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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온 테라스에서

학생 빌딩 테라스에 나왔다. 또 몇년만에 이곳을 찾았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 이 곳에서 글쓰면서 시간을 보냈던 곳이다. 오전에 해가 내리비추면 영락없이 더위와 씨름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내일 발표를 앞두고 있다. 한국은 추석이라 다들 한가할텐데, 난 발표를 앞두고 있다. 만들어논 파워포인트 앞에 앉아있다. 언제나 그렇듯 발표전에는 설랜다. 이번 발표는 예행 연습이니만큼 부담없이 가자. 한번 얻어터지면 고쳐야할 것도 많이 눈에 띌 것이다. 저녁에는 가족들에게 전화를 드려야할 것 같다. 다들 추석에 잘 쉬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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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를 넘기고...

허리가 다시 도졌었다. 너무 고통이 심해 경래가 사혈을 하고, 부항을 떴다. 그러곤 하루이틀 집에서 뒹글다보니 다시 허리가 나아졌다. 허리가 아주 고질로 번진다. 다가오는 일정 중에는 큰 무리없이 일을 치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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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

과 스트레스로 살아간다. 신영감이라도 있으면 같이 풀어버릴 수도 있으련만... 그도 저도 없다.

이번 학기는 간신히 교수가 하는 일을 도우며 보낸다. 아직까지 그리 하중이 많진 않으나, 조만간 일거리들이 떨어질 것이다. 이렇게 시간이 날 때 진도를 뽑아야하는데... 그것이 그리 쉽진 않다.

다가올 여행으로 하루하루 긴장하고 살아가지만, 뭔가 큰 진척이 있어보이진 않는다. 나를 강제하기 위해서, 다음주 월요일 학과에서 발표를 하기로 했다. 일종의 연습이랄까. 아무래도 발제 준비를 해야한다는 압박감이 내내 긴장감을 틀어쥐지만, 그도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다.

아무튼 차분히 준비해서 발제 마무리를 하련다. 아직 서너흘 남았으니 꼼꼼히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문제가 있다면 한 주 정도 더 마무리해서 준비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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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떠 있다. 기회가 오면 잡아야겠지만, 먼저 오는 집착은 다음에 올 기회를 쉽게 지나치게 만든다. 턱없이 손을 놓는 것도 좋은 방도가 아니지만, 집착하여 일을 그르치는 수도 있다. 차분히, 그리고 천천히 쉼없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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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떠 있다. 긴 여행을 앞두고 안절부절한다. 여행 일정만 잡히면 차분히 하나하나 준비를 해야겠다. 9월 10월이 한번에 순식간에 지날듯 해 두렵다. 올해 내 인생에서 한 해에 이렇듯 많이 여행을 다니기는 처음인 듯 하다. 매번 소득없이 돌아왔지만, 이번만은 종지부를 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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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가

많이 좋아졌다. 아직도 앉은 자세로 오래있으면 허리가 뻐근하지만, 그래도 가만있을 떄 통증은 덜하다. 모처럼만에 도서실 방에 앉았다. 이제 본격적인 새학기다. 이번 가을에 학생으로서의 신분에 종지부를 찍을 떄가 온 듯 하다.  있는 자리가  지겨워지고  힘들어질 때면, 그 곳에 남아있는 것이 스스로를 좀먹는 떄임을 익히 안다. 하루라도 빨리 끝내고 이 자리를 떠야한다.

한 학기 열나게 논문을 쓰려면, 방을 새로 잡아야 한다. 도서관 방을 2학기 쓰면, 다시 리어플라이를 해서 새로운 방으로 옮겨야 한다. 어제는 승준이와 경래랑 방 치우는 작업을 했다. 있던 책들 수거하고 여러 짐들 정리해 집으로 싸들고 들어왔다. 오늘 이 방 키를 반납하고 새로운 방을 얻을 떄까지 기다려야 한다. 내일부터는 또 뜨내기 신세다. 방이 잡히면 바로 논문 모드로 갈 것이다. 이번 여름에 한국에서 가져온 자료들 좀 뒤적거리고 있다. 인터뷰한 것들도 재차 정리하고 해서 한 챕터씩 써내려갈 것이다.

허리 통증이 잦아드니, 의욕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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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감을 보내고..

오늘은 공항에서 한 두시간을 죽쳤다. 아침에 경래가 시카고를 가 공항에 내려주고 왔다. 호텔을 잘 잡았다고 전화가 왔다. 편안히 잠 잘자고 내일 시험을 잘 치르길 기원한다.

공항에서 한 시간 정도 기다리니 저 멀리 신영감네 식구가 보인다. 수속 밟는 것보고 나왔다.  신영감마저 떠나보내니 이곳 오스틴이 이젠 정말 낯설게 느껴진다. 어서 논문을 끝내고 어디로든 가고 싶다는 마음이 절실하다.

내일은 개강 첫날이라 학생들과 인사소개가 있는 날이다. 이번학기는 둘 다 수업에 들어갈 일도, 티칭을 해야할 일도 없어 논문에 집중할 수 있을 듯하다. 마음이 바쁜데, 허리가 말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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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SF영화 속 여성 이미지,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



*** 아마도 이것이 SF영화 연재의 마지막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분간 쉬었다, 나중에 떄가 되면 또 계속하지요. ****


빛바랜 SF영화로 현실 읽기 12

고전 SF영화 속 여성 이미지,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    


이광석 (뉴미디어평론가)

 

과학기술이 남성의 전유물처럼 받아들여지던 시대가 지났다 하나, 여전히 그 편견과 불평등은 여전하다. SF영화 속 컴퓨터 엔지니어들의 이미지를 보자. 머리좋고 좋은 학벌에 중산층의 잘생긴 백인 남성이 대부분이다. 설사 하이테크 직종의 전문 여성이 등장해도, 남성의 들러리나 보조역으로 만족해야 한다. 리들리 스콧감독의 <에이리언 Alien (1979)>에서 화염방사기를 들고 등장하는 여성 전사의 이미지는 파격에 해당한다. 70년대까지도 SF영화에서 언제나 여성은 괴물에 납치되거나 습격을 받아 히스테릭하게 비명을 지르며 혼절하거나, 악한 악녀로 등장해 남성에 의해 처단되거나, 온몸으로 성적 소구(sex appeal)를 하며 남성을 유혹하거나, 혹은 남자 주인공의 로맨스를 위해 구색용으로 등장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영화에서 이렇듯 표현된 왜곡된 여성상은 현실 속의 여성 지위를 그대로 말한다. 이번 호는 아직도 근절되지 못하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과거 SF영화 속에서 다시 들춰내 볼 작정이다.

 

약자 혹은 성적 소구의 대상

미국에서 5, 60년대 만들어진 SF영화들의 포스터를 볼라치면 재밌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가슴의 윤곽이 드러나고 치마가 찢긴 채 괴물의 품에 안겨있거나 혹은 곤충의 이빨 사이에 혼절해 있는 여성들을 흔히 관찰할 수 있다. 언제나 괴물들은 폭력적 남성성의 대리자처럼 행동한다. 예를 들어, '아가미 인간 (the Gill Man)' 3부작에선 아가미인간의 여주인공에 대한 성적 집착이 매 장면마다 드러난다. 아가미인간이 보여주는 강한 힘과 폭력, 그리고 여주인공에 대한 성적 집착은 주로 남성 관객에게 묘한 대리 만족을 선사한다. 관객들은 남성성을 대변하는 돌연변이 물속 괴물을 통해 여성에 미치는 가학적 이미지들을 맘껏 즐겼던 것이다.

        지구 밖 외계 행성을 다룬 영화들 중 일부는 아예 이런 남성들의 시선을 의식해 만들어진 것들도 있다. 저예산 B SF영화 <달의 캣우먼들 Cat-women of the Moon (1953)>에선, 달에 사는 매력적인 금단의 여자 외계인들의 모습을 다룬다. 지구인들의 우주 탐사선이 달에 도착한다. 승무원 중 헬렌(Helen)이란 여성은 무언가모를 힘에 이끌려 캣우먼들이 사는 그리스 사원 같은 곳으로 자신의 남성 동료들을 이끈다. 이곳에서 그들은 목부터 발끝까지 검은 타이즈를 입고 마치 고양이처럼 생긴 육감적인 여자 외계인들과 마주친다. 한편 캣우먼의 우두머리인 알파(Alpha)는 승무원들을 죽이고 우주선을 탈취해 지구에서 자신들의 종족을 번식시키려는 음모를 꾸민다. 그러나, 캣우먼들의 음모는 실패하고 승무원들은 지구로 향하는 우주선에 오른다. 이 영화에선 남자 승무원들이 달에 도착해 요염한 캣우먼들을 얼빠져 바라보고, 급기야 이들과 연애하는데 온정신을 쏟는다. 캣우먼들의 제례 의식으로 치러지는 춤사위를 보노라면, 이방인에 느끼는 경외보단 성적 소구가 더 강하다.

        미지의 외계 혹성에 대한 인간의 동경이 금광의 발견에 있다거나 < 캣우먼들>처럼 매혹적 여성들과의 조우로 연결되는 것은 대단히 흔하디흔한 광경이다. 이는 서부영화 (the Western) 장르에서 노다지를 두고 총질을 하거나 선술집에서 하룻밤 여자를 취하는 장면처럼 흔하다. 비슷한 줄거리의 <외계의 여왕 Queen of the Outer Space (1958)>에서도 볼거리로서의 여성에 대한 편견이 줄을 잇는다. 때는 1985, 지구 외곽의 우주정거장으로 향해 우주선이 발사되나, 어디선가 레이저 빔이 날아와 순식간에 그 정거장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린다. 그 우주선 또한 그 광선에 이끌려 자연림 속의 금성에 도착하는데, 그 곳에서는 하이힐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화장을 짙게 한 매혹적인 여인들이 광선총을 들고 나타난다. 그곳의 여왕, 일라나(Yllana)는 우주선을 타고온 승무원들을 염탐 혐의로 감옥에 가둔다. 곧 지구인들이 금성을 공격하리라 보고, 먼저 레이저 빔으로 지구를 날려버릴 계획까지 세운다.

        일라나는 남성들에 반기를 들고 혁명을 일으켜 금성을 금단의 여인 천하로 바꾼 인물이다. 남성들은 금성의 조그만 위성에서 노예 생활을 하며 살아간다. 그녀는 혁명 도중 핵박사능에 노출돼 얼굴이 추해져 그 외모 콤플렉스를 숨기기 위해 가면을 착용하고 다닌다. 지구인 중 팀장이자 잘생긴 패터슨(Patterson)에 호감을 가진 그녀는 밤늦게 그를 불러 유혹을 한다. 허나 패터슨이 그녀의 가면 안의 실체를 보고 소스라쳐 놀라자 여왕은 극도의 모멸감에 지구인들의 처단을 서두른다. 한편 탈리아(Talleah)라는 여인은 반체제 조직을 만들어 지구인을 도와 여왕에 반기를 들고, 그녀를 제거한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두 남성으로 이뤄진 지구로부터 온 승무원들은 우주선이 고쳐질 때까지 금성의 여인들과 찐한 로맨스를 갖는다.

 

성 상품화의 극단 이미지   

<외계의 여왕>은 극도로 여성에 대한 편견에 젖어 있다. 탈리아가 지구인을 돕는 가장 큰 까닭을 여왕의 폭압보단 패터슨에 대한 연정에 더 큰 무게를 둔다. 또한 패터슨이 일라나 여왕의 방에 불려가자 남성 승무원들은 어떡해든 여왕을 '꼬셔' 감옥으로부터 자신을 구해주고 지구의 운명을 바꿔달라는 어처구니없는 대사를 친다. 금성의 남성들을 내쫓은 강한 일라나조차 지구인 남성, 패터슨에 외면당하자 좌절하고 외모 콤플렉스에 괴로워하는 모순을 보인다. 일라나 여왕에게 쫓기는 중, 지구의 남성들이 금성 여인들과 동굴 안에서 무리지어 키스와 스킨십을 하는데 이르면 아연실색할 지경이다. 제인 폰다가 주연을 맡은 <바바렐라 Barbarella (1968)>를 보면, 그도 점잖은 편이다.   

        영화의 도입 부분부터 우주복을 하나씩 벗으며 몸매를 드러내는 지구 첩보원, 바바렐라의 누드쇼는 마치 '어우동'쇼를 보여주듯 민망하다. 그녀의 임무는 실종된 과학자 듀란 듀란(Duran Duran)을 찾아내는 일. 결말에서 바바렐라는 이 미친 과학자 듀란의 우주 정복의 음모를 막는다. 그것도 그녀의 오로지 남성을 녹이는 성적 매력만으로 지구와 우주를 구한다. 당시 지구인들은 오염을 두려워하여 육체적 접촉을 통한 섹스행위 대신 약을 먹고 손을 맞대며 섹스를 가상으로 상상하는 것에 익숙하다. 바바렐라는 과학자를 찾으면서 여러 위험에 처하고 그녀를 구해주는 남성들에게 보답으로 이같은 섹스 서비스를 제공한다.

        6, 70년대 미국 문화의 대세였던 자유로운 섹스와 마약을 통한 영성 혁명 등 히피운동이 이 영화에 많이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면, 이도 이해못할 바가 아니다. 리고, <바바렐라>에서 등장하는 외계 행성의 재현이나 그 우스꽝스런 복장과 대사는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예컨대, 얼음 도시, 미로 도시, 사탄의 인형들과 새들의 습격 등은 상상력의 무한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주로 제인 폰다의 몸매와 얼마나 그녀가 섹시한가를 보여주려는 시도에 외려 영화의 재미가 반감된다.

 

악녀의 이미지

여성의 성상품화가 한 축이라면, 다른 한쪽에는 여성의 악마적 형상화 시도가 있었다. <메트로폴리스 Metropolis (1927)>에 등장하는 로봇 '퓨쳐라'(futura)는 비록 사람이 아니었지만, 초창기 악녀 이미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사례다. 그녀는 노동자를 선동해 파업을 이끌고, 이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인물로 등장한다. <화성에서 온 악녀 Devil Girl from Mars (1954)>에선 외계인 여성을 악녀로 묘사한다. 검은 가죽 옷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려쓴 강렬한 인상의 여인, 나이야(Nyah)가 미비행물체를 타고 스코트랜드 외곽의 한 여인숙 앞에 착륙한다. 여느 외계인처럼, 이 여인은 순간적 공간이동 능력에다 인간에게 최면을 걸고 자신의 로봇 샨티(Chanti)를 리모콘으로 조정한다. 나이야는 처음 본 인간을 전자총으로 흔적도 없이 날려보내는 잔인성을 보이고, 여인숙 사람들을 보이지않은 벽으로 감금해놓고 인질극까지 벌인다. 이유인즉슨 화성에 남자들이 멸종 위기에 놓여 지구로부터 건장한 남자를 씨받이로 데려가려한다는 것이다. 여인숙에 사람들을 가둬놓고 최종 한명의 인질을 데려가겠다는 그녀의 통첩에 투숙객들, 특히 남성들은 희생정신을 발휘해 자신이 인질이 되겠다고 아우성친다. 결국은 여인숙에 살인을 하고 숨어들었던 알버트(Albert)란 인물이 그녀를 따라가고, 화성으로 이륙 중 알버트는 그 우주선의 약점을 발견하고 그녀와 자폭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영화에선, 외계 악녀와 마주쳤을 때 남성과 여성의 대응 방식이 사뭇 다름을 보여준다. 남성은 그 어느 때보다 기지를 발휘하고 살신성인하는 모습을 보이나, 여성들은 그저 흐느끼고 현실에 어떤 저항도 못하는 무방비 상태의 나약한 인간종으로 나온다. 여성들은 무기력한 모습이거나 외계로부터 날아온 사악한 별종의 모습으로 퇴락한다.

 

악녀이거나 섹시 걸이거나            

달의 알파 여왕, 금성의 일라나 여왕, 화성의 나이야, 그리고 <바바렐라>에 등장하는 블랙퀸 모두는 사악한 여성의 이미지에다 강한 개성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그에 비해 여왕을 뺀 나머지 영화 속 등장 여성들은 대체로 남성들의 성적 욕구를 자극하고 순종적이다. 대부분 이들은 남성들을 도와 사악한 여왕들을 반대하고 쉽게 남성들과 로맨스에 빠진다. 즉 남성들의 시선에 강한 여성들로 비춰지는 부류는 대체로 사악한 괴물들로 취급되는 반면, 그들에게 고분고분한 여성들은 살아 움직이는 성적 '인형'들로 대상화한다. 이렇듯 여성에 대한 이중적 태도는 SF영화를 지배하는 주된 정서다.

        남성들에 의해 해석된 세계, 그리고 그들에 의해 개척되는 미래와 비전에, 강한 여성의 존재는 일종의 도전이다. 언제나 여성은 남성을 위해 안아주길 기다리는 인형이어야 했다. 과학 박사를 지닌 영화 속 여주인공이, 동료 남성들을 위해 커피를 나르는 모습(<세계전쟁 The War of the Worlds (1953)>)에 무감각해하던 시절에서 우리는 얼마나 벗어나 있을까? 세월이 흘러 이제 그 성적 편견과 불평등이 잦아들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그 벽이 느껴짐은 왜일까?        

 

(200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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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집: 옥스퍼드대 인터넷연구소 (시민활동가 방문프로그램)

우리 정보운동 활동가들이 이곳에 지원하면 좋겠네요. 6주 프로그램동안 체제비도 괜찮고... 우리나라가 글로벌 싸우스에 드는 것 같지는 않아 아마 먼저 문의부터 해보는 것이 좋을듯...

첨부:

Civil Society Practitioners Programme (CSPP)  
--------------------------------------------------  
  
We are inviting applications from the global South to fill two places on our Civil Society Practitioners Programme (CSPP). This visitor programme is intended for Civil Society Practitioners of distinction or outstanding promise who wish to visit the OII for a period of six weeks between February and December 2008, to undertake research concerning the social impact of the Internet and related ICTs. The successful applicants will receive:  
  
- A subsistence allowance of 3800 GBP (7500 USD) to cover research expenses and living costs during their stay in Oxford  
- A travel grant of up to 1000 GBP (2000 USD) for travel to and from the UK  
  
Applications will ideally be submitted by Civil Society Practitioners in or from the global South, active in the areas of freedom of expression, media reform, media justice, and communications and information policy in the globalized context of the Internet.  
  
Deadlines:  
The deadline for completed applications to reach us is 26 September 2007. Final notification of an award will occur in November 2007. Successful candidates will be expected to take up their six week residency in Oxford at any time between February and December 2008.  
  
Application and contact details:  
http://www.oii.ox.ac.uk/microsites/cspp/  
  
This programme has been made possible through funding by the media policy portfolio in the Knowledge, Creativity and Freedom Program of the Ford Foundation.  
  
  
[Editor: David Sutcliffe]  
  
Oxford Internet Institute  
University of Oxford  
1 St Giles Oxford OX1 3JS  
United Kingdom  
Tel: +44 (0)1865 287210  
Fax: +44 (0)1865 287211  
Email: enquiries@oii.ox.ac.uk  
Web: http://www.oii.ox.ac.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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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영화로 본 기계-인간 인터페이스의 진화 (extra)

인간과 기계의 물아일체 시대가 온다: SF영화로 본 기계-인간 인터페이스의 진화

 

이광석 (뉴미디어평론가)

 

기계는 인간의 언어를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계가 알아들을 수 있는 기계어 명령을 만들어 제어한다. 프로그래밍이란 것은 바로 기계가 알아들을 수 있는 명령 패턴을 짜는 일에 해당한다. 일례로, 누군가 휴대폰 터치 스크린에 특수키를 눌러 관련 화면을 보는 데는 기계만이 알 수 있는 명령 수행의 코드가 이미 들어가 있다. 이렇게 인간의 언어 혹은 명령을 기계에 전달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인간의 개별 언어를 입력란에 쳐넣으면 기계가 인간의 언어를 기계어로 바꾸어 인식하는 수준이었다. 이젠 말, 몸짓, , 신체 접촉 등도 기계가 알아듣는 시대가 되간다

        인간과 기계와의 소통 관계에 놓여진 매개물을 우리는 '인터페이스'(interface)라 부른다. 인터페이스 기술의 발전은 곧 이들 둘의 소통 관계의 진화에 다름아니다. 글보다 말이나 몸짓만으로 소통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인터페이스의 질이 달라짐을 뜻한다. 결국 인터페이스의 궁극적 비전은 보다 쉽게, 그리고 즉각적으로 기계와 소통하는, 아니 그 극으로 밀고가면 인간과 기계가 일체되는 모델을 만들어내는데 있지않을까 싶다. 이렇듯 인간과 기계와의 인터페이스 진화에 영향을 줬던, 그리고 앞으로도 더 많은 상상력을 줄 수 있는 큰 진원지 중 하나로 과거 공상과학(SF) 영화들에 등장했던 기발한 인터페이스 기술들의 진화 과정을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할 듯싶다.       

 

통신 수단에 있어서 인터페이스의 응용

통신 기술이 발달해 이제는 터치스크린 기반하에 사진을 찍어 휴대폰으로 전송하고, 이것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바로 동영상을 서비스업체로부터 내려받아 보고, 모바일 인터넷을 하고, 얼굴을 보면서 통화까지 하는 시대가 됐다. 앞으로 그 추이가 어찌 진행될 지는 두고볼 일이지만, 그 중 하나가 미래 3차원 홀로그램에 기반한 통신이 아닐까한다. 공상소설 작가 웰스 (H. G. Wells)가 소설을 쓰고 각본을 맡은 영국 영, <다가올 세상 Things to Come (1936)>에선, 누군가 대중에게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공공장소에서 홀로그램을 이용한다. 3차원 홀로그램은 그 자리에 없으면서도 통신 상대의 디지털 신체가 나타나 생생히 움직이며 의사를 전달하는 인터페이스 기술을 지칭한다. <별들의 전쟁 Star Wars> 시리즈에서도 주요 통신 수단 중에 하나로 이 기술이 종종 등장한다. <토탈 리콜 Total Recall (1990)>에서는 이 기술이 레저 학습용으로 쓰인다. 가상의 스포츠 강사를 따라 학생이 테니스의 자세를 교정하고 배우는데 홀로그램 프로그램이 훌륭한 교본 구실을 한다

 

컴퓨터 인터페이스의 진화

컴퓨터 인터페이스의 진화도 급속도로 이뤄진다. 문자 중심의 키보드 입력에서, 그래픽 윈도우 화면을 통해 마우스 클릭을 하다, 펜으로 정보를 흘려넣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장차 컴퓨터 인터페이스 진화의 방향 중 하나는, 디지털 공간 안에서 네트워크 설계나 정보 흐름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3차원 그래픽 인터페이스 기술의 발전일 것이다. 전자 네트워크망을 타고 흔히 기업 내부 문서를 빼가는 해커들의 움직임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영화들이 컴퓨터 내부 구조를 보여주는 3차원 인터페이스 기술의 미래를 소개했다. 일례로, <해커들 Hackers (1995)>에선 해커들의 바이러스 공격과 기업 내부 보안 담당자의 스릴넘치는 추격전을 이 3차원 기술로 실감나게 보여줬다.

        또 다른 인터페이스의 진화는 세밀해진 그래픽과 함께 성장하는, 말 중심의 명령어 인식 기술이다. 이미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 2001- A Space Odyssey (1978)> '(HAL) 9000'이나, <알파빌 Alphaville (1965)>에서 도시 거주자들을 세뇌시키는 무시무시한 '알파60'이나, <악마의 씨 Demon Seed (1977)>에서 인간과 자신을 넘어서는 새로운 종족을 만들고 싶어했던 '프로테우스(Proteus)' 등은 더 이상 키보드로 소통하던 컴퓨터들이 아니다. 이들 인공지능 컴퓨터는 인간과 말을 통해 소통하고, 심지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 이를 지배하려 했던 무서운 미래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어쨌든 이러한 컴퓨터들의 모습은 이미 기술적으로 어느 정도 실현되고 있는 말 중심의 명령어 인터페이스가 그 추세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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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정보 조회를 위한 인터페이스의 등장

기술에는 언제나 이를 쓰는 자의 힘의 논리가 깊게 깔려있다. 보안을 위해서든, 인구의 관리를 위해서든 현대 사회는 인간 정보를 그 때 그 때 조회하고 분류하고 집적한다. 우린 이미 휴대폰으로 애인이나 바람난 남편의 위치를 찾아내고, 전자태그(RFID) 칩으로 한 인간의 소비 성향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시대에 산다. 시대가 갈수록 한 인간의 신원에 대한 조회 방식은 첨단화하고 언제 어느 때든 쉽게 이뤄질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 또한 진화한다. 그러다보니 이와 관련한 기술들을 소개하는 여러 SF영화들의 미래 전망은 굉장히 우울하다.

        영화 <로건의 탈출 Logan's Run (1976)>에서 미래 첨단의 도시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들은 태어날 때부터 손바닥에 크리스탈 모양의 신원 확인용 칩을 부착한 채 살아간다. 이 칩의 또 다른 용도는 생명 시계의 역할이다. 칩의 빛깔이 푸른색이면 아직 청춘, 빨간색이면 서른이 다가오는 거의 죽을 때, 서른살이 지나면 이도 깜빡거리면서 '카루서'(Carrousel)라는 폐기장에서 '재생'(renewal)이란 이름하에 파괴될 때를 뜻한다. 서른에 무조건 죽어야 되는 세상에서, 도시의 인공지능 메인 컴퓨터에 의해 작동되는 이 크리스탈 칩은 개인을 옭아매는 족쇄로 기능한다. 또 다른 영화, <가타카 Gattaca (1997)>에서는 유전학적으로 우성과 열성을 선별하여 사회의 계급을 나누는 미래를 보여준다. 예서도 개인의 유전학적 데이터를 집적하는 서버 컴퓨터는 머리카락 한올이나 피 한방울의 분석에서조차 개인의 모든 신상 정보와 연결하는 무서운 능력을 발휘한다.

        컴퓨터와의 한번 마주침만으로도 한 사람의 신원이 확인되기도 한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Minority Report (2002)>에선 그 유명한 표적마케팅의 미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지하철에서 내리는 승객들은 교통카드 대신 동공을 인식하는 시스템에 각자 눈의 초점을 맞춘다. 지하철 통로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자광고판은 그 행인의 이름을 불러가며, 그의 소비 성향에 맞춰 맞춤 광고를 띄운다. 동공으로 파악되는 이들의 신원은 기업들의 소비자 정보로 이용되고, 메인 컴퓨터에 입력되어 언제 어디서나 맞춤 광고를 내보낼 수 있는 전자 데이터가 된.

         

사이버네틱스에 의한 인간-기계의 접속

외부로부터 기계에 이르는 명령 방식의 획기적 혁명은, 아마도 인간이 생각하는 것들을 그 신경을 통해 기계에 바로 전이하는 그러한 인터페이스 구조일 것이다. 이미 사이버네틱스 연구자인 케빈 워익(Kevin Warwick)은 신체 반응의 신호를 컴퓨터에 전송하는 칩을 자신의 팔의 신경망 안으로 이식함으로써 인간-기계 합일의 미래를 보여주기도 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워쇼스키(Wachowski) 형제의 영화 <매트릭스 The Matrix (1999)>에서 미래 혁명가들은 가상의 전자 공간을 들어가기 위해 목 뒤의 포트 깊숙이 연결 단자를 삽입한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David Cronnenberg) 감독의 <엑시스텐츠 eXistenZ (1999)>에선, 가상현실(vrtual reality) 게임의 일종인 '엑시스텐츠'를 하기 위해, 인간 등의 척수 끝 한가운데에 구멍을 뚫어놓은 바이오포트(bioport)에 마치 유기체같이 생긴 '포드'(pod)를 연결시킨다. 신경이 모이는 목 뒤나 귀밑, 척수, 머리의 정수 등은 특히 SF픽션의 세계에서 인간이 기계에 접속하는 모뎀의 포트로 기능하는 경향이 있다. 쓰거나 말하지 않아도 신경의 신호에 따라 기계가 인식하는 합성(hybrid) 인터페이스의 미래가 도래한다.

           

인터페이스의 소멸, 사이보그의 미래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인터페이스 기술의 궁극적 미래는 인간-기계간 인터페이스의 종말이자 완전한 합일로 볼 수 있다. 그러려면 기계가 인간이 되고 인간이 기계가 돼야 한다. 앞서 얘기한 <매트릭스> <엑시스텐츠>에서 선보인 인간-기계간 인터페이스 기술을 미래의 첨단으로 볼 수도 있으나, 이들을 접속하기 위해선 연결 포트가 필요하며 이 둘이 떼어짐과 동시에 서로 다른 객체로 분리돼 인간의 명령이 기계에 전이될 수 없다는 단점이 늘 있다. 언제나 인간이 생각하는 바를 기계가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는 인공지능의 살아있는 제 3의 무엇이 존재할 수 있다면, 그것이 인간과 기계의 인터페이스를 무용지물로 만들 것임이 분명하다. 이는 단순 프로그래밍된 지능을 가진 로봇이나 안드로이드 형태보다 더 발전된 무엇이다. 최근 영화들 속에서 소위 '사이보그'(cyborg) 혹은 '휴마노이드'(Humanoid)라는 사람도 기계도 아닌, 그 둘을 합친 것 이상의 것으로 묘사되는 신종족의 등장은 곧 이를 뜻한다.

        물론 이제까지 인간의 명령어를 다양한 인터페이스를 통해 받아들이던 기계가 이를 걷어버리고 자신의 '자유의지'를 가질 때 우리의 미래가 어찌 될 지는 깊게 따져볼 일이다. 예를 들어, 영화 <휴마노이드의 탄생 The Creation of the Humanoids (1962)>은 그 부정적 미래를 코믹하게 잘 그리고 있다. 가상의 핵폭발로 인류 문명의 절멸 이후 인간 사회는 기계에 지배당한다. 로봇들이 그들 스스로를 생산하고, 인간의 문명을 지배한다. 로봇들은 결국 인간을 나약한 환경 부적응자로 취급해 인간-기계가 합쳐진 제 3의 종인 '휴마노이드'를 만들어낸다. 이들 종족은 인간과 똑같은 사랑과 증오의 감정을 지니며 문제가 생기면 누구보다 논리적으로 사태에 대응한다. 만일 이들 '휴마노이드'와 같은 신종족이 우리 미래의 인간-기계 소통의 미래 현실이 된다면, 인간-기계 잡종에 대한 상상이 그리 좋지만은 아닐 게다. (200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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