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트 영역으로 건너뛰기

제주에서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촛불'이 타오르다

제주에서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촛불이 타올랐다.

2014년 5월 17일, 저녘 7시 30분, 제주시청앞 광장을 가득 매운 촛불은 "돌아와라 아이들아! 물러나라 박근혜"라는 플랭카드와 피켓을 들고 집회를 열었다.

그리고 이번 세월호 참사의 주책임자의 하나인 '제주해양경찰청'까지 행진해서 그 앞에서 "해양결찰청 해체"를 외치고, "세월호 참사 최종책임자 박근혜는 물러나라"는 리본 등을 다는 것으로 촛불집회를 마무리했다.

 

세월호 참사 한 달!

아직도 20여명의 실종자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이 참담한 현실 앞에서 촛불은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 만들어 내길 바랬고,

"기다리라"는 말 때문에 죽어간 어린 학생들을 추모하며, 촛불은 "지켜주지 못해 정말 미안해" 하며 "잊지 않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고 '단힌 문'을 박차고 거리로 나섰다.

 

" 구조를 하라니까 구경을 하고

지휘를 하라니까 지랄을 하고

보도를 하라니까 오보를 하고

조사를 하라니까 조작을 하고

조문을 하라니까 연출을 하고

대책이 뭐냐니까 연출을 하고

대책이 뭐냐니깐 모금을 하고

책임을 지라니까 남탓을 하고

하지를 않으려면 하야를 하고"

 

이제 슬픔을 넘어, 분노를 모아 촛불이 직접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분노는 '박근혜 정권', 그리고 '국가 그 자체의 존재 이유'로 모아지고 있다.

"이것이 국가인가? 박근혜가 책임져라"

"생명의 존엄이 무너지 나라,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나라"

"세월호 참사, 박근혜 심판"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수장당한 희생자들의 죽임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실종자 구조!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그리고 박근혜 정부 심판/퇴진까지!

그리고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전면화 되어온 이른바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자본의 시장 경쟁 논리가 우리의 일상과 삶 속에 어떻게 철저하게 내면화되어 왔는지, 어떻게 제도화되고 구조화 되어 왔는지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성찰을 시작해야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두 개의 수장(水葬), 1948년과 2014년, 그리고 '해원상생굿'

두 개의 수장(水葬), 1948년과 2014년

지난 4월 19일, 제주시 산지항 제2부두 방파제에서 ‘수장(水葬) 해원상생굿’이 있었다.
4.3.때 군경 토벌대에 의해 수장(水葬)된 희생자들의 해원(解寃)을 위한 굿이었다.
4월 16일 ‘세월호 대참사’로 수장당한 희생자들과 실종자들의 해원과 구조의 염원까지 담아 굿을 했다.

1948년과 2014년, 두 개의 수장(水葬)!
1948년의 수장(水葬)은 국가(군경 토벌대)에 의해 저질러졌다면, 2014년의 수장(水葬)은 국가(무분별한 규제완화, 무능하고 무책임한 행정, 엉터리 재난대응체계 등)와 자본(청해진해운, 비정규직 고용체계 등)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다.
1948년 4.3.에 대한 가혹한 탄압과 살육을 통해 태어난 대한민국은 2014년 ‘세월호 대참사’를 통해 적나라한 자신의 현주소/맨얼굴을 보여주었다.

두 개의 수장(水葬)으로 희생당한 영령들이 ‘해원상생굿’을 통해 해원하시길!
한 사람이라도 더 구조되어 생환하길!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제주 의귀리 '송령이골'에 베롱나무 3그루 심고 빗돌 세우다

지난 3월 22일, 제주 서귀포시 의귀리에 있는 '송령이골'에 베롱나무 3그루를 심고 빗돌을 세웠다.

'송령이골'은 4.3. 때(1949.1.12. 의귀 사건), 토벌대에 의해 학살된 무장대 십수명의 시신이 묻힌 곳이다.

2013년 3월, 노동자역사 자료실 '한내'에서 주관한 4.3.역사기행 당시 참석했던 분들이 자발적으로 제안하여 모금을 해서, 그간 방치되어 왔던 '송령이골' 묘역을 정비하고, 베롱나무 3그루를 심고, 빗돌도 세웠다.

'의귀 사건'은 4.3.항쟁의 역사에서 분기점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4.3..무장대는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그 때 토벌대에 의해 희생된 무장대의 시신은 송령이골에 버려졌다.

지금은 3~4개의 무덤이 남아있다.

2004년 5월 13일에 '생명평화 탁발 순례단'이 이곳을 방문하여 푯말을 세웠다.

10여년 전부터 제주도민 가운데 몇몇은 매년 이곳을 벌초해왔다.

2014년 4.3.사건이 '국가추념일'이 됐지만, 당시 항쟁에 나섰던 무장대는 4.3.평화공원에 안치되는 것이 거부됐다.

4.3.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