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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

그래도 이제는 글 하나 정도는 쓸 수 있을 거 같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 2009년은 갑자스럽게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시작되고 있다. 죽음이라는 거. 사실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아주 특별한 사고가 아닌한 내가 이 나이에 죽을 일이 없고 그건 내 친구들도 마찬가지이고, 우리 부모님도 아직 건강하시니까... 근데 생각해보면 대부분 사람들은 죽음이 서서히 다가오더라도 그것을 애써 외면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가자지구에서의 죽음들은 나에게 절망으로 다가왔다. 아주 솔직하게 말하면 슬픔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팔레스타인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심하게 감정이입이 되지는 않았다. 아마도 심리적, 지리적 거리감 탓이겠지만. 그보다는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일에 대한 절망이 컸다. 그건 이스라엘 군대에 대한 절망이라기 보다는(군대는 원래 그런곳이니까) 그런 학살을 수행하고 있는, 군복을 벗으면 평범하기 이를데 없을 군인들 개개인에 대한 절망이었고, 더 크게는 언덕에 도시락 싸들고 올라가 망원경으로 폭격을 구경한다는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절망이었다. 인간의 존재 자체를 의심케 하는 그런 지옥같은 상황을 무서워서 차마 말 못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어떻게 야구경기보듯 즐길 수 있단 말인가. 용산에서의 죽음은 팔레스타인에서의 보다는 더 큰 슬픔과 분노를 일게 했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물론 나와 같은 심장을 빌려쓰고 있을테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보다 훨씬 가깝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리적인 원근감의 차원은 아니다. 싫든 좋든 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에서 일어난 일이기도 하고, 과거 철거민들의 투쟁에 열심히 연대하면서 골리앗도 같이 쌓고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여기에 있고 내가 가자에 있었으면 단지 그 이유때문에 내가 죽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용산에서의 죽음은 더 큰 확률로 그것이 나의 죽음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다가왔다. 그 때, 상도동에 골리앗을 쌓았을 때, 이런일이 일어났다면. 나와 내 친구들중 누군가가 언제나처럼 그 골리앗 안에 있었다면 말이다. 그리고 어차피 아무 기도도 안하지만 경찰들과 대통령이 보여주는 저 후안무치의 태도가 분노를 일으킨다. 저들에 대해서는 쓰고싶지 않다. 그냥 분노 해야겠다. 마지막으로 이모의 죽음. 유난히도 나와 내동생을 다른 사촌들에 비해 이뻐하던 이모가 죽었다. 저 멀리 아메리카에서. 울 엄마는 동생이 죽어가는 모습을 몇 달동안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이모의 죽음에 대한 나의 방식은 가장 큰 슬픔과 그것에 대한 회피였다. 예전에는 죽음은 소멸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것. 이모가 이제 세상에 없다. 나를 보면 마구 껴안고 하던 이모는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시간이 조금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죽음은 소멸이라기 보다는 조용한 망각인거 같다. 이모의 육신은 보이지 않지만 존재자체가 아예 사라진것은 아니다. 사진첩의 사진속에, 나의 기억속에, 이모와 닮은 우리엄마의 얼굴에도 조금씩은 남아있다. 다만 살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서서히 잊혀져 가는 것일뿐. 사실 지금도 이모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나는 피하고 있다. 그 슬픔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닐것이다. 다만 슬픔에 직면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어쨋든 살다보면 잊혀질 감정들에 부대끼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런데 참 미안하다. 이모한테 잘가시라는 말 한마디 못한것이 참 맘이 안좋다. 연말에, 크리스마스에 카드 한 통이라도 보낼까 망설이다가 뭐라고 써야할지, 삶을 포기하지 마라고 해야할지 편하게 죽음을 받아들이시라고 해야할지(이미 이모는 그 당시 오래 못살거라고 진단을 받고 있었다) 알 수 없다는 핑계로 그냥 미뤄둔 것이 후회스럽다. 너무나 후회스럽다. 그래도 우리 식구들은 이모가 오래 못 갈 것을 알고있어서 슬프지만 충격적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느정도씩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을 테니까. 그런데 가자지구와 용산에서 가족을 잃은 분들은 어떨까... 그 갑작스럽고 어이없는 죽음에,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마지막의 인간다운 죽음을 박탈당한 모습에, 그 감정을 나로썬 짐작할 수 없을 따름이다. 세상에 어느 목숨붙이가 미사일 총탄에 맞아죽을 운명으로 태어났단말인가. 세상에 어느 사람이 경찰에 몰리고 깡패한테 위협당하며 불 타 죽을 운명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겠지만, 요즘처럼 죽음이 도처에 검은 구름을 띄우고 있는 시절은 숨쉬기가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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