서서히 개혁과 진보의 차이를 분명히 함으로써 진보세력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 진보세력의 발전만이 우리 사회에 미래를 가져올 수 있다.

그리고..
민노당을 비롯한 진보/좌파세력이 ‘실력이 없다’고 느껴지는 두 가지 주요한 이유가 있다. 하나는 개혁 우파에 의해 사회적 영향력을 갖는 무대에서 철저히 배제됨으로써 실력을 평가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실력을 평가하는 패러다임이 철저히 우파적이라는 것이다. 우파적 패러다임은 국가의 이해(실제론 지배계급의 이해)를 기반으로 하지만 좌파적 패러다임은 계급의 이해(인민의 이해)를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좌파적 지향을 우파적 패러다임으로 보면 엉성해 보일 수밖에 없다. 실력의 차이가 아니라 패러다임의 차이인 것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Posted by gyuhang at 2006.07.16 02:57P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07/18 00:26 2006/07/18 0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