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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블루라이트 요코하마.mp3 (2.84 MB) 다운받기]
사실 나는 이 노래가 유행하던 해에 태어났지 이 노래와 함께 논 세대는 아니다. 내가 이노래를 알게된건 11년전 일했던 본드공장에 운전기사로 일하셨던 박기사님 때문이다. 그는 ㅇㅇ수도회의 수도자였다가 일명 환속하여 운전으로 일하시는 분이었다. 눈이 너무 맑으셨고, 무척이나 평온하셨던 그 분이 오고는 공장이 밝아졌었다. 어찌보면 '아이구 저러시면 혼자서만 심드실텐데' 내심 걱정까지드는 분이셨다. 타이루를 지게차로 실어드리고 노래 얘길하다보니 황토십리길,블루라이트 요코하마, 박일남의 정.. 이런 노래가 그분이 수도자로 사시기 이전의 노래였다. 당시 유행하던 소리바다란 곳에서 어렵지 않게 구해서 CD에 담아 드렸다. 그 5장의 CD를 박이시도르 기사님은 차에서 애지중지 듣고 다니셨다.
내가 담아드린 노래가 그분께는 수도회 이전의 삶을 되살리며 수도회로 단절되었던 삶의 이어주는 지팡이였을 것만 같다. 지금은 없어진 그 공장을 내가 나오고는 한참후 라인이 없어져 진천 어디엔가 운전기사로 다시 들어가셨다는 연락이 마지막이었다.
어려서 듣던 일본노래하면 80년대 긴기니기니 하던거였지 블루라이트 요코하마란 노래는 사실 내 기억에 없었다. 박기사님 때문에 알게된 이 노래는 나도 좋다. 순대집에서 일하셨던 사모님은 잘 계실까? 아이는 낳으셨을까?
박기사님이 보고 싶다.
[한영애-01-목포의 눈물.mp3 (6.23 MB) 다운받기]

보은 대추축제앞 국화

칡넝쿨에 매달린 토사자 열매기


영글어 가는 버디나물 씨앗 (뿌링이 : 연삼)

태자삼

?

꽃향유

산국
[꽃별5집 - 06 월하정인(月下情人).mp3 (4.42 MB) 다운받기]
안녕하세요. 한 2년전인가? 평생교육원서 해금 배웠다고하면서 올려다봐요, 밤하늘의 별을 악보를 문의드렸던 청주사는 별많다 라고 해요. 보내주신 악보 덕분에 월드컵경기장 1번출구 투쟁문화재서 잘? (열심히! 즐겁게!!) 해금곡을 들려드릴 수 있었습니다. 감사인사가 넘 늦었나요?ㅋㅋ 아쉽게도 공연 사진은 구할 수가 없었고요. 1. 민중가요 - 계약직 아줌마 2. 민중가요 - 코딱지꽃 (누이의 서신) 3. 올려다봐요, 밤 하늘의 별을 이렇게 3곡을 연주했었지요.
그후로 또 정신없이 직장대니고.. 결혼도 했고요.. 음. 그러다보니 해금을 그때 공연이후 묵혀놓게 되었지 뭐예요. 그래서 다시 도움 요청드려요. 다시 해금을 잡고.. 틈틈히 연습을 할 수 있게.. 제가 젤루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인 히칸바나, 별빛, 해변의 노래, Feeling Home, 하얀 색은 연인의 색, The Whole Nine Yards, 사월, 월하정인 악보를 어디서 구할 수 있을런지 알려주세요.
며칠전 저희 매장서 초밥코너 아주머니가 기계에 왼손 4지가 잘려나간 보고서를 쓰다 녹초가 되어 오늘 집에와서 소주를 좀 마셨어요. 저는 기계의 구조적 결함에 의한 사고라고 하고.. 점장은 본인 부주의라 하고 암것도 안하고 있고.. 휴. 병문안 갔다왔다며 한다는 소리가 기계 당장 폐기하고 바꿔야한다니 기계값이 얼만데 바꾸냐 그래요. 손가락 잡아먹는 그 초밥기계는요.. 자세히 알아보니 정지버튼도 없고.. 공간도 손가락이 대일정도로 좁고.. 밥을 꺼낼때도 막 작동하고.. 그런 기계였어요. 곧바로 119로 접합 전문 병원으로 옮겼지만.. 손가락 끝마디고 뼈가 완전히 으스러져서 접합을 할 수 없다는거예요. 잘려져 기계를 돌아 초밥과 함께 뭉쳐져 나온 아주머니의 손가락을 물이 닿지 않도록 얼음주머니에 싸서 병원에 왔지만 허사였어요. 기계 못쓰게하고 바꿔야한다.. 안전교육 좀 해라.. 안전사고 예방할 수 있는 부서도 인원도 없다.. 했지만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손가락을 잡아먹어은 그 기계로 여전히 초밥을 맨들어 700원에 팔고 있어요. 우리 노조 위원장님께도 메일로 알려죠. 2명의 조합원과 제가 함께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어요.
평소 조용조용 점잖으시고.. 비명소리만 지르다가 응급실 진통제 주사를 맞고는 바쁠텐데 돌아가서 일보라고 말씀하셨던 아주머니께서 오늘 전화를 주셨어요.
"병원서 5일이내로 어떻게 할지 회사랑 상의해서 얘기해달라는데 회사서는 아무얘기도 없고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어요. 주말이고.. 오후조 근무자가 안나온다고 해서 서두르다 이렇게 된건데..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누군가에게 꼭 책임을 물어야겠어요"
탈퇴조합원이신 ㅁ아주머니는 입원 3일만에 평소와는 다르게 분로로 격앙되 있으셨슴다..
"좀 어떠셔유?"
"입원실서 약먹고 치료중예요"
"산재로 하신다고 얘기하시고요.. 회사 ㅇㅇ팀장 전화번호 알려주세요. 지금껏 회사서 아무 얘기 없었으면 혹여나 점장은 단체보험이니 어쩌니 하며 은근 슬쩍 넘어가고 싶어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는 의사선생님이 치료하랄때까지 재활치료까지 잘 받으시면 되는데.. 별도의 보상은 더 얘기를 해봐야할거예요."
"나 너무 억울해서.. 전에도 오후조 ㅈㅇㅇ 관둔다고 안나온다하다 다시 나와 꼬빡 일하고 이번엔 또 이른 사고까지 당하고 하니 책임을 뭍고 싶어요. 너무 억울해. ㅂ관리자 내 가만 안둘거요"
"모든 책임은 점장이 지고.. 최소한 그런 얘기는 점장한테 하셔야해요. 나머지는 다 점장말 듣는사람들이라 소용없어요. 이런 말씀은 좀 뭤하지만 제가 최초보고서로 기계결함으로 사고났다니 점장은 본인 과실로 사고난거래요. 그래서 다시 보고서 지금 쓰고 있어요. 초밥기계에 1cm 작업공간에 손가락을 넣어야하는데 넣다보면 절단사고 지점에 닿을 수밖에 없고.. 그런 위험부위는 덮개로 가려져야하고.. 선반 왼쪽에만 정지센서가 달려 왼쪽 초밥을 들어내면 기계가 작동하고 초밥끼리 엉겨붙다보면 손을 더 깊숙히 넣어야하고.. 비상정지 버튼이나 정지 센서도 없고.. 완전한 기계결함이예요. 보고서 내용은 ㅂ관리자한테 달라시고.. 안주면 제가 드릴께요. 그리고 조합원이시면 위원장님이나 저나 회사에 얘기하기가 더 수월하고 강력하게 얘기할 수 있는데.. 그런게 좀 아쉽네요. 우리 노조 위원장님도 초밥코너 직원이셨으니까 더 잘 이해하실거고 어떡하면 좋을지 잘 알려주실거예요. 위원장님이랑도 전화통화 꼭 해보세요. 나중에 응급실에 ㄱ과장이 왔었잖아요? 와서 하는 얘기가 저보고 당장 회사로 돌아가라는 거예요. 그래서 보호자로 되있어 안된다고 계속 있었던 거예요. 노조 간부가 함께 있는게 점장 입장에선 껄끄러워 ㄱ과장을 보낸 것 같아요. 저는 노조간부라 보고서를 쓰건 뭐를 하건 ㅁㅇㅇ씨 편에 설수 밖에 없는 사람이예요. "
손가락 한마디가 없어져버려 어찌할줄 몰라 막막해하며 분노하는 그 분께 조합원이면 회사에 더 적극적으로 얘기했을거란 얘기를 제가 꼭 해야만 했을까요?
점장 부인은 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인데.. 자기 부인 손가락이 일하다 으스러져 날아가버렸으면 '기계값이 얼만데 바꿔달라고해?' 하며 사고를 함께 격은 동료 직원들에게 초밥을 찍게하여 매대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팔 수 있었을까요?
낼은 산에 버디나물이란 약초의 씨를 받으러 갈 생각이예요. 제가 쉬는날엔 산엘 자주 댕겨요. 내년엔 농사도 짓고.. 산야초 효소를 맨들게 되면.. 꽃별님 꼭 한 병 드리고 싶어요.
읽어주셔서 고맙고요. 건강하세요.
청주사는 별많다 드림.
ps. 1. 허락해 주신다면.. 전에 주셨던 올려다봐유, 밤 하늘의 별을 악보와 보내주실 것만 같은 위에 악보들을 제가 가입되어있는 다음카페 해금ㅇㅇ 이라는 곳의 악보게시판에 올려서.. 다른 이들도 꽃별님 곡을 받아서 연습할 수 있게 하고 싶은데요. 그렇게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 올려다봐유, 밤 하늘으 별과 함께 연주했던 노래 mp3 보내드려요.
[08 - Mercedes Sosa - Solo Le Pido A Dios.mp3 (6.41 MB) 다운받기]
실외기 온도계가 40도를 넘어갔고.. 한밤중 방바닥은 군불을 땐것 같이 달궈졌고.. 선풍기에선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어왔슴다. 인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슴다.
오늘은 이렇게 더위에 지친 몸을 보신할 보신음료 하나를 말씀드리겠슴다. 이름하여 정력 3호.
1호는 나물을 재료로.. 2호는 알로애를 재료로.. 3호는 마늘+당근 을 이용해 맨들어 먹어봤고 그중에 3호가 가장 무난한 듯 함다.
ㅇ 준비물
마늘 반 / 당근 반, 깨끗히 씻은 PET병(주딩이가 큰 꿀병이 더 좋음), 믹서, 먹는EM 1.0 (없을경우 EM원액으로 대체), 소금 반 스푼, 올리고당 한 숟갈, 요구르트 한 줄.
ㅇ 맨드는 법
- 마늘반, 당근반을 갈아서 PET병에 숟갈로 잘 떠서 넣는다. (뻑뻑하면 요구르트를 넣어 줌)
- 소금 반 스푼, 올리고당 (혹은 설탕) 두어 숟갈, 먹는 EM 약 40ml (소주 한 잔)
을 넣은다음 마구 흔들어주고 냉암소에 보관.
- 2~3일에 병을 두어번 살짝살짝 열어줘 발효되며 나오는 가스에 병이 터지지 않게 함.
- 약 10일정도 지나서 가스가 소량 나오면 완성.
ㅇ 먹는 법
1/4 혹은 1/5로 물에 희석하여 아침, 점심, 저녁 먹음. (냉장보관, 직사광선 금지)
(개인에 따라 생마늘이 위에 부담을 주지 않을 정도로 물의 양을 조절함)
- 생수병에 미리 희석하여 두고 먹으면 더 좋음. (2차발효가 다시 진행으로 흡수율 배가됨)
· 막걸리병 정도 크기의 병이 적당함. (변질을 막기위해 개봉후 하루나 이틀내에 먹어야함)
· 조그만 병으로 다시 옮겨담을때도 숟가락을 잘 이용함.
ㅇ 효능
- 불면증, 신경통, 두통, 소화불량, 변비, 치질, 위경련, 피로회복, 근육통, 뼈마디가 쑤시거나 굽혔더 폈다 어려운데, 당뇨, 고혈압, 협심증, 충치, 감기, 자주 놀랄때, 열나는데... 예방 및 치료 효과가 있다함다.
정말 좋슴다.
그러나 뭘 먹어서는 한계가 있을뿐 그저 보조제일 따름임다.. 먹는 만으로는 절대루 건강해 질 수 없슴다.
내 소중한 몸을 가꾸고 지키려는 목적의식적인 관심과 노력, 꾸준한 운동이 먼저입니다.
[02꽃별 - 하얀 색은 연인의 색.mp3 (3.61 MB) 다운받기]

내 친구, 미생물들을 보기위해.. 현미경을 하나 샀슴다.
껍데기엔 800x라고 써있는데.. 아무리 디다봐도 100배정도 밖에 안보이는 것 같슴다. 동네 과학상사 가서 메틸렌불루, 아세토카민도 사왔었슴다. 미생물 형체라도 보고 싶었는데.. 개미나 좀 크게 봐야할 거 같슴다. ㅋ
8만원에 800배면 어쩐지 싸다 싶었는데요. 홧김에 중딩때 배운 양파껍질을 냉장고서 꺼내 디다보고는 기념사진 한 장. ㅋ 일명 800배 비율로요. 이런 거짓말좀 안했으면 좋겠슴다.
아무튼 삼박골 심마니가 인제는 첨단장비를 장만했슴다. ㅋㅋ
[victor jara - juan sin tierra.mp3 (2.83 MB) 다운받기]



산길을 가다 만나서.. 통채로 훔쳐왔슴다.
이렇게 한 포기 있는 놈과.. 곧이어 열매를 매달려는 놈은 캐는게 아닌데 그만.
등골나물이라 부른다는데.. 잎새귀는 쓴맛이 났고.. 통채로 씻어 효소통에 던져버렸슴다. 음.


전에 말씀드렸던 사상자라는 놈인데.. 뱀이 이거 먹어서 정력에 좋다고도 합니다. 뱀도랏.
열매기가 영글어 옆에 있는 개망초나 다른 풀과 금새 구분이 가능해졌슴다. 음.


개울에 들러 땀좀 씻으러 갔다가.. 윽.
조그만 살모사 한 마리가 개구리를 먹을래다 화들짝 놀라 냅다 도망쳤슴다.
수영도 엄청잘해서 물뱀인줄 알았는데.. 영락없는 살모사임다.
놀래서 들고대니는 방물을 마구마구 흔들었으나 살모사는 꿈쩍하지 않았슴다.
개구리같이 잽싼 놈을 물어서 독을 넣어 잡아먹는걸보니 뱀은 존나 빠른게 틀림없슴다.
다시와서 밥을 먹도록 세수를 하자마자 잽싸게 도망나왔슴다. 음.

태풍때문인지 벌써 가을 햇볕을 느꼈슴다.
약간 따갑고.. 더 노랗고.. 더 가볍고.. 찡허고.. 설레이고.
[Cris,Marco,Leo-CD2 - 02 MIRACLE OF LIFE.mp3 (8.67 MB) 다운받기]

<산삼 캔 장소.. 지방도로 옆산. 들어가 보면 실제로 그렇게 많이 우거지지 않았고 보라색 칡꽃이 예쁘게 피어 있었슴다>
산삼을 캤슴다. 저번에 우면산 등산로에서 캘때와 비슷하게 이번에도 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슴다.
산삼 밑을 조금 파보니 양분을 잔뜩먹어서인지 뿌링이 밑 토질은 푹푹 꺼질 정도로 푸석푸석했고.. 이번 산삼도 시원한 바람이 느껴지는 골짜기에서 가파르다 평탄해지는 곳이었슴다.

< 심~~봤~~~다~~~~~~~~ ㅋㅋ 조그만 놈인데.. 요놈이 산삼입니다. 예쁘게 생겼죠? >
개모시풀 꽃이 피었길래 조금만 뜯으러 갔다가.. 그만 산삼을 만났슴다. 해고되신 전..위원장님, 부위원장님 만나러 서울갔다가.. 우면산 등산로에서 산삼을 캘때보다는 흥분되지 않았고 경험이 있어선지 차분해졌슴다.
이 산삼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업으로 산삼을 캐다 팔지않는 삼박골 심마니인 까닭에.. 캐는 산삼의 주인은 심마니가 캐러대닐때 한 뿌링이 꼭 캐서주려고 했던 분이 산삼의 주인님입죠.
지팽이로 주변을 멀지감치 살살 파내려가 실뿌링이가 끊어지지 않도록 캤슴다.

- 엄마.. 산삼 한 뿌리 캐서 식탁위에 놨으니까 먹어.
- 뭐? 진짜 산삼을 캤단말여? 너는 맨날 무슨 산삼을 그르키 캐오냐? 이번엔 또 어디여? 너나먹어!!
- 그럼.. 갖다 버릴껴.
- 알앗써.. 신문지에 싸서 냉장고에 넣어놔! 참내...
- 응..
[강은일 - 03 - 남몰래 흘리는 눈물.mp3 (6.10 MB) 다운받기]
꼴통들이 간다
임시총회는 무사히 끝났다.
조직형태변경의 안건은 조합원 찬반투표 결과 88%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이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회사와 본조일 것이다. 그들은 이평공장 조합원들이 과연 얼마나 찬성표를 던졌는지, 그 결과에 따라 대응하는 방법이 달라질 것이다. 그는 서둘러 임시총회결과공고문을 작성하면서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
노조를 만들고 첫날부터 그는 공장 현관 앞에서 출근하는 조합원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었다. 생산현장 전원이 100% 노조 가입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그는 조합원들이 혹시나 불안해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하면서 지부장으로서 의연한 모습을 조합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노조소식지 1호를 나눠주며 힘내자고 격려를 하면서, 마주친 조합원들의 살아있는 눈빛. 50대 나이를 잊은 듯, 다들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아! 이평지부가 잘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거 나도 한 장 주슈!”
공장장이었다. 그는 소식지를 한번 휘익 훑어보더니 단체협약? 이라는 말이 생소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다.
“요구안 곧 보낼 겁니다.”
“요구안이요? 올라가서 나랑 차나 한잔 합시다.”
“공문으로 보내세요!”
“뭐, 공문?”
그는 이 자가 노사관계에 있어서는 맹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합원들이 출근을 거의 다 했을 무렵, 웬 낯선 사내가 그에게 다가와 꾸벅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지부장님 되시죠?”
명함을 보니 정보과 형사였다.
“노조 첫날부터 이렇게 사업장을 드나들어도 되는 거요?”
“여기 공장장이 만나자고해서….”
“그래요? 무슨 대책이라도 세워야겠다!”
“통상적인 업문데요 뭐. 소식지까지 만드신 걸 보니 세게 하시려나봅니다. 지부장님?”
“그만 갈길 가세요.”
“살살 하세요. 언제 식사라도 한번 하시지요?”
노조설립 첫날부터 형사가 출입하고 생산본부장이 이곳 이평에 내려온다며 노조 출범 소식이 그룹 전체로 번져가는 가운데, 정작 불똥은 전혀 다른 곳에서 튀고 있었다.
“나 본조 왕위원장인데, 이평공장에서 독자적으로 지부단협을 체결한다던데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거 하지 마세요! 조합원이래야 기껏 64명밖에 안 되는 곳에서 지부단협이 뭐가 필요합니까? 그리고 요구안을 보니까 본조에는 없는, 내용들이 있던데….”
“무얼 가지고 그러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주세요.”
“비정규직 채용금지, 생산물량 외주화 절대금지, 더구나 산재발생시 즉각 작업중지권 발동! 아주 수준이 높고 뻔지르르하던데 조그만 공장에서 이런 뻥튀기가 통할 것 같소? 실현가능한 의제를 가지고 교섭을 해도 될까 말까 하는 판에?”
“해보지도 않고서 미리부터 포기한다면 거래밖에 더 되겠습니까?”
“거래라? 교섭이라는 게 사실 그런 면이 없지 않아있죠. 시쳇말로 밀당 같은 건데, 그것도 잘 하려면 회사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해야 하는 거요. 개나 똥이나 무조건 들이댄다고 다 되는 게 아니린 말입니다! 회사사정도 쥐뿔도 모르면서.”
“교섭의 달인 같으신데 지부 좀 도와주시지 그러세요?”
“달인까지는 아니고 주위에서 좀 한다는 말은 듣죠. 투쟁사업장 같은 데를 보면 참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노사가 거의 타결 직전까지 왔는데, 더 투쟁해야 한다고 일부에서 재 뿌리다가 결국 쪽박도 못 찬 사업장이 많거든. 교섭은, 아 여기까지구나 하는 동물적인 감각이라고 할까? 노하우라고 할까? 그런 게 있어야 되는 겁니다. 아무나 교섭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럼 위원장님이 내려와서 직접 교섭 좀 해주시죠?”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 같아요? 민노총 중집에 들어가서 올라온 안건 처리하기도 바쁜 사람이오.”
“위원장님이 내려와서 교섭하시면 이곳 조합원들도 좋아할 텐데요?”
“내가 일개 공장장 나부랭이랑 앉아서 이빨 깔 군번이요? 그룹 임원진이라면 모를까.”
“그럼 우리끼리 교섭하겠습니다.”
“아니, 위원장 말을 지금껏 뭐로 들은 거요? 도대체 지부에서 단협이 뭐가 필요하단 말이오? 처음 노조를 해서 성과를 내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 심정 나도 압니다. 그런데 의욕만 가지고 덤비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더구나 이런 요구안을 가지고 회사와 교섭을 타악 해버리면 본조는 뭐가 됩니까? 본조 물 먹이는 거밖에는 더 됩니까? 그런 요구안은 나도 만들 수 있어요. 민노총 모범단협안 보고 베끼는 거, 누군 못하나? 분명히 말하지만 지부는 이제 엉금엉금 기는 단계에요. 본조에 단협이 있으니 그걸 그대로 적용받으면 됩니다.”
“본조 단협은 매우 부실합니다. 이를테면 토요일이 무급휴일로 되어 있어요. 민노총 사업장으로서 부끄러운 일입니다. 여성들의 생리휴가도 무급으로 되어 있고요.”
“그건 기타 수당으로 대체된 겁니다. 나도 우리 단협이 부족하다는 건 알아요. 회사 사정상 어쩔 수 없었던 경우도 있고요. 우리 회사가 상당히 보수적인 편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본조가 있어서 이 정도라도 갖게 된 겁니다.”
“본조는 자꾸 회사사정, 기업문화 이런 것들을 말하는데 우리는 그런 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노조를 처음해서 그래요. 하다보면 기업문화에 익숙해집니다.”
“노조가 기업문화에 종속돼서는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본조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다고 했잖아요.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경제적 지위향상이 우선입니다.”
“거기에만 머물러 있는 게 문제 아닌가요?”
“지부장 당신! 마치 평론가처럼 말하네?”
“이미 노동현장은 무너졌습니다. 사람들이 오직 경제주의적인 사고에만 매몰된 결과입니다. 회사와 한판 붙어야겠다고 투쟁을 선언하지만, 성과급 돈폭탄에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흐지부지됩니다.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힘없는 비정규직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게 모든 사업장에서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이기주의와 돈맛에 한번 휘둘리게 되면 투쟁의 불씨를 되살릴 수 없습니다. 조합원들의 의식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노동조합의 건강한 기풍이 되살아나야 합니다.”
“일개 신규노조 지부장이 무얼 안다고 떠들어? 00연맹 수석부위원장도 했었고 현재 민주노총 중집 대의원인 나를 비판하겠다는 거야? 보자보자 하니 싸가지가 없는 친구네! 이건 위원장인 나를 떠나 본조를 우습게 보는 것이고 민주노총이란 조직을 무시하는 거야!”
“지나친 확대해석입니다.”
“기업별 노조체계에서 지부는 본조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인데 당신은 그것도 모른단 말이야?”
“저희는 영업직인 본조와 달리 김치를 가공 제조하는 생산직입니다. 생산직 특성에 맞는 지부단협이 필요합니다!”
“지부에서 요구한다고 회사가 그렇게 쉽게 교섭테이블에 앉을 것 같아? 더구나 사장님 사인이 들어가는데?”
“저희가 생산직임을 이해해 주세요. 지부에서 처음 단협투쟁 하겠다는데 본조가 도와주지 못할망정 이렇게 발목을 잡아서야 되겠습니까?”
“발목? 당신, 그렇게 고집이 세서 사회생활 어디 하겠어? 이 바닥에 처음 들어왔으면 기존의 관례를 따라야 할 게 아니야? 도대체가 개념이 없는 사람이구만.”
“이렇게 말이 안 통할 줄은 ….”
“그건 내가 할 소리야! 웬 꼴통이 갑자기 나타나서… .”
“우린 우리 뜻대로 하겠습니다.”
“당신 지금 나랑 한번 해 보겠다는 거야? 이건 노조의 조직질서를 문란 시키는 거야! 시건방진 자식 같으니라고.”
본조는 매사가 이런 식이었다. 지부가 회사에 단협요구안을 보내고 투쟁에 돌입했을 때 본조는 얼굴한번 내밀지 않았다. 오히려 본조의 왕위원장은 틈만 나면 전화로 지부를 통제하고 간섭하더니 급기야 화해할 수 없는 관계로 치닫고 있었다.
“당신네들 매일 방송차량 불러서 빵빵거린다면서? 그렇게 한다고 회사가 눈 하나 깜짝 할 것 같아?”
“회사가 교섭에 응하지 않으니까 싸우는 거 아닙니까?”
“집회! 당장 중단해! 내가 회사한테 교섭에 응하라고 할 테니…. 지금 공장장은 어리벙벙해서 곧 잘릴 거니까, 신임 공장장 오면 그 사람과 잘 해 보라고.”
“집회는 중단 못합니다. 근무시간에 하는 것도 아니고 휴식시간에 약식으로 하는 건데….”
“아니 내가 노력해서 어렵게 교섭테이블을 만들어줬으면 고맙다는 말은 못할망정 위원장의 말은 들어야 할게 아니야?”
“집회는 계속해야 됩니다! 그래야지 교섭에서도 탄력 받을 수 있습니다.”
“진짜 돌아버리겠네! 그런 식으로 하면 회사가 줄 것도 안 줘?”
“회사가 마치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말하시네요? 위원장인지, 노무과 직원인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뭐야? 이 새끼가!”
“세상에 어느 노조위원장이 이렇게 집회하는 거조차도 막는답니까?”
“막는 게 아니라 유연하게 하자는 거잖아!”
“지부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본조나 잘 챙기세요.”
“지금 나에게 명령하는 거야? 외부에서 허가 없이 방송차량 들어오면 건조물침입죄에 걸리는 거 몰라?”
“지역본부가 외붑니까?”
“회사에서는 외부세력으로 본 다니까?”
“위원장이란 사람이 왜 그렇게 회사를 대변만 하세요?”
“회사가 고소한다고 난리를 쳐도 내가 다 막은 사람이야! 집회는 당장 때려 쳐! 이거 본조의 마지막 명령이야. 그리고 현장에서 일할 때 투쟁조끼 입고 머리띠 하고 그런다는데 그거 다 사규에 걸리는 거야. 당장 벗어! 거기가 뭐 파업사업장도 아니고 말이야…. 어디서 보고 들은 건 있어가지고.”
본조 위원장과의 통화가 끝나면 그는 정말 기진맥진해졌다. 본조와의 관계를 하루빨리 정리해야 지부가 살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이평지부의 투쟁이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지부장이 1시간 일찍 출근해 공장 현관 입구에서 출근하는 조합원들에게 인사를 하는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1주일이 지날 때였을까, 부지부장과 사무장이 그의 옆에 서기 시작한 것이다.
“지부장님 혼자 애 쓰시는 게 안 돼보여서….”
“이렇게 서 있는 게 쑥스럽기도 하고 무척 떨리네요.”
“내일부터는 조합원들도 하고 싶은 사람 있으면 같이 하자고 해야겠어요.”
출근투쟁은 이렇게 조합원들이 하나 둘 붙더니, 점차 라인별로 나중에는 전 조합원이 참여하는 아침 집회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임시총회결과공고문을 출력시킨 뒤 노조직인을 찍으며 이평지부가 새로운 전환기를 맞아 거듭나기를 바랐다. 낮은 한숨과 함께.
“지부장님? 빨리 내려오세요! 식당에 조합원들 다 모였을 거예요.”
“알았습니다. 부지부장님은요?”
“밥은 먹으러 오겠죠. 공단 사거리 추어탕집이에요.”
식당에 부지부장인 영자는 끝내 보이지 않았다.
대개 사람들이 그렇지만 그녀는 유독 먹고 사는 일에 집착했었다. 남편과 이혼 후 딸 셋을 거느린 여성가장으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였겠지만, 남들 눈에는 너무 지나치다는 인상을 받곤 했었다. 특근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잔업 한번 빠지는 일이 없었으니까. 우악스럽게 그저 일에 미친 사람 같아보였다. 딸들 모두가 장성해 스스로 밥벌이를 하고 있어도, 늙으면 나 혼잔데 …. 하는 식이었다. 그런 그녀가 소모임을 같이 꾸리고 노동조합 설립에 주체가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노조 부지부장직을 맡고 활동을 하면서 그녀는 그늘졌던 얼굴에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힘들지 않으세요?”
“버틸만합니다. 내가 이 나이에 노조 하는 건, 이 공장에서 오래 벌어먹어야 하기 때문이에요.”
그랬던 그녀가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면서 노동조합에 서서히 활력을 잃기 시작했다. 노조를 만들었을 당시 공장은 몇 년째 신규채용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잔업을 많이 하고 매주 특근을 하는 회사가 사람을 뽑지 않는 게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이러다 공장 없어지는 거 아니야? 하는 불안감이 문득문득 들었다. 외주로 물량을 다 넘긴다거나, 공장이 노후화되어 안전진단심사에 걸려 곧 헐린다거나, 어디에 최신식으로 공장을 짓는다거나 하는 온갖 소문들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억측과 소문들이 난무하는데도 지부장은 회사가 의도적으로 노조를 흔드는 것이라며 조합원들에게 투쟁만 강요하고 있었다. 집회. 집회. 그놈의 집회…. 조합원들도 이젠 예전 같지 않았다. 사내 중식집회에서도 참가하지 않고 탈의실에 벌렁 누워있는 경우도 더러 있었으니까. 그건 노조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야! 이년아? 너 왜 집회 참석 안 했어?”
조합원들의 등살에 바로 왕따 당하는 현장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젠 그런 동력이 무너지고 있었다. 연대 한번 가려면 조합원들을 설득하느라고 별별 알랑방귀를 떠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맛있는 저녁식사 대접이라는 적당한 미끼가 있어야 마지못해 움직이는 것이었다. 연대를 가더라도 출석체크가 끝나기 무섭게 집회도중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조합원들도 생겼다. 더구나 ‘나이 먹은 아줌마들이 여긴 웬일이지?’ 하는 사람들의 의아한 시선을 느낀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지부장은 처음이어서 아직 익숙지 않아서 그렇다고 말하지만, 그녀는 우리가 못 올 데를 왔나? 하는 자조가 들곤 했었다. 더구나 지역본부에서 주최하는 노조간부 수련회를 가보면 선동연습이라든가, 피로 쓴 노동해방이니 하는 영상물을 볼 때면 정말 섬뜩하고 무서웠었다. 때려 부수고 얻어터지는…. 이거 내가 정말 빨갱이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그녀는 이런 분위기가 자신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노조는 이평공장에서 조합원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협약을 체결하자고 대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회사는 몇 달째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회사에게 무엇 하나 따내려면 피 마르는 투쟁이 필요하다는 걸, 아는 그녀로서는 이제 모든 것이 귀찮았다.
회사가 고용안정협약 체결을 거부하니 본조를 나와 금속노조로 가서 힘차게 투쟁하자는 것이 노조의 조직형태변경의 요지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이 명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지부장은 평상시 본조 때문에 못해 먹겠다는 말을 자주하지 않았던가?
그녀는 이번 임시총회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조직형태변경 얘기가 나올 때부터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녀도 안다. 본조의 행태를 보면 분명 어용에 가깝다는 것을,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굳이 본조를 나와 민노총 안에서도 가장 조직력이 좋다는 금속노조를 가야 하는 것인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부장은 우리와 같은 업종인 △△연맹이나 우리가 나오려는 00연맹은 별 차이가 없으니 이왕 가는 거, 투쟁을 잘 하는 금속으로 갑시다! 라며 조합원들을 설득했었다. 지부장 말이라면 무조건 신임하는 조합원들 입장에서는 달리 어떤 이의를 달수가 없었다. 물론 상급단체를 같은 업종으로 해야 한다는 강제성은 없다 하더라도 금속을 고집하는 것은 그리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더구나 노조의 이런 움직임을 회사가 그저 보고만 있겠는가? 본조의 왕위원장은? 아마도 이평공장은 다시 엄청난 회오리에 빠져들 것이다. 그녀는 이런 모든 게 싫었다.
결국 노조에 반기를 들은 것으로 되자, 조합원들의 소곤거림과 빈정대는 모습이 그녀를 아프게 했다. 같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지금껏 앞장서서 투쟁했는데 마치 배신자처럼 낙인찍어 야멸치게 쳐다보던 그 시선은 뭐란 말인가? 그녀는 어떨 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너무 분해서….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회사와 한통속이나 된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왜 이런 모욕을 겪으면서까지 노조를 했던 것인가? 하는 자괴감은 조합원들에 대한 실망과 회한이 되어 깊어갔다. 이런데도 노조를 계속해야 한단 말인가? 자신이 이렇게 흔들리고 있을 때 그녀를 잡아준 것은 지부장뿐이었다.
“요샌 왜, 조합사무실에 들어오지 않으세요?”
“사람들이 왕따 시키는데 내가 거길 어떻게 들어갑니까?”
“혼자 그렇게 생각하시니까 그렇죠.”
“지부장님도 내가 회사편이라 생각하세요?”
“천만에요!”
“노조 만들고 나서 내가 괜히 반장을 한 것 같아요. 반장을 하다 보니 회사와 이래저래 얘기하게 되잖아요? 생산량 가지고.”
“우리 입장에서는 부지부장님이 생산현장에서 반장까지 하면 현장질서를 우리가 끌고 갈 수 있다고 판단했거든요. 물론 조합원들 의견이 분분했지만.”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하지만 전 회사랑 혼자서 따로 만난 적 없습니다! 지부장님이 항상 강조했잖아요. 사무장 희옥이랑 나랑은 회사가 언제라도 작업 들어올 수 있으니 절대로 1:1로 만나면 안 된다고. 난 그 약속을 지금도 지키고 있습니다.”
“혹시 본조 위원장이랑은 통화하시나요?”
“예.”
“조직형태변경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 부지부장님이 반대하는 거 보고 솔직히 좀 놀랬어요.”
“이젠 시끄러워지는 게 싫습니다. 조용히 살고 싶어요.”
“조직형태변경 같은 건 노동조합 업무의 하나에요. 그걸 회사가 반대하니까 시끄러운 겁니다. 다 부당노동행위입니다. 그걸 노조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되죠.”
“지부장님? 우리 금속노조 가서 고용안정협약 꼭 맺어야 돼요? 솔직히 조합원들 그거 없어도 다 먹고살기 충분한 사람들이에요. 다들 자기 집 있겠다, 자가용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정년은 법적으로 보장된 거잖아요?”
“그렇다고 노조에서 가만히 있어야 되겠습니까? 회사는 계속 흔들고 있는데….”
“우리가 본조를 나가겠다고 하니까 더 그러잖아요? 우리도 다른 노조처럼 회사랑 원만하게 지내면 안 돼요?”
“그건 원만하게 지내는 게 아니죠! 노조로서 자기 역할을 안 하는 거죠.”
“그냥 노조창립일 때 선물이나 주고 1년에 총회 한번 열어서 조합비 사용내역서나 돌리고 그러면 되잖아요?”
“그렇게 하려고 노조 만든 거 아니잖아요?”
“다들 지금 그렇게 노조 하잖아요. 노조 하면서 우리 많이 좋아졌잖아요. 그러면 된 거 아닌가요?”
“진짜 부지부장님, 많이 달라지셨네요? 우리가 왜 이렇게 틈이 벌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따금씩 노조에 회의가 듭니다. 니편 내편 가르는 게 싫어요!”
“회사는 노동조합을 말로는 인정을 한다지만 실질적으로는 인정을 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더구나 활동하는 노동조합은. 그래서 이 노조를 어떻게 해서라도 깨고 싶은 겁니다. 자신들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는 식물노조로 만들고 싶은 거죠.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않거든요. 회사가 바라는 노동조합 상이 다른 겁니다. 그래서 시끄러운 겁니다. 부지부장님은 그런 노조로 우리가 지금 가자는 거잖아요?”
“솔직히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시끄러운 이런 상황을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어요.”
“부지부장님의 지금 심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노조하다 보면 고비가 많이 생깁니다. 내부적으로도 그렇고 회사와의 물리적인 충돌로 난관에 부딪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고비를 넘지 못하면 간판만 걸어놓은 노조가 됩니다. 부지부장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조합원들도 힘들어 하는 거 압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노조를 지켜내야 할 게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가 죽으나 사나 단결투쟁을 외치나 봅니다.”
“힘듭니다. 너무!”
“우리보다 열악하게 시작한 사업장들도 많습니다. 노조인정도 못 받고 있는 곳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런 데를 비교하면 우리야 복이 터졌죠. 그래서 그런지 우리 아줌마들 지금껏 한 사람도 노조 탈퇴 안하는 거 보세요. 단돈 만원에 부들부들 떨던 사람들이 매달 2만원씩 꼬박꼬박 조합비 내고 투쟁기금이니 뭐니 각출하는 경우도 많은데 말이죠?”
“노조가 소중하다는 걸 알아서 그런 게 아닐까요?”
“그것보다는 탈퇴하면 곧바로 왕따 당하는 현장분위기 때문일 거예요.”
“혼자서만 계시지 말고 조합원들이랑 산행도 하시고 그러세요?”
“노조 생기고 조합원들이 가장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게 바로 산악회에요. 회사가 만원씩 지원해주겠다, 얼마나 좋아요?”
“그렇게 사람들이랑 어울려서 속에 있는 얘기도 하면 잡념도 없어질 겁니다.”
“입들이 싸서 잘못하다간 공연히 약점만 잡히는데요? 바람 쐬는 거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지부장님? 그런데 본조는 꼭 나갈 거예요?”
“총회에서 결의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지부장님, 다칩니다!”
“공장장이 그러던가요? 왕위원장이 그러던가요?”
“지부장님 다치면 우리 노조는 끝나는 겁니다. 우리가 뭘 압니까?”
“조합원들이 하셔야지요?”
“우리가 어떻게 노동조합을 운영합니까? 아는 게 있어야지요.”
“제가 하는 거 옆에서 쭈욱 지켜보셨잖아요?”
“해 보려고 해도 잘 안됩니다. 컴퓨터도 배워보고 소식지도 같이 써 보고, 마이크 잡고 사회도 봤지만, 아무것도 제대로 못했잖아요.”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저도 조합원들 앞에 서면 지금도 떨리는데요.”
“학습과 훈련이 있다고 다 되는 게 아닙니다. 한계라는 건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빠져나가는 말만 하시니까, 지부가 기형적으로 돼 버린 겁니다. 물론 제가 이렇게 다 만든 거지만.”
“우리가 못 나서 그렇죠. 지부장님에게 너무나 많은 짐을 지게 한 거죠. 그래도 조심하셔야 돼요. 예전에 노조 초청강연회 때 이 일재 할아버지 우리 공장 왔었잖아요. 그때부터 회사가 지부장님을 본격적으로 노리고 있는 것 같았어요!”
“노리다니요?”
“공장장이 흘리듯이 말하던데요? 완전 빨갱이라고!”
“이 선생이 사회주의자라고 해서 그러나 보죠. 우리가 그 양반을 초청한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니잖아요? 몸도 성치 않은 분이 노구를 이끌고 활동하시는 게 감동스러워 용돈이나 조금 챙겨주자는 의도밖에 없었잖아요.”
“회사는 그렇게 생각 안하죠? 우리야 그날 감동 먹었지만….”
“부지부장님? 이미 총회에서 결의했으니 생각이 달라도 따라오셔야 됩니다. 그리고 조합사무실에 이제 들어오셔야지요. 부지부장님이 중심을 잡아주셔야 노조가 힘을 받습니다.”
“총회 결정은 따르겠습니다. 다른 건 아직 그러네요?”
임시총회가 끝나고 며칠 뒤 회사 관리자들이 노조에 가입원서를 등기로 보냈다. 얼마 전 관리자들이 가입원서를 들고 조합사무실로 찾아온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끝까지 물고 늘어질 줄은 몰랐다. 그때 그는 노조규약에 의거 해 관리자들은 노조에 가입할 수 없음을, 정중하게 설명하고 돌려보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또다시 등기로 보내지자, 조합원 모두가 흥분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지부장님이 알아듣도록 얘기 했다던데 또 이런 짓 꾸미는 거 보면, 우리보고 엿 먹으란 소리 아냐?”
“정말 황당하다. 노조에 사사건건 방해하던 놈들이 가입이라니? 지나가던 개도 웃을 걸….”
50대 주부 조합원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코웃음을 치고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서늘한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회사의 공세가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그것으로 인해 자신들에게 닥칠지도 모를 위해감 같은 것들이 날카롭게 심장을 스치고 지나가는 듯 했다. 노조 만드는 것만큼이나 회사와 본조의 반대를 무릅쓰고 조직형태를 바꾼다는 것이 어렵고 만만찮은 일이라는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거 기지고 당장 놈들 얼굴에다 싸대기 쳐야 돼!”
사무장 희옥의 얼굴에 불같은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조합사무실에서 있던 간부들 역시 그녀처럼 격양돼 있었다.
“비열한 놈들! 사내에서 집회 할 때 몰래 숨어 동영상이나 촬영하고 사진 찍던 놈들이… .”
“현장에서 화장실 가는 것까지 참견하고 통제하던 놈들이….”
노조간부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고 있었다.
“이런 판국에 부지부장은 오늘도 조합사무실에 안 들어 온 거니?”
“냅둬. 성! 피곤하나 보지.”
“누군 탈의실에서 누워 있고 싶지 않니?”
“그 성 원래부터 본조 나가는 거 반대했잖아!”
“지부장님이 그렇게 설득을 해도….”
“변하긴 변했잖아? 요샌 현장에서도 생산량 안 나온다고 스위치 팍 돌려놓잖아!”
“그 바람에 팔목도 쑤시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
“아무래도 회사랑 무슨 썸싱 있는 거 아니야?”
“설마? 영자가 그럴 사람이니?”
“설마가 사람 잡는대? 남모르게 공장장이랑 만나서 노조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얘기 할지 누가 알아?”
“지난번 촛불집회 갔을 때 누구누구 갔는지 공장장이 다 알고 있더라니까?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 와서 촛불집회 재미있었어요? 이러고 빈정대더라니까!”
“나한데도 그러던데.”
“틀림없어. 회사 안테나 된 거야!”
“조합사무실에서 했던 얘기들이 어떻게 공장장이 다 알고 있느냐 이거야?”
“그만 하자!”
잠자코 듣고 있던 사무장이 날카롭게 말을 끊었다.
“막연한 추측으로 그런 식으로 말하면 어떻게 하니? 영자가 공장장이랑 만나는 거 직접 본 사람 아무도 없잖아! 사실을 가지고 얘길 해야지. 걔 미련할 정도로 우직한 사람이라는 건 니들이 더 잘 알잖아?”
“지금 노조에서 가장 중요할 때 저렇게 엇나가니까 답답해서 그런 거지.”
“눈앞에 안 보인다고 그렇게 비난하면 야박해 보이잖아?”
“내가 좀 심했나? 미안.”
“솔직히 영자만큼 노조 열심히 한 사람이 누가 있니? 노조 만들 때 제일 먼저 나선 사람도 바로 부지부장이었어. 걔가 나섰기 때문에 나도 사무장을 한 거고.”
“……”
“다들 알겠지만 노동조합 만들기 전에 우리 소모임할 때도 영자가 가장 적극적이었어. 옛날에 불법파견 유인물 뿌린 것도 걔가 한 거잖아. 그때 무서워서 못한다고 모두 고개 숙이고 있으니까 자기라도 하겠다고 하더라. 그땐 노조가 있었니? 뭐가 있었니? 걸리면 그냥 가는 거야! 더구나 우린 정규직이었지만 옆에서 일했던 비정규직들을 위해서 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니?”
“그렇긴 그렇지. 그때 우리 공장에 용역회사가 2군데나 있었으니까. 그 사람들 우리랑 똑같은 일을 했지만 상여금도 없어서 측은하게 생각했지.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으로 간사해서 언젠가는 내 일자리도 뺏기는 게 아닌가, 해서 이유 없이 미워하기도 했잖아. 그게 우리 정규직들의 일반적인 정서였거든. 그런데 지부장님이 불법파견 유인물 뿌리라고 하니 누가 하겠어? 모두 반대했지. 왜 우리와 소속이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냐고! 그런데 영자는 아니었어.”
“걔가 눈물이 많아서 그런가? 무슨 일 할 때 보면 앞뒤를 안 가려.”
“그때 화장실과 탈의실에 뿌려진 유인물 수거한다고 모든 관리자들이 눈에 불을 키고 돌아다니던 생각난다.”
“정규직들인 우리랑은 직접적인 관련은 없었지만 정말 통쾌하더라!”
“유인물 한 장이 공장을 휘청거리게 할 정도로 파급력을 가질 줄이야….”
“처음 뿌려져서 그랬겠지만 사람들을 그토록 뜨겁게 할 줄은 몰랐다니까.”
“몰랐던 진실을 알아서 그럴 거야. 나중에 진정서 들어가고 21명 정규직 됐었지.”
“그때는 회사도 어리버리 해서 노동부 불법파견판결 나오니까 큰일 난 것처럼 2년 이상 된 사람은 모두 정규직으로 직접고용 한 거지. 요새 불법파견관련 뉴스 나오면 그때가 생각나 지금도 심장이 벌렁벌렁 하다니까.”
"그랬던 영자가 지금 노조에 소극적인 건 무슨 이유가 있을 거야! 부지부장 씹는 얘기는 그만하고 우리가 기다려주자고?”
“촉새들처럼 입방정 또 떨면 노조에서 완전 탈퇴시킬 겨!”
“예 알았습니다. 조직부장님! 하하.”
“성들? 토론 끝났으면 일단 이거나 먹자! 엉? 시간 없잖아.”
미숙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더니 검은 비닐봉지에서 무엇인가를 탁자위에 주섬주섬 꺼내고 있었다. 호일에 싸인 것은 호박전과 부침개였다.
“너는 이 판국에 먹는 것밖에 모르니?”
“아이 성도 참….”
“정성스럽게 싸온 애한데 웬 타박이야?”
“넌 먹을 거 가져왔으면 잽싸게 꺼내지, 무슨 뜸을 그렇게 들이니? 다 먹자고 하는 짓인데….”
오전 10시 30분 휴식시간만 되면 탈의실과 조합사무실 곳곳에 모여앉아 집에서 싸 온 음식들을 분주히 먹는 게 이곳 공장의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여기 만두도 좀 먹어봐?”
이번에는 순남이 비닐봉지를 풀고 있었다.
“매일 얻어먹는 것 같아서, 새벽에 깼는데 통 잠이 와야지…. 오늘 빚은 거야.”
“너도 깊은 잠 못자냐? 다들 비슷하나 보네. 예전에 노조 처음 만들 때처럼….”
그들은 긍정도 부정도 없었다. 다만 서로의 낯빛이 푸석하다는 것을, 그게 자신들의 지금 모습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모두가 회의용 탁자에 둘러앉아 분주히 먹으면서 저마다 정수기 온수를 받아 커피를 타고 있었다.
“내 커피는 블랙으로. 프림 넣으면 살찐단 말이야.”
“한 손에는 전, 한손에는 커피 이렇게 먹어들 대면서 그런 말이 나오니?”
“우리 아저씨는 그래도 좋대. 잡히는 맛이 있대나? 히히.”
“새벽에 한 따까리 했나보네?”
“우리 나이가 몇인데 그래? 생리도 끝났구만.”
“야! 주접은 그만 떨고 시간 없으니까 무슨 얘기 좀 해봐?”
“디데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회사도 그걸 알고 이렇게 가입원서 보내 우리를 흔들려는 거겠지.”
“야비한 놈들! 옛날에 우리가 처음 조직형태변경 총회를 할 때 회사 놈들이 왜 그렇게 격렬히 방해를 하는지 이해가 안 갔어? 조합원들이 모여서 회의 하는 건 일상적인 일이였잖아.”
“본조를 나가는 총회였으니까 그렇지. 우리가 금속노조로 가는 것보다 본조를 나간다는 그 자체가 회사에겐 더 부담스러웠겠지. 회사는 본조를 통해서 지금껏 지부를 관리했는데 이젠 그게 안 먹힌다는 거지.”
“그게 그렇게 회사에겐 민감한 문제였을까? 공장장과 관리자들이 난입할 만큼.”
“난 오히려 바로 이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회사가 무얼 두려워하는지 그 총회를 통해서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생각해. 우리가 노조를 잘 지키려면 하루빨리 본조를 나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더 들었어.”
“우리 그때 지부장님이 부당노동행위라고 소리칠 때 덩달아 구호를 외치면서 회사 놈들을 밀어낼 때, 몸싸움 하면서 변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거든! 평소 과장님? 공장장님? 하며 굽실거리던 내가 그들에게 욕지거리를 하고 있었으니까.”
“그때 조합원들이 종업원에서 노동자로 바뀐 거지. 투쟁하면서.”
조합간부들은 그 당시 총회 때 벌어졌던 회사와의 크고 작은 충돌을 자신들이 직접 느낀 그대로 회상하고 있었다.
“그 일 이후로 조합원들이 많이 겁먹은 건 사실이야. 그래서 총회도 여러 번 하고 설득도 하면서 지금까지 온 거잖아.”
“88% 찬성이면 만족해야지.”
“회사가 이번에 조합원들에게 일일이 전화질 하고 방해한 것에 비하면 조합원들이 잘 따라 온 거야.”
“나에겐 전임공장장까지 전화해서 상급단체 바꾸면 공장 문 당장 닫는다고 협박까지 하더라니까. 전임공장장과 내가 개인적으로 친한 걸로 알았나봐.”
“연고나 친분까지 내새워 방해할 만큼 회사는 이 일에 사활을 걸었던 거야! 집요하게.”
“디데이 코앞에 두고 이렇게 또 가입원서 보내는 거 봐라! 이걸 어떻게 하면 좋겠니?
“뚱 성이 그러는데 가입원서 그냥 찢어버리고 우린 못 받았다고 하면 된대!”
“그 성 답네. 무시해버리자? 미숙이 니 생각은?”
“성이 그랬잖아? 싸대기 치면 된다고! 그냥 우린 총회 때 결의한대로 우리 갈 길 가면 되는 거 아니야?”
“노조 규약상 우리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위치에 있는 관리자들은 원천적으로 노조가입이 안 되니까 신경 쓸 건 없는데, 이런 일로 조합원들이 혹시나 흔들리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이나 써 줘!”
사무장의 당부에 조합사무실에 모인 간부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회사가 노린 건 결국 조합원들의 분열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이때 탈의실 저쪽에서 갑자기 까르르 하는 조합원들의 웃음소리가 왁자지껄 들려왔다.
“남들은 걱정하고 있는데 쟤네들은 완전 신났네!”
“사무장? 저 웃음소리 봐! 이런 치졸한 일로 우리 아줌마들 흔들리지 않아!”
“탈의실에서 왜 저런다니?”
“아까 현장에서 들었는데 숙자 성 동기들이 지난주 묻지마 갔대. 거기서 만난 늙다리들이 또 보자고 자꾸 전화 온데요. 그 얘길 듣던 뚱 성이 자기도 끼워 달라고 하니까 저렇게 배꼽잡고 웃는 거야. 마음만은 홀쭉하대나?”
“말도 마. 숙자 걔는 묻지마 갈 때는 집에 일이 있다고 회사엔 월차내고, 집에다가는 잔업이라고 뻥 친대?”
“어머! 미쳤어 진짜!”
따르릉 따르릉 작업시간을 알리는 벨소리가 울렸다.
“아후, 저 벨소리! 짜증나. 저거 안 듣고 살 수 없나?”
“배부른 소리 하고 자빠졌네. 몸뚱이 움직여서 먹고 살 때가 좋을 때다.”
“점심 먹고 다시 모여! 얘기 좀 더 하게.”
“피곤혀! 난 탈의실에서 눈 좀 붙여야 되겠어.”
“부지부장도 안 들어오는데 너 까지 왜 그러니?”
“아후, 짜증나! 몰라! 몰라!”
“지부장님이 알아서 하겠지.”
미숙이 심드렁하게 한마디 툭 던졌다.
“넌 양심도 없냐? 지부장님한테 또 떠넘기게?”
“지금껏 그랬으면서 뭘 새삼스럽게 그래?”
“전임도 없이 지부장님 지금도 밖에서 일하잖아! 요새는 금속노조 가는 거 때문에 준비하느라 매일 늦게 퇴근하는 거 알면서….”
“준비 하는 걸 상급단체에서 해줘야지, 왜 우리가 하는데?”
“그쪽이 바쁘니까 그러겠지. 그래서 예전에 노조전임 따내야 했던 거야?”
“그때는 조합원들이 노조전임에 대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지. 회사도 완강히 반대하고. 임금 많이 올리고 수당 신설하는 데만 다들 집착했잖아, 나부터도 그랬는데 뭘? 지금 생각하면 우리가 아주 잘못 생각한 거지.”
“조합원들한테 물어보면 지금도 노조전임보다는 임금 왕창 올리는 걸 더 좋아할 걸?”
“전임이 있느냐, 없느냐는 노조의 자존심이 걸린 문젠데….”
“조합원들은 그렇게 생각 안한다니까? 솔직히 우리가 금속노조 가는 것도 고용안정협약 그런 것보다는, 그쪽으로 가면 최저임금도 높고 정년도 연장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야.”
“그래.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해관계 따라서 움직이는 거야. 더구나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그런 면에 있어서 약삭빠르지.”
“지부장님, 임시총회 끝나고 한숨 돌리는가 싶더니, 또 가입원서 때문에 신경 쓰시겠다.”
“지부장님이야 본조 나오자고 했으니까 책임감이 더 있는 거지. 그리고 노조에서 매달 5만원씩 주잖아? 지부장 활동비로.”
“그런 식으로 말하면 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 거냐? 미안함이 달래지는 거냐고?”
“그러면 이번 달부터 지부장 활동비 10만원으로 올릴까?”
“야! 이년아? 미안하다면 가입원서 건 가지고 지부장님한테 더 이상 떠넘기면 안 되잖아?”
“그래. 무슨 일만 툭 터지면 지부장님이 알아서 하겠지, 하면서 우린 지금까지 미뤄왔잖아 모든 걸….”
조합원들도 알고 있었다. 노조에 무엇인가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을. 그러나 그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신이 없었다. 회사가 현수막 철거의 공문을 보내면 나쁜 새끼들이라고 말할 뿐, 이걸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 회사가 주장하는 논리를 명쾌하게 반박하면서 공문을 보낼 수가 없었다. 컴퓨터를 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자신들의 주장에 자신감이 없었다. 현수막 사수가 옳다면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잔뜩 겁부터 났었다. 세상을 살면서 사람들과 부딪히는 게 불편하고 두려울 뿐이었다. 그건 잘 알지 못한다는 지기고백 같은 것이었다. 50이 훌쩍 넘은 이 나이에 손자까지 본 이 처지에 무엇을 배우고 안단 말인가?
조합원들은 그래서 지부장에게 말로 표현하지 못할 미안함을 언제나 가지고 있었다. 그 부채의식은 노조 처음 생길 때부터 지금까지 더욱 커져갔다. 지부장 혼자서 동분서주하는 거 보면 정말 안쓰러웠다. 교섭석상이나 회사와 간담회를 할 때 보면, 관리자들은 왜 그리 다들 유식하던지,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회사가 다 옳은 것처럼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는 그저 꿀 먹은 병아리일 뿐이었다. 지부장 혼자서 그 잘난 회사 놈들과 상대할 때 진짜 지부장에게 미안했다. 그럴수록 지부장이 미더웠다.
이번 금속노조 가는 것도 지부장을 절대적으로 믿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회사보다는 지부장 한사람을 조합원들이 전폭적으로 지지한 결과였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노동조합에 힘을 보탠 것이었다.
“어떤 땐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지부장님을 이용해 먹는 게 아닌가, 할 때가 있어.”
사무장은 씁쓰레하게 웃으며 혼자 중얼거리듯이 말하고 있었다.
“평소 지부장님이 그런 말 자주 했잖아? 조합원들은 저를 마음껏 애용해 주세요, 라고 웃으면서….”
“그렇게 노조를 하는 사람도 있는데 사람들은 왜 그리 노조에 색안경을 쓰고 보는 걸까?”
“성? 우린 노조 하기 전에 안 그랬어? 우리도 그랬잖아! 그런데 하면서 많이 달라진 거지.”
“우리 아저씨는 노조라면 치를 떠니…. 자동차 오디오 만드는 공장에서 부서 몇 군데가 통째로 외주로 넘어갔거든. 그 바람에 우리 아저씨 졸지에 간접고용 비정규직 됐잖아. 나이 들어 딴 데 가기도 어렵고 해서 그냥 다니고 있는데 그걸 노조가 합의해줬다고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노조라면 눈에 쌍심지를 켜는데….”
“거기 민주노총 금속사업장인데?”
“금속이면 뭐 하냐고? 활동하는 노조냐, 아니냐에 따라서 달라지겠지.”
“무늬만 민노총 사업장들이 얼마나 많은데?”
“지역 금속노조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는 있나?”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꿰차고 있겠어? 이런 건 뉴스거리도 안 되잖아! 커다란 사회적인 이슈거리가 되는 것에만 다들 투쟁하잖아. 언론에서 잠잠해지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모두가 생존에 대한 절실한 일인데….”
“그쪽 공장 얘기 나도 들었는데, 거기가 니네 아저씨 공장이었구나. 40명이나 넘는 사람들이 그렇게 됐다고 하던데.”
“쌩 어용들, 돈 깨나 쳐 먹었겠지. 정규직들에게는 특별상여금이 지급될 테고.”
“그러면서도 투쟁조끼에는 세상을 바꾸자, 라고 써져 있더라!”
“그러고 보면 민주노총도 믿을 게 못돼!”
“그간 행태를 보면 낮은 곳에 있는 노동자들의 조직이 아닌 거 같아!”
“우리가 가려고 하는 금속노조도 그런 거 아니야?”
“입방정 좀 떨지 마라! 재수 없게.”
사무장 희옥은 그 사업장에서 현판식을 할 때 가본 기억이 있다. 경비실 옆에 컨테이너로 만든 노조사무실. 조합원이 400명이나 되는 사업장이었다. 업종이 다른 그곳을 1시간이나 넘게 시외버스를 타고 축하 방문한 것은 이평지부가 금속으로 가기 위한 사전행보였다. 금속 쪽과 친분을 맺기 위한 나름대로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사업장이 1년도 안 돼 어용노조로 전락한 것이 그녀로서는 못내 아쉬웠다.
“거기처럼 민노총 내에서도 노조 팔아먹는 놈들이 많이 있나봐! 과거경력 밑천삼아 잿밥에만 신경 쓰는 작자들도 있고.”
“그게 사람인데 어쩌겠어?”
“투쟁 열심히 한다는 사람들도 그러나 봐. 지역에 선거 때나 어디 상근자 자리 하나만 나오면 자가들 식구라고 해야 하나, 인맥이라고 해야 하나, 서로 앉으려고 분탕질을 하잖아?”
“지역 금속지부장 선거 때도 예전에 그랬다면서?”
“누구 쪽은 절대로 안 되니? 뭐니? 하면서 소위 활동한다는 사람들이 평소 쌩 어용들이라고 비난했던 작자들을 밀어 결국에는 당선시켰잖아?”
“노조 몇 년 하다 보니 이 바닥이 이런 데였나 하는 자괴감이 들더라고.”
“그것보다 더 실망스러운 건 우리 같은 순진한 사람들을 가지고 장난치는 거겠지.”
마치 실연이라고 당한 듯 사무장의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한숨까지 다 쉬고, 무슨 일인데?”
“얘기하기도 창피하고 모두가 쉬쉬 하는 것 같아서….”
“우리도 좀 알자, 뭐 대단한 비밀인 것 같네?”
조합사무실에 있던 간부들 모두가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임기도 아직 많이 남은 지역 본부장이랑 사무처장이 예전에 갑자기 사퇴를 했잖아?”
“그거 좀 지난 일이잖아? 비정규직 투쟁사업 잘못했다고 하면서….”
“그건 입막음용이고 본부장이란 사람이 평소 그렇게 도박에 빠져 살았대. 같이 일하는 지역본부 상근자에게도 돈을 빌리고 심지어는 단사 조합원들에게까지 손을 벌렸다는 거야. 그게 얼마나 심했으면 정보과 형사에게까지 들어갔겠니?”
“그래서 사퇴를 한 거야? 그래놓고 비정규직 어쩌고…”
“어머? 그게 진짜야!”
사무장의 말에 모두 기가 차다는 듯 다들 너무 놀라 넋을 잃은 표정들이었다.
“지역본부에서 사실을 말하면 민주노총이란 이미지에 타격을 받으니까 그런 식으로 덮었나 보더라.”
“자기조직에 피해가 간다고 진실을 그런 식으로 은폐할 수가 있는 거냐고? 더구나 상근자들이 공모해서? 이건 도덕적으로 용납이 안 되는 일이야!”
“자본가들이나 하던 짓을 민주노총 지역본부가!”
“이건 아니야! 누구나 잘못은 할 수 있어. 그런데 이것을 변명하거나 거짓말하면 그 잘못은 더욱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왜 몰랐을까?”
“지역본부 입장은 이해가 가지. 투쟁할 일은 많은데 그렇다고 까발리게 되면 지역전체가 휘청거리게 되잖아?”
“그렇다고 진실을 영원히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해? 노동운동을 왜 하는지부터 묻고 싶어!”
“…….”
“도박에 빠졌으면 분명 출근도 제대로 안하고 업무도 제대로 못 봤을 텐데….”
“그걸 묵인하고 방조한 사람들이 지역본부 상근자들이야.”
“본부장한테 누가 감히 대들겠어? 지역에 선배고 카리스마도 있잖아. 수염 기른 거 보면.”
“개뿔은! 카리스마는.”
“거기 파업할 때 우리가 지지방문도 갔는데, 참 배신감 느낀다!”
“상근자들도 다들 똑같은 놈들이잖아! 그렇게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일을 처리해버리면 어떻게 해?”
“공범자들!”
“그래놓고 집회에서 연설하는 거 보면, 이 지역을 좌지우지 호령하는 것처럼….”
“진실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지역본부를 신뢰하게 될까?”
“그래서 그렇게 덮으면 안 된다는 거지.”
“투쟁 열심히 한건 알겠는데, 그래도 사람들이 좀 겸손해져야지.”
“겸손한 사람들이라면 일을 그 따위로 처리했겠니?”
조합간부들은 흥분한 채 성토하는 분위기였다. 애정이 깊으면 실망도 큰 것처럼.
“그래서 사람이 한 곳에서 오래 있으면 안일해지나 봐! 우리처럼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야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어떻게 다 알겠어? 아마도 그런 일들이 또 되풀이되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우리도 매일 똑 같은 자리에서 똑 같은 일 하다보면 긴장감도 없어지고 태만해지잖아? 그러다 결국 클레임 걸리는 거구?”
“6개월에 한 번씩 자리이동 할 때마다 미숙이 니가 제일 구시렁거리면서 그런 말이 나오니?”
“아이, 내말은 우리도 타성에 안 젖으려고 하는데 활동한다는 사람들이 한번 무슨 자리에 앉으면 벼슬이라도 하듯이 고래 힘줄처럼 버티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러면 그 사람들이 나와서 우리처럼 공장엘 다니겠니? 뭘 하겠니?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것 밖에는 할 수 없는 거야? 현실적으로.”
“난 그렇게 생각 안하는데?”
지금껏 잠자코 듣고 있던 순남이 끼어들었다.
“지역본부에서 예전 비정규직 담당했던 상근자, 그 사람 우리동네 같은 아파트동에 살거든. 나이도 꽤 먹고 이 바닥에서 얼굴깨나 팔렸지만, 지금 외곽에 있는 가구공장에 들어가서 잘 다니고 있대. 중요한 건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낮은 곳으로 자기활동 방향을 잡느냐 하는 것이야.”
“지역에 미조직 영세사업장들이 얼마나 많아? 공장바닥에는 독한 화학물질이 홍건이 고여 있고 주야 12시간 맞교대 뛰면서 최저임금만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니? 현장경험도 없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도 바꾸지 못하면서 뭘 하겠다는 거야? 그래서 관료라는 말을 듣는 거야.”
“이젠 수습됐잖아. 본부장도 새로 뽑고.”
“정확한 진실규명, 그리고 지역 조합원들에 대한 사과. 이런 게 있어야 되는 게 아니야?”
“지역본부 그만 흔들자. 흔들어서 좋을 게 뭐가 있니? 다 지나간 일이잖니?”
“그게 되지 않으면 그 나물에 그 밥이야!”
“순남이 성 말이 맞아. 그러니까 그 본부장이 단사 내려가서 또 위원장 하는 거 봐?”
“그놈의 권력욕은 브레이크도 없어!”
“그 공장 조합원들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니? 우리보다 수준이 더 떨어지는 거 아니야! 그런 사람을 또 찍어주고?”
“정년연장 공약을 내걸었더니 조합원들이 우르르 찍어줬대.”
“차암! 정치파업도 잘 한다던 사람들이 그 정도인가? 우리는 진짜 이기적으로 노동조합 하지 말자. 성!”
“하긴 민주노총 위원장까지 했다는 사람조차도 조합원 천명의 입당원서를 가지고 왔다는 둥 그래 버리니!”
“그 양반이 국회의원 되려고 그랬겠니? 이 땅의 노동자들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려고 그랬겠지. 흐흐.”
“하여간 말들은….”
“그 사람 위원장시절 현장순회 할 때, 우리 공장도 오겠다고 하니까 우리 지부장님이 필요 없다고 한마디로 딱 거절했잖아?”
“그때 난 지부장님이 왜 반대하나 그랬어! 솔직히 나쁠 건 없잖아?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 알아 두면 나중에 비빌 언덕이라도 되잖아?”
“지금 행태를 보면 모르겠니?”
“성? 본조 왕위원장은 그 양반을 젤 존경한대?”
“잘들 형님 동생 하라고 해! 이제 본조 신경 쓸 필요 없잖아? 조금 있으면 빠이빠이 할 텐데 뭘.”
“진짜 디데이가 얼마 안 남았네.”
“지난번 노조사무실에서 금속노조 사람들이랑 우리간부들이랑 간담회 했잖아. 어깨가 다들 따악 벌어지고 우리한데 어머님, 어머님 하면서 금속노조로 와서 같이 투쟁합시다, 하니까 진짜 든든하더라!”
“다들 무섭게 생겼더라. 그치?”
“성도 만만치 않잖아?”
까르르. 한바탕 웃음소리가 들렸다.
“거기 가서 우리가 잘 할까? 아들뻘 되는 사람들에게 공연히 폐나 끼치는 게 아닐까?”
“그쪽 금속지부장이 상관없다고 했잖아!”
“모두들 이래저래 심란하겠지만 어쩌겠니? 이미 화살은 떠났는걸."
“이럴 때일수록 차분해져야 돼.”
“그게 말처럼 돼야지! 요샌 청심환을 달고 산다니까.”
“우리 조합원들을 믿고 금속노조를 믿자!”
“출정식 때 쓸 현수막은 다 맞춰놨지?”
“3개에 8만원이래. 아주 큰 걸로. 현수막 보니까 우리 노조 이름이 지부가 아니라 이젠 지회더라.”
“산별노조이니까 그렇지. 넌 출정식 날 현수막이나 잘 걸어!”
“내가 어쨌다고 그래? 하여간 못 잡아먹어서 난리야.”
“넌 힘 좋다고 현수막 걸때 너만 당기지 말고 조합원들이랑 같이 팍팍 잡아당기면서 묶어! 끝에만 잡고 당기니까 바람 불면 미친년 속옷처럼 붕 뜨잖아?”
“다들 잘 하겠지. 우리가 어디 한두 번 걸어 봤나? 하하.”
“이번에는 상징의식도 한다고 했지?”
“집회할 때 풍선도 날리고 리본에다 우리 요구사항 적어서 건물 곳곳에 걸어놓고 그랬던 거.”
“그거 할 때 조합원들이 제일 신나게 하더라. 공장장 차문에 막 묶어놓고….”
“이번에는 하얀 광목에 조합원 모두 핸드프린팅 한대더라.”
“영화배우들이나 하는 거 말이지? 그거 진짜 재밌겠네.”
“손바닥이 아니라 우리들 주먹을 프린팅 한대!”
“야아, 그거 볼만하겠는데. 그러려면 페인트를 준비해야지?”
“지부장님이 페인트 묻힌 손 잘 안 지워 진다고 먹물로 하제더라.” “그 정돈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지부장님이 우리들 세심히 헤아리는 것만큼 우리도 끝까지 흔들리지 말자!”
“출정식 날, 대단하겠는데?”
오전 8시 20분이 되자 공장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국민체조를 알리는 음악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탈의실에 모여 있던 조합원들은 일제히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3층 생산실 입구에 있는 스톱워치에 출근카드를 찍기 시작했다. 자신의 출근카드를 찍은 조합원들은 나머지 조합원들이 카드를 찍을 때까지 라인별 생산지시 상황판 앞에서 대열을 이루어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출근카드를 찍고 그 대열 앞에 섰다.
“우리가 지금 진행 중인 준법투쟁이 벌써 3달이 넘었습니다. 점심시간을 40분에서 50분으로 고작 10분 더 늘려달라는 요구를 회사는 무작정 안 된다고만 하고 있습니다. 물론 회사는 우리가 잔업을 2시간 할 경우, 2시간 반으로 처리해주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대한민국 어느 공장이 점심시간이 40분인 데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솔직히 잔업 없을 경우에는 우리가 여태껏 손해 본 겨! 안 그려?”
“밥 먹고 속이 안 좋아서 화장실에 있다 보면 작업벨 울립니다.”
“넌 대접으로 밥 처먹으니까 그렇지!”
조합원들의 킥킥 대는 웃음소리에 3층 한쪽 구석에서 체조를 하던 관리자들이 이쪽을 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준법투쟁을 하니까, 지금껏 출근하면 당연히 체조를 하고 공장장 훈시를 듣던 회사의 질서가 일거에 무너졌습니다. 이게 바로 노동조합의 힘입니다. 우리가 단결해서 투쟁하면 세상의 질서를 바꿀 수가 있습니다!”
“회사가 우리의 요구를 받아주면 그땐 어떻게 해요?”
“뭘 어떻게 하니? 자유시간이니까 니 꼴리는 대로 하면 되지.”
“난 살 빼야 되니까 국민체조는 해야지, 공장장 훈시는 쌩 까고.”
“곰탱아! 살 빼려면 러닝머신을 타야지. 헬스 3만원이면 끊는 데드라."
“헬스가면 가빠 나온 아저씨들도 많잖아!”
대열 속에서 다시 킥킥대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금처럼 이렇게 모여서 우리끼리 이빨 까면 되지. 할 거 없으면 현빈 노래 한 곡조씩 뽑던가.”
따르릉 따르릉 작업시작을 알리는 벨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에이, 또 일하라고 그러네. 몸뚱이는 움직이기 싫고 돈은 벌어야겠고….”
“8박자 구호 한번 외치겠습니다!”
“짝짝 박수치면서 하는 건가?”
“난 박자 감각이 없어서 잘 못 맞추겠더라.”
“넌 노래방 매일 가잖아?”
“쟨, 그쪽이 아니라 끌어안고 스텝 밟는 거잖아!”
점 심 시 간 10 분 연 장!
구호가 끝난 뒤 조합원들은 모두 생산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회사가 보낸 가입원서를 들고 사무실로 향하던 권 대리 앞을 막아섰다.
“야! 권 대리? 너 지금 장난치는 거야? 지난번에 내가 조합사무실에서 얘기했잖아! 그런데 이번에는 등기로 보내?”
“왜, 그러세요?”
“사람 말이 말 같지 않아 새끼야?”
그는 들고 있던 가입원서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있었다.
권 대리는 그의 돌발행동에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눈만 커다랗게 뜨고 있었다. 그때였다.
“근무시간에 웬 소란이야!”
어디선가 갑자기 관리과장이 나타나 다짜고짜 양팔로 그의 목을 조르는 것이 아닌가? 완전 헤드록 자세였다. 너무나 급작스럽게 벌어진 일이였기에 그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비명만 지르고 있었다.
“이거 안 놔? 새끼야!”
등치가 큰 관리과장은 완력으로 그의 목을 휘감은 채, 몇 미터 끌고 다니더니 3층 계단 밑으로 그를 밀어버렸다.
“가서 일 하라고!”
순간 그는 중심을 잃고 뒤뚱거리다 계단에 널브러지고 말았다.
“아니, 이 새끼가!”
분노 때문이었는지, 그는 벌떡 일어나 관리과장에게 달려들었다. 이때 공장장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진정하시죠. 지부장님.”
“너 이 새끼 사람을 쳐?”
그는 온힘을 다해 대들었지만 건장한 관리자들 앞에서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이내 관리자들은 그의 왜소한 체구를 비웃듯, 총총히 그의 곁을 떠나고 있었다. 공장장은 재빨리 그를 달래기라도 하듯이 조합사무실까지 쫓아 들어왔다. 한참 나이어린 놈에게 맞았다는 개인적인 수치심보다는, 명색이 노동조합 대표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폭력을 저지르는 그 오만방자함이 그를 참혹하게 만들었다.
“도대체 왜 그런 겁니까? 지부장님?”
공장장은 마치 아무 일도 모른다는 듯이 묻고 있었다.
“가증스럽게도 당신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와? 두 눈으로 다 봤잖아!”
“김 과장이랑 싸운 겁니까?”
“이게 싸운 거야? 일방적으로 내가 맞은 거지. 노동조합 지부장에게 이렇게 폭력을 행사해도 되는 거냐고?”
“폭력이라뇨? 누가 누굴 때렸다는 겁니까?”
“지금 관리과장 놈한테 속수무책으로 얻어맞았잖아!”
“아닙니다! 난 못 봤습니다!”
순간 그는 폭력행위를 목격한 사람들이 모두 관리자임을 알자, 더욱 분통이 터졌다. 그는 이 사실을 오직 조합원들에게 빨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어떤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는 그만큼 흥분한 상태였다.
그는 컴퓨터 전원스위치를 올렸다.
“선전물 내시려고요? 맞았다고?”
“시치미를 떼는 당신 얼굴 보면 역겨우니 나가요! 당신과는 말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는 우선 본조 홈페이지와 회사 자유게시판에 오늘 벌어진 폭력행위에 대해 사실을 알렸다. 2층 화장실 옆에 마련된 노동조합 게시판에도 선전물을 게시했다. 그러나 분노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선전물을 게시하자마자 조합사무실로 황급히 들어온 것은 조합원들이 아니라 회사 관리자들이었다.
“우리가 언제 지부장을 때렸다는 겁니까? 선전물 삭제시키세요!”
“뻔뻔하게 그런 말이 나와?”
“서로 약간 실랑이 벌인 거 가지고 폭력이라니 너무 한 거 아니에요?”
“니놈이 내 목 잡고 헤드록 한 채로 끌고 다니다, 계단 밑으로 밀었잖아 새끼야?”
“정말 억울합니다. 나는 지부장님 근무시간에 소란피지 말라고 어깨 잡은 거밖에 없습니다.”
“뭐? 어깨? 이런 개새끼들 같으니라고, 사과는 못할망정 이런 식으로 사실을 왜곡시켜! 당장 나가! 쌍놈의 새끼들.”
“이건 분명히 허위사실을 적시한 겁니다!”
그는 오 차장과 김 과장을 강제로 밀어냈다.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기는커녕 진실을 축소 은폐시키는 그들의 행태를 보면서 또다시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지부장이 폭행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조합원들은 분노와 흥분으로 술렁거렸다.
“다친 덴 없으세요? 지부장님 맞았다는 얘기 듣고 다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다행히 크게 다친 데는 없습니다. 노동조합의 위신이 이렇게 땅에 떨어져서 가슴이 아플 뿐입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병원 가서 진단서라도 끊으세요?”
“병원 가서 진단서 끊어 달래면 2주는 나온 데요.”
“그런 식으로 치사하게 하고 싶진 않습니다.”
“지부장님, 제발 우리말 들으세요? 저렇게 흉악한 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압니까?”
“크게 다친 데가 있어야지 진단서를 끊지요?”
“목 언저리가 지금도 빨갛게 부어올랐습니다. 가라라도 끊으세요!”
“이 정도로 무슨…. 여러분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런 방법은 싫습니다!”
“참 지부장님도, 고지식해서….”
“지금 폭력행위보다 더 급한 건 낼 모래 있을 출정식 준비입니다. 거기에 우리 모두 역량을 집중합시다! 저도 실무적으로 더 준비해야 할 게 있어서, 오늘 폭력행위는 분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직도 준비할 게 있으세요?”
“예. 우리가 금속노조로 가게 되면 사측에선 곧바로 단협해지로 나올 수도 있습니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요?”
“얘는? 지부장님 때린 거 봐라! 회사가 무얼 못하겠니?”
“하기야! 본사에 법무팀도 있겠다, 우리가 조직형태 바꿔서 금속노조 가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겠니?”
“단협해지라면 단협을 적용받지 못한다는 말인가요?”
“예. 기존의 단협은 기업별노조 체계에서 맺은 거니까 산별로 가면, 조직형태가 바뀐 게 되니까 적용이 안 된다는 논리겠죠.”
“그렇다면 큰일 아니에요?”
조합사무실에 있던 일부 조합원들이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는 괜한 말을 한 게 아닌가 하는 후회가 잠시 들었다.
“그러면 우린 어떻게 되는 겁니까?”
“너무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사전에 간부님들에게는 말씀드렸는데요. 지부단협을 체결할 당시 그 대상이었던 우리 조합원들 상태도 변한 것 없이 그대로고, 우리 공장도 달라진 것 없이 그대로 조직자체가 이동하는 거니까 괜찮을 겁니다.”
“지부장님? 회사 놈들이 그래서 가입원서를 보낸 것 같아요?”
“맞아. 맞아. 단협 인정 못 받게 하려고! 음흉한 놈들 같으니라고”
“하여튼 배웠다는 놈들이 잔대가리는 더 잘 굴려.”
“물론 우리 일을 방해하기 위한 목적이겠죠. 솔직히 이 부분 때문에 고민이 좀 많았습니다.”
“그건 그거고 오늘 벌어진 폭력행위는 절대 용서할 없는 일입니다.”
“우선 금속노조 가는 일에만 올인 합시다!”
“그게 지금 우리에게 제일 중요하고 급한 일이라 해도 폭행 건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사무장 말이 맞아요. 지부장님!”
“압니다. 그러나 출정식이 바로 코앞입니다. 혹시도 일어날 지도 모르는 만일의 사태에 더 대비하자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출정식 끝나면 곧바로 회사에게 단협이 유효하다는 것을 내용증명으로 보내려고 합니다.”
“우리가 먼저 보낼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그런 걸 공연히 회사에게 알려주는 꼴이 될 수도 있잖아요.”
“맞아요. 괜히 긁어 부스럼 되는 일은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회사도 그 정돈 알고 있을 겁니다.”
“그건 지부장님 생각이죠. 회사가 그 문제로 딴죽걸때 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요. 오히려 금속노조 가자마자 새로운 단협체결 투쟁으로 돌입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 같아요.”
“그건 이미 준비해뒀습니다. 그러면 내용증명은 그때 상황 봐서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세상에 뭐 하나 쉬운 일이 없네요.”
“그래서 조직형태 바꾸면서 혹시나 문제점이 될 만한 것들을 사전에 알기위해 서울까지 가서 노무사도 만난 게 아닙니까?”
“우리 노조 만들자마자 외부인사 초청강연회 때 온 노무사요?”
“예. 그런데 그 양반이 자문을 해 줄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알고 보니까 그 쪽 노무법인 사람들이 우리가 나오려는 00연맹과 노무자문 계약을 맺었다고 하더라고요.”
“어머! 그렇다고 자문을 안 해 줘요? 우리 공장까지 온 사람이!”
“어딜 가나 편 가르기는 다 있나보네.”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발품 팔아서 여기저기 가서 자문 받았죠.”
“그렇게 준비했으니 출정식 때 잘 되겠죠. 뭐.”
“출정식 때 금속노조 쪽에선 누가 오나요?”
“수석부지부장이 오기로 했어요. 그날 탈퇴서 써서 본조로 보내고 가입원서 써서 주면 됩니다. 오늘 일로 저 때문에 많이들 상심하셨을 텐데 모두 진정하시고요. 나머지 조합원들에게도 끝까지 긴장 늦추지 말라고 전해 주세요!”
“출정식 앞두고 폭력행위가 찝찝한데….”
“우리 교란시키는 거겠지. 그래도 점심때 폭력행위자 처벌 규탄집회는 해야죠?”
“지역본부 방송차량 좀 부를까요?”
“그쪽도 바쁠 텐데, 우리 앰프 있으니까 그걸로 진행합시다!”
“알았습니다.”
그는 출근하면서 공장건물 현관 입구에 걸린 노동조합 현판을 습관처럼 잠시 바라다보았다.
‘저 현판도 오늘이 마지막이겠구나!’
14인치 모니터 크기만 한 알루미늄 금속판에 새겨진 이평지부. 저 현판과 함께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오늘 새로운 꿈을 잉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합원들에게 때론 실망하면서도 무한한 감동을 받은 날들이 더 많았기에, 힘들었어도 버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노동조합 현판을 노조사무실 문에 걸으라는 회사의 요구는 노동조합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처사였다. 사무실조차 외부인들의 눈에 띄지 않는 한적한 곳에 마련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했었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이를 끝내 거부하고 모든 사람들의 출입이 빈번한, 건물의 중앙인 2층 게단 바로위에 사무실을 만드는 뚝심을 보여주었다. 노조현판도 건물 입구에 회사현판과 나란히 거는, 특유의 자존심을 보였다. 그것은 조합원들의 긍지였었다.
노동조합에 미온적인 조합원들까지도 현판이 걸리자 모두 나와 사진을 찍었다. 함박웃음으로 저마다 온갖 포즈를 취해가면서. 아마도 그때가 분위기는 제일 살았을 것이다. 더구나 현판식 하던 날은 온종일 웃음이 끊이지 않았으니까. 오전부터 지역에 있는 단사에서 보낸 기념화분이 하나 둘 노조사무실 앞에 진열되자 그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었다. 그 개수가 열 개가 넘어서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을 질렀다. 신명나는 축제의 한판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동안 투쟁했던 사진들을 공장 담벼락에 붙이고 지역동지들의 축하 속에 고사를 지냈다. 조합원들도 모두 나와 돼지머리 앞에 큰절을 올렸다. 여기서도 웃음, 저기에도 웃음소리뿐이었다. 공장 앞마당에 비닐장판을 깔고 조합원들과 지역동지들이 함께 먹었던 육개장. 그것은 조합원들이 직접 팔을 걷어 부치고 공장식당에서 만든 것이었다. 웃음꽃과 덕담으로 모두가 흥에 취했던 그날. 누구는 공장 생활 20년 만에 오늘 같은 날은 처음이라고 감격했었다. 조합원 모두가 그런 심정이었으리라.
이제 우리 손으로 걸었던 저 현판을 떼고 오늘 새로운 금속노조 △△지회의 현판을 조합원들의 환호성으로 걸어야 한다. 그는 점심시간이 다 될 때까지 평상시처럼 지게차로 출고량을 화물차에 싣느라 여념이 없었다.
“어어! 사고 나겠어!”
11톤 윙바디 기사가 송장에 사인을 하며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브레이크를 밞았지만 지게차는 3∼4m 밀려 가까스로 멈춰 섰다. 스위치를 끄고 바테리 단자를 풀어 증류수양을 확인했다. 기판과 주행접점도 그을린 흔적도 없이 정상이었다. 그렇다면? 반달모양의 라이닝이 유독 한쪽으로만 닳아 있는 게 보였다. A/S에 전화를 걸고서야 그는 자판기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문득, 금속노조 쪽에서 어제가 아니더라도, 지금쯤 확인 차 전화한번 와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디데이 날짜를 확정지은 금속노조 회의 이후 연락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무심할 수 있나? 지역에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것인가? 우리와의 약속을 까먹은 건 아니겠지, 하는 별의별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분명한 건 께름칙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핸드폰에 저장된 금속노조 버튼을 눌렀다.
“이평지붑니다. 오늘 저희는 예정대로 준비는 다 됐습니다.”
“아! 지부장님? 지금 우리 식사 중인데 이쪽으로 좀 오시죠? 저희들 잘 가는 식당 아시죠?”
그는 순간적으로 불길한 전율에 휩싸였다. 머리칼이 곤두서는 듯 심장이 요동쳤다. 걸어서 갈 수도 있는 곳을 부리나케 택시를 잡아탔다. 불길한 예감은 사람을 미치도록 긴장시키고 있었다. 식당에 들어서니 지역본부 상근자들과 금속노조 상근자들이 대접에 카레밥을 먹고 있었다. 그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금속노조 지부장 곁으로 가 앉았다.
“무슨 일 입니까?”
“식사 좀 하시죠?”
“됐습니다. 무슨….”
“오늘 금속노조로 오는 거, 보류합시다!”
“네?”
그는 순간 아찔해졌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불과 5시간만 있으면 출정식인데.
“저희가 아직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지역에 투쟁사업장도 많고….”
금속지부장은 정말 미안해하는 듯 했다. 그러나 이게 단순히 미안하다는 말로 끝날 일인가? 그는 순간 깊은 혼돈에 빠져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아니 머릿속이 휑하니 빈 것 같았다. 낙담은 탄식이 되어 그의 목소리엔 이미 울음 같은 것이 묻어 떨리기조차 했다.
“그걸 지금 말하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도 무슨 대책이라고 세울 시간을 줘야 할 게 아닙니까?”
“정말 미안하게 됐습니다.”
금속지부장과의 대화는 1분도 채 안될 정도로 너무나 짧게 끝났다. 그 1분 동안의 대화가 모든 것을 허물어뜨리고 있었다. 금속노조를 가기 위해 그동안 준비했던 실무적인 매뉴얼은 고사하고, 금속노조를 믿고 투쟁한 조합원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금속노조가 약속을 어겼다고 조합원들에게 어떻게 말 한단 말인가? 이 사실을 알면 조합원들이 얼마나 실망할 것인가?
그는 조합원들이 실망하는 모습을 지켜볼 자신이 없었다. 어디론가 정말 도망가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느꼈던 배신감과 실망감은 상처가 되어 오랫동안 아물지 않은 채 오롯이 남아 있을 것이다. 이 상처를 가슴에 묻어야 하는가? 아니면 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조합원들에게 보고해야 하는가? 그러나 지금 무엇보다 시간이 없다! 조합원들에게는 일단 말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실망해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더욱 가슴 아픈 일이니까! 그러나 이것은 엄연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문제 아닌가? 그는 어떤 결정도 쉽게 내릴 수가 없었다. 일어서면서 심한 현기증이 일어났고 이마엔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아! 이평지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두 사람의 대화를 다 들었을 텐데, 식당에 있던 상근자들은 누구하나 무슨 말도 없이 식사하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그들은 이평지부가 금속노조로 간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럴 때는 다들 침묵하고 있었다. 그가 넋 나간 사람처럼 보였는지 대협부장이 그 침묵을 깨고 한마디 던졌다.
“지부장님, 지금 이평지부와 금속노조는 서로 친숙한 사이가 아니니까 시간을 갖고 유대감을 넓힐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금속노조 회의 때 참관도 해서 서로 사업도 공유하고, 얼굴도 익히는 기회를 갖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는 위로하듯 말을 했지만 그런 모법답안 같은 얘기로는 사람을 진정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허접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이평지부가 지금 처한 상황을 좀 더 속살 그대로 느꼈다면 그런 입에 발린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인간적으로 죄송하게 됐다든가, 힘내세요! 라고 했다면 얼마나 담백했을까? 그는 아마도 어느 정도는 마음이 진정됐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긴박했던 상황들을 너무나 모르고 있었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에겐 앞으로가 아니라 지금이 중요하고 절실한데….
식당 문을 나서면서 그는 더욱 기진맥진 해 보였다. 오금이 풀렸는지 발걸음조차 쉽게 땔 수 없었다.
“지부장님? 제 차 타고 가시죠?”
허겁지겁 금속지부장이 따라오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저도 그 쪽 방향으로 가야 해서요?”
차 안에서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은 데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마치 넋 나간 사람처럼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저 모든 것이 막막하기만 했다. 차에서 내려 공장 건물을 들어서려는데 부지부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부장님? 얼굴이 완전 흙빛이세요! 어디 아프세요?”
그녀는 깜짝 놀라 걱정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무슨 일 있나요?”
“왕위원장 왔어요!”
“아이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절묘하게 꼬일 수 있단 말인가? 불운은 그래서 연이어 터진다고 했던가?
“왕위원장이 교육실에서 1시 30분부터 조합원들과 간담회한데요.”
그는 저 만치에서 하늘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 속에는 지부장인 자신과 넉살좋게 웃고 있는 조합원들이 있었다. 핸드폰을 보니 1시 20분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마침내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지나가던 길에 들렀습니다. 이평지부 조합원들이 보고 싶어서요?”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하세요. 안 그래요? 아버님!”
조합원들이 깔깔거리고 있었다. 평소 본조를 부모로 지부를 자식으로 폄하했던 왕위원장에 대한 독설이었다.
“이 미숙 여사님의 저런 말 펀지가 무서워 이곳에 자주 못 내려 왔습니다. 카운터펀치에 맞았더니 휘청거립니다.”
“우린 왕위원장님이 여기 왜 왔는지 알지 롱!”
조합원들은 다시 깔깔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만만해 보였다. 지부장인 그만 혼자서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이런 조합원들에게 약속을 저버려야 한다니….
“솔직히 말 하겠습니다. 본조 나가는 거 그만 두셨으면 합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고용안정협약, 그거 제가 따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 왕위원장의 바로 이런 행태 때문에 우리가 본조를 나가려고했던 게 아닌가? 노사관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조합원들의 집단적인 힘이 아니라, 지도부 한두 사람이 로비로 해결하려는 그런 작태가 노동조합을 갉아먹는 것이라는 걸! 그런데 이제는 그가 왕위원장처럼 노동조합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유충이 되려고 하고 있었다.
조합원들의 시선이 모두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누구는 웃으면서 누구는 진중하게.
“지부장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왕위원장이 그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는 결국 무너지고 있었다. 그건 항복 선언이었다. 대다수 조합원들은 깜짝 놀라 의아하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고, 일부 조합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 같았다. 왕위원장은 여유롭게 웃고 있었지만 그는 양심을 판 전향자가 되어 고개를 푸욱 숙이고 말았다.
“우리 오늘 사실 금속노조 가는 날이었는데….”
“맞춰 논 현수막 걸지도 못하고….”
“그쪽에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하게 됐다고 빨리 연락해! 사무장.”
조합원들이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는 가운데 그는 한낱 죄인이었다. 자신이 먼저 본조를 나가자며 그렇게 조합원들을 설득해 놓고서, 이제 와서 본조 품에 안기는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가장 어려울 때 어떤 선택을 했느냐가 사람의 존재가치를 증거 한다. 그는 너무 쉽게 현실에 타협했고 타협은 어용으로 가는 첫걸음이 아니던가?
“여러분들이 현명한 결정을 하셨습니다. 본조 위원장으로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본조와 지부는 성숙한 동지적 관계로 복원될 것입니다. 노사관계도 대립과 투쟁이 아닌 대화와 타협의 관계로 정립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요즘 투쟁사업장들, 어디 제대로 끝난 사업장이 있습니까? 비정규직철폐, 정리해고 철회? 말은 좋지요. 결국 그런 사업장들 다들 어떻게 됐습니까? 결국 돈 먹고 떨어졌습니다. 그들이 처음 외쳤던 구호는 간데없고 현실은 그대로입니다. 지금 투쟁하는 사람들도 결국 돈 몇 푼 더 달라는 것으로밖에는 안 보입니다! 그러면서도 주장하는 의제는 그럴싸하지요.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냐면, 요새 돌아가는 판들이 보기에 하도 답답해서 그럽니다. 이평지부는 이번 주부터 회사와 고용안정협약을 교섭할 수 있도록 테이블 만들겠습니다. 본조를 믿고 따라오시면 됩니다!”
왕위원장은 의기양양하게 조합원들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그는 또 한건 해결했다는 듯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그에게 보내고 있었다. 마치 넌 뛰어봤자 내 손바닥이야, 하는 것처럼.
조합원들이 교육실을 빠져나가 현장으로 올라간 뒤 왕위원장과 그만이 남아있었다.
“오늘 내 제안을 너무 쉽게 받아줘서 내심 놀랐습니다. 그렇게 금속노조 가겠다고 하더니….”
“본조를 압박하는 제스처 부린 겁니다.”
“에이! 지부장님이 그럴 성격입니까? 왜요? 금속노조가 안 받아준대요?”
“아니요. 제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말랑말랑하게 사세요. 뭐 그리 어렵게 살려고 합니까?”
“그만 서울 올라가시죠?”
“솔직히 이 조그만 공장에서 그런 게 뭐가 필요합니까? 자동차처럼 대기업 노조라면 모를까. 지부에서 하도 생쇼를 해서 회사도 마지못해 교섭을 하는 거니 공장장이랑 잘 해 보세요!”
“…….”
“아, 그리고 이번 교섭과 관련해서 회사가 지부장님에게 뭐 특별한 것을 바라는 것 같던데요?”
“이면 합의서 같은 겁니까?”
“그건 아니고요.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차차 알게 되겠죠. 하하.”
“본조에 있으면 그렇게 정보를 많이 아는 겁니까?”
“말 나온 김에 유익한? 정보 하나 더 말씀드리지. 회사가 지난번 폭력행위로 지부장님을 고소한답니다.”
“무슨 이유로?”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이라나? 뭐 전기통신법에 그런 게 있대요.”
“아니 교섭하자고 하면서 고소를 해요?”
“그게 회사 아닙니까? 다 알면서!”
지부장을 고소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공장은 다시금 술렁거리고 있었다. 간부들을 중심으로 공장장과 면담을 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고소를 취하하라는 요구에 공장장은 관리과장 개인의 일이기 때문에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회사는 이번 고소 건에 대해 아무런 영향도 개입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순전히 개인과 개인 사이에 벌어진 일이기에 그 결과를 가지고 잘못한 사람에게 회사에서 정한 책임을 물으면 된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어디 개인적인 일인가? 발생동기서부터 전후과정 모두가 노사관계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걸, 회사 관리자들이 더 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회사는 끝까지 개인의 일로 치부하고 나섰다.
간부들은 지부장과 최초로 언쟁을 나누었던 권 대리에게 정확한 폭력행위에 대한 진위를 물어보려했으나 그는 며칠 째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도 꺼져 있었다. 결국 그는 뚜렷한 이유 없이 퇴사하고 말았다. 모든 것이 생각과는 다르게 뒤틀리고 있었다. 폭력행위에 안일하게 대응한 건 분명 지부장의 잘못이었다. 초동 대응의 실패가 고소라는 형태로 사람들을 압박할 줄은 아무도 예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조합원들은 이번일이 더욱 안타까웠다.
마침내 출두명령서가 날라 오자 조합원들의 근심은 더욱 깊어갔다.
“일개 과장이라는 놈이 무슨 명예가 있다고 고소를 해!”
“자기는 때리지 않았는데 지부장님은 맞았다고 주장을 하니까, 그게 지 명예를 훼손했다는 거겠지.”
“그렇다고 고소를 해! 사내새끼가?”
“공공장소에 특정인의 이름을 밝히면 그 자체로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단다.”
“그런 법이 어디 있어? 이름을 쓸 수도 있는 거지.”
“김 과장은 허수아비고 회사가 다 뒤에서 조종하는 거야. 그래서 그때 진단서 끊어야 된다고 다들 그랬잖니?”
“이제 와서 그런 말하면 뭐 하니? 그때 지부장님 금속노조 간다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잖아. 하필이면 우리가 현장에서 일하고 있을 때 그런 개 같은 일이 벌어질 게 뭐람. 지부장님, 드럽게 운 없어!”
“오늘 일하다 들었는데 사무실 경리 아가씨가 그날 지부장님 맞는 거 봤대!”
“정말? 그러면 그 아가씨가 증인 서주면 되겠다!”
“그 아가씨가 진실을 말할 수 있겠니? 그러려면 공장 그만둘 각오를 해야지.”
“벌써 회사는 지들끼리 입 다 맞춰났을 거야. 권 대리 소리 소문 없이 그만둔 거 봐라!”
“지부장님이랑 관리과장 싸울 때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사람이었으니까. 혹시라도 다른 말 나올까봐, 다른 계열사로 보냈을 거야.”
“진실을 덮기 위해서는 일개 대리 정도는 파리 목숨이겠지. 힘 있고 돈 많은 놈들에게는.”
“뚱성은 고소까지 하는 거 보면 정말 때리지 않은 거 아니야, 이러더라니까?”
“미쳐! 정말. 잘못하면 지부장님 진짜 어떻게 되는 거 아냐?”
“얘는? 벌금내면 끝나는 일이야. 운전하다 흔히들 접촉사고 나잖아. 그런 단순한 경우라니까.”
“그러면 서로 합의하면 될 걸, 왜 고소를 하니?”
“회사가 지부장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서 하는 얘기니? 회사 입장에서는 이번 기회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부장님에게 타격을 주려고하겠지. 그래야 지들 맘대로 공장을 돌리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된통 걸린 것 같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경리아가씨도 이미 자꾸 채웠을 것이고.”
“세상살이 억울한 일 많다더니 이런 일이 우리에게 닥칠게 뭐라니? 맞은 사람은 가만히 있는데, 때린 놈은 지 잘 났다고 고소하는 거 보면.”
“나 같아도 속에 열불 나 죽지. 원통해서 어디 살겠어!”
“한쪽으로는 고소하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고용안정협약 교섭한답시고 하고 있는 꼬락서니 보면 회사 놈들 정말 야비해!”
조합원들은 고용안정협약 교섭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다도 고소 건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었다. 틈만 나면 서로 삼삼오오 모여 사건의 추이를 주시하고 있었다.
국민체조를 알리는 음악소리가 들리자 조합원들은 오늘도 평상시처럼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자신의 출근카드를 찍고 있었다. 2층 조합사무실 앞까지 이어진 하얀 작업복 차림의 행렬을 뒤에서 바라보면 정말 장관이었다. 뒷사람이 앞 사람의 어깨를 주무르면 반사적으로 그 행동이 물결 타 듯이 이어졌고, 누군가 장난치듯 앞사람의 똥꼬를 찌르면 전체로 파급되었다. 시도 때도 없이 자지러지는 50명의 웃음소리는 이 공장의 유일한 미덕이었다. 출근카드를 다 찍고 조합원들은 다시 대열을 이루고 있었다.
“오늘 저는 오후 2시에 경찰서로 조사 받으러 갑니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회사가 고소를 했기 때문입니다. 저도 사실 명예훼손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표현의 자유를 심각히 침해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사를 비판하면, 비방한다고 노조활동 자체를 옥죄일 수 있는 아주 무서운 법이라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한 것이 죄라면 그 죄를 받겠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사실을 왜곡한다면 저는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오늘 제가 조사를 받으러가도 여러분은 절대 동요하시면 안 됩니다! 평상시처럼 자신들의 할 일만 하시면 됩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잘 다녀오겠습니다.”
조합원들은 다들 침울해 보였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도 무겁긴 마찬가지였다.
“우리 기분도 그런데 오랜만에 철의 노동자나 한번 부르자!”
사무장이 대열 속에서 소리쳤다.
“팔뚝질 크게 하면서.”
“투쟁! 투쟁! 단결투쟁! 민주노조 깃발아래 …….”
팔뚝질을 하는 조합원들을 보면서 그는 콧날이 시큰거리고 있었다.
준법투쟁이 끝난 후 여느 날처럼 그는 물류창고로 내려가 재고량을 파악하고 당일 나갈 출고량을 점검한 뒤 파레트마다 랩을 돌리기 시작했다. 배송차량이 들어올 때마다 평상시처럼 분주히 지게차를 몰고 있었다. 오전 11시쯤에 공장장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오늘 직원들이 오후에 기계를 끈다는데 알고 게셨소?”
“왜요?”
돌발적인 소식에 그는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분명히 조합원들에게 동요하지 말 것을 강조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조합원들은? 그에게는 정말 충격적인 일이었다.
“지부장님 오늘 경찰 조사 받으러 갈 때 같이 간다던데요?”
“조합원들이요?”
“아니, 사람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공장장은 그를 쳐다보면서 ‘니가 사주한 게 아니야?’ 하는 표정이었다.
“처음 듣는 얘깁니다. 저도 자세한 내용을 알아봐야 할 것 같은데요.”
“도무지 이해가 안갑니다. 원래 이쪽 공장사람들은 이렇듯 세상을 막 사는 겁니까? 만약에 기계를 끄는 극단적인 사태가 발생하면 이건 분명히 파업입니다. 그것도 불법파업입니다. 돈 벌려고 온 사람들이 합리적인 명분도 없이 공장을 뛰쳐나가는 일이 벌어진다면 절대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직장질서를 문란 시키는 사상초유의 중대한 범죄행위입니다. 회사 창립 40년 만에 있을 수도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고소 취하하세요! 이 고소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니까 조합원들이 흥분하는 거 아닙니까?”
“엄밀히 말하면 직원들은 제 3자 아닙니까? 제 3자가 왜 나서느냐, 이겁니다!”
“이게 개인과 개인의 일입니까? 회사가 노조를 고소한 거 아닙니까? 우리 조합원들은 이번 사건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직원들이 자신들의 일이라 생각한다는 거죠? 참 대단한 사람들이네. 기가 찰 노릇이네요.”
“노조에서만큼은 조합원들은 일심동체에요.”
“회사에서만큼은 종업원들은 가족공동체인데요?”
“가족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고소를 해요?”
“김 과장한데 진작 고소취하 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고집을 피우니 낸들 어떻게 합니까?”
“정말 그런 말이라도 해봤습니까? 한번이라도.”
“그럼요. 설득을 제가 얼마나 많이 했는데요?”
교활한 새끼. 그는 공장장과 이렇게 앉아 있는 게 불쾌했다.
“오늘 출고량이 많아서 조합원들 얼굴도 보지도 못했어요. 먼저 일어서겠습니다.”
“잠깐만이요. 지금 이것보다 중차대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생산차질 빚으면 막대한 손실이 있다는 건 지부장님도 잘 아시죠. 제발 불행한 일이 없도록 지부장님이 막아 주세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고소 먼저 취하 하세요. 그러면 조합원들도 진정할 겁니다.”
“노동조합이 무슨 광신도집단도 아니고 지부장 한 사람 고소한 걸, 왜 이리 난리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의리라는 겁니까? 동지애라는 겁니까?”
“잘못된 사실에 대해서 분노하는 거 아닙니까? 진실이니, 양심이니 이런 말들은 당신들 세계에서는 망각하며 살고 있잖아!”
“공장장 앞에서 이렇게 막 가자는 겁니까?”
“노사관계를 파행으로 몰고 간 건 당신들이야. 협잡해서 고소나 하고 말이야!”
“협잡이라니? 사과하세요!”
“사과? 그건 내가 당신들한테 들을 소리야!”
“직원들 기계 끄고 나가면 모두 지부장 책임으로 물을 겁니다. 고소는 절대로 취하 못합니다!”
”개새끼들!”
그가 일어서서 공장장실을 나가려 할 때 뒤에서 버럭 고함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내가 여기 똥 치우러 왔지, 설사까지 치우러 왔어!”
조합사무실로 돌아와 그는 조합원들이 정말 공장을 박차고 경찰서로 갈 것인지, 전혀 예상이 되지 않았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조합원 모두 징계를 감수해야 할 탠데, 과연 그들이 그런 불이익을 감수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 연대 한번 가자면 늘 빼던 그들이 아니었던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벨소리가 울리자 조합원들이 왁자지껄 식당으로 향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출석을 하면 조사를 받고 검찰로 넘기겠지, 또 검사한데 조사를 받고…. 생각만 해도 귀찮은 일이 이제 시작되는 것이다.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와 증인이 있어야 하는데, 이게 그에게는 지금 없다는 것이 치명적인 맹점이었다. 식당으로 향하던 간부들 몇 명이 조합사무실에 그가 있다는 것을 알자 들어왔다.
“지부장님? 우리 오늘 오후에 기계 끄고 지부장님이랑 같이 경찰서 갑니다!”
사무장은 단호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 표정이 무척이나 비장해보였다.
“그거 좀 심한 거 아닙니까? 저 혼자 갔다 올 테니 그냥 계세요.”
“지부장님은 분하지도 않으세요? 우리 현장에서 다들 그렇게 얘기됐어요.”
“부지부장이랑 몇 사람은 안 간다며?”
“밥 먹고 설득 해야지. 텅 빈 공장에서 지들 몇 명 남아서 뭐 할 거야? 걔네들 이러다가 진짜 조합원들한테 욕바가지로 먹는다!”
“지부장님은 가만히 계세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경찰서 가려면 어여 밥 먹으러 가자. 지부장님도 식사는 하셔야죠.”
“공장 오늘 제대로 한번 엎어보자!”
도대체 저런 용기는 어디서 나온단 말인가? 그동안 투쟁을 가슴으로 먼저 느꼈던 적이 있었던가? 언제나 앞뒤 재며 멈칫거렸다. 그런데 저들은!
똑똑 노크소리가 나더니 조합사무실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왔다.
“오랜만입니다. 지부장님?”
정보과 형사였다.
“오늘 이평지부 조합원들이 저희 경찰서를 습격한다면서요?”
“왜, 겁나세요?”
“형사 생활하면서 이런 일은 또 처음 겪습니다. 아니 지부장님이 단순히 경찰에 조사받으러 가는 걸 조합원들이 왜 따라가겠다는 건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물론 과거에 이런 일은 있었죠. 노동조합 대표가 집회하다 잡혀가니까 석방하라고 조합원들이 도로를 점거한 적은 있어요. 어느 지회장은 집회에서 잡혀가니까 공장에 있던 조합원들이 기계를 끈 적은 있어요. 석방하라고. 그런데 이평지부는 뭡니까? 완전 막무가내 아닙니까?”
“우리 조합원들이 좀 순수해서 그래요.”
“그게 순수한 겁니까? 무데뽀죠! 나이들깨나 다들 자신 양반들이 도대체 물불을 못 가리니….”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건 없습니다.”
“노사관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공장에서 해결해야지, 왜 죄 없는 우리에게 화풀이를 하시는 겁니까?”
“지금 당신이 노사관계에 개입하고 있잖아!”
“경찰서로 몰려온다고 하니까 제가 드리는 얘기 아닙니까?”
“그쪽 경찰서에서 출석요구서 보냈잖아?”
“그게 우리가 보낸 겁니까? 회사가 보낸 거지. 조합원들이야 생각이 짧고 우욱 하는 군중심리에 그렇다손 쳐도 지부장님까지 이러시면 안 되죠? 조합원들 좀 막아주십시오!”
“우리 조합원들은 당신네들이 갖지 못한, 눈물을 가진 사람들이오. 그걸 내가 어떻게 막는답니까?”
“어라? 오늘 또 피잉 도네! 지부장님 말입니다, 피차 정글 속에서 사는 사람들끼리 서로 건드리지 말아야 할 금기라는 게 있어요. 그게 뭔지 아십니까? 자존심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막말로 돈이 최고 아닙니까? 돈이 권력 아닙니까? 그런 세상에서 노동운동 한다는 사람들, 처음에는 저도 경외감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이 바닥에서 십여 년 뒹굴다보니까요, 온갖 똥파리들이 다 모여 썩은 냄새 폴폴 나는 곳이 바로 거기더라 이 말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가만히 보고만 있는지 아십니까? 그 알량한 자존심 세워주려고 그러는 겁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 보고 권력의 하수인이니 뭐니 그러는데요. 그쪽이나 잘 하라고하세요. 우리는 뭐 피도 땀도 모르는 줄 아세요? 캬! 갑자기 진짜 멜랑꼴리 해지네.”
“그만 나가주세요!”
“지부장님도 이 바닥에서 행세깨나 하고 싶으면 저희 같은 사람이랑 안면 트고 사는 게 좋을 겁니다. 피차 나와바리는 물론 건드리면 안 되고요. 지역본부 상근자들이랑 다 호형호제 하면서 지냅니다.”
“바쁠 테니 그만 가 보세요.”
“왜 이리 쫒아내지 못해 안달이십니까? 솔직히 지부장님, 맘에 와락 듭니다! 진지하게 한번 사귀어보고 싶다, 이 말입니다. 왠지 아세요? 어떻게 노조활동을 하셨기 에 조합원들이 그토록 믿고 따르느냐 이겁니다. 세상에 어느 조합원들이 지부장님 한 사람을 위해 그런 투쟁을 한단 말입니까? 진짜 감동 먹었습니다. 이거 지역뉴스에 나올 일 아닙니까?”
“…….”
“조사계에다 친절히 모시라고 전화 넣겠습니다.”
형사가 나간 뒤 그는 오늘 하루가 또 한 번 이평지부 역사에 중요한 날로 기억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김없이 본조 왕위원장에게 전화가 오고 있었다.
“공장장한데 보고 받았는데 그게 모두 사실이오?”
“조합원들끼리 얘기 중입니다.”
“금속노조 간다고 그렇게 생쇼를 하더니 또 개판을 만들겠다는 거야?”
“말이 지나치십니다. 조합원들이 스스로 결정하는 일을.”
“당신이 각본 쓰고 연출하는 거 아니야? 무조건 안 되니까 그렇게 알아!”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힘을 제가 어떻게 막습니까?”
“나도 노조깨나 했다는 사람인데 이런 일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단 말이야! 당신이 무슨 감언이설로 조합원들을 들쑤셨기에 경찰서까지 간다는 거냐고?”
“본조와는 할 말이 없습니다.”
“지금 회사에서는 창립 40주년이라고 언론에 홍보하는 판에 이런 일이 벌어져서야 되겠어? 조합원들 막으라고! 안 그러면 당신 끝장이야!”
“제발 지부 하는 일에 관여 좀 하지 마세요!”
“내가 본조 위원장인데 지부 하는 일을 왜 관여 못해? 당신뿐만 아니라 조합원들, 다치는 거 책임질 수 있냐고?”
“지부장으로서 책임지겠습니다.”
“어떻게 책임질 건데?”
“…… . 대체 뭘 원 하시는 겁니까?”
“내 입으로 말 할 수는 없고. 회사가 손배 때리면 그땐 어떻게 할 거야?”
“살려달라고 납작 엎드리란 말입니까? 아마도 당신이나 회사는 그걸 바라겠죠. 그러나 우리 조합원들은 다를 겁니다. 오늘 조합원들이 그걸 증명할 테니까요. 회사한테 이런 비열한 조언은 이제 그만하시죠?
“뭐야? 이 새끼가! 투쟁하면 반드시 결과에 대한 책임이 뒤따르는 거야! 내 말 명심해!”
“전화 끊겠습니다.”
“야, 새끼야? 너 미쳤어! 다들 미쳤냐고!”
이제 지금쯤 출발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한편 탈의실에서는 조합원들끼리 열렬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부지부장? 너는 그래서 공장에 남아 있을 거야?”
“나는 안가! 이건 올바른 방법이 아니야. 우리가 경찰서 달려간다고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어.”
“그렇다고 이렇게 가만히 있자는 거니? 지부장님은 조사 받는데 우리는 그 시간에 돈이나 벌자고? 니가 더 잘 알잖아. 회사가 지금 거짓말을 하면서 지부장님을 코너로 몰고 있다는 걸.”
“우리가 나가면 지부장님은 더 궁지에 몰려. 회사는 불법파업에 주동자로 몰 거라고?”
“그럴지도 모르지. 지부장님이 주동자로 몰리면 넌 그때도 지금처럼 다른 이유를 대며 가만히 있겠지. 지난 세월 노예처럼 쥐 죽은 듯이 사는 게 싫어, 니가 우리들에게 노동조합 만들자고 한 거 벌써 잊었니? 그래놓고 다시 옛날로 돌아가자는 거야? 그때의 그 순수함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거니?”
사무장의 목소리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채 격렬한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모두가 숙연한 분위기였다. 조합원들 중에 몇몇은 같이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성이 말한 대로 우리가 나간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을지도 몰라. 그런데 가만히 있으면 회사의 부당함을 인정하는 꼴이 되잖아! 거짓이 진실을 이기는 거라고. 법으로 판단하기 전에 우리는 몸으로 말해야 되는 거 아니야? 그리고 우리는 다 같은 노동조합 조합원이잖아!”
“영자야? 니가 부지부장이고 반장이기 때문에 니가 반대하면 우리 안 나갈 수도 있어. 그런데 머리 굴리지 말고 쉽게 생각하자. 지부장님이 가입원서 때문에 싸우다 조사를 받으러 가는 게 누구 때문이니? 그 사람 자기 잘 먹고 잘 살려고 관리과장이랑 싸운 거니? 노동조합 지키려고 싸운 거잖아! 바로 우리들 때문이라고. 난 그게 미안했어!”
“지부장님이 이런 말 자주 했잖아? 지금 투쟁 못하면 내일도 투쟁 못한다고. 지부장님이 만약에 잘못되면 우리가 그때 가서 투쟁할 수 있을 것 같아? 여기에 그럴 사람 아무도 없어! 지금 못하면 앞으로도 못해!”
“투쟁? 그런 거 나는 잘 모르겠고. 지부장님 혼자 경찰서 보내는 게 마음이 짠해. 그래서 내가 그냥 옆에 있어 주려고. 그러면 지부장님 조금은 든든해지겠지.”
“순남아? 니 옆엔 내가 있을 껴!”
“성들이 가면 나도 가야지!”
“나도 갈게.”
여기저기서 조합원들이 손을 들고 일어서고 있었다.
오후 작업을 알리는 벨소리가 다시 울렸다. 이윽고 지부장인 그가 조합사무실을 나서자, 조합원들도 한 두 사람씩 탈의실을 박차고 나왔다. 그들은 3층 현장이 아닌 2층 계단 밑으로 우르르 내려가고 있었다.
경비실 앞에 모인 조합원들은 마치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약간 들떠 있는 표정들이었다. 흥분과 알 수 없는 쾌감으로 그들은 그들끼리 잠시 정담을 나누는 듯 했다. 사무장은 이윽고 그들 틈에서 부지런히 인원을 체크하고.
“전원 집합이다!”
그녀는 무엇인가 성취한 듯한, 어린아이처럼 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저렇게도 좋을까? 지부장이 대체 그들에게 뭐라고, 다들 뛰어나와 이렇듯 가슴을 저리게 하는 것인가?
하얀 빵 모자와 하얀 작업복 위로 오후의 햇살이 화창하게 비추고 있었다. 대열 속에서 누군가 넋두리 하듯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렇게 햇살이 고운데 나는 이 공장 안에서 김치와 씨름하며 청춘을 다 보냈다니!”
“성? 땡땡이치니까 어때?”
“노동에서 해방된 것 같다. 이년아!”
잠시 대열 속에서 웃음소리가 들리고 사무장은 조합원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조합원 여러분, 뒤에 공장 옥상 좀 보세요?”
“아니 관리자들이 저기 다 있네!”
“어쩐지 아무도 제지를 안 하더라. 무슨 꿍꿍이속이 있나?”
“저 새끼들 또 사진 찍고 지랄이야.”
“여러분, 흔들릴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공장은 멈췄습니다. 택시 오는 대로 4명씩 타 세요! 이평경찰서 앞입니다.”
“걸어가면 좋을 것 같은 데?”
“거기까지 언제 걸어가니? 우리가 지금 영화 찍니?”
“어머! 뚱 성? 그 장화 벗고 와야지.”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조합원들을 다 보내고 마지막으로 임원진 3명이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 안에서 그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오늘의 투쟁이 과연 어떤 파장을 낳을지 제각각 깊이 생각하는 것 같았다. 라디오에서 귀에 익은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부지부장이 조용히 따라 부르고 있었다.
“마른 나무 가지에서 떨어지는 작은 잎새 하나…….”
“저는 지금 긴장되고 떨리는데 부지부장님은 여유가 있으시네요.”
“마음의 결정을 했으니까 그렇죠. 이 노래 처녀 때 많이 불렀는데….”
“옛날 노래잖아요?”
“그렇죠. 서울에서 공장 다닐 때니까.”
또 다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지부장님? 아무래도 지역본부에 알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사무장이 핸드폰을 꺼내면서 말했다.
‘네. 여기 이평지부인데요. 저희가 이평경찰서 앞에서 집회를 하려고 합니다. 지금 기계 끄고 나왔거든요?’
‘아니! 왜요?’
사무장은 지금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듯 했다.
‘그런 식으로 투쟁하시면 안 됩니다! 준비 없는 투쟁은 백전백패라는 걸 모르세요? 참 큰일이네요. 이후에 어떻게 대처하시려고 그러세요?’
‘조합원들이 결의해서….’
‘조합원들이 결의한다고 지도부가 따라가면 어떻게 합니까? 바로 잡아주셔야지요. 잘못된 투쟁은 심각한 폐해만 남길 뿐입니다.’
상대방의 조리 있는 말에 그녀는 마음속으로는 우리는 그렇게 생각 안하는데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말 잘 하는 사람과 붙어봤자 자신의 무식만 탄로 나기 때문이었다.
‘방송차량은 안 될까요?’
‘차량은 있는데 끌고 갈 사람이 없네요. 모두 바빠서. 그쪽에는 운전 하는 사람 없으세요?’
‘네! 저희는 그냥 보고 드리려고 전화한 겁니다.’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시는 겁니다.’
그녀는 전화를 끊으려다, 상대방이 혼자 뇌까리는 듯한, 말을 들었다.
‘무식한 건지, 무모한 건지….’
“지역본부에선 뭐라고 합니까?”
그는 뒤 자석에 있던 사무장을 향해 무심코 통화내용을 물었다.
“그냥 알았다고 하네요. 지역본부 사람들은 다들 달변가들이네요. 그런데 지부장님? 우리가 지금 잘못하고 있는 걸 까요?”
“아니요! 조합원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오늘 지부장님을 위해 우리가 투쟁하지만 내일도 그러리라고는 기대하지 마세요!”
“왜, 그런 힘없는 말을 하십니까?”
“회사가 보나마나 조합원들을 징계 할 텐데 과연 계속 싸울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야죠.”
“바람 불면 풀 보다 먼저 눕는 게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어려울 때일수록 투쟁해야 한다고 말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대다수 노동자들은 어렵고 힘들 때 몸을 먼저 움츠립니다.”
“사무장? 우리 조합원들도 그럴 거 같니?”
“어! 넌?”
“그건 부딪혀 봐야 아는 거야!”
부지부장인 영자는 창밖으로 망연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사무장님? 그리고 부지부장님. 힘냅시다!”
경찰서에 도착하니 조합원 50명이 정문 앞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복형사 대여섯 명은 귀에 이어콘을 꽂고 비상사태라도 맞은 듯 무전기를 틀며 분주히 움직였다. 정문초소를 지키던 전경도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었다. 긴장과 긴박함이 모두를 휘어 감았다. 경찰서 안에는 전경들이 줄지어 서서 하얀 작업복 차림의 조합원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듯 했다. 임원진 세 명이 대열 속으로 합류했다.
“지부장님? 이쪽으로 오시죠. 조사과는 1층에 있습니다.”
형사 여럿이 다가와 그의 손목을 잡고 경찰서 안으로 이끌려고 하고 있었다.
“잠깐만이요. 조합원들도 있는데 집회한번 해야죠!”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민원 보러 오는 사람들도 많은데….”
“비켜주세요! 간단히 끝낼 테니까.”
구호와 노래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민주노조를 지키려는 조합원들의 열망이었다. 사람들을 주눅 시키는 경찰서 앞에서 부르는 투쟁가는 조합원들이 임금노예가 아니라, 노동하고 싸우는 진짜 노동자임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노동탄압 명예훼손 투쟁으로 박살낸다!”
처음 시작하는 구호는 낯설었지만 되풀이 할수록 점점 결기가 묻어났다.
“민주노조 깃발아래 와서 모여 뭉치세!….”
유일하게 부를 줄 아는 투쟁가는 어느덧 조합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고 있었다. 인사말을 하기 위해 조합원들과 눈빛을 마주치자 그도 말도 꺼내기 전에 울컥했다.
“3년 전, 처음 노조를 만들어 조합원들과 이렇게 집회를 할 때 처음 느꼈던 애틋했던 마음을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느낍니다. 노조를 하면서 조합원들에게 항상 마음에 빚만 지며 살았습니다. 금속노조 가겠다고 해 놓고서 여러분들을 먼저 배신했습니다. 조합원들 얼굴 보기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럼에도 여러분들은 저를 묵묵히 안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또 너무나 감당하기 힘든 빚을 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 빚은 저에게 너무나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누가 우리 조합원들만큼 노조를 사랑한 사람들이 있겠습니까? 회사도 본조도 저 뒤에 있는 경찰도, 세상 사람들 모두가 우리의 오늘 이 투쟁을 비웃었고 방해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조합원들은 해냈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합원들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고소 건에 대해 당당히 진술하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앞으로 저는 여러분들에게 진 막중한 이 빚을 갚으며 살겠습니다. 투쟁! 아, 그리고 오늘 약식집회는 이것으로 마치려고 합니다. 조합원들은 이제 공장으로 돌아가셔도 됩니다. 다들 돌아가세요!”
그때였다. 대열 속에 있던 부지부장인 영자가 나섰다.
“여러분! 오늘 햇빛이 참 눈부시게 곱네요. 제 말이 맞으면 투쟁으로 대답해 주세요!”
“투쟁!”
“목소리가 너무 작습니다! 경찰서 앞이라고 겁먹은 것 같은 데, 이러면 제가 쪽팔려집니다. 다시 한 번 크게 대답해 주세요!”
“투쟁!”
“우리가 피 같은 돈도 안 벌고 여기 왜 왔습니까? 경찰서 그냥 구경하러 온 건 아니죠? 제 말이 맞으면 큰 소리로 힘차게 투쟁으로 대답해 주세요!”
“투쟁!”
“나도 투쟁!”
“김 영자 잘한다!”
“지부장님은 우리를 걱정해서 공장으로 돌아가라는데, 저는 여러분들이랑 좀 놀다 가고 싶습니다. 우리 조합원들은 어떠세요?”
“투쟁!”
“투쟁!”
“그러면 우리 지부장님이랑 같이 조사 받으러 들어갑시다! 옆에 사람 팔짱 끼세요!”
일사분란하게 조합원들이 서로의 팔짱을 낀 채 그를 앞세워 경찰서를 진입하고 있었다. 제지하는 형사들을 순식간에 밀치고 경찰서 앞마당을 향해 걸어갈 때 한 떼의 전경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 퍼온곳 : 하종강의 노동과 꿈 - 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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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트위터도 하시나봐요?? 왠지 안 어울림...; ㅋㅋ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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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 갠신히 맨들고.. 새 눌르고 시방 얘기만 듣고있죠...ㅋㅋ진중건 개새끼.. 교수되면 다그런가? 교수 나부랭이가 세상돌아가는걸 멀 알겠는가.. 이런 생각도 들고요. ㅋㅋ
그나저나 요즘엔 아이폰하나면 곰부하는데 사전도 필요 없는거 같아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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