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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찬란한 나날 / 조선희


다세대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앞건물 복도에서 나를 보고 있는 눈빛 하나와 마주친 이후, 간유리문마저도 꽁꽁 닫아두고 잘 열지 않는다. 아침부터 햇빛이 쏟아지는 것 같다. 참으로 오랜만에 자바라 문까지 잡아당겨 열어놓는다. 그리곤 형광등 불을 켜고 이불을 뒤집어 쓴 채로 책을 읽는다.

 

'자신의 현실을 떠나 있는 것은 모두 판타지다' p.97

지쳐버린 탓인가. 이미 지쳐버린 선배들의 넋두리가 싫으면서도, 저 문장이 눈에 들어와 박히는 것은. 네가 뭘 했다고? 기가 차다는 듯한 웃음 섞인 핀잔이 들리는 것 같다. 내가 너만할 땐.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렇게 말하고 싶어한다는 느낌은 종종 받는다. 난들.

 

'한때 우리는 두 육체 사이에 종이 한 장 끼어들 수 없도록 가까웠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 해후라는 것도 바람 속의 먼지처럼 흔적조차 가뭇가뭇해졌다.' p.200

농담을 주고받는 동안, 이렇게 빨리 끊어버려도 괜찮은 건지 서로가 모른 척 염려하며 머뭇거리는 동안, 나는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가늠하느라 바빴고, 그건 생각보다 기운 빠지는 일이었다. 흔적조차 가뭇한데. 어느 날 바람결에 부음이 실려와도, 놀랍지 않으려나. 차라리 죽으라는 말을 모질게도 여러번을 했더랬다.

 

'김분녀의 일생'은 유쾌한 단편이었다. 그리곤.. 뭐, 전체적으로 잘 읽히는 편..

읽으면서는 할 말이 많았는데, 역시 컨디션이 중요해.

비관적인 세계관이 편안하달까. 그 정도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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