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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로의 서명지

올해 노동영화제 개막작 감독, 마르셀로 안드라데.

열정적이고 혁명에 대한 신념이 또렷한 이 미디어 활동가는,

한국에 와 있는 기간 동안에도 참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었다.

 

세미나와 토론회 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 농성장에도, 전범민중재판 실행위에서 준비한 만민공동회 자리에도 나타나,

우리의 투쟁을 공유하고 싶어했고,

연대의 수사학을 넘어 joint rebellion을 호소했다.



그리고 나에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한국 일정 막판에 이르자 꼬깃해져버린 서명지다.

 

지난 10월 12일은 베네수엘라 정부에서 지정한 '선주민 저항의 날'이었다.

이 날, 볼리바르 혁명은 미완의 혁명이며 여전히 진행형이라고 믿는,

마르셀로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식민주의, 제국주의의 상징인 콜럼부스 동상을 무너뜨렸다.

차베스는 이를 두고 말 안 듣는 아나키들의 소행, 쯤으로 폄하하며,

마르셀로의 세 명의 동지들을 체포했다.

 

(아직까지는 차베스가 민중 권력에 대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라고 믿기 때문에, 국가 권력 기구, 관료제가 적이지 차베스가 적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마르셀로는 동료의 말을 빌어 차베스의 이러한 정신분열을 두고 '혁명의 비극'이라 말하기도 했다. 대중 연설을 할 때는 모두 점거하라!고 말하면서, 정작 점거를 하고 나면 정부의 노선을 따르지 않는다고 체포하는 이런 아이러니.

액트 원고 때문에 12일 이후의 몇몇 글을 찾아보다가, 차베스 정권과 민중 사이에 친밀감과 긴장감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좀 헷갈렸는데, 문제가 뭔지 명확해졌다.)

 

마르셀로가 어딜 가나 들고 다닌 그 서명지는,

바로 이 동지들을 석방하라고 요구하기 위한 것이다.

듣자 하니 지난 금요일에는, 그나마 괜찮은 판사가 우익의 폭탄 테러로 사망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한다. (만민공동회에서 그 소식을 전하던 마르셀로의 표정은 정말 어두웠다.)

 

이 사진을 클릭하면, 아직 푸에르토리코 인디미디어에 얹혀 있는 베네수엘라 섹션으로 넘어간다. 페이지 중간쯤 이 사진이 있는 기사의 끄트머리에 가면 [English]: Sign Petition for the Release of the Prisoners 온라인 서명을 할 수 있다.

 

joint rebellion과 autonomous라는 말을 쉼없이 쓰던 이 활동가를 오래도록 잊지 못 할 것 같다. 그가 토해냈던 열정적인 문장들과 그것을 통해 쏟아져나온 나의 고민과 화두를 정리할 시간도 필요하고, 내가 선 자리에서 실천하고 행동하는 노력도 필요하고...

 

아. 그런데 요즘은 입에 한숨을 달고 산다. 왜 이렇게 일상이 뻑뻑한 걸까. 즐거워야 하는데 말이다. 사실 즐겁긴 한데, 빡빡해서 탈이다. 당장, 마르셀로는 콜럼부스 동상 뽀갠 거 관련 기사를 써달라는 요청도 했는데, 그조차도 못 하고, 대신 블로그에 끼적거리고나 있으니..

 

어쨌든 마르셀로 안녕, 잘 가요. 몇 시간 뒤면 떠나겠군. 조만간 UT-FPL(파차메리카 해방을 위한 어떤 전선) 프로젝트가 상당히 진행되어서, 파차메리카 대륙에서 제작된 다큐 시리즈를 볼 수 있으면 좋겠네.. 

무너뜨린 동상을 열심히 밀고 있는 두 사람 중 왼쪽 빨간 옷이 마르셀로.

 

(토론회 기사 : 해방의 집단적 의식을 키워가는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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