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의존과 귀차니즘

살아 꿈틀거리는 아나키 2004/11/08 15:41

 

 

많은 사람들이 의외로 귀차니즘을 기계에 의존해 해결하려 한다.

조그만 청소기를 사면 나 대신 더러운 방안을 청소해줄 것이라 믿고, 최신형 전자렌지를 사면 나 대신 그 기계가 밥도 척척, 반찬도 척척 데워줄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면 귀차니즘을 없애려 하지 말아보면 어떨까?

그냥 있는 그대로 사는 것이다.

귀찮으면 일을 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그런데 귀차니즘이 없는 사람도 자동차가 있으면 더 편하고, 에어컨이 있으면 더 시원한 것처럼 기계에 대한 종속은 쉽게 끊지 못한다.

 

나는 그동안 기계를 사용하면 할수록 기계에 노예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노예가 되는 것은 인간이라면 마땅히 거부해야 하는 것이다.

기계를 사용하면 할수록 에너지 소비는 더 늘게 되고, 화석연료를 더 많이 사용하게 되고, 오염은 심해지고, 자연에 대한 착취는 더 심해지게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약자에게 돌아가게 되며, 이런 악순환을 통해 소수의 기득권 세력은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되지만 다수의 민중들은 힘겨운 삶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이런 악순환을 끊어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러 방법이 있다.

그 중 하나는 거기로부터 제발로 걸어나오는 것이다. 즉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없애거나 바꾸려면 대다수 민중들이 그것 없이도 살 수 있어야 한다.

혁명가를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서 위에서 민중들에게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들이 스스로 다른 방식으로 살면 아래로부터 자연스레 자본주의의 토대가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기계를 사용하지 말자는 것은 자본주의 없이 살아가보자는 말과 같다.

그것을 연습해보자는 것, 이것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운동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자신의 뚜렷한 주관을 갖고서 자립적이고 독립적으로 살 수 있다면 그 어떤 권위가 명령을 해도 들을 필요가 없게 되며, 자본주의 노예관계에 얽메이지 않게 된다.

 

석유를 비롯한 에너지 자원을 손에 넣기 위해 힘센 자들은 군대를 동원한다.

점령하고 살육한다.

전쟁은 끊임없이 벌어지고, 악순환은 계속된다.

 

이곳에서 걸어나와야 한다.

개인들이 걸어나오고, 집단적으로 걸어나와야 한다.

 

이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런데 난 이런 생각을 컴퓨터라는 기계에 의존해 풀어내고 있다.

지금의 나는 과연 무엇인가?

나는 모순인가?

이제부터 나는 원고지에 볼펜으로 글을 써야 하는가?

 

기계의존을 끊어버리기 위해 나는 어느 정도까지 기계를 사용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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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8 15:41 2004/11/08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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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racked from 2004/11/08 19:17 DELETE

    Subject: 의외로 간단한 진리처럼 살수 있다면.

    * 이 글은 돕헤드님의 [기계의존과 귀차니즘]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돕헤드의 글을 보면서 스스로가 참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왔다는 착각을 했다. -_-a 꾸역꾸역 기계를 만들어 내는 세상에
  2. Tracked from 2004/11/08 19:32 DELETE

    Subject: 기술을 배우던가.. 좋은 기술자 몇 명과 같이 살면 되지 않을까요.

    * 이 글은 돕헤드님의 [기계의존과 귀차니즘]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기계에 대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어서,,, 같이 생각해보고 싶어서 트랙백겁니당 기계의 노예가 될 수 있다. 노예가
  1. 뎡야핑 2004/11/09 10:59 Modify/Delete Reply

    가능한 한 의존하지 말되, 불가피할 경우 최대한 이용해 먹어라.
    컴퓨터나 인터넷 등 제 생활에 불가분 연결된 것을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순기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2. 레이 2004/11/09 17:21 Modify/Delete Reply

    흠흠.. 딴지를 걸려던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저는 근본생태주의자도 아니지만..
    '기계의 순기능을 최대한 활용하면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신거 같네요.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기계에 대한 순기능을 옹호하는 입장은 '어쩔수 없다'라는 말 처럼 들려요. 뭐랄까.. 부시가 당선되었으니 이젠 어쩔수 없어!하며 자살한 한 미국 젊은이의 기사 같은 기분이.. ^^;;

  3. 뎡야핑 2004/11/09 23:43 Modify/Delete Reply

    레이/ 지금도 컴퓨터나 인터넷을 사용해서 얘기할 수 있는 거잖아요. 보풀님의 트랙백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는데 저는 기계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지 않고 좋게 이용할 수 있으면 그게 좋다고 생각해요. 먼 나라에 가기 위해 생활을 청산하지 않아도 되고, 바다 깊이 구경도 할 수 있고 영상물을 통해 몰랐던 것도 접하고 문제 의식도 확산되고요. 부시의 순기능(?)을 어떻게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좀 다른 것 같은데.

  4. bopool 2004/11/15 19:06 Modify/Delete Reply

    부시의 순기능은 역기능의 역기능을 하는 정도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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