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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택시노동자의 마지막 유서.

어느 택시노동자의 마지막 유서.

아파트 입구, 조그만 삼거리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길 건너편에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택시가 보였고, 나는 힘차게 '아저씨'를 부르며 손을 들었다. 나와 택시와의 거리는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약 5M 남짓쯤. 택시기사 아저씨는 빨간신호를 앞에두고 슬금 슬금 차량을 몰고 내게 왔다. 택시 문을 열고 타려는 순간, 이런 택시뒤에 있던 경찰관의 오토바이가 택시를 가로막는다. '경찰관이 바로 옆에 있는 데 무시하는 건가요. 신호위반입니다. 면허증을 제시해주세요.' 경찰관의 말이 끝나자 마자, 택시기사 아저씨의 얼굴은 노래지고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래도 본능적으로 새어 나오는 택시기사아저씨의 답변. '못 봤어요. 봐주세요'. 한번만 봐 달라는 택시기사 아저씨와 끝까지 면허증을 제시해달라는 경찰관 사이에 실갱이가 계속되는데, 괜시리 나 때문에 이런 것 같은 자책감이 밀려들었다.

뭔가 택시기사 아저씨를 거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고, 경찰관에게 나도 부탁을 했다. '딱지 한번 떼고 나면, 이 (택시기사)아저씨 하루 벌은거 다 들어가는건데요. 한번 봐주세요. 요즘 택시영업이 너무 힘들잖아요. 한번 봐주세요'. 그러나 내말이 나 끝나기도 전에, 아저씨는 아무 상관 없으니 상관하지 말라는 경찰관.

택시기사아저씨와 나, 둘이서 열심히 빌었건만 경찰관은 고집을 꺽지 않았다. 졸지에 패배자가 된 택시기사아저씨는 담배를 입에 물고, 깊은 한숨만 내쉰다. '에이, 오늘 완전히 헛방이네요'라고 말 하는 택시기사 아저씨. 그냥 할말이 없어, '미안해요. 아저씨'라고 말하는 나(사실 내가 잘못한건 없는데).

나는 안다. 택시기사 아저씨들의 처지를. 이들이 죽어라 일해도, 한달 백만원 벌어가기도 힘들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이 신호위반 딱지 하나가 택시노동자들에게 얼마나 바윗덩이 보다 더 큰 무게로 다가온다는 것을. 그래서 미안했나 보다.

'한미FTA를 중단하라'며 분신을 했던 택시 노동자 故 허세욱씨. 빨간색 펜으로 꼼꼼히 밑줄을 쳐가며 FTA 관련 신문기사를 스크랩하고 1인 시위를 하던 그. 그는 '나를 위해 모금을 하지 마세요. (택시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니까!'라는 유서를 남긴 故 허세욱씨. 택시노동자인 허세욱씨의 인생을 이야기 할때, '막장인생'이라는 네글자가 따라다녔다.

탄광촌이 사라진 지금, 택시노동자들은 그들을 대신해 '막장인생'이라는 네글자를 물려받았다. 택시노동자들은 이중의 굴레를 떠앉고 있다. 하나는 사납금이라는 현행법상의 명확한 불법의 굴레이고, 또 하나는 최저임금법도 적용받지 못하는 방치의 굴레다.

이제, 개선되어야 한다. 최저임금 시급 3,480원이 택시노동자에게 보장되어야 한다. 4월 임시국회에서 최저임금법이 반드시 개정되어야 한다.

택시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를 감안해, 모금조차 하지 말라는 택시노동자 故 허세욱씨의 마지막 유서가 너무나 가슴을 때리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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