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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6/18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 / 김중배 칼럼
    ninita
  2. 2005/06/18
    그에게 명복을.
    ninita
  3. 2005/06/18
    가까운 끝.
    ninita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 / 김중배 칼럼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

저 죽음을 응시해주기 바란다.

저 죽음을 끝내 지켜주기 바란다.

저 죽음을 다시 죽이지 말아주기 바란다.

 

태양과 죽음은 차마 마주볼 수 없다는 명언이 있다는 건 나도 안다. 태양은 그 찬란한 눈부심으로 죽음은 그 참담한 눈물줄기로 살아있는 자의 눈을 가린다.

 

그러나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 박종철군. 스물한 살의 젊은 나이에 채 피어나지도 못한 꽃봉오리로 떨어져간 그의 죽음은 우리의 응시를 요구한다. 우리의 엄호와 죽음 뒤에 살아나는 영생의 가꿈을 기대한다.

 

"흑, 흑흑..."

걸려오는 전화를 들면, 사람다운 사람들의 깊은 호곡이 울려온다. 비단 여성들만은 아니다. 어떤 중년의 남성은 말을 잇지 못한 채, 하늘과 땅을 부른다. 이 땅의 사람다운 사람들을 찾는다.

 

그의 죽음은 이 하늘과 이 땅과 이 사람들의 희생을 호소한다.

정의를 가리지 못하는 하늘은 제 하늘이 아니다.

평화를 심지 못하는 땅은 제 땅이 아니다.

인권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은 제 사람들이 아니다.


 

그 날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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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명복을.

나와 동갑내기인 한 남자는,

아마 일당 얼마에 사측의 대체인력으로 투입된 용역이었을 거다.

운전을 할 줄 아는 건강한 몸뚱아리는 그렇게 팔려왔을 거다, 돌이키고 싶은 그 순간으로.

 

참을 수 없이 더웠을까? 달려드는 노동자들이 위협적으로 느껴졌을까? 그저 짜증이 났을까? 당황했던 걸까? 단지 우발적이었던 걸까?

무엇이었건 그는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고,

부당함에 맞서 싸우던 한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아내와 어린 딸만 세상에 남았다.

 

나와 동갑내기인 그 남자,

27세 최모씨는,

사람을 죽이고 말았다.

그는 질긴 목숨 원망하며 '죽은' 삶을 살게 될 거다.

 

이제 분노를 느낀다.

죽은 자와 죽인 자, 그 둘 모두를 비극으로 몰아넣은 자들에게.

 

비극은 둘의 몫이어서는 안 된다.

돌려주어야 한다. 반드시.

 

너, 자본에.

너, 신자유주의에.

 

다시 한 번,

고 김태환 열사의 명복을 빌며.

 

p.s 사람이 죽었습니다, 기계를 멈추세요, 라던 한 노동자의 절규가 떠오른다. 어느 다큐였던가.. 사람이 죽었는데, 세상은 너무나 태연하고, 나는 이제야 가쁜 숨 몰아쉬며 몇 글자 끄적인다. 지금까지도 많은 죽음을 보아왔다. 간접적일 뿐이었지만, 그럼에도 매번 먹먹함을 느낀다. 그들의 얼굴, 인간의 얼굴. 사라져버린..

 

p.s 레미콘이 사람을 치고 지나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떠올린 건 팔레스타인에서 활동하던 레이첼 코리라는 20대 초반 활동가의 죽음이었다. 그녀는 불도저를 막아서고 있다가 그 아래 깔려 죽었다. 몇 해 지나 그런 사실을 접하고 경악했더랬는데, 이런 어처구니 없는 폭력은 국경과 상관없는 일이다.

 

p.s 한국노총 방송국에 올라온 영상을 참세상에도 올렸다. 촬영한 사람도 고통스러웠겠지만 편집한 사람도 만만치 않게 고통스러웠을 거다. 어느 시점에서 끝을 낼 것인가. 열사의 죽음에 누를 끼치기 않기 위해 애쓴 흔적이 보인다. 이 영상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그랬으면 좋겠다. 스펙터클로 소비하는 사람이 혹시라도 있을까 걱정스럽다. 고인과 유가족에 자그마한 누라도 끼치게 된다면, 참세상에 올리자고 했던 결정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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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끝.

절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끝이라는 건.

그래서 늘 조심해야 한다.

 

당신 뒷모습이 무척 쓸쓸했어요,

나는 안타까워 했지만 그건 나를 벗어나지 못한 메아리일 뿐.

그림자 발끝에라도 가까스로 닿기를 소망하지만,

그 끝에 닿는다 하여 만날 수 없는 이들이 만나지는 건 아니다.

 

피로한 얼굴로 안녕.

 

어른들의 삶에 희망은 없다.

 

2월쯤 느꼈던 절망감을 되감기하고.

 

- * -

 

요즘 들어..

재작년 가을쯤, 약 때문에 관절까지 아팠던 기억이 자주 떠오른다 .

걷는 것조차 힘이 들어 오르막길 가운데쯤 주저앉아 버렸던..

 

관절까지 아픈데,

오르막을 오르고 있다.

 

완만한 경사는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

 

- * -

 

탕.

 

탕.

 

표정은 총을 쏘고 있었다.

 

다시,

끝이라는 건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

 

올해 들어 벌써 몇 가지의 '끝'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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