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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과 정치의 이상한 만남

문제라는 단어에는 비정상, 예외, 비틀어짐과 같은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그것은 해결해야 할 것,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는 지향을 가진다. 때문에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 즉 문제의 대상을 무엇으로 설정하는가는 해결이라는 지향의 방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적합한 문제 대상을 찾아내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종종 듣는 용어 중에 여성문제라는 것이 있다. 이 용어에는 문제의 대상이 여성인 것과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요소가 스며들어 있다. 문제가 있는 것은 여성이 아니라 여성들을 규정해온 남성적 시선이다. 여성문제라는 용어를 썼을 때 거기에는 문제의 핵심을 굴절시키는 어떤 전도의 논리가 숨어 있는 것이다.

 

2PM의 재범 ‘문제’ 혹은 재범 사태라고 명명된 사건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여기에도 이와 유사한 전도의 논리가 내재되어 있다. 문제의 대상은 2PM의 재범이 아니다. 논란을 유발한 계기는 그이지만, 현재 일어나고 있는 논란의 핵심은 재범이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형성된 담론의 지형 그리고 그런 담론이 형성된 사회적 맥락에 있다.

 

아이돌 가수는 일반적으로 젊은 층에 인기를 얻는 가수를 말한다. 그들은 가수지만 음악만이 아닌, 젊은 층이 자신들을 동경할 수 있는 갖가지 조건들을 갖추어야 한다. 그들은 철저하게 만들어진 이미지 속에 자신을 위치시킴으로써 하나의 우상이 되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대중들을 위한 환상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대중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이미지에 자신들을 끼워 넣기도 한다. 그들이 만들어낸 환상은 언제나 대중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선에서 구성되어야 한다. 문제는 한국적 상황에서 아이돌이 되기 위해 혹은 아이돌로서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부합해야 하는 대중의 기대라는 것이 정치적 맥락과 강하게 밀착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이돌에게 부여된 정치적 임무


10여 년 전부터 아이돌은 한류열풍의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그들은 ‘한류 열풍의 중심에 선 아시아의 스타’이면서 ‘아시아를 정복한 대한의 건아’가 되었다. HOT나 NRG를 넘어 비, 원더걸스, 보아와 같은 스타들이 그 중심에 있었다. 동방신기나 천상지희 같은 아이돌 그룹은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 팀 이름도 한자로 만들었고, 기획 단계에서는 중국 현지에서 같이 활동할 현지인 멤버까지 고려되어 있었다. 슈퍼주니어에는 중국인 멤버(한경)가 한국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다.

 

아이돌 가수들은 한류열풍 속에서 연예 산업에 종사하는 직업인이 해야 할 역할을 넘어 국위를 선양하고, 국부를 증진시키는 역할까지 해야 했다. 그들에게는 연예 산업을 넘어 국가의 부와 명예를 드높여야 한다는 정치적 임무가 부여되었다. 아이돌에게 부여된 정치적 임무라는 상황 속에는 미묘한 괴리가 숨어 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아이돌 중 상당수가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교포이거나 외국국적자이고, 그들이 하는 음악 역시 한국적인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탈국적화된 정체성을 가진 아이돌에게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정치적 임무를 부여하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그러니까 아이돌 스스로가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있든 말든, 그들에게 국가와 민족에 대한 기여를 기대하는 상황 자체가 그렇다는 것이다.

 

2PM의 재범에게 가해졌던 비난은 이러한 맥락과 결코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4년 전에 썼던 글이 문제의 계기가 되었지만, 그 이후에 비난의 강도와 폭은 확장되었다. 재범의 일과 관련된 글이나 그의 사과문에 달린 댓글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사과문 개제 이후에도 반성의 시간을 갖지 않고 한동안 활동을 지속한 그의 태도를 문제삼기도 했다. 그러나 보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한국인 비하 발언을 지속적으로 문제 삼았으며, 어떤 이들은 유승준의 군 회피로 인한 연예계 퇴출과 연관지어 미국 시민권과 군대 문제를 제기했다. 이런 흐름에 편승해 <해럴드 경제>의 한 대중문화전문기자는 “교포출신 연예인에 대한 정체성 교육”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비난의 지점들은 이미 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있다. 비난들은 이제 연예인의 역할과 직업 윤리를 넘어 폐쇄적인 정치적 심급으로 환원되고 있는 것이다.



오리지널을 완성시키는 번역들의 경합


2PM의 재범은 비난을 못 이겨서든, 그 비난을 수긍하고 반성하기 위해서든 팀을 탈퇴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 이후 상황은 반전되어 그를 동정하는 누리꾼의 글들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그의 한국 비하를 문제삼던 연예 뉴스에서도 팀 탈퇴로 이끈 일부 누리꾼들을 꾸짖으며 문제를 지적하는 것으로 관점을 바꾸었다. 이러한 변화는 재범의 팀 탈퇴와 출국이라는 결과가 보여준 임팩트의 사후 효과이기도 하지만, 그 관점 변화의 근거를 제시해준 것은 팬클럽과 이 사건을 민족주의 혹은 애국주의의 귀결로 규정하며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한 비평가들이었다. 그들은 재범에게 강한 알리바이를 제공해 주었다. 죄가 발생한 장소에 재범이 없었음을 증명하는 강한 알리바이들 말이다. 그 알리바이들은 무엇보다도 그의 글을 새롭게 번역하는 과정에서 마련되었다.

 

재범의 소속사였던 JYP 측과 2PM의 팬들은 재범의 글이 악의적으로 번역되고, 이용당했다며 글의 전문을 번역해서 새롭게 제시했다. 실질적인 글의 의미뿐 아니라, 맥락을 보고 이해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부 비평가들은 글 속에서 재범이 하고자 했던 말의 진짜 의미를 제대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그 글이 쓰여진 시점은 재범의 ‘치기 어렸던’, ‘철없었던’ 혹은 ‘건방졌던’ 과거였을 뿐이라고(그래도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표현이 상당히 거칠긴 하지만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답답한 심정이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좀 더 나아가 한 비평가는 재범의 글을 “저급한 상품문화에 포섭된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쓴 소리”로 번역하기도 했다.

 

어떤 측면에서 이번 사태는 ‘악의적 번역’(재범에 대한 비난의 근거)과 ‘호의적 번역’(재범의 알리바이) 사이의 갈등 과정으로 읽힐 수도 있다. 담론 속에서 제시된 재범에 대한 태도의 변화는 악의적 번역에서 호의적 번역으로 옮겨감으로써 나타나게 된 것이다.

 

악의적 번역에서 재범은 한국을 폄하하고 한국민을 모욕한 죄인이지만, 호의적 번역에서 그는 상품화된 대중문화에 쓴 소리를 하거나 철없었던 과거를 극복하고 어른이 된 사람으로 비쳐진다. 그러나 두 번역 모두 너무 적거나 너무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두 입장 모두 재범의 글이라는 오리지널에 대한 번역을 수행함으로써 올바른 번역과 그렇지 못한 번역의 대립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것은 원본과 파생의 문제로 환원되고 있다. 두 입장은 오리지널이 의미의 기원이며, 번역된 것은 기원에서 파생된 해석에 불과한 것이라는 입장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리지널 혹은 원본으로 알려진 것이 어떤 확고한 입장이나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니라고 가정한다면 어떨까? 그 원본이 충만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라고 가정해 보면 어떨까? 그 원본이 어떤 의미의 결여를 가지고 있어서 번역 과정에서 파생된 것들의 보충을 통해서만 그것이 가진 의미를 완성하는 것이라면 어떨까? 번역들의 경합이 오히려 오리지널의 의미를 보충하고 결정하는 요인이라면 어떨까?

 

여기서 원본이나 오리지널(재범의 글)의 위치는 토착적인 것 혹은 국가로 소급되는 정치성이 차지한다. 그렇다면 오리지널의 결여를 문제시 하는 것은 국가로 소급되는 토착성(nativism) 자체가 의미의 불충분함과 결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국가로 소급되는 토착성 자체가 고유의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니라 바로 이와 같은 담론의 형성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2PM의 재범은 더 이상 이 사태의 핵심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재범 문제라고 명명했을 때 이미 거기에는 이러한 담론이 발생시키는 효과의 핵심을 굴절시키는 전도의 논리가 숨어 있는 것이다. 논란이 계속되는 과정, 즉 재범을 둘러싼 담론이 형성되는 과정 속에는 이미 재범은 없다. 거기에는 대신 미완의 국가 정체성과 토착성을 (때때로 그것에 대한 저항 혹은 비판까지도 흡수하면서) 완성시키는 무엇인가가 공모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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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스 기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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