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잘가 고양이야

월요일 아침 출근길. 시간이 늦은 것도 아닌데 버스를 탔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데 버스를 차고 출근한 건 처음이다.

어제 하루 종일 코엑스에서 가판업무를 해서 몸이 피곤했기 때문이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해서 버스를 기다리는 데 정류장 앞쪽 길가에 고양이 한 마리가 죽어있다.

 

2년전인가, 아니면 그 전 해였던가,

우리집과 옆 빌라 사이를 가르는 담 밑 배수구 위에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죽어있었다.

추운 겨울밤을 외롭게 보내느라 외로운 것처럼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가는 길이 바뻐서라고 스스로에게 핑계를 대며 모른척 지나갔다.

추운 겨울에 손을 꺼내고 싶지 않았고,사실은 죽은 고양이의 몸을 만지고 싶지 않았다.

그 고양이는 몇 날 며칠 그 추운 겨울밤 그곳에 누워있었다.

눈이 내리고, 하얀 고양이를 하얀 눈이 덮고, 눈이 녹고, 다시 눈이 쌓이고...

그렇게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동안, 나는 날마다 집앞 길을 걸으며

고양이에게 미안해서, 고양이가 안쓰러워서, 그런데도 애써 외면하며 다녔다.

그늘진 곳에 다져진 눈들도 다 녹은 어느 날, 문득 고양이가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어디로 갔을까. 누가 치웠을까. 처음 봤을 때 좋은 곳으로 옮겨줄걸 후회가 막심했다.

 

그 기억 때문에 출근길에 만난 죽은 고양이를 외면하기 힘들었다.

아직 버스는 안오고 있다. 저 멀리를 봐도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서 버스가 바로 오지는 않겠다.

버스 정류장 뒤 공터에서 나무 판자를 하나 주어 들어 고양이 옆으로 갔다.

딱딱하게 굳어있는 고양이 몸에 손대고 싶지는 않아서 판자로 어떻게 들어보려고 했다.

고양이 몸과 아스팔트 사이로 판자를 쑤셔 넣는데 잘 안 들어간다.

결국 그냥 손으로 고양이를 들어 판자에 올리고 정류장 뒤 공터 외진 곳에 내려주었다.

시간은 여유가 있었는데, 삽만 있었으면 묻어주고 왔을텐데, 그러진 못하고

고양이를 들고 갔던 판자로 살며서 하늘을 가려주었다.

 

잘했단 생각이 든다.

그 고양이를 그냥 지나쳐왔으면 오늘 하루 종일 생각나서 다른 일을 못했을거고

한동안 마음에 남아있을텐데... 잘가 고양이야. 아무런 외상이 없는 걸로 봐서

어디서 뭘 잘못 먹고 그곳에 와 죽은 게 아닐까 싶던데.

고양이가 잘 쉬었으면 좋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