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에서 휴전이 합의된 이후 매일 같이 들려오던 중동에서의 전쟁 소식이 언론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하는 전쟁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왠일인지 마음 한쪽이 여전히 불편하기만 하다. 더 큰 먹구름이 밀려오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쟁을 시작한 이스라엘은 일주일만에 승리를 장담했지만 결국 헤즈볼라를 분쇄하지 못하였다. 창설 이후 무적을 자랑하던 이스라엘군의 신화는 무참히 깨져버렸다. 최신예 전투기와 탱크로 무장한 이스라엘이 로켓포와 소총으로 저항한 헤즈볼라를 이기지 못한 것이다. 그야말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골리앗이 패배한 것이다. 지금 이스라엘에서는 이번 전쟁의 패배 책임을 놓고 정치권이 분열하고 있다.
개전초기부터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지한 미국의 체면도 여지없이 구겨지고 말았다. 이라크에서 수렁에 빠져있는 미국이 이스라엘을 통해 중동의 반제국주의세력(이란-시리아-헤즈볼라-하마스)들을 제압하고자 했으나 결과는 거꾸로가 되고 말았다.
반면 친미-친이스라엘 정권 밑에서 억압받고 있는 중동의 민중들은 헤즈볼라의 승리에 환호하고 있다. 이들은 이번 전쟁에서 이스라엘 편을 든 자국 정부에 대한 투쟁도 시작하고 있다. 특히 이집트에서 투쟁이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대로 물러서려 하지 않고 있다. 휴전합의 후 5일만에 이스라엘은 특수부대와 전투기를 동원해 군사작전을 펼쳤다. 유엔휴전합의안은 이스라엘의 '방어적'군사작전은 허용하고 있다. 반면 헤즈볼라에 대해서는 무장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한편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의 국가들이 유엔임시군 구성에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들은 예전에 잃어버린 중동의 자기세력권을 다시 되찾고 싶어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유엔임시군이 레바논 남부에서 헤즈볼라를 약화시키는 동안 시간을 벌려 하고 있다. 무장해제에 저항하는 헤즈볼라의 투쟁을 빌미로 이스라엘은 언제든 다시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미국 역시 이라크 전황의 개선을 위해서도 이란과 시리아를 침공하려고 벼르고 있다. 호주 최대의 일간지는 레바논 전쟁이 시작되자 "제3차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고 헤드라인을 뽑았다고 한다. 지금 중동의 상황은 일촉즉발의 위기를 앞둔 폭풍전야인 것이다.
이런 중동에 노무현정부가 또다시 파병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라크에 파병된 자이툰부대의 파병기간 연장 뿐만 아니라 레바논남부에 주둔할 유엔임시군 파병도 검토하고 있다. 중동의 평범한 사람들은 오로지 외세의 침략없이 평화롭게 살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바램이 이루어지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군대를 보내는 것이 아니다. 의약품과 식량 그리고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가 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목록이다.
지난 2~3일 사이에 한겨레 1면에 '외국인노동자 유입 15년'을 돌아보는 특집기획기사가 실렸다. 그 주요 내용은 외국인노동자가 들어온 이후에 내국인노동자의 임금수준이 저하되었고 중소기업의 산업경쟁력이 약화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웠던 것은 그 기사의 필자가 현재 대학생인 인턴기자라는 것이었다. 도대체 이 기사의 의도가 무엇인지 좀체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인턴기자를 앞세워 한겨레가 그동안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을 한 것인가? 마치 조선일보나 매일경제를 보는 듯한 내용의 이런 기사를 싣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늘 실린 두번째 기사에서는 인턴기자의 개인사까지 등장하였다. 그의 아버지가 예전에 보람과 자부심으로 일하던 중소기업이 이제는 없어졌고 그 자리는 이주노동자들로 대체된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이었다.
사실 이 기자의 기사수준은 훌륭한 편이었다. 현장을 직접 다니면서 쓴 기사라는 게 와 닿았다. 하지만 인턴기자의 한계라고 할까? 현상은 잘 지적했으나 그 원인을 찾는 데에는 실패하고 있었다.
우선 외국인노동자가 들어온 이후 중소기업이 기술개발이나 직원복지에는 투자하지 않았고 그 결과 경쟁력이 약화되었다는 것은 사실일까? 현상적으로 보았을때 현재 외국인을 고용하고 있는 기업들 대부분은 영세한 중소기업이고 이들 기업의 기술력이나 직원복지수준이 형편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좀 더 냉철하게 이 기업들을 분석한다면 이 기업들은 외국인노동자들이 없었다면 일찌감치 문을 닫았을 기업들이다. 얼마전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하는 중소기업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즉 대부분 '사양업종' 기업들인 것이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 더 싼 임금을 찾아 중국과 동남아 등으로 공장을 이전하였다. 만약 이 기업들의 해외이전을 금지했다면 이 기업들이 기술력개발과 직원복지향상을 통해 살아남았을까? 이 기사가 일관성을 가질려면 노동의 이주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자본의 이주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반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기사 내용에서 눈여겨 봐야할 부분도 있다. 바로 직원의 숙련도 문제이다. 기사는 평균 3년 정도 머무르는 외국인노동자의 특성상 노동력의 숙련도가 발전하지 못했고 이것이 중소기업경쟁력의 저하를 가져왔다고 하였다. 이런 부분은 부분적으로 사실에 가깝다.
다음으로 외국인노동자가 고용된 부문의 내국인노동자 임금수준이 그렇지 않은 부문의 임금수준보다 훨씬 낮다는 것을 어떨가? 이 주장은 바로 전에 KDI 연구원에서 발표한 연구결과와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다. KDI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외국인노동자의 유입이 국내노동자의 임금수준이나 실업률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한겨레 인턴기자는 직접 현장을 찾아다니며 조사한 결과 그와는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2006-08-26 조선일보
이라크 배치를 앞두고 극도의 불안에 시달리던 19세의 영국 병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라크 파병 병사의 심리적 압박문제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고 인디펜던트가 25일 보도했다.
왕립 랭커스터 보병연대 소속 제이슨 첼시 일병은 지난 10일 밤 병영 내 자신의 방에서 60알의 진통제를 먹고 손목을 그어 자살을 기도했다. 그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약물과 알코올로 인한 간 손상으로 14일 끝내 숨졌다.
첼시 일병은 훈련 과정에서 “어린이 자살 특공대원이 발견되면 무조건 사살하라”는 교육을 받고 고민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 국방부 관계자는 “공식 훈련 과정에는 그런 내용이 없지만, 세부 지침은 각 연대 단위에서 결정된다”고 말했다.
첼시의 어머니는 아들이 죽기 전 “거기 가서 어린 아이들을 쏠 수는 없다. 아이들이 누구 편이든 무슨 상관이냐”고 말했다고 전했다. 첼시는 유서에서 ‘나는 쓰레기’라고 말하기도 했다.
첼시의 아버지(58)는 “아들이 난독증 때문에 동료들에게 괴롭힘을 당해 재작년에도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이에 대해서도 조사할 방침이다.
(이태훈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libr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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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위원회에서 주최한 한미FTA관련 두번째 강좌 - 한미FTA가 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들었다. 강사는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연출한 김경현 감독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스크린쿼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되긴하였지만 그 이야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의외로 FTA 그 자체의 의미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영화인들도 현재는 스크린쿼터보다 한미FTA반대 쪽으로 방향을 맞추고 있다고 한다.
질의 응답 시간에 난 좀 공격적인 질문을 하였다. (김감독은 '전투적인 질문'이라고 표현했다.) "80년대 중반에도 UIP직배 반대운동을 영화인들이 벌이며 UIP직배가 되면 한국영화가 망할 것 처럼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한국영화는 오히려 성장했다. 스크린쿼터때문이라고 하지만 스크린쿼터가 질낮은 한국영화를 양산하는 부작용도 있었다. 한국영화성장의 근본배경에는 스크린쿼터라기보다는 민주화 이후 표현의 자유가 확대된 것이 더 크지 않은가?"
사실 난 스크린쿼터 축소반대에 대해 소극적인 편이다. 김감독도 이야기하였지만 이제 한국영화는 극장주들로부터 급전을 빌려다 찍는 시대가 아니다. 투자,제작,배급을 모두 재벌계열사들이 맡아서 하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는 CGV를 소유하고 있고, 롯데는 롯데시네마를 소유하고 있다. 한국영화상영을 통해 얻는 수입의 80%를 이들 거대영화자본이 가져간다. 유명영화배우나 감독 심지어 무명의 스탭들까지 나서서 스크린쿼터축소반대운동을 하고 있지만 정작 그 과실을 가져가는 것은 이들보다는 거대영화자본들인 것이다.
할리우드자본이 미운 건 사실이지만 돈이 되면 반미영화도 찍는 그들과 돈이 된다고 늘상 조폭코미디나 찍는 한국영화자본이 과연 얼마나 다를까?
진정 한국영화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표현의 자유를 더 확대할 것과 스탭들의 처우개선, 그리고 독립영화 및 저예산영화에 대한 지원강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하지만 김감독은 스크린쿼타가 확보해준 40%의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한국영화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한다. 다른 나라의 사례도 대부분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40%의 시장을 한 두편의 대작영화나 조폭코미디류의 B급영화들이 점령하는 것을 문화적 다양성이 확보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면에 볼링포컬럼바인이나 화씨911같은 영화는 개봉관을 거의 찾지 못하고 금방 내렸다. 이런 영화도 할리우드 영화니까 배척되어야 하나?
스크린쿼터 문제는 어려운 이야기이고 계속 찜찜함이 남는다.
지난 토요일(19일) 포항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 다녀왔다.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억수로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비가 와도 집회는 할 것이기에 당에서 마련해준 차를 얻어타고 포항까지 갔다.
포항은 94년인가 95년인가 한 번 가 보았다. 그때도 해고자 문제로 포스코(당시는 포항제철) 정문 앞에서 정문경비들과 몸싸움을 했던 기억이다. 그리고 한 협력업체 노조를 방문하여 사내식당에서 밥을 얻어 먹기도 하였다. (식단으로 참치회가 나왔던 게 인상적이었다.)
10여년 만에 다시 가보는 포항인데 이번에도 별로 좋은 인연은 아니다.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3~4천 정도의 대오가 집회를 하고 있었다. 날씨를 감안하더라도 이름에 걸맞지 않은 실망스러운 규모다.
본 집회 중간 쯤에 경찰에 폭행당해 아이를 유산한 부인과 조합원인 남편이 연단에 올라왔다. 그 동안 경찰의 갖은 회유와 협박에 시달렸음을 폭로했다. 결혼 7년만에 시험관 수정으로 얻은 소중한 아기였다고 한다. 갑자기 영화 괴물에서 변희봉의 대사가 생각났다. "...자식 잃은 짐승 입에서 나는 냄새를 맡아 본 적 있어? 속이 다 썩어문드러져서 나는 그 냄새는 십리 밖에서도 맡을 수 있어.."
집회를 마치고 포스코 본사 정문까지 행진을 시작했다. 포스코로 연결되는 다리를 건너기 위해 그동안 수많은 노동자들이 피를 흘려야했다. 마음에 각오를 단단히 하고 왔는데 어찌된 일인지 대열이 일사천리로 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건너는 동안 전경은 커녕 전경버스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더니 어느덧 대열이 멈춘 곳을 보니 포스코 정문 앞이었다. 그런데 앗! 세상에 이런 일이...경찰이 이미 포스코 본사 정문 앞을 거대한 구조물로 완벽히 봉쇄해 놓은 상태였다. 너무나 두터운 철판으로 만들어진 구조물이었다. 결국 대열은 몸싸움 한 번 없이 그 자리에서 정리집회를 가졌다. 물론 비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온 몸이 젖고 오래 걸어 피곤한 상태라 포항에서 저녁을 먹고 출발하였다. 금속연맹 전 부위원장님이 잘 아는 집을 함께 가셔서 맛있는 저녁밥을 사주셨다. 밥을 먹으면서 최근 포항지역의 분위기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2시가 넘었다. 유기수 위원장님 면회를 못한 것이 아쉽지만 나름대로 정말 빡씬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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