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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2/1 임시대의원사태, 어떻게 볼 것인가

(www.pssp.org에서 펌)

<현 사태에 대한 게시판 토론을 위해 개인적인 단상들을 급하게 두서없이 썼습니다. 고려하여 여러분의 토론에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1/ 향후 사태 진행방향에 대하여

- 신문방송언론에서는 이번 사태를 민주노총 강경파의 폭력난동으로 규정하면서, 노사정 대화시도 좌절을 중점적으로 문제 삼고 있다. 민주노총의 내부분열과 폭력사태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민주노총 강경파 분리 매도에 중심이 실린 것이다.

- 이수호 집행부는 이번사태를 민주노총 대의원이 아닌 일부단체, 학생, 비조합원(해고자, 비정규직, 미조직사업장)이 일으킨 폭력사태로 규정하고, 이들 비대의원, 비조합원들의 참여와 이들과 함께 움직인 대의원 조합원들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다.

- 사태를 주도한 세력들은 아직까지 뚜렷한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지만, 사회적 교섭안 철회에(두 번의 대대 유예로 결과) 실패한가운데 우파와 여론의 역공에 노출되어있는 처지인 것은 분명하다.

- 이번주중 중앙위원회와 2월말 임시대의원대회 개최. 사회적교섭 안건은 재상정될 듯 하다.

- 이수호 집행부는 2/1 사태 책임추궁과 함께 여론의 추이에 따라 위원장집행부 사퇴-재신임안으로 자기세력 결집과 공세적인 국면전환을 노리는 대응방안을 구사할 가능성도 매우 크다.

- 임시국회에서 비정규 개악안이 통과될 경우와 유예될 경우가 있을 것이다.
국가보안법 처리 등을 둘러싼 한나라-열린 우리당의 대치가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는 경우 비정규개악안은 이번 임시국회에서도 유예될 가능성이 높다. 열린우리당으로서는 민주노총 강경파의 분리타격을 통한 민주노총의 노사정위 복귀를 작은 않은 플러스요인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단순히 사회적교섭안 철회를 방침으로 한 전노투 측의 물리적 동원이 1/16대대와 2/1대대 수준으로 조직되고 실행되기는 만만치 않다. (2/1 대대에서 시도된 안 철회/투표저지 방침만으로는) 중앙파와 비전노투세력의 적극적인 참여가 쉽게 보장되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 집행부 재신임안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교섭안 철회를 집행부 탄핵 수준으로 높이지 않는 한 수세적 위치에 몰린 전노투 측의 국면전환은 어렵다. 그러나 집행부 탄핵은 실질적인 성과가 보장되는 2월파업(당면 비정규개악안저지)계획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채택되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2/ 쟁점 추출


1/ “사회적 교섭철회 입장은 옳았으나, 문제제기 방식에 과도함이 있었다”는 식의 양비론은 현상황의 개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같은 양비론은 (분리될 수 없는) 입장과 문제제기방식에 대한 평가를 관념적으로 분리함으로써 벌어진 폭력사태에 맞서기 보다는 그것을 (관념적인 분리평가방식을 통해 지체된 노동자운동 혁신의 필연적인 귀결이라기보다는) 사후적인 평가의 형태로 회피 가능한 무언가로 부당하게 위치 짓기 때문이다. 평가의 핵심은 양측의 입장대립이 물리적 충돌방식으로 변질된 원인에 대한 사고이다.
그렇지 않다면, 전노투 등의 대응이 우파지도부에 대한 책임전가를 통한 반정립인 것처럼 전노투 등에 대한 책임전가를 통한 ‘반정립의 반정립’ 이상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우파의 타협과 변절’이 운동위기진행의 구조적인 조건인 것처럼 ‘좌파의 무능’ 또한 비난과 책임전가로는 풀릴 수 없는 구조적 조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이수호 집행부의 사회적교섭안 강행처리 방침과 전노투의 사회적교섭안 철회방침의 충돌이 왜 물리적 충돌로 치달았는지를 발본적으로 숙고해야 한다. 양측의 대립이 물리적 충돌로 치달은 본질적인 이유는 당면한 「비정규개악안 저지 2월파업」과 구조조정저지투쟁의 불확실한 전망에 대한 뚜렷한 대안이 상호부재한 가운데, 양측의 대립이 대안부재의 책임전가 양상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이수호집행부가 투표강행과정에서 보여준 비민주성과 전노투의 물리적 대응방식의 한계는 오히려 부차적인 원인이다.
양측의 물리적 충돌이 벌이지고 있던 현장에 걸려있던 「2월 총파업, 비정규개악법안저지」 플랭카드가 위기에 빠진 민주노총의 조직적 이념적 구조를 공유하는 강온파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내세우는 대안부재책임의 알리바이였다는 사실이야말로 현 사태 근본적 평가의 출발점이다.


2/ 이수호집행부와 전노투등의 반대파는 「2월파업-비정규개악안저지」를 공히 민주노총이라는 노조조직 차원의 이익을 방어하는 「구조조정 저지」투쟁의 관점에서 배치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경제위기국면에서 미시적 경제정책조정의 성격을 가지는 구조조정을 막아내기 위한 방어적 활동이 어떤 유의미한 성과를 내올 것이란 확신은 누구에게도 없다.
이수호집행부의 「사회적 교섭안」이 이같은 현실을 고스란이 받아들이는 대안이라면(투쟁과 교섭의 병행으로 표현된 허구적인 사회적 교섭과 정치적 경제주의 혹은 우파적으로 재해석된 사회적 연대), 전노투의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실질적 총파업안」은 구조조정 저지투쟁의 형식으로는 극복되기 어려운 의지주의적인 대안이다.
경제공황시기에 기존의 고용-임금 및 노조조직을 방어하기 위한 투쟁은 지배체제와 지배계급의 위기 진행과정에 뒤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종종 대중의 일차적인 저항은 지배계급내 개혁분파의 정치적 동원에 종속된다. 집단적인 형태의 저항행동 마저 지배계급이 단결한 결과이지 피지배계급이 단결한 결과가 아니며, 이 과정에서 (기존 체계에 머물러있는) 조직대중의 자기방어행동은 점차로 내외부적으로 의심되고 공격받는 자기한계의 정당성여부에 골몰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때 대안체계적인 관점과 이에 부합하는 운동이 등장하기 이전에 객관적으로 주어진 운동의 방어적 한계를 받아들일 것이냐 거부할 것이냐의 형태의 쟁점은 기본적으로 자기파괴적인 성격을 가진다.
(망하는 회사에서 회사-현장을 벗어나는 계획 없는 구조조정반대는 노조사수VS구조조정수용으로, 국민경제적인 민족(국가)적 대안을 벗어나지 못하는 반세계화 대안은 산업별 이해에 종속된 국제경쟁력-수출경쟁력 확보로 귀결되어 산업별 이해관계와 위계화에 기반하여 분열된 노동자들 간의 대리전이 된다.)

그렇다면 지배계급의 정치적 동원을 벗어나기 위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혹은 그 해결책을 찾아가기 위한 우리의 원칙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지배계급의 대응에 의해 출현하게 되는 새로운 계급투쟁의 조건을 객관적인 기반으로 하는 대안체계적인 운동 형성의 성패에 달려 있을 것이다. 또한 대중의 자기방어행동은 정치적으로 한계적이지만, 그 자체로 정당하며, 대안체계적인 행동은 자기방어행동의 외곽이 아니라 그 내부로부터 형성된다는 점이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우리가 가장먼저 확인해야할 기본원칙이 아닐까한다.


3/ 이수호집행부의 사태책임 추궁 방향은 기본적으로 비조합 단체, 비대의원 현장조합원의 대대 참가제한과 대회장내 질서규율 확보일 가능성이 높다. 2/1 사태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던 것도 참관인석의 연호(대회장 참가)에 대한 물리적 제지였다.

그러나 민주노총 조직의 폐쇄성이 강화되는 방향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민주노총은 그 설립과정에서 비노조노동자운동단체 배제, 지역운동으로부터의 노동자운동 철수를 감행함으로써 탈사회운동적인 방향을 지향했다. 오늘의 사태가 이러한 반사회운동적 지향이 빚은 근본적 혁신 지체의 결과라고 본다면, 비노조 운동단체, 해고자, 미조직-비정규직 비조합원, 비대의원 평조합원의 대의원대회 논의참여-참관을 제한하고, 토론질서규율을 강화하는 등의 대응방향은 이러한 민주노총의 운동사적 역행에 입각한 반동적인 대응인 것이다.

민주노총의 대표성 위기는 오히려 조직구조를 더 열린 구조로 혁신하는 방향을 통해서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또한 민주노총 지도력/조직력의 위기의 원인은 이수호집행부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현장(동력)과 무책임한 전투성도 아니며, 우파 지도부의 타협과 변절도 아니다. 자본주의 구조적위기와 이에 동반하는 민족국가-정치의 위기, 말하자면 집단적해결방식의 포기와 대안부재가 그 원인이다. 때문에 그 대안 역시, 전투성의 완화, 강경지도부구축이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의 보다 확장된 연대와 민주적 관계의 재정립 과정을 통해 새롭게 형성되어야하는 과제인 것이다.

4/ 그간 우리가 줄곧 주창해온 노조조직의 사회운동적 개조, 사회적 연대 실현의 문제의식에 입각해볼 때,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대안적 방향을 추상적인 차원에서나마 정리해보자면, 그것은 첫째, 현장주의와 정파성의 동시극복을 통한 노동자 사회운동의 실현, 2> 인간학적(성적 지적) 차이속의 평등과 국제주의에 적합한 새로운 노동자운동 형태 창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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