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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

수 천 개의 눈망울을 커다랗게 뜨고선

꼬리는 쭉 뻗어 땅과 평평해지다 끝부분만 한껏 하늘을 향해서

비장한 각오처럼 날개를 파르르 떨며 나를 향해 돌진한다

저 목숨 건 비행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그렇다고 내 몸에 작은 생채기 하나 내기도 싫고해서

핸들을 돌리지 않은 채 비겁하게도 눈만 질끈 감았다

 

한가위 연휴 텅빈 강변북로보다 오히려 붐비었을 한강 자전거도로

수 천 개의 눈망울로 녀석은 무엇을 보았을까

흐릿한 잔상이 수 천 개나 보이면 그 중 어느 것에 진실이 담겨있을까

애시당초 두 개의 눈동자로 볼 수 있는 진실은 없는 것일까?

 

수 천 개의 세상 속에서 녀석이 본 것이 무엇인지

끝내 알 지 못한채로 여전히 바퀴를 저어간다

 

적막같은 순간이 지나가고 감은 눈을 살며시 떴을 때

빨갛게 피에 젖은 녀석의 꼬리가 눈앞을 스쳐간다

다행히도 나는, 살생을 안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겨우 두 개의 눈을 가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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