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2/17'에 해당되는 글 6건

  1. 해왕성에서 온 편지 (2) 2006/12/17
  2. 창세기 2006/12/17
  3. LSD를 위하여 (2) 2006/12/17
  4. 거리 2006/12/17
  5. (5) 2006/12/17
  6. 쓰레기 2006/12/17

해왕성에서 온 편지

from 2006/12/17 14:07

편지를 받고 있다.

 

남은 시간 3499일 4시간 50초, 49초, 48초, 47초...(1MB / 3500MB 복사됨)

전송속도 : 1.574074074074074074074074074074e-5 MB / 초

 

나는 그 편지를 3500일동안 기다리며 설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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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7 14:07 2006/12/17 14:07

창세기

from 2006/12/17 12:14

태초에 눈이 있었다.

 

그는 동쪽에서부터 햇수로 8년을 걸었다.

그녀는 남쪽에서부터 햇수로 8년을 걸었다.

 

확실한 것은 불확실함 뿐이었지만,

그들은 확신을 갖고 걸었다.

그래서,

그들은 만났다.

 

바닥에도 하늘에도 사방으로도 온통 눈이었다.

그들이 걸어온 길에 찍힌 두줄의 발자국은

그들이 서로를 비스듬히 보고 있는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는 그녀를 만날 때를 대비해서 매일 세번씩 자위를 했다.

8년이나 머릿속으로 그리고 또 그린 만남.

그들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어색함 속에 그는 그녀의 허리를 살짝 잡고 머리를 그녀 어깨에 묻었다.

그녀는 뻣뻣하게 서서 불편한 자세로 그를 견딘다.

 

처음 만난 두 마리의 야수들처럼

그들은 서로의 눈을 피한다.

꼬리를 내리고 냄새를 맡고 다시 조금 떨어져서 곁눈질로 상대의 눈동자 주변을 살핀다.

 

그녀의 입술에서 거칠지만 단호한 입김이 쏟아진다.

그는 그녀에게서 조금 멀리 떨어진 눈위에 앉아 사방을 바라본다.

그녀는 아까부터 세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길을 잃었다.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의 오른속 새끼손가락은

그녀의 왼손 새끼손가락으로부터 1m 정도 떨어진 곳에 놓여

그녀의 손가락들이 눈보다도 더 차갑다고 느낀다.

 

그녀는 하나씩 옷을 벗는다.

길고 검은 외투를 벗고, 약간 큰 스웨터를 벗고, 너덜너덜한 스니커를 벗고

검은 양말을 벗어 스니커 안에 넣는다.

코듀로이 바지도 벗는다.

그녀는 하늘색의 남방만 입고 있다.

 

그는 아무 것도 벗지 않는다.

그녀를 무릎에 앉히고 두손으로 그녀의 오른발을 잡아 조심스럽게 문지른다.

그녀의 발은 거칠고 부드럽고 말랑말랑하고 아주 작다.

그는 손가락끝의 감각을 날카롭게 만들어 그녀의 발안쪽에 있는 가는 뼈들을 인식한다.

그는 발기하지 않는다.

제대로 준비가 된 것이다.

두개의 심장이 같은 속도로 강하고 빠르게 펌프질을 하고 있다.

핏줄이 확장되면서 얼어있던 모든 세포들이 뜨거운 피의 세례로 새 생명을 부여받는다.

 

그녀는 그의 엄지손가락을 핥기 시작한다.

그를 중심으로 눈이 녹는다.

눈은 엄청난 속도로 녹아 간다.

내리는 눈들은 바닥에 닿기도 전에 작은 물방울로 변해서 그들을 적신다.

엄지손가락은 그녀의 입속에서 완전히 젖었다.

그리고 그녀의 날카로운 이가 그 손가락끝을 물어뜯는다.

그녀는 피를 마신다.

이제 그들은 하늘이 보이지 않는 둥글고 검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들은 바다를 만들어 그 안으로 숨었다.

그녀는 그를 아주 조금씩 오랫동안 잘근잘근 씹어 먹는다.

 

그를 양분으로

그녀는 상상의 아이들을 만들어 물에 띄운다.

아이들은 그녀를 돌아보지 않고, 누군가를 만나기위해 자신의 길을 떠난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일부를 잘라준다.

아이들은 그것을 먹고 기운을 내어 먼 곳까지 갈 것이다.

 

이것이 세계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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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7 12:14 2006/12/17 12:14

LSD를 위하여

from 우울 2006/12/17 02:38

당신의 고양이님의 [최고의 사랑] 에 관련된 글.

 

눈이 오고 있었다.

눈이 아주 많이 오고 있어서, 하나도 춥지 않았다.

 

그녀는 하얀 눈이 3cm정도 쌓인 거리의 노란 가로등 아래에

LSD와 함께 앉아있다.

벤치에도, 그녀의 빨간 모자 위에도, 검은 외투 어깨에도 눈이 3cm 쌓여있다.

그녀도 LSD도 눈을 털어 내지 않는다.

 

사랑해.

 

그녀는 눈이 쌓인채로 아주 조심스럽게 LSD를 흡입한다.

그는 마치 준비된 가루처럼 그녀안으로 쉽게 빨려들어간다.

그는 그녀 뇌세포와 뇌조직의 일상적 활동을 잠시 멈추게 한다.

세로토닌을 가로막고

그녀의 깊은 뇌주름 속까지 들어가 구석구석 키스를 불어넣는다..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느린 시간을 엿본다.

수정으로 만든 배가 존재하지 않는 음악을 연주하며

하늘의 바다속을 가로지른다.

그녀는 그 음악을 "볼 수" 있다.

그녀는 LSD의 색깔을 "들을 수" 있다.

마법의 용이 푸른 연기를 내뿜는다.

 

동공이 자꾸 자꾸 확대되어 눈동자 속으로 눈들이 쏟아진다.

LSD도 가로등도 노랗거나 주황색이거나 혹은 빨갛고 파란 빛들도 모두

그녀의 눈동자를 통과해

그녀의 몸안에서 사랑과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그녀는 세상을 덮는다.

세상은 하얗다. 그녀는 이제 5cm만큼 세상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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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7 02:38 2006/12/17 02:38

거리

from 우울 2006/12/17 01:57

불공평하게도

세상에는 더 많이 사랑받고 더 많이 주목받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남들보다 적은 노력을 하고도 좋은 평가를 받거나

그냥 제멋대로 구는데도 사람들이 좋아해준다.

 

공평하게도

이런 사람들이 살면서 심각하게 곤란한 점이 있는데,

주변의 평가에 우쭐해서 스스로를 잃어버리기 쉽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그들 가운데는 텅 비어있는 사람들이 많다.

 

진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찾기도 전에

남들이 추켜세워주는 일에 휩쓸려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떠맡게 되기도 하는데,

책임도 지지 못하면서

자존심을 세우고 사람들의 애정에 기대어 두리뭉실 떠다닌다.

 

운이 좋으면 자신과 잘 맞는 일을 찾아 스스로도 만족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남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존재하기 위해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는 것만 같았다.

 

상황을 자각한 이후로는,

스스로를 위해

평가와 주목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기 위해 무척 노력하게 되었는데,

자각의 시간이 그리 길지 못해

그 거리를 두는 방식이 아주 서툴다.

 

서툴다보니

의도하지 않게 상대에게 거북한 느낌을 전달하게 되는 것도 같다.

최근에 내가 그런 것 같다고 느끼게 되었다.

 

정말 지금은 모든 일에 서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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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7 01:57 2006/12/17 01:57

from 우울 2006/12/17 01:13

 

눈이 많이 왔다.

김상이 있으면 같이 나가서 눈사람을 만들텐데.

김상에게 전화가 와서 눈이 온다고 하길래

눈사람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김상이 만든 눈사람.

존앤 쪼매나타...ㅋㅋ

내일 김상이 온다.

 

없으니까 블로그를 많이 하게 되는데.

가끔은 김상이 없는 것도 좋아.

게다가 눈사람 사진이 든 메일도 받았다.

가끔은 떨어져 있는 게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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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7 01:13 2006/12/17 01:13

쓰레기

from 2006/12/17 00:58

1996년 여름 뉴욕 웨스트 112번가의 아파트로 이사했을 때

내가 가진 짐이라고는 티셔츠 3장과 청바지 2벌,

이모가 남긴 황토색 트위드 재킷 한벌,

엠마뉘엘 카레르의 '콧수염'이라는 페이퍼백 한권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들어있는 낡은 갈색 가죽가방 한개 뿐이었다.

 

그나마 티셔츠 하나, 청바지 하나는

이삿짐을 나를 때(?) 입고 있었기 때문에 짐이라고 하긴 뭣한 면이 있다.

소설책은 뉴욕으로 오는 버스를 타기 전에 대합실에 있는 간이 서점에서 산 것이었다.

 

대학 수업이 시작되기까지는 2달 정도 남아있었지만,

나는 그 전에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도시를 나에게 친숙한 곳으로 만들어 두고 싶었달까.

 

부엌 겸 침실 겸 응접실의 방 하나짜리 아파트에는

허리높이 정도의 냉장고 한개와 매트리스 하나가 놓여있었다.

내게 필요한 전부였다.

 

빨래하기가 싫어서

일주일씩 같은 옷만 입고

뉴욕의 온 거리를 쏘다녔다.

어차피 모르는 사람들 뿐이어서 옷에 케찹과 마요네즈의 기름때가 묻어있어도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스니커의 뒷축은 거리의 아스팔트에 닳을 대로 닳아서

걸을 때면 아스팔트의 우둘투둘한 면이 발바닥에 느껴졌다.

 

고등학교때부터 쟈니 조의 식당에서 일하면서 모든 돈은

뉴욕에서 빠듯하게 생활할 경우 3개월 안에 바닥날 터였다.

하지만 겁날 것은 없었다.

아무 것도 잃어버릴 게 없어 아무 것도 두려운 것이 없었다.

 

아침에 집 앞의 이탈리아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한 개 사먹고는

저녁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고 돌아다니다가

하루종일 아낀 식비로 길거리 문구점에서 질 좋은 노트와 데생용 연필을 사기도 하고

서점에서 얇은 화집이나 소설책을 사기도 했다.

일주일만에 45kg에서 43kg으로 몸무게가 줄었지만

얼굴과 머리칼에서는 윤기가 돌았다.

 

나는 모든 것을 노트에 그렸다.

심지어 타임즈 광장의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던

펄프픽션까지도(나는 그 영화를 두달동안 서른번쯤 보았다) 보이는 대로 노트에 옮겼다.

내 노트의 펄프픽션에는

타란티노의 펄프픽션에 나오는 인물들보다 더 펄프픽션적인 인물들이 출연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풍족한 시절이었다.

 

나는 그 여름의 뉴욕에서 쓰레기를 만났다.

센트럴 파크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파란 새를 그리고 있던 참이었다.

그녀는 내가 앉은 벤치 반대편 끝쪽에 앉아서

내가 그리는 파란 새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가까이 오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이라고 그녀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쓰레기야.

 

나는 가만히 있었다.

 

나는 내가 쓰레기임을 인식하기도 훨씬 전에

우주의 어느 한복판에

누군가의 손으로부터 아주 가볍게 던져졌지.

그것이 누구였는가는 내가 이곳에 존재한다는 것만큼이나 중요하지 않은 문제야.

나는 아주 오랫동안 생각했어.

나는 누구인가 하고.

나는 이곳에 왜 던져졌는가 하고.

 

그녀는 잠깐 눈을 감았다.

오른손에는 내가 정말 싫어하는 스타벅스의 종이컵이 들려있었지만

커피가 아닌 무언가 다른 것이 들어있는 것처럼

아주 가벼워 보였고

컵바깥쪽에 커피자국과 정체를 알 수 없는 흔적들이 말라붙어 있었다.

왼손에는 쓰레기통에서 주운 것이 틀림없는,

베어 문 부분이 심하게 갈색으로 변한 사과를 들고 있었다.

눈을 뜨고 파란새를 바라보면서, 그녀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랫동안 쓰레기로 살아왔지.

아무도 내가 누구인지 관심갖지 않았어.

거리를 굴러다니면서 가끔은 밟히기도 하고

쓰레기통에도 몇번 들어갔었지만

용케 살아남아 이곳까지 왔어.

 

지독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깊은 곳부터 우러나오는 가벼운 냄새가 그녀에게서 내게로

바람을 타고 전달되었다.

 

그 냄새가 너무나 당연해서 나는 조금 놀랐다.

그녀는 꽤나 찢겨져 있었지만

그런대로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언뜻 키치하다고 볼 수도 있었지만

클리셰는 아닌 것이 확실했다.

 

이 때를 기다려 왔어.

 

그녀의 목이 잠겨있었다.

 

아무도 알아 주지 않았지만, 나는 알고 있었지.

 

헛기침으로 목소리를 조절한 뒤에 그녀는 말을 이었다.

 

내 안에 찬란히 빛나는 무언가가 있어서

때가 되면 드러날 거라는 걸.

나는 그래서 내 주름을 몇번이고 접고 다시 접었어.

더 멋지게 아스팔트에 문질러지기 위해서 사람들의 발밑으로 뛰어든 적도 많았지.

무서웠지만, 하이힐 아래로도 들어가 본적이 있어.

나는 정말로 오래 기다려 왔어.

너도 알겠지만, 나는 여러번 포기하고 싶었어.

소각장으로 가는 쓰레기차안으로 뛰어들어버릴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도 했어.

하지만 나는 기다렸어.

 

나 역시 그녀를 오래 기다려 온 듯 했다.

 

나는 노트에서 새 종이 한 장을 찢어 그녀를 집어들었다.

그녀는 아무런 저항없이 노트에 집혀 내 집까지 옮겨졌다.

 

냉장고에서 피클 병을 꺼내 내용물을 비우고

따듯한 물을 틀어 수세미로 문질러서 병의 겉면에 붙은 종이를 깨끗하게 떼어냈다.

종이타월로 병의 물기를 완전히 닦아낸 뒤

쓰레기통에서

며칠전에 산 책에 끼어있던 크림색 두꺼운 광고지를 꺼내어

피클병 뚜껑보다 약간 작게 오려 뚜껑에 적힌 글씨를 가렸다.

풀이 없어서 한블럭 건너에 있는 문구점에 허겁지겁 달려갔다 와야 했다.

남은 광고지의 여백에 나는 아주 공들여 두꺼운 글자를 그렸다.

G.A.R.B.A.G.E.

그리고 글자들을 오려내어 피클병에 붙였다.

제법 깔끔했다.

 

그녀를 병에 담아 창틀에 올려 놓았다.

검은 하늘 바탕에 색색의 조명이 반사되어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다.

 

나는 그녀를 그렇게 만났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12/17 00:58 2006/12/17 0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