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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쏘공을 보다가

 회사 사람들과 우리의 이해는 늘 상반되었다.

사장은 종종 불황이라는 말을 이용하고는 했다.

그렇지 않을 때는 힘껏 일한 다음

노-사가 공평하게 나누어 갖게 될 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희망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를 주지 못했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중에서

 

이 구절을 보고  "맞아맞아, 우리랑 똑같네." 이런 생각을 하다간 흠칫 놀랐다.

난쏘공이 쓰여진 게 언제였더라. 그리고 30년이 흘렀다.

게다가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대한민국 평균을 훨씬 넘는 좋은 회사다.

우리 회사 사장님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한 진보인사다.

 

하지만, 임단협 때

사장은 불황을 이야기 했고, 열심히 일해서 올해 이윤이 생기면 노사가 함께 나누자는 희망을 이야기 했다. 가장 불행한 일은 그가 말하는 희망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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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합니다

반성합니다

 

 

용산에서 불법시위를 주동했다고 재판을 받고있는 박래군에게

항소심 판사가 항소를 기각하며

반성도 하지 않고, 집행유예 기간 중에도 동종 범죄를 저질렀다고 준렬하게 꾸짖었다고 한다

 

박래군처럼 착한 사람이 반성해야 한다면

나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반성을 해야 하나

이 참에 반성이라는 거 나도 한번 해보자

 

초등학교 3학년 소풍 갔을 때 옷 이쁘게 입고 온 동무한테 얼굴 못생겼다고 놀린 거 반성합니다.

초등학교 4학년 점심시간에 엄마가 싸준 돈까스 혼자 먹고 싶어서 친구에게 거짓말 한 거 반성합니다.

중학교 1학년 때 동네 슈퍼에서 주인 몰래 가나초콜렛 하나 숨겨 가지고 나온 거 반성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싸움 잘하는 친구가  싸움 못 하는 친구 괴롭히는데 외면했던 거 반성합니다.

대학교 1학년 때 1300원짜리 좌석버스 100원짜리 11개만 넣고 탄 거 반성합니다.

혼자 착한 척 하느라 헤어진 애인 가슴에 대못 박은 거 반성합니다.

 

이 정도로는 안되겠지?

이 정도 반성해서는 나 또한 존엄하신 재판장님께 준렬한 꾸짖음을 듣고 말겠지?

그러니 더 반성해보자

 

대학교 1학년 때 집회나갔다가 전경들이 마구 달려들면서 때리자, 무서워서 내 앞에 넘어진 사람 밟고 도망갔던 거 반성합니다

감옥에 갇혀 있을 때, OOO랑 OOO가 편지줬는데 그 애들이 싫어서 답장 안쓴 거 반성합니다.

촛불집회 때 너무 피곤해 사람들 열심히 싸우는 데 나만 쏙 빠져나와 새벽 해장국에 술 한잔 마신 거 반성합니다.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이 해군기지에 쫓겨나게 생겼는데, 연대는커녕 관심도 기울이지 않던 거 반성합니다.

용산 참사 후원주점 놀러 가느라 참석 못 한 거 반성합니다.

홍대 앞 두리반 자주 못찾아 가는 거 반성합니다.

권력의 시녀가 돼 약한 사람들에게만 법의 이름으로 몽둥이를 휘두르는 자들에게 속 시원하게 욕 한마디 싸 지르지 못한 거 반성합니다.

 

나 이렇게 반성 많이 했으니 나중에 나  재판 받을 일 있거들랑 선처 부탁드려요.

근엄하시고, 존엄하시고, 똑똑하시고, 훌륭하신 재판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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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에 대한 반성문2 -권정생

인간성에 대한 반성문2                                             권정생
             


도모꼬는 아홉 살
나는 여덟 살
2학년인 도모꼬가
1학년인 나한테
숙제를 해 달라고 자주 찾아왔다.

어느 날, 윗집 할머니가 웃으시면서
"도모꼬가 나중에 정생이한테
시집가면 되겠네."
했다.

앞집 옆집 이웃 아주머니들이 모두 쳐다보는 데서
도모꼬가 말했다.
"정생이는 얼굴이 못생겨 싫어요."

오십 년이 지난 지금도
도모꼬 생각만 나면
이가 갈린다.

 

 

수원구치소에 있을 땐가? 녹색평론에 이계삼 선생님이 쓴 글 보고 권정생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걸 알았는데,

권정생 선생님이 가신 지 벌써 4년이 됐구나... 김남주 시집, 브레히트 시집과 더불어 길이 보이지 않아 가슴이 답답하고 짜증이 솟구칠 때마다 찾게 되는 책이 권정생선생님의 <우리들의 하느님>이다.

 

이 시는  '애국자 없는 세상'과 더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권정생 선생님의 시.

참 재미나다. 뻔한 반성이 아니라, 착한척하는 반성이 아니라 너무 좋다.

나였어도, 내가 나이 60먹어도 정말 이가 갈릴 거 같다ㅋㅋ

이 시 날맹이랑 조은한테도 보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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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 저장 문서]쪽팔려서 나 원 참...

결국 임금 교섭이 결렬됐다.

임금 교섭을 빨리 마무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조합원들이 의견을 모아서

우리 최종요구안(12만원 인상)을 철회하고 사측의 최종요구안에 가까운 수정안(8만원 인상)을 만들어서 갔는데,

 

회사는 우리의 수정안이 우리가 양보한 게 아니란다.

12만원에서 8만원으로 내린 게 양보가 아니라니...

 

임금 몇푼으로 조정절차까지 가는 게 득보다는 실이 많을 거 같아서 조합원들과 뜻을 모아 사측이 수용할 수 있는

안을 제시한건데... 뭐 우리 수정안을 받고 안받고는 둘째치고라도, 노조에서 양보한 게 아니라 회사에서 양보한거라는 괴상망측한 소리만 반복한다. 회사가 양보를 이미 많이 한거라서 여기서 손끝도 더 손댈수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우리가 회사안과 우리 수정안이 거의 같은 거라고 해도 소용없다. 이미 우리 이야기는 안듣고 자기 이야기만 한다.

교섭에 같이 들어온 상급단체에서도 더 이상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는지, 교섭 결렬하고 조정 신청 가잖다.

 

조정 갈 생각까지 했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까진 가지 말자 하면 우리안을 확 양보해서 회사안에 가깝게 만들어 갔는데, 차이를 좁히는 태도는커녕, 우리가 정한 것을 너네는 무조건 받아들여라는 태도다.

 

임금 몇 푼 때문에 지방노동청에 조정 신청을 내는 게 나는 굉장히 쪽팔린데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급진적이라고 생각하는 대표이사는 상관없나보다.

 

에라이.

그래도 이제 더 이상 얼굴보면서 협상 안해도 되니까 그거 하난 좋네...

근데 솔직히 너무 쪽팔리다. 임금 협상, 그것도 금액 차이도 별로 안나는데, 그걸로 조정을 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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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어리석고, 농사꾼은 현명하다.

"오명순씨, 본적이 어딥니까?"

"본적? 시앙골."

"정확하게 말씀해주십시오."

"시앙꼬올. 울 아부지 울 어매가 나를 시앙골서 났당게. 시앙골서 났응게 거가 내 본적지제에."

형사는 얼굴이 벌게진다.

"주소는요?"

"내동 아까 영살리 김시택이 큰어매라고 해놓고는 그러요. 영살리제 어디여어?"

"영산리 몇번집닝까?"

"번지수는 내가 모르겄소."

"주민번호요."

"고무차대기라 암것도 몰러 나는."

"주민등록증 내놔보세요."

"안 갖고 왔는디."

"직업이 무엇입닝까?"

"직업이 뭣이여?"

"현재 오명순씨가 하시는 일 말입니다."

"땅 파묵고 살제에. 나 같은 고무차대기가 뭔 재주가 있겄소이? 이날 평상토록 땅 파서 씨뿌리고 거둬서 나도 묵고 새끼들 멩이고 입히고 갈쳐서 이우고, 그러고 살았제에.....(생략)"

 

-공선옥 <꽃같은 시절>에서

 

시골마을에 돌공장이 들어와서 반대시위하다 업무방해로 경찰조사 받으러 온 할머니와 형사의 대화를 보다가 속이 다 시원해졌다. 누가 이 할머니보고 무지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형사가 던지는 질문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모르는 치들이나 궁금해 하는 것들이고, 할머니가 들려주는 대답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근대국가의 관리시스템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들과 함께 목숨붙이할 땅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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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병역거부를 했다.

 

꿈을 꿨는데 너무 생생하게 기억난다.

 

장면1

난 군인이었다. 아마 사람들이 사는 동네가 그리 멀지 않은 최전방 어느 부대인 거 같았다. 헌데 갑자기 지휘관이 무장을 다 차리고 나오라더니 북쪽으로 진격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우리들은 영문도 모른채 우왕좌왕 하다가 결국 북쪽으로 걸음을 뗐다. 북쪽 어느 마을에 가까워질 때쯤 갑자기 인민군 두 명이 타고 있는 트럭 한 대가 우리 쪽으로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우리는 당황했다. 다들 지휘관을 쳐다보는데, 지휘관은 아무 말 없이 그냥 무조건 진격하라는 신호를 내렸다. 트럭은 점점 우리 쪽으로 다가왔고, 멈출 기미가 없었다. 지휘관은 여전히 피하라든지, 총을 쏘라든지 하는 명령 없이 무조건 진격만을 외쳤다. 우리 부대 맨 앞에는 승윤이가 있었다. 승윤이는 애가 이제 갓 백일이 지났는데 이런 곳에서 개죽음 당하면 안되는데... 걱정하는데 트럭은 계속 거칠게 다가왔다. 저 속도면 이제 곧 맨 앞서가는 승윤이를 치고 우리 모두 트럭의 밥이 될 거 같았다. 나는 눈을 질끔 감고 방아쇠를 당겼다. 한방에 트럭 운전을 하던 인민군이 풀썩 쓰러졌다.

 

장면2

남북의 주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중립지대에 장이 섰다. 며칠 전 있었던 총격전으로 분위기가 험악했다. 어느 북쪽 주민 한 명이 난동을 부리며 남쪽 사람들에게 헤꼬지를 하고 있었다. 옆으로 가서 들어보니 자기 동생은 인민군대에 징집되어 있는데 엇그제 남한군인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는 거다. 내가 쏜 총에 맞아 죽은 인민군 운전병의 형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리며 죽은 인민군의 형에게 다가가서 내가 동생을 죽였다고, 정말 그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그 형은 나를 죽일듯이 쳐다보더니 내게 달려들었다. 주위 사람들이 깜짝 놀라 둘을 뜯어 말렸다. 그 형은 통곡하면서 나를 죽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길 바란다고 했다.

 

장면3

내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몇 날 며칠을 살아있는 송장처럼 보냈다. 죽은 인민군의 형이 울부짖으며 했던 말들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지휘관이 갑자기 모두를 소집했다. 또 진격준비를 하라는 거였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지금 이런 분위기에서 북쪽으로 진격하는 거는 북한을 자극하는 행동밖에 안된다고 누군가 소리쳤다. 지휘관은 "상관없다"고 짧게 대답했다. 또 누군가가 이러다가 전면전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며 걱정을 표시했다. 지휘관은 여전히 상관없다며 이것은 명령이니 너희들은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머리가 깨질 거처럼 아팠다. 눈을 지긋이 감고 있던 나는 벌떡 일어나 진격하지 않겠다고 소리쳤다. 지휘관은 눈을 무섭게 부라리며 항명하는 거냐고 다그쳤다. 나는 병역거부를 하겠다고 했다. 더 이상 이 미친 군대에 있을 수 없다. 그러면 나는 계속 누군가 죽이거나 내가 죽을 수밖에 없을 거라고 했다. 지휘관은 군법을 어기면 즉결 처분할 수 있다며 내게 총구를 들이밀며 잘 생각하라고 했다. 나는 미친 지휘관 밑에서 무모한 명령에 따르다 북한군의 총에 맞아 죽거나 여기서 당신 총에 맞아 죽거나 죽는 건 매한가지라며 나는 내 마음대로 할테니 당신도 당신 맘대로 하라고 소리치며 맞섰다.

 

그리곤 비오는 소리에 잠을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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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말한다

당신들은 말한다

노동자들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하지만 자기 회사 노동자들이 우리도 회사 주인 같이라자고 그러면

경영권은 대표이사의 권리며 노동자들은 개입할 수 없다고 한다

 

당신들은 말한다

당신들의 찬란한 80대를 추억하며 요새 젊은이들은 정치의식도 없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하지만 젊은이들이 소리높여 낸 목소리가 당신들을 향할 땐

싸가지 없다고 한다. 젊은 것들이 뭘 알지도 못하고 천방지축으로 날뛴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나 스스로를 세상의 주인으로 자각한 노동자들은

회사의 주인을 노동자라 생각하는 걸

그런데 어쩌나 자기 목소리를 갖게 된 젊은이들은

당신들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할 말은 해야겠는 걸

 

그러니 당신들!

걱정 붙들어 매고 우리 너무 미워하지 마시라

우린 당신들이 그렇게 칭송해 마지않던

세상의 주인인 노동자니까

의식을 갖고 할말을 하는 젊은이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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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협 들어갔다 나오면 일하기가 싫다

단협 들어갔다 나오면 일하기가 싫다. 이명박이랑 대화를 나누면 이런 기분이 들까? 이건희랑 이야기를 하면 이런 기분이 들까?

 

병역거부자들을 입에 거품물면서 욕해대는 치들과 인터넷에서 아무런 소득도 없는 토론같지도 않은 토론을 한 것보다 더 피곤하고, 더 절망을 느낀다.

 

아주 솔직한 심정으로, 여기서 계속 일해야하는지, 회의가 든다. 아마도 노동조합을 만들지 않았다면, 그래서 책임이나 맡은 바가 없었다면 당장에 그만 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 나도 모르겠다. 맘대로 해먹어라. 이렇게 정신줄 놔 버리고 싶은 생각도 든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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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 날맹, 오리 굿나잇~

오리랑 채팅을 하고 조은이랑 날맹에게 인터넷 서신을 썼다.

다 따로 따로 이야기 했지만, 같이 이야기한 기분이 든다.

문득 작년 여름, 오리가 영국 가기 전, 조은과 날맹이 감옥 가기 전

함께 했던 자전거 여행이 기억난다.

애들이랑 같이 듣고 싶은 노래 시와의 '굿나잇'

영상을 보니 시와의 옷차림이 익숙한 게 아마도 날맹이랑 저 공연을 보러 갔던 거 같은데...

암튼 조은 날맹 잘 자~ 오리는 아직 영국은 한낮일테니 지금 말고 이따가 밤에 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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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사람을 이길 순 없다!

예전에 대추리까지 걸어가는 평화행진 '평화야 걷자' 때, 평택경찰서 앞에서 집회를 하면서 내가 사회를 봤다. 상식 이하의 경찰에게 짜증이 많이 나서 사회 보는 내내 경찰을 비꼬고 약올렸다. 그 때 이런 말을 했다. "경찰은 우리를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왜냐면 우리는 이렇게 늦은 밤까지 여기 있는 게 즐겁기 때문이다. 우리는 노래부르면서 춤추면서 즐기고 있는데, 경찰들은 한밤중에 나와서 일해야하니 저렇게 짜증이 가득하고 성질이 나있다. 화내면서 일하는 사람은 즐기면서 하는 사람을 절대 이길 수 없다. 우리는 즐겁기 때문에 밤새도록 이곳(평택경찰서 앞 도로)에 있어도 된다." 뭐 이런 내용인데,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즐겁게 싸우고 경찰들은 짜증내며 일하기 때문에 우리가 무조건 이긴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이겼냐고? 잡혀갔다. 약이 오를만큼 오른 경찰들에게 얻어맞으면서 잡혀갔다. 그래도 우리가 졌다는 생각은 안든다. 잠깐 유치장에 머물다 나왔을 뿐이니까.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충분히 화도 냈고, 짜증도 냈으니까. 이제 즐겨야겠다. 오늘 하루는 회사에서 웃지를 않았는데, 웃음이 애당초 나오질 않았는데, 내일부턴 환하게 웃으면서 농담도 할 수 있을 거 같다. 웃는 얼굴로 할 말 다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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