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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위원회는 그렇게 끝이 났다. 회사는 해당 직원을 해고하려 했지만, 결국 해고는 못 하고 대기발령을 내린 뒤 부서를 이동(업무는 몇가지를 빼앗아가고 대부분 그대로 유지)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렇게 9월이 시작되고 있었다.
어느날 점심을 먹고 난 뒤 사무실 책상에 앉아 원고를 보는데 이상하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불안한 기운을 예민하게 알아차렸던 걸까? 그날따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2009년 초에 회사를 그만둔 사람들이 쓴 사직서를 인트라넷에서 찾아보고 있었다. 윤구병 대표에 대한 분노로 가득찬 사직서들을.
“형, 모레 저녁에 시간 돼?”
A가 메신저로 말을 걸었다.
“모레 저녁엔 약속이 있어서 안 돼.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이야 늘 있지.”
A의 대답이 서럽게 들린다. 왜 우리 회사는 바람 잘 날이 없을까? 정말 그랬다. 내가 들어온 뒤 단 한 번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조금 뒤 A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형 지금은 시간 돼?”
“어, 괜찮아. 휴게실에서 보자.”
휴게실로 가는데 안 좋은 생각이 든다. ‘서두르는 성격이 아닌데, 무슨 일이지?’ 내려가 보니 A가 먼저 와 있다. 자리에 앉자마자 본론부터 이야기 한다.
“상의할 게 있어서……. 사실 상의도 아니지, 이미 마음 정했는데……. 나 회사 그만 둬.”
올 것이 왔다. 이런 말이 나올까봐, 떠오른 생각들을 애써 밀쳐냈는데,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딱 들어맞는다더니, 제기랄.
“맡은 일은 마무리 하고 나가려고 했는데……, 노조도 그렇구……. 마음 정하고 나니까 형 생각이 먼저 나더라. 형한테 미안해.”
“미안하긴…….”
A는 평소에도 굉장히 신중하고 침착한 친구다. 잠깐 울컥하는 일이 있다고 사표를 쓸 친구가 절대 아니다. 게다가 A는 사람들이 회사 욕할 때도 그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우리 회사가 가진 장점들을 먼저 보려는 친구였다.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영혼이 파괴되는 기분인 거야?”
“어……. 다른 사람들한테 미안한 마음도 들고, 근데, 내가 먼저 살아야겠더라구.”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잡을 수가 없었다. 영혼이 파괴되는 기분은 바로 내가 요새 느끼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질문은 A에게만 던진 게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도 던진 거였다. 징계위원회를 거치면서, 그 뒤 대기 발령과 컴퓨터를 빼앗는 치졸한 회사를 겪으면서, 반성문을 강요하는 폭력을 겪으면서 우리 모두 만신창이가 되었던 거다. 노조도 만들었는데 우리가 열심히 하면 회사도 바뀌지 않겠냐고 말 할 수 없었다. 나도 확신이 안 서는데 누굴 설득할 수 있겠나.
노조 만들고 난 뒤에도 사람들은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노동조합 창립하고 나서 1년 2개월 동안 9명이 나갔다. 직원 수가 고작 서른 명 살짝 넘는 회사에서 말이다. 그 가운데는 자기 꿈을 찾아 새로운 곳으로 간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회사에 지치고 치여서 떨어져 나갔다.
가장 슬픈 건, 노조 활동을 가장 열심히 하는 사람들부터 나간다는 거였다. 함께 교섭위원 했던 사람들이 나갔고, 대의원 했던 사람들이 나갔다. 단체교섭을 하면서, 회사와 갈등을 겪으면서, 일반 조합원들보다 더 심하게 감정싸움을 하다 보니, 안보고 살면 좋을 추악한 모습들은 너무 많이 보다 보니 견딜 수 없었던 거다. 2010년 봄에 교섭위원을 하던 대의원 한 명이 회사를 그만두었고, 내가 가장 믿고 의지하던 A는 9월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A가 그만두고 한 달 뒤 영업부 대의원을 하던 팀장도 회사를 그만두었다. 회사가 민주적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사람부터 가장 먼저 상처받고 그만두었다. 어느 회사나 그렇지만 노조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회사일도 제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자꾸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노조뿐만 아니라 회사에게도 커다란 손실이다. 회사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알면서도 상관없다는 건지, 그냥 두 손 놓고 있었다.
A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자리에 올라와 곰곰이 생각해봤다. 우리는 회사가 좀 더 민주적으로 운영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노조를 만들었다. 저마다 노조에 동참하는 뜻은 조금씩 달랐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더불어 회사를 부당하게 그만두는 일이 없도록 하고 싶었다. 실제로 우리는 대표이사 심기를 거스르는 말을 했다고 해고당할 뻔 했던 직원을 노동조합의 힘으로 보호했다. 하지만 해고당하지 않은 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떠나는 사람들이 자꾸만 많아졌다. 우리는 겨우 해고를 막았는데, 사람들이 이 회사에서 몸과 마음이 떠나는 것까지 붙잡을 능력이 없었다.
나는 이 무렵 지독한 무력감에 빠져들었다. 대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왜 노동조합을 만들었던 것일까? 조합원들이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게 하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우리는 많은 조합원을 잃고 있었고, 그만큼 노동조합의 힘도 약해지고 있었다. ‘우리가 보호한 건 누구였지? 우린 대체 무엇으로부터 조합원을 보호하려고 했던 거지?’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나는 내 스스로 실패한 노동조합 간부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독한 무력감과 열패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참 슬프게도 타인의 아픔이었다. 어느 술자리에선가 쌍차 해고노동자 이창근 씨를 만나게 되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동료를 잃었다 해도, 그이들이 회사를 나갔을 뿐 얼마든지 얼굴 보고 술 한 잔 할 수도 있지 않나, 그런데 쌍차 노동자들은 동료를 잃는 다는 건 다시는 영영 보지 못하게 되는 게 아닌가. 기운빠져 있을 처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곰곰히 생각해본다. 당시에, 징계위원회에 회부 되었던 직원에 대한 징계가 불발이 되고 회사가 그 직원에게 인격적인 모욕을 안기며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면서까지 괴롭힐 때, 우리가 밖으로 드러내면서 싸웠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A는 그만두지 않았을까? 영업부 팀장도 계속 회사에 다녔을까? 아니면 우리가 두려워했던 일, 결국 회사와 노조가 전면전을 하게 되고 윤구병 대표이사는 평소에 자신이 공언한 대로 보리의 책을 빼 가고 그래서 회사는 오히려 더 기울게 되었을까? 모르겠다. 당시에 우리가 싸웠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당시 우리 판단은 이 일로 싸우는 것은 노조의 명운을 걸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우리가 아는 윤구병 대표이사의 성격상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어차피 해고는 막았으니 더 이상 싸움을 키우지 말고, 일단 노조 내부를 단단하게 하자고 생각했었다. 이게 잘못된 판단이었을까?
안다. 노동조합이 만능이 아니라는 거 잘 안다. 노동조합은 만드는 것보다 만들고 난 뒤 잘 운영하는 게 더 어렵다는 것도 비싼 수업료를 치르며 배워서 알게 됐다. 어쩌면,조합원들이 회사에서 자신의 미래를 찾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 두는 건, 노동조합 차원에서 어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좀 더 오랫동안 이 회사에서 함께 즐겁게 일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노동조합 활동을 함께 할 사람들이 떠나는 마당에 노동조합에서 어찌 할 수 없는 문제라고 결론 내버리는 건 참 쉽고 무기력하다.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는데,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서 사람들이 떠나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정답은 없겠지만, 만약 지금 다시 같은 상황이 닥친다면 나는 싸우는 쪽을 택할 거다. 싸워서 노동조합이 산산조각이 나더라도, 회사가 망하더라도, 싸우겠다. 물론 분회장이라면 훨씬 더 신중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싸웠을 거 같다. 사람들이 다 나가고 난 뒤에는 대체 노동조합을 해서 뭐하냐는 생각때문이다. 물론 싸우지 않았을 때의 결과를 알고, 그게 너무나 답답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거다. 열패감은 이제와서 더 이상 없지만, 여전히 나는 내가 실패한 노동조합 간부라고 생각한다. 이건 변할 수 없는 사실이다. 노동 조합을 만들고 나서도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그만두었으니까. 그리고 나조차도 그만두었으니까.
누군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이 있을까? 그냥 내 이야기를 발판 삼아서, 당신은 실패한 노동조합 간부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 밖에 할 게 없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나는 당신들을 응원할테니.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백수로 지내며 시간이 많다보니 이런 생각을 한다. 이번 글은 내가 생각하기에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행동에 대한 글이다.
원래는 노조 만든 뒤 단협을 맺은 과정에 대해 쓰려고 했는데, 그린비 회사가 편집 상의 실수와 직장 질서 문란을 이유로 조합원을 징계한 것이 자꾸 떠올라 글 순서를 바꿨다. 표적 징계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편집 상의 실수는 사실 노동자의 잘못이 맞다. 그렇기 때문에 그린비 노동조합에서도 그 부분은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문제는 직장 질서 문란이다. 나는 회사가 요구하는 것이 실수에 대한 책임 추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회사가 요구하는 것은 노동자가 무릎 꿇고 잘못했습니다, 이런 복종을 요구하는 것이다. 보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10년 7월쯤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대표이사가 전 직원에게 보리 책 리스트를 나눠주며 읽은 책에 표시를 해서 제출하라는 업무지시를 내렸다. 이 조사를 왜 하는지, 이 자료가 어떻게 쓰일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었다. 당연히 반발이 일어났다. 직원들이 반발한 까닭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책을 읽었다는 것을 기계적으로 조사하는 것에 대한 반발심이었다. 싸구려 프로그램에서 독서왕 가리듯 하는 조사에 책 만드는 사람의 자부심으로 반발심이 생긴 거다. 두 번째는 이 자료가 어떻게 쓰일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내가 보리에 들어가기 직전, 윤구병 대표이사가 취임하고 나서 납득할 수 없는 인사발령을 내리고 그로 인해 보리를 오랫동안 다닌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나가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교정교열 숙제 비슷한 것을 해 오라고 하면서 갈등이 심해졌다고 들었는데, 그런 일이 또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노동조합에서 이런 위기의식을 공유했지만, 당시 단협이 끝난 바로 뒤라, 공식 대응은 하지 않고 개개인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인트라넷에 이 조사를 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물었다. 윤구병 대표이사는 보리 직원 모두가 보리 책을 홍보해야 하는데, 누가 무슨 책을 읽었는지 알아야 홍보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고 대답했지만, 전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결국 각자 알아서 대응하기로 했다. 어떤 사람은 최대한 성의껏 작성해서 내고, 어떤 사람은 대충 작성하거나 거짓으로 작성해서 내기도 했다. 이런 조사의 문제와 대표이사의 업무지시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편지를 써서 같이 낸 사람도 있다. 그 가운데 백지로 낸 사람이 있었다.
대표이사는 백지로 낸 직원에게, 정말로 한 권도 안 읽었다는 건지, 아니면 업무지시를 거부한 것인지 경위서를 쓰라고 했다. 그 직원은 자기가 왜 백지를 써서 냈는지 편지를 써서 내고 경위서도 냈다. 회사의 대응은 징계위원회 출석 요구서였다. 단협 28조(징계) 4,5,6,항을 어긴 것이 징계사유라고 했다. 참고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하지만 출석요구서 어디를 봐도 그 직원의 어떤 행동이 위의 조항을 위반했는지 적혀있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조병범 상무이사에게 찾아가, 어떤 행동이 징계 대상인지 밝히라고 했다. 조병범 상무는 그건 징계위원회에 들어오면 알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해당 직원한테 소명서를 제출하라고 하면서, 대체 무슨 행동이 잘못인지 이야기 하지 않으면 어떻게 소명을 하느냐고 따졌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다. 징계위원회 구성상 노동조합이 반대하면 중징계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단 징계위원회에 참석하기로 했다.
징계위원회에는 윤구병 대표이사와 사외 이사 둘, 그리고 사내 이사 한 명이 사측으로 참석했다. 그 직원의 무슨 행동이 문제냐고 물으니 대표이사에게 언어폭력을 행했다는 것이다. 어떤 표현이 언어폭력이냐고 물었더니, ‘기계적 충성도 조사’ ‘쌩뚱 맞은 업무지시’ ‘강압적이다’ 이런 표현에 윤구병 대표이사가 심한 모욕을 느꼈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다소 감정이 섞인 표현에 기분이 나쁠 수는 있지만, 그게 언어폭력이라니. 평소에 입바른 소리 잘 하고, 노측 교섭위원으로 맹활약 한 그 직원에 대한 보복이라고 생각을 했다. 내 생각에 힘을 실어준 건 사측 징계위원들의 입장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해당 직원을 정직 또는 해고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단협 위반이 아니라 ‘대표이사가 그 직원과 같이 일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윤구병 대표이사가 그 직원이 싫으니 쫓아내려는 것이었다. 애시 당초 노조에서 반대하면 중징계는 불가능하다. 회사도 그것을 알고 있다. 아마 징계위원회에 회부 하는 거 자체를 징계로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중징계는 노동조합의 반대로 부결 되었다.
하지만 끝난 게 아니었다. 정말 폭력적인 일들은 그 다음부터 일어났다. 징계위원회가 끝난 다음 날, 회사는 해당 직원을 갑자기 대기발령을 내려 일을 빼앗아 갔다. 징계성 대기발령이라고 항의했지만 회사는 9월에 개편이 예정되어 있어서 그런 거라고 했다.(그 말을 정당화하기 위해, 9월에 인사 개편을 단행했다.) 그러더니 조병범 상무이사가 그 직원의 컴퓨터를 빼앗아갔다. 나는 그것을 글쓰기교육연구회 여름 연수를 가는 차 안에서 전해 들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때 그 기분이 지금도 생생하다. 노트북을 가져와서 쓰니 왜 회사에서 개인물품을 쓰냐고 노트북도 쓰지 못하게 했다. 인격적인 모멸감을 느끼면서도 일단 참자고 했다. 해고는 막았으니까. 컴퓨터를 쓰지 못하니 책을 읽고 있는데, 이번에는 회사에서 왜 다른 회사 책을 읽느냐고 책을 못 읽게 했다. 그러면서 보리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 내라고 했다.
한편으로는 노조의 동의 없이도 가능한 징계, 경위서 제출을 요구했다. 컴퓨터가 없으니 손으로 써서 냈다. 그런데 조병범 상무이사가 다시 쓰라고 했다. 반성의 기미가 안 보인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그들이 바라는 건 경위서가 아니라 반성문이었다. 이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일단 표현을 바꾸어서 다시 냈다. 그랬더니 또 다시 쓰란다. 이런 상황이 된 것에 유감을 표한다고 했더니, 유감은 경위서에 쓰일 수 있는 표현이 아니라며 다시 쓰라 했다. 그래서 그 표현을 바꾸어서 다시 냈더니 또 다시 쓰라고 했다. 이번에는 아예 대놓고 첨삭을 했다. “이러이러 해서 잘못했습니다.”라는 표현을 적으라는 것이다.
윤구병 대표이사가 바라는 것은 경위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반성을 바라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복종을 바라고 있었다. 우리가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에게 진심은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가 마음으로는 반성을 하든 말든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이건 양심의 문제였다.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을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개인의 양심을 회사가 폭력으로 짓밟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문득 병역거부가 떠올랐다. 병역거부를 하면서는 내 양심에 어긋나는 대답을 강요받은 적이 없었는데, 회사 다니면서 그런 경험을 하게 되다니. 쓴 웃음이 났다. 나는 절대로 회사에 복종의 뜻을 밝힐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해당 직원도 회사에 복종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결국 경위서를 다시 쓰기는 했지만 회사가 원하는 내용을 넣어주지는 않았다. 그리고 노조는 언론노조의 도움을 받아서 반성을 강요하는 경위서는 양심의 자유 침해라는 대법원 판례를 모아서 회사에 전달했다. 회사는 노조가 잘못된 예를 든다고 하며 불쾌감을 드러냈지만, 더 이상 경위서를 요구하지 않았다.
이 일을 겪으면서 나는 보리에서 노사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어쨌든 아무리 지지고 볶고 싸워도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대화는 결국 동등한 대상끼리 하는 게 아닌가. 윤구병 대표이사가 노동자들에게 바라는 것이 복종이라면 그는 우리를 동등한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도 어쨌든 노동조합은 사측과 결국에는 대화와 협상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조직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윤구병이 대화 자리에 나오도록 힘으로 강제해야한다고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꼭 윤구병 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복종은, 경영진들이 가장 바라는 게 아닐까? 출판계 노사갈등을 보면, 노동조합이 어떤 문제를 제기하면 회사는 그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감정싸움으로 번지다가, 결국에는 회사가 노동조합을 길들이려고 하거나 복종을 요구하게 된다. 우리교육, 나라말이 그랬고, 보리가 그러고 있고, 그린비도 그런 쪽으로 가고 있는 거 같다. 회사가 노동자를 징계하는 까닭은 노동자가 잘못을 해서 그럴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노동자가 스스로를 인간으로 여기고,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며 스스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윤구병 대표이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진심이 담긴 충성도 아니고, 이윤을 창출하는 근면하고 성실한 노동도 아니고, 그저 복종이었다. 사실 복종만 하면 회사는 평화로워질 게 분명했다. 우리가 복종만 하면 적당한 떡고물이 주워질 거고, 복지나 임금도 오히려 더 좋아질 수도 있었다. 분회장을 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해 봤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분회장으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서 내 양심을 거스르는 일을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복종을 한다. 강한 권력이 두려워서 그러기도 하고, 맞서 싸우는 것이 귀찮아서기도 하고, 그냥 지금 누리는 것들이라도 지키고자 그러기도 한다. 하지만, 절대 복종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나에게 납득시키려면, 다른 거는 다 양보해도, 임금이니, 복지니 이런 건 다 회사에 양보해도, 복종만은 할 수 없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 그것은 복종을 거부하는 것, 다시 말해 불복종이 아닐까? 기회가 되면 이 이야기를 좀 더 해보고 싶다.
* 예전에 이 일과 관련해서 인권오름에 글을 쓴 적이 있다. 당시에는 회사를 다니고 있어서 실명을 쓰지 않았다.
수습사원이 해고당한 일을 겪고 나서, 자연스레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우리는 조심스레 서로 의견을 확인하고, 사람들에게 노동조합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해(2009년) 겨울 쯤 노동조합을 만들자는 뜻에 찬성하는 사람들 7~8명이 우리 집에 모였다. 그때까지는 따로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잠깐씩 나누었는데, 처음으로 다 같이 모이게 된 것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우리가 그날 우리 집에서 비공개로 모인 것에 대해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날 그런 식으로 비공개로 몇 명만 모인 것은 잘못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과론이지만, 어차피 얼마 안 가서 노동조합 만드는 사실을 아예 오픈해서 진행해도 큰 문제가 없었는데, 처음부터 지나치게 보안을 신경 쓰면서 사람들이 소외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소외받은 사람들의 마음은 생각보다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출판사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사람이 있다면, 이 부분을 이야기 해 주고 싶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아예 비밀로 할 것이 아니라면, 그냥 처음부터 확 공개해서 동네방네 노동조합 만드는 과정을 다 떠들고 다니라고. 그 편이 노동조합이 힘을 갖기도 쉽고, 회사가 방해하기도 어렵고(물론 교묘하게 방해하겠지만) 조합원들이 모두가 더 적극으로 노동조합에 참여하게 될 거라 생각한다.
물론 당시에 조심한 까닭이 있었다. 윤구병 대표이사가 진보인사로서 체면 때문에 대놓고 노동조합 만드는 일을 방해하지는 않겠지만, 노동조합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윤구병 대표이사는 내가 회사에 들어가기 직전에 보리 노동조합 출범을 축하하는 글을 썼다. 당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준비하고 있던 것을, 이미 만들어졌다고 잘못 알고 쓴 글인데, 그 글이 노동조합에 대한 윤구병의 시각을 보여주었다. 윤구병은 노동조합을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노동자들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자기 잇속만 차리는 이기적인 행동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 글에서 그는 보리출판사의 자본은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이 아니며 이윤이 나면 주주들이 가지는 게 아니라 사회로 돌리는 그야말로 '공익'이라면서, 노동자들을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보리 주식의 98%를 가지고 있다는 '공익위원회'(스스로를 그렇게 부른다)가, 보리가 살림을 잘못해서 공익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지 못하면 돈 되는 책의 출판권을 다른 곳으로 옮겨 갈 수도 있다고 말한다. 나는 윤구병의 글이 노동조합을 축하해 주는 게 아니라, 책을 바깥으로 빼 갈 수도 있으니 너네 노조 하려거든 알고 해라, 이렇게 협박하는 글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실제로 보리출판사 매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던 ‘달팽이 과학동화’와 ‘개똥이 그림책’ 전집을 다른 출판사에 넘기는 것을 보았으니 그 협박이 단순한 협박으로 들리지는 않았다.
노동조합에 대해 공식적으로 이야기가 된 건, 우리 집에서 모이고 얼마 지나지 않은 회사 엠티 때였다. 2009년 윤구병 대표이사가 들어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그만 두었고, 그 자리에 들어온 신입사원이 수가 제법 되었다. 신입사원들끼리 엠티에 가서 보리정신에 대해 토론을 하고 오라고 엠티를 보내준 것이다. 우리는 실체가 없는 보리정신에 대해서 토론하는 대신 노동조합에 대해서 토론을 했다. 대부분이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공감했고, 우리는 노동조합을 본격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회사 인트라넷에 노동조합을 만들자며 전체 모임을 공지하고 첫 공개 공식 모임을 가졌다. 사람들은 모두들 노동조합의 필요성에 공감했고, 그 자리에서 부서별로 노동조합 준비위원을 뽑았다. 준비위원회는 몇 차례 회의와 토론을 거치며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해 나갔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노동조합을 어떻게 만드는지, 필요한 건 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기업별노조와 산별노조, 유니온샵과 오픈샵의 차이점, 기업별 노조와 산별 노조의 차이점 같은 기본적인 것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우리가 보리에 들어오기 직전에 보리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려다가 회사를 나간 선배도 만나고, 다른 출판사 노동조합이나, 노동조합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때마침 작은책에서도 노동조합을 준비하고 있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작은책은 보리에서 독립해 나가 보리와 관계가 밀접하기도 하고, 대주주가 사실상 같았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만들고 나서도 여러 가지를 공조하기로 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잠시 하자면 나는 이때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대학 다니면서, 노동법 한 번 읽어보지도 않고 후배들한테 노동자 계급이니 혁명이니 떠들어 댔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주장하면 경제투쟁이라 얕잡아봤는데, 노동조합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도 몰랐으니 말이다.
준비위원회 안에서 어느 정도 공부가 끝난 뒤로 예비조합원들 교육을 계획했다. 노무사를 불러 예비조합원들과 노동법 교육을 받기도 하고, 창비 출판사 노조 분회장을 불러 출판사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회사의 협조를 받았는데, 업무시간에 회사 공간에서 교육을 진행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줬다.
노동조합 결성이 수월하게 진행되지만은 않았다. 우선 회사 운영위원회에 들어가는 부장급 이상 간부들을 노조원으로 받아들일지에 대해 의견을 정하지 못했다. 간부들을 경영진으로 봐야할지 노동자로 봐야할지 판단하기 어려웠고, 이 사람들이 노조에 들어와서 노동조합을 위해 활동할지 윤구병 대표를 위해 활동할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간부들이 노동조합에 들어오면 평직원들이 할 말을 제대로 못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 결국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을 막지는 않지만, 적극 권유하지는 않기로 했다.
윤구병 대표이사가 먼저 유니온 노조를 제안하면서 간부들도 노동조합 준비모임에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의 우려는 어느 정도 현실이 되었다. 간부들은 대놓고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노동조합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노동조합을 꼭 지금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기도 하고, 노동조합은 쟁점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쟁점이 뭐냐고 묻기도 했다. 이미 노동조합을 만들기로 뜻을 모으고 추진을 하는 중에, 논의를 되돌리는 듯한 질문을 하는 의도가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어느 부서장은 자기 부서 신입 사원들만 불러 불러서 노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용석이 하자고 해서 하는 것은 아닌지 물었다고 한다. 간부들이 방해를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그리 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무의식적으로 그리 행동했을 거고, 자신의 행동이 노동조합을 만드는 일을 방해하는 거라는 걸 몰랐을 거라 생각한다. 보리의 경우는 처음부터 노동조합이 기정사실처럼 되면서 사람들이 많이 흔들리지 않았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노동조합을 만드는 과정이 훨씬 지난했을지 모른다.
노동조합 준비 과정을 돌이켜보면 아쉬운 점이 두 가지 떠오른다.
먼저 소외감을 느낀 사람들이 생겼다는 거다. 물론 일부러 소외한 것은 아니었다. 사소한 오해가 쌓이기도 했고, 우리가 많이 못 챙기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그다지 친하지 않은 직원이어서 그랬던 게 부끄럽다. 친한 사람이었으면 내가 개인으로라도 챙겼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그 직원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죄송하다. 노동조합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부분을 가장 신경써야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조합의 힘은 단결에서 나오는 건데, 조합원이 노조가 자기를 소외시킨다고 느낀다면 큰 문제가 아닌가.
그리고 회사 간부를 조합원에 포함시키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결과론이다. 나중에 자세히 쓰겠지만, 간부들은 조합 안에서 우리의 뜻보다는 윤구병 대표이사의 뜻대로 움직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윤구병 대표이사가 노조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회사 간부를 노조에서 무조건 빼야한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회사마다 간부들의 업무가 다르고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딱 정해진 정답은 없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굉장히 지극히 현실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상적으로 생각했다. 잘 되는 경우를 가정했다. 결과적으로 간부들을 조합원에 포함 시킨 것이 노조에게도 그 간부들에게도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배제하라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함께 가는 것이 서로에게 더 좋을지, 아니면 적절한 거리를 두는 게 서로가 더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꼭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나는 2009년 7월 하순에 보리출판사에 입사했다. 근로계약서에는 입사일이 8월 1일로 되어 있는데, 그건 행정편의상 그렇게 작성한 거고 실제로는 7월부터 일을 시작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출판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몰랐고, 편집자가 무슨 일 하는 사람인지는 더더욱 몰랐다. 전과자를 받아주는 업계가 출판계라는 이야기를 듣고 원서를 냈는데 아주 운좋게 한 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노동조합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나 노동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저 월급이나 꼬박꼬박 받으며 다니자는 생각이었다. 보리에 노동조합이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고, 출판사들에 노동조합이 이렇게 드물다는 것도 몰랐다. 노동운동에 대한 무관심이나 편견도 그런 생각에 한몫을 했다. 노동조합 운동은 재미없어 보였고, 무겁게 느껴졌으며, 너무 위계적이고 조직적이라 답답하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병역거부 운동 초창기에 대체복무제도 서명을 받으러 노동자 집회 다니면 "남자라면 군대에 가야지!" 같은 말을 하며 서명을 안 해주는 노동자 아저씨들이 많았는데 그 경험 탓도 있으리라. 아무튼 그때만 해도 내가 노동조합 활동을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된 사건은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당시 보리 직원들은 절반이 넘게 그 해 봄부터 들어온 신입사원들이었다. 윤구병 대표이사가 취임한 뒤로 많은 직원들이 회사를 나갔고 그 자리에 사람을 계속 뽑았던 것이다. 다들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서로 서먹서먹하기도 했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바닷가로 2박3일 엠티를 간다고 했다. 엠티 준비팀이 꾸려지고 그 사람들이 정말 열심히 엠티 준비를 했다. 나는 그때 입사한 지 한 달 밖에 안 된 신입사원이었기 때문에 적응하는데 온 정신을 집중하고 회사 다닐 때였다.
엠티 가기 하루 전날, 회사 안이 웅성웅성거렸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서 선배한테 물어보니, 나보다 두 달 먼저 들어온, 8월 말에 수습평가 예정이던 직원이 짤렸다는 것이다. 낯선 회사에서 친구 하나 없는데, 나한테 탁구 치자고 먼저 말해줘서 참 고마웠던 동갑내기 직원이었다. 그날 퇴근한 뒤 서울에 있는 어느 카페에서 몇몇 선배들과 모였지만,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이리저리 전화를 해 봐도 우리가 뭘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뒤숭숭한 기분으로 엠티를 갔다.
엠티에 가서 첫날인지 둘째날인지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윤구병 대표이사와 회사 직원 전체가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다. 당연히 바로 전날 짤린 직원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윤구병 대표이사는, 그 직원이 수습사원이기 때문에 계약해지이지 해고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 직원은 보리출판사가 새롭게 기획중인 사업을 위해 뽑은 직원이었다. 중간에 그 사업이 중단되고, 그 사업을 맡고 있던 사람이 나가게 되었는데 그 직원은 이 사람이 데려왔던 직원이라면서 보리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처럼 말했다. 내 귀에는 그게 그 직원이 남아있음 회사 기밀을 유출할 수 있으니 잘라야 한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사실 보리는 정보가 잘 공유되지 않는다. 많은 결정이 이사회에서 내려지지만 단 한 번도 이사회 회의 결과가 제대로 공지된 적이 없다.(심지어 나중에 단협으로 이사회가 열리면 결과를 공지하기로 했는데도 말이다) 때문에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노동자들이 알지 못한다. 이사회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회사가 어디에 돈을 쓰는지, 어떤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지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스파이 노릇을 하고 싶어도 아무 정보가 없다. 게다가 그런식으로 직원을 의심한다면 우리 모두 의심당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쫓겨난 그 수습사원은, 자기가 맡은 일이 없어지면 다른 부서로 옮겨서 일해도 좋다고 이 회사를 계속 다니고 싶다고 의견을 피력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바로 반박했다. 계약해지나 해고나 노동자 처지에서는 똑같은 거다. 인트라넷에 기밀이 될만한 정보는 없고 앞으로도 그런 것들은 비밀글로 올리면 되지 않냐. 대표이사 말대로라면 그 수습사원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스파이 노릇할 수 있는 거 아니냐. 그 수습사원이 엠티 준비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엠티 하루 전날 자르는 것은 너무 가혹한 거 아니냐.(여기에 대해서는 엠티를 다녀와서 사람들과 정이 들면 계약해지 당했을 때 상처가 더 클 수 있다며, 정말이지 눈물겨운 배려심 돋는 대답을 했다) 많은 직원들이 그 자리에서 윤구병 대표이사에게 따졌지만, 윤구병 대표이사는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다 제 책임입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을 겁니다." 물론 그 뒤로도 내가 보리를 나오기 전까지 수습사원이 정직원이 되지 못한 사례는 두 차례나 더 있었다. 그리고 윤구병 대표이사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회사가 사업을 하다가 중간에 여러 이유로 그 사업이 중단될 수는 있다. 실패할 수도 있다. 그 책임은 당연히 그 사업을 주도했던 경영진이 가장 크게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 보리에서는 수습사원이 잘리고 그 수습사원을 데리고 있던 부장이 감봉 되는 것 말고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 사업을 시작했던 대표이사는 입으로만 책임을 졌고, 맡아서 진행하던 상무이사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았다.
이것이 내 생애 최초의 회사에서, 들어간 지 한 달도 안 되어서 겪은 최초의 해고였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부당해고가 명백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당시 나는 실제로 그런 걱정도 들었다. 저리 쉽게 수습사원을 자르는데, 누구든 저렇게 잘려 나갈 수 있지 않은가. 물론 내가 잘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별로 두려운 건 없었다. 윤구병이 나를 자른다고 해도 윤구병과 맞서 싸우는 게 두렵지 않았다.
나한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진보 인사로 이름난 윤구병이지만, 나 또한 내 병역거부자 친구들과 인권활동가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이 나를 도와줄 거라는 생각에 무섭지 않았던 거다. 회사 밖에 든든한 내 편이 있다는 생각은 이후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비폭력 트레이닝 덕분에 나는 권력자들에게 겁을 잘 먹지 않게 되었다. 엄청나게 대단해 보이는 권력(자)들이 사실은 불안정한 토대 위에 서 있는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약자가 싸워서 권력을 이기기는 쉽지 않겠지만,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다면 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나는, 대표이사가 단협하면서 내 앞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협박을 해도 쫄지 않았다.
이 일 하나 때문에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은 아니지만, 이 일을 겪으면서 나는 보리에 노동조합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처음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들어오기 직전 회사를 나갈 수밖에 없었던 선배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스스로 지키는 수밖에 없었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도 나는 내가 어쩌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활동을 하게 됐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병역거부자인 내가 노동조합 활동가가 된 데 어떤 연결 지점이 있지 않을까? 고민을 했지만 찾기가 쉽지 않았다. 최근에 희미하게나마 평화와 노동을 이어주는 고리를 떠올렸다. 열쇳말은 바로 '폭력'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평화운동이란 모든 폭력에 저항하는 운동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나는 경영진이 노동자에게 행사하는 여러 종류의 폭력을 직간접으로 겪었다. 물리적인 폭력은 없었지만, 물리력보다 약한 폭력을 쓴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적나라하고 때로는 교묘했다. 때로는 괴롭힘이었고, 때로는 협박이었고, 때로는 쫓아내는 거였다. 그 수습사원의 해고는 이곳의 권력도 폭력을 기반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평화주의라면, 모든 폭력에 저항하려면, 회사가 노동자들에게 휘두르는 폭력에 저항하는 것이 맞다. 물론 그 방법이 꼭 노동조합 활동만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그 당시 나는 노동조합을 떠올렸던 것이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내가 그동안 노동조합에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많이 달라졌다. 어떤 것은 내 생각이 맞기도 했지만, 많은 경우 내가 오해하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채 쉽게 생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시에 노동조합의 한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번에 글을 써 가면서 이런 생각들을 한번 정리해보고 싶다.
진보넷 블로그를 다시 쓰게 될 줄 몰랐다. 이 글을 어디에 올릴까 고민하다 결국 새로 블로그를 만들기보다 예전에 쓰던 블로그에 올리자 마음먹었다. 오랜만에 들어와보니, 예전에 남겨두었던 기록들이 보인다. 당연히 보리출판사를 다니며 느꼈던 생생한 감정들이 적혀있다. 여기다 내가 보리를 다니며 겪은 일들과 그에 대한 내 생각을 적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글은 이미 몇 달 전에 썼던 글이다. 여러 고려 사항으로 그동안 비공개로 해 둔 것이다. 앞으로 블로그에 올릴 글 몇 개는 몇 달 전에 썼던 글이고, 몇 개는 이번에 새로 쓸 글이라는 걸 밝혀둔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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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를 그만두면서 3년 동안 보리출판사에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활동하며 겪은 이야기를 글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게으름으로 시작도 못하고 있었다.
꼭 게으름 때문만은 아니었다. 두려웠고 걱정이 됐다. 다니던 회사와 회사 사장을 비판하는 글을 남기는 것이 내 취업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쓰는 글이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보리노동조합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글쓰기가 결국 내 화풀이 분풀이가 될까봐, 내가 조금이라도 힘이 있으면 열심히 싸우는 강정이나 밀양 주민분들에 힘 보태야 하는데 윤구병 뒷담화나 하고 있어도 되나, 이런 생각이 나를 붙잡았다.
윤구병 대표이사가 언론과 한 인터뷰를 간간히 보면서 그리고 회사에 남아있는 동료들에게 회사 소식을 들으면서 여전히 분노했지만, 그래도 위선자들 얼굴을 맞대지 않기 때문에 참을만 했다. 그러던 와중에 서점에서 손석춘이 윤구병을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엮은 책 <노동시간을 줄이고 농촌을 살려라>를 보게 됐다. 윤구병이 하는 이야기는 하도 많이 들어서 궁금하지도 않았고, 6시간제를 어떻게 포장해 놨나 어디 한 번 보자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그런데 거기 예상 외의 내용이 있었다. 바로 노동조합에 대한 이야기였다.
노동조합도 있다. 2010년 7월 27일 1년여 준비한 끝에 창립했다. 당시 윤구병 대표이사도 흔쾌히 동의했다. 윤 대표는 이왕 하려면 유니언, 즉 조합이 옳다고 했고 실제로 유니언 노조로 출발해서 활동해왔다.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노조에서 교육하고 조합원이 된다. 해마다 단체협상을 하고 있고 상급단체는 민주노총 전국언론노동조합 보리출판 분회다. 앞서 언급한 운영위원회에 들어가는 부서장 4인 가운데 3인이 노동조합 조합원이다. 경영지원부 부장만 성격상 조합원이 맞지 않다고 해서 노조와 협의해 조합에서 빠졌다.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제도는 더 있다. 조합원은 정년이 없다. 대표이사라도 그 직을 내려놓으면 다시 노동조합에 가입해 일반 노동자로 일할 수 있다. 현재 대표이사는 주주총회에서 선출하는데 임기가 3년이다. 윤구병 대표는 연임했다. 2009년 선출될 때는 전 직원과 주주들이 다 모여 선출했고 연임할 때는 주주들이 재추대했다.
처음에는 전 직원들이 주식을 나눠갖고 있었는데(상한선 2퍼센트) 그후 전 직원이 합의해서 직원들 주식을 양도했다. 현재 사실상 직원을 대표하는 윤구병 대표이사 지분이 2퍼센트이고 나머지는 공익단체들이 나눠갖고 있다.
이게 전문이다. 요약하려다 귀찮아서 그냥 다 갖다 붙였다. 말할 것도 없이 거짓과 왜곡과 교묘한 포장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 글을 읽으면 마치 윤구병은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더 나아가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는데 큰 역할을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노동조합을 노동자들의 대표로 인정하지 않는 말과 행동을 수차례나 했던 윤구병이 말이다. 나는 이 글을 보고 너무나 수치스러웠다. 우리는 윤구병이 회사를 자기 맘대로 좌지우지하고 우리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것에 맞서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활동했는데, 노동조합 활동마저도 자기 명예를 드높이는 도구로 활용할 줄이야. 내 스스로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맞서 싸운 것조차 윤구병의 명예를 위한 도구가 되어버린 거 같은 기분이었다. 투쟁하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마지막 존엄성마저 유린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스스로 말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말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우리 이야기를 대신 해 주지 않는다. 윤구병이 거짓말을 하는 걸 내가 막을 방법은 없지만, 윤구병의 말이 거짓임을 알릴 수는 있다. 신중한 사람들조차도 일단 의심은 하게 할 수 있을 거다. 그래 쓰자. 보리에서 겪은 일을, 다 쓰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더라도 아직도 걱정이 앞 선다. 내가 쓰는 글이 결국엔 윤구병을 공격하기 위한 글이 되지는 않을까, 내 마음 가득한 미움이 글쓰기를 치유가 아닌 감정 배설로 이끌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그래서 내가 이 글을 쓰는 까닭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나 스스로에게 다짐도 하려고 한다.
나는 윤구병을 공개 망신 시키거나 공개 비판 하기 위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그러기엔 내 시간이 너무 아깝다. 내 관심사는 윤구병보다는 내 자신이다.
병역거부자가 어찌하여 노동조합 열성활동가가 되었는지, 평화와 노동의 연결고리를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예전부터 있었다. 대학 때 학생운동을 하면서 노동운동을 옆에서 살짝 겪었으니 노동조합에 대해 불편한 시선은 없었다. 하지만 전쟁없는세상 활동 시절엔 노동운동은 너무 경직되어 있고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운동의 당위만을 가지고 노동조합을 만들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노동조합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그걸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이 글은 평화와 노동이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이 될 거다.
노동자가 직장에서 겪은 일을 있는 그대로 써야 세상이 바뀐다는 말을 나는 무척 좋아한다. 굳이 경영진을 나쁘게 악마처럼 묘사할 필요도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진실은 큰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내가 보리에서 겪은 일은 나의 일이기도 하지만, 보리 노동자들이 겪는 일이고, 이 시대 출판 노동자들이 겪는 일이다. 내가 대표성을 가지지는 않지만, 사장님들 말로 넘쳐나는 곳에 노동자의 말을 던지고 싶다. 노동자들의 말이 힘을 가지고 노동자들이 연대할 때 출판계가 바뀔 거라 믿는다. 사실 윤구병은 내가 겪은 최악의 사장이지, 출판계에는 그와 비슷한 그보다 더하거나 덜한 사장들이 굉장히 많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보고 들은 것만 해도 경악할 수준이다. 폭로? 그건 내 글의 목적이 아니다. 노동자의 입으로 노동자의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거다. 그러다보면 사장들의 거짓과 위선은 자연스럽게 폭로가 되겠지만, 그게 목적은 아니다.
나는 보리출판사 분회에서 1년 반 동안 분회장을 했고 그 다음 1년 동안 대의원을 했다. 당시 우리 조합원들은 노동조합 활동은커녕 회사 생활도 처음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연히 갈팡질팡했고 우왕좌왕했으며 좌충우돌했다. 아쉬운 순간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잘한 것보다는 못한 것들이 마음에 많이 남는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잘못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짚어가고자 한다. 내 실수와 오판과 잘못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다른 분들에게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내 자신을 되찾고 싶다. 치유가 필요하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굉장히 밝고 긍적적이고 성격도 둥그스럼하고 때로는 무딘 사람이었는데, 지금 내 모습은 짜증이 사방으로 돋혀있고, 아주 날카롭고, 누구든 건들면 폭발할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 같다. 이런 내가 낯설고 무섭고 싫다. 회사를 그만둔 지 반 년이 다 되었는데 아직도 전 회사 사장 욕을 하고 있는 내가 너무 안쓰럽다. 이제 보리라는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다. 이 글은 나를 다시 되찾는 일이 될 거다. 내겐 글쓰기가 치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혹시나 내가 글을 쓰는 도중에 내 글쓰기의 목적을 잊고 미움와 증오로 가득차 화풀이만 일삼는다면, 그래서 치유는커녕 화만 더 키워간다면 따끔하게 한 마디씩 해 주기를 부탁한다.
노동조합, 월급.
그리고 이 회사를 다닐 이유를 도저히 못 찾겠다.
그래도 일은 재밌었는데,
일에 집중 할 수 없게 이상한 짓을 회사가 자꾸하니까
이젠 일도 그다지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안생긴다.
정말 그만 두는 것을 고민해야 하나?
회사 사정이 어려우면 두 권씩 주던 것을 한 권으로 줄일 수도 있고, 아예 안 줄 수도 있다. 월급 안 주겠다는 것도 아닌데, 회사 사정 어렵다는데 책 안받으면 어떠냐. 그리고 직원들에게 정기구독자 늘리는 일에 열심으로 나서달라고 해도 괜찮다. 회사가 잘 나가야지 내 월급이 오를 건덕지가 많아지니까. 그보다도 내가 애써 만든 책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읽게 되는데 그것보다 더 값진 일이 어디있겠나.
그런데, 정기 구독을 시키겠다는 약속문서를 내라니. 아무리 봐도, 이건 각서 쓰라는 이야기다. 치사하고 더러워서 그냥 책 안받고 말지, 정기구독자 만들어 오겠다는 각서는 죽어도 안쓸거다.
대체 내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야근하고 애쓰며 잡지를 만들었나. 내가 왜 일을 열심히 해야하나... 에이 썅...
징계위원회 들어가기 10분 전.
결과에 대해서 걱정은 없다.
어차피 노동조합에서 반대한다면 징계를 할 수 없는 구조니까.
다만 이따위 상황이 너무 짜증 난다.
웃기지도 않다. 뭐라도 있으면. 징계할 건덕지가 뭐라도 있음 몰라.
이따위 상황에 시간 쓰고 마음 쓰고 에너지 낭비 되는 게
나로서는 도무지 짜증나서 참을 수 없는데,
그래도 참아야한다. 오늘 하루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관계를 위해서 참아야 한다.
스트레스 제대로 받네... 아...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에서 내는 회보 186호에 실린, 구자행 선생님 아이들 시가 너무나 주옥같아서 혼자 보기 아깝다!(딱 두 편만 소개)
까마귀 강OO(연제고 1학년)
시험 첫날
집 앞을 나서는 순간
까마귀가 보인다.
저 쌍노무 새대가리 새끼가
어딜 감히 수험생 집 문전에서 얼쩡거려.
부아가 치민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까마귀는 까맣게 태어났을 뿐인데
단지 까맣게 태어났을 뿐인데
사람들이 멋대로 나쁜 새라고 단정 지었다는 걸.
나도 날 욕하던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
언행불일치 한OO(연제고 1학년)
시험을 갈았다 심하게
엄마한테 말하기가 두려웠다.
그런데 엄마가 한 말이 기억났다.
"시험 성적이 낮아도 당당하게 살아라."
나는 당당하게
엄마한테 시험 성적을 말했다.
의외로 엄마가 웃음을 띄며
"괜찮아, 다음에 잘 치면 되지."
이 말이 끝나는 순간
엄마는 단소를 들었다.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쫓겨나고, 노동조합을 결성했다고 해고당하고,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용역 깡패가 구타하고, 노동자들을 답답하게 하는 소식만 연일 들리는 여름날에 나라말 출판사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행복한 노동이 좋은 책을 만든다’는 생각을 함께 나눴던 출판노동자로서 이번 나라말 출판사의 매각 소식은 엄청난 충격입니다. 하루아침에 자기가 다니는 회사가 바뀌게 되는 상황을 쉽게 납득할 수 있는 노동자가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아무리 그것이 ‘고용승계를 전제로 한 매각’ 결정이라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고용승계는 노동자들의 생계가 달려 있는 가장 기본적인 사안으로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것일 뿐, 그것으로 나라말 출판사 대표와 전국국어교사모임 이사회가 할 일을 다 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매각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노동조합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나라말 출판사 대표와 전국국어교사모임 이사회가 평소 노동조합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상식을 벗어난 업무 지시와 그것을 빌미 삼은 부당한 징계, 매출 하락을 핑계로 진행한 희망퇴직, 출판사 매출 하락을 극복하기 위한 노동조합의 제안을 무시하고, 어떻게든 회사를 살릴 방안을 찾기보다는 노동자들의 소중한 일터를 다른 회사에 팔아넘기는 방식으로 출판사 문제를 처리하는 나라말 출판사 대표와 전국국어교사모임 이사회의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우리는 책을 만드는 노동자입니다. 우리가 만드는 책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힐지, 우리가 만드는 책이 독자들에게,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생각하며, 아주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한 권 한 권 책을 만듭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는 임금이 얼마인지만을 놓고 출판사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어떤 책을 내는지, 그 책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살피면서 직장을 선택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일을 해서 받은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좋은 책을 내고 싶고, 좋은 책을 내고 있다는 출판 노동자로서의 자긍심과 사명감으로도 살아갑니다. 나라말 출판사 대표와 전국국어교사모임 이사회는 우리의 자긍심과 사명감을 무너뜨렸습니다.
우리 출판 노동자들은 다시 한 번 나라말 출판사 대표와 전국국어교사모임 이사회의 출판사 매각 결정을 규탄합니다. 전국국어교사모임은 이제라도 나라말 사태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명확하게 밝혀야 하고, 그동안 매출하락의 책임을 조합원과 노동조합에 전가하며 조합원들의 명예와 자긍심을 짓밟은 출판사 대표에게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출판사 조합원들이 어디서라도 당당하게 일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11년 8월 4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보리출판사 분회, 창비 분회, 작은책 분회, 한겨레출판 분회, 돌베개 분회, 출판노동자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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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때 서정시를 쓰고 싶었다. 서정시는 개뿔. 요새 가장 많이 쓰는 글은 공문. 그리고 성명서. 회사다니면 이런 글 쓸 일 없을 줄 알았는데, 웃기지도 않은 일들로 논리적으로 들으려고도 안하는 사람들에게 논리를 갖춰서 글을 쓰다니... 아... 재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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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방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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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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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제가 아직 보리 다니기 전 일이 적혀있는데, 그 당시 상황을 잘 아는 분이 제보해주셔서 글 내용을 살짝 바꿨습니다. 세 번째 문단 뒷부분인데 "바로 직원들에게 교정교열 숙제를 내 줬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대대적인 인사개편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인사 개편 자료로 쓰인다는 말은 전혀 없었다. 그 인사 개편은 결과적으로 오랫동안 보리에 다녔던 노동자들을 회사에서 쫓아냈다.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 부분을 수정했습니다.부가 정보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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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매우 깊은 inspiration 을 주는 글이네요.부가 정보
파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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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일하셨던 분들이 나간 건 교정교열 숙제를 내줬던 그 이전에 일어났던 일로 기억해요,2009년 2월 부터,사전 협의가 없는 부서 이동, 부서장, 운영진 교체가 있었고 당시 운영진과 부서장들은 신간(새로운 기획을 하거나 인력을 키우는 편집 시스템이 아니라)을 기획하는 게 아니라 잡지에서 연재가 끝난 책들만을 가지고 신간을 내고 보리를 유지할려는 소극적인 운영 방침을 정했다가 이때 현 윤대표 눈에 벗어났고 또한 당시 편집자 1인당 1년 신간 출간 종 수가 0.5권 (일부는 입사이래 4~5년 동안 단 한 권의 신간도 출간하지 않은 편집자도 있었고)밖에 되지 않는 일을 하지 않아도 그 누구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는 시스템을 문제로 삼고 대표로 들어왔고 이는 5~8년 동안 반복된 분명히 문제가 있는 고질적인 시스템이였습니다.교정교열 숙제후 이루어진 건 인사개편이 아니라 숙제로 개개인의 성향을 파악후 부서개편을 위한 쓰임이였다가 더 정확한 표현이고 당시 어떤 목적으로 숙제가 쓰인다는 말도 없었고 이로 인한 개인적 평가의 잣대가 그어진 건 사실입니다.부가 정보
무화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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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비/ 제가 들어가기 전 일은 저도 완벽하게는 모릅니다. 보리 인트라넷에 남겨진 글을 보고 유추할 뿐이죠. 그나마도 회사를 그만둔 뒤로는 볼 수 없으니, 제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기획을 안 하고 잡지 연재 끝난 책들만으로 신간을 내는 건 윤구병 대표가 취임한 이후 훨씬 심해졌는데, 그걸 문제삼아 대표로 들어왔다니 참 아이러니하네요. 제가 다닐 동안 단행본 기획 회의 한 번도 안 하고, 답답함을 참지 못해 기획서 써 갔는데 아무 반응도 없었어요. 일을 안 한 사람은 질책 당하지 않고, 일하려고 의견 내는 사람이 질책 당하는 게 윤구병 대표가 들어온 뒤 보리였거든요.부가 정보
파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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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그래도 윤대표 취임후 몇 가닥의 기대와 희망을 걸어본 건 사실입니다.뭐든지 일장일단이 있기 마련이지만 상식에서 벗어난 일들이 많았습니다.이 모든게 경영 방침이고 측근들의 바른 소리가 없어졌고 갓 들오온 신입들의 소리는 어리다고 경험이 없다며 묵살되거나 개의치 않고 여러 일들이 이루어진 것 같아요.누군가가 바로 잡아줬으면 했을때 노조가 생기고 이로 인한 방향잡이가 조금은 생긴 것 같았지만 산 넘어 산이라는 뜻을 알아갔습니다.다른 시선의 의견들 말들 이렇게도 받아드릴 수 있고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고 암튼 좋습니다.모든게 보리에 대한 애착과 같이 정 붙히고 일한 보리 안에 있는 동료들을 위한 글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끝까지 글을 읽을 수 있는 것 같아요.다만 이왕 시작한 거 흐지부지하게 마무리 짓지 않았으면 해요.무언가가 변해야될 이 시점에서 무화과님의 글도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부가 정보
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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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직원이었던 사람입니다. 파란비님이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직원이 아니었던 걸로 보이는데, 팩트만 바로잡겠습니다.보리에서 일한 사람들이 나간 건 교정교열 이전에도, 이후에도 있었습니다. 윤 대표가 새로 오기로 결정되자마자 10년 넘게 일한 편집자들이 바로 사표를 썼습니다. 남아 있던 편집자들은 보리에서 일한 지 3-6년 된 편집자들이었는데, 교정교열 숙제 이후 부당한 인사발령에 항의하여 대거 사표를 썼습니다. 윤 대표 취임 후 3개월 만이죠.
그리고 잡지 단행본을 내는 팀은 편집자 두 사람뿐인, 여러 팀 중 하나였고요, 잡지에 연재를 시작할 때부터 단행본을 내기로 구두 계약한 책들을 단행본으로 재가공해서 내는 일을 했습니다. 잡지에 맞는 꼴과 단행본에 맞는 꼴은 아주 다르니까요.
2009년 2월에 당시 경영진이 새로 들어서고 부서이동 인사이동이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다만, 윤 대표처럼 일방적인 통보가 아니라 사전에 부서장이 충분히 이야기하고 납득할 수 있도록 했고요, 기획 혹은 편집된 책들을 각 부서장(나중에는 팀장)들이 함께 의논해서 질 낮은 책들이 출간되는 걸 막는 시스템으로 변화해 갔습니다.
편집자 1인당 몇 권의 책을 냈는지 통계를 파란비님이 어떻게 알고 계시는지 궁금하네요. 그 통계는 새 경영진이 있던 1년 동안을 말하는 겁니까? 하지만 분명한 건 당시 경영진이 백번을 잘못했다고 해도, 그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겁니다. 딱 1년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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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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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비 님이 쓴 글을 읽고 좀 당황했습니다.바로잡을 부분도 있고......다시 그때가 떠올라 마음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글대로라면 저는 1년에 0.5권을 만들고, 보리를 그저 유지만 하려는 소극적인 운영에 기대어 안위를 추구한 편집자니까요.
그때 있었던 일들을 어떻게 글로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몸과 마음에 병을 얻고, 지금도 아물지 않은 상처가 되어 스스로를 탓하는, 바로 그 일들 말입니다.
보리에 제대로 된 체계가 있고, 정당하게 운영이 되고 있는데, 보리 바깥에 있던 윤구병이라는 개인(또는 2% 주주)의 ‘눈에 벗어나면’ 경영진이 밀려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지요. 거의 전 직원이 ‘윤구병 사장 취임 반대 성명’에 서명을 하고 주주총회에 참석하여 발표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보리에 윤구병 사장 체체가 들어섰습니다.
그는 절박한 경영상의 이유로 자신이 어쩔 수 없이 사장이 되었다고 했지만, 당시 보리는 어려운 출판계 상황에서도 좋은 성과를 냈고, 전 직원이 성과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윤구병 사장이 구실을 삼은 ‘경영상의 절박한 이유’라는 것은 애초의 거짓이었지요.
윤구병 사장이 취임하고 재정상태가 더 나아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글에 나와 있는 ‘편집자 1인당 출간 권 수’ 통계라는 것이 대체 무엇입니까?
어느 해에 누구를 대상으로 잡았는지에 따라 원하는 결론을 낼 수 있는 거고요.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잡지가 다달이 나오고 있고, 고전문학 선집이 꾸준히 출간되고 있는데다, 개똥이, 달팽이 전집 개정, 아기 그림책 추가 제작만 쳐도 그렇게는 안 됩니다. 옛이야기 책이 나오고 있었고, 잡지에 연재했던 단행본도 나오고 있었고, 출간 직전의 기획물들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니 그 통계라는 것은 거짓입니다. 악의적인 이야기입니다.
당시 보리는 재정도 넉넉한 회사였습니다. 경영진에서도 새 기획에 대한 독려가 있었고, 부서와 체계가 빠르게 재편되면서 팀별로 자신의 출간 계획을 신이 나서 세우고 있었습니다.
경영진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경위서를 내고 또 내야 하는 상황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부서 이동 전에는 당연히 당사자와 팀, 편집 책임자 사이의 면담이 꼭 있었습니다. 당사자가 만들고 싶어 하는 책에 대한 것도 자유롭게 공유했고요. 이것이 적극적인 경영 아닙니까?
일하는 사람이 앞으로 여기서 이것도, 저것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것 말입니다. 경영진과 사원들 사이에 갈등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대화요. 평평한 곳에 마주보고 서서 하는 대화요.
하지만 윤구병 사장이 취임하고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내 인트라넷에 늘 일방적인 고지만이 있었습니다.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부서 이동이 있었지요. 항의하면 경영상의 판단이고 고유한 권한이다라는 말만 돌아왔습니다. 억압적인 경영입니다. 시혜적인 복지 정책이 만들어지면 뭘 합니까, 배가 부르면 노예가 아닙니까?
잡지에 연재한 것을 단행본으로 묶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회사에서 작가와 편집자가 만들어낸 소중한 원고들이니, 단행본으로 엮어서 출간해야지요. 잡지에 연재한 원고를 단행본으로 묶는 것. 이제까지 하지 못 했던 다양한 영역, 새로운 방식, 새로운 저자를 발굴하고, 독자들과 얼마나 교감할 수 있는지 반응도 이미 파악한 원고들이니 당연히 책으로 묶어야지요. 그렇게 보리는 새로운 시리즈를 갖게 되었습니다. 물론 모든 원고가 단행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면밀한 검토를 거쳐서 진행되는 것입니다.
잡지 단행본을 담당한 팀은 한 명이었다가 두 명으로 늘었습니다. 그게 다입니다. 잡지 연재한 것을 묶어서 먹고 살려고 했으면 더 많은 편집자가 그 일을 했겠지요.
윤구병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잡지에 연재하던 작가들에게 여유 기간도 없이 연재 중단을 통보했습니다. 잡지 연재라는 고정 수입으로 생계의 일부를 꾸리고 있던 작가들에게는 날벼락이 떨어진 일이며, 잡지 독자들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이지요. 그나마 몇 개월 치라도 연재 수입을 보전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사표를 쓴 편집자들이었습니다.
윤구병 사장이 잡지 기획위원일 때, 연재 원고를 단행본으로 묶는 일에 늘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했다는 걸 밝혀 둡니다.
그리고 그 교정교열숙제라는 것. 이것이 또 기가막힌 일이었습니다.
윤구병 사장은 당시 회사에서 보기도 힘들었습니다. 누군가를 시켜 인트라넷에 글을 올리는 것이 대부분이었지요. 안 나오거나, 나와도 오전에만 있다가 일찍 퇴근하는 식이었습니다.
사장도 직원이라면서 근무시간에 볼 수 없으니 업무 처리도, 의견 제시도 어려웠습니다.
그가 편집자들 성향을 파악하고 싶어 했다는 것은 저도 몰랐네요.
교정교열이라는 일이, 편집자의 성향을 드러내는 일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편집자의 성향을 알고 싶다면 자기 부서에 맞는, 또는 자기가 만들고 싶은 책의 기획서를 요구하거나 심층 면담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누군가를 시켜 꽤 두툼한 프린트 물을 돌리더군요. 교정교열을 해 오라는 것입니다.
교정교열 예시라며 윤구병 사장이 몇 장 해 놓은 것을 보니, 맨 첫 장, 첫 문장에서는 태양을 햇님으로 고쳐놓았더군요. 해님으로 고쳐야 하는데 말입니다. 모를 수는 있지만, 사전도 찾지 않은 겁니다. 게다가 지나친 윤문으로 작가의 글을 너무 건드려 놓았고요. 몇 장 열어 보니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 시점에서 그걸 하라고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인데 고작 그런 것을 주다니. 프린트 물에 있는 글을 교정교열 하라는 의도, 예시라고 내민 내용의 질, 그것을 시키는 방식이 모두 허접했습니다.
동의할 수 없다, 왜 이렇게 하는 것이냐 항의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대부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것은 부서이동이든, 성향 파악이든 대체 뭘 하려는 거였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의 근거로 쓸 수 없게 되었지요.
말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다만 제대로 알지 못할 때에는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 글을 읽고 어떤 이는 모욕감을 느낄 수도 있으니까요. 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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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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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무화과가 올린 포스트를 출근 버스 안에서 한 시간 동안 열심히 읽었습니다. 제가 요새 다른 블로거들이 어떻게 사는지 들어가보질 못했는데, 오랜만에 '아, 그래, 진보블로그에 이런 분들이 있었지, 이런 글들이 있었지'하고 반가왔어요. 고맙다는 말 꼭 전하고 싶었어요. 계속 써주세요. 그것이 서로에게 상처를 남긴다 하더라도 그 상처가 또 서로에게 성장이 되리라 믿어요.부가 정보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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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서도 부당한 명령에는 복종하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우리 사회는 너무 많은 부당함에 무감각해졌음을 느끼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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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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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가 대체로 썩었는데고생많으셨네여!
훌훌털어버리시고
보리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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