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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기에 먼 산을 바라보며 자유의 왕국을 생각하다

격동의 시기에 먼 산을 바라보며 자유의 왕국을 생각하다

 

                                                                                                                                                     -봄-

 

오늘따라 먼 산이 다가온다.

오늘에서야 먼 산과 가까운 산은 항상 같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격동의 시기에 먼 산을 바라본다.

 

동이 막 터오는 지금, 지구의 흔들리는 격동이 들린다.

우리의 인간의 역사도 하루가 긴박한데, 태양과 지구는 얼마나 긴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태양가까이 가고 있는 지구의 표면에서, 우리의 불평등과 해방을 생각한다.

태양의 불구덩이에 들어가도 진정한 해방이 오기를 우리는 갈망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지금 노무현대통령을 추모하는 것은 현 이명박정권의 독단적이고 반동적이고 반민주적인 행보에 대한 국민들의 회한과 반대급부로 새로 태어나는 노무현의 소탈함과 소통을 하려했던 모습때문이라고......

이렇게 말하는 이들은 저 유명한 심리학자요 정신과의사요 등등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내가 먼 산을 바라보고 먼 산이 있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았듯이

노무현이 우리에게 먼 산의 존재는 아니다.

고착된 진리는 아니다. 절대적 진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의식의 발전은 적어도 과거의 노무현에게로만 회귀하지는 않는다.

불과 2년전 노무현의 말기에, 경제의 파탄으로 우리가 이명박에게 단순회귀한 것 처럼 흥분하며 떠들었던 때에도 그것은 단순회귀방정식이 아니었다.

 

지금 동 터오는 새벽에 지구가 태양을 향해 돌진해가듯이,

우리는 우리를 한바퀴 돌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원점을 향해 우리를 내려놓지 않는다.

적어도 한걸음 더 나갔다.

 

지금 우리는 노무현의 유연한 자유주의 민주주의와 이명박의 그보다 더 강압적인 파쇼적 민주주의를 지나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노무현의 유연한 자유주의 민주주의로 회귀하는가?

 

아니다.

먼 산이 항상 그대로가 아니듯이

우리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아마 우리는 깜짝놀랄것이다. 저렇게 천연하게 서 있는 먼 산도 가까이 가보면 과연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그 오랜 세월속에 먼 산은 항상 같은 색깔의 같은 모양의 산이 아닌 것을

 

우리가 원하는 것도 항상 자본주의가 아니며 항상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

왜 우리에게 그것을 강요하는가? 누가 그것을 강요하는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적어도 맑스가 이야기한 자유의 왕국인 것이다.

그것은 자유로운 인간들의 자유로운 집합체들의 자유롭고 유기적인 활동이다.

우리는 자연의 법칙에 따르나, 그 자연을 더욱 더 발전시키는 거대한 발전을 원한다.

 

지금 우리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갈망때문에 노무현을 추모하는 것이 아니듯이

우리의 목표는 거기에 천착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것만을 보는것처럼 여겨지나? 거기에 천착하는 것처럼 보일까?

 

더 큰 비젼을 공유해야할 시간이 없었다.

우리가 꿈꾸는 자유의 왕국을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고, 소통이 없었다.

 

우리는 지금 이것을 안타까와해야한다.

 

"꿈은 이루어진다" 자본주의의 세계에서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나도 경외해왔고, 그래서 감히 말로 꺼내지 못했던 "자유의 왕국"에 대하여

 

이제, 꺼내야한다.

 

처음에는 말더듬이가 될 지라도

 

이제는 떠들어야 한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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