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전쟁의 반대말이 아니다

평화가 무엇이냐 2011/11/07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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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창간 20주년 기념호 | 2011년 11-12월 통권 제121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평화는 전쟁의 반대말이 아니다

조약골 

 

《군대를 버린 나라, 코스타리카 사람들의 평화 이야기》

 

 

 

제주 강정마을 중덕삼거리에서 구럼비 해안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지난 9월 2일 해군이 경찰과 함께 몰려와 펜스와 철조망을 쳐놓았다. 온갖 불법과 탈법, 위법으로 점철된 해군기지 건설공사를 밀어붙이기 위해서다. 나는 갈 수 없게 된 구럼비 바닷가가 바라보이는 이곳 농성장에 삼거리 다방을 열고 매일 커피를 만든다. 마을 주민들과 평화활동가 그리고 올레꾼들이 주로 다방을 찾고, 가끔 경찰들이 염탐하러 이곳을 지나가기도 한다. 긴급 상황이 발생해 마을에 비상 사이렌이 울리지 않으면 나는 이 다방에 앉아 음악을 틀고, 농성장을 지키는 일을 한다.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기도 하고, 노래를 만들거나, 트위터에 강정마을 소식을 올리기도 한다. 요즘엔 수확이 한창인 감귤을 내놓고 다방을 찾는 사람들과 나눠 먹는다.

 

며칠 다방에 앉아 ‘군대를 버린 나라’ 책을 꺼내 들고 읽고 있는데, 오늘은 마을주민 미량 씨가 내 옆자리에 앉는 것이다. 한라산 중턱에 위치한 제주교도소에서 40일을 갇혀 살다 얼마 전 보석으로 출소한 강정의 여전사 미량 씨.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은 이 책에 관심을 보인다. 그는 평화의 섬 제주도에서도 물이 풍부하여 땅이 비옥하고, 농사가 잘 되기에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꼽힌다는 조그만 강정마을에서 태어나 살아왔다. 이곳이 해군기지 건설로 격랑에 휩싸인 2007년부터 그는 언제나 마을의 평화를 지키는 선두에 섰다. 그런 미량 씨가 코스타리카라는 나라에 군대가 없다는 이야기를 이미 2004년 무렵 들어보았다는 것이다. 당시엔 이 사실이 그에게 별로 커다란 감흥을 일으키지 못했던 모양이다. 2004년 강정마을은 ‘점’의 평화와 ‘선’의 평화가 잘 지켜지던 군사기지 없는 마을이었을 테니까. 장사로도 수완을 발휘하고, 가정과 마을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던 그의 평화롭던 삶은 해군이 들어오면서부터 180도 변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마을과 공동체를 너무나 사랑했다는 죄로 교도소 쇠창살에 수감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미량 씨에게 ‘군대를 버린 나라’는 먼 이상향이 아니다. 바로 이곳 제주도 강정마을이 군사기지 없는 섬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오늘 하루를 살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코스타리카 사람들처럼 제주도도 해군이나 공군기지가 만들어지지 않고 진정한 평화의 섬으로서 자립적인 생존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책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반짝인다.

 

또 다른 마을 주민이자 영화평론가 양윤모 선생도 이 책을 보더니 다 보곤 빌려 달라 하신다. 그는 강정마을에 대한 공권력의 부당한 탄압을 온몸으로 겪으며 70일 넘는 단식을 통해 이 문제를 전 세계적으로 알린 분이다. 나 역시 그의 투쟁을 통해 먼 섬나라 이야기처럼 들리던 강정의 문제를 심각하게 알게 됐다. 양윤모 선생은 강정마을이 해군기지와 국가폭력 등 무엇에 반대하는 투쟁만이 아니라 평화를 향한 긍정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면서 ‘군대를 버린 나라’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하나의 대안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 역시 제주도가 군대를 버리고 참다운 평화의 섬으로 가길 바라고 있던 차에 이 책을 읽을 기회를 얻게 됐다. 강정마을에선 그 무엇보다 절실하게 평화를 갈구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질문을 던져 보았다. 제주도의 평화와 코스타리카의 평화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동아시아 지역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떤 길로 나아가고 있으며, 평화는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이러한 내 오래된 고민들은 이 책에서 매우 구체적인 사례들로 제시되고 있다.

 

사실 내가 군대를 버린 나라 코스타리카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2003년이다. 이때 나는 ‘군대반대운동’을 펼치고 있었고, 징병제와 군사주의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한국 사회가 탈군사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주장이 공상적이며, 군대를 이루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은 답글을 적었다.

 

군대 같은 특수한 집단의 경우는 지구상의 많은 나라들이 폐지를 하고 있습니다. 군대를 이루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 아니라는 증거죠. 즉 군대 없는 인간 사회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티베트의 경우 무려 800년 동안 군대 없이 지내왔습니다. 지역적, 사회적, 문화적 특성이 작용했겠지만 군대가 인간의 본성이 아님은 확실합니다. 코스타리카 역시 이미 오래 전(수십 년이 되었습니다)에 헌법을 통해 군대를 폐지하고 평화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예들은 ‘인간 사회에서 군대가 반드시 필요한가?’ 하는 의문에 '아니오'라는 대답을 주고 있습니다.

 

나는 심지어 지구상에서 군대를 폐지한 나라들의 목록을 열거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코스타리카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 없었다. 더 알고 싶었지만 국내에선 자료를 구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이 책의 저자 아다치 리키야처럼 그 나라에 유학 가서 몇 년간 지낼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그저 평화운동이 단순히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운동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비폭력운동, 병역거부운동, 군대폐지운동, 무기반대운동, 성해방운동 등으로 발전하고 특히 동아시아 지역에서 국제연대운동으로 펼쳐져야 한다는 신념을 설파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이 책이 번역돼 나왔으면 아마 나는 보다 생생한 사례들을 제시하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평화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모습을 그려낼 수 있었을 것이다.

 

2011년 7월 한국어로 번역된 이 책에서 일관되게 묻는 것은 ‘코스타리카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화란 어떠한 것일까?’ 하는 것이다. 이 책은 ‘군대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자꾸 의심하게 되고 도리어 전쟁 위험성이 높아지므로 군대를 갖지 않는 것이 바로 최대의 방위력이다’는 코스타리카 사람들의 명쾌한 인식에서부터 시작한다. 도대체 이런 생각을 갖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코스타리카를 비롯해 군대를 없앤 다른 나라의 사례들을 거론할 때마다 나에게 돌아오는 비판은 대부분 비슷한 것이었다. 한국은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이며, 열강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한 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런데, 코스타리카 역시 역사적으로 북미(마야문명)와 남미(잉카문명)의 열강에 낀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해 있으며, 이 지역에서 20세기 후반은 전란의 시대였다는 사실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파나마와 니카라과 그리고 과테말라가 위치한 이 지역은 20세기 내내 내전이 빈발했고, 바로 옆 나라에서 수십 년간 군사독재가 이뤄졌으며, 어느 날 초강대국 미국에 의해 정권이 강제로 바뀌기도 하는 등 외세의 압박도 무척 심했다. 이런 정치적 현실을 겪은 코스타리카에서 군대를 폐지하고 소규모 경제체제를 유지하며 독자적인 외교를 통해 평화적 중립국으로 발돋움했다는 사실은 한국에 시사 하는 바가 적지 않다. 즉 전쟁의 위협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 위협을 하나하나 제거해가는 방향으로 사회가 움직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한국의 주류 사고방식에서는 역시 ‘억지 이론’만이 통용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는 군사력의 상호 균형에 의해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는 이론으로서 결국 ‘사회의 군사화’를 촉구할 뿐이고, 나아가 재정적자를 팽창시키고 군수산업의 영향력을 확대시켜 결국 전쟁이 발발하는 위협을 증대시키게 된다. 전쟁이 끔찍하다면서 오히려 전쟁에서 권력과 이윤을 획득하는 체제가 공고화되는 것이다. 또한 코스타리카 사람들의 시각에서 볼 때 생태환경 파괴와 지구의 군사화는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 이는 특히 제주도에 짓는 해군기지를 보면 명확해진다. 나는 강정마을에서 우연히 전직 해군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동해 1함대 사령부에서 수병으로 근무했다는 그의 증언은 충격적이었다. 예를 들어 군함에 칠해 놓은 페인트가 벗겨져 나오는데, 이 부스러기들이 그대로 바다에 버려진다는 것이다. 어차피 유독물질을 바다에 버려도 감시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란다. 이런 물질들이 쌓여 홍조가 생겨나고 차츰 바다 생태계는 파괴되어 간다는 것이 그가 들려준 경험담이었다. 군항이 들어선 바다에 대해 징병된 군인들이 과연 얼마나 환경보호 의식을 갖고 있을까. 군사주의는 약자에 대한 정복을 그 본질로 하고 있으며,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정당화된다.

 

평화로 가는 길에 대해 사람들과 논쟁을 하며 군대를 없앤 나라들의 예를 들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반문은 ‘외국 군대가 침략하면 어떻게 막을 것인가’이다. 코스타리카는 1948년 헌법을 새로 제정하였는데, 제12조에서 ‘항구적 조직으로서 군대는 금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 이런 평화헌법을 제정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대통령 비서관은 한정된 자원을 교육과 복지, 의료에 배분해야 했고, 군대에 배분할 재정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런 코스타리카에도 군대 폐지 이후 총 네 차례의 사변이 있었다. 그중 두 번은 이웃나라에 의한 침략이었고 나머지는 내전이었다. 군대가 없는 상황에서 이런 무력 상황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주변국의 침략에 대해 발 빠른 외교적 대응으로 전면전을 피할 수 있었다. 이후 코스타리카는 군사적 침략이 있을 때 외교의 장으로 끌고가면 비군사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1980년대에는 니카라과 내전이 코스타리카에 불똥을 튀겼고, 이에 1983년 코스타리카는 군대폐지에서 더 나아가 적극적인 영구 비무장 중립 선언을 발표한다. 한마디로 무력충돌 중재국이 되어 주변국에 평화와 민주주의를 수출하고, 스스로 군사적 위협이 되지 않음을 설득하는 것이다.

 

주변국의 침략에 대해 군대를 보유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지역 공동체를 지키는 방법으로 우리에게는 이미 ‘사회적 방어’라는 개념이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WRI)과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과학자 브라이언 마틴은 세계 각지의 사회적 방어 사례를 모아 Nonviolent Struggle and Social Defence 라는 책으로 발간하였는데, 이 책은 침략해 들어온 군인들에 대해 지역 주민들이 ‘비협조’와 ‘비폭력 저항’의 방식으로 사회를 지키는 구체적인 사례들로 채워져 있다. 예를 들면 공장 노동자들이 기계를 작동할 수 없게 만들거나, 무기 생산을 거부하는 것, 컴퓨터나 라디오, 전화 등을 이용해 자립적으로 소통하는 것, 소규모의 재생 에너지 시스템을 마련해 외부의 의존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식량을 장기보관하고, 의약전문가가 아닐지라도 의약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등의 끈질긴 저항 방법을 통해 침략군을 물리친 사례들이 제시되어 있다. 코스타리카와 사회적 방어 등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평소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위한 대비를 함으로써 무력분쟁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코스타리카에서 평화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우리는 흔히 평화를 전쟁과 짝을 지은 이분법으로 설명하는데 익숙해져 있지만, 전쟁의 반대는 정확히 말하자면 반전(反戰)이다. 저자 아다치 리키야는 ‘전쟁 이야기를 할 때 외에는 평화라는 단어가 사람들 사이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면 조금 기묘한 이야기가 아닌가’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평화라는 개념이 갖는 본질적 성격을 직접적으로 표현해보자고 제안한다. 그에 따르면 평화는 즐겁고 기쁘고 편안하고 사랑이기도 하고 행복이기도 한 긍정적인 감정이라는 것이다. 평화란 ‘무엇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평화라는 개념이 본질적으로 가진 ‘긍정하는 것’으로의 성질에 반하는 형국이 된다는 것이다. 코스타리카의 초등학교 5학년 학생에게 저자가 평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 학생은 ‘평화는 민주주의, 인권, 환경’이라고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에서 우리는 이 나라 사람들은 군대폐지 이후 오랜 경험을 통해 사회의 군사화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본질적인 민주화라는 것을 마음 깊이 받아들임을 엿볼 수 있다. 적어도 이것이 코스타리카에서는 상식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길거리에서 사람들도, 택시운전사도 이와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에서 평화가, 인권이, 환경이 밥먹여 주냐는 질문이 상식처럼 되돌아오는 것과는 결이 다른 것 같다. 5학년 소녀에게 이번엔 민주주의가 뭐냐고 물으니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 정의하였다. 그리고 대화에 참가한 사람들의 지위 고하가 있어서는 안 되고 모두에게 공정한 지위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도 그들이 중요시하는 가치라는 것이다.

 

코스타리카에서 평화는 폭력의 부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민주주의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정의된다. 그 결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선거는 코스타리카에서 야외 축제나 명절 행사처럼 보일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민주주의는 ‘즐거운 것’으로 인식되고, 특히 청소년들의 선거 참여도 두드러지며, 이런 유쾌한 방식으로 평화가 ‘체현’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란 자신의 일을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통치자와 피통치자라는 주종관계가 고정되어 있다면 민주주의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군대와 민주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는 코스타리카 사람들의 뿌리 깊은 믿음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인권을 배경으로 군대폐지와 사회복지 그리고 노동정책이 서로 별개의 사안이 아니라 사회를 평화롭게 유지하는 필수적이고 유기적인 요소들이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부분은 코스타리카에서 일종의 모의투표로서 실제 투표와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되는 미성년자 투표가 전국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에게도 적극적으로 민주주의 참여가 보장되는 것이다. 청소년들만의 투표장에 성인은 진입이 금지되며, 이 투표 결과가 정책에 반영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한 선거 입후보자 등록비용도 무료라고 한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선거는 이와 다르다. 선거 입후보자로 참여가 쉽지 않고 우등생 등 특권층에게로 모든 것이 제한된다. 결국 경쟁은 이미 승부가 결정되어 있으며, 이에 대해 공적으로 이의를 신청할 수 있는 시스템도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여 권력은 국민의 손을 벗어나 특권층에게로 위임되고, 민주주의는 죽어가게 된다. 코스타리카에서는 아이들이 학급 운영이나 학교 운영에서 배제가 된다면 민주주의가 정착될 수도 없고,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고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헌법재판소에 해당하는 코스타리카의 최고재판소에는 이른바 헌법소법정이라 불리는 제4법정이 마련되어 있다. 여기에는 원고적격성을 묻지 않기 때문에 청소년들도 자유롭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학교에서 부당한 인권침해를 겪은 아이들이 헌법소법정에 교장을 고소하는 일도 자주 발생한다. 예를 들어 아이들의 놀이터를 학교 주차장으로 만들려는 교장에 맞서 자신들의 ‘놀이할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판단한 아이들이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고, 학교는 별도의 주차공간을 찾아야 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인권에 더해 아이들은 독자적인 인권을 갖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학교교육을 통해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 배우고, 침해되었을 경우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를 배운다. 복종과 경쟁만을 가르치는 일본과 한국의 학교교육과는 매우 다르다. 일상에서부터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교육이 코스타리카에서 군대를 폐지하고 평화를 실천해가는 밑거름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코스타리카는 이렇게 발달된 인권보장과 민주주의 제도를 방위력과 외교력으로 꾸준히 전환시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감옥을 보면 그 나라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가늠해볼 수 있는데 과연 코스타리카의 감옥은 어떻게 유지되고 있을까? 한국과 일본의 감옥과는 달리 이곳에는 높다란 콘크리트 담장이 없고, 대신 수감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탈옥도 할 수 있는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있다고 한다. 주변을 둘러봐도 이곳이 감옥인지 아니면 시골마을인지 헷갈릴 정도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이 나라에서는 자신에게 어떤 인권이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로 범죄로 내몰리게 된다고 보기 때문에 교도소는 인권 교육의 장으로서 기능하고 있다고 한다. 즉 수감자들에게 자신의 기본적인 권리를 일깨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는 사실이 나는 매우 흥미로웠다. 인권을 배우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자신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점을 자각할 때 사람들은 스스로 범죄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재범률은 20%에 불과하다고 한다. 일본의 40%에 비하면 낮은 수치다.

 

코스타리카는 무상 의료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심지어 이웃 니카라과에서 국경을 넘어온 불법체류자들도 돈 한 푼 내지 않고 국립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군대가 없기 때문이 가능한 일이라기보다는 군대 없는 민주주의 사회를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 이 나라 사람들이 꾸준히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이해해야 맞을 것이다. 문제는 국가의 규모가 커지면 이와 같은 적정한 수준의 사회보장 제도를 유지하기 힘들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코스타리카에서 중요시하는 삶의 태도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로 요약해 표현할 수 있다. 이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고만고만한 것이 좋다’ 쯤이 될 것이다. 굳이 대규모 개발을 하거나 높은 건물을 짓지 않고도 개발과 환경의 균형을 이루며 이 나라의 주요한 2대 경제축인 관광과 1차 작물의 수출을 통해 살림살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서서히 깨달았다고 한다. 영원한 경제성장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정치제도에도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지정학적으로 빈곤하고 고립된 지역에 위치한 코스타리카에서는 오래전부터 ‘소농 평등주의 정신’이 형성되어 있었고, 이것이 지금 평화를 희구하는 자세로 이어졌다는 주장은 우리가 곱씹어 볼만한 대목이다.

 

커피, 바나나, 담배 등을 재배하는 농민들은 가축 사육과 목재 수출이 늘어나면서 삼림이 감소하고 목초지가 증가하며 환경이 파괴되는 것을 직접 경험하게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민들은 협동조합을 만들고 환경에 덜 부담을 주는 유기농 방식으로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하였으며, 이 같은 흐름은 코스타리카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시장경제에서 독립해 직거래 방식으로 건전한 경제를 이뤄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숲에 의지해 민주주의 가치를 실천하며 여성협동조합을 만들어 살아가는 여성농민들의 사례가 인상적이었다. 이들은 천혜의 자연환경이 파괴되지 않도록 숲을 보호하며 농사를 짓고, 생태관광이 활성화되면서 경제적 혜택도 얻고 있다. 단기간에 관광객을 늘리기 위해 도로를 아스팔트로 포장하고, 대규모 호텔 등 숙박시설을 지어야 한다는 대기업의 투자 유혹에 지역 주민들이 현혹당할 만도 할 것이다. 강정마을에서도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땅값이 급등하고 위락시설이 들어서며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로 유치를 찬성하는 소수의 주민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코스타리카의 여성농민들은 특유의 ‘고만고만한 것이 좋다’는 의식을 견지하며 이를 거부한 채 숲을 지키며 살아가는 당당한 모습을 보인다.

 

놀라운 것은 이것이 ‘애국심’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코스타리카에서 애국심은 민주주의의 실천으로 이해된다. 국가를 일방적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토대에 대한 깊은 애정과 자존감의 표현인 것이다. 코스타리카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권리의 행사가 바로 애국심이라고 한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애국자가 없는 세상을 염원하는 나도 이런 마음은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예전 평택 대추리에서 살 때 땅에 뿌리를 박고 살아온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인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자신이 살아온 땅에 대한 애착을 애국심으로 표현했던 것 말이다. 삶의 터전인 바다를 지키려고 5년 가까이 벌금폭탄과 구속 등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해군기지 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는 강정마을 주민에게서도 역시 나는 비슷한 경외감을 느낀다. 자신과 마을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하나라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군사기지 건설은 자신의 살을 후벼 파내는 커다란 폭력일 것이다.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은 군대와 양립할 수 없다는 심층 문화가 코스타리카 사람들 사이에 공유된다고 한다. 제주도는 지금 군사기지가 될 것인가, 평화의 섬이 될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있다. 강정마을은 기지촌이 될 것인가 생명평화마을로 남을 것인가 하는 중차대한 고비에 놓여있다. 민주주의, 인권, 환경으로서의 평화는 ‘하나의 통합적 가치관’으로서 코스타리카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으며, 이것은 바로 강정마을 주민들이 가장 절실히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코스타리카 사람들이 지향하는 ‘순수하고 소박한 생활과 인생(pura vida)’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결국 군대란 과도한 욕망의 표현 아닌가? 마지막으로 이 책에 나온 ‘평화는 건강과 같다’는 구절을 되새겨보고자 한다. 우리는 평소에도 항상 몸 상태에 주의를 기울이며 운동을 하고 영양소가 골고루 균형 잡힌 식사를 하듯 건강에 주의를 기울인다. 건강에 끝이 없듯 평화를 향한 노력에도 그 끝이 없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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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7 14:33 2011/11/07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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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racked from reminiscence 2011/11/07 15:08 DELETE

    Subject: 평화는 무엇인가

    돕님의 [평화는 전쟁의 반대말이 아니다] 에 관련된 글. 전체적으로 매우 인상적인 글이었다. 필자의 몇가지 언급에 대해서만 약간의 평을 적는다. 사실 내가 군대를 버린 나라 코스타리카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2003년이다. 이때 나는 ‘군대반대운동’을 펼치고 있었고, 징병제와 군사주의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한국 사회가 탈군사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주장이 공상적이며, 군대를 이루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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