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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92회 – 청년 전태일의 마음

 

 

 

 

1

 

읽는 라디오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아흔 두 번째 방송 시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성민이입니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감정에는 약한 편입니다.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 날 기분은 우울한 편입니다. 내 자신이 너무 그런 환경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청년 전태일이 썼던 일기의 한 대목입니다.

예전에는 이런 전태일의 마음을 가슴 속에 간직하며 살자고 노력했습니다.

힘들어하는 이를 보면 그 곁을 떠나기가 어려웠고

도움이 절실한 이를 보면 얼마 되지 않는 힘이라도 보태야 마음이 편했고

외로운 이를 보면 그 곁에 말없이 앉아있는 것으로 온기를 전했습니다.

 

그렇게 전태일이 살고자했던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했는데

파도에 떠밀리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고, 그 상처가 고스란히 내게 돌아오고, 가슴에 칼을 맞고, 등돌림을 당하고 하다 보니

제 마음은 풀 한포기 없는 사막이 돼버리더군요.

 

감정이 무뎌진 그 사막에서는

불쌍한 사람을 보더라도 무덤덤해집니다.

오히려 그런 환경을 속속들이 알기 때문에

그의 불성실함이 보이고, 이기심이 보이고, 배신의 삶이 보입니다.

그래서 단호하게 고개를 돌려버립니다.

 

사막 속에서 홀로 독을 품고 살아가는 전갈처럼

변해가는 제 모습이 끔찍해서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고 매주 주문을 외우고 있습니다.

2년 가까이 주문을 외운 효과가 있는지

이제는 외롭고 힘들고 절박한 사람을 보면 그 얘기를 들어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 얘기를 들으면서도 제 마음 속에서는 과거의 기억들이 싸움을 벌입니다.

그 싸움에 심판을 볼 생각이 없는 저는 그저 주문을 외울 뿐이죠.

 

이제 와서 청년 전태일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독을 품은 전갈로 살아가는 것보다는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더 낫겠다 싶기에

청년 전태일의 마음을 가슴 속에 간직해보려고 노력합니다.

점심을 굶고 있는 시다들에게 버스값을 털어서 풀빵을 사주고 본인은 두세 시간을 걸어서 다녀야했던 그 마음을 가끔이라도 들춰보려고 합니다.

 

 

2

 

며칠 동안 매서운 추위가 몰아쳤습니다.

비도 오고 바람도 거세게 불고 그래서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사랑이 산책을 시켜줄 때를 빼고는 집안에서 지냈습니다.

따뜻한 곳에서 책도 보고 영화도 보는 여유로운 시간이었습니다.

 

겨울이 시작됨을 알리는 매서운 추위가 누그러들더니

맑은 하늘에서 화사한 햇살이 비추기에

사랑이와 여유로운 산책을 즐기고 나서

하우스를 둘러보며 잔잔한 일들을 몇 가지 처리한 후

집으로 들어가려다가 햇살이 너무 아쉬워서

따뜻한 감귤차 한 잔에 요가에 대한 책을 들고 의자에 앉았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공기는 쌀쌀했지만

햇살은 포근하고

감귤차는 달콤하고

요가책은 여유로워서

살짝 웅크린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30분 정도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스마트폰을 열어 잠시 세상소식을 들여다봤더니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절규하는 영상이 올라와있더군요.

“우리가 그렇게 만만해보이냐”는 그 절규를 보며

10년 전 “내가 우스워 보이냐?”며 진행했던 읽는 라디오 첫 시즌이 떠올라서

제 마음 한쪽에 유가족들의 절규를 넣어놓았습니다.

 

 

3

 

점점 망가져가는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요가와 명상을 시작한지 7년째입니다.

요가원이나 명상센터는 고사하고 주변에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어서

책 몇 권 읽고 유튜브로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혼자 어설프게 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7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초보수준을 조금 넘을 정도입니다.

몸을 뒤로해서 활처럼 펴는 자세나 머리서기 같은 고난이도 자세는 꿈도 꾸지 못하고

기본인 다리찢기나 외발서기도 제대로 못해서 아직도 끙끙거립니다.

명상을 할 때는 생각을 비워야하는데 수시로 떠오르는 상념들을 어쩌지 못하고 있고

2~3시간 명상은 고사하고 1시간도 채우지 못해 30분 정도 하는 게 고작입니다.

당연히 요가의 철학이나 무념무상의 경지를 지향할 생각도 못하지요.

혼자서 어설프게 하게 되면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해도 발전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새벽에 일어나면

30분 명상과 1시간 요가를 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렇게 어설픈 새벽 시간을 보내고 나면

몸과 마음이 조금은 개운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좀 더 잘해서 발전을 이뤄야겠다는 목표를 포기하기 시작하니까

저만의 어설픈 방식에 집중을 하게 되고

새벽시간이 여유롭고 편안해지더라고요.

 

요가와 명상 7년차인 저는

매일 새벽 어설픈 아마추어의 자세로

제 자신과 얘기를 주고받습니다.

 

 

 

(최백호의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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