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4/07/11

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07/11
    할머니의 조끼(2)
    ninita
  2. 2004/07/11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 최승자
    ninita

할머니의 조끼

4월 말에 쓴 글인데..

 

-----------

 

23일 강제철거가 또 한 차례 시도된 풍동은..
확실히 지난 번에 봤을 때보다 훨씬 더 황량해져 있었다...

그 자리에서 조직부장을 맡고 계신 할머니를 인터뷰 했다..

풍동 골리앗의 할머니들은 모두 전철연 조끼를 입고 계셨는데,
그게 유난히 정겨워 보여 여쭈었다.

"조끼를 입으시는 것에, 어떤 자부심을 갖고 계세요?"

"그런 거 없어.."

허걱. 정말?
그 순간 옆에 있던 위원장님이 도와주셨다.

"그거 입고 있으면 떳떳하고, 당당하고 그래요?"

아.....

할머니는 '자부심'이란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셨던 모양이다..
그것이 할머니께 다가가는 언어로 다시 전달되었을 때,
할머니의 대답은 청산유수로 흘러나왔다..

"나는 요것을 입어가면 든든해.
든든한 마심(마음)이 나는 거야, 내가.
조끼를 입으면 요것이, 내 힘을 실어줘.
그니까 항상.. 자나 누나 항상 입고 있는 거여 요것만."

역전에서 살다가 철거당해 풍동으로 쫓겨왔다는 할머니.
13년을 살았는데 또 철거란다.

"참 팔자하구는 웃기는 팔자지, 더러운 팔자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 최승자

겨울동안 너는 다정했었다
눈의 흰 손이 우리의 잠을 어루만지고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따뜻한 땅속을 떠돌 동안엔

봄이 오고 너는 갔다
라일락 꽃이 귀신처럼 피어나고
먼 곳에서도 너는 웃지 않았다
자주 너의 눈빛이 셀로판지 구겨지는 소리를 냈고
너의 목소리가 쇠꼬챙이처럼 나를 찔렀고
그래, 나는 소리없이 오래 찔렸다

찔린 몸으로 지렁이처럼 오래 기어서라도
가고 싶다 네가 있는 곳으로.
너의 따뜻한 불빛 안으로 숨어들어가
다시 한번 최후로 찔리면서
한없이 오래 죽고 싶다

그리고 지금, 주인없는 해진 신발마냥
내가 빈 벌판을 헤맬 때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눈 덮인 꿈속을 떠돌던
몇 세기 전의 겨울을.

-------

 

특별히 아끼는 시는 아니지만, 청파동이니까.. 그리고 최승자니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