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정보통신운동의 역사와 공공성의 과제 by 황규만, 홍지은

 

정보통신운동의 역사와 공공성의 과제

 

글쓴이 | 황규만, 홍지은

 

 

 

 

1. 통신의 시작- 통신망의 발전과 PC통신의 등장

남한에서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공론의 장은 82년 데이콤의 설립과 함께 시작된 PC통신 서비스에서부터 출발한다. 중화학공업중심이었던 한국경제 구조가 국가주도로 서비스산업 중심으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비스 산업의 근간은 바로 통신망의 건설이었다. 생각보다 일찍이 국가와 자본은 통신 산업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고속도로건설처럼 통신망을 국가기간산업으로 육성하기 시작한다.

 

이런 육성책의 일환으로 당시 체신국으로 통합되어 있던 통신기능을 한통과 데이콤으로 전문화시킨다. 이는 각 사업자들에게 독점적 지위를 보장해줌으로서 이루어졌는데, 이는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통신망구축의 교과서적인 방식이었다. - 오늘날 KT의 시장지배자적 지위의 근원이기도 하다. - 그 중 데이콤은 통신서비스 중 데이터통신 서비스 영역을 전문화시킨 것이다. 이후 데이터통신 서비스는 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급속도록 자리를 잡으며, 천리안 그리고 하이텔 서비스가 80년대 말-90년대 초에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80년대 PC통신 이용자들은 90년대 말 초창기 인터넷 이용자들과 마찬가지로 선진의식으로 가득 무장되었던 집단이었다. 이들을 매우 기술 중심적인 집단이었으며 향후 인터넷1세대를 이끄는 세력들로 부상한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PC통신 시장이 활성화된 것은 통신망에 경쟁체제가 도입되고 기간망사업자와 별정통신업무가 분리되는 등, 시장에 대한 법제화가 구체화되는 90년대 초반부터이다. 통신에 경쟁이 도입된 것은 국내자본의 요구도 있었겠지만 일차적으로는 80년대 말 미국의 부가통신시장을 개방하라는 압력과 함께 한국을 우선협상대상국으로 지정한 것이나, 93년 UR이후 94년 WTO 기본통신협상이 시작되는 세계 무역질서 변화와 맞물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전화사업등 유선망시장이 유효경쟁 모델에 따라 여전히 국가관리형 경쟁체제가 도입된 반면, 진입장벽이 비교적 낮았던 부가통신업에는 94년 나우누리가 등장하면서 PC통신 시장은 본격적으로 무한 경쟁에 돌입하여 바야흐로 전성기를 맞는다. 즉 남한에서 통신망의 활성화는 기본적으로 국가주도 개발사업으로 시작되었지만 개방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와 정확히 궤를 같이해 급속도로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전화와 같이 1대1 통신기능에 머물던 통신망이 PC통신과 같이 사회적 참여의 장으로 확장된 것은 단순히 국가주도의 개발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1가구 1전화라는 발전전략에 따라 망 자체가 서구유럽 부럽지 않게 급속도로 확장되어 그 자체로 엄청난 대중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과 통신비가 일반 전화비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점이 PC통신 확장에 물질적 기반이 되기는 했지만, 90년대 운동이 다양하게 확장되면서 당시의 사회적 의제들을 PC통신이라는 새로운 매체에서 실험하려는 일군의 활동가들의 역할도 매우 컸다.

 

참세상, 하이텔, 나우누리의 진보적인 동호회의 활동을 비롯하여 진보네트워크센터의 전신인 ‘참세상’ 서비스 등 사설BBS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소련이 해체되고 91년 투쟁이후 패배적인 정세와 유럽에서 유입된 포스트 맑스적인 운동의 경향은 새로운 미디어 속에서 꽃피웠고 이후 정보통신운동의 자양분을 제공하였다. 그중 통신연대의 활동은 주목할만한 것이었다. 98년 0141x망의 공공성의 주장하며 요금인상반대 투쟁을 벌여낸 것은 남한에서 망의 공공성을 주장한 최초의 사례라고 평가할 수 있으며, 통신사업자의 검열을 주도했던 윤리위원회폐지 주장했던 통신검열반대운동은 오늘은 인터넷의 표현의 자유 운동의 시발점이었다.

 

또 한편으로 주목할 만한 것은 당시의 사설 BBS 운동이었다. 90년대 초기 BBS서비스는 데이터베이스구축과 같은 매우 기술 중심적인 운동이었지만, 앞에서 언급한 활동가들의 적극적인 활용은 BBS를 단지 데이터베이스가 아니라 민주주의적인 소통의 공간이자 이용자가 직접 운영에 참여하는, 생산과 소비 그리고 관리자와 이용자이라는 이분법적인 근대적 사회적 관계에서 쌍방향 적이고 대안적인 사회적 네트워크에 대한 실험의 장이었다. 또한 당시의 소중한 자산은 이후 진보진영의 독립네트워크의 물질적인 자산으로 계승되게 된다.

 

2. 인터넷의 등장 - 신세대 사회운동

80년대 말 90년대 초반 대학 - 특히 서울대학교 전산실과 KAIST - 중심으로 인터넷이 처음 서비스되기 시작하였다. 유선전화망 사업과 달리 우리나라도 초창기 인터넷은 국가주도형이었다기보다는 대학중심의 자율적인 발전과정을 겪었다. 인터넷에 다소 미온적이었던 정부를 상대로 대학에서 연구목적으로 허가 받아 시작된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초창기 인터넷 문화는 산업적 측면이 아니라 대안 문화로서 먼저 수용되었다. 인터넷이 대안문화로 대안매체로 인식된 데에는 단순히 대학중심의 학술문화였기 때문은 아니다. 1986년 프랑스 학생 운동가들은 미니텔을 이용하여 신자유주주의적인 대학 개혁 반대운동을 이끌었으며 1993년에는 미국 산타모니카주의 활동가들이 지역 네트워크 PEN을 이용하여 노숙인 편의시설 확충을 요구하는 지역 주민과 노숙인의 주장을 시정부에 관철시키기도 했다. 1996년에는 멕시코 치아파스 지역 농민혁명군 사빠띠스따가 인터넷에 신자유주의 반대 성명을 발표하고 전세계적인 연대를 호소하기도 하였다. 인터넷은 기술의 특성상 그 자체로 전세계적이다. 이런 세계적 경험들은 초창기 인터넷을 통해 한국에 즉각적으로 알려졌으며, 이런 전세계적인 경험들은 남한사회의 선구적인 활동가들 사이에서 인터넷을 ‘아래로부터의 혁명’, ‘전세계적인 연대에 기반한 새로운 사회운동’의 매체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90년대 인터넷은 미국을 중심으로 단순한 군사기술이나 대안문화를 넘어서 신자유주의의 핵심 기간망으로 성장해가기 시작했다. 클린턴 정부가 정보고속도로사업을 시작하였고 남한정부도 95년 한국통신의 글로벌경쟁력을 갖추게 한다는 명분과 초고속 정보통신사업자의 조속한 추진을 목표로 ‘정보화촉진기본법’이 제정된다. 그리하여 95년에 PC통신 서비스에 인터넷접속 서비스(일명 PPP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서서히 한국에서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시작되었다. 이렇게 인터넷이 신자유주의의 첨병으로 대중화되어가던 시기에, 정보의 상품화에 저항하고 인터넷의 대안적 성격을 사회운동화하려는 운동이 시작되었다. 95년 진보넷의 또 다른 전신이었던 ‘정보연대 SING’이 ‘정보화의 상품화에 반대하고 정보에 대한 평등한 접근’을 주장하며 결성된 것이다. 비록 당시의 한계로 인하여 이슈홈페이지 제작 등 매우 도구적인 활동에 주력할 수밖에 없었지만, 실제 활동가들의 문제의식은 도구적인 활용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정보를 당시대 생산력의 핵심으로 파악하고 단순히 민주주의 문제를 넘어서 소유권과 생산양식의 재편 문제로 이해‘하고, 정보의 독점에 근거한 수직적 권력관계를 수평적 권력으로 대체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정보를 사회재생산을 위한 인류의 공공자산으로 파악하였다. 엔지니어들의 선구자적 자부심에 머물던 정보공유운동을 CopyLeft라는 구호로 대중화시킨 것이 바로 그들이었다.

 

3. 독립네트워크 운동 - 정부와 자본으로부터의 독립과 변혁운동으로서의 정보통신운동

97년 노동법 날치기통과 저지 총파업은 신자유주의저지투쟁의 시작을 알리는 투쟁이자, 한국 미디어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사건이다. 97년 총파업 투쟁 시 인터넷을 통한 전세계의 연대를 이끌어낸 것은 인터넷이라는 미디어를 과거 선진적인 활동가들의 무기에서 대중적인 무기로 각인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의 경험은 제1회 노동미디어행사와 그것의 이어진 성과로서 노동네트워크와 진보네트워크센터가 출범할 수 있는 대중적 동력을 제공하였다.

 

우리는 당시의 상황을 크게 네 가지 지점에서 추상화 시켜보고자 한다.

 

첫째, IMF와 신자유주의의 이식. 그리고 초고속망의 확장. 97년을 기점으로 통신산업에 있어 인위적인 진입장벽은 사라지게 된다. 97년2월 타결된 WTO기본통신협상에 의해 98년부터 통신시장이 단계적으로 개방되기 시작하였으며. 97년 IMF를 통해 한국사회에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전면적인 이식이 이루어진다. 이때 초고속망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와 주식투자열풍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던 묻지마 벤처열풍이 불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90년대 말부터 PC통신은 점차 인터넷에 그 자리를 내주게 된다. 즉 대중성을 획득한 것이다. 더불어 남한에서 통신망과 정보재에 대한 본격적인 자본진출이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둘째, 국가와 통신사업자들에 의한 검열과 내용삭제 행위는 90년대 PC통신 시절부터 이어진 것이었다. 그동안 진보진영에서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이미 그 기원이 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민주노총 CUG에 있던 게시물 등이 불온 컨텐츠라는 명목으로, 선거 시기 각 통신망 플라자의 글들이 선거법위반행위라는 명목으로 비일비재하게 검열당하고 삭제당한 것이다. 이런 경험들은 인터넷을 비롯한 사이버스페이스 상에서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감시받지 않는 독립적인 네트워크를 요구하게 되었다. 국가와 자본의 검열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의지는 보수화된 노동조합에서 조차 매우 중요한 의제였다. 이런 대중성을 바탕으로, 인터넷 초창기 진보네트워크센터와 몇몇 지역정보통신단체들이 호스팅사업을 중심으로 독립네트워크 운동은 활발히 전개될 수 있었다.

 

셋째,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단순히 망의 확장과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미디어의 발견에만 그친 것은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CCTV, 생체인식등 정보통신 기술은 우리 일상 곳곳에서 감시망을 구축하고 있다. 주민등록증을 전자주민증으로 전환하려는 국가의 시도는 이미 96년부터 시작된 것이었고, 당시 정보통신 활동가들은 다양한 사회 세력들과 연대하여 당시 전자주민증 발급기도를 철회시킨바 있다. 당시 정보통신 활동가들은 정보통신기술이 경찰국가, 감시국가의 근본적인 기술이라는 사실을 일찍이 간파하였다. 그리고 이런 기술을 매개하는 사회적 통제체계로 주민등록제도임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넷째, 당시 노동운동진영은 물론 거의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들까지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대안미디어로서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바 있는 97년 총파업의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간 지배세력에 철저하게 복무하였던 기존의 미디어(방송, 신문)에 대항할 수 있는 참여적이고 민주적인 미디어로서 주목한 것이다. 또한 기존운동진영의 인터넷에 대한 주목 못지않게, 새로운 미디어를 매개로한 새로운 활동들도 생겨났다. 쌍방향적 미디어이자 진입장벽이 낮은 멀티미디어 기재로서 새로운 미디어운동의 영역으로 주목받았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진보넷이 시작되었다.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사회운동의 정보화, 정보의 사회운동화를 기치로 독립네트워크를 표방하였고, 사설 BBS서비스 이었던 ‘참세상’, 정보연대 SING의 자원을 기반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진보넷의 의제를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거칠게 말해 ‘국가라는 자본주의의 대리도구를 배제하고 인터넷을 온전히 민중들에 의한 사회공공의 미디어로 쟁취해내려는 변혁운동’이라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민주노총 그리고 전농 등 기존의 변혁운동의 대중운동조직을 사이버스페이스로 확장하여 대중적 기반으로 삼되 국가로부터 독립을 보장하고, 또한 그것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생산/사회관계 창출을 위한 변혁운동의 무기로 삼는 다는 것이었다. 이는 세부적으로 3가지 운동 흐름으로 표현되었다.

 

1) 정보통신기술과 정보재의 사유화저지

앞에서 우리는 장황하게 PC통신부터 시작된 정보운동의 역사와 남한에서의 통신 산업의 발전을 설명했다. 그리고 가급적 두 가지 맥락을 병렬적이면서 상호대립적인 관계 속에서 서술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통신망이 국가주도로 개발된 공공재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함이며 또 한편으로는 폭력기구인 국가의 감시와 폭력에 저항하면서 운동의 영역을 확장해왔던 운동의 맥락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국가의 공적자원이-세원- 투여된 공공재로서 구축된 통신망이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주의재편과 맞물려 급속히 사유화되어 왔던 과정을 드러내고자 함이다. 진보넷은 이렇게 정보가 사유화되고 자본축적의 도구로 발 빠르게 변화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정보재는 기존의 상품과 질적으로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다. 사용할수록 가치가 마모되는 기존의 상품과 달리, 정보재는 사용할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질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정보재는 음악이나 영화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상품으로만 평가될 수 없는 사회/문화적 공유를 전제로 한 사회/문화적인 공공의 자산이기도 하다. 원래 지적재산권은 이런 사회/문화적 가치에 대한 공공의 보상제도였지만, 정보재가 자본축적의 도구로 급속히 변질되면서 지적재산권은 피해보상의 개념으로 변질되기 시작하였다.

 

진보네트워크는 정보재의 사적소유에 반대하고, 공공재로서 모든 민중에게 공유됨으로써 그 온전한 가치가 드러나는 정보재의 속성에 주목하였다. 정보운동SING으로부터 이어져온 CopyLeft운동으로 시작하여 지적재산권문제에 대하여 전문적으로 연구/활동하기 위한 IpLeft를 1999년 발족시켰다. 이후 1999년 MS독점반대운동, 2000년 삼성 BM특허 반대 기획소송, 소리바다등의 P2P서비스에 대한 과도한 지적재산권반대투쟁, 폭력적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단속 반대, 디콘법 반대운동, 2003년 WTO반대 투쟁을 해왔다. 2004년에는 CopyLeft운동을 보다 체계화시킨 ‘정보공유라이선스’를 발표하였으며 이후 특허법과 저작권법 개정운동 및 개정안 대응운동을 벌여왔으며 2006년부터는 ‘한미FTA 지적재산권 대책위’ 활동을 해오고 있다. 우리가 특히 특허법과 저작권법에 주목한 이유는 이두가지 법 모두 단순한 피해보상이나 권리보장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작권은 매우 한시적인 권리이며, 특히 공정이용이라는 면책사유등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법의 취지가 지적재산을 사회 공공의 자산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사회의지의 표현이다. 진보네트워크는 애초에 정보공유를 기반으로 한 정보재가 신자유주의의 자본축적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에 반대하고, 정보재의 사회적 공공성에 대해 강조해왔다. 그런 면에서 최근 세계화추세에 맞물려 강화되고 저작권과 특허법은 매우 우려스러운 것이었다.

 

2) 아래로부터의 혁명 인터넷.

90년대 인터넷은 두 가지 점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주목 받아왔다. 첫째는 인터넷은 그 시작부터 민족국가의 틀을 벗어나 그자체로 전세계적인 연대가 가능한 미디어라는 점, 그리고 과거 생산자와 소비자라는 이분법적인 근대적시선과도 구별된다는 점에서 대안미디어로 평가받아왔다. 또한 계급, 성별, 신체적 차별에서 벗어나 모든 민중들의 평등하고 직접적인 참여가 보장된다는 점과, 이를 통해 과거 지배권력의 정보의 독점에 기인한 지배전략을 깨트릴 수 있는 혁명의 무기로 인식되기도 했다.

 

둘째는 자본의 세계화와 관련이 있다. 자본의 세계화는 ‘전세계적인 사회적 관계의 강화’를 의미한다. 즉 세계화는 단순히 자본과 상품 그리고 노동력 이동의 전 지구적 확장뿐만이 아니라 전지구적 커뮤니케이션을 구축하는 것을 지향한다는 의미이다. 자본이동의 시공간 단축이라는 절대 절명의 지상과제는 지역적 한계에 제한받지 않는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정보통신기술이 단순히 정보전달 도구의 지위에서 쌍방소통과 공동체를 지향하는 미디어로 그 지위를 격상된 것은, 자본의 입장에서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맥락이 상호 공통점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생산관계를 지향하는 모순의 지점으로 보았다. 진보네트워크는 인터넷이 아래로의 혁명의 무기로서 발현되기를 욕망했다. 97년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통과 저지투쟁 당시, 총파업통신지원단은 네트워크가 국가와 자본의 권력외곽에서 기존권력을 전복시킬 수 있는 소통과 연대의 도구임을 보여주었다. 진보네트워크는 이런 네트워크운동의 성과를 바탕으로 98년 시작되었고 크게 세 가지 경향으로 드러났다. 한편으로는 기존의 대중운동조직이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자원했으며, 또 한편으로는 인터넷의 멀티미디어적 실험과 대안미디어로서의 모색이었다.

 

초창기 인터넷은 그동안 주류미디어가 애써 외면하던 민중들의 투쟁을 온전히 드러내고 저들이 왜곡 축소하던 사건들에 대한 폭로와 고발에 주력하였다. 1999년 지하철노조 파업 통신지원단 활동과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투쟁’시 공권력에 의한 조합원폭행 사건을 고발하여 대중운동으로 확장시켰다. 이것은 단순히 기존의 대중운동의 효율적인 선전선동의 수단이기도 했지만 당시의 미디어생산 방식은 과거 주류미디어의 생산방식을 극복한 실험이기도 하였다. 과거 생산자-언론/방송사의 기자-와 소비자-시청자/구독자-라는 이분법적인 구도를 와해시키고 현장노동자들과 연대하여 아래로부터 컨텐츠를 생산하고 이를 전국적/전세계적으로 유통하는 쌍방향적인 방송과 미디어로서 자신을 증명한 것이다. 이는 과거 지배세력의 독점적 소유였던 정보와 미디어를 민중들이 아래로부터 직접 전취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 대의제적 국가시스템과 공공성을 동일시하던 편협한 공공성의 의제를 민중직접참여적인 공공성으로 확장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초창기 실험들은 2002년을 즈음으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들에게 그 주도권을 넘겨주게 되면서 다시 대의제적질서와 시장질서내로 재포섭 된다. 군부독재시대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언론개혁운동진형은 인터넷의 권력 해체적인 성격에 주목하여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의 온라인신문에 주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2002년 노무현 정권과 2005년 신문법 개정으로 주류미디어로 제도화하는 과정을 겪는다. 이는 한편으로는 인터넷을 대의제적 질서 내에서의 공론장으로 격상시킨 것이자 한편으로는 대중 참여적이고 직접적민주주의의 장이었던 미디어를 대의제적 틀로 다시 제한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2005년 신문법 개정은 한편으로 인터넷언론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가능하게 하여 일면 공공성이 확대된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보다 엄격한 과거 언론의 기준을 강요하여 민중의 자발적인 참여행위에 대한 규제장치를 마련하여 참여 지향적인 공공성을 제한시킨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인터넷언론을 광고시장으로 내몰아 자본주의 일반의 이해에 복속시킨 것이기도 하다.

 

더욱 주목할 점은 2003년을 기점으로 포탈서비스가 급속하게 인터넷을 평정하기 시작한 점이다. 1997년 ‘야후코리아’를 시작으로 초기 포탈은 검색, 메일, 커뮤니티 전문형 사이트들이었지만 2003년 <미디어 다음>의 등장은 포탈에 새로운 성격을 부여하게 된다. 포탈의 강력한 접근성과 집중화 현성에 따라 뉴스의 소비패턴도 포탈로 집중화된 것이다.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과 같은 인터넷언론이 온라인 저널리즘에 불을 지폈다면, 포탈은 모든 언론을 모두 불살라먹는 통합적 저널리즘을 완성시켜버렸다. 즉 일반통신사업자인 포탈이 한국에서 중요한 정치, 사회적 의제를 아우르는 미디어 권력의 지위를 획득한 것이다. 포탈의 권력수렴 현상은 단순히 언론시장의 왜곡문제만은 아니다. 포탈은 기본적으로 이용자가 생산한 컨텐츠로 운영되는 서비스이다. 문제는 포탈사업자가 이런 이용자컨텐츠에 대해 일정부분 저작권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온라인상의 모든 컨텐츠에 대한 불공정한 수집행위이자 독점적 권력을 누리는 것이다.

 

당시 진보진영의 대응은 격랑 치는 미디어시장에 지분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2004년 총선을 기점으로 진보넷은 미디어의 커뮤니티-언론-개인 트라이앵글 전략을 수립하고, 과거 진보넷의 하나의 서비스였던 뉴스와 방송을 <미디어 참세상>으로 확대하는 한편 시청자지원채널 R-TV에서 방송을 시작하여 방송시장으로의 진출도 모색한다. 그리고 2005년 별도의 법인으로 독립시킨다.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다시 제도화되는 인터넷과 그리고 보수화되는 노동운동진영으로부터 다시 아래로부터의 미디어역량을 창출하고자 모색하기 시작한다. 2004년 블로그 서비스는 개인의 다양성과 조직되지 않는 사회의 공공적 의제와 욕망을 발굴하고 모색하기 위한 네트워크로서 기획된 것이다.

 

초창기 인터넷의 아래로부터의 혁명의 성격과 그것의 직접민주주의적인 공공적 의제에 주목하였지만 오늘날 포탈 중심으로 재편된 미디어환경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늘날 인터넷은 시장 친화적이고 주류 대의제적 정치 질서의 동원시스템이다 못해, 대중들의 민족주의적 욕망이나 성차별적인 성향들을 가감 없이 표출하고 때로는 소수자에 대한 내면의 짐승 같은 폭력성향을 과감하게 배설하는 공간이다. 참여적 미디어의 공공성은 소수자의 목소리가 배제되지 않는 다양한 목소리가 소통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현재 포탈이 수집/편집하는 미디어는 과거 주류미디어의 확대재생산에 다름 아니다.

 

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17세기 상인들의 자발적인 필요에 의해 사용되던 인쇄매체가 당시 민족국가형성 과정에서 국가와 자본의 적극적인 활용으로 민족국가와 대의제적 틀 내로 수렴되면서도, 한편으로 19세 말~20세기 초 사회주의 혁명의 기운 속에서 대중조직의 자발적인 언론활동으로 활용되기도 했던 것을 상기해보면, 현재 인터넷은 초창기 새로운 매체에 대한 기대 속에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지던 시기를 한참 지났다고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포탈을 비롯한 인터넷을 새로운 주류 미디어로 규정하고 그것에 걸 맞는 전선구축과 대응전략을 논의해야 할 때이다. 과거 진보넷은 새로운 미디어인 인터넷에 대하여 자유주의적인 전략을 취해왔다. 국가로부터의 완전한 자유를 주장해왔지만 이는 한편으로는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기대의 표현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매우 시장친화적인 노선이기도 하였다. 진보넷은 과거 운동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한편으로는 대안미디어로서 진보진영의 튼튼한 진지를 구축해야 하는 것은 과제와 더불어 포탈과 같은 독점미디어 공간에 대한 해체투쟁을, 또 한편으로는 전체 미디어시장의 문제점에 대하여 대안을 제시하는 보다 포괄적인 정책운동이나 대중운동이 필요한 시점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3) 표현의 자유 수호와 국가 및 자본에 의한 감시 강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진보넷 출범의 가장 큰 동기가 과거 PC통신 시절의 정보통신윤리위원회와 사업자에 의한 감시 검열문제였다. 진보넷은 지난 10년 동안 한편으로는 게시판 운영원칙을 제정하고 민주노총 등의 대중조직과의 연계를 통해 진보진영 게시판의 민주적인 운영을 위한 모델을 제시하고자 노력하기도 하였으며, 또 한편으로는 지속적으로 국가의 감시와 검열에 저항하고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와 ‘개인정보’를 수호하려는 각고의 노력을 해왔다고 자평한다. CCTV등의 노동 감시 대응, 의료정보화분석, KT 노동 감시 문제, 삼성SDI 위치추적 등의 노동 감시 문제, 전기통신사업법 54조의 폐지운동, 선거 시기 표현의 자유 운동, 통신질서 확립법 반대운동, 정보통신윤리위원회 폐지운동, 청소년유해매체 등급제 대응, 인터넷 실명제 반대운동 및 선거 시기 실명제 반대운동(선거법), 국가보안법 반대 운동, 전기통신망법 반대운동(임시조치, 북한게시물 삭제명령), 통신비밀보호법 대응, NEIS 거부 투쟁, 개인정보보호기본법 입법 운동, 지문날인반대운동, 전자건강카드 반대운동, 전자주민카드반대운동 주민등록법 개정 운동, 생체여권 반대운동 등. 정보인권이라는 기치아래 그동안 셀 수없을 만큼 무수히 많은 전장을 치러왔다.

 

인터넷 초창기부터 국가기구는 이 미디어가 통제하고 감시하기에 용이하지 않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간파했다. 과거 전통적인 매스미디어들이 비록 지난한 투쟁을 통해 상대적 자율성과 권력을 확대해왔지만 궁극적으로는 법률과 행정기관들에 의해 효율적으로 통제되어 왔다. 하지만 인터넷은 그자체로 일국적 수준을 벗어난 것이며, 기존의 대의제적 의사결정과정을 무력화 시킬 수 있다는 의구심을 처음부터 받아왔다. 당연한 것이다. 남한에는 이미 1992년에 인터넷 국가감시기구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설립되었으며, 미국에서도 1996년 인터넷을 방송과 동일하게 취급하고자 하는 취지의 연방통신품위법(the Communication Decency Acc: 일명 CDA)을 제정하기도 하였다. 이런 정부의 노력들은 초창기 대부분의 실패를 경험한다. 1997년 미연방대법원은 연방통신품위법에 대하여 위헌 판결을 하였으며, 2002년에는 한국에서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 불온통신 조항도 위헌판결을 받아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존립 근거를 흔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과거의 지난한 싸움은 지속적으로 수세로 내몰리는 싸움의 연속이었으며, 최근 몇 년 동안 포탈에 대한 사회적 논란과 비난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던 국가기구에는 다시 회생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해방이후 한국의 주요 사회통제 이데올로기는 반공과 불온이었다. 하지만 87년 민주화투쟁 이후, 과거 반공과 불온의 이데올로기는 점차 축소되고 각 사회분야에서 감시와 검열 그리고 통제의 틀은 느슨해지고 자유는 확대되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검열을 담당하던 관료조직들은 살길을 모색했고,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신천지를 발견했고 포탈을 비롯한 인터넷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분과 악성 댓글로부터 명예훼손피해를 구제한다는 명분으로 신천지에 완전히 자리를 틀었다. 이러한 노력은 눈물나게 가열찬 것이었고 최근의 포탈규제논쟁은 보너스 같은 것이었다. 더군다나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대테러전쟁을 명분으로 각종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는 법률들은 일사천리로 통과되었다. 이렇듯 인터넷을 둘러싼 대부분의 감시통제 기술과 법제도는 거의 완성 단계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대리인으로써의 국가기구가 일반 민중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줄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국가의 개입은 곧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자유주의적인 사상을 빌리지 않더라도 충분히 경험적으로 입증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국가와 자본의 관계는 보다 복잡해졌다. 자본의 주도권을 더욱 강화되었으며 국가로부터의 감시문제가 문제가 자본 스스로에 의한 감시와 검열이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다음카페에 개설된 이랜드 비정규직노동조합 카페가 임시 조치된 사건이나, 삼성비자금관련 김용철 변호사 폭로사건으로 전국이 들끓던 당시 네이버 뉴스면 초기화면에서 단 한 줄의 기사도 찾을 수 없었던 일들은 상징적인 사건들일 뿐이다. 또한 국가기구가 국민의 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것 못지않게 기업들 스스로 수집하는 개인정보와 재판매를 통한 개인정보관리와 통제전략은 향후 방통융합 그리고 유비쿼터스 시대에 자본에 의한 민중들의 직접통제라는 위험을 내포한 것이다. 즉 이제 국가기구가 문제는 아닌 것이다.

 

4. 미디어환경의 변화와 미디어융합

1) 독립네트워크의 위축

1998년경의 독립네트워크는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감시와 통제받지 않는 네트워크라는 정치적 의미뿐만 아니라, 사회운동 정보화의 지원의 의미를 강하게 함축하고 있었다. IT시장의 폭발적인 성장 속에서 사회운동진영 대부분은 시장메커니즘 속에 편입된 최근에도, 독립네트워크는 주로 국가와 자본의 검열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정치적 의지와 표현의 자유, 그리고 검열반대라는 정보인권 담론을 지칭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운동 전반의 변혁운동과 연대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독립네트워크운동은 점차 개별화되었다. 이는 첫째로는 IT기술 발전과 시장의 확장, 둘째로는 한국사회의 정상화, 그리고 진보진영의 정치적 분화가 가속화되는 사회적 변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동운동 및 사회운동진영의 인터넷에 대한 관료적 접근 태도들이 맞물린 결과이다. 시민운동진영의 성장과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의 의회 진출 속에서 대다수 주요정치/시민운동진영은 일찌감치 독자서버를 운영해왔으며, 최근 노동운동 내 정치적 분화 속에서 민주노총 등도 독자서버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으로 기업별 노조에서 산별로 전환되는 노동운동의 흐름역시 독자서버의 필요성을 증가시키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IP주소를 저장하지 않고 공권력의 개입을 일체 거부해왔던 과거 단일한 전선에서 이탈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도 있다. 특히나 노동운동 진영의 경우 인터넷을 과거처럼 실험적이고 대안적인 미디어로 활용하기 보다는 관리하고 통제해야할 미디어로, 관료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관료주의적인 경향은 한편으로는 홈페이지에 대한 자체 역량을 강화하기보다는 시장에 대한 의존성을 높이고, 또 한편으로는 자유게시판에 대한 통제와 감시기능-IP 주소 저장 등-을 요구하며 결과적으로 국가와 자본에 의한 통제시스템에 편입될 우려도 강화시킨다.

 

2) 인터넷과 통신 시장의 독점과 미디어융합

진보운동진영이 각자의 진지로 해체되고 관료화되는 동안, 자본의 독점과 국가의 통제전략은 통합적으로 구축되어 왔다. 이제 인터넷은 독점 시장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주류 상업 미디어이다. 최근 ‘방통융합’이라 불리 우는 미디어 융합 국면은 이런 경향이 만들어낸 질적 변화이다. 미디어의 융합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IP-TV에서 선보여지는 멀티미디어 기술-다중컨텐츠 전송기술이나 VOD서비스들-들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진 서비스이다. 방통융합은 기술의 새로움에 대한 표현이라기보다는 새로이 창출되는 시장에 대한 구획 설정과 법제도 정비의 표현이다. 이미 통신망과 인터넷은 KT 등의 망사업자와 포탈 등에 의해 독과점이 형성된 포화시장이다. 지금 방통융합과 관련한 일련의 논쟁에서 새로운 것이라고는 사실상 방송서비스를 하고 있는 통신서비스사업자에게 공식적으로 명함 하나 제대로 파주는 것밖에 없다. 방통융합이 마치 최근의 이슈처럼 다루고 있지만, 사실 정통부나 KT등의 통신사업자들은 NgN, BcN등의 새로운 국가기간통신망 구축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오랫동안 준비해왔다. 이미 2010까지 구축을 완료한다는 구체적인 목표까지 설정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방통융합서비스라 불리는 IP-TV등은 이렇게 새로 구축되는 국기기간통신망건설과 이를 통한 새로운 시장창출이라는 일련의 목표 속에 진행되어 왔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통신과 미디어 산업의 과잉 축적문제를 이야기하지만, 자본은 이미 새로운 시장창출로 그것을 돌파하는 것까지 그려두고 있었던 것 이다. ‘유비쿼터스 시대’와 같은 장밋빛 전망은 단순히 몽상가들의 호들갑이 아니라,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는 무모한 도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자본가들의 투철한 도전정신이었던 것이다.

 

방송과 통합을 아우르는 독점의 고도화는 결과적으로 자본에 의한 정보와 컨텐츠의 독점을 심화시킬 것이다. 공유에 기반 한 정보재 고유의 대안적 생산관계를 무력화시키고 저작권의 틀 속에서 폐쇄적이고 일방향적인 망으로 다시 회귀하려 하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이용자의 표현을 제한하고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저해하고 오히려 대중동원의 기재로 회귀하게 될 것이다. 이런 경향은 이미 여러 군데에서 증명되어 왔다. 포탈들이 인터넷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 획득한 이후 나타난 일련의 사례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황우석 사태’나 영화 「디워」 논쟁에서 보듯이 많은 논객들이 포탈을 통한 대중의 자발적인 국가주의에로의 동원, 그리고 소수자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력에 너도나도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말들이 많다고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님을 보여준 이런 사례들은 인터넷이 과거보다 빅브라더에 의한 대중동원을 더욱 쉽게 만든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한다. 이는 시장의 독점에 의한 인터넷구조의 왜곡 때문이다. 포탈의 독점적 지위는 결국 인터넷의 다양성을 위축시킨다. 과거 많은 진보진영이 독립적인 홈페이지의 구축과 독자적인 소통공간을 중요히 생각했지만, 이제 대중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모든 온라인 활동이 포탈에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포탈에 집중될수록 정부와 기업에 의한 감시와 통제는 더욱 용이해진다. 망과 플랫폼의 독점의 문제는 단순히 자본에 의한 시장지배라는 문제에 그치지 않고 담론과 문화 그리고 컨텐츠의 다양성을 저해하고 국가와 자본에 의한 감시를 강화하고 결과적으로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를 매개로한 자본의 대중 동원기재로 전락하게 된다.

 

물론 모든 문제를 독점자본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대중 동원의 기재로 작동하는 것이 인터넷이라는 기술과 포탈의 서비스 때문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용자가 참여가 보장된 UCC 서비스를 보자. 과연 그곳은 이용자가 직접 생산한 비판적이고 대안적인 컨텐츠가 유통되는 대안의 공간이던가?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포탈의 UCC 서비스는 크게 세 가지 컨텐츠 시장에 기반하고 있다. 우선은 방송컨텐츠의 2차 소비시장(하이라이트와 스타 컨텐츠), 둘째는 음성적으로 유통되던 불법 영상 컨텐츠를 시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자체시장인 스타 발굴/육성 시장이다. 물론 간간히 주류담론에 균열을 내고 다른 사회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컨텐츠가 올라오고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절대적인 양에서 부족하다. 이는 자본의 전략이기에 앞서 대중들의 상상력과 생산력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빈약한 탓일 것이다. 미디어융합이 우려스러운 점은 바로 이런 독점의 문제를 심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3) 자본과 국가의 통제모델 변화

미디어의 융합은 인터넷을 포함한 미디어의 환경의 변화 크게는 통신자본의 방송진출이라는 자본시장 측면의 의미뿐만 아니라, 방통융합기구로 통합되는 국가기구모델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방송과 인터넷을 아우르는 통제와 관리시스템을 정비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전통적인 미디어와 예술영역은 과거 군부독재시대에 비하면 상대적인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강화되고 있는 인터넷의 통제장치들은 과거와 세 가지 면에서 크게 다르다. 첫째는 그것이 기술 중심 적이라는 점이다. 과거 경찰의 수사방식에 비해 인터넷을 통한 수사는 글게시자나 개인정보주체가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이루진다. 또한 인터넷을 통한 감시 프로그램의 경우 네트워크 이용자는 전혀 인지하지 못한 체 이루어진다. 둘째는 사업자 중심적이라는 점이다. 정부는 직접 규제보다는 간접 규제의 형태로 사업자로 하여금 직접 감시의 주체로 역할 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법이나 공권력 때문만은 아니다. 이는 사업자 스스로가 더 이상 감시대상자에 대한 감시와 통제활동을 거추장스럽고 귀찮은 절차에 얽매인 공권력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화하려는 경향과도 맞물린 것이다. 이제 기업은 조합원들의 활동을 감시하기 위해 애써 국가기구에 의존하지 않는다. 휴대폰이나 CCTV 그리고 웹의 접근기록을 통해 스스로도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감시의 사회적 확대, 또는 내면화 과정이기도 하다. 셋째, 인터넷의 특성상 인터넷의 감시체계는 그 자체로 범세계적이어야만 한다. 따라서 이는 감시체계의 세계화를 동반한다. 네트워크 모니터링을 위한 국제적인 기술 표준부터, 각국의 수사공조 체계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러한 정세들은 우리로 하여금 총체적인 혼란으로 몰아놓고 있다. 국가의 감시체제 강화는 물론 자본에 의한 민간감시체제의 강화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국가에 의한 정보통제와 대중동원체제보다는 자본의 독점에 의한 정보독점과 대중동원체제가 더 문제시 되고 있다. 그간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너무 추상적으로 다뤄왔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자유주의의 도구로서 정보통신기술이라는 설정은 너무 환원론이며, 국가의 감시와 통제에 대한 반대 투쟁은 여전히 ‘국가와 개인’이라는 근대적 시선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개별적인 자본의 독점과 감시기능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민중의 총의로서 어떤 공적영역을 통한 견제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한편, 공적 기구의 비대화를 통한 해결은 민중에 대한 국가에 의한 직접적 통제라는 양날의 검을 선택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 인터넷이라는 대안적 미디어를 지켜내고, 정보인권이라는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국가배제적인 노선을 견지해왔지만, 앞서와 같은 여러 정황들은 우리에게 공적 영역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란 해 묶은 질문을 다시 던지게 한다.

 

만일 우리가 근대적 이분법을 잠시 벗어버리기로 하고, 국가/자본/노동/사회운동/공동체/개인 등 보다 구체적이고 다양한 주체들의 운동이라는 관점으로 내려가 보기로 한다면, 이런 다양한 주체들은 비록 상호 계층적이면서도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기는 하지만, 때로는 적대적일수도 있는 매우 정세에 민감한 관계라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우리는 한 사회의 운동이 이런 다양한 주체들의 상호 대립적이면서도 상보적인 운동 속에서 진행된다는 사실을 한다면, 자본의 독점과 국가기구의 사이에서 전술적 유연함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국가기구의 개입을 견제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진보적인 의제들을 공적 영역에 확장함으로써 자본의 독점에 저항하고, 자본의 독점에 대한 배타적인 저항을 하면서도 국가기구에 대응하기 위해 그들을 견인할 대안담론과 가치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5. 미디어의 공공성 의제

인터넷이 비록 계속 협소화되고 대안미디어로서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넓게 보자면 여전히 가능성이 충분한 공간이다. 여전히 인터넷은 넓고 대안의 공간도 충분하다. 우리는 초창기 인터넷이 그러하였던 대안미디어로서, 자본주의적인 생산과 소비의 관계에서 쌍방향성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생산관계와 삶의 다양함과 풍부함으로서 인터넷의 가치를 지켜내고, 미디어를 민중의 손으로 끌어내려 ‘아래로부터의 끊임없는 혁명’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를 위해 우리는 앞으로 미디어의 융합과 발전과정에서 지켜져야 할 몇 가지 의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1) 다양성

앞장에서 이야기 했듯이, 포탈의 근본적인 문제는 언론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독점적 지위에 근거한 정보수탈과 정보독점, 그리고 정보배제 문제이다. 방송과 포탈에 정보의 노출빈도를 높이는 것이 대중과의 담론의 소통을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경로라니, 초기 인터넷이 그 자체로 다양성의 상징이었던 것에 비하면 얼마나 수세적인가?

 

우리는 포탈의 인터넷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해체하고, 정보의 가치와 권력을 이용자에게 되돌려주는 투쟁을 벌여나가야 한다. 포탈이 가지는 정보의 독점권은 부당한 것이다. 포탈에 넘쳐나는 정보는 모두 이용자가 생산한 것이다. 네이버 지식IN의 경우만 보아도 그렇다. 그 공간에서 향유하는 민중이 스스로 창출한 지적 성과물은 온전히 이용자들의 것이다. 따라서 지식IN의 컨텐츠에 대한 지적소유권과 활용에 대한 권리는 온전히 이용자들의 것으로 되돌려져야 한다. 포탈은 단지 그 공간을 임대해줌으로써 얻는 광고수익만으로 초과수익을 얻는 것이다. 또한 현재 수렴형, 폐쇄형인 포탈서비스를 개방형으로 바꿔내어야 한다. 그리고 시장 지배적 사업자인 포탈사업자들은 컨텐츠의 다양성을 보장하기위한 지면배치를 해야 할 사회적 책무가 있다. 이것은 인터넷의 다양한 컨텐츠가 살아 숨쉬도록 하는 것이며, 그것은 인터넷이 다시금 다양한 욕망과 대안의 모색공간으로 만들어내는 일이며 포탈사업자가 이용자들과 공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세상에는 포탈서비스와 같은 단일하고 규격화된 플랫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치 세상에 Window XP만 있는 것이 아니듯이. 그 외에도 다양하고 대안적이며 실험적인 플랫폼은 얼마든지 있다. 오늘날 유명한 구글이나 유투브등이 만들어진 과정은 단순히 그들만의 힘이 아니었다. 오픈소스등의 참여적이고 공유에 기초한 개발환경과 실험들이 없었다면 과연 그들이 가능했을까? 아니 인터넷이라는 것이 가능하기는 했을까? 인터넷의 풍부한 발전은 소통하고 싶은 소박한 욕망들이 담겨있는 다양하고 실험적인 플랫폼과 서비스에 있다. 이런 다양한 플랫폼과 소프트웨어들을 단순히 시장에만 내몰 것이 아니라, 대안적이고 창의적인 욕망과 지적자산에 대한 사회적 지원 체계가 보다 활성화되어야만 한다.

 

2) 문화의 향유권의 보장과 참여보장

둘째는 방통융합국면이라 불리 우는 국면이 단순히 시장의 강화와 활성화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 IP-TV등의 새로운 융합서비스가 UCC 서비스처럼 소비지향적인 시장으로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2002년 즈음의 대중들의 인터넷에 대한 기대와 열망은 주류미디어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배우고 터득한 기성질서에 대한 모순과 대안적인 가치에 대한 자기표현 때문이었다. 또한 그동안 누리지 못해왔던 다양한 문화적 가치에 대한 향유와 다양한 공동체적 삶에 대한 향유 때문이었다. 멀티미디어컨텐츠가 주류컨텐츠로 떠오른 융합미디어에 대해서도 민중들은 같은 것을 꿈꾼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다양한 컨텐츠를 통한 문화의 다양성을 체험하고 그를 통해 계급, 성별, 신체의 제약 없이 평등하고 다양한 공동체적 경험을 누릴 권리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협하는 몇 가지 우려 요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 가지만 언급하자면 자본의 세계화와 맞물린 지적 재산권의 강화문제이다. 이는 단순히 초국적 독점자본의 수탈체계이기도 하지만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하고자 욕망하는 대다수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상에 새로운 것이란 없다. 결국 문화와 역사라는 토대위해 재구성되는 것이고 그것의 공유야 말로 창조의 기반이다. 앞으로 지적재산권이 강화되면, 어쩌면 우리는 게시판에 글을 쓸 때마다 영상을 편집할 때마다 저작권자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해야만 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지적재산권의 강화는 모든 생산활동을 자본주의적인 관계로 재구성해내려는 신자유주의의 또 다른 얼굴일 뿐이다. 이런 위협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지적재산권이 적절한 수준에서 제한적일 필요가 있다. 원래 특허권과 지적재산권은 피해보상이나 배타적 정보독점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이는 원래 지식을 널리 공유하도록 장려하고, 창조적인 활동에 대한 적절하고 제한적인 사회적 보상을 해주기 위함이다. 즉 사회의 지적 자산을 공유하기 위한 공공의 목적을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초국적 자본의 논리에 개인들의 지적공유와 향유의 권리가 제한되어서는 안된다. 둘째는 이런 지적재산권이 사회적 자산으로 활용되기 위한 공정이용이 확대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언론사나 방송사는 공정이용이라는 명목으로 많은 경우 지적재산권의 예외적 활용으로 혜택을 입고 있다. 하지만 실제 컨텐츠의 생산자인 시민운동진영이나 다수의 대중은 해당 방송과 기사를 활용할 수 없다. 심지어 자기 홈페이지에 퍼 나를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비영리적이고 사회의 공적인 목적으로 생산된 컨텐츠에 대해서 사회적 지원을 확대하고 공정이용으로 다수의 대중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보와 지식의 공유를 장려하는 대안적인 생산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고민과 실험들이 필요하다. 사실 대부분의 지적생산물은 사적소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애초에 민중의 것이었으며, 민중들의 세금에 의한 공적자원의 지원을 받은 것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러한 컨텐츠들, 예를 들어 공영방송의 컨텐츠나 공적지원에 의한 공공의 컨텐츠들은 반드시 사회의 공공의 자산으로 활용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대안라이센스 운동이 보다 확장되어야 한다. 이는 사회운동 진영도 마찬가지이다. 근시안적인 자기생존 논리 속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3) 표현의 자유와 익명성

=대테러전쟁을 빌미로 강화되는 국가기구에 의한 통제와 감시의 강화는 매우 우려스러운 것이다. 이는 단순히 일국적 수준의 문제가 아니며 최근 전자여권문제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전 세계를 나와 적으로 구분하고 전세계적 수준에서 자본과 노동력 그리고 정보의 이동을 통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이는 단순히 국가 검열기구의 강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결국 자본에 의한 민중의 직접 통제를 강화하려는 자본의 욕망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과거 CCTV나 생체인식과 같이 작업장내에서의 감시문제는 이랜드 노조 사태에서 보듯이 이제 단순히 작업장내에서의 물리적인 통제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인터넷에서의 표현의 자유는 단순히 정치적 입장에 대한 의사표현만의 문제는 아니다. 노동자로서의 자신의 권리에 대한 투쟁인 것이다. 개인들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대의제적 민주주의 틀의 한계를 보안하고 때로는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통해 사회가 진보적으로 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 조건이다. 또한 익명성도 보장되어야 한다. 익명성은 한 개인이 자신의 계급과 학력 그리고 성별과 신체적 차이를 넘어서 평등하게 의사를 개진할 수 있도록 하는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자행되고 있는 실명제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악성 댓글을 차단하겠다는 하지만 실제 차단되고 있는 것은 개인의 정치적 의사표현이지 연예/스포츠 면에 실리는 악성댓글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이러한 실명제의 폐해가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 이번대선에서의 선거법이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에서 오히려 국민의 발언을 제한하는 관료적인 접근이오,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퇴행적인 악법이다. 한국에서 실명제가 위력적인 이유는 주민등록번호라는 전 국민 단일 인증체계 때문이다.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이 시스템은 과거 오프라인에서의 유사시 신분증명과 이동통제의 기능을 뛰어넘어 온라인에서의 실시간 감시가 가능하게 하는 진정한 빅브라더이다. 우리는 주민등록번호제도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최소한 그것의 사용은 감시가 아니라 유사시 신분증명과 같은 소극적 의미로만 사용되어야 하며, 온라인에서의 단일한 개인증명도구로 활용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를 불가피하게 제한하여야 할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반드시 사법적 판단에 의한 엄격한 것이어야 한다. 행정기관에 사법권을 부여하거나 포탈사업자에게 임시조치를 강제하는 것은 현행 헌법상 명백히 삼권분립의 위반이며 전국가적인 감시체제에 대한 용인에 다름이 아니다. 물론 모든 미디어에 적용되기는 힘들 수도 있다. TV등의 지상파 방송은 미디어의 특성상 일정정도의 심의체계와 행정력이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률적인 규제보다는 각 미디어의 특성에 따라 차별적인 규제가 필수적이며, 심의기관도 국가조직이 아닌 민간자율합의 기구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4)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과 개인정보보호

정보화가 진전된 사회에서 살면서 삶의 이기를 위해 일정정도 개인정보를 주고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내가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해 나의 어떤 정보를 제공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반드시 개인이 인지하고 선택하고 결정할 필요가 있다. 본인의 의사나 동의 없이 수집되거나 재판매되는 일은 개인의 자기결정권에 위배되는 것이고, 개인의 인격을 침해하는 것이다.

 

이렇게 수집된 개인정보는 철저히 관리되어 개인정보유출에 따른 피해를 사전에 철저히 막아야 한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많은 금융피해 중에 하나가 이렇게 함부로 유출된 개인정보에 의한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노력은 기업들에 자율에 맡겨서는 가능하지 않다. 많은 기업들이 고객의 내밀한 정보를 원하고 기업들의 이익만 일치한다면 언제든지 사고파는 행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공적인 기구를 통한 강력한 지원과 규제, 그리고 처벌이 필요하다. 이미 유럽은 오래전부터 독립적인 국가기구를 통해 개인정보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에 비하여 한국은 모호한 지원체계와 규제 틀에서 머물러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한국은 특히나 주민등록번호라는 치명적인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이다. 하나의 개인정보 유출은 사실상 모든 정보의 유출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정보수집과 관리에 대한 철저한 규제는 그 어느 나라보다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피해를 막기 위한 예방차원이 아니라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당연한 임무이다. 그런 면에서 개인정보보호는 단순히 민간시장만을 대상으로 해서는 안 된다. 국가정보원같이 국가 행정기관이 통제받지 않고 개인정보에 접근하고. 필요이상으로 국민의 성향을 판단하고 감시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기관은 반드시 국가독립기구체제이어야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