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세상의 끝

"몇 날이 지났는지 모른다. 고층빌딩조차 도시에서 흔적을 감췄다. 아니, 그대로 남아있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맑은 하늘을 기억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처음과는 다르게 더 이상 사람들은 짜증을 부리지 않는다. 다만 우울증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아마도 지구의 종말에 대한 소설을 쓰게 된다면 이렇게 시작할 거 같다. 지구의 종말을 상상할 때면 나는 운석의 충돌이나 거대한 자연재해처럼 한순간에 사라져버릴 미래보다는, 어두침침하고 읍습한 안개가 세상을 뒤덮은 채로 지속되는 미래가 상상된다. 즉 종말은 단절보다는, 빠져나올 수 없는 심연같은거 혹은 끝나지 않는 악몽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며칠동안 서울 하늘은 뿌연 기운으로 앞이 내다보이지 않는다. 한강대교를 건너는데 바로 옆 여의도의 63빌딩이 희미하거나 때때로 보이지 않을 정도다. 언제부턴가 이런 날씨가 익숙해져만 간다. 두려운 것은 앞으로 서울의 하늘은 이렇게 고정되어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만화같은 상상력일 수도 있겠지만, 그리 된다해도 그다지 놀라울것 같지 않다. 어쩌면 정말로 마지막으로 맑은 하늘을 본 것이 2009년 1월의 일이 될 수도 있다. 내가 느끼는 인간 세상의 종말. 사람들은 답답함 마음에 짜증 늘어가다가 짜증조차 내지 않을 것이다. 아니 모두가 짜증을 내고 살아가니가 익숙해질 따름이다. 그런 세상에서는 짜증을 내지 않는 사람들이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지도 모른다. 이 하늘을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헛된 망상이기를. 요새 기분이 견디기 힘들었던건 어쩌면 이 하늘을 바라보며 숨쉬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그래서 기분좀 바꿔 보려고 이장혁2집도 안듣고 있었는데, 서울 하늘을 볼 때 마다 이장혁 2집의 '그날'이 떠오른다. 물론 이 노래의 가사는 내가 생각하는 방식의 세상의 끝과는 살짝 다르지만, 아무튼 이 노래의 느낌이 지금 서울하늘과 너무 잘어울려 불안하다. 그날 지독히도 쓰디쓴 이 세상의 끝물 이미 쓰여진 대로 그렇게 알고 있어 지난 밤 꿈처럼 사라져갈 인간들의 시간 남아있을 동안만이라도 한 번 더 날 안아줘 한 번 더 날 안아줘 안녕이란 인사도 나눌 사이도 없이 도둑같이 오고 말 그날 알고 있어 정해진 것처럼 불타버릴 인간들의 흔적 할 수 있을 동안 만이라도 한 번 더 입맞춰 줘 한 번 더 입맞춰 줘 알고 있어 정해진 것처럼 불타버릴 인간들의 흔적 할 수 있을 동안 만이라도 한 번 더 날 안아줘 한 번 더 입맞춰 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