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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내, ‘정파’는 어떻게 ‘정파’가 됐나
문제는 ‘정파’다?
‘정파’에 대한 융단 폭격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이 직면한 ‘총체적 위기’의 원인이 민주노조 내 ‘정파’때문이라는 비판들이 그것이다. 물론 이런 진단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다시 ‘정파’의 문제가 불거진 것은 지난 민주노총의 ‘성폭력 사건’과 지도부의 총사퇴로 민주노총의 위기 논란이 본격화되면서 이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래 민주노조운동 역사에서 최대의 위기” 상황과 맞물리면서 위기의 주범으로 민주노조운동 내 정파의 ‘존재’, 정파간 ‘갈등’과 ‘나눠먹기’가 지목됐다.
내놔라하는 민주노조운동의 전현직 지도자들의 입에서, ‘정파’의 폐해를 우려하고 질타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노동운동 내 ‘정파’는 “이념도 없는 파벌”이고 “내용도 없이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재창출하는 도구”이며, 오로지 “정파간 타협을 통한 미봉책, 땅따먹기식의 정파싸움, 서로의 발목을 잡으면서 민주노총의 힘을 소진”시켜 버리는 집단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정파의 ‘논리’는 “자기 식구 감싸기”에 불과하며, 굳건하고 고질적인 정파구도는 이제 “권력이 됐고 기득권이 되어”버려서, 대중조직인 민주노총은 “정파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대중조직의 주요 집행단위의 결정을 무시하고 자기입장을 가지고 흔들면 흔들리는 조직”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탄식이 뒤이어졌다.
그래서 “정파들의 민주노총에서 조합원의 민주노총으로 거듭나기 위해”, “정파의 폐해부터 투명하게 공개”해서 정파를 철저하게 “혁신”하거나 “해체”시켜야 하고, 아니면 “한국 노동운동을 재생시키려면 제대로 된 정파를 (재)형성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덧붙여진다.
‘정파’는 노선투쟁의 역사적 산물
물론 민주노조의 위기의 원인을 다 ‘정파’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모든 정파가 다 똑같은 수준에서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도매금으로 평가할 문제도 아니다. 그러나 피할 수는 없다. 또 그래서도 안된다. 지난 20여 년간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에서 ‘정파’의 역할은 중요했기 때문이다. 중요했기 때문에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는 곧 지난 20여 년간의 ‘정파운동의 위기’이며, 바로 ‘정파운동의 위기’가 민주노총을 총체적으로 무력한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정파’ 자체에 대한 진단과 평가가 마녀사냥식으로 이루어져서는 곤란하다. 마치 자신은 정파적 질서와 책임으로부터 무관한 듯이 초월해서 양비론적으로 훈계하는 방식으로 진단과 평가를 하는 것은 더 더욱 곤란하다. 자칫 ‘정파’가 노동운동 내 노선투쟁의 역사적인 산물이고, 노동운동이 합법칙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의 일부라는 점을 은폐하거나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정치적 허무주의를 조장함으로써 노동운동을 탈정치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은 정파의 ‘폐해’에 대한 진단과 평가가 아니다. 정파의 ‘실체’, 정파의 ‘노선과 입장’, 정파의 ‘실력’을 더욱 분명하게 대중적으로 드러내 놓고 공론화하고 실천적으로 검증하는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위기가 ‘정파운동의 위기’로부터 비롯되고 있다는 진단은 민주노조운동이 정파의 ‘발전’때문이 아니라 정파의 ‘미발전’ 때문에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진단이기도 하다. 목욕물을 버리려다 그 안에 있는 아이까지 버리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정파’는 어떻게 ‘정파’가 됐나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발전은 정파의 탄생과 발전, 그리고 그 분화 과정과 분리할 수 없다. 물론 1987년 이전에도 반독재 민주화투쟁과정에서 “통일과 민족 문제 중심으로 변혁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인가”, “남한 내 계급 문제를 중심에 둘 것인가”를 둘러싸서 ‘민족해방파(NL)’와 ‘민중민주파(PD)’ 등의 정파가 형성됐고, 여전히 이 두 흐름이 지금까지 노동운동 내에서 커다란 정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민주노조운동 내에서 ‘정파’가 ‘정파’로서 형성⋅발전⋅분화되어 온 것은 1990년대 초반 이후였다.
1990년 전노협이 출범한 이후 ‘전노협 사수’를 둘러 싼 두 차례의 총파업을 거치면서, ‘노동운동 위기론’이 전면적으로 제기됐다. ‘전투적 조합주의’를 둘러싼 노동운동 위기 논쟁 과정에서 주로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사회발전적 노동운동론’, ‘진보적 노사관계론’ 등이 제기됐다. 노동운동의 목표를 둘러싸서 변혁적인 ‘노동해방’의 기치를 계속 내세울 것인지, 변혁노선을 포기하고 체제내적 노동운동을 해나갈 것인지가 핵심적인 쟁점이었다. 그리고 이 때 형성된 노동운동의 목표에 대한 두 가지 노선적 경향은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어 민주노조운동 내에서 ‘노선’의 문제가 본격화된 것은 민주노총의 출범 직후 1기 집행부가 내건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을 둘러싼 논쟁을 통해서였다. ‘사회개혁적 요구’를 전면에 내걸어 ‘사회적 합의’를 통해 국민적 지지를 획득해야 한다는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노선에 반대하며, 노동자의 ‘계급적 요구’와 ‘계급적 단결’을 통해 사회를 변혁시켜 나가야 한다는 ‘계급적 노동운동’노선이 제기됐다.
이러한 노선적 대립은 1996~97년 노동법개악 저지총파업 이후 총파업에 대한 평가와 노동자정치세력화를 둘러싼 입장의 차이로 분화되었다. 노동법개악저지 총파업의 패배가 노동자출신 국회의원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 세력들은 이후 ‘국민승리21’을 거쳐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 건설로 나아갔다. 이에 대해 노동자민중의 전면적인 투쟁으로 진전시키지 못한 지도부의 ‘국민주의적 노선’과 ‘유연한 전술’이 패배의 원인이었다고 평가한 세력들은 변혁적인 계급정당 건설로 나아갔다. 민주노조운동 내 노선의 차이와 분화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둘러 싼 차이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민주노조운동 내에서 ‘정파’간 분화와 갈등이 본격적으로 가장 첨예하게 드러난 과정은 1998년 1월 정리해고제 직권조인 이후 거세져가는 정권과 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 공세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둘러싸서였다. 특히 당시 김대중 정권의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할 지 여부를 둘러싸서 정파간 입장의 차이와 대립은 첨예해졌다. 물론 겉으로는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할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의 차이로 드러났다.
그러나 그 근저에는 크게 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대세라고 보고, 자본의 틀 내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가능한 방안을 모색해보자는 입장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 그 자체에 맞서 비타협적인 투쟁을 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으로 대별되었다. 현실에서는 이 두 가지 모두 현실화되지 못했고, 그 결과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는 더욱 깊어지고 확장됐다.
이와 더불어 민주노조운동의 전략적 과제의 하나인 ‘산별노조’ 건설을 둘러싸서도 산별교섭과 조직형식 전환 중심으로 산별노조를 건설해 나간 입장과 아래로부터의 계급적 산별투쟁을 통해 산별노조를 건설해 나가자는 입장이 대별되었는데, 이 역시 두 주장이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민주노총의 ‘사회연대전략’을 둘러싸서, 사회연대전략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과 ‘정규직 노동자 양보론’으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 아래서 민주당까지 포괄하는 반MB연합을 결성하자는 주장과 반MB연합은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론의 연장이며 반신자유주의 진보대연합을 결성해야 한다는 주장 등이 서로 논란을 벌이고 있다.
민주노조운동 전체가 ‘반자본’ 정파로 서나가야
이렇게 민주노조운동 내 정파는 우파-중앙파-좌파의 3분립 구도로 형성⋅분화되어 왔다. 정파의 역량과 실력의 한계 때문에, 또 정파운동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정파적 이기주의나 종파주의적 활동방식 때문에, 정파 운동이 때론 대중조직운동에 폐해를 끼치고 질곡에 빠뜨리기도 하지만, ‘정파’의 형성과 발전과 분화는 민주노조운동의 질적 발전을 위해 피할 수 없는 길이다.
정파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전망과 주장을 하는 정파냐’, ‘어떻게 활동하는 정파냐’, ‘어떻게 정치적 책임을 지는 정파냐’로 논의 지형을 구체화시켜야 한다. 그래서 정파‘다운’ 정파로 서나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조운동 전체가 한국사회에서 ‘반자본’ 정파로 굳건하게 서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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