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마라톤을 하는 이유^^

[2015 삼일절 마라톤] 저체온증으로 봄을 맞다

오늘 춘천은 매우 추웠다.

어제 비가오고 나서 날이 따뜻해 질것이라고 한 일기예보는 역시나 빗나갔다. 꽃샘 바람인지 불어제끼고, 눈발조차 날렸다.

어제 너무 긴장을 하여 잠을 제대로 못잤는데, 멀리서 친구분들이 벌써 도착했다고 했다. "아풀사" 하면서 일단 뛰어나가 친구들을 맞이하고, 해장국을 나눠먹으면서 오늘 뛸 일을 논의했으나 별 뾰죽한 수는 없었다.  어짜피 누가 내대신 뛰어주랴? 내가 뛰어야지......

나도 모르게 오늘만 하프를 포기하고 10km만 뛰자고 얍삽한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 도무지 하프를 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나는 옷을 갈아입으면서 오늘 날씨를 잠시 잊고는 매년 하던대로 여름용 그믈 나시티에 짧은 반바지를 입고 나섰다. "얼마를 달리면 몸이 더워지니까 옷이 거추장스러울꺼야!"라고 중얼거리면서 출발선에 섰다. 출발선에 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긴팔에 긴바지를 입고 있었고, 심지어 오리털 잠바까지 입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내가 왕년에 마라톤을 몇년을 했는데, 달리면 더워질꺼야!! 하고 출발총성과 함께 달려나갔다. 뒤에서 달리던 사람들이 "왜 옷을 안입었냐?" "안춥냐?"고 물으면서 간다. 출발한지 한참이 지나도 몸이 더워지기는 커녕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양쪽 어깨죽지가 시리다 못해 아파오기 시작했고, 두 손에 감각이 없어졌다. 달리기의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체온은 점점 더 떨어져 가는 것 같았다. 반환점을 지나서는 거의 걸었는데, 주위에 걷고 있는 마라톤 참가자들이 많아서 미안한 마음은 조금 덜했다. 간신히 달리기를 마치고 사진이고 뭐고 다 둘째치고 우선 옷을 입고 눕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오늘 오신 선배님의 말씀처럼 이제 정말 달리기를 해서 건강을 지켜야할 시기이다. 한번 잃은 건강을 회복하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명심해야겠다.

오늘은 봄을 맞아 겨울 옷을 벗어제끼고 거리에서 온몸으로 봄을 맞았다는 데 큰 의의가 있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4년 삼일절 마라톤대회 소감]

2014년 삼일절 마라톤대회를 참가했으나, 소감문을 놓쳐서 지금 간단히 생각나는대로.. 

멀리서 와주기로 했던 친구들이 출발총성이 나기 직전까지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할수 없이 나 혼자 뛰기 시작했는데, 5km반환점(10km완주용)에서도 주저없이 뛰어 나가 하프를 다 뛰긴 뛰었다. 막판에 거의 걷다시피 해서 들어왔던 것 같다.

하프 반환점을 돌자 친구들이 하나 둘씩 나타났다. 총성이 지난후에 10분이나 지각하고 뛰었다고 하셨다.

이날 모처럼 좋은 하루가 되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2삼일절마라톤소감

'앰블란스의 호위를 받으며 유유자적 가는 화성인' , 이것이 이번 마라톤의 컨셉^^

 

2012 0301 강원일보사 주최로 삼일절 마라톤대회가 열렸다.

날씨가 매우 화창했다. 멀리서 벗이 7명이 왔으니 한 10km 정도 걸어나 볼까? 하면서 일단 강원도청앞으로 갔다. 날씨가 화창한데 의외로 사람들이 적었다. 마라톤복을 입고 몸을 풀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갑자기 한번 뛰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즉석에서 하프 등록을 했다.

선거철이라고 볼펜도 준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 자본주의사회에서 선거로 권력을 독차지 해 본 놈만이 이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선거폭력을 신화화하려는 엄청난 음모다. 여기에 반하여 나는 이렇게 말한다 "민주주의의 꽃은 혁명이다"

출발신호가 울리고 약 5km를 뛰었는데도 벌써 모든 사람들이 나를 앞지르기 시작한다. 오늘은 선수들만 왔나? 10km 반환점에 접어들면 확연히 알 수 있다. 하프를 뛰는 사람이 몇명이 되는 지를...... 아풀사 내 뒤로 한 명도 없는 것이었다. 이런 일은 정말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31마라톤 대회에서는 그나마 꼴지는 아니었는데......

그런데 어디선가 앰블란스 (인성병원 앰블란스였다)가 천천히 내 뒤를 밟는 것이었다. 아! 벌써부터 나를 호위하면 안되는데 하면서 나는 뛰다가 교통정리차 나와있는 경찰아저씨에게 "저 뒤에 앰블란스 보고 그냥 가도 된다고 이야기해줘요"하면서 전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앰블란스는 기어코 따라오는 것이었다. 이제는 날씨를 느껴볼 수도 없고 주의를 쳐다볼 틈도 없이 달려야 했다. 오르막이 보이면 더 달렸다. 그런데 희한한 일은 내가 그렇게 달려도 앞서간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도 한 명도 안보이는 것이다.

결국 앰블란스가 뒤를 따르는 나의 독주가 시작되었다. 길 가의 아주머니 아저씨들을 보기가 민망했으나 이제 체념을 하곤 그러려니 하시겠지 하면서 천천히 달렸다.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앰블란스가 나를 얼마나 호위해주는가?를 알게 되었다. 결국 하프지점까지 가자 이제 사람들이 반환하여 돌아오고 있다. 사람들은 반환점을 지나 우르르 몰려나오는데 나는 혼자서 앰블란스를 뒤로 하고 뛰어가고 있으니, 모든 사람들이 나와 인사를 할 밖에...... 나도 그 인사를 일일히 받아주었다. 백발이 성성한 수염있는 할아버지도 나에게 화이팅! 하고 지나가셨다. 우리학교 백오리 동호회원들이 모두 나를 본 것은 물론이고 나중에 만나서 이야기 중에 나왔지만 멀리서 온 벗 4명도 나를 봤다고 한다.

'앰블란스의 호위를 받으며 유유자적 가는 화성인' 그게 나의 컨셉이었다.

이제 막 반환점을 돌아서 소양강을 따라서 뛰어갈 때는 행복했다. 나름대로 호위군도 있고 맨 늦게 가도 두렵지 않았다. 그런데, 도심지로 들어오자 경찰아저씨가 나를 불러서 인도로 가라고 하신다. 그러더니 앰블란스를 제지하여 더이상 따라오지 않게 하는것 같았다. 이제 나는 혼자가 되었고 그 딱딱한 보도블럭을 뛰려니 잘 뛰어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다시 나와 도로에 빨간 꼬깔이 있는 노선으로 달려보지만 여전히 속도는 나지 않는다. 다리는 괜찮은데 왠일인지 머리가 아프다. 내가 오랫동안 운동을 안했다는 증거군...... 그렇군 거의 한달을 일에 빠져서 몸무게도 엄청 늘어났구 말이야......

정말 간신히 최종목적지에 다다르니 아무도 없다. 마지막 초를 재는 사람도 없다. "저 들어왔는데요" "벌써 끝났어요 기록은 안나와요" 참으로 드라이한 말들이 오갔다. "메달은 주나요?" "아 메달? 저쪽에 가봐요"  "거기서도 별 감흥이 없다." 역시 꼴찌에게 주는 갈채는 없어졌다. 나는 그저 유유히 행사장을 빠져나올 뿐이었다.

이제 예전에 안하던 일을 해야한다 사진찍기이다. 지난 해부터 마라톤을 언제 마감하게 될 지 몰라서 일단 사진을 열심히 찍어둔다. 물론 스마트폰에 좋은 사진기가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사진을 찍는데도 엄청난 코메디를 연발했다. 행사장에서 한참 내려와서 지나가는 젊은이들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어떤 이는 사진을 정말 각도를 맞추어 잘 찍는다. 어떤이는 카메라를 내려 꽂아서 찍으니 잘 안나온다. 아 각도의 차이가 이렇게 나다니.. 나는 어느새 카메라로 사진찍기 실험을 하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을 불러세우면서 열씸히 이 일을 하고 있는데, 종이를 줍던 두 아저씨가 나에게 다가온다. 멋있게 찍어주겠다는 것이다. 나는 카메라 (아니 핸폰)를 맡겼고 아저씨는 신이 나셔서 찍다가는 흥이 더 나셔서 전봇대에 걸린 태극기 (오늘이 31절이 아닌가?)를 뽑아서 내 오른손에 안겨주면서 들고 흔들으라고 했다. 가만히 보니 아저씨가 막걸리 한잔 걸친 상태셨다. 그래도 나는 아저씨를 따라 태극기를 흔들었고, 아저씨는 마음껏 사진을 찍어주었따.

이제 벗들을 만나러 갈 차례다. 벗들은 나의 늦장을 이미 잘 알기에 벌써 닭갈비집에 들어가 있다. 나도 그것을 알기에 맘편하게 갔다. 한 형이 앰블란스로 호위한 이야기를 하시며 도지사보다 더 훌륭한 호위를 받았다고 부러워 하셨다. '그럼 마라톤에는 운동 그 자체만이 아닌 얼마나 많은 이벤트가 있는데......'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문득 같이 오신 여성동지를 위한 한 이벤트가 떠올라 모두를 끌고 공지천과 소양강이 만나는 곳으로 갔다. MBC빌딩이 있는 근처이다. 강둑위에서 막걸리 한잔 하고 밤하늘의 별 한번 쳐다보고 밤하늘의 달도 한번 쳐다보면서 한참을 노닐다 집으로 왔다.

행복한 하루였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1춘천호반마라톤_꽃을보고웃다

오늘 2011 4월 17일 일요일 오전 9시 춘천 종합운동장에서 마라톤대회가 있었다.

 

해마다 4월은 설레는 달이다. 사람이 사는 곳 가까이에는 노오란 개나리 우유빛과 자색 목련이 그 화려함을 자랑하지만,   조금 떨어진 낮은 산들에는 진홍빛 진달래가 화들짝 피어있고, 산모롱이 즈음에는 산수유가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고개를 멀리 들어 먼 산을 바라보면 이제 막 연두빛 이파리들이 나오기 시작하여 투명한 하늘에 점점이 담록색 점들이 찍혀있다. 먼 발치에서 보면 한폭의 그림이다.

 

오늘 "어울림과 아름다움"을 생각해본다.

한송이 꽃이 얼마나 아름다우랴!!

한송이 외롭게 있는 것보다 산 속에 아직 이파리를 내지 않고 있는 소나무 참나무들 사이로 마치 진분홍 물감을 흩뿌린듯이 뿌려져 있는 저 진달래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진달래의 아름다움은 진달래의 것만이 아니다. 진달래의 아름다움은 진달래 혼자 만든것이 아니다.

산수유의 노란 꽃잎은 담록색으로 이제 막 이파리가 피어나는 활엽수들의 연두색와 어울린다. 그래서 서로 아름답다.

땅위에서 쑥부쟁이가 올라올때, 가끔 노란 민들레 꽃이 어울림을 자랑한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아름다움이고 자연의 자유이다.

인간도 서로 어울릴때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가?

 

오늘 마라톤을 하러 가는데, 산속에 핀 진달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내가 다 환하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꽃때문에 웃었다. 정말 입이 그냥 벌어지고 웃음이 그냥 쏟아졌다. 헤픈사람처럼...... 그러나, 나는 이 헤픈 웃음을 기억하면 남은 1년을 또 살아갈 것이다.

 

역시 최근에 마라톤 연습을 하나도 안하고, 어제 특히 늦게까지 잠을 못자서 오늘은 그냥 완주만 하자고 생각했다. 역시 나는 느릿느릿 가고 있는 데, 사람들은 너무 쏜살같이 가버린다.

오늘 코스는 소양강 아니 이미 한강줄기로 흘러드는 북한강줄기를 따라 쭉 뛰어 돌아오는 것이었는데 녹청색의 물과 담록색의 버들가지와 노오란 산수유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늘은 하프였는데, 반환점을 돌아오는 길에 한 여학생이 같이 가자면서 붙잡는다. 나도 잘되었다 싶어서 그 친구와 함께 천천히 여유있게 마쳤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524백암리숲길마라톤대회

경강은 가평전에 있는 지역으로 그 지역 일대를 백암리라고 부른다.

 

예전 2006년인가? 언젠가 그 때는 산악마라톤이라고 하여 같은 코스를 간 적이 있었다.

 

쌍용토론회가 취소되는 바람에 결국 마라톤을 하게 되었는데, 게을러 터지게 그냥 있다가 뛰니 허벅지가 땡겨오고 근육이 다 오그라든다.

 

사람들은 5km에서 돌아갔다. 그러면 10km를 뛰는 것인데, 그곳은 지상이라 숲길이 아니었다. 나는 악으로 숲길을 달렸다. 숲길을 달려보려고 왔지않는가? 지상의 뙤약볕속에서 헐떡거리다가 내가 이것을 왜하는가? 하면서 한숨속에 숲에 들어가면 당장 시원한 그늘과 바람에 너무나도 행복감을 느낀다.

 

내가 거의 마지막이었지만, 내 뒤에도 두 젊은이가 더 있다는 것을 알았고, 나는 어떤것에도 개의치않고 내 발길닿는대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였다. 경사가 급한 오르막과 내리막은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인간의 한계를 넘는 곳이었다. '앞서간 사람들도 걸었겠지......' 나는 그냥 유유자적으로 걸었다......

 

산을 이렇게 와보는 구나... 결국 벼르고 별러서 등산을 하는 기분이었다...... 15km까지는 계속 산을 올랐고, 그 다음부터는 급하강이었다. 오르막 내리막 모두 걸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산을 다 내려와서야 다시 뛰기 시작했다.

 

결국 2시간 57분~~~~~ 그렇게 걷고 걸었는데도, 3시간 안에 돌아왔다는 것을 정말 기분좋은 일이었다.

 

도착하니, 강원대 백오리 동호회 회원들이 안가시고 기다려주었다. 그제서야 미안한 감이 들었다. '그냥 가시지 않고, 왜 기다리셨나?'

 

나는 여자중에서 13등이라며 강원도 쌀 10kg  한푸대를 상품으로 받았다. 사실은 여자 14등과 15등 은 없었다^^.

 

달리고 난 소감은 여지껏 달렸던 길중 최고 였다는 것. 그 이유는 첫째 흙길이었기 때문, 둘째 무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아스팔트길과 보도블록길을 42.195km를 뛴다는 게 무릎에 엄청난 손상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흙길에서 달린 지금 무릎에 전혀 이상이 없었다. 신기할정도로......

 

앞으로는 숲길을 주로 달릴것, 하프를 넘어서서는 가급적 달리지 말것.....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년31절마라톤

2009년31절마라톤 후기를 적어야지.. 하다가 벌써 몇개월이 흘렀음을 깨닫는다. 이날 마라톤을 했다는 기억^^을 남기기 위해서 여기에 몇자 적는다.

 

멀리서 형이 오셔서 같이 뛰었다는 것, 연습을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2시간 28분이라는 기록^^을 남겨서 나름 뿌듯했다는 것......

 

마라톤을 한 날은 잠을 안자도 거뜬하다는 것

 

마라톤을 하고나면 피부가 고와짐을 느낀다는 것

 

이런 것들이 마라톤을 하고 난 당장의 기쁨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조선일보는 춘천에 그만오고, 춘천마라톤을 춘천시민에게 돌려줘라

조선일보는 춘천에 그만오고, 춘천마라톤을 춘천시민에게 돌려줘라

 

오늘(9월 7일) 일찌감치 가을 풀코스 마라톤에 참가했다. 10월말에 있을 조선일보 마라톤을 반대를 표명하기위해, 춘천시에서 주최하는 "춘천소양강마라톤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제저녁 이 마라톤대회를 위해서 멀리 부천에서 형내외분이 오셨다. 반갑게 이야기꽃을 피울새도 없이, 다음날 있을 마라톤을 위해서 잠을 청해야 했다. 형은 처음 풀코스에 도전을 하시는 것이었고, 나는 운동을 많이 못하여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운동이란 것도 왠만큼해서는 정말 표가 안나기 때문에, 운에 맡기기로 했다. 제발 내일 덥지만 말았으면... 지난 2008년 4월 20일의 29도까지 올라갔던 찌는 더위를 생각하면서 나는 진심으로 빌었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신 형 덕분에 좀 일찌감치 여유있게 2시간이나 앞당겨서 춘천종합운동장에 도착했다. 하늘에 구름은 끼었는데, 왠지 조금 수상했다. 저 구름이 오늘 하루를 계속 유지할 것인가?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약 10km까지는 솔바람도 솔솔 불고, 짙은 녹음의 최절정에 달한 나무들이 만들어준 그늘을 따라 소양강을 따라서 뛰는 기분이란 정말 날아갈 듯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디선가 후끈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었다. 아풀사^^ 올게 왔다. 몇년전에 쿠사는 내가 마지막 30km정도를 달리고 있을 때 더운 바람을 몰고 왔었는데, 벌써 더운바람이 몰아오면 어쩌란 말이냐? 더우기, 이내 하늘에 있던 구름마저 서서히 걷히는 것이 아닌가?

 

이제 오늘 나는 죽었다! 라고 생각하면서,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10월 말 춘천마라톤대회가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혹시, 조선일보가 로비를 하여, 춘천시가 주최하는 이 소중한 춘천시의 마라톤 시기를 자신들의 시기인 10월과 겹치지 않게 해달라고 청와대의 누군가에게 로비를 편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올해와서 갑자기 9월 초에 개최를 하게 된 것이란 말인가? 32도를 오르내리는 찌는 더위와 싸우다보면, 머리속이 마구 아파오고, 뛰는 것을 견뎌야하는게 아니라, 찌는 더위를 견뎌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지금은 완주를 다 하고나서 마음이 평온한 상태에서 이 글을 쓰지만, 더이상 조선일보가 춘천에 오지 말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다. 각 지역의 마라톤대회는 그 지역의 주민들이 주최가 되어서 개최를 하고, 또 그 지역주민들이 오랜만에 찾아오는 타지역주민들을 맞이하고, 서로 문화적 소통을 해 나가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춘천에서 무엇을 했는가? 오늘 마라톤 끝나고 여러 의자에 벤치에 앉아있던 시민들과 이야기를 해 본 결과, 조선일보는 춘천에서 마라톤을 매년 개최했으면서도 "매우 얄밉게" 또는 "춘천시민들과는 전혀 관계없는" 행사를 진행하고 갔다는 것이다. 그러니, 춘천시민들은 조선일보가 오는 자체가 부담스럽고, 거북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과연 이것을 알기나 하는가?

 

아직 모든 마라톤등이 지역주민이 주최하는 행사로 연결되지는 못하지만, 그나마, 결국 춘천시에서 주최하는 이 [춘천소양강마라톤대회]가 그 좋은 10월의 절기를 조선일보에게 내주다니... 생각만해도 분이 쌓였다. 이번에 조선일보 마라톤을 거부한 것을 잘했다고 생각했었는데, 더 나아가 조선일보와 같은 사적인신문사는, 아니, 정부와 부자들의 이해만을 대변해온 왜곡된 언론사는 춘천에 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오늘 이 찌는 더위에 나보다 약간 빨리 완주를 마친 그 형도 10번이나 이걸 그만둘까? 말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나는 또 어떠한가? 나는 춘천종합운동장에서 춘천댐을 거쳐 다시 춘천종합운동장으로 돌아오는 동안, 거리에 있는 모든 농장직매 과일파는 천막에서 파 놓은 수도에 머리를 들이대고, 심지어 등목까지 하였으며, 들판에서 수없이 쉬를 해야했다. 먹는게 물밖에 없었으니, 어쩔수가 없었다.

 

그런데, 완주후에 뒷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춘천시민들이 조선일보 마라톤에 대한 거부감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마라톤의 소감을 이것으로 결론내린다:

 

"조선일보는 춘천에 그만오고, 춘천마라톤을 춘천시민에게 돌려줘라. 춘천시민들이 모두 주최가 되어, 온 나라 사람들을 초청하고, 즐겁게 맞이하는 문화행사가 이루어지도록 하라. 탐욕에 찬 사적인 일개 신문사가 마치 사명을 받은 것 처럼 하는 그 거짓된 가면을 이제 벗어던져라.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 스포츠를 빌미로 하여, 일개 신문사의 사리영욕을 채우는 행위는 이제 그만 집어치워라.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춘천호반마라톤대회 소감ㅠㅠ

2008 4월 20일 춘천호반마라톤대회를 정말 가까스로 끝냈다. 이제 정말 운동을 제대로 하지도 않으면서 마라톤을 하겠다고 하면 안되겠구나!!! 이번에는 20km근방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가고 있던 한 마라토너를 만나지 않았으면 완주가 불가능했다. 이번엔 정말 준비도 못하고, 운동도 제대로 못하고 뛴것에 대해서 반성을 많이 한다. 또한 준비를 못했으면 못한 만큼만 뛰어야 했는데, 이번에도 끝까지 뛰었던 것이다. 토요일날 정옥이가 왔을때 절대 끝까지 뛰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결국은 다 뛰었다. 결국 나는 계획성도 없고, 일을 가늠하지 못하는 무대보성을 반성해야하는 것이다.

 

준비를 못 한 가장 큰 것중에 하나는 운동화를 준비하지 못했다는것, 준비운동을 전혀 못했다는 데 있었다. 두가지는 마라톤을 하려는 사람에게 기본인데, 이 기본을 지키지 못했던 것이다.

 

준비를 못한것에 더하여 무더위가 복병으로 나타났다. 약 20km까지는 선선한 바람에 그늘에 시원하게 달렸다. 날씨가 이정도라면 괜찮겠다고 마음을 달래며 가는데, 아니나 다를까, 소양강가에서 내륙지방으로 들어서자마자 바람은 잦아들고, 한낮의 태양은 머리를 뜨겁게 달구었다. 29도라나..이 날씨에 뛰고 있는 내가 정상이 아닌것 같아보였다. 거기다가 아무생각없이 쓰고 나온 검은 챙모자는 태양의 복사열을 다 끌어들여 머리속이 타고 있었다. 이러다 열사병, 내지는 뇌일혈이 생길것 같은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 더위에 뛰는 것을 미친짓이다!'

 

라고 하며 마라톤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회송차를 타려고 비틀거리며 가고 있는데, 회송차 바로 앞에서 걷는지 뛰는지 모르게 가고 있는 한 남자분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저분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저렇게 가니 완주는 하겠는데요...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타려던 버스에서 다시 내렸다. 그 남자분을 쫒아서 뛰기 시작했던 것이다. 속도가 아주 느려서 나로선 아무 걱정없이 옆에서 뛰기만 해도 될 정도였다.

 

'더워서 완주할 수 있을까요?' '완주는 당연히 해야죠..'  그 분의 말씀이 이러하신데, 어쩌랴...... 같이 뛰어야지...... 그 뒤로 골인점에 도달할 때까지 결국 끝까지 뛰었다. 골인점까지 도달하기까지에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신작로에 차량통행을 막아둔 표지판을 다 철거하여 결국 인도로 뛰어야 했고, 식수도 다 철거하여 아이스케키를 사먹으면서 달려야 했고, 간이 화장실도 다 없어져서 들판에서 간단한 "쉬"도 봐야했다. 보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이렇게 볼일보는 일이 간단한 것을 도시에서는 왜 그렇게 내가 싫어하는 앉아서 보는 좌변기를 사용하는 것인지...... 이것이 내가 지금 이시대를 사는 데 일상에서 가장 불편한 일이다. 좌변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

 

이번엔 아주 천천히 달렸기때문에 오히려 무릎이나 다리는 멀쩡함을 느낄수 있었다. 달리면서 오히려 천천히 달리는 것을 즐겼는데, 워낙 빵꾸가 날지경인 운동화를 신고 나와서 무리하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은인을 만났던 것이었다. 나는 성격이 급하여 아무리 뚫어진 운동화를 신고 나왔어도 이렇게 천천히는 못가는데, 이 분은 정말 무심하게도 한발 한발 걷는 것 같이 뛰면서 끝까지 가는 것이 아닌가?

 

항상 마라톤을 하면, 운동을 했다는 자체가 아니라, 그 짧은 시간에 인생을 배운다. 이번엔 좀 길었다. 6시간이었으니... 그러나, 그동안 참 많이 배웠다......그래, 인생도 이렇게 가는 것이구나.

 

늦었어도 의연하게, 늦었어도 희망을 가지면서, 늦었어도 자신감을 가지면서 늦은만큼 천천히......

 

마지막으로 들른 한 식당에서 다시한번 화장실을 갔는데 (이날은 물을 약 5통은 먹었던 것 같다......),  아저씨 저희가 너무 늦었지요? 하니 아저씨 왈.. 아냐, 금방 와르르 몰려갔어... 늦지 않았어...참 대단하구만.....내가 놀란 것은 그 아저씨가 우리가 늦은 것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방금 지나갔다는 데 있었다. 그래, 우리가 늦었지만, 그게 그렇게 늦은 것은 아니야... 인생도 마찬가지일꺼야.. 지금 조금 늦어보이지만, 결코 그렇게 늦은게 아니야......약 30분차이도 안나잖아?

 

결국, 몰려간 팀의 후미와는 약 30분정도 차이가 났던것 같다.

 

내가 너무 고맙다고 꿩만두국을 사니까, 그분도 내가 아니었으면 못 뛰었을 것이라고 했다. 내가 의지는 했지만, 그 분도 나를 의지하고 뛰었던 것이다.

 

참으로 인생이 이러한가 보다. 이렇게 무식하게 가야하고, 또 가다가 같이가는 사람도 만나고, 서로 의지하기도 하고, 그러다 나는 수영으로 마무리하고 싶다면서 멀리 시흥에서 오신 그 분께 인사를 하고, 또 홀로 어디론가 가지 않는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아름다운 꼴찌는 이제 없다: 20080301삼일절 마라톤 소감

아름다운 꼴찌는 이제 없다

 

20080301삼일절 마라톤 당일날, 멀리 서쪽에서 원정오신 형네 가족과 형 친구네 가족으로 부산스러웠다. 조용하게 가서 미친듯이 달리곤 언제 달렸냐는 듯이 조용하게 돌아오는 때와 달리, 가족들이 옆에서 부산을 떨어주니, 마치 소풍이나 온 것 같다. 이래서 가족이 좋은거여......

 

형이 일찍 도착하여, 여유있게, 꿩만두국도 먹고 (이것이 나중에 화근이 되었지만 말이다..) 춘천 명동거리로 나섰다. 가족들은 추운데서 구경꾼이 되느니, 청평사나 금병산을 다녀오시라고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청평사 입구에서 입장료 1300원이 아까와서 문앞에서 되돌아왔다고 한다. 아니 그럼, 그 유명한 회전문도 못보고, 고려시대 건축도 못봤겠구만......거기다가 오봉산 자락에 멋지게 걸터앉은 청평사의 산세도 못보았겠구만...... 나와 똑같은 양반들이 여기에도 있었구만...... 지난번에 내소사에 들렸다가, 입장료 안내려고 안들어갔었는데, 나는 괜찮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덩달아 안들어갔던 몇몇 지인들께 어찌나 미안했던지... 어쨋든 입장료는 무조건 없어져야혀......

 

약간 쌀쌀한 날씨가 적응이 안되던지, 서쪽에서 오신 형이 몇겁씩이나 되는 긴 팔과 긴 바지를 입었다가 벗었다가 하는 사이, 나는 과감하게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이번에 기념품으로 제공된 빨간 티셔츠를 엄마에게 주려고 사이즈를 바꾸러 갔다오고 하는 사이에 벌써 오후 1시, 뛸 시간이 되었다.

 

작년에 맨 뒤에 서 있다가 뒤따라오는 회송차를 물리치느라 고생한 것을 생각하여, 이번엔 일찌감치 앞자리를 차고 들어갔다. 몇만명이 일제히 총소리에 달려나가는 큰 대회보다는 사람의 구령에 맞추어서 하나 둘 셋! 할때 뛰어나가는 맛이 더 있다는 것을 느끼자 마자, 소수가 뛰는 고독감을 맛보아야 했다. 이번엔 어떻게 된게 여성주자들도 보이질 않는구나...... 형은 벌써 저만치 간 것 같고.. 올해도 나 혼자 투쟁이구나......

 

1km도 안 뛴것 같은데, 이게 왠일인가? 아까 2시간전에 먹은 만두국이 위에 그대로 앉아있는 것 같이 가슴이 답답하다. '형도 그렇겠지' 하고 생각하니 걱정이 되었다. 역시 음식은 3시간전에 찰떡이나 밥으로 먹으란 말이 괜한 말이 아니구나.. 후회해봤자 소용없고, 이제는 몸의 생리적 기능이 좋아지길 기다리는 수 밖에......

 

평상시에 물속에서 다리운동을 열심히^^ 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운동장돌기를 게을리 한 것이 겉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역시 숨을 가뿐한데, 다리가 후들거린다. 반환점을 돌 때까지는 몰랐는데, 반환점을 돌아나오니, 내 뒤에 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아뿔사...... 올해에는 맨 앞에 섰는데도 이게 왠일인가?

 

처음엔 의아해 하다가, 나는 곧 알게 되었다. 결국, 내 앞에 쌩쌩거리면 달린 이들은 배테랑급들이고, 몇년전까지 헉헉거리면서 내뒤를 따라오는 군단이 없어졌다. 아니 몇년동안 서서히 없어지더니, 결국 올해엔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다. 오직, 체중이 제법 나가는 한 청년이 한참만에, 반환점을 향해 기어가는 모습이 보일 뿐이다.

 

내가 처음 마라톤을 시작할 당시, 즉 2003년도 즈음엔 마라톤은 축제였다. 그 때에도 꼴찌를 했었는데, 그 때 같이 마지막까지 걸었던 사람들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땐 꼴찌도 일등도 모두 같이 뜀뛰기를 마쳤다는 축제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바하흐로 잘뛰는 사람들만이 마라톤을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되었는가?하고 생각하다가 오늘 깨닫게 되었다. 이것도 바로 자본주의의 성공위주, 실력위주의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하고......

 

예전에 영국에서 맥주집(팝)에 간 적이 있다. 유럽 전체는 모르겠지만, 1997-1999년시기엔 영국도 한국이나 일본의 문화에 영향을 받아서 팝안에 비디오가 설치되었고, 노래방기기가 설치되어서 맥주를 마시다가 원하는 사람들은 나와서 노래를 부르도록 무대를 만들어 놓았었다. 그 때, 친구들과 우연히 들른 팝에서 느낀 것은 영국 사람들은 노래를 못하는 사람들은 절대 무대에 나서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노래를 아주 잘 부르는 사람들만이 무대 앞에 나가서 노래를 하고, 상대팀과 경쟁을 할 뿐, 나머지는 모두 구경꾼에 불과 했다. 그리고 무대 앞에 나선 대표주자들은 경쟁이라도 하듯이 노래를 잘 불러야 했다. 안 그러면, 구경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나는 노래를 잘하건 못하건 너 나 할 것없이 의무적으로 불러야 하는 우리의 문화랑 달라서 놀란 적이 있다. 이게 무슨 재미야? 하고......

 

나는 올해에 마라톤을 하면서 갑자기 영국의 노래방이 생각났다. 잘부르는 사람들만의 축제...... 자본주의가 먼저 발달된 나라에서의 발달된 문화는 경쟁의 문화였다면, 이제 우리도 서서히 경쟁의 문화에 젖어드는 것일까? 그래서 모든 곳에서 아주 잘하지 않으면, 아예 명함도 못내미는 경쟁사회가 되어 버린 것일까? 아니면, 사람들은 열심히 한 노력의 댓가가 없는 자본주의사회속에서 이제, 성실, 노력, 진심 등의 언어를 잊어버린 것일까? 그렇게 살지 않아도 돼......라고 하면서......

 

어쨋든 나는 점차 프로들만이 참가하는 마라톤 대회를 우매하고 우직하게도 계속 참가하고 있다. 나의 실력이 늘어난 것도 아니면서 나이를 꺼꾸로 먹는것도 아니지만, 그래서 더 잘달릴 가능성이 오히려 줄어들고 있지만, 잘나가는 경쟁위주의 사회를 방해하고자, 나는 끝까지 꼴찌로라도 달릴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엉겹결에 맞이한 새해와 달리기

 좋은 곳에 살다보니^^,  벗이 올 해의 마지막 밤에 찾아오고, 친구덕분에 강남간다고, 결국 그 밤에 이어 오늘 새벽 0시에 새해맞이 달리기까지 하게 되었다. 춘천 중도유원지를 지나면 국악관이 나오는데, 밤 11시 45분쯤 도착하니, 약 200-300여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살을 에는 추운 날씨에 새해를 맞이하려 나온 사람들... 정말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이다. 

 

그 와중에 주변에서 어영부영하던 나는 mbc에서 왔다는 덩치좋은 카메라멘에 잡혀서 인터뷰까지 했으니... 정말 엉겹결에 새해를 맞는 소원까지 이야기해버렸다. "새해엔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하고 싶어요" 아! 이 카메라멘이 내 이름까지 적어갔는데, 이 말이 정말 TV에 나왔을까?

 

추운 날씨에 뛰자니 정말 숨이 막히다 못해 가슴이 막힌다. 이러다가 심장이 멎는게 아닌가? 걱정이 되어서 정말 살살 뛰었다. 이 밤에 뛰면서도 아직까지 태안반도를 못 가본것에 가슴한켠으로는 미안함이 그지없다.  역시 달리기는 고독하다...... 나는 이제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반환점을 돌아 도착하니 1시간 13분...... 보통보다 약 20분이상 늦었지만, 몸과 마음이 투명하고 맑아진 것이 이내 좋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