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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마라톤을 하는 이유^^

노모를 휠체어에 태운 마라토너

노모를 휠체어에 태운 마라토너

 

10월 28일 춘천 마라톤에서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를 보았다.

 

이번에는 정말 기록에는 상관없이 완주만 잘하자!! 하고 아주 천천히 달리고 있는데, 삼악산근처, 즉 약 10km정도를 가다보니, 한 청년이 노모를 휠체어에 태운채 마라톤대열에서 달리고 있지 않은가?

 

휠체어가 어깨아래에 있으므로, 어깨를 구부리고, 허리마저 구부정하게 구부려서 휠체어를 부여잡고, 뛰어가야하는 조건은 혼자몸으로 달리는 것보다 몇배의 힘든 고행이었을 것이다. 그 청년은 천천히 차분하게 대열을 따라가고 있었다.

 

나는 이번에는 힘에 부쳐 두 모자가 뛰는 모습에서 점점 뒤로 쳐졌기에, 그들은 이미 나보다 앞서 완주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나는 오늘 비록 힘든 마라톤을 마쳤지만,

 

한 마라토너에게서 부모에게 최선을 다하는 열정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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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사를 앞질러서 달리다

태풍(颱風) ‘크로사(Krosa)’ (크로사는 캄보디아어로 학(鶴)) 를 앞질러서 달리다.

 

10월 7일 오전 10시 춘천에서 호반마라톤대회가 열렸다. 전날 태풍(颱風) 크로사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기 때문에 비속을 뛰어야하나? 하고 고민하였었는데, 날씨는 의외로 맑고 화창하였다. 다만, 참가자들중에 여성들이 점차 적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왜 최근들어 여성주자들이 줄어들까?

 

오늘은 30km를 뛰는 것이다. 청명하던 날씨가 시간이 지날수록 여름날씨처럼 변해갔는데, 아마도 태풍이 몰고오는 뜨거운 바람과 열기때문이었을 것이다. 날씨는 9월 벼이삭익어갈 무렵처럼 뜨거웠는데, 간혹 어디선가 훈훈한 바람도 실려오곤 했다.

 

5km를 남기고,  대전에서 오신 한 분과 같이 뛰다가 그 분을 먼저 보내야 했다. 사실은 이번에도 연습을 제대로 못하고 뛰었기 때문에 막판에 고전을 했다. 항상 마지막 10km, 5km가 고비이다.

 

3시간 30분만에 춘천종합운동장으로 돌아왔는데, 불과 몇분전까지만해도 태풍이 올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더니, 오후 1시 30분경,  춘천종합운동장을 막 들어오자마자, 바람이 불고,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다. 크로사가 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마라톤은 크로사를 앞질러서 달려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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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상춘" 마라톤이야기

4월 22일 춘천호반마라톤대회가 열렸었다. 이번 마라톤은 정말 "상춘" 마라톤이라^^ 오시는 봄을 맞으러 나는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봄을 맞으러 버선발로 나가지는 못해도, 새로 준비한 운동화에 챙달린 모자하나를 쓰고 종합운동장에 들어섰다.

 

이제 나도 참 뻔뻔해졌다. 예전에는 엄두도 못내던 일이다. 예행연습을 단 한번도 안해보고, 어쩌면 이렇게 풀코스를 뛰려고 나왔단 말인가? 그래도 꾸준히 수영을 매일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으면서, 이번에는 세번째줄정도에 서서 출발신호가 울리기만을 기다렸다. 마라톤은 출발점에서 실수를 좀 해도 괜찮다는게 나에게는 또하나의 위안이다. 만약 100m 달리기를 하는데서 출발점에서 넘어지면 그런 낭패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반환점 (21km)정도까지는 여유있게 달렸던것 같다. 반환점근방에서 아름답게 피어있는 매화꽃도 보았다. 왠 춘천에 매화꽃? 하지만... 요새는 날씨가 따뜻해서인지 매화꽃도 있고, 감나무도 잘 자란다고 한다. 물론 도시를 휘감고 도는 소양강기슭에 흐르는 강물따라 다가오는 봄은 정말 아름답다. 이보다 아름다운 것이 또 어디있겠는가? 물론 전국의 산천경계가 모두 봄을 맞는 열기로 가득할 것이다.

 

들판은 며칠전 하루동안 비가오는 그 시각에 촌각을 다투며 점점 푸르러가더니, 어느새 이파리들이 하나하나 돋아난 모습이 수채화나 유화에 점을 찍어놓은 모습을 연상케 한다. 아니, 낭만파들이 이 대자연을 보고 그림을 그렸었지^^

 

어느 책에서 20-30km까지를 잘 뛰라는 말에 정말 천천히 그리고 잘 뛰려고 노력했다.. 처음에 왼쪽 바깥 무릎부위의 통증을 느꼈으나, 점차 나아지고 있었다. 통증이 점차 없어지면서 오늘은 끝까지는 뛰겠군.... 하는 느낌이 들자 좀 여유가 생겼다..

 

2003년도 처음 마라톤을 시작했을때에는 여성주자도 많았으나, 오늘은 풀코스에는 단 8명이 참가했다보다... 급수대를 지날때마다 "7등입니다" 라고 격려해준다.. "으이구.. 8등은 과연 다 뛰고 있나? 아니면 기권을 했을까?"  그것에 따라 내가 꼴찌인지 아닌지가 결정이 되기 때문에 관심이 갔다ㅠㅠ

 

시험보면서 시험공부 못한 것을 탓하듯이, 마라톤을 뛰면서 연습 못한것을 탓해본것도 정말 징하다......

 

30-40km까지는 처음 뛰어본다는 어느 아저씨와 발을 맞추어서 뛰고 있었다. 이때 진행요원인듯 한 분이 한분 지나면서 "여자 6등이 없어서 시상식이 안되고 있는데, 빨리 뛰지 뭐해요?" 하면서 나보고 빨리 뛰란다. "아 그러면 내가 6등, 시상식을?" 나는 화들짝 놀라서 그 순간 옆에서 보조를 맞추며 뛰던 아저씨를 까맣게 잊고는 "걸음아 나좀 살려줘라" 하면서 내달리기 시작했다......

 

거의 운동장에 다달아서는 고의는 절대 아니었는데, 약 200m를 지름길로 달려서 오기도 했다.. 당황스러워서 다시 돌아가려니까 진행요원이 그냥 들어가라고 한다......

 

막 운동장에 들어서서 마지막 한바퀴를 뛰려는 순간 시상식이 시작되고 있었다.... 여자 1등... 2등....3등.... 6등까지 불려졌다.. 여자 6등은 나보다 약 20-30분 먼저 왔나보다...... 그 진행요원은 여자6등이 들어오는 것을 보지못했나보다......

 

나는 속으로 운동도 안했으면서 욕심을 너무 부렸다고 자책을 하면서 골인점에 들어왔다. 아무도 안봐줄것 같았는데, 그래도 마지막 도착점에서 사람들이 서 있다가 환호를 해준다.......

 

이렇게, 나의 올해 "상춘"은 엉겹결에 마무리되었다.

 

며칠 후면 메이데이가 돌아온다. 매년 힘들게 올라가서 시청앞에서 앉아있다가 내려오는 마치 정해져버린 반복적인 일상이 되었다고 해도, 나는 또 가야한다. 화살처럼 쏘아 날라가는 시간을 쫒아가지 못하는 탓에 동지들의 얼굴을 잊을까 염려가 되어 나는 가야겠다.

 

그 면면들을 다시한번 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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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삼일절마라톤대회소감

블로그에 들어왔다가 간단히 그때의 소감을 적어본다^^

 

마라톤대회가 열리는 날에는 항상 그 전날 무슨일이 벌어진다. 그날도 늦게까지 사람들과 모임을 했나보다. 아침에 9시 30분에 마라톤장에 나갔다. 백오리동호회분들과 사진도 찍고..

 

왠지 이번에는 겨우내 한번도 장거리를 달려보지 않아서 걱정이 앞섰으나 한번해보자 하면서 달렸다.

 

옷을 갈아입고, 강원도 도청앞 거리에 나서니 많은 사람들이 이미 줄을 서 있었다. 5KM까지는 별 어려룸없이 갔다. 많은 사람들속에서 합류하여 여유있게 뛰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기원하는 많은 학생들이 단체복을 입고 뛰고 있었다.

 

그런데, 10KM 반환점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돌아가지 않는가? 그리고 Harf 주자로는 내가 거의 마지막이었던 것이다. 처음 출발할 때 맨 끝에 섰던 것이다.. 맨끝에서 뛰게되면 힘도 더들고 뒤따라오는 회송버스에 타고싶어지는 마음이 자꾸만 생겨서 끝까지 가기 어렵다.  이럴수가...깜짝 놀라서 죽기살기로 내달렸다. 결국 도착시간이 1시간 51분 53초...... 지난번보다 오히려 기록이 좋아졌다. 꼴찌로 출발한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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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마라톤소감:황금물결나락에 줄줄이 엮여진 농민의 시름을 생각하다

충주마라톤소감:

황금물결나락에 줄줄이 엮여진 농민의 시름을 생각하다

 

손미아

 

어제 충주 마라톤을 다녀왔다. 단지 마라톤을 할 목적으로 춘천을 벗어나서 먼 곳(실제 내고향이긴 하지만)으로 원정을 한 경험은 지난번 서울 동아마라톤이후 두번째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벌써 마라톤 마니아가 되었나 보다.

 

전날 토요일에는 서울에서 거의 새벽 3시까지 사람들이랑 모여서 일을 했다. 정말이지 우리는 새벽까지 모여서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습관화 되었던가? 겨우 그 일터를 빠져나와서 새벽 6시 충주로 가는 새벽버스에 몸을 싣고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북적거리는 소리에 일어나니, 벌써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이 밖에 즐비하고, 기사아저씨께서 내리라고 하신다.

 

눈도 안떠지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이거 100미터라도 달릴수가 있을까? 하면서 내렸다. 탄금대인가보다. 그곳에 인라인 스케이트장처럼 생긴 광장이 하나 있고, 거기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8시가 조금 넘었다. 다행히 그 옆에 슈퍼가 하나 있어서 무조건 그곳으로 들어갔다. 약간은 묵뚝뚝한 그러나 마음씨 좋으신 주인아주머니께서 뒷 광을 쓰라고 하셔서, 옷도 갈아입고, 양말도 사 신고.. 이제사 복장을 갖추었다. 다들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도 단지 고향이라서 그런 것일까? 왜 그렇게 정겹고, 나와 비슷해보이는지……정말 그분들의 말투를 기억할 수 있었다. 고향분들을 보면서 그동안의 나의 모습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는 든든함이 왜 생기는 것인지? 너무나도 평범해보이는 나의 모습을 바꾸어보려고 했었는데, 나는 고향에 와서 드디어 나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다.

 

드디어 충주호반을 달리기 시작했다. 아니, 탄금대에서 시작하여 중앙탑을 지나 중원고구려비가 있는 곳까지 갔다오는데 하프의 거리였다. 어제 밤도 샜으니, 오늘은 하프로 만족하자!! 중앙탑아래에는 탑문화제가 한창이다. 마을 어른과 노인들이 다 나오신 것 같다. 예전에도 탄금대에 가끔 가보면 노인들중심의 문화제가 꽤 있었는데, 지금도 이런 풍경을 보니 정겨울 뿐이다. 한 할아버지는 별로 아름다워보이지 않는 햇빛을 가리는 마스크를 쓰고 달리는 내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이런 어디에 실릴꼬, 내 모습이...예전에는 내가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찍었었는데, 이제 할아버지가 내 사진을 찍다니...

 

오다가 버스를 타고 오는 길은 황금들판이었다. 아직 벼가 한창 익어가고 있다. 그래서 요새 가을볕이 뜨거워야하고, 마치 여름날처럼 뜨거운 열기가 벼이삭을 익게 만들어야 하나보구나. 이 황금들판을 보니, 농촌 사람들의 시름만 떠오른다. 누가 이 황금들판을 보면서 마냥 기뻐만 할 수가 있는가? 옛날에는 정말 국어교과서의 형님아우 볏단나르기가 실제상황이었던 적도 있었고, 지금쯤이면 벌써 한해농사가 풍년이 되었노라고 하면서 모두들 기뻐할 시기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한 농가 옆에 흰색천에 검을 글씨로 쓰여진 국회의 쌀협상 비준안을 을 거부한다는 팜플렛하나가 달랑 보인다. 아무도 없는 곳에 쓸쓸히 걸려있는 팜플렛을 보면서, 황금물결나락에 줄줄이 엮여진 농민의 시름을 생각한다.

 

잠시 왔다가는 나그네의 시름이 무색하도록, 저 들판에서 농민들의 또 그 아들 딸들의 환호성이 울려퍼지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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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이 사치스러운 사람들

 마라톤이 사치스러운 사람들... 마라톤을 할 수 없는 사람들


얼마전 한 자동차 공장에 갔다. 일요일 특근시간이었다. 공장은 겉에서는 불도 꺼진듯하고 조용하나, 실제 공장 내부를 들여다 보면, 일요일인데도 어찌 그리 다 나와서 일을 하시는지...... 요새는 특근과 휴일근무를 할수 밖에 없다고 한다.

 

예전에 주 40시간을 외치고, 주 5일제를 외칠때는 그것만 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질 줄 알았다... 주 5일제가 되고, 주당 40시간이라고 외치는 이시대에 야간잔업과 특근이 늘어나기만 하니 이게 왠일인가?

 

길게 늘어진 줄을 기다려서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한 노동자분이 점심시간이라고 공장주변을 뛰신다. 나는 덩달아서 나도 마라톤을 달려보았노라고 재면서 자랑을 하였다. 그러나 그 뒤에오는 말이 나의 심장을 멈추게 하였다.

 

“마라톤, 그거 우리 환영안합니데이. 마라톤을 할 수 없지요.. 무릎이 다 망가졌는데 무슨 마라톤입니까? 마라톤이...”


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마라톤이 사치스러운 것이구나!  그 순간 얼마나 무안했는지.. '그들의 슬픔과 분노를 너는 알기나 했는가? 도대체'...

 

지금 세상은 아니 자본과 정부는 지난 2004년부터 반격을 시작하였다. '직업병인정기준 개정안'이 그것의 시작이다. 1998년 경제위기이후, 노동강도강화와 고용불안정으로 황폐화된 노동현장... 그 현장에 굴하지 않고 노동자계급은 꿋꿋하게 싸웠었다. 대우조선, 삼호조선, 두원정공, 풀무원(춘천), 현대자동차, 쌍용자동차 등에 이르기까지...... 이제 자본은 신자유주의정책으로 불안정노동을 증대시키고 노동의 양극화를 시키고, 노동자 건강권에도 반격을 시작하고 있다.

 

지금도 근로복지공단앞에서 힘겹게 투쟁하는 하이텍 알씨디 여성동지들...... 정부와 자본의 반격을 온몸으로 막고 있다.

 

내일이라도 서울가면 하이텍 동지들을 찾아가 보아야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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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입문기1-춘천 호반 마라톤^^ 소감

춘천 호반 마라톤 소감 (조선일보 마라톤 아님)

(이 글은 2003년 9월 처음 마라톤을 완주하고나서의 소감이다.)

오늘 42.195km를 다 뛰었다.. 정말 힘든일 이었다. 육체적 한계를 정신적으로 극복이 가능한가? 정답은 불가능하다이다. 그나마 이렇게 뛰었던 것도 추석즈음에 연습을 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인간의 한계를 시험해보았다.. 이제 더 이상 시험하지 말고 준비를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는 흐려서 오히려 좋았다. 전날 한노정연 총회가 있어서... 아침에 서울 달수오빠네 집에서 5시간정도 잠을 자고 새벽에 눈비비며 나왔기 때문에, 몸이 풀리지 않았다. 이것이 아마 오늘 힘들게 한 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아침에 거의 10분전에 빙상경기장에 도착, 풀코스의 출발대에 합류했다. 그래도 예전처럼 달리면서 호흡이 가빠오는 현상은 없었다. 의대 본2 학생, 몇몇 교수님들, 본4 문형일등도 보았다. 하프코스의 반환점까지는 힘이 부치는 줄 모르고 뛰었다.. 그런데 하프팀들이 다 반환점을 경유하여 돌아가고 난 뒤에는 혼자와의 싸움이 지속되었다. 한참을 가는데 울고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정말 여러번 울고 싶었다.. 이것을 그만두어야 하나 아니면 계속해야하나?? 그래도 내가 뛴다는 것을 몇사람이 알게 되었는데... 끝까지 해야지... 하는 생각과 함께......


25km정도까지는 별 힘듬없이 뛰었다. 물론 중간에 조금 걷기도 했다.. 27.5km를 뛰는데 5-6정도의 어린아이들이 마른 오징어 작게 자른 것을 한개씩 들고 한사람씩 뛰어가는 나에게 와서 건네주면서 “누나 이것 먹어요...” 한다. 너무 감격스러웠다.. 그리고 또한 ‘아니 나를 누나로 보다니...’ 열심히 뛰마...


35km부터는 거의 뛰다가 걷다가를 반복했다. 약간 뛰다가 37.5km정도부터는 거의 걷기시작한 것 같다. 약 30km가 나의 최대의 능력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가는 도중에 59세의 한 경찰관, 54세의 한 아져씨와 그 아들을 만났다. 이들은 모두 끝까지 가자고 의기투합했고, 이렇게 4명이 하염없이 걷기 시작했다.. 뛰는게 아니라.... 어찌나 민망한지...뒤에서 후송차가 따라오는데, 우리는 그냥 보냈다.. 끝까지 갈 것이라고...정말 힘이 들었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것은 왠일인지... 대퇴부는 왜 움직이려하지 않는지... 대퇴관절부위는 왜 끊어질 듯이 아픈지... 결국은 다리가 문제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다리 근육을 강화시키는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되었다..


마지막에 도착하자, 그래도 끝까지 뛰었다고 하면서 메달을 주었다... 정말 고마웠다.... 춘천시에서 주는 메달이니 그 무엇보다도 값질 것이라고 누군가가 이야기했다. 다음에는 이렇게 헤매지는 말아야지...이렇게 헤맴은 한번으로 족하다.. 이제 조금 민구스럽게 마라톤대열에 합류했다. 좀 더 체계적으로 근육강화를 하고 연습을 철저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같이 뛰었던 그 아저씨가 제안한 “꼴지 동호회”에서 이제 다시 시작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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