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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과 직감

이십대, 대학물을 먹고 책 좀 읽은 후부터, 나의 생각과 말에 '논리/과학/사실/학문적 근거'가 대충이라도 구색을 갖고있는지에 대해 확인하는, 확인해야한다는 이상한 습관이 생겼었다.

 

누군가 한 번 해준 말이거나, 신문에서나 어디에서나 한 번 흘깃이라도 본 것이거나, 무슨무슨 수치 자료가 덧붙어 있어야 그것은 비로소 생각과 말이 되는 것이었지, 내 직감/직관은 절대 어디 갖다댈 것이 아닌 것이었다.

 

그러다가 세상물을 나름대로 더 먹고는, 내가 가진, 나름대로 적나라한 사회학적 인류학적 고찰이 단지 누군가 아직 아무 말도 안 해주었고, 신문에서나 어디에서나 흘깃 흘려써있지도 않았고, 무슨무슨 수치로서 증명된 바가 없었기 때문에, 사회학적 인류학적 가치 제로이며, 개인의 소소한 잡념일 따름이라고 치부되기 쉽상인 순간 앞에서, 나는 멈칫했다.

 

 

그 후에, 개인의 소소한 잡념이 진실이 되는 소설도 있었고,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훼미니즘이 있어서, 나는 촌스럽고 각박한 '논리/과학/사실/학문적 근거'의 협박에서 비켜 사는 유연함을 배워갔지만,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이 나의 직감과 직관을 인정하지 못 하는 병은 여전하였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책이나 소설 디게 많이 읽은 것 같다. 탱자탱자 놀면서 가끔 읽은 것도 내 인생에서는 읽은 것이니 그냥 그렇게 쓴 것임.)

 

그랬던 내가 그 병을 싹 고친 것은, 이 블로그에도 올렸지만, 최장집 교수 덕분이었다.

(나의 직감과 직관을 불신하는 병을 고친 것도, 결국 누군가 유명한 사람의 코멘트를 근거로 하였으니 나도 정말 한심한 노릇이다.)

 

그 때 내가 무릎을 쳤던 내용은 북한인권문제에 관한 것이 었는데, 최장집 교수라하면 누군가, 북한인권문제라 하면 무엇인가, 그야말로 '논리/과학/사실/학문적 근거'에 살고 죽는 세계 속의 인물과 주제 아니겠는가.

 

 

그 때 그 내용을 다시 찾아보라고 하면 실례일 것이고(이게 무슨 옛날 페이지 들춰가며 봐야하는 토지도 아니고), 간략하게 소개하고 넘어가자면, 그날 최장집 교수의 발표 제목은 <한반도 평화의 조건-칸트의 '영구평화론'의 퍼스펙티브에서>였는데, 제목 봐라, 제목에서부터 '논리/과학/사실/학문적 근거'에 살고 죽는 세계가 징하게 느껴진다.

 

논문 내용은 아주 잠깐잠깐 무슨 소리인지 알 것 같기도 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지금으로선 전혀 기억 안난다. 암튼 알수없는 조건과 퍼스펙티브의 논문발표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되었다. 논문 내용 안에 있던 '북한/북한핵'이란 표현에 대한 시비가 일었다. 최장집 교수의 명확한 대답은 국민학생도 이해할 만한 것이었는데, 말꼬리를 잡는 사람들은 또라이들인지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듯 피폐한 논쟁을 계속 이어간다. (아, 정말 안기부 사람들한테서 고문받는 사람들 얼마나 괴로웠을까... 또라이의 말꼬리 언쟁은 잠깐 들어도 진저리가 나는데..) 그러고나서 '북한인권문제' 질문이 있었다.

 

최장집 교수의 대답은 이랬다.

정치는 매우 다이나믹한 것이다. 인권문제의 개입은 그 자체가 될 수 없고, 반드시 정치의 일면으로서 위험한 것일 수 있다.

 

나는 이렇게 명쾌한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지 못했다.

북한/북한핵 말꼬리를 논리와 사실과 수치의 이름으로 지지부진 끌어가던 또라이들 위에 빛나던 그 명쾌한 직관이란!!!!

 

 

 

사람의 오래묵은 판단력으로부터 나오는 직관과 직감의 세계, 나는 그제서야 그 세계를 제대로 보게된 것이다.

그것이 맞다.

사람의 오래묵은 판단력,지혜, 거기에서 나오는 직관과 직감에 논리/과학/사실/학문적 근거라니.. (그리고나서 미안하다, 우리 엄마, 엄마 말이 옳아요. 잘난 척한 딸이 죄인.. )

 

 

'오래묵은'이란 표현을 썼다고, 노인네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다섯살 먹은 아이의 직관과 직감도 다섯해나 묵은, 오래묵은 판단력, 직관, 직감이다.

 

그것이 진실인지를 판단하는 것도 듣는 이의 오래묵은 판단력에서 나오는 직관과 직감이다.

 

 

사람들이 한 입으로 공권력 타도를 외칠 줄 알았던 나는 이곳저곳에서 나오는 다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보상금 문제라는 얘기부터, 행정법상 행정권 행사가 당연했다는 소리, 시민단체가 반미선동했다는 얘기 벼라별 소리가 다 있다.

이것이야말로 논리/과학/사실/학문적 배경이 독이 되는 경우 자체다.

그렇다고 군대 보낸다는 게 말이 된다는 말인지......

 

그런 말을 떠드는 자, 그곳에 직접 가서 얼마나 논리/과학/사실/학문적 근거를 찾았는지 묻고싶다. 평택의 ㅍ에도 가지 않은 자들일 것이다. 청와대와 국방부 윤 데스크가 전화 한 통 통화한 것처럼.

 

 

한명숙 총리, 옛날부터 왠지 구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말 왕재수다.

정당한 공권력 행사에 대해 적극적 폭력행위를 한 경우에 대해서는 철저한 조사를 거쳐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라니... 이 사람, 박근혜야?

사람들이 절대자처럼 할렐루야 추종할 때 무언가 구리다고 느꼈던 내 직감이 맞았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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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 peace a chance

달군님의 [대추리를 지키기위해 블로거가 할 수 있는 일들] 에 관련된 글.

몇 십년 묵은 저 지루하고 지루한 가사가 아직도 유효하다니....

 

 

아침에 아이 손을 잡고 어린이집으로 가려고 대문을 열었다가 대문 앞 신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대추리 오늘 병력 투입"이 제목인데, 제목 위 사진에는 한 농민(여자?)의 약간 흔들린 촛불 집회 사진이 있었다. 그 농민의 주름진 이마, 주름진 입가, 두껍고 꺼칠한 손, 흔들리는 촛불이 비친 푹꺼진 눈동자....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얼굴은 누구나 다 촌스러운 내 엄마같다. 그래서 농사를 짓는 사람 앞에서 나는 항상 객관을 잃는 심정이 되지만, 그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당신 밥 먹지 말고 컴퓨터랑 핸드폰만 먹고 사시오,하고 말하고 싶다.

 

벌컥 눈물이 나왔고, 어이쿠,하는 소리가 나왔다.

규민이가 왜애?하고 물어서, 몇 초간 무어라 말해야하나 유난히 우왕좌왕했다.

결국, 규민이 학교에 많이 늦어서...하고 말았다.

노무현은 두고두고 규민이에게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대통령이 될 것이다.

나중에 규민은 그 이유를 알겠지.

전두환을 그렇게 기억하듯, 노무현을 치욕스럽게 기억할 것이다.

 

 

오늘은 사실, 나의 금쪽같은 휴가 마지막 날이다.

오월 첫 주가 잠깐 방학인데, 말이 좋아 일주일 휴가지, 월요일 노동절, 금요일 어린이날, 규민이 어린이집 안 가는 이틀 빼면 남는 날은 고작 화/수/목 딱 3일. 3일의 금쪽같은 휴가 마지막 날인 것이다.

 

이 3일 동안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무한대천대 (규민이가 가장 많은 것을 표현할 때 쓰는 수) 하고 싶은 게 있었다. 하지만 그 일들을 뒤로 하고 폭탄을 맞고 또 맞고 또 맞아 너덜너덜해진 집을 원상복귀해야하는 의무가 휴가 중에 버티고 있었으니......

그리하여 쓸고, 닦고, 버리고, 다시 닦고,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 물건을 이리로 저리로, 설겆이 4번, 빨래 3번, 이불 3장 빨래 하느라 멀미와 진저리를 반복하며 화요일을 보내고,

그동안 엄마 얼굴을 덜 봐, 아침에 눈 뜨자 여전히 자기 옆에 있는 엄마에게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기 작전을 피우는 규민에게 나도 못 이기는 척 넘어가 규민과 하루종일 뒹구느라 수요일을 보낸 나는

목요일은! 목요일은! 하고 벼르고 벼르고 있었던 것이다.

 

목요일에 나는,

소설을 한 권 봐야하고, 영화 한 편을 봐야하고, 수업준비를 한 달치 해놔야 하고, 밀렸던 교육자료를 훑어야하고, 도서관에 가서 빈둥거려야하고, 꽃과 풀 사이 산길을 거닐어야 하고, 이제 봄이 되어 딱 입기 좋은 때가 된 내가 만들다 만 치마를 완성해야하고, 작년부터 구상만 하던 원피스 하나를 만들었으면 좋겠고, 기타 연습을 해야하고, 짧은 ** **를 하여야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이 터진 것이다.

으악 씨발놈(욕은 이럴 때 하라고 있는 것이지).... 

 

나는 먼저 열린우리당에 전화를 걸었다.

"저도 할 말이 없습니다. 저도 같은 심정입니다."하고 연신 굽신거리는 민원담당 당직자.

그러면 그 당에 있으면 안되지. 이제 열린우리당은 끝장이오. 2번 잡으면 정권이 넘어간다더니 정말 영락없네. 하긴 열린우리당이 무슨 관련이 있겠오.

 

나는 청와대에 전화를 걸었다.

청와대는 전화도 직접 안 받는다. 어떤 번호를 눌러도 자동응답기가 답한다.

하는 수 없이 민원청구 번호를 누르고 녹음기에 대고 하소연을 했다.

지금 청와대에 전두환이 있는지, 노태우가 있는지, 박정희가 있는지 좀 알려달라, 내 전화번호는 010-****-어쩌구다. 이름은 뭐다. 꼭 전화해라. 딸이 계속 묻는데 무어라고 할 말이 없어 그런다. 딸에게 무어라고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너무 창피하다.

 

다시 한명숙 국무총리실에 걸었다.

얼마전에 신문에서 장관회의를 열어 대추리 논의를 했다더니 그때 탱크보내자고 결의했소?

자기들은 아는 바 없으니 국방부에 걸어 문의하란다.

아니 국방부 장관보다 국무총리가 하급공무원이란 말이오?

그걸 국무총리실에서 모르고 국방부에 물어보라고 합니까?

모르니까 국방부에 전화걸어보시라니까요. (전화 뚝)

그래, 니들도 쪽팔리니 나한테 화풀이구나....

 

다시 민주노동당에 전화를 걸었다.

(뜬금없이) 평택에 가려면 어떡하지요?

네, 일단 주차장에 모였다가 이동하시구요. 지금 워낙 유동적이라 장소 어디다, 라고 말씀 드릴 수가 없네요. 초등학교에 많이들 계시구요.. 일단 가보시면 판단하실 수 있을거에요.

(정말 뜬금없이) 나는 눈물이 줄줄 나왔다.

제가 너무 슬퍼서 창피하게 이렇게 전화를 하네요. 이해해주세요.

네, 이해해요.

사실 저는 애기엄마라서 평택에 가기 힘들어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민주노동당 밖에 믿을 데가 없네요.(이제 정말 감정적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저희도 열심히 하려고 해요.

 

이 짓 하느라 오전 다 보냄. 금쪽 같은 하루.

다시 어제 먹은 밥 설겆이, 만 이틀 사이에 다시 폭탄 맞은 집 쓸고 닦기, 남은 빨래에 오후 3시간 반을 보냄. 금쪽 같은 하루.

그리고 남은 시간 인터넷에 들어와 여기저기(청와대, 국방부, 총리실, 열린우리당.....) 죄다 돌아다니며 게시판 글 쓰느라 한 시간 여 보냄. 아아, 금쪽 같은 하루.

 

 

그러나 휴가가 무슨 상관이랴,

밤새 내 세금으로 먹고 산 공무원과 군인들이 나에게 총을 겨누고 다가왔는데...

  ( 진압작전을 펼치고 있는 경찰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 한겨레 신문에서 가져옴)

 

 

제발 평화에 기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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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민이 그림 자랑

2006년 2월 작품

<윙크하는 언니와 그녀를 바라보는 노랑머리 오빠>


 

 

2월 작품 하나 더

이것은 규민이 붙인 이름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보석죽염강천, 돌멩이 강천, 홀라이 강천(홀라이강천은 쑥스러워 말을 못하고 있음)>

대체 이 이름들이 무슨 뜻일까? 나도 몰라.

 


 

 

최근 작품(4월)

<공주와 오빠>

(옆에 오빠를 그리던 중 남자인데 속눈썹을 그리는 바람에(남자는 긴 속눈썹을 그리면 안된다) 망쳤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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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와 나뭇꾼과 백설공주

<선녀와 나뭇꾼> 동화책을 사주었다.

그 책엔 나뭇꾼이 선녀옷을 감추고 숨어있다가 혼자 남은 선녀에게 솔직하게, 내가 색시를 얻고 싶어 사슴에게 말했더니 이 방법을 알려주더라, 내 색시가 되어주실 수 없냐,라고 부탁하여 허락을 받아 같이 살게 되었다고 나온다.

 

얼마전 토요일아침 이비에스에 채널 고정하고 티뷔를 틀어놓고 있었다.

딩동댕유치원 공개방송에서 <선녀와 나뭇꾼> 연극을 하고 있었다.

나뭇꾼이 선녀옷을 감추고 숨어있다가 혼자 남은 선녀에게 그냥, 울지말고 우리집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하고 집으로 데려간다. 장면 바뀜. 선녀는 아이 둘을 낳고 잘 살고 있다.

 

딩동댕유치원이 끝나고 뭉뭉 인형극장, <백설공주>를 하고 있다.

못된 왕비가 머리빗에 독을 발라 백설공주 머리에 꽂는 바람에 백설공주는 쓰러졌다. 일 나갔던 일곱난장이가 돌아와서는 빗을 빼내 백설공주는 다시 살았다. 난장이들과 공주는 기쁨의 노래도 하고 다시는 모르는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면 안된다는 대화를 나누는데, 난장이들이 계속 번갈아 공주와 춤을 춘다. 말을 할 때도 살가움의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계속 공주에게 스킨쉽을 한다.

 

 

연속으로 저 두 편의 방송을 보고있자니, 기분이 더러워졌다.

왜 내 기분이 모래씹은 것처럼 찝찝한가, 뚱딴지처럼. 생각해봤더니,

저 설정 때문이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와 이래저래 살을 맞닿는, 계속되는 저 설정.

그러나 여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남자 쪽에서 무턱대고 다가와 여자에게 살을 맞댄다.

 

특히 인형극에서 백설공주 인형은, 짐작하시겠지만, 가슴은 c컵 사이즈이면서 얼굴은 열서너살, 목소리도 약간 코맹맹이에 어린 기가 다분, 그 여자 하나를 중심으로 수염난 난장이부터 철부지 어린 난장이까지 번갈아 다가와 손을 잡고 춤을 추고 팔을 비벼대는데, 거의 성추행장면을 목격하고 있는 기분이다.

 

그래도 백설공주는 화 낼 줄 모른다.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노래하고 난장이들에게 감사해한다.

 

<선녀와 나뭇꾼>은 좀 미묘하다.

딩동댕유치원의 연극은 납치에 다름 아니지만, 내가 샀던 동화책에는 솔직한 나뭇꾼의 태도에 선녀도 마음을 열고 색시가 되는 것으로 나와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선녀와 나뭇꾼>은 나뭇꾼이 선녀옷을 감추어 선녀를 색시로 삼는다는 하나의 스토리가 대표할 뿐이지, 상황과 심리 묘사 따위가 세심하게 읽혀야하는 것이 아니라서, 결국 때에 따라 논의 외의 납치가 되기도 하고 인지상정의 여지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 무슨 어마어마한 간극이란 말인가. 말도 안되는 인권유린의 납치와 그럴 수도 있는 인지상정이 뚜껑을 열면 나란히 들어있는 한 세뜨라니. 이게 가능한 것이 상대가 여자이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한다.) 사실 아이들을 상대로한 동화에서든, 어떤 이야기에서든 취하고자 하면 취해지는 것이 여자다. 남자들이 싸우기도 하지만 아무튼 누군가 취한다.

 

되게 불쾌하다. 난장이들이 계속 다가오면서 춤 추자고 하고 팔을 비벼댄다고 생각하니 (그들이 난장이라서가 아니라 수염달린 남자부터 코맹맹이 철딱서니까지 번갈아 다가온다고 생각해봐) 아, 정말 싫다. 하긴 그런 뽀르노도 봤다. 어디서 난장이 배우들은 줄줄이 잘도 구해가지고 일곱 난장이들이 번갈아 백설공주와 섹스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고전 버전일 것이다.) 백설공주는 순진무구탱이라서 난장이들이 내미는 성기를 귀여운(?) 장난감이라고 생각하고 오잇오잇 소리를 내며 함께 논다. 그러니까 솔직하게, 일곱난장이와 백설공주는 그런 식의 환타지인 것이다. 그것을 아무리 어린이버전으로 옮겨봤자 그대로 드러난다. 공주는 열댓살이라도 가슴은 c컵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자들이 어떤 외모를 가졌건 공주 쪽에서의 선택의 자유는 없다. 남자는 (중?)늙은이부터 어린애까지 골고루, 번갈아.

아, 정말 여자에게 너무도 잔인하다.

 

그림형제의 백설공주는 어쩌자는 식이었을까. 사실 그림형제를 이제 다시 읽어보면 죄다 음흉하고 의뭉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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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민이 이런 말도 해요

만44개월

 

ㅇㅇ하기는 한데 .....하다.

ㅇㅇ하다면서 .... 하냐?

 

 

 

* 무서운 얘기 해달라고 졸라졸라서 다 듣고 난 후,

"재미있기는 한데, 무서웠어."

 

*  엄마랑 둘이 이부자리에 누워 뒹굴뒹굴, 이럴 때 나는 꼭,

"규민아, 최고 사랑해."

"엄마는 날 최고 사랑한다면서, 떼 부렸다고 혼내냐?"

 

 

뿐만 아니라 감정의 세밀한 고개고개를 타는 말도 구사한다.

 

어젯밤 된통 골이 나있던 나는 이부자리에서 가만 있는 남편에게 무어무어라 쪼았다.

내 딴에야 지난 밤의 일이 도저히 풀리지 않아 이대로는 숨통 막혀 잠을 못 잘 것 같아 한 짓이지만, 어젯밤 이부자리에서만 보았을 때는 한 사람이 가만히 있는 한 사람을 냅다 건드린 꼴이었다. 그걸 지적한 사람은 규민이었다.

"엄마, 빨리 아빠한테 미안해 해라."

...

"안 하면 아빠하고만 놀거다."

(내심 아이의 그 말에 슬펐음) "넌 엄마 속상한데 왜 속상한 것도 모르고 그러냐?"

(급격하게 자세 바꾸어서)"엄마, 내가 미안해."

이건 감정의 세밀한 고개가 아니라 감정의 평평한 평야인가..

하여간에 여전히 엄마 아빠가 세상의 전부인 사랑스러운 울 애기..... 규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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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민의 이런 사과

다섯살이 되니 이제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논다. 엄마된 사람들은 수다도 떨 수 있어 좋다.

네살 무렵까지만 해도 친구를 옆에 앉혀놓으면, 장난감 실갱이에, 밀고 때리기 실갱이에, 어떤 엄마들은 그래도 무시하고 수다에 몰입하던데, 나는 그러지 못했었다.

이제 실갱이가 벌어지긴 하지만 서로 미안해, 괜찮아, 사과하고 화해하고 다시 놀고 다시 싸우고 다시 사과하고 다시 화해하며 그럭저럭 자기들끼리 논다. 기특해라.

 

규민이 친구집에 놀러갔다.

아이들 네 명이 모였고, 엄마들 네 명도 모였다.

그 집엔 플라스틱 미끄럼틀이 제법 큰 거 하나 있었고, 트럼폴린이라고 하던가, 고탄력판 아래 거대한 용수철이 있어 점프하며 노는 것까지 있었다. 아이들이 거기로 몰리는 건 당연하지. 네명이 한꺼번에 몰려 놀기엔 싸이즈가 작아서 계속 실갱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애들 실갱이가 일어나면 수다에 몰입하지 못 하던 습관으로, 그 모습을 한 켠에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여자 친구 하나가 미끄럼틀 계단을 올라가더니 내려가지 않고 버티고 앉아있다.

그 뒤 올라가던 사람은 규민, 그리고 규민 뒤에 바로 이어서 남자 친구 하나가 계단을 붙잡고 올라갈 태세.

윗 친구는 내려가지 않고있지, 밑 친구는 빨리 비키라고 하지, 규민이 진퇴양난, 사면초가, 당황난색, 결국 세명 동시에 실갱이 벌어짐.

윗 친구, 사태의 가장 큰 책임자, 이 사람이 그냥 내려오면 일 되는 상황인데, 계속 버티기 고집. 왜 안 내려가냐는 규민의 질문에 자기는 그냥 올라오고 싶어서 올라왔는데 내려가기는 싫단다. 이 뭔 뻔뻔스러운 대답인가. 한 켠에 가만 입닫고 있는 나까지 짜증날라 한다.

타고싶은 미끄럼틀을 못 타고 있는 이 한탄스러운 상황에 설상가상으로 밑친구는 규민이 비키지 않는다고 신경질을 바락바락낸다. (사실 평소 윗친구보다 이 밑친구가 한 성깔로 유명하신 양반, 자기는 계단의 첫 칸도 밟지 않은 주제임을 파악하고 위 두사람에게 실갱이를 할 권리와 선택할 권리를 줄 것이지, 무작정 비켜비켜 비명을 내지르며 한 켠에 가만 입닫고 있을라는 나를 자꾸 발딱발딱 일어서게 할라 한다.)

왠만하면, 주변 어른들이 누구누구의 엄마가 아니고-그래서 때로는 누구편 누구편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이 아이들 무의식 저변에 깔려있는- 공정하신(과연?) 선생님이 계신 어린이집이라면, 주변에 친구 언니 오빠들의 눈이 있고 자기가 떼쟁이로 낙인찍힐 우려가 있는 어린이집이라면, 사태는 긴장이 터지기 전에 수습되었을 것이다. 다섯살이면 그만한 이성은 있는 나이인 것이다.

그러나 주변 어른들이 죄다 누구누구의 엄마들이고, 떼쟁이로 낙인찍을 주변인들도 없는 그 곳에서 결국 셋 죄다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고, 어른들의 중재로 사태는 종결되었다.

 

내가 주목한 순간은 이 다음이다.

세 아이 대충 울음을 그치고 다시 미끄럼틀을 타기 시작하려 할때였다.

규민이 다른 두 아이 얼굴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더니, "미안해, 미안해"하는 것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한, 죄다 깡그리 잊었다는 의도의 표정을 짓고 미끄럼틀에 매달리려는데, 규민은 두 아이 모두에게 사과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따지자면, 규민은 아무 잘못없다.

그러나 의도하지 않은 불행한 사태가 벌어진 것에 대해 통감하는 기분, 그것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 그래서 안타깝구나'..

그러나 영어에서 sorry와 i'm sorry는 그렇게 차이난다지만, 우리말 '미안해'는 모호하다. 그 말을 한 이가 결국 밑지고(?) 들어가는 결판이 휙 나버리는, 미묘한 뉘앙스를 살리지 못해 미묘한 감정을 살려주지 못하고 결국 미묘한 상황과 관계를 단순하게 결판지어버리는 참으로 무책임한 말이다.

나는 이 생각을, 당시 규민의 얼굴 표정과 슬로우모션처럼 플레이되는 '미안해'를 들으며 1분 간은 하고 서있었나보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생각들은, 그러고보니 나도 그런 식의 미안해를 참 많이 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했던 순간들, 나는 진심이었다. 내가 아무리 객관적이려 노력하며 두번세번 반복하여 생각해봐도 내 잘못은 별로 없는 것 같은 경우이지만 일어난 사태가 불행스러웠을 때, 나는 미안해, 미안해, 나도 더욱 주의하지 못 했던 것 같아, 어쩌구하며 사과, 사과 또 사과했었다. 그렇게해서 사태가 불행을 극복한다면, 사태의 당사자들이 깨끗한 기분을 맞을 수 있다면 무언들 못하리, 사과 쯤이야. 백만번도 할 수 있어.

 

그때는 저 바닥의 나의 진심을 실컷 퍼올려 마구 퍼주던 사과가 갑자기 몹쓸 단어처럼 느껴졌다. 공정치 못하고, 사태에 무책임하고, 특히나 사후 관계까지 무책임한.

어쩌면 내가 겪는 내 주변 관계의 억지스러움은 내가 진심이라고 남발했던 무책임한 사과의 탓도 있을지 모른다.

 

딸내미의 사회적'미안해'를 들으며 규민이도 이제 지난한 여자의 길로 들어섰구나,하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면 비약인가. 미안해 잘 안하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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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전 야구, 다행 패배

뻔한 이야기임.

 

97년도에 지금의 남편을 만난지 얼마 안되었을 때였다.

그에게 거의 한 눈에 반했던 나는 그 남자와 어디든 싸돌아다니고 있던 때였는데,

그 무렵 그 남자는 하이텔(이란 이름 정말 오랜만이다)에 '록키호러픽쳐쑈 소모임'을 만들어놓고 거기 사람들(어차피 원래 술먹던 사람들)과 술먹고 노는 일이 많았다. (그러고보니 '록키호러 픽쳐쑈'도 그남자 덕분에 보게되었군.) 어느날 그 소모임의 한사람이 제안하여 홍대앞 어느 까페에서 에스에프영화 상영회를 하기로 하였다. 불과 (라고 써놓고 보니 어느새 거의 10년전이군) 97년도나 된 시절이지만, 그때에는 인터넷도 그리 쓰이지 않았었고, 디비디란 것도 없어서 누군가 희귀한 비디오테이프를 가지고 있으면 사람들 모여 까페에서 상영회하는 것이 소소한 재미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소소한 게 아니라 나름 큰 재미였다. 지금보다 훨씬. (하여간에 다시 한 번 갓댐 디지털)

 

약속 시간에 딱 맞춰 그 까페에 들어섰는데, 어두컴컴하고 흰 커텐같은 거에 틀어진 영상에 사람들이 벌써 집중하고 있었다. 간신히 그 남자를 찾았더니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바에 앉아있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이다니 열화와 같은 반응이구나,하며, 그 사이를 비집고 그의 바로 옆에 앉아 그 영상이란 것을 쳐다보니, 어랍쇼, 축구였다. 아니 야구였었나. 하여간에 무슨 경기였는데 한일전이었다. (그래도 그때에는 대한민국이라고 안했다.) 지루해죽겠는데도, 그떄그때 사람들이 보여주는 아, 어, 으,하는 탄성에 나도 동반해주며 경기는 끝났고, 까페에 불이 켜졌다. 상영회 시작하기로 한 시간이 훨씬 지나있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우리 볼 영화 보자,고 사람들이 우르르 담합할 줄 알았다. 근데, 사람들은 우르르 까페 밖으로 나갔다. 죄다 축구인지 야구인지 보러 들어왔던 사람들이었고, 에스에프 상영회에 실제로 참석한 사람은, 나와, 내 남자친구와, 모임을 제안했던 남자와, 그 남자의 추종자로 보이는 서넛이 전부였다. 애게.

그래도 우리는 영화 잘 보았고(지금은 토성의 어쩌구 밖에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데, 당시 그래도 꽤 오래동안 쇼킹한 그 줄거리를 되새겼던 것 같다.), 영화 끝나고 나름 토론회 같은 것도 했고(상영회를 제안했던 남자가 에스에프계 거물인 줄 그 토론회에서 알아보았음. 그 남자가 하는 소리가 뭔소린지 하나도 못 알아 들었었다), 하여간에 즐거웠다.

 

내가 이 날의 일을, 그 에스에프 영화의 제목도 까먹은 지금껏 이렇게 기억하는 이유는, 이제부터다.

그 나름 토론회가 대충 끝나고 나와 남자친구는 까페에서 나왔는데, 무슨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아까 보았던 축구인지 야구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왔다.

 

나는 축구이건 야구이건 정말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걸 내색하면 이 남자에게 점수를 깎일라, 그냥 스물일곱(내가 그땐 스물일곱살이었다!)해 익힌 눈치대로, 맞장구를 치려하고 있었는데, 이 남자 하는 말이 나에게 복음이었던 거다.

 

그 -- "너 아까 되게 재미있어하는 거 같던데."

나 -- "아니 그냥....."

그 -- "난 한국져라, 일본이겨라,하고 있었는데."

 

내가 재미없으면 그냥 재미없다고 해도 되는거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었다.

신성불가침 타이틀인 양 구는 한일전, 대학때 그 숱한 경기전들, 아, 거기에 침을 뱉어도 되는거구나.

 

나는 그때 스포츠를 스포츠로 보는 진정한 깨우침을 얻었다.

거기에 학교가 붙고 나라가 붙는 게 웃기는 짬뽕이구나.

정말 웃기는 짬뽕이다. 그러면 온국민 밤낮없이 축구야구만 열라하면 되겠네.

더더군다나 공식적 여자경기는 없는(지금은 있나?) 거면서.

하여간에 결론은 난 축구, 야구, 싫다, 재미없다.

 

얼마전 한겨레의 김어준 칼럼에, 김어준이 오바 좀 하자면서, 한국야구가 미국 야구이겼으니, 한국이 미국 이겼다고 오바 좀 하자는 얘기인 듯한 글을 썼다. 무슨 주장인가 싶어 읽어보려 했다가, 첫 줄 부터 내가 알아들 을 수 없는 경기용어라서 관둬버렸다. 작년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코메디언 김승대가 개그맨 기획사 문제로 뉴스가 되었을 때 김어준이 썼던 칼럼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때 확 휀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김어준 칼럼을 꼬박꼬박 읽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황우석부터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가(황우석에 대한 기사와 뒷얘기를 아주 속속들이 알고 있지않는 한 김어준의 이야기는 이해할 수 없는 듯한 인상을 받았음) 갑자기 야구 경기 이긴 것을 미국 이겼다고 오바 좀 하자는 건, 으흠....

 

김어준처럼 '공식적으로' 전제하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많은 사람들이, 모든 언론사들이 이미 오바하고 있다. 시청앞 광장에 왜 사람들이 모였으며, 그건 왜 카메라로 찍고 있으며, 왜 뉴스 앞대가리 다 경기이야기로 채우는냐 말이다.

 

 

나는 당신들이 외치는 대~한민국이 싫다.

새만금도 그렇고(그래도 대법원은 다를 줄 알았다), 에프티에이도 그렇고, 비정규직법 통과된 것도 그렇고, 최연희인지 뭔지가 국회의원인 것도 그렇고, 애들은 성추행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도 그렇고, 평택에 들이미는 미군은 어떡할꺼며 또또..........................................

 

 

야구, 볼 생각도 없었지만, 지금은 한 집에 같이 사는 그 옛날 그 남자는, 겐이치로처럼 야구를 '우아하고 감상적'이라고 생각('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도 내게는 어려운 소설)하는 야구 휀이라서 우리집 티뷔에도 열두시부터 야구가 중계되고 있었던 바람에 보지 않을 수 없었으니.

그래서 나는, 정말 마음 속으로, 한국 져라, 일본 이겨라, 하고 응원했다.

여기서 이기면 정말 좋은 나라라고 오바한다. 제발 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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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 청소도 다해요.

원래, 하지말라는 것이 더 재미있고, 어른들 하는 짓은 다 재미있어 보이는 것이다.

 

우리 딸래미는 빨래가 너무 재미있다.

조그만 손으로 조물락조물락, 입고 있는 바지 다 적셔가며, 비누곽을 물로 채워놓으며, 화장실 바닥을 비누끼로 온통 미끌미끌 만들어가며 빨래를 즐긴다.

오늘, 빨래를 하다가 흥이 난 규민은, 엄마, 솔 꺼내줘,하더니 쓱쓱 빨래비누 몇 번 긁고서 바닥을 싹싹, 변기 속도 싹싹(변기 안으로 거의 들어갈 자세), 목욕 의자도 싹싹, 삶는 통도 싹싹, 뭐든지 싹싹 닦는다.

 

노래를 해가면서('봄은 언제 오나요?'), 작은 엉덩이를 바삐 돌리며, 샤워기를 잡고 물을 틀었다가 껐다 하면서 솔을 놀리는 폼은 제법이지만, 사실 청소는 커녕 뒷정리 할것만 산더미로 만들어놓는 것이다.

 

"우리 딸, 힘들지 않아? 왜 이렇게 열심히 빨래하고, 청소해?"

대답도 능청스럽게 잘 한다.

"으응, 엄마 사랑하니까. 엄마 도와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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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

3월1일, 입학식.

엄마아빠 다 오시라, 이날 입학식을 한다고 함.

시간 외 근무는 절대사절이고 싶은데...

전날부터 무대(!)세팅이며, 식순 정하고 쓰고, 사회자 뽑고 예행연습을 한다만다, 거의 결혼식 수준. 그러나 실상은, 각 교실에 떠도는 커텐자락 같은 천쪼가리 모아 바닥에 깔고, 꽃잎 뿌려놓고, 촛불 켜놓고, 색상지 오려 환영합니다 글자 만들고, 조잡유치한 학급 학예회 수준.

 

 

신입생 한명 한명 엄마나 아빠, 혹은 둘이 손을 잡고 등장.

아이에게는 화관이 씌워져있다. (겨울이라 꽃 한다발을 사서 만들었지만, 작년 9월 편입식에서는 주위에서 칡넝쿨 캐고 꽃 꺾어 만들었다. 이거 만들기가 손품도 만만치 않고, 바뻐죽겠는데 앉아서 이짓거리나 하고 있냐 싶어서 이번부터는 반드시 화관을 회수하기로 하였다.)

담임선생님이 아이에게 이름표를 달아주고, 촛불을 켜서 쥐어준다.

한명한명 그렇게 입장한 후, 한명한명 엄마나 아빠가 아이에게 선물을 주고(꽃씨와 화분) 무언가 덕담을 한 마디 한다.

다음에는 담임이 선물을 주고 덕담을 한다.

 

사람들도 버글버글(신입생 가족들과 재학생 가족들)하고, 비좁은 강당과 초라한 학교 시설이라는, 전체적으로 후진 배경에서, 부모와 선생의 선물과 덕담, 아이의 긴장된 행복한 표정이, 그런데 극적이고 놀라운 분위기를 만들어내었다.

 

엄마나 아빠의 덕담은 상투적이고도 상투적이다.

"건강하고, 행복하거라", "푸른 나무가 되길 바란다.". "자유로운 인간이 되거라."식의.

그런데 놀랍게도, 그 말에 배어있는 진심, 정말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올라나왔을 그 진심이 가슴을 울리고 뭉클하게 하였다.

곳곳에서 눈이 벌게졌다.

그리고 또 1학년 담임의 선물.

 

1학년 선생님은, '이제 이곳에 발을 잘 디디라'는 의미로 버선을 준비했다. (수공예 선생님이 직접 만들어서 모양도 앙징맞고 예뻤다.)

아이 하나하나 선생님은 그 버선을 신겨주었다.

아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아이 신발을 벗겨 버선을 신기면서 그 아이 발을 만지게 된다.

이상한 모습이었다.

저런 선생님이 있던가.

선생님의 그런 모습 자체가 보고있자니 기기묘묘하게 극적이었다.

 

 

아이들은, 기기묘묘하게 감동을 준다.

어른도 생각하지 못 했던 배려, 웃음, 시선.....

 

개학 후 며칠, 아이들을 만나면서 나는 몸살이 났다.

아이들과 만난다는 것은 더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그것은 나에게 덜컥 부담이 되었나보다.

직장에서는 적절하게 웃고 적절하게 말하고 적절하게 대응하고 적절하게 관심과 무관심을 섞고 적절하게 처신해야하는 사회의 법칙이 이 곳 직장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또 이곳에서도, 어른 대 어른의 공간; 교사 대 교사의 공간, 부모 대 교사의 공간에서는 위의 사회의 법칙이 다시 칼날처럼 엄숙하게 등장한다. 어른이란 정말이지 비굴한 존재다.

 

나는 직장에서도 거짓말을 할 수 없고, 집에 돌아와서도 규민을 만나면서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곤란한 세계에 살게 되었다.

규민을 보면, 나는 다시 새직장에 출근이다.

아침에 아이가 깨기도 전에 엄마 먼저 일을 나가야 하고, 삼일절에도 나가야하고, 일주일에 몇번은 늦어야하는 엄마가 너무나 미안하다.미안할 수록 나의 곤란한 세계는 혹독하다.

 

참, (입학식에 쓰인 화관은 아이들이 절대로 벗지 않겠다고 하여 처음의도와는 다르게 도저히 회수 불가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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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내미 자랑

다음의 사진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답 : '이'

 

전수찬이 얼마전 규민에게 '이'字를 가르쳐주었다. (선행학습 시키는 것 아님. 영리한 딸내미를 보고 부모가 선행학습 시키는 줄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단지 딸내미가 영리해서 그런 것임) 엄마나 아빠가 글씨쓰는 것을 보고 흉내내기를 하는 규민에게 재미있으라고 가장 쉬운 글자(엄마이름에도 있으니까 친근하기도 하고)를 가르쳐준 것이었다.

 

위 사진은 규민이 만든 작품이다.

'방울에다 볼펜을 끼웠네'라고 평가했던 어른들에게 규민의 작품 설명 ; "'이'자 만든거야."

오호라, 신퉁방퉁 딸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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