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2009/10/07

언제가 되어야 자네는 다른 사람들의 나약함이나 실수를 더 이상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구실로 삼지 않을 것인가, 문제는 인간이다, 인간으로서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잘못은 다른 사람들의 나약함과 실수가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정당화해준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중에서

 

갓산 카나파니의 마지막 작품 <하이파에 돌아와서>에서 20년 만에 쫓겨났던 고향 팔레스타인 하이파에서 자기들이 살던 집에서 생이별 했던 큰아들-자신은 어디까지나 이스라엘인이라며 20년 동안 울면서 세월을 보냈다며 자신을 낳은 부모를 비난하는 아들에게 사이드 S가 한 말이라고 한다.

고향을 잃는 다는 것의 의미-이산, 토지와 재산의 상실, 박해와 차별, 빈곤과 굴욕, 학살을 실감하게 하면서도 또 다른 생각도 들게 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나약함이나 실수를 방패막이 삼아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해오지는 않았는지. 불필요한 질문이다. 엄청나게 그런 적 많았을 것이다. 타인에게 차라리 아예 무관심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관대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가 해낼 수 있는 것들을 남들이 해내지 못했을 때, 내가 보인 태도와 행동들은 다른사람들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을지...

 

 

 

"조국이라는 건, 이런 모든 일들이 일어나서는 안되는 곳을 말하는 거야. (......) 칼리드에게 조국이란 미래를 의미하지." 칼리드는 난민 캠프에서 태어나고 자란 둘째아들이다. '조국'은 추억 속이 아니라 미래에,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미래를 향한 투쟁 속에 있는 것이다.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중에서

 

위의 대사 역시 사이드 S의 말. 서경식은 이 말에 깊은 공감을 여러차례 표현하고 있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내 조국, 하지만 한 번도 그 때문에 불편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부끄러웠던 적은 있어도) 단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성급하게 비판하기만 했었는데, 서경식의 글을 읽으면서 그리고 재일동포들의 글을 읽으면서 깨닫게 된다. 조국과 민족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여전히 신뢰하지 않지만 조국과 민족 때문에 차별 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리고 나는 운 좋게도 그런 차별에 놓여있지 않아서 그런 고민을 안하고 살아왔다면, 내가 지금 가져야 하는 생각은 무엇일지.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 갓산 카나파니에게서 그리고 서경식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