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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마라톤소감:황금물결나락에 줄줄이 엮여진 농민의 시름을 생각하다

충주마라톤소감:

황금물결나락에 줄줄이 엮여진 농민의 시름을 생각하다

 

손미아

 

어제 충주 마라톤을 다녀왔다. 단지 마라톤을 할 목적으로 춘천을 벗어나서 먼 곳(실제 내고향이긴 하지만)으로 원정을 한 경험은 지난번 서울 동아마라톤이후 두번째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벌써 마라톤 마니아가 되었나 보다.

 

전날 토요일에는 서울에서 거의 새벽 3시까지 사람들이랑 모여서 일을 했다. 정말이지 우리는 새벽까지 모여서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습관화 되었던가? 겨우 그 일터를 빠져나와서 새벽 6시 충주로 가는 새벽버스에 몸을 싣고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북적거리는 소리에 일어나니, 벌써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이 밖에 즐비하고, 기사아저씨께서 내리라고 하신다.

 

눈도 안떠지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이거 100미터라도 달릴수가 있을까? 하면서 내렸다. 탄금대인가보다. 그곳에 인라인 스케이트장처럼 생긴 광장이 하나 있고, 거기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8시가 조금 넘었다. 다행히 그 옆에 슈퍼가 하나 있어서 무조건 그곳으로 들어갔다. 약간은 묵뚝뚝한 그러나 마음씨 좋으신 주인아주머니께서 뒷 광을 쓰라고 하셔서, 옷도 갈아입고, 양말도 사 신고.. 이제사 복장을 갖추었다. 다들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도 단지 고향이라서 그런 것일까? 왜 그렇게 정겹고, 나와 비슷해보이는지……정말 그분들의 말투를 기억할 수 있었다. 고향분들을 보면서 그동안의 나의 모습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는 든든함이 왜 생기는 것인지? 너무나도 평범해보이는 나의 모습을 바꾸어보려고 했었는데, 나는 고향에 와서 드디어 나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다.

 

드디어 충주호반을 달리기 시작했다. 아니, 탄금대에서 시작하여 중앙탑을 지나 중원고구려비가 있는 곳까지 갔다오는데 하프의 거리였다. 어제 밤도 샜으니, 오늘은 하프로 만족하자!! 중앙탑아래에는 탑문화제가 한창이다. 마을 어른과 노인들이 다 나오신 것 같다. 예전에도 탄금대에 가끔 가보면 노인들중심의 문화제가 꽤 있었는데, 지금도 이런 풍경을 보니 정겨울 뿐이다. 한 할아버지는 별로 아름다워보이지 않는 햇빛을 가리는 마스크를 쓰고 달리는 내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이런 어디에 실릴꼬, 내 모습이...예전에는 내가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찍었었는데, 이제 할아버지가 내 사진을 찍다니...

 

오다가 버스를 타고 오는 길은 황금들판이었다. 아직 벼가 한창 익어가고 있다. 그래서 요새 가을볕이 뜨거워야하고, 마치 여름날처럼 뜨거운 열기가 벼이삭을 익게 만들어야 하나보구나. 이 황금들판을 보니, 농촌 사람들의 시름만 떠오른다. 누가 이 황금들판을 보면서 마냥 기뻐만 할 수가 있는가? 옛날에는 정말 국어교과서의 형님아우 볏단나르기가 실제상황이었던 적도 있었고, 지금쯤이면 벌써 한해농사가 풍년이 되었노라고 하면서 모두들 기뻐할 시기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한 농가 옆에 흰색천에 검을 글씨로 쓰여진 국회의 쌀협상 비준안을 을 거부한다는 팜플렛하나가 달랑 보인다. 아무도 없는 곳에 쓸쓸히 걸려있는 팜플렛을 보면서, 황금물결나락에 줄줄이 엮여진 농민의 시름을 생각한다.

 

잠시 왔다가는 나그네의 시름이 무색하도록, 저 들판에서 농민들의 또 그 아들 딸들의 환호성이 울려퍼지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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