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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시간에 대한 예의

과거를 추억하지도 미래를 기대하지도 않겠다고 그냥 지금 이순간만에 충실하자고 다짐했던 건 아마도 2003년 쯤부터였을 것이다. 무겁던 다짐들이 무너지고, 영원까지는 아니더라도 굳은 신뢰들이 서로 배반하는 과정을 겪으며 이제 살아갈 세상은 그리 아름다운 곳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여전히도 루시드폴의 노래가 좋은 걸 보면 과거는 나에게 완전히 떨쳐버릴 수 있는 지나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지나간 시간에 대한 예의를 가져야겠지... 지나가버린건 어쩌면 시간뿐이고 나는 거기서 한발짝도 자라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니까. 친구가 이장혁 들어보라고 해서 한참 이장혁을 들었다. 그리고 견딜 수 없는 감정이 버거워 엠피쓰리에서 지워버렸다. 그런데 스멀스멀 한 곡씩 한 곡씩 찾아듣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피할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때로는 피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애써 도망치려고 해도 결국에는 도망치지 못할 것들이 있다. 그렇더라도 어쩔수 없었다고, 그것이 모든 것에 변명이 되는 것은 아닐것이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예의. 그건 아마도 어쩔 수 없는 상황속에서도 지켜야하고 고려해야하고 배려해야하는 것들을 뜻하는 말일것이다. 상황은 언제나 지나고 난 이후에 자각을 불러일으키며 그런 일련의 과정을 다른 말로는 후회라고 할것이다. 아무 부질없는 이름 후회. 이런 면에서 인간은, 아니 나란 존재는 성찰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 존재일지도. 내 감정에 취해 돌진하다가 문득 나의 속도를 깨달았을때는 항상 소중한 것들을 지나쳐버린 이후였다. 그렇게 소중한 것들과 하나씩 하나씩 이별하면서 살아왔다.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를 들으며, '내가 떠나보낸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것도 아닌데.' 하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돌이켜보면 모두 내가 떠나보낸것이었다. 살아가는 일은 결국 나를 죄인으로 만들고, 모든 관계는 상처를 주지 않을 수는 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것을 핑계로 나는 상처를 덜 주는 방법들에 노력하지 않았었던 것이다. 늦게라도 내가 짊어져야 할 몫, 그리고 나에게 소중했던 시간들에 대한 예의를 갖춰야겠다. 그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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