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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람이 그래요?

아침 출근 풍경

인천과 부천에서 잠을 자고 나온 사람들이 서울을 가기 위해 1호선에 오른다.

전철은 신도림에서 2호선과 십자로 만난다. 전철이 정차하면 마치 죽은나무 토막에서

개미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사람들이 우루루 쏟아져 나온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마치 출발 총성을 들은 단거리 주자처럼 박차고 나가 달려간다.

뒤늦게 반응한 선수들 마냥 그들의 뒷 모습을 보고 갑자기 발걸음이 빨라 지는 이들도 있다.

나는 조금 시간이 여유가 있어서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고 그 광경을 신기하게 바라본다.

일군의 사람들이 계단으로 내려간다. 흡사 거대한 진공청소기가 땅속에 숨어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지하로 빨아들인다. 그런데 사람들은 한마디 말도 없다.

두두두. 다다다. 똑똑똑. 발굽소리만 요란하다. 죽음을 예감하는 침묵의 군대가 행진하는 듯 하다.

나는 이 풍경이 너무나 신기하다. 아침마다 보지만 그래도 신기하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한 곳을 향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말없는 풍경에 발자국 소리만 일렁인다.

 

2200번 버스를 기다리고 서있는데 우공의 친구를 만났다.

아침에 종종 서로 엇갈려 걸어가면서 얼굴마주치곤 했는데 오늘은 내가 줄서있을 때

마주친 관계로 짧은 몇마디의 대화가 오고 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회사가 어디예요?"

"파주 출판단지에 있어요."

"그래서 여기서 버스타시는 구나. 근데 최근에 우공 면회 간 적 있어요?"

"아니요. 한 번도 없는데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아직 수습사원이라서 연차가 없어요. 평일엔 시간이 없어요."

"주말엔요?"

"주말엔 쉬죠."

 

뻥이다. 평일에 시간 있었어도 아마 안갔을 것이다.

주말에 보통 안쉬고 사람들 만나고 놀러 다닌다.

우공을 딱히 싫어하거나 면회가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은 없다.

그냥 꼭 가서 보고싶다는 강력한 의지가 없을 뿐이다.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라는 그녀의 말이 계속 머리에 남는다.

내가 잘못한건가? 면회를 안간게, 신경을 쓰지 않은게, 마음을 두지 않은게 잘못인건가.

 

약간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그녀에겐 우공이 병역거부자중에 특별한 친구인지만

나한테는 병역거부자중에 한 명일 뿐이다.

딱히 싫은 감정도 없고 그렇다고마구 아끼고 싶은 감정도 없다.

무언가 그런 류의 감정을 가지기에는 서로 알고지낸 시간이 너무 짧다.

근데 솔직히 이것도 핑계는 안된다.

재성이가 감옥 가있을 때, 면회를 몇 번 가기는 했고, 편지를 몇 번 쓰기는 했지만

그리 마음을 많이 쓰지는 못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내가 안에 있을 때 생각을 해보았다. 지금은 뭐 다 지난일이라 조금은 감정의 결이 다르겠지만...

그것을 고려하더라도 내가 만약 안에 있을 때, 우공이 면회 안왔다면 어땠을까?

뭐 그다지 서운하지는 않았을거 같은데...

물론 오면 고마워했겠지만, 그것도 어떤 그 사람의 노력에 대한 고마움이지

그 사람과 나와 끈끈하게 연결된 감정의 고리를 느끼거나 그러지는 않았을거 같은데...

근데 그건 나고, 우공은 또 어떻게 느낄지 모를일이지만 말이다.

 

또 한 편으로는 내가 가지고 있는 나쁜 생각과 태도가 떠올랐다.

나는 병역거부자들의 감옥살이가 크게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병역거부자'라서 신경써줘야하는 이유를 전혀 못느끼겠다.

오히려 그 사람이 무슨 죄명으로 들어갔는지보다 그 사람이 나와 얼만큼 친밀한지에 따라

마음씀씀이가 달라질 거 같다.

근데 이런 생각이 나쁜거 같기는 하다.

병역거부자들의 옥살이가 영웅적으로 묘사되거나 해서는 안되겠지만

그들이 겪을 고통과 외로움에 공감해 줄 수 있으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은 한다.

그래도 왠지 내가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게되는 것이다.

 

암튼 어젯밤에 개굴과 이야기하면서 병역거부운동에서의 감정노동에 대해 이야기해서 그런지

우공 친구의 말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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