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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이 책을 처음 내면서 쓴 서문을 다시 읽어 보니 말미에 "나는 지금 지쳐 있고 위안이 필요하다."고 쓰고 있다. ...... 이 소설에서 그걸 특별히 강조한건 아마 순전히 기억에 의지한 소설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을 환기시키기란 덮어준 상처를 이르집는 것과 같아서 힘들고 자신이 역겹기까지 하다.
- p5, 다시 책머리에

더 큰 문제는 기억의 불확실성이었다. 나이 먹을수록 지난 시간을 공유한 가족이나 친구들하고 과거를 더듬는 얘기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같이 겪은 일에 대한 기억이 서로 얼마나 다른지에 놀라면서 기억이라는 것도 결국은 각자의 상상력일 따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 p6, 작가의 말

엄마는 빈틈없이 깐깐한 것 같으면서도 그렇게 허술한 데가 있었다. 엄마가 셈이 바른 것은 자타가 인정하는 바이나 막상 자신의 가난한 돈지갑이 새는 것도 모르는 것이 엄마의 또 다른 면이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엄마에게 그런 허술한 일면이 있었음을 감사하고 또한 그로 인해 엄마를 사랑한다.
- p90

그건 짝끼리 서로 마주 보고 서서 상대방의 뺨을 선생님이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때리게 하는 방법이었다. 우리끼리 때리면 살살 때릴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다.
......
생각해보라. 열서나 살밖에 안 된 계집애들이 마주보고 서서 서로의 증오심을 무진장 상승시켜 가며 꽃 같은 뺨이 시뻘겋게 부풀어오르도록 사매질을 하는 광경을. 그거야말로 구원의 여지가 없는 지옥도였다.
- p142

혁명가들을 해방시키고 숙부를 사형시킨 형무소도 곧장 바라다보였다. 천지에 인기척이라곤 없었다. 마치 차고 푸른 비수가 등골을 살짝 긋는 것처럼 소름이 쫙 끼쳤다. ...형무소에 인공기라도 꽃혀 있다면 오히려 덜 무서울 것 같았다. 이 큰 도시에 우리만 남아 있다. 이 거대한 공허를 보는 것도 나 혼자뿐이고 앞으로 닥칠 미지의 사태를 보는 것도 우리뿐이라니.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차라리 우리도 감쪽같이 소멸할 방법이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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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그린 자화상, 유년의 기억'
소설 제목대로
박완서 작가의 유년을 하나하나씩 밟아가며 아파하며
책 끝을 마무리졌다.
한명의 삶을 통해, 그때의 삶이 어땠을까 살짝 살펴보는
계기가 된듯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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