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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날 학교에서

다음주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다음날 콜로라도 박사세미나가 있다. 이 자리에 댄 쉴러가 올 예정이다. 내 글의 리더로도 그가 참가할 것이고, 내가 맡은 두 동료 학생의 페이퍼를 리딩해주는 자리에도 들어올 것이다. 3박 4일의 일정 동안 그와 여러 얘기를 많이 나눴으면 한다. 공부하는 인간이다 보니 그에게 어떻게 나의 얕은 내공을 감출수 있을까만 고민이 된다. 8년만에 고대했던 만남아닌가. 부담없이, 즐거이 그와 학문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마도 이 모임이 내가 박사 과정생으로서의 "정년"을 앞두고 마지막 누릴 수 있는 모임인 듯 싶다.

그래서 학교에 나왔다. 그리 시원치않은 글을 제출해서, 도대체가 어떻게 이 글을 발표할 지 걱정이 앞선다. 이미 다른 곳에 제출하거나 출판 예정인 글들을 낼 수 없기에 그저 예전에 논문 자격시험에 제출했던 글을 보냈었다. 막상 이를 가지고 발표를 할려니 짜증이 계속 배어나온다. 오늘도 오후 내내 앉아, 영양가없는 글을 포장하기위해 파워포인트를 중간 정도 만들다 집에 들어간다. 저녁시간 밥 때다.

어머니, 아버지, 큰고모께서 강원도 고향에 누우실 작은 아버지 장지에 잘 다녀오셨는지 궁금하다. 몇일간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마음이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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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간다는 것

오늘 일본군 위안부 다큐멘타리를 학교에서 빌려봤다. "낮은 목소리"였는데, 보고나서 어머니랑 통화를 하다 작은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마음이 쓰렸다. 이번 여름 방문 중에 왜 작은아버지 생각을 못했던 걸까. 이번에 뵈었으면 그리 큰 허전함과 죄송함이 덜 했을텐데...

밤에 식구들이 잠든 사이 향을 피우고 물을 정성스레 다기잔에 받아 문을 열어두고 동쪽을 향해 절을 삼배했다. 이승에서의 고단하셨을 삶을 극락에서 편안히 보내시라고... 서글서글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아련하다. 아버지 형제분들 중에 내가 가장 좋아했던 분이셨다.

나이를 먹어가면 이제 돌아가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횟수가 잦아질거란 생각에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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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날에

 미국엔  아버지날이 따로 있는데 영 찬밥이다. 지난 주 주말이 아버지날이었는데, 승준이가 멋진 그림을 그려주었다. 담배를 피지 말라는... 에이리언이 비행접시를 몰고 가면서 노우~~ 담배라 외치고, 스톱 스모킹이라는 사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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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타운 레이크를 경래랑 걷고 저녁을 먹고나서 그대로 뻗었다. 일어나니 밤 1시, 다시 잠을 자고 일어나니 새벽 4시. 블라인드가 덜컥거리는 소리에 잠이 꺠어 일어나니 밖에 비가 내린다. 텔레비전을 왕왕 켜놓고 CNN을 봤다. 녹차를 한잔 먹을까해서 물을 올려놓고 녹차를 우리고 있다. 어제 이래로 담배는 접었다. 그리 생각나지도 않는다.

오늘 오후엔 승준이 2주간 해온 연극 써머캠프의 결산, 공연이 있는 날이다. 녀석의 역할이 기대된다. 악어와 어부의 역할을 맡는다는데 뭔 소린지... 보면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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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후 얼마나 이곳 오스틴 공기가 맑은지를 깨달았다. 서울에선, 비가 온 다음에도 뿌엿게 깔린 먼지들과 고무타는 냄새들에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매연과 먼지들 속에서 숨쉬고 살아가니 어디 몸 성히 사는 것이 용타. 웰빙입네 예방의학이네 해봐야 매연이 사람을 질식시키는 곳에선 그저 미봉책일 뿐이니 한심스럽다. 차라리 깊게 담배를 삼키고 뿜어내는 것이 막나가는 대기의 오염에 적응하는 방법이리라. 오스틴에 와 다시 담배를 접었다. 맑으면 몸이 따르나, 쩔은 공기 속에선 몸이 오히려 그에 대적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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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틴에서

한달간 정신없이 한국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스틴의 새벽을 본다. 아무래도 시차적응 떄문이지 더위 떄문인지 뒤척이다 새벽녘에 꺴다. 방학 중 새벽 4시의  시간대는 거의 인기척이 없다.  지난 밤 비가 와서인지 대기가 축축하다. 동네 한바퀴를 기지개를 켜며 걸었다. 멀리서 기적소리가 들린다. 유학생활하면서  듣는 기적소린 처량하다. 다녀온 집생각이 많이 난다. 

낮에 차안에서 캠프로 향하는 경래와 승준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리었다.  너무나 천진스런 두 모습에 어깨가 무거워진다.

몇 일간 쉬다가 다시 정상의 궤도로 가려한다. 담배도 끊는 연습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찌들어있는 몸을 제대로 복구하려면 또다른 시간을 필요로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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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한국방문이 해가 갈수록 낯설다. 그 낯섦이 어디서 주로 오는지 모르겠으나 여러가지로 나를 힘들게 낯설게 만든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힘들고, 어디로 움직이는 것도, 사람을 피해 움직이는 것도 모두 힘들다.

오스틴의 반딧불과 여유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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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소풍갈 때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꾸 잠이 깬다. 새벽녘에 그냥 일어나 버렸다. 다섯시에 집에서 출발할 요량이니, 4시 쯤에 알람을 맞춰놓았으나, 3시가 좀 넘어 일어났다. 알람이 무색하다. 아직 자고있는 승준이를 한번 안아보고  일어났다.  인천공항까지 가는 길이 왠지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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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문

프로포절은 잘 끝냈다. 어젠 승준이 생일을 가기 전에 해준다고, 아이들을 불러 영화를 보여줬다. 스파이더맨 3를 보여주고, 집에와 피자와 케잌을 먹고 놀다 다들 헤어졌다. 알렉스, 홍주, 케빈, 데이빗, 케니가 왔었다. 승준이 친구 홍주와 케빈은 이번 여름에 결국 떠난다. 홍주는 지 아빠가 하버드에 잡을 잡아서, 케빈은 엄마가 학업을 거의 마쳐서... 이제 이 동네에 승준이 친구는 알렉스 뿐이다.
엊그저께 프로포절을 마치고 한국갈 짐을 싸려니, 만만찮다. 쌀 짐도 많진 않지만... 여기 남을 가족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걸리고, 만날 사람들을 생각하니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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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철부지 과학에서 신에 대항한 복제의 시대로

빛바랜 SF영화로 현실 읽기 6

 

철부지 과학에서 신에 대항한 복제의 시대로

 

이광석 

 

어린 시절 그 누군들 인간 이상의 힘, 흔히들 말하는 초능력에 관심이 없었던 이가 있겠는가. 필자도 어김없이, 그 대상이 사람이건 돌연변이건 초인적 힘을 가진 이들을 동경하여 상상의 나래를 펴곤 했다. 슈퍼맨을 따라 수건으로 망토를 만들어 날았고, 육백만불의 사나이를 따라 뚜두뚜두 소리를 내며 손아귀 힘으로 강철 휘는 시늉을 했고, 헐크마냥 웃통을 벗어 옷을 찢는 연기를 실감나게 했고, 스파이더맨을 따라 방바닥을 기며 벽을 타는 양 거미줄을 뿜는 흉내를 냈다. 좀 더 커선 투명인간이 돼 매일 여탕에 들어가 야동처럼 살고 싶기도 했다.        

   이번 호에선, 이처럼 인간이되 인간 이상의 힘을 가졌던 생물학적 변종 인간들을 보려한다. 혹자는 잘못된 실험의 실수나 오염으로 인해, 다른 이들은 사고로 인해, 또 다른 이들은 과학의 무한한 권능에 매혹되어 초능력을 지니게 된다. 그 옛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추억의 투시인간이나 투명인간 등은, 지금처럼 아이들이 따르는 슈퍼맨식 영웅 일대기의 한 대목으로 극()화하기 보단 과학 맹신의 부작용으로 그리고 실패한 과학의 사례들로 묘사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전능의 신과 철부지 과학

과학으로 인간의 본성을 통제할 수 있을까? 약물을 들이켜 인간 속에 존재하는 선악을 떼어놓는 일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으랴? 영화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Dr. Jekyll and Mr. Hyde (1920)>에서 의약품 개발자였던 지킬박사는 선악을 갈라 인간의 본성을 통제하려다 오히려 하이드란 내면의 악마에 지배당한다. 사악한 하이드가 점점 지킬박사의 의식을 통제하면서 포악해져 박사의 애인까지 죽이고 결국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파국에 이른다. 비슷한 류의 흑백 영화들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과학이 신이 주재하는 영역에 도전해 성공한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과학의 최후는 비참했다

    <봉녀 The Wasp Woman (1959)>에선 젊어지려는 욕망에 눈이 멀었던 화장품회사 중년 여사장 스타린Starlin, 회사에 고용된 연구원이 개발한 로얄젤리로 만든 주사약을 투입하면서 점점 젊어지는 효능을 본다. 그 제품을 만들어냈던 연구원이 공교롭게도 교통사고로 죽고, 게다가 스타린은 젊어지겠다는 욕심에 주사 투입량과 횟수를 차츰 늘이게 된다약물 과다투여로 나타난 부작용은 그녀를 흉악한 말벌인간으로 변하게 만든다.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의 목을 물어뜯어 죽이다, 결국은 자신도 죽는다. 영화의 교훈은 간단하다. 과학의 힘을 빌어 세월을 거스르려는 인간 욕망은 신의 룰을 깨는 죄악이라 응당 그 죄값을 톡톡히 치러야 한다는.

    영화 <4차원 인간 4D Man (1959)>은 사물을 통과하는 실험에 성공한 과학자의 비극적 최후에 대한 얘기다. 과학자 토니 넬슨Tony Nelson은 연필로 강철을 사물을 뚫는 실험에 성공한다. 실수로 연구실이 불에 타 토니는 형 스캇Scott이 있는 연구소에 둥지를 튼다. 토니는 형 애인이자 비서였던 린다Rinda와 눈이 맞는다. 그동안 스캇은 실험 중 방사선에 노출되어 동생의 기계장비에 손을 대면서 돌연 자신의 손과 몸이 물체를 통과하는 4차원 인간이 돼버린다. 음엔 자신의 능력에 놀랍고 신기해 우편함에서 편지를 꺼내 읽고, 금은 보석방 쇼윈도우 창을 투과해 전시된 보석을 털기도 한다. 사악한 하이드씨처럼 점점 스캇의 외모는 흉폭하게 변해가고, 다른 인간의 에너지를 흡수하는지 그가 진 인간들은 늙어 쪼그라져 죽임을 당한다. 불행히도 스캇은 전애인 린다의 총에 맞아 최후를 맞는다. 이유없이 등장해 결국 눈 위의 발자국 때문에 경찰의 총에 맞아 죽는 <투명인간 The Invisible Man (1933)>의 투명인간 잭 그리핀Jack Griffin도 스캇처럼 매한가지의 비장한 최후를 맞는다.  

    인간 과학이 신의 권능에 도전하면 그 최후가 얼마나 참담할지에 대한 보다 강력한 메시지는 <엑스: 엑스레이 눈을 가진 사람 X: The Man with the X-Ray Eyes (1963)>에서 아주 잘 묘사되고 있다. 제임스 세비어James Xavier 박사는 일명 "엑스"라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제임스는 사물을 투시하는 시력을 가질 수 있는 약품을 개발하고 있었다. 돈많은 재벌 스폰서들이 가시적인 연구 결과물을 내놓길 압박하면서, 연구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세비어박사는 약품 실험을 자신의 눈에다 결행한다처음 그는 순간 성공의 기쁨을 만끽한다. 댄스홀에서 춤추는 사람들이 다 벌거숭이로 보이고, 내과 의사가 내린 오진을 막아 암세포의 위치를 찾아내어 우쭐한다. 허나 약물의 강도를 늘이다보니 사물의 투시력이 점점 깊어지고, 이젠 눈을 감아도 눈꺼풀을 투과해 밖의 사물이 보여 도통 잠을 이루지 못해 고통만 는다. 나중엔 그의 눈엔 사물이 기하학적 빛의 무리로 비춰진다. 영화에선 그 부작용을 '엑스 효과'라 지칭한다. 거기다가 사고로 친구를 잃고 경찰에 쫓기다 탐욕으로 똘똘 뭉친 사기꾼에 걸려들어 무허가 의료시술소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다 도망치고, 우여곡절 끝에 라스베가스 카지노에서 한탕해 나오려다 경찰에 쫓겨 또 도망치고, 차 사고로 한적한 마을의 교회에 당도한다. 한창 예배를 보던 시골 목사의 입에선 마치 모든 일을 다 알고 있는 듯, 빗나간 과학과 제임스의 어리석음을 꾸짖는 신의 독설을 내뿜는다.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하거든 그 눈을 빼어내버리라'. 마테오 복음 18 9절에 실린 구절이다.

 

미친 과학과 B급영화의 만남

흔히들 '미친 과학'mad science이라 부르는 것의 가장 큰 특징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것 이상의 것을 넘보거나, 발명이나 실험을 통해서 전혀 실현 불가능한 듯 보이는 가상의 결과를 얻고자하는데 있다. 앞서 보았던 지킬박사, 봉녀, 투명인간, 4차원 인간, 투시인간은 그 미친 과학의 대표적인 경우들이다. 욕심이 과하거나 사물의 질서를 깨는 행위로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엇보다 미친 과학이 B급 영화와 충돌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엽기 영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죽지 못하는 The Brain that Wouldn't Die (1959)> 바로 이 방면에서 유명한 B급 영화다. Bill 생명을 회생하는 방법에 집착해오던 수술 전문의다. 그와 결혼을 앞두고 있는 애인 잰Jan과 주말에 야외별장을 운전하던 중 과속을 하다 자동차가 가이드레일을 들이받고 전복된. 잰은 사고로 죽고 빌만 살아남았는지, 빌은 차 안으로부터 뭔가를 양복 웃옷에 둘둘 말아쥐고 급하게 근처 아는 이의 집으로 뛰어간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일까? 그의 양복더미 안에 들어있던 것은 잘려나간 잰의 머리였다. 애인의 불에 탄 몸뚱이를 버리고, 사고 중 잘려나간 머리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들고 냅다 뛰었던 것이다. 빌은 잰의 머리를 그 집의 실험실에서 회생한다. 있을 수 없는 일에다 황당한 줄거리지만, B급 영화에선 언제나 가능하다. 한 이틀 정도 잰의 잘린 머리를 살아있는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후, 빌은 그 시간 안에 살아있는 '착한' 몸뚱이를 구하러 스트립바와 길거리를 헤맨다. 그동안 지하 실험실 안에서 잰은 정신을 차리고 빌이 자신을 살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잰은 비정상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연명하게 만든 애인 빌에게 애정보다는 극단의 증오심을 점점 끼운다. 게다가 잰은 재생 약품의 효과로 살아있는 생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텔레파시의 초능력까지 가진다. 급기야 그녀는 다른 방에 감금시킨 프랑켄쉬타인같은 괴물과 은밀히 대화까지 주고받는다.

    신만이 행할 수 있는 창조의 역할을 넘보던 빌은, 급기야 한 누드모델을 집으로 끌어들여 신체이식을 시도하나 옆방에 감금돼있던 그 괴물에게 목을 물어뜯겨 죽음을 당한다. 잰이 있던 그 실험실엔 불이 옮겨붙고, 그녀는 죽은 빌에게 절규하며 불에 타 스러진다. "내가 경고했지, 그저 날 죽게 내버려두라구. 하하하...." 앞서 마테오 복음만큼 인간 과학에 대한 독설이 섞였다. 사고사든 자연사든 때되면 응당 죽어야할 숙명의 시간을 거부했던 빌의 미친 과학은, 잰과 보이지않은 신으로부터 그렇게 처절한 응징을 당한다.               

 

과학의 흑백 시대를 넘어

흑백의 정서가 그랬다. 영화속에서 과학은 종교와 신의 율법을 두려워했고, 전쟁과 살육을 위해 사용했던 과학의 비인간성과 비윤리성에 치를 떨었다. 당시 미친 과학은 종교의 이름으로만 관리될 대상이었다. 요즘처럼 영화 속에서 생물학적 돌연변이들이 인기있는 시절과는 격세지감이다. 헐크, 수많은 엑스-맨들, 스파이더맨, 판타스틱 포 등을 상상해보라. 그들 대부분은 과학의 사생아들이지만, 정서상 윤리적이고 일반 인간들에게 영웅시된다. 파국도 없다. 더욱이 그 비정상성이 장점이자 힘이다. 신체 변이가 인간을 망치기보단 오히려 사회에 기여한다. 이제 과학의 가치가 달라진 것이 그 큰 이유일 것이다. 비록 대한민국에서는 일부 사기로 판명났으나, 유전학적 변종과 복제 실험에 최고의 과학자 명예를 안겨주는 시대에 과학은 신아래 머리 조아리기보단 이에 도전하는 위치로 등극했다. 결국 흑백시대에 투명인간 외 초능력 일동들이 비극이었던 이유는 당시 유전학적 실험이 생경했고, 천진한 과학보다 신의 위치가 부동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200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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