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2/14'에 해당되는 글 6건
엄마는 오늘 담배를 피운다.
피우면 안되는데.
아빠가 없기 때문이다.
아빠는 먼 곳에 있다.
다용도실에서 찬바람에 얼굴도 손도 발도 내놓고
차갑게 빛나는 불빛들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하얀 입김과 연기를 내밀었다.
나는 다용도실 유리문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쳤지만 엄마는 내가 없는 것처럼 다시 하얀 담배를 입에 물었다.
[돌아와. 내게서 죽음을 몰아내줘.
나는 무서워. 어둠이 다가오고 있어. 차가운 불빛들은 진짜가 아니야.
나는 이곳에 혼자 있어선 안돼.]
엄마는 유리로 된 성안에서 나와 온기가 도는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단단한 소파위에 나와 함께 앉았다.
나는 엄마를 지킬 수 없다.
엄마의 차가운 손이 내 무릎에 놓인다.
처음에는 그냥 차갑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무릎을 움직일수가 없게 되었다.
깊은 호수의 표면이 겨울빛에 얼어가듯이
내 몸은 조금씩 조금씩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얼어간다.
호수에서처럼, 얇게 언 수면아래로 미지근하거나 혹은 뜨거운 피가 천천히 흐르고 있다.
엄마는 페로시타스에게 걸어가고 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걷는다.
[나를 데려가. 아이는 내버려둬.]
발끝은 페로시타스의 그림자 아래 있다.
그림자가그녀를녹이고있다아니벗기고있는걸까?
그림자에닿은부분이까맣게타들어간다.
[그것이 되찾아졌다
무엇이? 영원성이
그것은 태양과 함께
가는 바다] *
하늘은 검다.
백합의 독기가 가득한 좁은 방
육각의 석영으로 된 방안에서
태양의 낙하지점에 앉아
용처럼 날고 있는 프테라노돈을 바라본다.
혹은
하늘은 하얗다.
습기가 가득한 뜨거운 대지위에
초록빛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아마란타인 한송이만이 신기루처럼 박혀있다.
나를 데려가 줘.
타는 듯한 삶의 빛으로부터 거둬가 줘.
영원이 두렵지 않은가?
나는 순간이 두려워.
너는 태양을 품고 있어. 붉은 화염에 휩싸여 하늘을 나는 그것은 배인가?
아니, 그것은 용이구나. 미스릴로 만들어진 심장을 가진 기계용인가?
질투로 시퍼렇게 멍든 얼굴을 온기가 없는 석회가루로 화장한 달인 줄 알았더니
들끓는 용암으로 가득한 끝없는 동굴이었구나.
나는 너를 품을 수 없어. 나는 너를 거둘 수 없어.
내앞에 내민 발을 거두어라.
너는 물체의 온기를 빨아들여 무게를 없애주는 존재가 아니던가?
태양은 그저 작은 별일뿐. 언젠가는 스스로를 태워없앨 나약한 존재.
나를 받아들여. 나를 받아들여.
지옥이 있다면 그러하겠구나. 그 고통 속에 죽음이 너를 데리러 올때까지
부조리속으로 쉴틈없이 내던져 지거라. 내 그늘에는 네가 쉴 곳이 없다.
그녀는 그곳에 그대로 있지만
페로시타스는 에메랄드 속으로 사라진다.
두개의 에메랄드는 쩡 소리를 내며 어둠의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가는
잉걸불이 사라지듯 아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어둠속으로 녹아든다.
그녀는 또 담배를 피우러 간다.
심장에 담배끝을 대어 불을 붙인다.
* 랭보의 영원 마지막 구절. 번역은 정확하지 않음.
김상이 집에 없다.
김상이 이 시간에 집에 없는 것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거늘,
어제부터 마음이 불안하다.
김상은 일요일까지 집에 오지 않는다.는 생각때문에.
저녁이 되어도 개토는 혼자 집에...냥이 두마리와...
집안이 싸늘하다.
일요일에 만든 닭도리탕을 태워먹었다.
얼마남지 않아 다행이긴 하지만, 아깝다.
바닥부분에 눌어붙은
근본을 알 수 없는 것들은 남겨두고 나머지를 퍼다가 저녁으로 먹고있다.
김상이 없으면 나는 밥도 잘 챙겨먹지 않는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런게 나다.
며칠새 살이 좀 빠졌다. 빠졌다 해봐야 1~2kg 정도지만
내 전체 몸무게를 생각하면 적은 양은 아니다.
그런데, 욕조에 들어가 앉으니 허리둘레에만 눈에 띄게 둥근 살의 테가 둘렸다.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각종 오락을 즐기기 때문이다.
집중하면 배가 고파지지 않아서 자주 먹는 것을 잊는다.
그래서인가 몸은 배둘레에 비상식량을 비축해두나보다.
몇해 전인가 한참 일에 묻혀 지낼때
가스렌지 아래 싱크대 안에, 친구에게서 받은 감자를 스무알 정도 넣어놓았다.
아무것도 해먹지 않고 살던 때라 넓은 싱크대 아래 공간에 달랑 감자 스무알뿐.
아마 서너달쯤 지나서였나보다.
라면을 끓여먹자고 싱크대를 열었을 때 가히 그 안은 장관이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살던 성 둘레를 감싸고 있던 가시덩굴이 아마 그랬을까?
감자덩굴이 싱크대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어둡고 퀴퀴한 싱크대안에서 감자는 무럭무럭 싹을 틔워 냈던 것이다.
말이 장관이지, 징그러움의 극치였다.
나는 감자 싹의 그 미끄덩하고 희끄무레한 녹색과 붉은색이 꼭 뱀같아서 무섭다.
꿈에 나올까 무서운 장면이었다.
구석에는 쪼글쪼글하게 쭈그러든 할머니 손처럼 감자들이 모여있었다.
메두사같았어...
그냥, 음식을 태워먹고 나니 그때 생각이 떠올랐다.
혈액형별 성격이라던가, 별자리별 성격이라던가
하여튼 무슨 성격진단 테스트 결과를 받았다하면
주변에서 '참 쪽집게다', '어쩜 그리 신빙성이 있냐' 난리들이다.
개토의 성격자가진단 결과를 본 김상 왈, 이거 만든 사람 진짜 대단하단다.
개토는 다른 의미에서, 이거 만든 사람 진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하면 50개의 질문으로부터 243개인가의 인간형을 분류해내고
각 분류에 맞게 사람들을 해석할 수 있는 것일까?
이걸 만든 사람들은 어떤 방법을 썼을까?
대체 이걸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지?
심리학과 통계학이 사용된걸까?
초안은 설문같은 걸 이용했을까?
허, 거참 궁금하다.
대체 상상력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다.
반도체 제작 공정을 설명해준다면 차라리 논리적이겠지만...
뭐랄까 제작 과정이 참으로 의심쩍은 무언가이다.
어쨌든 누군가, 그 해석부분을 쓰신 분, 꽤나 유머러스 하시고 호감가는 분이십니다.
겉보기엔 아주 평범하실 듯한 그 분.
[한번 쓰인 작품은, 자신의 힘으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니까.]
- 다카하시 겐이치로 -
진실을 쓴다는 것. 그게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야.
자신만 속이지 않으면 돼.
내 글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야.
존재라는 것은 모두다 부조리 그 자체여서
모든 인과의 사슬속에는 미싱링크가 있기 마련.
책임이라는 것을 지기 위해서 진실을 쓰려는 것은 아니야.
설명할 수 있는 것, 알고 있는 것만을 쓰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지.
오히려 설명하지 않기 위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쓰는 것인걸.
참 미묘한 사고방식의 차이인데,
나는 많이 쓰고 고치고, 버리고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는 쓴다면 확신을 갖고 쓸거야.
이것이 여기 있어야만 한다는 확신. 그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확신.
있어야 할 자리에 그것이 아니면 안되는 것들을 둘거야.
나는 그게 진실이라고 생각해.
그래. 나는 고리타분해.
세상의 모든 글들이 출판될만 한 것이고
모든 창작물들은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야.
나는 어떤 창작물들은 특별하다고 생각해.
진실한 것이라면 뭐든지.
진실이 합리적이고 명확한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
진실은 부조리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야.
개토의 존재가 부조리하다고 해서
개토의 존재가 의미없는 것은 아니잖아.
오히려 부조리 하기때문에 아름답고 슬프고 빛이고 어둠이고 그 자체인거잖아.
나는 진실이 있어서 그걸 쓰겠다고 말하겠어.
나에게는 진실이 보이니까.
비록 하찮은 진실이라도.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