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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 해적을 둘러싼 진실과 거짓 (경계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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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 해적을 둘러싼 진실과 거짓이라는 제목으로 참세상에 실린 '경계를 넘어'의 글은 그 동안 내가,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말리아의 사정에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건 내가 소말리아와 관련하여 쏟아지는 기사들을 비판적으로 접근했다 하더라도 알 수 없었던 점이라는 걸 인정한다.  
 
소말리아 인근 해변에서 벌어지는 것들이 나와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 잘 알지 못하였기에 비판적 인식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반자본주의와 어느 정도 관련되거나, 아니면 한국의 국익과 연관이 되어야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왜 문제가 있는지를 이 기사는 알려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제이슈가 있을 때마다 나와의 연관성을 찾아내는 것, 이를테면 소말리아의 해적들을 착취받는 민중의 하나로 파악하거나, 연대의 대상으로 보고 이해하려는 태도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소말리아 해역에 파견된 청해부대원들은 소말리아 해적들을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해적이라고 하지만 초라한 그들의 행색에 자신들이 가졌던 선입견에 의문을 갖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이다. 이런 이유로 눈에 보이는 피상적인 현실 넘어 그 본질이나 맥락을 파악하도록 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하는 거겠지.
 
'경계를 넘어'의 좋은 기사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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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깃배 타고 해적이 된 어부들 (참세상, 경계를넘어 ifis.or.kr / 2009년06월01일 16시32분)
[경계를넘어] 소말리아 해적을 둘러싼 진실과 거짓
 
소말리아 해적문제가 연일 국제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소말리아의 해역에서 여러 나라의 군대가 미사일을 장착한 군함과 헬기를 동원해 이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데, 그 그림이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소말리아 해적'의 사진을 검색해보니 21세기 해적의 초라한 행색에 더 의아해진다. 조그마한 나무배에 옹기종기 끼어 탄 그들은 아무리 자세히 들여다봐도 해적이라기보다는 가난한 어부처럼 보일 뿐이다. 기껏해야 재래식 무기라도 들면 다행일 사람들처럼 보이는데 왜 각국의 정부들은 초대형 군함을 소말리아에 보내놓고 야단들인 걸까?
 
'아프리카의 뿔'이라고 불리는 소말리아는 아프리카 대륙의 동쪽 중간 지점에 위치해있다. 아프리카 지도에서 동쪽 중간에 뿔처럼 솟아있는 부분이 바로 소말리아이다. 때문에 소말리아는 홍해와 인도양을 잇는 항구로서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향해 열려있다. 그리고 세계석유 생산량의 1/4이 통과하는 주요 길목에 놓여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소말리아는 오래 전부터 끊임없는 외세의 간섭을 받아야만했고 냉전시대에는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을 치러야했다. 이런 과정에서 소말리아 내에는 파벌과 부족 사이의 갈등이 생겨났고 그 결과 소말리아는 끔찍한 내전에 휘말려 죽음과 굶주림의 공포를 겪었다.
 
소말리아는 내전으로 1991년에 정부가 무너진 이후 지금까지 사실상 정부가 없는 상태가 계속되어왔는데, 소말리아 해역에 해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시점부터이다. 아니, 소말리아 인들에게 공평하고 정당하게 표현하자면 이때부터 소말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을 지켜 줄 해양방범대가 필요해졌다.
 
1991년 당시 세계는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소말리아 아이들의 사진을 돌려보면서 비참한 인간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유엔을 비롯한 구호단체들은 소말리아에 식량을 보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마치고 이제 막 세계무대에 데뷔한 한국에서도 소말리아 아이들에게 식량을 보내자는 캠페인을 벌일 정도였다.
 
그런데 소말리아 해역에 나타난 것은 식량으로 가득 찬 배가 아니라 화학물질과 핵폐기물로 가득 찬 배였다. 유럽에서 온 수상한 배들은 핵폐기물이 들어있는 쓰레기더미를 소말리아 해역에 버리고 돌아갔고 이런 일은 수없이 되풀이 되었다. 유럽의 기업들에게 무정부상태의 소말리아는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마음껏 폐기물을 버릴 수 있는 기회의 땅이 된 것이었다. 이들 기업들은 유럽에서는 1톤 당 약 1천 달러의 처리비용이 드는 폐기물을 1톤 당 3달러를 주고 바다에 버렸다. 폐기물처리 비용은 내전을 벌이고 있던 군벌들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그 후부터 소말리아 사람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부병과 메스꺼움 등의 증상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기형아 출산율이 급격하게 높아졌다.
 
이러한 증상은 2005년에 쓰나미가 인도양을 덮쳤을 때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방사능증(방사능에 노출되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이로 인해 3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유엔환경프로그램의 보고에 따르면 유럽 기업들이 버리고 간 폐기물에는 "우라늄, 방사능 폐기물, 카드뮴, 수은 등의 화학 폐기물"이 포함되어있었다.
 
다른 나라의 배들이 소말리아 사람들에게 가져다 준 것은 질병과 환경오염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소규모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소말리아 어부들의 생존기반 자체를 흔들어놓았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온 외국의 어선들은 매년 약 3억 달러어치의 참치와 새우, 랍스터 등 어류와 해산물을 대량으로 쓸어갔다. 아시아 출신의 어선 중에는 당연히 한국 어선도 포함되어 있었다.
 
심지어 외국 어선들은 소말리아 어부들이 쳐 놓은 그물을 걷어가기까지 했다. 큰 규모의 어선과 장비를 갖춘 외국 어선들의 불법 어획에 소말리아 어부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 어선들이 휩쓸고 지나간 후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작은 고깃배로 어업을 하는 소말리아 어부들이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외국 어선의 불법 어획은 소말리아 어부들의 생계수단을 강탈했고 소말리아 해역의 생태계를 파괴시켰다.
 
그런데 소말리아 사람들에게는 그들을 보호해 줄 정부와 같은 존재가 없었다. 만약 다른 나라에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당장 해군이 출동하고 외교적인 마찰이 불거졌겠지만 소말리아 인들은 스스로로 외국 선박의 불법 어획과 폐기물 투기에 맞서 자신들의 바다와 생명을 지켜야 했다. 어부들은 배를 타고 나가 외국 선박의 불법행위를 방해하고 그들을 내쫒았다. 그리고 외국 선박이 저지른 불법적인 일에 대해 일종의 벌금도 받아냈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진짜 '해적'이라 불릴만한 사람들이 등장한 것도 사실이다.
 
수십 년에 걸친 오랜 전쟁-내전으로 포장된 강대국들의 대리전-으로 소말리아 민중의 삶은 완전히 망가졌고, 2006년 12월 미국의 지원을 받은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 과도정부가 소말리아를 침공하여 수도 모가디슈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하며 사실상 정부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던 이슬람법정연대를 무너뜨리면서 소말리아는 또다시 내전에 휘말리게 되었다. 반복되는 전쟁 속에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못한 소말리아의 민중들은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서 별다른 선택권을 갖지 못했다. 어부들이 외국 선박에게서 돈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퍼지자 돈을 벌기위한 목적으로 배를 타는 사람들이 생겨났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소말리아 해적에게 공격을 당했다고 알려진 외국선박들 중 불법 어획이나 폐기물 투기와 같은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선박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해당 국가의 정부가 몰랐을 리 없다. 하지만 각국의 정부들은 자국의 선박이 소말리아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지를 감춘 채 무조건 해적의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자국의 선박을 보호하기 위해 소말리아에 군대를 파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국가들의 호들갑에 어느새 소말리아의 어부들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골칫덩어리가 되어버렸다.
 
인도와 러시아가 소말리아 해역에 군대 파견을 결정하고, 곧이어 2008년 10월에 유엔 안보리에서 소말리아의 해적문제 해결을 위해 군대를 파견한다는 내용의 결의안 1838호를 통과시켰다. 각국의 정부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소말리아로 향하기 시작했다. 현재 소말리아 해역에서 군사작전을 수행중인 국가는 23개국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명분은 자국의 선박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보호가 필요한 쪽은 과연 누구일까?
 
"해적"이라고 소개된 소말리아 인 수구레 알리는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우리가 해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해적은 바로 소말리아 바다에서 불법적인 어획을 일삼고 폐기물을 투기하고, 무기를 운반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우리의 바다를 지키려는 것뿐이다. 우리는 해안경비대와 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말리아의 뉴스 사이트인 와드허뉴스에 따르면 소말리아인의 70%가 소말리아의 영해를 지키는 군대의 형태로서 해적들을 강하게 지지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거대한 군함들은 마치 자신들이 악당에 맞서 세계 평화를 지키는 수호자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지만, 소말리아 인들의 눈에 그들은 다름 아닌 약탈자이자 파렴치한 해적에 불과할 뿐이다.
 
또한, 소말리아에 외국 군함이 주둔하는 문제에 있어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는 과연 그들이 단지 자국의 선박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 많은 군대를 파견했냐는 것이다. 23개국에서 파견된 거대한 해군 함정이 적으로 지명한 이들은 고작 10명도 채 수용할 수 없는 나무배를 타고 재래식 무기를 든 사람들이다. 아무리 이들의 숫자가 많다고 할지라도 일단 규모면에서 너무나 큰 차이가 난다.
 
군함 근처에 다가간 "해적"의 사진을 보면 군함에 비해 크기가 너무 작아 해적선을 금방 찾아내기 어려울 정도이다. 군대를 파견한 국가들의 의도가 단순히 선박을 보호하기 위함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의 예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2009년 3월에 청해부대가 소말리아 해역으로 파견된 이후 국방부는 청해부대가 얼마나 용맹하게 업적을 세우고 있는가를 선전하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언론은 국방부의 선전을 그대로 받아쓰며 “해적 킬러”라는 수식어까지 사용하고 있다. 청해부대에 대한 그들의 수사는 선박 보호의 차원을 넘어서 세계 속의 한국군을 드러내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파병한 이후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해외 파병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또다시 미국의 요청에 따라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재파병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으며, 아예 해외 파병을 위한 상시부대를 창설하고 해외 파병 시 국회의 동의 절차를 최소화하겠다는 내용의 평화유지군 파견법을 제정하려고 노력 중이다. 2007년에 유엔평화유지군으로 레바논에 동명부대를 파견한 것이나 소말리아에 청해부대를 파견한 것은 이러한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해외 파병을 위한 발판을 쌓기 위함이다. 더욱이 처음으로 해군을 해외에 파병한 것은 첫 경험으로서 큰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레바논 그 어느 경우를 보더라도 평화유지나 재건 등과 같은 해외파병의 명분은 그저 포장에 불과할 뿐 파병의 실제 목적과 결과는 그 지역의 평화와 안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해적 소탕을 내세운 소말리아 파병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국 정부가 적극적인 해외 파병으로 얻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는 군사력을 통한 세계질서재편에 동참하는 것이다. 세계평화를 내세우며 작은 나라들을 침략하고 점령하여 그들의 삶과 터전을 파괴하는 데에 한 몫을 보태겠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소말리아는 아프리카 대륙과 아시아를 잇는 교두보로서, 그리고 천연자원 수송의 주요 통로로서 강대국들에게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다. 과연 소말리아가 가지고 있는 것이 한 무리의 해적들뿐이었다면 미국과 영국, 러시아, 한국 등 23개 국가들이 거대한 함정과 최신식 무기를 동원해 소말리아로 달려갔을까? 2006년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 과도정부가 수도 모가디슈로 향했을 때, 그들이 가진 정보와 무기가 미국의 지원으로부터 나왔음을 알고 있는 이들은 소말리아를 감히 '제 2의 이라크'라 불렀다.
 
지금 전쟁과 가난으로 고통 받고 있는 소말리아의 민중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해적의 소탕이 아닌 과거 침략자들의 반성과 사과, 그리고 다른 나라 민중들과의 진실한 연대일 것이다. 그리고 소말리아 민중은 그들의 땅에 손을 대는 자들에게 맞서 외치고 있다. "해적"으로 변신한 어부들이 그랬듯이 소말리아 민중은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지켜나갈 힘이 있다고 말이다.
 
::글 _ 수진
::참고자료 _
Why We Don't Condemn Our Pirates http://www.huffingtonpost.com/michael-vazquez/on-pirates_b_186015.html
You Are Being Lied to About Pirates http://www.commondreams.org/view/2009/04/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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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2 07:16 2009/06/02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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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 heimliche Aufmarsch 투쟁의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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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 Heimliche Aufmarsch」(비밀스런 행진)는 한스 아이슬러가 곡을 쓰고 에른스트 부쉬가 노래한 것인데,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이 나치에 의해 종국을 맞이하는 파시즘의 광기가 섬뜩한 시대의 지하음반 중에 수록된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투쟁의 물결>이라는 제목으로 번안되었다. 
 
에른스트 부쉬의 영화 <비밀결사>(1930)에 삽입된 곡이라고 하는데, 한스 아이슬러의 노래는 에른스트 부쉬가 불러야 제 맛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노래이다. 그 영상이 1997년도에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에 나온다고 하지만, 본 적이 없어서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는 미지수.
이건가? https://www.youtube.com/watch?v=8S0I0J_fXLo
   
ARBEIT의 곡은 현대적 감성으로 재해석해서 부르고 있는데, 여기 나오는 영상 또한 거기에 맞게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려고 하는 듯 싶다.
 

ARBEIT - Der heimliche Aufmarsch
by the group ARBEIT from the CD-Album "MARX"
The song is by Hanns Eisler, Erich Weinert, Ernst Busch
produced by Oliver Augst | Marcel Daemgen | Christoph Korn
Video by Sabine Loew
  
아래 동영상은 에른스트 부쉬의 원곡에 영어번안가사와 함께 미국의 부시행정부의 모습을 보여주어 히틀러의 파시즘과 부시의 신자유주의를 대비시키고 있다. --> 삭제된 동영상
 
Video: Der Heimliche Aufmarsch
Video: Approaching of The Fascist Invader (Der Heimliche Aufmarsch) (DDR, East Germany, Soviet Union). Video by Jari Tuominen, music by Ernst Busch. 
 
사회주의 세계공화국을 꿈꾸는 듯한  다음의 동영상은 조야하지만 코믹하게 이 노래가 얘기하는 바를 플래쉬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잘 보여준다. 물론 구태의연하게 소련을 사회주의 모국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 노래와 함께 독일어 가사를 화면 아래에, 영어 번안가사를 화면 위쪽에 보여주어 독일어 및 영어공부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ㅡ.ㅡ;; 이건 걍 유튜브의 링크만 건다.

http://www.youtube.com/watch?v=GPKH4GHiihg&feature=related


 
원곡의 가사와 해석은 다음과 같다.
 

Ernst Busch - Der heimliche Aufmarsch
작사 Erich Weinert /작곡 Hanns Eisler /노래 Ernst Busch 

   
Es geht durch die Welt ein Geflüster:
Arbeiter, hörst du es nicht?
Das sind die Stimmen der Kriegsminister:
Arbeiter, hörst du es nicht?
 
Es flüstern die Kohle- und Stahlproduzenten,
es flüstern die Stimmen der Imperialisten,
es flüstert von allen Kontinenten:
Mobilmachung gegen die Bolschewisten!
 
Arbeiter, Bauern, nehmt die Gewehre,
für das proletarische Vaterland.
Zerschlagt die faschistischen Räuberheere,
setzt alle Herzen in Brand!
Pflanzt eure roten Fahnen des Sieges
auf jede Schanze, auf jede Fabrik.
Dann blüht aus der Asche des letzten Krieges
die sozialistische Weltrepublik!
 
Es rollen die Züge Nacht für Nacht:
Maschinengewehre für Polen.
Für China: deutsche Gewehre Null-Acht,
für Finnland Armeepistolen!
 
Schrappnells für die Tschechoslowakei,
für Rumänien Gasgranaten!
Sie rollen von allen Seiten herbei,
gegen die roten Soldaten!
 
Refr.:
 
Arbeiter horch, sie zieh‘n ins Feld,
doch nicht für Nation und Rasse.
Das ist der Krieg der Herrscher der Welt,
gegen die Arbeiterklasse.
 
Und während sie schon zum Schlag ausholen
betrügen sie dich mit Friedensparolen.
Der Krieg der jetzt vor der Türe steht
ist der Krieg gegen dich, Prolet!
 
Refr.:
 

비밀스런 행진 
 
<전주; 멘트>
세계 곳곳에 속삭임들이 있다.
노동자, 당신은 그것을 듣고 있지 않는가?
그것은 전쟁장관들의 목소리이다.
노동자, 당신은 그것을 듣고 있지 않는가?
그것은 석탄과 철광생산을 속삭인다.
그것은 화학 전쟁 제작을 속삭인다.
그것은 모든 대륙에서 속삭인다.
소비에트연방에 대항하는 동원!
 
<노래>
노동자여, 농민이여 총을 들어라.
손에 총을 잡아라.
파쇼의 약탈자 본거지를 쳐부셔라.
당신들의 가슴을 타오르게 하라.
우리의 붉은 노동기를 모든 하역장과 공장에 꽂아라.
그리고 낡은 사회의 파편으로부터
사회주의 세계공화국을 세워라.
그리고 낡은 사회의 파편으로부터
사회주의 세계공화국을 세워라.
 
<간주; 멘트>
노동자여 귀를 기울여라.
그들이 국가와 인종을 바로 그것을 전장에 끌어들이는 것을.
그것은 노동자 계급에 반대하는 세계 지배자의 전쟁이다.
소비에트 연방에 대한 공격으로 인해
혁명의 심장이 고동친다
그리고 전쟁이 지금 곳곳에서 벌어진다.
그 전쟁은 너, 프롤레타리아에 반(反)하는 것이다.

 
위에서 보았듯이 가사가 상당히 적나라하다. ㅠㅠ  
우리나라에서는 서대노예련,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 의해 불리워졌다고 한다. 예전에는 노찾사도 이런 노래를 불렀다. 어제 콘서트 7080에 노찾사가 나와서 80년대의 노래들을 부르는데 조금 서글픈 생각이 들더라. 노찾사가 노래로서 얘기하고자 했던 것들이 이제는 과거의 것인가 해서 말이다.
 
한스 아이슬러의 노래는 에른스트 부쉬가 불러야 제맛임을 보여주는 노래로, 에른스트 부쉬 특유의 금속성 목소리가 두드러진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노래를 번안하여 부를 때 이러한 원곡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려고 노력하였다. 고려대 노래패 <노래얼> 결성 10주년 기념테입 <동트는 새벽의 노래>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이를 잘 보여준다. 노래 중간중간에 엄청나게 과격한 아지(선동멘트)가 들어가서 90년대초의 혁명적 분위기(?)를 물씬 풍겨주는데, 원곡에서도 이와 비슷한 멘트가 들어가 있다. 
 
번안곡으로는 노래얼의 노래 외에 충북대 노래패 "어둠을 밝히는 소리 <여명>"의 공연실황이 파일로 있으며, 서대노예련의 <단 한번의 승리를 위해> 테입에 이 곡이 실려 있다. 하지만 이보다는 노래얼의 버전을 추천하고 싶다. 
 
아무튼 이 노래는 현 정세와는 전혀 맞지 않는 노래이긴 하나, 그냥 끌리는 노래다.
  

여명 - 투쟁의 물결 (공연실황)
 

서대노예련 - 투쟁의 물결
 


노래얼 - 투쟁의 물결
 
길바닥 위에 사슬이 솟는다 분노의 불덩이가 솟아오른다
이제 우리는 일어선다 전국의 노동자가 일어선다
전진이다 위대한 노동자계급
총파업 공동투쟁 끝없이 일어선다
불길로 솟아오른다 투쟁을 조직한다
해방을 향한 노동자의 투쟁
 
투쟁의 함성 드높이 외쳐 이제는 전진이다.
저 억압과 착취를 부수고 나가 해방의 새세상에
노동자 해방의 불길이 되어 평등의 세상 해방세상에
천만 노동자가 하나가 되어 전진 투쟁 또 전진한다
천만 노동자가 하나가 되어 전진 투쟁 또 전진한다
 
전국 대도시마다 분노한 시민학생들이 일어선다
독점자본의 시설물에 화염병공격 불길이 솟아오른다
수만의 노동자가, 수천의 청년학생이 계획하고 투쟁한다
불길처럼 타오른다 착취의 사슬을 끊고 새질서를 창조한다
전진 전진이다 해방의 세상을 향해 전전 전진이다
 
해방의 함성 드높이 외쳐 끝없는 전진이다
참평등과 평화 참자유의 땅 해방의 새세상에
노동자 해방의 불길이 되어 평등의 세상 해방세상에
천만 노동자가 하나가 되어 전진 투쟁 또 전진한다
천만 노동자가 하나가 되어 전진 투쟁 또 전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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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1 22:10 2009/06/01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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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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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번안곡이 나왔으면 하는 노래. 이전에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조금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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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2004/11/22 03:12
 
그제 서울국제노동영화제에서 보았던 영화 <갈증 : 물은 누구의 것인가 ?> (2004, 미국, 62분, 알란 스니토우 / 바바라 카우프만)에 이어, 어제 보았던 영화 <볼리바리안 혁명 : 베네주엘라 민중의 삶과 투쟁> - 개막작 (2004, 베네주엘라, 76분, 마르셀로 안드라데)과 <점거하라, 저항하라, 생산하라!> - 폐막작 (2004, 캐나다, 87분, 아비 루이스 / 나오미 클라인)를 떠올리면서 가장 생각이 많이 났던 단어는 '민중'이었다.
 
이 민중(El Pueblo)이라는 단어는 어제 본 두 영화에서 가장 많이 나왔던 말이었는데, 그 구호와 함께 잊혀지지 않는다.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엘 뿌에블로 우니도 하마쎄라 벤시도 - 발음이 맞나?)
 
영어로 하면 "People, united, will never be defeated!"
(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4박자 구호에 해당하는 특유의 리듬으로 집회, 시위 때마다 울려퍼지는 이 구호가 왜 그렇게 입가에서 맴도는지...
그리고 동명의 노래와 함께...
 
함께 그 영화제에 갔었던 다해님, 가딘님 등에게 알려주고 싶었는데, 역시 스페인어가 짧은 관계로... ㅡ.ㅡ;;
뒤늦게나마 이를 공유하고 싶어 곡을 덧붙인다. 자세한 곡 설명은 아래 글 참조. 

Quilapayún -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Quilapayún en el Palau de la Música Catalana (Barcelona, 23 enero 2003) 
 

El Pueblo Unido - Estadio Cuscatlan
Vea la pasion de la militancia del FMLN en el Estadio Cuscatlan el dia 7 de Octubre del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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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2004/05/24 23:38)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영어로 하면 "People, united, will never be defeated! We will triumph."(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끝끝내 승리하리라.) 이 구호는 칠레에서 정치행진하는 동안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아직까지 이 노래의 제목이 El Pueblo UnidoJamas Sera Vencido(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인지 아니면 그냥 El Pueblo Unido인지 헷갈리지만, 그냥 대충 알아들으면 된다. 이에 관한 자료가 있길래 정리하고 본다. 이 노래도 빨리 번안곡이 나왔으면 좋겠다.
 
원래 이 노래는 민지네의 꿀땅콩님이 소개를 해서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접하게 된 지가 1년이 채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지네에서 방송을 하게 되면서 가끔씩 이 노래를 틀 때마다 전달되는 심장의 두근거림은 특이한 경험이었다. 이런 느낌을 주는 곡은 몇 곡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Venceremos(벤세레모스)가 그러했고, 삶을 위한 캐논(전국학생회협의회 희망에서 만든 곡)이 그러했으며, International가와 Warschawjanka(김정환 시인에 의해 '최후의 결전'이라는 제목으로 번안되었다)가 그러했다. 그리고 천지인의 청계천 8가, Do You Hear The People Sing?('민중의 노래'로 번안된 레미제라블의 테마곡), Hanns Eisler의 노래들이 그러했다. 그래서 이 경험을 제대로 파헤치기 위해 조사에 나섰다. 
 
조사 결과 El Pueblo Unido Jamas Sera Vencido는 여러 가지 버전을 가지고 있었다. 잔잔한 피아노곡에서부터 격한 감정을 토로하는 합창곡에 이르기까지...
 
이 노래는 칠레의 피노체트 쿠테타가 일어나기 석달 전 1973년인 6월 Sergio Ortega(세르히오 오르테가)에 의해 작곡된 이후 전세계로 퍼져나가 칠레민중의 힘을 보여주는 예로 언급되곤 한다. 이 노래를 부른 대표적인 가수로는 칠레의 민중가수그룹인 Quilapayun(낄라빠윤)을 들 수 있다. 그들은 1965년 세 명의 젊은 학생 훌리오 까라스꼬, 에두아르도 까라스꼬, 훌리오 눔와세르, 빠뜨리시오 가스띠요 등이 새로운 노래(nueva cancion)를 표방하면서 결성하여, 칠레의 민속축제 비냐 델 마르에 참가하여 우승하면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그룹이다. '세 마리의 새' 혹은 '검은 수염을 기른 세 남자'라는 뜻의 그룹명을 상징하듯 검은 수염과 검은 판초를 걸친 스타일이 당시 유행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여러 아류 그룹들을 탄생시키기도 했다(최창근의 글). 2000년 체코 프라하에서 열렸던 국제통화기금 총회를 저지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든 NGO들이 프라하의 봄을 상징하는 바츨라프 광장에서 세계화 반대시위를 벌이며 합창하던 이탈리아 파르티잔의 노래로 유명한 '벨라 차오(Bella ciao)'를 많이 부른 그룹이 깔라빠윤이다. 나중에 이 노래에 대해서도 소개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이 노래는 소개했다. (bolshevik님이 말한 것처럼 1940년대에 나온 노래인 것이 맞고, 내가 가지고 있는 버전만 10가지가 넘는다)
 
낄라빠윤의 앨범으로는 'Santa Maria de Iquique'(70), 'El Pueblo Unido Jamas Sera Vencido'(75), 'En Avant! Adelante!'(75) 등이 있는데, 상대적으로 1970년대까지 포클레로에 기초한 민족 특유의 음악적 색채를 보여주다가 1980년대 이후 지나친 형식 실험으로 관념적 세계에 빠져들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Quilapayun의 2002년 스페인 팜플로나 공연실황
출처: http://alexterski.narod.ru/arhiv.htm
 
이 노래는 가사도 여러 가지 버전이 있다. 똑같은 언어로 되어 있어도 가사가 약간씩 차이가 있어서 번안하려고 해도 골치가 아플 것 같다.
Quilapayún(낄라빠윤)의 2002년 앨범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PICAP)에 실린 가사는 다음과 같다.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Quilapayún - Sergio Ortega)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De pie, cantar
que vamos a triunfar.
Avanzan ya
banderas de unidad.
Y tú vendrás
marchando junto a mí
y así verás
tu canto y tu bandera florecer.
La luz
de un rojo amanecer
anuncia ya
la vida que vendrá.
 
De pie, luchar
el pueblo va a triunfar.
Será mejor
la vida que vendrá
a conquistar
nuestra felicidad
y en un clamor
mil voces de combate se alzarán,
dirán
canción de libertad,
con decisión
la patria vencerá.
 
Y ahora el pueblo
que se alza en la lucha
con voz de gigante
gritando: ¡adelante!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La patria está
forjando la unidad.
De norte a sur
se movilizará
desde el salar
ardiente y mineral
al bosque austral
unidos en la lucha y el trabajo
irán,
la patria cubrirán.
Su paso ya
anuncia el porvenir.
 
De pie, cantar
el pueblo va a triunfar.
Millones ya,
imponen la verdad,
de acero son
ardiente batallón,
sus manos van
llevando la justicia y la razón.
Mujer,
con fuego y con valor,
ya estás aquí
junto al trabajador.
 
Y ahora el pueblo
que se alza en la lucha
con voz de gigante
gritando: ¡adelante!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1.
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으리.
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으리.
 
당당히 일어서서 노래하라, 우리는 승리하리라.
연대의 깃발은 이미 전진한다.
그대 또한 나와 함께 행진하리라.
그리고 그대는 곧 그대의 노래와 깃발이 펄럭이는 것을 보리라.
새벽의 붉은 기운이 이미 새 세상을 예고하고 있다.
 
굳세게 일어서서 싸우라, 민중은 승리하리라.
우리의 행복을 쟁취함으로써 얻은 세상은 더 나으리라.
투쟁에서 드높여지는 수많은 목소리로 우리는 해방을 노래하리라.
우리의 결의로 조국은 승리하리라.
 
(후렴)
지금은 민중들이 투쟁 속에서 일어설 때
거대한 함성으로 외치리라. "전진!"
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으리.
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으리.
 
2.
조국은 북에서 남까지 단결을 이루어간다.
투쟁과 노동 속에서 결집하여
불타는 소금광산에서 남쪽의 숲까지 열어젖히리라.
조국을 지키기 위해
그 발걸음은 이미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일어서서 노래하라, 우리는 승리하리라.
수백만의 민중들은 이미 진실을 완성하고 있다.
그들은 강철로부터 나온 불타는 대대이다.
그들의 손은 정의와 이치를 나른다.
열정과 용기가 가득한 여인
당신은 이미 여기 노동자의 곁에 서있다.
 
ritter13님이 번안해주신 가사내용은 이러하다.
 
단결한 민중은 패배를 모르리니 !
일어나 노래 하라 ! 새 노래가 시작된다.
우리의 미래를 가져다 주는 새로운 투쟁,
우리의 단결로만 적을 물리치 수 있으니
벗이여, 우리와 투쟁하자, 내일은 우리가 승리하리니
우리 노래엔 새 아침이 빛나네
우리의 깃발이 모진 바람속에 빛나듯
 
칠레여 투쟁하라 ! 그대의 투쟁은 고통과 함께 성장하고
광산에서 하늘을 찌르듯 불타오르니
 
북에서 남으로 인민전선의의 깃발이 달린다.
단결이 타오른다 : 우리는 칠레의 광석으로 단결을 단련한다.
갈 길은 분명하다 : 민중의 단결 !
민중은 손과 머리, 가슴으로 투쟁한다.
이제 민중은 투쟁속에 고양되어 노래하네
더 힘찬 목소리로 노래하네
단결한 민중은 패배를 모르리니
칠레는 다정하게 동트는 새 날, 새 빛의 노래를 부르니
여전히 피로 물든, 그러나 밝고 선명한 노래를
동지여 용기를 ! 민중은 한 목소리로 말하네
우리의 발걸음에 수백만 민중이 함깨 하네
단결한 민중은 파시스트에게 굴복하지 않아
칠레는 투쟁 속에 춤추네
하나되어 춤추고 하나되어 진군하네
파시스트 도당들이여 ! 그날이 온다
승리의 그날. 결산 장부가 날아갈 거야
전진, 앞으로 !우리는 잃을 게 없어
 
민중이 잃을 건 쇠사슬 뿐
이제 민중은 투쟁속에 고양되어 노래하네
더 힘찬 목소리로 노래하네
단결한 민중은 패배를 모르리니
 
그리고 낄라빠윤과 비슷한 경향을 가지는 칠레 민중가수그룹인 Inti Illimani(인띠 이이마니)는 1967년 5월 호르헤 꼬울론, 오라시오 듀란, 뻬드로 야네스, 막스 베루 등 네 명의 산티아고 국립공과대학 학생들이 모여 결성된 그룹으로, 빅토르 하라와도 함께 활동하며 누에바 깐시온의 흐름을 이끌었던 명실상부한 남미 최고의 포클레로 그룹이라고 한다(최창근의 글). 1973년 9월에 피노체트 등의 군사 쿠테타가 발발하자 이탈리아로 망명하여 유럽에서 수많은 공연을 하면서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데, 그 대표곡이 칠레인민연합의 선거 로고송으로 사용되었던 칠레인민연합찬가, 즉 'Venceremos(벤세레모스)'이다. 이들은 망명 기간에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노래 작업을 하는 동시에, 말러나 스트라빈스키와 같은 고급음악과의 대화에서 유럽의 전위음악이나 록음악, 그리고 아프리카 음악 등과의 결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실험을 시도했지만, 언제나 출발점과 종착역은 칠레였고, 중남미였다. 그 결과 1980년대 중반 '민중적 실내악' 양식을 만들어 내었는데, 이는 전통적 실내악의 내용과 형식을 대중에게 보다 근접하는 방향으로 민주화하는 실험으로 자리매김할 만하다(이성형의 글).
 
1973년 군부 쿠데타 이후, 유럽으로 망명한 인띠 이이마니와 깔리빠윤은 1974년 독일 에센에서 열린 '칠레를 위한 콘서트(Konzert Fur Chile)'에서 함께 이 노래를 부른다. 수많은 군중과 함께 부르는 이 노래도 감동적이다. 이 노래는 'Konzert Fur Chile'라는 1998년에 발매된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Inti-Illimani & Quilipayun -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Konzert Fur Chile'(1998)
출처: 푸리님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dione25.do
 
민지네의 꿀땅콩님이 맨처음 소개했던 것도 Inti Illimani와 Claudio Baglioni가 함께 부른 라이브곡, El pueblo unido - Felicità ta ta이었다. El Pueblo Unido에는 여러 버전이 있지만 가장 인상깊은 곡 중의 하나가 Claudio Baglioni의 Anime in gioco 음반에 실린 이 곡임에 틀림없다. 다른 곡들은 그런 느낌이 없지만, 이 곡을 들으면 느껴지는 심장의 두근거림이 온몸을 전율케 한다. 동명의 수많은 이 곡 버전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Claudio Baglioni & Inti Illimani - El pueblo unido ~ 
 
아래 곡은 1998년 9월 독일 도르트문트에서 열렸던 빅토르 하라 서거 25주기 추모 콘서트 실황앨범 중 Inti Illimani(인티 이이마니)가 부른 것이다. Quilapayun(낄라빠윤)은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최창근은 이 노래를 앙헬 파라 작곡, 깔라빠윤의 노래라고 하면서 제목도 'El Pueblo Unido'(하나된 민중)이라고 하는데, 세르히오 오르테가 작곡이 맞다. 
 
 
Inti Illimani - El Pueblo Unido
 
그리고 El Pueblo Unido Jamas Sera Vencido라는 노래가 앞에서 언급한 가사와는 약간 다른 가사로 전달되기도 한다. http://ingeb.org/songs/elpueblo.html에서 나온 가사는 아래와 같으며, 작곡자는 Sergio Ortega로 같지만, 제목도 조금 다르다. 이 사이트에 MIDI파일이 있다.
 

출처: http://ingeb.org/songs/elpueblo.htmlhttp://ingeb.org/songs/elpueblo.html
 
Marcha de la Unidad Popular
 
Gritado: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Cantando;
De pie cantar, que vamos a triunfar,
avanzan ya banderas de unidad
y tú vendrás marchando junto a mi
y así verás tu canto y tu bandera
al florecer. La luz de un rojo amanecer
anuncia ya la vida que vendrá,
 
De pie marchar, que el pueblo va a triunfar;
será mejor la vida que vendrá,
A conquistar nuestra felicidad
y en su clamor mil voces de combate se alzaran;
dirán canción de libertad.
Con decisión la patria vencerá.
 
Y ahora el pueblo que se alza en la lucha
con voz de gigante gritando; adelante!
 
Gritado: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Cantado;
La patria está forjando la unidad;
de norte a sur, se movilizará,
desde el salar ardiente y mineral,
al bosque austral, unidos en la lucha
y el trabajo, irán, la patria cubrirán.
Su paso ya anuncia el porvenir.
 
De pie cantar, que el pueblo va a triunfar.
Millones ya imponen la verdad;
de acero son, ardiente batallón,
sus manos van llevando la justicia y la razón.
Mujer, con fuego y con valor
ya estás aquí junto al trabajador.
 
Y ahora el pueblo que se alza en la lucha
con voz de gigante gritando; adelante!
 
Gritado: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그리고 이 사이트에는 독일어 가사가 있다. 물론 이 독일어 가사에 따른 파일은 없지만, 다른 곳에 Hannes Wader가 독일어로 부른 노래가 있어서 링크한다. 문제는 이것도 끝까지 나오는 것은 아니고 1절만 부르다 만다는 사실이다. 원 가사를 충실하게 독일어로 옮겼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더니 bolshevik님이 번역이 아니라 번안에 가깝다고 하시며, 독일에서는 이 번안된 가사로 널리 불리었다고 지적한다. 그런 것 같다.

Hannes Wader - Marche de la Unidad Popular
 
 
Marcha de la Unidad Popular
 
Gerufen: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Gesungen:
1. Steht auf und singt! Ein neues Lied beginnt.
Ein neuer Kampf die Zukunft uns gewinnt.
Doch nur vereint besiegen wir den Feind.
Kämpft mit uns, Freund, daß morgen wir die Sieger sind!
In unserem Lied der neue Morgen glüht,
wie unsre Fahne glüht im wilden Wind.
 
Und Chile kämpft! Sein Kampf wächst mit dem Schmerz
und lodert aus den Minen himmelwärts
Von Nord nach Süd das Volksfrontbanner zieht.
Die Einheit glüht: Wir schmieden sie aus Chiles Erz.
Der Weg ist klar: Unidad Popular!
Das Volk es kämpf mit Hand und Hirn und Herz.
Und jetzt wird das Volk sich erheben
im Kampfe und singen,
und singen mit mächtiger Stimme:
 
Gerufen: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Gesungen:
2. Und Chile singt das Lied vom neuen Licht,
vom neuen Tag, der freundlicher anbricht,
noch rot vom Blut, doch hell und klar und gut!
Genossen, Mut! Das Volk mit einer Stimmer spricht.
In unsrem Schritt Millionen ziehen mit.
Das Volk vereint weicht den Faschisten nicht.
 
Und Chile tanzt, wenn es den Kampf geführt.
Es tanzt vereint, wie es vereint marschiert.
Faschistenpack! Es kommt, es kommt der Tag,
der Siegestag. Dann wird die Rechnung präsentiert.
Voran! Nach vorn! Für uns geht nichts verlorn.
Nur Ketten sind es, die das Volk verliert.
Und jetzt wird das Volk sich erheben
im Kampfe und singen,
und singen mit mächtiger Stimme:
 
Gerufen: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이 노래에는 연주곡 버전이 있다. 우선 미국의 현대음악작곡가인 Frederic Rzewski(프레데릭 제프스키)가 'El Pueblo Unido jamas sera vencido'를 피아노 변주곡으로 편곡한 것을 피아니스트 Stephen Drury(스테판 드루리)가 연주한 곡이 있는데, 볼키님에 따르면 현대 음악 작품 중에서 상당한 평가를 받고 있는 대곡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Marc-Andre Hamelin가 피아노 연주한 것으로, Thema-제1변주-제2변주- ....-제36변주-카덴차-Thema의 구성으로 되어있고, 50분이상의 연주시간이 소요된다. 이중 마지막 Thema가 아래 나오는 곡이다.


Rzewski의 <36 Variations on El pueblo unido jamas sera vencido>
 
한편 재즈팬들에게도 이 노래가 알려져 있는데, 이는 이탈리아의 피아노 연주자인 Giovanni Mirabassi(지오바니 밀라바시)의 공헌이 크다. Giovanni Mirabassi는 2001년 발매된 앨범 AVANTI!(전진)에서 자켓의 검정색과 붉은색의 강한 대비에서도 드러나듯이 세계 각지의 혁명가, 투쟁가들을 연주곡으로 만들었다. 특히 첫곡 ”El Pueblo Unido Jamas Sera Vencido”는 ’Inti Illimani’의 곡을 듣고 감동을 받아 본 앨범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된 곡이며, 파리 꼬뮨의 상징이 된 곡 ’Le Temps Des Cerises‘, 영원한 혁명아 체 게바라를 기리는 ’Hasta Siempre', 아파르트헤이트에 저항했던 남아공의 백인 가수 자니 클렉의 곡 ‘A Si M'Bonanga’,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파르티잔의 노래로 유명한 ‘Bella Ciao', 존 레논의 평화의 송가 ’Imagine'과 자작곡 ‘My Revolution'을 포함해 모두 16곡이 수록되어 있다(http://blog.naver.com/kent1092.do).

 
이루마가 우리에게 오월의 노래로 번안되어 알려졌던 Michel Polnareff(미첼 뽈나레프)의 Qui a tue grandmaman(누가 할머니를 죽었는가?)라는 노래를 When the love falls라는 피아노곡으로 만들 때 그 반항성을 완전히 거세한 결과 겨울연가에서 잔잔한 배경음악으로 사용될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미라바시는 이 앨범의 각 곡들에서 정치적인 면을 나름대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는 수십페이지에 걸쳐서 각 곡과 관련된 혁명, 투쟁 관련 이야기와 사진들을 제시하고 있는 해설노트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자신들의 음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맑스와 체 게바라의 저서를 읽어야 한다고 소개하고 있는 RATM의 음반을 떠올리게 한다.
 
미라바시의 맑은 피아노 멜로디는 재즈팬들을 비롯한 다수의 음악애호가들이 진보에 대해 좀더 고민하도록 하고, 모순에 찬 현실을 직시하도록 하는 효과를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앨범 타이틀의 Avanti!(전진)이라는 의미를 전쟁과 투쟁보다는 화합과 포용으로 함께 어울려 가는 세계를 갈망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조차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래 이 노래가 얘기하고자 했던 열정과 변혁에 대한 의지가 사라졌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Giovanni Mirabassi의 El Pueblo Unido Jamas Sera Vencido(AVANTI!, 2001)
(이 곡은 mp3로 소장하고 있는데, 용량이 커서, 그리고 저작권 문제도 있어서 올리지 않는다)
 
이 외에도 볼키님의 글에 따르면 1970년대에 활동한 영국의 작곡가 코넬리우스 카듀의 주도로 활동한 인민해방음악(PLM)의 노래가 있다. 여기에 조잡하게 번역된 영어가사를 하나 덧붙인다.
 
EL PUEBLO UNIDO JAMAS SERA VENCIDO
 
A hope has crushed A future fell in ruins
You think you had victory But beaten men
Will rise again We know
That night turns into day Defeat turns into victory
A united people Can't be trampled down
The masters must retreat
Because nothing can Withstand our unity
So answer, you masters
Who ploughs your land Who brings up the copper
From the mountains
EL PUEBLO UNIDO JAMAS SERA VENCIDO
 
마지막으로 소개할 곡은 Revolutionary Association of the Women of Afghanistan(RAWA), 즉 아프카니스탄 여성혁명동맹의 번안곡이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발견했는데, 나름대로 감동적이다. 아프카니스탄 언어는 모르니까 내버려두고, 거기에서 곡의 의미라고 영역한 글을 퍼나놓았다. Freedom, Democracy이라는 제목으로 번안되었는데, 귀찮아서 번역하진 않았다. --> 이에 대해서는 '얼굴 드러내고 시위벌인 아프간 여성들'에서 함께 올린 바 있으므로 생략한다.  
 

RAWA - Freedom, Democr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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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1 21:23 2009/06/01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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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차별임금 전액 지급” 첫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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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2일 서울행정법원은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도 동일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이번 판결은 지난 2007년 7월 1일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된 이후 비정규직 임금 차별을 '계속되는 차별적 처우'로 처음 인정한 판결이다. 
 
이렇게 중요한 판결임에도 불구하고 매경에 의해 맨처음 보도되었고, 이른바 진보언론에서는 다른 언론에서 다 보도한 이후에야 이에 대한 기사를 썼다. 이번 판결이 나오도록 하는데 노력해온 철도노조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서 그나마 다행이긴 하다만... 
 
어찌 보면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임금을 적게 지급받는 등의 차별적인 대우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사실은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중노위는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노동부와 중앙노동위원회가 어느 쪽에 서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셈이다. 
 
처음 보도한 매경은 대법원으로 갈 것으로 결론 내리면서 판결이 최종 확정되고 비정규직 근로자가 임금 차별을 받은 것으로 결정나면 사용자는 법 시행일 이후부터 현재까지 2년치 미지급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고 하면서 은연중 이번 행정법원의 판결이 확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뉴앙스를 비추고 있다. 아니 비정규직을 차별하지 않고 제대로 대우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아무래도 대법원에 가면 사용자의 처지를 참작(?)하여 행정법원의 판결과 어긋나는 판결이 나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 문제많은 신영철 대법관이 여전히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는 점, 최근 일련의 대법원 판결이 이를 예견케 하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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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차별 임금 차액 모두 지급하라" (매경, 최용성 기자, 2009.05.26 17:32:22)
행정법원 판결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임금을 차별 지급한 사용자에 대해 법원이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일인 2007년 7월 1일부터 차별한 전 기간에 적게 지급한 임금을 모두 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는 비정규직 임금 차별을 `계속되는 차별적 처우`로 법원에서 최초로 인정한 판결이어서 주목된다.
  
26일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2일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비정규직 영양사인 임 모씨 등 7명이 회사를 상대로 유사 업무를 하는 정규직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았다며 제기한 차별 신청을 기각한 중노위 재심판정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앞서 중노위는 임금에 대한 차별 처우는 급여일에 비로소 나타나고 차별시점에서 3개월 이내에 차별 시정 신청을 할 수 있으므로 시정기간은 3개월이라고 결정했다.
 
이에 대해 행정법원은 "임금은 근로관계가 유지되는 이상 매일 계속 발생하며, 급여일은 이를 정기적으로 정산하는 날에 불과하다"며 "임씨 등이 기본급, 상여금, 성과급, 수당 등에서 받은 임금 차별은 기간제법 제9조 `계속되는 차별적 처우`에 해당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김진 법률사무소 이안 변호사는 "2007년 7월 1일 기간제법 적용 이후 비정규직 근로자 임금 차별에 대한 최초 판결"이라며 "차별 시정 기간을 차별받은 전 기간으로 인정받은 데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은 특히 오는 7월 차별 시정제 적용 대상이 현재 100인 이상 사업장에서 5인 이상 사업장으로 대폭 늘어날 예정이어서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판결이 최종 확정되고 비정규직 근로자가 임금 차별을 받은 것으로 결정나면 사용자는 법 시행일 이후부터 현재까지 2년치 미지급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한편 중노위는 행정법원 판결에 불복해 노동부와 협의를 거쳐 대법원에 상고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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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2년간 차별임금` 지급 판결 (매경, 최용성 기자, 2009.05.26 17:29:58)
노동계 대거 소송 나설듯…노동부 대법원 상고 검토
 
지난 22일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은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가장 전형적인 차별 처우라고 할 수 있는 정규직과의 임금 격차 문제를 최초로 지적했다는 데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논란이 된 것은 `임금`을 계속되는 차별 처우로 보느냐 아니면 일회성 차별로 보느냐였다. `계속 차별`로 인정되면 사용자가 물어줘야 할 임금을 기간제법 시행일인 2007년 7월 1일부터 적용할 수 있다. 반면 일회성으로 보면 시정기간을 3개월로 규정해 놓은 차별시정제로 인해 단 3개월분에 그치기 때문에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법원은 일단 `계속 차별`로 결론을 냈다. 코레일이 정규직 영양사에게는 보수 규정을 적용하고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기간제 근로자 운영 지침에 따라 임금을 지급한 것은 계속되는 차별 처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코레일 측은 이에 대해 "정규직 근로자는 영양사 업무 외에 다양한 일을 추가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차별 시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정규직과 임금 격차 문제를 다소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번 판결을 반기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5인 이상 사업장은 국내 전체 기업체 중 60~70%에 달한다"면서 "대부분 영세사업장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구분히 모호하기 때문에 차별 처우를 인정받은 비정규직 근로자가 대거 소송에 나설 수 있다"고 염려했다. 대법원 최종 결정이 나야겠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상당수 사용자가 2007년 7월부터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해 차별적으로 지급한 임금을 반납해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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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차별임금 전액 지급” 첫 판결 (경향, 구교형기자, 2009-05-28 00:52:15)
ㆍ서울행정법원, 2007년 보호법 시행후 처음
ㆍ7월 대상기업 확대… 유사소송 잇따를 듯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동일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2007년 7월1일 같은 사업장에서 동종 혹은 유사 업무를 수행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과 근로조건의 차별을 금지한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된 이후 처음 나온 판결이다.
 
오는 7월부터는 차별시정제 적용 대상 기업이 현행 100인 이상 사업장에서 5인 이상 사업장으로 대폭 확대될 예정이어서 유사한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는 법원 판결에 따라 전국 지방관서에 차별전담관을 배치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이경구 부장판사)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서 비정규직 영양사로 근무하는 정모씨(47) 등 7명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차별시정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7일 밝혔다. 재판부는 “철도공사가 입사 당시부터 정씨 등에 대해 합리적인 이유 없이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이유로 정규직 영양사에게 적용되는 ‘보수규정’보다 불리한 ‘기간제 근로자 운영지침’을 적용해 왔다”며 “이들이 줄곧 정규직 영양사에 비해 기본급·상여금·휴가비 등 임금을 적게 지급받은 것은 비정규직보호법이 정한 ‘계속되는 차별적 처우’에 해당돼 임금 차액을 모두 지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씨 등은 2001년 6월 철도공사에 입사해 7개 지역차량사업소에서 기간제 영양사로 근무해 왔다. 이들은 정규직 영양사와 같은 일을 했지만 훨씬 적은 임금을 받았다. 그러던 중 2007년 7월1일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돼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 임금 등에 대한 차별적 처우가 금지됐다.
 
하지만 공사는 이들에게 계속 정규직과 다른 별도의 운영지침을 적용하며 임금인상을 하지 않았고 정씨 등은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 시정 신청을 냈다. 그러나 중노위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적 처우는 인정하면서도 법률상 규정된 시정신청 기간 3개월분에 대한 임금 차액만 일부 지급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노동부 관계자는 “비정규직보호법상 차별이 있음을 안 지 3개월 내에 신청을 해야만 차별을 시정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어 이들이 신청한 때로부터 3개월 이전분에 대해서만 임금차액을 지급하는 것으로 해석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정씨 등은 임금 차액을 모두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고 법원은 법률이 시행된 2007년 7월 이후 모든 임금 차액을 지급하는 것이 맞다는 판결을 내렸다. 노동계는 “이번 판결로 그동안 비정규직 임금 차별에 대해 제한적인 시정을 해온 노동부의 유권해석이 틀렸다는 것이 증명됐다”며 “정규직과의 임금 격차 문제를 해소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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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임금차액 전액 지급 판결 (참세상, 안보영 기자, 2009년05월29일 2시03분)
철도노조 "노동부 유권해석 뒤집는 판결 환영"
 
행정법원은 지난 22일 철도노조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차별시정 재심판정 취소 청구소송에서 중노위 판결을 뒤집고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행정법원은 “임금의 경우 임금지급기일에 차별행위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발생하는 ‘계속적인 차별행위’이므로 그 기간 동안 차등 지급된 전액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철도공사(코레일)는 비정규직 영양사들에게 기간제법 시행일인 2007.7.1부터 비교대상인 정규직 영양사 존재시까지 차별 지급한 임금 차액을 모두 지급해야 한다. 철도노조는 이번 판결에 대해 “노동부의 기존 잘못된 유권해석을 뒤집는 것으로 환영”한다고 말했다.
 
코레일(철도공사)은 비정규직 영양사 문제가 발생하자 철도공사에 입사해 10년 이상 영양사 일만 해왔던 정규직 영양사들을 인사노무팀 등으로 전환배치했다. 동일 업무를 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있을 경우 양자의 임금 및 근로조건의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비정규직법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아예 비교대상이 되는 정규직을 없애 버린 것이다. 철도노조는 이를 두고 비정규직법 취지를 무시하는 편법이라고 비판해왔다.
 
철도노조는 “KTX 승무원 직접고용사건, 2006년과 2007년 성과상여금의 비정규직 미지급사건 등 철도공사는 한국사회 대표적 비정규직 문제를 갖고 있는 사업장”이라고 지적하며 “ 철도공사가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법원 판결이 나와야 요구를 수용하는 전 근대적 행위를 반복”한다며 비판했다.
 
철도노조는 “국민의 세금을 대형 로펌 변호사의 배를 불리게 하는 무의미한 소송을 중단하고 이번 행정법원 판결을 존중해 비정규직 영양사들에게 나머지 임금 지급해야”라고 밝혔다. 아울러 “철도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비정규직, 무늬만 정규직인 7급직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하는데 힘쓰라”고 코레일(철도공사)에 당부했다. 특히 오는 7월부터 비정규직 차별 시정 적용대상이 100인 이상 사업장에서 5인 이상 사업장으로 대폭 확대됨에 따라 앞으로 비슷한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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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중노위 몰상식 바로잡아줘 (레디앙, 2009년 06월 01일 (월) 08:14:37 양현 / 전국철도노동조합 법규부장)
[기고] 비정규직 임금차별 시정 판결 의미 "임금은 '계속되는' 차별"
 
지난 5월 22일 서울행정법원은 한국철도공사 비정규직 영양사들이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차별시정 재심판정 취소 사건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는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이 위법하다고 판결한 것이다.
 
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2008년 당시 철도공사는 90여개소의 식당 중에 25개소는 직영으로 운영하고 나머지 식당은 외주위탁의 방식으로 운영하였다. 25개소 직영식당 중 4개소에는 정규직 영양사들이, 나머지 식당에는 비정규직 영양사들이 근무를 하고 있었다. 정규직 영양사들은 철도공사 보수규정에 따라 호봉제로, 비정규직 영양사들은 철도공사 기간제 운영지침에 따라 직무급으로 임금을 받았다. 따라서 비정규직 영양사들은 근속기간에 상관없이 모두 동일한 임금을 받았고 정규직 영양사들은 근속에 따라 모두 달리 임금을 받는 구조인 것이다.
 
2007년 7월 1일 소위 비정규직법(기간제및단시간보호등에관한법률)이 시행되었는데, 이상하게도 2007년 6월 철도공사 입사 후 영양사 업무만을 수행하였던 정규직 영양사들이 기존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인사노무 업무 등을 수행하겠다고 일제히 전직 신청을 했다는 것이다. 입사 후 영양사 업무만을 수행하였던 영양사들이 왜 갑자기 사무직으로 전직신청을 하였을까? 왜 철도공사는 업무수행능력이 전혀 검증되지 않은 정규직 영양사들의 전직신청을 모두 수용하였는가? 의문스럽다.
 
다만 우리는 비정규직법의 시행으로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비정규직에게 임금 등 근로조건 등에 있어 차별할 수 없기 때문에 아예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정규직을 없애버리기 위한 조치였다고 ‘추측’할 뿐이다. (만일 우리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이러한 철도공사의 행위는 비정규직 처우개선에 있어 모범적인 사용자의 역할을 강조한 정부의 지침을 무색케 하는 치졸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결국 비정규직 영양사들은 고심 끝에(차별처우 신청으로 재계약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차별적 처우시정 신청을 하기로 하였다. 다행히도 사무직으로 ‘전직’을 신청한 정규직 영양사가 2008월 4월 13일까지 인사노무팀에서 모사업소 식당으로 ‘파견’되어 영양사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비정규직 영양사들은 철도노조와 협의하여 충남지방노동위원회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임금에 대한 차별을 시정하여 달라는 취지로 차별적 처우 시정신청을 접수하였고 충남지노위는 임금을 ‘계속된 차별’로 인정하였으나 서울지노위는 3개월분만 차별로 인정하는 판정을 하였다. 이 판정에 비정규직 영양사들과 철도공사 모두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하였고 중앙노동위원회는 철도공사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행정법원에서 이 판정을 뒤집어 버린 것이다.
 
임금이 계속된 차별인지 여부는 비정규직법 시행 이전부터 논란이 되어왔다. 노동부는 2007년 7월에 발간한 비정규직법령 업무매뉴얼에서 이미 임금은 계속되는 차별적 처우로 볼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고, 이에 대해 법학자들이 이러한 노동부의 유권해석에 대하여 여러 가지 반대의견을 제시하였고 이 논쟁에 대한 법원의 입장이 최초로 확인된 것이다.
 
노동부와 중앙노동위원회가 임금이 계속된 차별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임금은 근로제공의 대가로서 매일 발생하나 사용자가 취업규칙이나 근로계약 등에서 정한 임금지급기일에 임금을 지급함으로써 임금지급의 개별적, 구체적 행위가 이루어지고 이러한 구체적인 행위가 있어야 비로소 차별적 처우가 있었는지 알 수 있으므로 임금지급에 있어 차별적 처우가 있고 그 차별적 처우가 반복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기간제법 제9조에서 규정하는 계속적인 차별적 처우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정하였다.
 
그러나 행정법원은 ‘임금은 근로관계가 유지되는 이상 매일 계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이고 임금지급일에 이르러 비로소 발생하는 것이 아닌 점, 원고들이 각종 임금을 적게 지급받아 온 것은 공사가 원고들의 각 입사 당시부터 계속하여 합리적인 이유 없이 기간제근로자라는 이유만으로 정규직 영양사들에게 적용되는 보수규정보다 불리한 기간제근로자 운영지침을 적용하여 왔기 때문인 점’ 등을 고려하면 임금은 ‘계속된 차별’이라고 판결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노동부나 중앙노동위원회의 주장처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임금 차별받는다는 것을 사용자의 임금지급이라는 구체적인 행위가 있어야 알 수 있다고 본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임금은 매일 근로제공의 반대급부로서 발생한 것이지, 단순히 임금지급 기일에 차별이 발생한다고 보는 것도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만일 매일 일당으로 임금을 지급하면 이럴 경우에는 임금을 계속된 차별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인가? 또한 기간제법에서는 ‘차별적 처우’라고 명시되어 있을 뿐 ‘차별적 처우 행위’라고 명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행정법원의 판결은 지극히 정상적(상식적)인 것이고 잘못된 노동부와 중앙노동위원회의 입장을 바로잡아주는 유의미한 판결이다.
 
더욱이 비정규직법상 차별시정제도는 비정규직의 합리적 이유없는 차별을 신속히 구제하여 정당한 근로조건을 회복시켜주는데 그 주된 목적이 있고 임금은 노동자의 근로조건 중 가장 중요한 근로조건이라는 점, 임금에 대한 차별은 그 간의 불이익 전체를 시정하여야 실효성 있는 구제가 되는 점 등을 고려하였을 때 차별시정제도의 도입취지에도 부합하는 합당한 판결이라 할 것이다.
 
차별시정제도는 여전히 그 실효성에 있어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고 실제 차별시정제도를 통해 현장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해소되는데 기여하였다는 노동부의 발표는 현재까지 없었다. 그나마 이러한 판결로서 조금씩 차별시정제도가 보완되는데 그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아보며 앞으로도 차별시정제도와 관련된 유의미한 판결이 계속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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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1 12:11 2009/06/01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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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사회민주주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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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스웨덴 사민주의에 대해서는 써먹을 것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모양이다. 물론 충분히 알려지지도 않은 것도 사실이고...
 
윤도현 교수가 번역한 <사회민주주의란 무엇인가>는 스웨덴 사민당의 주요 인사들이 저술한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개설서이다. 성현석 기자는 출간된지 10년이 넘은 책이지만, 자유, 평등, 연대, 민주주의라는 핵심 가치를 움겨쥐고 세계화 및 신자유주의의 공세 앞에 대응했던 스웨덴 사민주의의 실천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스웨덴 사민주의는 잘 대응했을까. 글쎄다. 지금까지 아는 정보로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연대적 가치가 침식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겠다.
 
여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미 다른 소개자료를 통해서 어느 정도 알려지지 않았나. 오히려 스웨덴 모델을 한국상황에 적용할 경우 대두되는 문제점이나 한계를 지적하는 이들의 주장에 설득력 있는 반박논리를 제공하는 것이 더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홍기표는 번역자인 윤도현 교수가 원저자들보다 마르크스주의의 기본을 더 충실하게 설명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윤도현 교수가 쓴 논문을 보면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데, 과연 어떠한 부분이 그러한지 궁금하기는 하다.
 
그리고 홍기표가 도식화한 대로 지금의 좌파는 국유화에 매달리고 있지 않다. 한국에서 사민주의를 지향하는 이들은 좌파의 가치나 슬로건을 과거 반공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는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 자본주의를 방어하기 위해 은행이나 GM같은 회사를 국유화하는 것을 제껴놓더라도 국유화라는 게 우리나라에서도 실제 필요한 경우가 상당히 있기 때문이다. 주유소나 이동통신 등이 그러하다. 오늘날의 좌파는 대안사회에서 소유구조가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뿐 아니라 관리체계의 문제(이를 지배구조, 거버넌스의 문제라고도 한다) 또한 관심을 가지고 대안을 제출하려 노력한다.
 
아무튼 시간이 되면 읽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아래에 프레시안에 실린 성현석 기자의 서평과 레디앙에 실린 홍기표 기획위원의 서평을 담아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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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는 약자만을 위한 것?" (프레시안, 성현석 기자, 2009-05-16 오후 2:30:37)
[화제의 책] <사회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스웨덴 수도인 스톡홀름 남쪽 해안가에 노르쾨핑이라는 도시가 있다. 115년 전, 이 도시는 번창하는 산업의 활기로 흥청댔다. 섬유산업이 특히 번창했는데, 당시 4000여 명이 이 도시의 섬유공장에서 일했다. 기술의 발전과 대량생산체제의 도입이 막대한 부(富)를 낳았지만, 공장을 실제로 움직이는 노동자들과는 별 상관이 없었다. 1894년 당시 모직공장에서 노동자 한 명이 생산한 가치는 2696크라운(당시 스웨덴 화폐단위. 현재 단위는 크로나)이었지만, 방직기 앞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의 연 평균 임금은 500크라운이 채 안 됐다.
 
당시 이곳 노동자들의 생활을 다룬 자료를 보면, 공장 작업 감독이 돼야만 방 하나에 부엌이 딸린 집에서 살 수 있었다. 노동자의 3분의 1 가량은 '아이언 스토브 룸(Iron-stove room)', 즉 별도의 부엌이 없는 단칸 아파트에서 가족이 함께 살았다.
 
귀리로 쑨 죽, 콩, 감자, 청어 등이 이 도시 주민들의 주식이었는데, 많은 이들이 영양실조에 시달렸다. 늘 산업재해를 걱정해야 하는 섬유공장 노동자들의 평균 수명은 40세를 간신히 넘겼다. 아이들은 초등학교만 마치면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섬유공장에서 일하는 12살 노동자는 1년에 약 150~200크라운을 벌어 집에 가져왔다.
 
투표권은 소수에게만 주어졌다.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는 연소득이 800크라운이 넘는 사람들로 제한됐다. 노동조합에 가입하려는 자는 곧장 해고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가족이 병에 걸리면 가계 재정은 바닥이 났고, 노동자에게 경기 침체는 해고와 같은 뜻으로 통했다.
 

▲ <사회민주주의란 무엇인가>(안네마리에 린드그랜·잉바르 카를손 지음, 윤도현 옮김, 논형 펴냄). ⓒ프레시안
최근 국내에 번역된 <사회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도입부에 나오는 내용이다.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개설서인 이 책이 115년 전의 극심한 불평등에 대한 묘사로 시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돈과 힘이 정의로 통하고, 약하면 죽어야 하는 약육강식 사회를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사회로 바꿔낸 것은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 활동가들은 스웨덴 곳곳에 '인민의 집'을 세웠다. 이곳에 모여 책을 읽고 토론한 노동자들은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며 국가는 약자를 보살필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렇게 번져간 깨달음이 스웨덴 사회를 바꿨다.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직업과 학력에 따른 차별 해소, 실업과 노후에 대한 보장제도, 권위와 서열보다 개성과 자율을 숭상하는 문화 등이 그 결과다. 이런 성과 앞에서 스웨덴 사민주의 활동가들이 느끼는 자부심을 이해하는 게 어렵지 않다.
 
어떤 이들은 여전히 '맨발에서 벤츠까지'라는 성공담에 더 솔깃해 하겠지만, '불평등에서 평등으로'라는 스웨덴 사민주의의 성공담에 쏠리는 관심도 의외로 만만치 않다. 115년 전 스웨덴 공장도시 풍경이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식민통치와 전쟁의 상처 위에서 거대산업을 일으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한국 사회에서 불평등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권위와 서열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문화 역시 여전하다. 대륙 반대편 국가가 백년에 걸쳐 일궈낸 성공담이 '지금 이곳'에서 관심을 끄는 것도 그래서다.
 
<사회민주주의란 무엇인가>는 학술 서적이 아니다. 스웨덴에서 이 책이 출간된 시점은 1996년 8월. '세계화', '정보화'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통하던 때다. 대륙 반대편에 있는 한국이 '세계화' 흐름에 동참한다는 명분으로 OECD에 가입한 해이기도 하다.
 
'세계화', '정보화'라는 흐름은 박정희 식 개발독재에 익숙하던 한국 정부에만 새로운 도전이었던 게 아니다. 백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스웨덴 사민당에게도 낯선 도전이었다. '자본과 지식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세상에서도 높은 세금에 의존하는 사민주의 복지체제가 작동할 수 있을까.'
 
같은 도전 앞에서 한국은 OECD 가입을 택했다. '세계화' 흐름을 밀어붙이는 신자유주의에 더 깊이 발을 담그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스웨덴 사민주의자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했을까. 이 책은 이런 고민이 낳은 결과물이다. 저자 가운데 한명인 잉바르 칼손(Ingvar Karlsson)은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 직전까지 스웨덴 수상과 사민당 당수를 지냈다. 나머지 한명인 안네마리 린드그렌(Anne-Marie Christnia Lindgren)은 사민당 당 강령 위원회 위원으로 오래 활동했으며, 사민주의 운동 진영 내부 논쟁을 다루는 잡지 <티덴(Tiden)>의 편집장을 지냈다.
 
한국에서 스웨덴 사민주의에 관심을 둔 이들은 많지 않다. 올로프 팔메(Sven Olof Joachim Palme) 전(前) 스웨덴 수상이 널리 알려져 있을 뿐, 올로프 팔메에 이어 수상 직을 맡은 잉바르 칼손은 많은 이들에게 낯선 이름이다.
 
저자인 잉바르 칼손의 전임자였던 올로프 팔메는 스웨덴 사민주의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인물로 통한다. 금융자본가 아버지와 독일 귀족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좌파가 됐고, 미국 여행을 한 뒤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갖게 됐으며, 교육부 장관 시절에는 횃불을 들고 미국의 북베트남 폭격에 항의하는 대학생 시위 행렬에 동참했고, 수상 재직 중 수행원 없이 가족과 함께 영화를 보다 의문의 암살을 당한 팔메 전 수상의 삶은 온갖 역설로 점철된 거대한 드라마다.
 
반면,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수상이 갑작스레 암살당하면서 자리를 물려받은 잉바르 칼손의 삶은 상대적으로 밋밋하다. 그는 사민당 청년동맹 지도자와 장관, 국회의원 등을 거치며 큰 굴곡 없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잉바르 칼손에게 던져진 숙제는 만만치 않았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거대한 파업투쟁 속에서 잉태된 사민주의 정당은 백년 역사를 거치는 동안 스며든 관료주의로 활기를 잃어갔고, 강력한 복지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은 부담스러워졌다. 사민당과 재벌의 공존이라는 독특한 모델은 균형을 잃어갔고, 거대기업의 힘은 점점 통제하기 힘들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게 된다면? 기업은 싼 인건비와 낮은 세금을 찾아 해외로 빠져나가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세금이 줄어서 복지체제를 유지하기 힘들어지고 스웨덴 식 사민주의 체제는 근본적인 위기에 부딪힌다.
 
이 책의 저자들을 포함한 사민당 지도자와 이론가들은 이런 숙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해결 못했다. 역사가 던지는 질문은 정답이 있다고 믿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세계화, 정보화가 던지는 거대한 질문 앞에서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휘청거렸던 게 사민주의 정당들의 최근 역사다.
 
답이 없는 질문 앞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정치인과 지식인을 탓하는 것은 무리다. 다만 이런 비틀거림이 제자리걸음이나 후퇴로 이어지지 않기 위한 조건을 확인할 필요는 있다. 비틀거리면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원칙이 있다는 이야기다. 올로프 팔메로부터 정통 사민주의 노선을 이어받은 저자들이 이 책을 쓴 것은 그래서다. 이들은 좌편향과 우편향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민주의 정당이 움켜쥐고 있어야 할 핵심 가치로 네 가지를 제시했다. 자유, 평등, 연대, 민주주의가 그것이다.
 
유럽식 사민주의자를 '머리에 뿔 달린 빨갱이'의 아류쯤으로 이해하는 이들은 여기에 자유가 포함된 이유를 알지 못한다. 이런 이들은 "사민주의자=좌파=획일적인 평등만 강조하며 개인의 자유는 억누르는 자들"이라는 등식을 고집한다. 하지만, 사민당 정치인과 이론가가 쓴 <사회민주주의란 무엇인가>는 이런 등식이 명백한 오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또, 자유라는 낱말 앞에서 모든 영역에 시장 질서만을 폭력적으로 강요하는 신자유주의만을 떠올리는 일부 좌파 역시 다른 이유로 비슷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개인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있는 이상 '자유'를 포기할 수 없다는 점은 명백하다. 집단의 횡포와 부당한 권위에 맞서기 위한 자유가 없다면, 인권도 없다. 물론, 여기에도 조건이 있다. 저자들은 이렇게 정리했다.
 
"개인과 집단 간에는 항상 긴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긴장은 모든 사람들이 개인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에서 불가피하게 나오는 것이다. 만약에 사람들이 개인의 행동의 자유만을 일방적으로 주장한다면, 이 경우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체제로 가버릴 것이다. 반대로 만약에 사람들이 집단 공동체의 요구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한다면, 집단의 요구라는 이름하에 개인들의 요구는 무조건 무시될 위험이 있다.
 
첫 번째의 위험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사회민주주의자로서 두 번째의 위험에 대해서도 똑같이 경계를 해야만 한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개인들의 자유를 제한하면서 정당화하는 것에 대해서 경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이것은 보통 상식으로는 마치 타인들의 자유를 증대시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집단'이 다수의 요구에 대한 배려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얼마나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견해를 획일화 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사례들이 있다. 집단은 집단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면서 자유로운 토론을 누르고, 집단의 이름으로 결정된 사항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금지시킨다. 집단은 통제 엘리트를 낳는데, 이들은 실제로는 사회 전체의 공공선에 도움이 되는 결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엘리트 자신들의 지위를 강화하는 데에만 관심을 가지면서 집단을 착취한다.
 
물론 이런 종류의 위험은 정치적 색깔을 불문하고 모든 형태의 집단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회학 연구들은 여론이 가장 획일적으로 나타나는 집단은 사기업체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사회민주주의자로서 개인의 자유는 그가 속한 사회를 통해서 실현되어야 한다는 기본적 입장을 견지해야 하지만, 동시에 집단주의의 여러 위험한 형태에 대해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
 
"…(생략)…모두가 상호 의존적으로 되어 있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일정한 공동의 규칙을 준수해야 된다는 통찰이 반영된 집단주의일 경우, 자유는 위협받지 않는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모든 형태의 근본주의하에서, 즉 그것이 종교적, 정치적 또는 경제적 형태든 간에 자유는 위협받는다. 근본주의는 '신', '역사' 또는 '시장'에 의해 부여된, 우월하고 어떤 이미 정해져 있는 사명에 의해 개인보다 집단이 무조건 옳다고 간주하는 시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만약에 어떤 하나의 입장이 근본적으로 옳다도 가정한다면,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입장은 고려할 필요가 전혀 없게 된다. 하지만 정반대로 생각하는 게 옳다. 자신과 타인의 행복을 위해서는, 자신들만이 자신들의 '그릇된' 이념을 무조건 실천에 옮기는 소명을 타고 났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자유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시장 근본주의' 입장에 서서 자유를 위협하고 있는 이들이 경계로 삼을만한 내용이다. 자신들만이 이념을 무조건 실천에 옮기는 소명을 타고 났다고 믿는 종교적, 이념적 교조주의자들에게도 유익한 반성을 하게 하는 내용이다.
 
평등과 연대, 민주주의 등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움켜쥐고 있던 다른 가치들 역시 마찬가지다. 저자들은 이런 가치들이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도 의미를 잃지 않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한다. 그런데 스웨덴 사민주의 체제에서 이런 가치들이 잘 녹아있는 제도로 흔히 꼽히는 게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복지제도'다.
 
열심히 일하려는 의지가 없는 이들에게도 복지 혜택을 준다는 점에서 이 제도는 시장주의자들로부터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의 노동에 기생하는 계층을 양산한다는 비판이다. 또, 복지 제도를 운영하는 기구가 너무 방대해져서 관료주의적인 낭비가 심해졌다는 비판도 나왔다.
 
외부 환경 변화도 이런 비판에 힘을 실었다. 정보화,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지식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대학 진학률도 높아졌다. 무상교육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과거보다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인구 노령화로 인해 늘어난 복지수요도 중요한 변수다. '보편적 복지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부담이 과거보다 커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비판이 평등과 연대라는 사민주의의 핵심 가치와 깊이 맞물려 있는 '보편적 복지제도'를 폐기할 이유가 되기는 어렵다. '보편적 복지제도'에 대한 저자들의 생각은 어떤 걸까.
 
"사회보장은 1930년대 이래 사회민주주의 정치의 핵심이었다. 고전적 사회민주주의식으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생산된 과일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라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즉 조세라는 방법을 통해 돈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 들어가고, 이 돈이 직접적인 경제적 보조의 형태 또는 사회서비스의 형태로 각 가정에 재분배된다.
 
…(생략)…자신의 고유한 생활경로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존재하려면 일정수준의 경제적 안정 그리고 의료, 교육 같은 필수적인 서비스에 대한 이용이 필요하다. 그리고 평등은 자유의 이러한 전제 조건들이 모든 시민들에게 충족되어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이러한 평등 그리고 또한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시민으로서 이러한 전제조건들을 연대적 방식으로, 다시 말해 우리의 세금을 통해 이를 위한 재정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보장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생략)…하지만 복지정치에 대한 전반적인 지지가 있다 해서 복지 사회에 대한 논의가 더 이상 불필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1990년대부터 정부 재정에 부담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부담은 어떤 정책을 우선시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선택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노인 부양은 물론 교육 부문에서도 점점 더 많은 자원의 사용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재정 문제는 향후 몇 십 년간은 지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해야만 한다.
 
…(생략)…1950년대에 좋은 해결책으로 간주되었던 것이 1990년대에도 여전히 좋은 해결책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복지시스템은 결코 '완벽'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어느 특정 시대에 추진했던 개혁을 마치 미래의 모든 시대에도 타당하고 또 바꾸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한다."
 
"사회민주주의적 복지정책에서 하나의 중요한 원칙은 복지정책은 전반적으로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자산조사'를 해서 가장 어려운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급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아동수당은 아이가 있는 모든 가정에 지급된다. 노령연금은 65세 이상의 모든 노인들에게 해당되고, 교육비는 모든 아이들에게 무료이다.
 
…(생략)…보편적 복지정책의 근본이념은 간단하다. 복지개혁을 통해 모든 사람이 혜택을 본다면, 모든 사람은 자신들을 위한 재정 확보에 동참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면, 우리는 훌륭한 사회보험체계와 사회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것은 경제적으로 더 약자인 사람들에게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특히 자원이 한정되어 있을 경우-저소득자와 실업자에게만 급여를 지급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견해가 종종 사회민주당 내에서도 제기되었다. 이런 방법으로 하면 어려운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할 수 있고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실제로 보장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생략)…만약에 가장 어려운 사람들만이 아동수당, 무상의료 또는 무상교육의 혜택을 받는다면, 나머지 사회집단들은 그러한 혜택이 가능한 한 값싸게 지급되는 데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들은 온갖 이유를 들면서 급여의 비용을 줄이려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급여는 자신들은 받지 못하는 것이고, 또 여기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이 나쁘다고 해도 자기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 모두가 조세 기반적인 복지급여를 받을 수 있다면, 우리 모두는 의료, 교육 같은 것들이 잘 제공되는지, 질병보험과 연금 시스템이 적절한 경제적 보호를 해주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복지 수혜자가 돼야, 모든 사람이 복지 개선을 위해 애쓰게 된다는 논리다. 사회, 경제적 약자만을 위한 복지라면, 다른 계층 사람들은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그래서 복지에 쓰이는 예산을 아까워하게 되고, 복지 예산은 점점 줄어든다. 결국 사회안전망 자체가 허물어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사민주의의 핵심 가치인 '연대'와 '보편적 복지제도'를 떼놓을 수 없는 이유다.
 
'보편적 복지제도'에 대한 이런 통찰은 지금 한국에서 진행되는 논의에도 좋은 힌트가 된다. 영리병원 도입을 추진하는 기획재정부는 국민건강보험 체계에서 벗어나는 의료기관이 생겨나도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한 공공의료가 훼손되지 않으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억지다. 국민건강보험을 '남의 일'로 여기는 이들이 생겨나면, 공공의료가 무너지는 것 역시 순식간이다. 이들에게는 공공의료를 위한 예산이 자신들과 아무런 상관없는 곳에 쓰이는 돈이다. 따라서 이들은 이런 예산을 줄이는 쪽으로 압력을 가하게 된다. 언론을 장악하여 사회 여론을 주도하는 쪽 역시 이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확연해지는 전망이다. 사립학교가 발달한 미국에서 공립학교의 교육환경이 계속 취약한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이런 전망에 힘을 싣는다.
 
사민당 거물 정치인과 이론가가 이 책을 쓸 당시, '떠오르는 해'였던 신자유주의 세계화 흐름은 지난해 금융위기를 계기로 '지는 해'가 됐다. 저자들이 '떠오르는 해'에 맞서 사회민주주의적 가치가 반영된 '보편적 복지제도'를 지키기 위해 이 책을 쓸 무렵, 김영삼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시동을 걸었다. 이듬해 불거진 IMF 경제위기는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실패로 받아들여지기보다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본격적으로 밀어붙이는 계기로 작동했다. '떠오르는 해' 앞에서 서로 다른 길을 택했던 저자들과 한국 정부는 이제 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중천에 떴던 해가 노을을 그리고 있는 지금, 한국 정부가 택한 길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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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화 편협한 수단, 문제는 다양한 권력 (레디앙, 2009년 06월 01일 (월) 08:21:48 홍기표 / 기획위원)
[새책] 스웨덴 사민당이 펴낸 책 『사민주의란 무엇인가?』 
 
자본주의와 사민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는 무엇일까? 무식할 정도로 간단하게 이야기 하면 모두 거둬서 몽땅 나눠주는 것이 순수 공산주의이고, 아무것도 거두지 않고 아무것도 안 주는 사회가 순도 100%짜리 자본주의이다. 사민주의란 아마 그 중간쯤의 어디 일 것이다. 즉 국가가 좀 많이 거둬서 개인들에게 좀 많이 나눠주는 사회쯤 될 것이다. 사민주의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정말 이렇게 대답해도 될까?
 
가수 윤도현씨가 아닌 교수 윤도현님께서 최근에 『사민주의란 무엇인가?』(논형. 13,000원)라는 책을 번역했다. 이 책의 원저자는 잉바르 카를손과 안네마리 린드그렌이라는 스웨덴 사람들이다. 외국사람들이라 책을 다 읽고나도 저자들의 이름을 외우기란 쉽지 않다. 단지 우리 입장에서는 번역한 사람 윤도현만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잉바르 카를손이 스웨덴 수상이었다는 정도만 생각날 뿐이다.
 
이 책은 스웨덴 사민당에서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만든 책이다. 책은 사회민주주의 핵심 가치와 주요정책 등을 서술하면서 사민주의 자체에 대한 쉽고 일반적인 서술에 주력하고 있다.
 
이 책은 사민주의의 슬로건으로 알려진 자유, 평등, 연대라는 3대 가치에 대해 이해하기 쉬운 필치로 친절한 설명하고 있다. 그 위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시각과 시장에 대한 이해, 공산주의에 비판을 펼치고 있다. 즉 사민주의의 핵심 3대 가치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양대 굴곡 사이에서 어떻게 단일한 이념적 가치로 자리 잡을 수 있는지 설명하고 비판하는 체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우리는 ‘자유’와 ‘시장’이 꼭 자본주의자(?)들만의 전유물도 아님을 확인할 수 있고, 왜 평등과 연대가 사민주의의 핵심 구호인지도 재삼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모든 문제를 '소유문제'로 정리하면 혁명적인 것이고, 소유문제를 외면하면 근본적 해결을 도외시하는 개량주의라는 관점에 반대한다. 이 책은 ‘소유의 문제’ 라는 관점 이전에 '권력의 문제'를 더 중시 여긴다.
 
“중요한 문제는... 사적 자본가로부터 권력을 빼앗는 것만이 아니었다...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자원을 제공하여 그들이 공급의 다양성과 질에 대해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하는 문제, 그리고 피고용인들에게 권력을 주어 그들이 임금과 고용조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하는 문제였다.”
 
그리고 이것은 일방적 국유화의 한계에 대한 절절한 인식으로 이어진다. “국유화라는 고전적인 요구는 실제 현실에 있어서 너무나 편협한 수단이었다. 이것은 권력의 다양성이 생겨날 여지를 전혀 주지 않았다. 완전히 국유화된 경제에서는 임노동자, 소비자 그리고 시민의 영향력은 동일한 경로를 통해 행사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은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는 것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부러웠던 것은 편견 없이 ‘사회주의’라는 이념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서구 사상계의 넓은 안목과 전통이었다. 북유럽의 사상계는 맑스주의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또한 비판하며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책속에 배어 있는 스웨덴 사민주의자들의 맑스주의를 바라보는 관점은 매우 균형 잡혀 있다. 합리적 핵심은 받아들이면서 지나친 이념 중독을 또한 경계하고 있다. 북한이 주체사상을 선전하듯이 불멸의 사상체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책의 저자들은 전체주의와의 투쟁하는 사민주의자답게 소련 등 이른바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책 중간 중간에 전체주의 일당 체제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소련체제 붕괴의 가장 큰 원인은 소련의 모든 정치적, 경제적 조직의 기틀을 만든, 마르크스-레닌주의로 알려진 러시아 공산당의 이데올로기에 있다. 여기서 우리가 이끌어내야 할 피할 수 없는 교훈은 사회주의적 이상에 충실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중앙집권적으로 통제된 획일적인 체제는 비록 생산수단의 집단적 소유가 고전적 사회주의 이론과 일치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이상을 결코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가지 재밌는 것은 이러한 책의 흐름에 대해 역자가 약간의 반기(?)를 들고 있다는 점이다. 역자인 윤도현 교수는 개량주의자(?)인 책의 원저자들보다도 맑스주의의 기본을 더 충실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때문에 책의 구석구석에서 나타나는 역자와 저자 사이의 묘한 신경전도 주의 깊게 볼만하다. 역자인 윤도현 교수는 역주를 이용해서 때론 저자들을 비판하고 때론 원저를 보충하면서 전체적으로 책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예전에 우리는 소련 교과서라는 별칭으로 변증법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 정치경제학을 읽었었다. 그리고 소련의 붕괴 이후 사회과학을 별로 진지하게 접해 본적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모두 비난하며 중간에 끼어서 어떻게든 자리를 잡아보려는 사민주의의 시각을 접해볼 필요가 있다.
 
이제 40줄에 들어선 이른바 386세대에게 있어서 사민주의란 ‘일단 나쁜 것’이었다. 이 세대는 사민주의가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사민주의란 개량주의라 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먼저 전달받았던 독특한 사상사를 갖고 있다. 이제 그 왜곡된 사상사를 좀 벗어나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윤도현 교수의 이번 역서는 20대 청년 시절에 소련 사회과학 교과서로 공부를 하고 그 뒤로 이념서적을 본적이 없는 사람에게 특히 권할 만한 책이다.
 
전체적으로 스웨덴 중심적인 서술이라 한국사람들이 별로 주목하지 않는 내용도 다소 등장하지만 전반적으로 평이한 서술이라 읽는데 큰 거리낌이 없다. 내 마음 속에 뻘건 국물이 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라면 먹으면서 봐도 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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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 연재를 시작하며: "'사람값'이 비싼 사회를 찾아서"

- 첫 번째 키워드 : 협동

"평등 교육이 더 '실용'적이다" (上)
"'혼자 똑똑한 사람'을 키우지 않는다" (中)
"'로마'만 배우는 역사 수업" (下)

- 두 번째 키워드 : 코뮌

"가족 없이 늙어도, 당당하다" (上)
"'착한 정부'는 '코뮌'에서 나온다" (中)
"'인민의 집', 그들만의 천국?" (下)

- 세 번째 키워드 : 생태

"산적이 100년 동안 다스리는 마을에서는…" (上)
'MB식 녹색성장'이 불안한 이유 (中)
'친환경 기술'로 녹색성장?…"글쎄요" (下)

- 네 번째 키워드 : 민감

"'강철신경'은 자랑이 아니다"
○ 김명신의 '카르페디엠' : 북유럽 교육

☞<1> "당신은 펜을 들고, 친구는 카메라를 든 것처럼"
☞<2> "경쟁과 협력…누가 더 많이 웃고 살까"

☞<3> "한국 부모들, 심리학을 공부하세요"
☞<4> 백년대계를 바꾸는 열 가지 차이는?
☞<5> "지구 반대편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 핀란드 교육 탐방

"세금 많아서 자랑스럽다"…"튼튼한 복지는 좋은 교육의 조건"
"협동ㆍ배려ㆍ여유 vs 경쟁ㆍ욕심ㆍ긴장"
"부모 잘 만나야 우등생 되는 사회…벗어나려면"
"멀리 봐야 희망을 찾는다"

○ 핀란드 교육 관련 인터뷰

국제학력평가 1위, 핀란드의 비결은?
"경쟁? 100m 달리기 할 때만 들어본 단어입니다"
"일제고사, 교사 해직…한국은 놀랄 일 투성이"
"교원노조는 좋은 교육 위한 동반자"
"관리자는 '윗사람'이 아니다"
"'피드백'이 교육을 살린다"
"차별, 더 강력한 차별이 필요하다"

○ 핀란드 학교 탐방

꼴찌 없는 교실, 이유는?
"자율 선택 강조하는 평등교육"
"직업교육이 더 자랑스럽다"
"혼자서 잘 해내는 아이를 키운다"
"수업시간에 잠자는 아이를 보기 어려운 이유"
"관료주의 깨야 공교육 산다"

○ 도종환 시인이 본 핀란드 교육

핀란드의 아이들
악덕의 씨를 심는 교육

○ 스웨덴 학교 이야기

"일등을 포기한 학교에서, 더 많이 배웠다"

"외운 것은 가장 낮은 수준의 지식일 뿐"
청소부에게 야단맞는 대학 교수
사민주의 사회에서 이뤄지는 경쟁 실험

○ 잘 사는 나라가 져야 할 책임

"'아이에게 살충제 먹이는 회사'엔 투자할 수 없다"

당당하게 '퍼주자', 스웨덴처럼

○ 스웨덴 우파의 도전

스웨덴 우파 집권, 그 이후…

스웨덴에 특목고가 생긴다?

○ "덴마크에서 살아보니"

- 직업과 학벌에 따른 차별이 없다

"명문대? 우리 애가 대학에 갈까봐 걱정"
의사와 벽돌공이 비슷한 대접을 받는 사회
"덴마크도 40년 전에는 '서열 의식'이 견고했다"
모두가 승리자 되는 복지제도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 임금보다 더 많은 나라

- '암기가 아닌 창의, 통제가 아닌 자율'을 장려하는 교육

"아이들은 숲 속에서 뛰노는 게 원칙"
"노는 게 공부다"
"충분히 놀아야 다부진 어른으로 자란다"
1등도, 꼴찌도 없는 교실
"왜?"라는 물음에 익숙한 사회
"19살 넘으면, 부모가 간섭할 수 없다"

- "아기 돌보기, 사회가 책임진다"

"출산율? 왜 떨어집니까"
"직장인의 육아? 걱정 없어요"

- "덜 소비하는 풍요"

"에너지 덜 쓰니, 삶의 질은 더 높아져"
"개인주의를 보장하는 공동체 생활"
'빚과 쓰레기'로부터의 자유
"장관이 자전거로 출근하는 나라"
"우리는 언제 '덴마크의 1979년'에 도달하려나"

- "낡고 초라한 아름다움"

"수도 한 복판에 있는 300년 전 해군 병영"
인기 높은 헌 집
"코펜하겐에 가면, 감자줄 주택에 들르세요"
도서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 덴마크 사회의 그림자

"덴마크는 천국이 아니다"
"덴마크 사회의 '관용'은 유럽인을 위한 것?"

○ 입양대국 북유럽, 그리고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된 사람들
"스웨덴에서 자란 입양인이 왜 한국을 그리워하죠?"
"중국에 공녀, 일본에 위안부, 그리고 우리"
해외입양은 아동복지인가, 아동학대인가?
"한국은 여전히 '미개한 나라'일지도 모른다"
해외입양 16만명 중 10만명이 미국으로, 왜?
한국, 경제대국? 세계 1위 '아동수출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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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1 11:19 2009/06/0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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