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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2/26
    편지정리하며(2)
    무화과
  2. 2008/02/20
    강물
    무화과
  3. 2008/02/18
    밤을 꼴딱 새는 중
    무화과
  4. 2008/02/14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무화과
  5. 2008/02/14
    인권활동가대회 가는 길(2)
    무화과
  6. 2008/02/11
    야구장 10번가자!!!(4)
    무화과
  7. 2008/02/10
    그 여자네 집
    무화과
  8. 2008/02/06
    트레일러(2)
    무화과
  9. 2008/02/05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무화과
  10. 2008/02/04
    청주에서 썼던 시들 + 수원에서 쓴 시
    무화과

편지정리하며

한동안 오예스를 계속 먹겠구나

그래도 우리는 짐 손이 부족해 조금 챙겨왔는데...

오예스 먹으면서 편지들을 정리하고 있다.

내가 떠나보낸 마음들을 내가 다시 만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래서 더 미련없이 여러 마음들-서운함과 그리움과 지루함과 불안함과 기대감 들을

가감없이 내 보냈었던 건데...

 

편지들 정리하면서보니 정말 난 글씨를 너무 못쓴다ㅠㅠ

아무리 감동적인 내용이라도 이런 글씨라면 하나도 감동적이지 않음은 물론이고

나라면 끝까지 읽어보지도 않을것같다. 타이핑 치는데 못알아 볼 정도는 아니지만

신나기 보다는 짜증이 쌓여가는 글씨체라고나 할까.

 

그리고 또 새삼스럽게 알게되는 것 들.

그 안에 있을 때, 출소해서의 계획을 거의 세우지 않았다.

이것 저것 세워봤자 안지킬게 뻔해서. 그래서 안세우고 안세우고 해서

최소한으로 세운 계획들. 깜빡 잊고 지냈더랬다.

편지들을 보니까 내가 어떤 계획들을 세웠는지 적혀있다.

민망하다. 단 하나의 계획도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몇가지 맛보기. 징역에서 읽었던 책들 중 인상깊었던거 다시 읽기.

도스도예프스키, 톨스토이, 보르헤스, 마르케스 읽기.

영어공부 꾸준히 하기. ㅠㅠ

 

그래도 편지 정리하면서

기억에 가물거리며 남았있던, 찾고 싶었던 시도 찾아냈다.

친구에게 써 보냈던 시.

 

 

 

옥창에 기대어                          김광섭

 

 

하늘로 하늘로

가는 마음

맑은 바람

타고 가면

흰 구름

눈물 씻는다

 

 

이 시를 보면서, 시인의 마음에 너무 너무 공감이 되었다.

좁다란 창살 사이로 내다보이는 하늘, 하늘위 구름과 바람과 내 마음

 

편지 타이핑하기 지겨워서 잠깐의 포스팅.

다시 일해야겠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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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

강물                                                  박용하

 

 

얇게 얇게 생선회 저미듯

곱게 곱게 바람 접어 밀리는 물결

아무도 없었지요, 3월

강가에는 소원성취 초 꽂아놓고

누군가 빌다 갔더군요

물 보러 갔었어요

당신 생각이 문득 올라오더군요

올라와 물결 따라 한결같이

밀리는 걸 어쩌겠어요

견딜 수 없는 것들만

삶이 되겠지요

돌 던지던 짓도 그만두고

밀리는 물결따라 참 멀리 갔지요

나는 고통받는 자였던가요

고통하는 자였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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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꼴딱 새는 중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그나마 어제 10시간이나 잠을 자서 견딜만하다.

난 아침형 인간이라서 아무리 늦게 잠들어도 9시 전에는 깨는데

어제는 12시 전에 잠들었는데도 9시가 넘어서 일어났다.

아마도 오늘 밤을 꼴딱 샐 거라고 내 몸은 미리 알고 있었나보다.

 

대부분의 디자인이나 편집 작업들이 그렇듯, 시간을 많이 들인다고

딱히 들인 시간만큼 정비례해서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시간을 많이 들일수록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부정 못한다.

 

아무리 그래도 언제나 그렇듯이 평소에 미리 미리 해놨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면 이렇게 밤새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아무리 후회해도 다음번 소식지를 만들때는 또 밤을 샐 것이 분명하다.

 

얼른하고 조금이라도 잠을 잘 것인지,

아니면 다시 일어날 자신 없어서(예전에는 정말 7시 넘어서 잠들어도

9시에 일어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못그런다ㅠㅠ) 그냥 밤을 꼴딱 새고

그대로 나갈 것인지 결정을 해야한다.

 

아... 어서 일 끝나고 실컷 잠이나 퍼 잤으면 좋겠다.

누가보면 맨날 바빠서 잠 잘 시간도 없는 줄 알겠지만

맨날 놀아서 하루쯤은 밤을 새야하는거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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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모르고 지나쳐버렸다. 13일이 시인 김남주의 14주기였단다.

 

김남주... 그와 처음 만났을 때의 충격과 시원함과 슬픔을 기억한다.

IMF 때 고등학생이었던 시절. 여름방학때인가 집앞 독서실을 다닌 적이 있었다.

당시 안어려운 집이 없었듯이 우리집도 울 아빠가 다니던 회사가 망하면서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웠었다. 그 빠듯한 살림에 없는 돈으로 독서실을 등록해줬건만, 솔직히 앉아서 공부하는데 취미가 없었던 나는 다니는 시늉만 했다.

아침밥먹고 독서실 가서 한 30분 공부하다가 만화책 빌려서 1시간쯤 보고

계속 책봤으니 산책 한 30분하고 다시 책상에 앉아서 소설책보다가

지루하면 노래듣고 그러다가 점심밥 먹으로 집에가고...

그러던 어느날 라디오에서 우연히 안치환이 부른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들었다.

가사가 너무 좋아서 덜컥 안치환의 테이프를 샀다.

그 앨범에는 생각지도 못한 낯선 노래들이 있었다.

그 노래들 중 몇 곡에 김남주의 이름이 있었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은 아니야' '한다' '희망이 있다(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아이고! I Go!(날마다 날마다)'... 그 노래 가사들을 보고나서 서점으로가서 창비에서 나온

김남주의 2권짜리 옥중시선집 저 창살에 햇살이 를 샀다.

 

김남주의 시는 나에게 커다란 충격이었고 환희였다.

나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시를 썼다는 그의 말에 녹아들었고

나도 그처럼 시를 무기삼아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로 여러번, 사는게 버겁고 힘들때면 더더욱 김남주의 시를 읽게 되었다.

 

학생운동을 하면서 김남주의 '전사'에 가슴이 뛰었었고, '돌멩이 하나'를 읽으며

꿎꿎하게 걸어가자 친구와 다짐을 했었다. 해마다 518이 되면 '학살'을 떠올렸었다.

농활갔던 마을 개울가에 발을 담그며 '물따라 나도 가면서'를 노래했다. 정주영이 즉었을 때, 그를 기리는 일군의 학생운동세력을 보면서 마음에 안들어서 '겨레의 어쩌고 저쩌고 하는 백두산이여(시 제목이 기억이 안난다ㅠㅠ)'를 읊조렸다.

전용철 홍덕표 농민이 경찰에게 맞아 죽었을 때는 '날마다 날마다'를 생각하며

속으로 울었고, 대추리에 쳐진 철조망에서는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은 아니야'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조용한 가을 한적한 시골마을을 지날 때는 '옛마을을 지나며'를 떠올리며  홍시가 먹고 싶어졌었다. 재작년 친구들과 해남 땅끝마을을 가다가

우연히 김남주 생각를 발견하고 들렸던 일이 있었다. 붉은 남도의 흙. 흙보다 더 검붉게 그을렸을 농민들. 농민들의 마음들. 김남주의 시가 왜 그렇게 붉은지, 붉으면서도 생기있꼬 아름답고 슬픈지, 붉은 흙을 보니 알 것만도 같았다. 징역사는 동안에는 '저 창살에 햇살이' '이 가을에 나는' 과 같은 시들에 몸과 마음이 온통 몰입해있었다.

김남주가 시에서 '나가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순간 내 마음은 크게 요동치고 너무나 슬퍼서 감당할 수 없는 감정에 시를 던져버리기도 했었다.

 

이제 나는 시가 무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시를 무기로 삼을 생각이 없다. 그래도 가끔씩 김남주가 보고 싶다. 그의 시를 읽을때면 언제나 사뭇치는 감정들이 나에게 소중하다. 내 보물과도 같은 김남주의 시집, 이제 완전히 누리끼리해져만 가는 내가 처음으로 샀던 시집을 다시 한 번 꺼내본다.

 

 


 



나와 함께 모든 모래가 사라진다면                        

 

 

내가 심고 가꾼 꽃나무는

아무리 아쉬워도 
나 없이 그 어느 겨울을 
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땅의 꽃은 해마다 
제각기 모두 제철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내가 늘 찾은 별은 
혹 그 언제인가 
먼 은하계에서 영영 사라져 
더는 누구도 찾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하늘에서는 오늘밤처럼 
서로 속삭일 것이다. 

언제나 별이

 

내가 내켜 부른 노래는

어느 한 가슴에도 
메아리의 먼 여운조차 
남기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삶의 노래가 
왜 멎어야 하겠는가 
이 세상에서……

 

무상이 있는 곳에 
영원도 있어 
희망이 있다. 
나와 함께 모든 별이 꺼지고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내가 어찌 마지막으로 
눈을 감는가. 

 

 

 

 

이 가을에 나는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오라에 묶여 손목이 사슬에 묶여

또 다른 곳으로 끌려가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번에는

전주옥일까 대전옥일까 아니면 대구옥일까

 

나를 태운 압송차가

낯익은 거리 산과 강을 끼고

들판 가운데를 달린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따가운 햇살 등에 받으며 저만큼에서

고추를 따고 있는 어머니의 밭으로 가고 싶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숫돌에 낫을 갈아 벼를 베고 있는 아버지의 논으로 가고 싶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염소에게 뿔싸움을 시키고 있는 아이들의 방죽가로 가고 싶다

가서 그들과 함게 나도 일하고 놀고 싶다

이 허리 이 손목에서 오라 풀고 사슬 풀고

발목이 시도록 들길 한번 나도 걷고 싶다

하늘 향해 두 팔 벌리고 논둑길 밭둑길을 내달리고 싶다

가다가 숨이 차면 아픈 다리 쉬었다 가고

가다가 목이 마르면 샘물에 갈증을 적시고

가다가 가다가 배라고 고프면

하늘로 웃자란 하얀 무를 뽑아 먹고

날 저물어 지치면 귀소의 새를 따라 나도 가고 싶다 나의 집으로

 

그러나 나를 태운 압송차는 멈춰주지를 않는다

내를 끼고 강을 건너 땅거미가 내리는 산기슭을 돈다

저 건너 마을에서는 저녁밥을 짓고 있는가 연기가 피어오르고

이 가을에 나는 푸른옷의 수인이다

이 가을에 나는 푸른옷의 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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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활동가대회 가는 길

탄천이 한강과 만나는 지점에서부터 용인 둥지골 수련원까지 대략 60km

 

주요 코스

탄천(끝까지 따라 내려간다. 아마도 거의 끝까지 자전거 도로가 만들어져 있는 듯)

--> 42번국도 --> 용인시청 --> 용인고속버스 터미널

--> 경안천(여기는 자전거 도로가 있을까?) -->57번 지방도로(?)

--> 죽능리 --> 용인 둥지골 수련원

 

탄천 자전거도로가 40km정도

나머지 20km 중에 경안천이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산하나를 넘어야한다.

어느정도 높이의 산인지는 모르겠지만 등고선을 봤을때는

남산보다는 높은 산같다ㅠㅠ 이 산만 넘으면 거의 끝

 

예상소요시간

서대문-->종합운동장(18km) 1시간

종합운동장--> 탄천 끝(40km) 2시간

탄천 끝--> 둥지골수련원(20km 산 넘어야 함) 넉넉잡고 2시간

 

총 5시간이면 쉬다가다 쉬다가다 할 수 있겠구나.

 

오랫만에 자전거 장거리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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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 10번가자!!!

사는게 그다지 재미가 없다.

이래선 안되는데.

역시나 올해도 작년 이맘때처럼 오로지 프로야구가 개막하기만을 기다리다니.

그래도 야구라도 있어서 참 다행이다.

작년처럼 4월까지만 야구에 관심가지고 5월부터는 스포츠 신문 근처에도

안가다가 어쩌다 연승했다는 소식들리면 하루종일 야구 관련기사만

찾아보고 그렇게 될까봐 살짝 두렵지만,

그래도 야구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올해는 야구장 20번 가야지.

잠실이랑 목동이랑 문학이랑 7번씩 가야지.

생각해보니 불가능 하겠다. 9번중에 7번씩가는것은....

올해는 10번 가야지

LG, 두산, SK랑 하는 경기 3번식 보고

한국시리즈 한 번가고 그래서 10번!!!

 

 


요 세넘만 잘하면 꼴지해도 기분 좋을텐데... 뭐 윤석민과 한기주는 잘할거고

김진우는 과연 돌아오려나... 한기주 표정이 예술이다ㅋㅋ

 

 


 

 

 

과연 롯데가 가을에 야구할 수 있을지... 솔직히 안궁금하다. 결과가 뻔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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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네 집

그 여자네 집

                                                 김용택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 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운 집
어디 갔다가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 속에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오는 집

 

살구꽃이 피는 집
봄이면 살구꽃이 하얗게 피었다가
꽃잎이 하얗게 담 너머까지 날리는 집
살구꽃 떨어지는 살구나무 아래로
물을 길어오는 그 여자 물동이 속에
꽃잎이 떨어지면 꽃잎이 일으킨 물결처럼 가 닿고
싶은 집

 

샛노란 은행잎이 지고 나면
그 여자
아버지와 그 여자
큰 오빠가
지붕에 올라가
하루종일 노랗게 지붕을 이는 집
노란 집

 

어쩌다가 열린 대문 사이로 그 여자네 집 마당이 보이고
그 여자가 마당을 왔다갔다하며
무슨 일이 있는지 무슨 말인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와
옷자락이 언듯언듯 보이면
그 마당에 들어가서 나도 그 일에 참여하고 싶은 집

 

마당에 햇살이 노란 집
저녁 연기가 곧게 올라가는 집
뒤안에 감이 붉게 익은 집
참새떼가 지저귀는 집
눈 오는 집
아침 눈이 하얗게 처마 끝을 지나
마당에 내리고
그 여자가 몸을 웅숭그리고
아직 쓸지 않은 마당을 지나
뒤안으로 김치를 내러 가다가 "하따, 눈이 참말로 이쁘게도 온다이이"하며
눈이 가득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속눈썹에 걸린 눈을 털며
김칫독을 열 때
하얀 눈송이들이 김칫독 안으로
내리는 집
김칫독에 엎드린 그 여자의 등허리에
하얀 눈송이들이 하얗게 하얗게 내리는 집
내가 목화송이 같은 눈이 되어 내리고 싶은 집
밤을 새워, 몇밤을 새워 눈이 내리고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늦은 밤
그 여자의 방에서만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면
발자국을 숨기며 그 여자네 집 마당을 지나 그 여자의 방 앞
뜰방에 서서 그 여자의 눈 맞은 신을 보며
머리에, 어깨에 쌓인 눈을 털고
가만히, 내리는 눈송이들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가만 가만히 그 여자를 부르고 싶은 집



네집

 

어느날인가
그 어느날인가 못밥을 머리에 이고 가다가 나와 딱
마주쳤을 때
"어머나" 깜짝 놀라며 뚝 멈추어 서서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반가움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환하게, 들판에 고봉으로 담아놓은 쌀밥같이
화아안하게 하얀 이를 다 드러내며 웃던 그
여자 함박꽃 같던 그
여자

 

그 여자가 꽃 같은 열아홉살까지 살던 집
우리 동네 바로 윗동네 가운데 고샅 첫 집
내가 밖에서 집으로 갈 때
차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집
그 집 앞을 다 지나도록 그 여자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는 그 여자네 집
지금은 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그 집
내 마음 속에 지어진 집
눈 감으면 살구꽃이 바람에 하얗게 날리는 집
눈내리고, 아 눈이, 살구나무 실가지 사이로
목화송이 같은 눈이 사흘이나
내리던 집
그 여자네 집
언제나 그 어느 때나 내 마음이 먼저

있던 집

여자네

생각하면, 생각하면 생. 각. 을. 하. 면......

 

 

 

지리산에 갈 때 마다 산장에 비치된 시집을 집어드는데,

그 시집들엔 나희덕도 있고 도종환도 있고 장석남도 있고

백무산도 있고 아무튼 좋은 시들이 참 많은데

그 중에서도 김용택의 '그여자네집'에 짜구 눈이 간다.

한 번 읽고 두 번 보고 세 번 감상하게 된다.

지리산에 갈 때 마다 얼른 산장에 도착해서

그 여자네 집을 읽고 싶어 그 아름답고 장엄한 풍경을 제껴두고

발걸음을 빨리하게 된다.

 

어디선가 이 시와 관련된 김용택 시인의 산문을 읽은 적이 있다.

어두워진 밤 노란 은행나무 잎사이로 잎보다 노란 불빛이 새어나오는

집앞을 아쉬워서 지나치지도 용기내어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계속 뒤돌아보면 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혹시나 뒷걸음 칠 핑계꺼리가 없을까 상상하는 시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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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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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장석남

 

 

저 새로 난 꽃과 잎들 사이

그것들과 나 사이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무슨 길을 걸어서

새파란

새파란

새파란 미소는,

어디만큼 가시려는가

나는 따라갈 수 없는가

새벽 다섯 시의 감포 바다

열 시의 등꽃 그늘

정오의 우물

두세 시의 소나기

미소는,

무덤가도 지나서

화엄사 저녁 종 지나

미소는,

저토록 새파란 수레위를 앉아서

 

나와 그녀 사이 또는

나와 나 사이

미소는,

돌을 만나면 돌에 스며서

과꽃을 만나면 과꽃의 일과로

계절을 만나면 계절을 쪼개서

어디로 가시려는가

미소는,

 

 

 

새벽 감포 바다에 가보고 싶다.

노고단을 올라가며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가파른 산길을 걸으며

멀리서 들려오던 해질녘의 화엄사 종소리를 기억한다.

새로난 꽃과 잎들 사이, 그녀와 나 사이

그래서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걸까? 나는 따라갈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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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서 썼던 시들 + 수원에서 쓴 시

머릿카락의 비명

 

 

은빛 날개가 번뜩이면

검은 욕망이 우수수

침묵처럼 낙하한다

 

날카롭게 잘려진 틈새로

독버섯같은 욕심이

한숨처럼 새어나온다

 

차디찬 바닥에선

온기잃은 분신들

고통스런 비명을 내지른다

 

 

 

 

내 귀에서 자라난 소리

 

 

어둠이 다소곳이 내려앉은 고요한 밤

빛이 사라진 자리에 소리가 자라난다

 

밤 11시를 넘어가는 시계의 초침소리

뒤척이며 잠든 손님들의 새근새근 숨소리

밤새도록 이글대는 형광등 소리

멀리 담 넘어 개짖는 소리

그리운 님 애타게 부르는 풀벌레 울음소리

구름 뒤 달님의 미소짓는 소리

잠들지 못하는 밤 심심한 눈꺼풀 꿈벅거리는 소리

 

날부르는 당신의 심장소리

다가서면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

 

침묵하는 가을 밤

내 귀에서 자라난 소리

 

 

 

 

빗방울 합주곡

 

 

퐁퐁퐁

귓볼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창 밖에 연주회가 한참이다

새들도 풀벌레도 모든 밤의 악사들도

어둠속에 침묵하며 연주회를 경청한다

 

차가운 새벽이 코 끝을 간지르고

나는 베토벤처럼 헝클어진 머리로

넓다란 객석에 저 홀로 앉아서

빗방울의 합주곡을 감상한다

 

총총총

지상으로 추락한 천상의 선율

세상을 두드리는 타악기의 향연

단조로운 리듬은 천 번 만 번 새롭고

투명한 음색은 땅 위의 것들과 부드러운 화음을 이룬다

 

간 밤에 무슨 꿈을 꾸었지?

서서히 밝아오는 아침

가을을 가득 채운 음표들의 춤사위

 

 

 

2007년 늦은 여름과 가을에 청주에서 썼던 시들

 

 

 

 

저 하늘을 날아

 

 

창살너머 하늘하늘

부는 바람

창살사이 쭈볏쭈볏

손 내미는 햇살

 

구름이었어라

한 마리 새였어라

심장에 아로새긴

전생의 기억 따라

 

바람을 만나면

바람에 몸을 싣고

햇살이 비추면

창공에 높게 날아

 

가끔씩 지칠 때면

고독한 산허리

춤추는 나무 어느 가지 끝자락에

살며시 내려앉아

한 숨 돌리리

 

2007년 봄에 수원에서 썼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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