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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언제 눈물을 흘립니까?

내 외모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중 대부분은, 피도 눈물도 없을 것같은 냉정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홍채의 2/3정도만 보이는 눈 때문에 더 무서운 인상처럼 보이는 것인가보다..하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런 평가가 그닥 싫지는 않다. 만만하게 보여서 당하는 피해는 이미 '여성'이기 때문에 충분히 받고 있으므로, 속된 말로 '얼굴로 먹어주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보다는 일종의 방패역할을 해주고 있다고나 할까.

 

하지만 외모와는 달리 나는 자주 눈물을 짜는 편이다. 몇년 전 콜롬비아 우와족-EXXON Mobile사의 석유채취에 맞서 부족 전체가 자살을 결의했던-에 대한 강연을 들으면서 펑펑 눈물을 흘려댔더니, 수년을 알고 지냈던 선배 하나가 기절할 듯이 놀라는 것을 보고 당황한 적이 있다. 그래, 내 인상이 좀 그래 보이긴 하지. 하면서 웃어 넘겼지만, 아직도 '눈물'이라는건 극단적 소통수단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어서 그런지 잘 받아주기가 쉽지 않은가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극적인 상황에서 자주 눈물을 흘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혀 생뚱맞은 상황에서 눈이 아릿하게 되는 경험을 종종 하는데, 오늘도 역시 그랬다.



나는 지하철에서 '씨네21'잡지를 보다가 울었다. 영화 '말아톤'에서 자폐 청년 마라토너(조승우 분)의 어머니 역할을 했던 김미숙의 인터뷰 기사였다. 그녀는 이제 '언니'라는 호칭보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더 편하게 들리는 나이가 되었다며 웃고 있었다. 그녀는 자폐라는 장애를 가진 청년의 이야기인 '말아톤'이 '오아시스'나 '나의 왼발'처럼 중증 장애인을 다룬 영화였다면 출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중년 여성의 외도를 그린 '언페이스풀'도 도입부만 보고 더 이상 보지 못했다고 했다. 외면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눈물이 났다.

 

어떤 현실은 잔혹하다. 하지만 그 현실을 딛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그냥 지고 가야 하는 일상의 무게인지도 모른다. 그렇다해도 여전히 잔혹한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그래서 도의적 책임(?)을 회피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어하는 내 느낌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나는 자꾸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싶어하는데, 마침 그녀의 인터뷰 내용이 그런 나의 생각을 대변해 준것이다.

 

그녀의 인터뷰를 보면서 흘린 눈물은, 잔혹한 현실들과 마주하여 싸워야 한다는 의무감과 가능하면 덜 아파하며 살고 싶은 내 심정이 충돌하는 상황이 어쩌면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극단적인 소통수단인 '눈물'로 표현된다는 것은 내가 그걸 견디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걱정하지는 않는다. 고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희열은 상상할 수 없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나는 아마 여기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중독이므로.

 

사족 : '맵다'는 감각은 통점에서 인지된다. 사람들이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매운 음식을 찾는 이유는 몸에서 매운 감각 - 통증을 잊기 위해 엔돌핀이 분비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매저키스트들이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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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도 규정할수 없는 사람.

* 이 글은 알엠님의 [나, 착취자-2003년 6월 2일]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가끔. 내가 이 세상에 있다는것 만으로도 엄마를 착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지'라는 관대함으로 타인을 보는 내 시선이,

유독 엄마한테 만큼은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아마도 엄마와 내가 한몸이었을 때가 있었다는 사실과,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 아닌 시간을 둘이 동시에 겪었기 때문에

엄마와 나, 이렇게 둘은 서로를 '인간'이라는 객관화된 객체로 보지 못하는가보다.

 

엄마는 나의 창조자고, 나의 짐이고, 나의 여신이고, 나의 목표이자 삶이고, 나 이면서도 전혀 다른 남이다. 엄마는 어떤 식으로든 정의 내릴수 없다. 아이가 태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엄마'라는건, '아빠'가 경음이라 발음하기 힘들고 어쩌고 하는 과학적인 근거를 모두 떠나서 '엄마'라는 단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세상의 이치를 먼저 배우라는 의미일것 같다. 그랬으면 좋겠다.

 

알엠님의 글을 보고 엄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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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도를 돈으로 팔아먹기.

* 이글은 "아르 님의 ["네 사진을 누구에게 주었나 / 싸이월드](from onblog) 포스트에 트랙백 되어 있습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이해하는데도 한참이나 걸렸는데, 요즘 속속 눈에 보이는 얘기들이 다 저런 내용이다. 얼마전 싸이월드 페이퍼 서비스에서 페이퍼 작성자들의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의 일부가 귀속된다는 약관이 문제가 됐다는 얘길 들었는데, 그게 단순히 페이퍼에만 국한되는 내용이 아니었던 거다.
 
글쎄. 일종의 카피레프트 선언을 회사에 유리한 쪽으로 써먹고 있는거 같다는 느낌이다. '사이좋은 사람들'이라는 모토를 내걸고 출발할 때 부터 '학연', '지연'등으로 얽히면 '봐주기'로 은근슬쩍 넘어가주는 우리 사회 미풍양속을 멋드러지게 포장한 상업주의라는 사실을 파악했어야 하는건데. 회원들의 저작물에 대해 '사용료 없는' '비독점적 사용권'을 회사에게 부여하라는 것은 '공짜로' '같이 나눠쓰자'라는 얘기 아닌가. -_-;
 

제14조(게시물의 저작권 등)

 

(4) 회원은 자신이 창작, 등록한 게시물에 대하여 회사 또는 회사가 허락한 제3자가 서비스를 운영, 전시,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다음의 각 호에 해당하는 행위를 할 수 있도록, 사용료 없는 비독점적 사용권을 회사에게 부여합니다.
 ① 싸이월드 서비스 내에서 회원 게시물의 복제, 수정, 개조, 전송, 전시, 배포 및 2차 저작물과 편집 저작물 작성
 ② 회사에서 운영하는 관련 사이트의 서비스 내에서 회원 게시물을 전시, 배포
 ③ 회사의 서비스를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미디어, 통신사 등에게 회원의 게시물 내용을 제공, 사용하게 하는 것. 단 이 경우 회사는 회원의 개별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5) 회사는 회원이 탈퇴한 후에도 탈퇴회원의 게시물에 대하여 본조 제4항의 사용권을 유지합니다.

 
 
어차피 기업이라는 것이 돈 벌자고 하는 짓이니 가입시 잘 읽지도 않게 되는 약관에 저런 조항을 끼워 넣은 편법을 썼다고 해도 육두문자 몇번 날려주는 것 외엔 할말이 없다. 싸이말고도 더 많은 서비스에서 개인 정보나 저작물을 팔아먹는 얘기는 이제 '그러려니'하게 된 상황이다. 하지만 블로그만큼의 자율성도 없는 미니홈피에 수천원의 돈을 쏟아붓게 만들면서 저작권까지 박탈한다는건 참 상도의에 어긋나는 짓이긴 하다. (이렇게 유하게 할 말이 아닌데..그래도 참, 어떻게 열을 내야 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아주 교묘하게도, 일종의 기술 소외 현상을 부추기고 있기까지 하다. 홈페이지 하나 만드는걸 대단한(물론 대단하지만..난 사실 아무것도 모른다. ㅠㅠ)기술이라고 생각했던 예전과 달리, 이젠 도토리가 뭔지 모르면 온라인 상에서 왕따가 되버릴 위험에 처해있는 상황이 되었다. 싸이월드 상에서의 온라인 결재를 통한 미니홈피 꾸미기는 미니홈피 활용도에 대한 척도가 되고, 그것도 모르는(!) 사람은 인터넷을 잘 안하는 사람(이렇게 마구마구 일반화 해도 되는걸까. -_-;)로 취급당하기 까지 한다.(내 주변의 모씨가 실제 이런 취급을 당하는 경우 목격함. 쩝.)
 
결국, 싸이월드는 '일촌'이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공동체의 가능성의 허상을 불어 넣고 미니홈피를 통해 결국 '울타리만 있고 실체는 없는' 공동체의 왕국을 구축해버렸다. 투데이 멤버, 페이퍼를 통해 나의 인지도를 높히고 많은 인맥을 형성해 줄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했지만, 그건 회원들의 저작권을 저당잡고 하는 '장사'인 것이다. 이제는 사람관계를 신 재산권인 '저작권'으로 사고팔아야 할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기만 하다.
 
말이 길어졌지만, 일도 하기 싫어 죽겠는데 열 받는 얘기만 읽어버렸다. 정보공유라이선스 배너 달기나 어여 배워야겠다. 흑. -_ㅜ
 
(전형적인 용두사미의 글이로군. 만세!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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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브라우저를 써보자.

젠장. 트랙백 날렸다.
 
암튼, 아반트 브라우저. IE와 비슷해서 나 같은 사람이 적응하기 편하다. ㅎㅎ
 
궁금하시면 http://www.avantbrowser.com/download.html 에서 다운받아서 쓰세요.
 
 
P.S : 돕. 알려줘서 고마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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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간단한 진리처럼 살수 있다면.

* 이 글은 돕헤드님의 [기계의존과 귀차니즘]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돕헤드의 글을 보면서 스스로가 참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왔다는 착각을 했다. -_-a

 

꾸역꾸역 기계를 만들어 내는 세상에서 기계에 의존하는 정도가 아니라 기계를 경배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얼마나 성실하고 착실한 인간이냔 말이지. -_ㅜ

 

'인간의 편의를 위해 기술을 개발한다'는 말은 왠지 원숭이와 너구리(맞나? -_-a)이야기가 떠오른다. 약은 원숭이가 폭신한 신발로 순진한 너구리를 꾀어 결국에는 신발 만드는 재주로 너구리를 하인처럼 부린다는 그 얘기. 어린 맘에도 그 얘기가 무척 서글펐는데..

 

기술을 개발한다는 것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보편적 인간들을 지배하기를 원하는 욕망에서 나오는게 아닐까. 빌게이츠 덕에 컴퓨터를 쉽게 사용하고는 있지만 결국 윈도우즈 하나를 쓸때마다 빌의 배때기를 채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나만 편하게 살자고 하는 일이 아니야' -> '내가 그걸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 정도의 보수는 당연한거지.' -> '이런 기술하나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다니, 뒤떨어지는 인간 같으니라구' 

=> 이런식으로 연결되는 기분이랄까. -_-a

 

지재권 문제랑 연결 시켜봤을때, 자기가 만든 것에 대한 소유권을 꼭 주장해야 하는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로 저 위에 연결시켜놓은 그런 의식의 흐름이라면. 누구도 나에게, 그리고 상대방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신뢰만 있다면, 내가 노력한 것에 대해 굳이 인정받으려고 할 필요가 있을까? 저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만들고 싶은것, 개발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될텐데. 그냥 우리는 서로의 생산물, 생각들을 '인정'해주기만 하면 된다는 간단한 진리가 통용되기 힘든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건, 정말 짜증나는 일이 아닐수 없다.

 

그냥. 짜증 난다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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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최병수 // 그리고..

2000년인지, 2001년이었는지. 암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큰 도로에 차가 없는, '차없는 거리' 행사가 열리던 지구의 날. 그날 최병수씨(호칭이 어색하지만....)는 지구 온난화를 경고하며 펭귄 얼음 조각을 깎았다. 옆에는 문정현 신부님이 함께 얼음을 붙잡고 있었다. 더운 날씨, 보기만 해도 시원한 얼음 덩어리를 조각하고 있으니 구경꾼도 꽤 모여들었다. 최병수씨의 걸개 그림을 걸며, 따가운 햇볕에 얼굴이 탈까 짜증스러워 하면서 얼음을 붙잡고 있던 그날이 나는 이름만 듣던 최병수씨를 만났다.

 

'쓰레기들', '성장과 야만', 그리고 새만금의 '하늘로 오르는 배'와 장승들.  내가 지구의 날에 조각하는 얼음을 붙들고 있었던 것 처럼, 환경운동을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때 최병수씨의 그림은 늘 내 주변에 걸려있었다. KEY(아는 사람은 아는 그 KEY. ^^;)의 주변을 떠돌며 다닐때 처음 그 이름을 알게 되었고, 부안의 작업공간에서 새만금 갯벌에 세워지기 전의 장승을 만나기도 했다.

 

사실, 최병수씨에 대해 어떠한 감정이나 판단을 가질만한 것도 아니다. 그냥 나는 최병수씨의 작품이 미치는 효과 안에서 그냥 떠돌던 사람중의 하나였고, 그런 사람들이란 결국 그 개인의 의지가 없을 때는 그 작품과는 아무런 연관성도 가지지 못하는 먼지 보다도 못하는 존재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최병수씨가 아프시다고 한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한 사람의 글을 읽었다. 글을 읽으면서 나는 예전에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작품들을 보면서 느꼈던 내 희망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그런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들중 하나가 아프단다. 예전의 그 희망과 기대를 최병수씨가 준것은 아니었지만, 아프시다는 얘기를 들으니 그 희망과 기대를 소홀히 해왔던 내가 참 한심하게 느껴졌다.

 

아래 퍼온 글을 붙인다.

 

... 이 얘기의 끝이 해피 엔딩이었으면 좋겠다.

 

 

 



최병수 형이 위암이란다. 그는 운동판에서 이름 높은 사람이다. 걸개그림을 처음 그려 예술로서의 형식과 내용의 기초를 잡은 이이고, 지난 80-90년대를 통해 한국사회운동그룹의 주요한 행사마다 걸개그림과 설치미술을 가지고 헌신한 운동가이다. 그는 또한 리우회의와 요하네스버그 세계정상회의, 교토와 본에서 열린 기후변화회의에 걸개그림과 얼음펭귄을 가지고 지구인들에게 지구를 생각하라는 메시지를 전한 환경운동가이다.

그가 아프다. 그는 화가이며, 설치미술가이고, 민주화운동가, 환경운동가이기 전에 청춘을 사회를 위해 바친 피 뜨거운 청년이었다. “에 이 안 하긴, 못 한 거지.” 씨익 웃으며 “결혼 왜 안해?” 묻는 말에 바빠서 연애할 시간도 없다는 말에 붙인 그의 답은 결혼 못 한 노총각이란 거였다. 언제나 아이디어가 끓어올라 같이 일하는 활동가들이 도리어 지칠 정도로 열정적이던 이 노총각의 최근 몇 년은 새만금을 위해 바쳐졌다. 무주에 미술공방을 차리고 작업을 시작하여, 우리가 새만금하면, 떠오르는 저 유명한 망둥이 솟대와 허공에 뜬 폐선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그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걸개그림이라는 현장성과 대중성, 역사성을 아우른 미술자산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세계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인 그 큰 그림들을 가지지 못 했을 것이고 한국사회운동진영의 그 많은 행사들은 썰렁하고 썰렁해서 감동이 반감되었을 것이다.

그가 위암 1기도 2기도 아니고 3기 초란다. 나는 늘 그의 무주 공방에 놀러가겠다고 말했지만, 부도수표만 날려온 지 3년이 된다. 그가 병자리를 털로 일어나 무주에 함께 가기를 바란다. 그가 손에 망치와 끌을 잡고 다시 목어를 깍아 새만금 갯벌에 올리고, 그리하여 그 목어들이 은린을 번뜩이며 수문이 터진 새만금 방조제를 타넘어 서해 깊이 먼 외해로 가기를 바란다. 다시 그가 붓을 들어 언젠가 그리겠다고 말하던 세계의 환경운동을 상징할 큰 그림 하나를 끝내 그려주기를 바란다.

빡빡 스님머리에 해가 이운다. 최병수를 돕자. 절도 돈도 없는 열정의 운동가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일은 더 좋은 사회와 환경을 만들길 원하는 우리들 모두에게 더 좋은 일이다.

최병수 / 걸개그림을 만든 목수출신 화가. 운동가. 현재 위암3기 판정 받고 한남동 순천향병원(본관 620호) 입원중.
10월 1일 수술. 수술비 1500만원. 후원계좌 농협 539-02-225650 최병수


아래의 최병수에 대한 조금 더 상세한 기록이 있는데, 98년 11월에 쓰인 것이라 그 이후 기록은 미비. 그 뒤 그는 환경운동가로서 살았다. 2000년부터 1년 반을 환경연합에서 미술홍보기획일을 했고. 이후 무주에 내려가 새만금을 주제로 설치미술을 계속해왔다. 그 사이사이 그는 주요 국제대회에서 한국의 목소리를 형상화해왔다.




걸개그림작가 최병수

‘87년 독재권력의 호헌론에 철퇴를 가한  6월 민주항쟁의 촉발점이었던 이한열
군 사망사건을 형상화한 『한열이를 살려내라』와, 리우환경회의 당시 세계의 이
목을 집중시켰던 『쓰레기들』이라는 걸개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최병수.

최병수는 환경운동연합 홍보지도위원으로 일하면서 많은 환경관련 작품들을 발표
했다. 최근 2년간 환경련의 캠페인 현장에서 최병수의 작품들은 캠페인이 전달하
고자 했던 메시지들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주요한  매체로 이용됐던 것. 지난해
말 교토기후변화당사국회의 당시 리우회의에  이어 최병수의 작품인  ‘얼음으로
조각한 펭귄’은 자구온난화로 인한  지구생태계의 위기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또 다른 유명한 작품으로, 이제는 환경련 반핵
캠페인의 상징처럼 자리잡은 『성장한  야만』이라는 작품이 있다.  돌도끼인 듯
싶어 들여다보면 도끼의 뾰족한 부분이  대륙간핵탄두미사일이다. 돌도끼를 쓰던
석기시대의 야만과는 달리 이제 문명화된 현대의 야만은 그 돌도끼가 ‘핵도끼’
가 되었다는 강렬한 풍자를 담은 것이다. 그 밖에도 쓰레기재활용을 강조한 『요
구르트걸과 깡통맨』 등 다양한 주제와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제작된 많은 작품들
이 환경운동의 현장에 등장했다. 그 모든 것이 최병수의 작품.

최병수는 지난 여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미술교육과 환경교육을 통합한 제  1회
열린문화학교를 열었다. 이곳에 참가한 어린이들과 함께 작업한 『우리는 당신들
을 떠난다』를, 오는 11월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세계환경회의 NGO 대회에  가
지고 갈 걸개그림의 하나로 정해  두었다. 환경오염과 파괴로 더  이상 지구에서
살 수 없게 된 생태계의 형제들이 포경선의 작살을 맞은 고래 등을 타고 우주로
피난가는 그림이다. 달나라로의 망명이 될지  더 먼 우주로의 항해가  될지 그건
고래와 아이들만이 알 일이다.

고래 등에는 동물들, 꽃과 나무,  그리고 함께 어울려 노는  아이들이 타고 있다.
참으로 무서운 ‘진실’은 고래 등에는 어른들이  없다는 사실이다. 순수의 눈이
발견한 세계의 오늘에 대한 가장 엄정한 진실, 그것은 오염된 지구를 만든 건 어
른들이라는 진술인 것.

우주의 보석, 지구라는 반지

이 그림과 함께 최병수가 요즘 열정을 쏟고 있는 그림은 ‘지구링’이다. 지금까
지 확인된 사실로는 인간이 살 수 있는 별은 지구밖에 없다. 그러나 그 하나뿐인
지구를 우리 인간은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가. 그 답은  최병수가 90년에 그려 공
해추방운동연합의 4월 지구의 날 행사에서 발표한 뒤, 92년 리우환경회의에 가져
가 타임지 표지에 실리는 등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아 유명해진  『쓰레기들』을
보면 안다. 컵라면 봉지와 같은  일회용 쓰레기들과 함께 버려진 지구의,  그것은
우리 후손들의 무궁한 생존의 터인 지구를 우리 세대가 일회용으로 취급하고  있
는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었다.

최병수는 『쓰레기들』에서 한발 더 나갔다. 지구는 우주의 보석이며 우리에게는
이 보석과 함께 살 자격이 있는가 하고 묻는 것이다.  이 질문은 우리는 이 반지
를 낄 자격이 있는가로 치환된다. ‘지구링’은  그저 하나의 그림이기를 거부한
다. 그림에 담겨진 의미가 ‘지구와 나’에 대한 반성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그렇
다.

최병수의 ‘지구링’ 기획은 우선 형태적 특성을  주목한 것이다. 우주를 상징하
는 둥근 원, 그것이 링이다. 그리고 그 링 위에 나뭇잎이나 물결 등 자연, 생명의
시스템을 형상화한 받침이 떠받치고 있는 건 바로 우주의 보석, 푸른 지구다.
링 내부의 둥글게 빈 공간은 또 하나의 무대이다. 이 무대에 여러 사람이 슬라이
드로 투사될 수 있다. 만일 그가 친환경경인 삶,  지구의 항존(恒存)을 위해 일하
는 사람이거나 숲정이의 소나무, 그 아래 핀 쌀밥꽃, 그리고 바다의 돌고래나  밀
림의 고릴라일 때, 링 위의  푸른 별 지구는 더욱 푸른  빛으로 휘황할 것이지만
아마존을 벌목하고 고무플랜테이션을 위해 칼리만탄을  소각하는 사람이거나, 생
각없이 새만금 간척을 결정하고, 동강댐을 추진하려는 사람들이 투사될 때 링 위
의 푸른 별 지구는 신음하며 핏빛을 띨 것이다. 이 밖에도 ‘핵무기가 열리는 쇠
나무’, ‘죽음의 유령을 대기 속으로 풀어놓는 공장의 굴뚝’, ‘남북극이  녹아
들어가는 나침반’ 등 환경파괴를 고발하는  미술작품들을 투사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환경파괴적 역사 일체를 화상으로 보여줄 수도 있다.

지난 90년  로저 월터스(Roger  Walters)가  독일 통일을  기념하여 연   벽(The
Walls)과 같은 대규모 공연을, 지구를 위해 우리가 반성하고 행동할 때가 되었다
는 주제로 벌이고자 하는 장기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지구링’은 우리 인류가 ‘반성의 세기’에 도달했다는 점을 알리려는  기획이
다. 새로운 천년의 시간 속에서도 우리와 지구가 공존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천년
을 근본적으로 반성해야 한다는 정언명령이 지구라는 우주의 보석반지를 통해 울
려나온다.
“그대는 나를 낄 자격이 있는가?”

목수화가 최병수의 현장미술론

최병수가 중학교 2학년을 중퇴한 목수출신 화가라는 사실은 이미 유명인이 된 그
의 기사가 몇번이고 보도된 탓에  그다지 새로운 건 아니다.  목수에서 화가로의
변신 또한 그의 뜻이였다기보다 홍대생들이 그리는  진달래꽃 벽화 작업(상생도)
에 쓸 작업받침대를 짜주러 갔다가 “왜 진달래는 있는데 개나리꽃은 없어”하고
물었던 탓이다. 학생들은 “그럼 아저씨가 직접 그려보세요”라고 권유했고 감히
북한의 국화인 진달래꽃을 그리는 이적성 표현물 작성의 죄목으로 경찰에 붙들려
갔다. 형사는 “난 목수요”라고  밝히는 최병수에게 ‘목수가  그림을 그렸다는
건 앞뒤가 안 맞으니  화가로 하겠다’며 그를  관제화가(?)로 데뷔시켰다. 지난
86년의 일이었다. 이 사건은 그를 평범한 목수에서 민중미술가로 변화시켰다.
이 사건 뒤, 그는 민중미술을 하는 이들을 찾아다니며  어깨 너머로 공부도 하고
혼자 조각도를 들고 목판화를 깍는 등 독공을 시작했다. 6개월만에 첫 작품 『철
새』를 조각해 냈다. 철망으로 나뉜  땅을 벗어나 열린 하늘로  날아가는 철새를
통해 분단을 비판한 목판화였다.

선반공서부터 식당보조, 공사판 잡역부, 용접공 등 열 댓가지 직업을 가졌던 노동
자 최병수를 화가로 만든 건, 바로 폭압적인 독재권력이었고  그 뒤로 그의 삶은
운동하는 것이었다. 단 한번도 운동의 현장과 현장미술을 떠나지 않았다.
몸으로 체득한 현실인식이 그를 철혈의 운동가,  80년대와 90년대 커다란 시국사
건마다 걸개그림을 내거는 현장미술가로 만든 원동력이다. 남북이 통일되고 노동
해방된 세상이 와도 지구가 병들면 말짱 도로아미타불이란 걸 그는 안다. 그래서
환경운동은 그에게 변신이 아니라  운동의 확산이며 심화다.  최병수의 운동하는
그림은 그래서 늘 현장에서 피어나는 것이다.

인류는 지구와 공존할 자격이 있는가

최병수는 고양시의 한적한 마을의 한 귀퉁이에 작업실을 열었다. 6백평이나 되는
땅을 공짜로 빌려준 땅주인은 그의 작품세계를  인정하고 후원하는 사람이다. 그
의 작업실은 쓰레기장 같다. 그 쓰레기들이 그의 작품재료다. 깨진 독에서는 개구
리밥이 떠있고 개구리가 산다. 철망으로 만든 꽃에 핀 꽃열매는 사과탄이고 수도
꼭지에 매달린 전구에서 불이 들어온다.

그는 “어디 출신이냐”고 묻는 한 원로평론가에게 “목수 출신”이라고 답했다.
대학에서 배우지 못한 건 지식이지만 그는 고단한 삶에서 더 많은 걸 배웠다. 가
장 중요한 배움은 머리와 마음을 열어두는 법이다. 열린 마음과 머리만이 새로움
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 열림의 자세는 그가 그  어떤 것도 자기 것으로 소유
하지 않은 완전히 가난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는 가난하다. 걸개그림이 워낙 대형이다보니 제작비가  많이 들고 그의 수중에
남는 건 거의 없거나 늘 밑진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이제 국립현대미술관과 뉴
욕의 아티스트 스페이스 미술관에 걸려있다. 또  그가 처음 시도한 걸개그림이라
는 장르는 현대민중미술이 개발한 주요 매체라는 평가를 받으며 브리태니커 백과
사전에 그의 이름과 함께 올라있다.  그러니 이제 그를 성공한  미술가로 불러도
될 법하다.

세상의 이런 평가와는 무관하게 최병수의 작품이 지난 80~90년대 우리 사회의 반
독재 민주화운동기에서 차지하는 중량감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이다. 특히 90
년 이후 치열한 사회의식을 인류와 지구의  차원으로 확대심화한, 환경을 주제로
한 그림을 통해 던지는 이즈음의 질문들은 우리로 하여금 최병수라는 화가에  대
해 또 한번 생각하게 한다. 그는 지금 지구적 생존을 위한 발성중이다.
“우리는  이  지구라는   보석을 손가락에   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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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먼 길.

* 이 글은 marishin님의 [2004-04-28>좌파 남성과 좌파 여성주의자]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좌파 남성들의 여성주의에 대한 평가(혹은 논의)는 내게는 매우 당혹스러운 내용이다.

 

그 내용(물론 내용도 문제일때가 있지만) 보다는 좌파 '남성'들의 문제제기이기 때문이다.

 

김규항님과 델라님의 논쟁이 참세상 칼럼에 떴을때, 한참을 생각해보게 됐다.

 

 



 

누군가 내게 그에 대한 생각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나는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쪽이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문제에 대한 비판은 분리되어야 한다.

 

박근혜는 여성이 아닐 수있다. 박근혜는 분명 적이다.

하지만 그녀가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이유로 대상화 될때, 여성들은 당연히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이유로 똑같이 주변화 되었던 경험들을 투영하여 사건을 보게 될 수밖에 없다. 박근혜가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기'때문이다.

 

김규항님의 '슬픈 마초'라는 표현은 더 슬프다.

수백년간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부차화 되고 사회화 되어온 여성들이 스스로의 능력과 자존감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고, 그 깨달음을 유지하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조차 발버둥치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몇몇) 남성들은 알고 있지만, '사실'과 '실제'는 다르다. 웹에 글을 올릴때의 가슴 졸임과 두려움이 텍스트 결과물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 것 처럼.

 

(여기서 부터 거만*오만 모드)

 

좌파 남성들에게 여성주의자가 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여성주의에 대해 입다물고 있으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다른 운동들처럼 여성주의가 냉정하게 도마위에 올라 평가 받고 논의 되기에는 아직 여성운동은 해야할 것이 많고 갈길이 멀다. 주변에 있는 괜찮은 남성들과 소모적인 논쟁까지 벌여가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 반보수, 반부르주아투쟁은 남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분명 여성주의자들 중에서도 좌파 활동가들이 있다. '여성주의'를 좌파의 우산 아래 끌어들이는 것이 왜 중요한가? 아직도 '좌파'운동은 다른 운동에 비해 전혀 우세이지 않고 지지하는 자도 '한줌'에 지나지 않는데 여성주의는 왜 '좌파'에 동참해야 하는가?

 

여성주의가 '좌파'적 방식으로만 표현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또한 출발선이 다른 좌파적 시각과 여성주의적 시각이 같은 수준에서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다. (여성주의의 주체들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P.S :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다시는 이렇게 말도 안되는 얘기를 쓰고 싶지 않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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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때 더 살고 싶다. (9/24 수정함)

* 이 글은 미류님의 [평화로 가는게 쉽지 않네이..^^]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선배 하나랑 만날때 마다 하는 농담이 있다.

 

"야~ 너 이제 얼마 안남았어. 어떻게 죽을거야? 약? 칼? 밧줄?"
"형, 어떻게 하면 좀 덜 아프고 예쁘게(!) 성공할 수 있을지 연구좀 해봐~"

 

뭐, 사실 상당히 질 나쁜 농담이란걸 알고는 있다. 아픈 사람들한테는 얼마나 비수를 꽂는 말일까 싶으면서도.. 참 세상이 별로 살고 싶지 않게 돌아간다는 느낌을 확~! 받는 날이면 저 농담이 얼마나 절실해지는지 모른다.

 

 



 

전범민중재판 발기인(기소인) 총회 날이었다.

 

나는, 정말 나와 상관없는 일에 감동받는 사람이 아닐거라고 생각했다.

이라크 민중들은 물론 나와 똑같은 사람이지만, 나야 워낙 '측은지심'따위를 키우는 사람이 아닌지라...

 

그런데, 그날 정말 '울컥' 눈물이 쏟아질뻔 해서 너무 당황스러웠다.

 

내가 왜 활동을 지겨워 했는지 알았다고나 할까.

당위성이나 기본윤리, 예의, 정당함만으로 운동을 하는건 스스로의 자신감을 떨어뜨리고 죄책감만을 가져다줬지만,

정말 즐거워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고 하겠다고 결정한다면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를 대견해 하며 살수 있을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흠. 지금 나가봐야 해서 말이 이래저래 꼬인다. 추후 덧붙이기로. ^^*)

 

어쨌든, 그날 내가 기소인 몇몇의 발표에 엄청나게 감동받았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랑 같은 공간에서 숨쉬고 같은 생각으로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는걸 매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는 것도.

 

(여기서부터 수정한 글. 9/24)

 

그날, 그 감동과 행운을 발견하고 나서, 그 희망의 끝이 어딘지 보고 싶어졌다.

그런 일상(?)의 발견이 계속 된다면, 난 아마 계속 살고 싶어질 것 같다.

 

호기심 때문에 살고 싶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살아있다는 것'자체를 숨쉬듯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저런 일상의 발견이 더 이상 '발견'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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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관계의 최상이란.

* 이 글은 간장 오타맨님의 '입장의 동일함....'글에 트랙백 되었습니다.

 

 

"John S. Mill은 부부간의 우정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평등에 대한 두려움으로 발생한 악을 치유하려 했다. (중략) 밀은 부부간의 '견고한 우정이 발 디딜 토대'가 될 '생각과 성향의 통일'이 결혼의 이상이라고 봤다."

 

 

- [페미니즘 정치사상사],

캐럴 페이트만/메어리 린든 쉐인리 엮음,

이남석/이현애 옮김, 이후. 2004.

 

 

P.S : '삶의 성애적 부분에 대한 폄하'와 '가족 내에서의 성역할'이라는 측면에 대한 충분한 분석이 없던 밀의 공백에 대해서는 논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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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의 의미를 가르쳐주고 싶다.

* 이 글은 해민님의 '그들만의 더러운 청정에너지'포스트에 트랙백 되었습니다.

 

 

얼마전 화씨 911을 보고나서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내 동생의 한마디.

'세상에, 부시 정말 나쁜놈이네. 너무 어이없다.'

 

 

뭐, 동생의 부시에 대한 판단이야 사실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해민님의 포스트를 보고 떠오른건 92년 리우에서 열렸던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튀어나온 한 경제학자의 망언.

 

91년도 법률 연구에 경제원칙을 적용한 공로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시카고 대학 로널드 H. 코스(Ronald. H. Coase)교수는 환경을 이용함에 있어 시장논리를 적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환경오염 문제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모든 자연에 대해 사적 소유권을 설정해 시장논리에 맡겨버리면 환경문제는 싸~악 해결될 것이라고.

 

그의 망언 이후 10년, 모든 자연은 점점 사적 소유권의 영역 하에 흡수되는 중이지만 환경문제는 더욱 심각해져가고 있다. 코스 교수는 순진했던 걸까 멍청했던 걸까.

 

그들에게 '청정'의 의미가 무엇인지, '지속가능'이 어떤 의미로 쓰여야 하는건지를 꼭 알려주고 싶다. 뭐, 알아들을 귀가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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