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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관련 - 정성진 교수 인터뷰 中

 

"맑스주의는 현재의 대공황을 보는 정확한 시각"

정성진 경상대 교수, 마르크스주의연구 편집위원장

국내의 대표적인 맑스주의자로 꼽히는 정성진 교수(경상대 경제학, '마르크스주의연구' 편집위원장)는 지난해 8월 <참세상>에 기고한 글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가 지배계급의 희망처럼 일시적 조정이나 유동성의 위기로 그치지 않고 체제위기와 세계대공황으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고 주장했었다.

고전적인 맑스주의적 방법론을 통해 한국 경제를 분석해 온 그는 IMF위기가 발발하기 전인 1997년에도 '한국 경제의 사회적 축적구조와 그 붕괴'라는 논문을 통해 한국경제 위기를 예고한 바 있다.

그는 "미국경제는 70년대 이후 장기적 하락으로 접어들었다"고 전제한 뒤 "자본주의의 장기 하강이 시작됐는데 이걸 상쇄하려는 자본의 시도가 되풀이 해서 성공하지 못했음이 판명"됐다며 "내가 볼때 30년대 대공황 수준으로 악화, 장기화될 듯 하다"고 밝혔다.

정성진 교수는 "좌파 케인즈주의자들은 모든 문제를 금융으로 환원시킨다"고 전제한 뒤 "금융통제를 잘 한다면 자본주의 경제가 오늘 같은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은 자본주의의 모순적 동학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며 "실제 문제는 그들이 좋아하는 생산적 투자에 있"고 "자본주의의 무정부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금융을 개재하지 않더라도 과잉축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정 교수는 "역사적으로 보면 삼십년대 대공황이 해결된 방식도 결국 2차대전이었다"고 말한 뒤 "2차대전이 발발하기 전 이상으로 세계시장이 위축되고 있고 지금은 피크 오일과 같은 자원 문제도 있어서 자본 열강들간의 경쟁적 투쟁이 더 격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전쟁의 위협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베네수엘라 국제 정치경제학 대회에 다녀왔는데, 어떤 분위기에서 어떤 내용들이 오갔나?

'세계경제위기:남측의 대응'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좌파 경제학자들의 국제 학술대회였다. 당시 대회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굉장히 흥분된 상태였다. 당시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미의 좌파 학자들과 활동가들이 많이 모였다. 세계 경제의 전개상황이 신자유주의 뿐만 아니라 미국 중심의 제국주의 체제의 붕괴가 임박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지금이라면 또 분위기가 달랐을 거다.

개회사에서 차베스는 위기와 관련한 제3세계의 대응방향에 대해서 주로 말했다. 회의가 끝나고 채택된 최종성명서도 말하자면 반둥선언과 같이,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 질서가 무너졌으니 차제에 남측의 주도로 세계 질서를 평등하게 개편하자는 거였다. 신브레튼우즈와 같이 국제금융 질서를 보다 민주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많이들 얘기했다. 또 세계 경제위기에 대한 지역주의적 대응이랄까. 지역경제 통합을 통해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 아닌가하는 얘기도 있었다. 에콰도르 경제장관은 외채 감사를 해서 불법적인 외채에 대해서는 상환중지 선언을 하자고 제안했다.

-현재의 상황과 관련해서 경제위기, 경기침체, 경기후퇴, 불황, 공황 등 다양한 개념들이 사용되고 있다. 먼저 공황에 대한 정의가 필요할 듯 하다.

통상 공황은 크라이시스(crisis)로, 후퇴와 불황은 리세션(recession)으로, 침체는 디프레션(depression)으로 쓴다. 호황이 계속되지 못하고 경기가 갑자기 급락하는 것을 공황이라 하고, 공황 후 경기가 하강하는 국면이 불황이며, 다시 회복 국면으로 이어진다. 침체(depression) 중에서 물가하락이 전반화되는 침체는 디플레이션(deflation)이라고도 표현한다. 30년대 대공황은 “더 그레이트 디프레션”(The Great Depression)이라고 쓴다. 미국 정부는 4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일 경우 리세션, 즉 불황으로 정의한다. 그렇게 보면 독일과 유럽의 상당수는 이미 미국보다 앞서서 리세션에 들어간 거다. 미국은 2/4분기는 플러스였지만 3/4분기는 마이너스였고 4/4분기 역시 마이너스 성장이 확실시 되고 있다. 즉 이제 유럽은 물론 미국도 완전히 불황에 진입한 거다.

2007년 여름부터 1년 정도 서브프라임 사태가 지속되면서 리먼쇼크가 온 게 공황국면의 시작이고 10월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실물경제의 불황이 시작된 거다. 그 리세션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냐에 따라 2차대전 이후의 최악의 불황일지, 아니면 30년대 대공황 수준까지 갈 거냐가 문제일 뿐이다. 제가 볼 때는 30년대 대공황 수준으로 악화, 장기화되지 않을까 한다.

-지난해 여름에 이미 서브프라임 문제와 관련해서 '이번 위기는 지배계급의 희망처럼 일시적 조정이나 유동성의 위기로 그치지 않고 체제위기와 세계대공황으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는 내용을 주장한 바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나?

지나고 보니 제 얘기가 좀 맞은 것 같다. 그 기고문은 8월초에 써서 <참세상>에 올렸는데 그 시점은 막 서브프라임 위기가 불거질 국면이었다. 당시 베어스턴스의 주가가 많이 하락했다. 당시만해도 그린스펀은 물론이고 주류 경제학자 대부분이 이 위기가 주가하락이나 일시적인 신용경색이라 생각하고 곧 수습될 거라 봤다. 그게 미국의 금융위기나 세계적 금융위기와 불황으로 나아갈거라 생각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진보학계에서도 서브프라임은 미국적인 현상이고 일국적인 경기쳄체로 이어질 지도 두고봐야 한다고 했고, 혹은 금융위기의 전조 쯤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었다. 당시 제가 서브프라임 위기가 조만간 세계대공황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까, “만년위기론”이니, “파국론자”니 하며 비판했다. 그러나 지금은 심도의 문제이지 이차대전 이후 최대의 불황으로 갈거라는데 컨센서스가 형성됐다.

나는 물론 만년위기론자, 파국론자가 아니다. 단지 자본주의에서 위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금융문제만이 아니라 실물경제에서의 자본축적의 상태를 좀 더 중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게 잘 나타나는 게 이윤율인데, 이윤율 계산 작업을 내가 좀 했다. 미국에서 공간하는 통계자료를 계산해보니 70년대 이후 장기 저하하기 시작했고 80년대 신자유주의 전환과 함께 바닥을 치면서 착취율 상승과 함께 이윤율도 소폭 회복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에 회복된 이윤율은 자본주의의 황금시대였던 2차대전 이후 60년대 말까지의 수준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낮은 수준으로서, 장기 추세로 보면 80년대는 물론 90년대, 21세기 넘어까지 계속 장기 저하 추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실제로 미국의 이윤율은 90년대 클린턴 정부 시기 올라갔지만 클린턴 정부 말기인 97년 이후 저하한다. 이 때 닷컴 주가는 계속 천정부지로 상승했으니 이를 닷컴 거품이라고 한다. 이윤율이 저하했으므로 이 닷컴 거품은 결국 다시 2001년 9.11사태를 전후로 꺼지게 되고 미국 경제는 리세션을 맞이한다. 그린스펀은 이에 연속적인 금리인하 방식으로 대처한다. 그러자 닷컴버블이 주택거품으로 옮겨갔다. 경기는 회복됐지만 비법인금융 부문의 이윤율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고 2006년 이후 다시 저하하기 시작했다. 이런 조건에서 2007년 여름 서브프라임 사태가 불거졌기 때문에 나는 이것은 일과적으로 지나가는 신용경색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이윤율의 장기 저하에서 비롯된 장기 불황이 시작됐는데 이걸 거품을 키워 은폐 모면하려했던 자본의 반복된 시도들의 약발이 다되었음이 최종적으로 판명된 거다.

어디에서 또 다른 거품을 키워서 자본주의가 굴러갈 수 있을지 대단히 회의적이었다. 쓸 수 있는 정책수단들을 다 써본 상태에서 서브프라임 위기가 발발했다고 보았고 그래서 이 위기가 쉽게 수습될 수 없을 거라고 보았다. 그게 근거였다.

-공황이 도래하는 이유는 마르크스주의의 설명에 따르면 과잉투자와 총자본의 이윤율 저하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위기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부터 가시화되다보니, 이것이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는 듯 하다. 주택시장의 거품이나 파생금융상품(신용파생상품을 포함해서) 시장의 과도한 팽창도 과잉투자로 설명될 수 있나?

자기자본의 수십 배 이상으로 레버리지를를 극대화해서 주식이든 채권이든 투자를 하는 것도 과잉투자였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이게 붕괴하고 있는 국면이다. 하지만 현재 위기의 배후에는 실물경제, 즉 비금융 부문에서의 자본축적의 장애가 있고 이게 더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진보학계에서 다수인 케인즈주의자들은 저와 같이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금융 부분에 만들어진 과도한 거품과 그걸 조장한 신자유주의적 규제완화, 투기자본의 행태가 오늘날의 위기를 야기했다고 주장하면서 오늘의 위기를 금융 위기로 환원한다. 그러나 실물 부문에서 심화되는 과잉투자가 오히려 더 문제이고 이윤율이 저하되니까 그게 다시 금융 부문으로 넘어와서 동시적으로 과잉축적이 야기된 것이 현재 위기의 특징이다.

위기가 금융에서 불거지다보니 실제 위기의 배후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진보학계의 다수는 지금 위기는 맑스의 자본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케인즈로 설명하려 한다. 케인즈는 금융 부문에서의 과도한 투기가 자본주의 경제에 야기하는 부정적 측면을 매우 강조했다. 케인즈를 이어받은 민스키와 같은 좌파 케인즈주의자들의 금융적 불안정성 명제, 특히 “폰지 게임”, 즉 차입한 자본에 의한 투기와 그게 형성하는 거품과 그 붕괴의 논리가 오늘날 위기를 더 잘 설명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맑스가 이를 보지 못한 것은 아니다. 맑스도 이윤율을 분석한 뒤, 실물 부문에서 축적과 금융 부문에서 축적이 어떻게 괴리되면서 실제 공황의 방아쇠를 당기는 역할을 하는가를 얘기했다. 케인즈나 민스키의 이야기는 이와 같은 맑스의 통찰을 체계화, 정교화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좌파 케인즈주의를 비롯해서 케인즈주의자들의 문제는 자본주의에서 위기를 모두 금융의 문제로 환원한다는 데 있다. 이들은 생산적 투자를 북돋우고 금융 통제를 잘 한다면 자본주의 경제가 오늘 같은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이는 자본주의의 모순적 동학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실제 자본주의에서 위기의 근원은 케인즈주의자들이 애호하는 생산적 투자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생산의 무정부적 성격과 다수자본의 경쟁적 투쟁으로 말미암아 생산적 투자 자체가 금융을 개재하지 않더라도 과잉축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본주의에서 호황은 계속 지속되질 못하고 주기적으로 붕괴하는 것이다.

-과거의 공황들이 그랬듯이 현재의 상황이 전쟁으로 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아까 언급한 카라카스 학술대회에서도 저명한 종속이론가 사미르 아민이 바로 그걸 강조했다. 위기가 심화되면서 군국주의와 파시즘이 득세하고 그래서 전쟁위기가 고조될 거라고 굉장히 강조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1930년대 대공황이 해결된 방식도 결국 2차대전의 발발이었다. 케인즈적 신화와 달리 루즈벨트의 뉴딜이 수습책이 된 게 아니다. 당시 공황이 바닥을 친 게 1938년, 1939년인데 이는 바로 2차대전의 발발 시점이다. 영구군비경제의 활성화, 전쟁으로 인한 자본 파괴, 30년대 전시 공포분위기, 애국주의 하에서 노동자 민중 운동에 대한 탄압과 이를 통한 자본의 대 노동 우위의 확립, 등이 대공황의 나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한 계기였다. 나 같은 좌파만 이렇게 주장하는 게 아니다. 케인즈주의에 비판적인 시장주의 경제사가들도 루즈벨트의 뉴딜, 혹은 케인즈주의가 30년대 대공황 수습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케인즈에 친화적인 폴 크루그만도 30년대 대공황은 2차대전을 통해서 수습됐다고 인정한다.

자본주의에서 지배계급은 위기가 심화되면서 내부 모순이 심화되면 전쟁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또 세계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세계시장이 위축되고 있고 '피크오일'과 같은 자원 문제도 있어서 시장과 자원 확보를 위한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경쟁적 투쟁이 더 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얼마 전 G20회담에서 드러난 것도 미국과 유럽 간의, 그러니까 제국주의 간의 갈등이었다. 거기에 선진국 그룹과 중국과 러시와 등과의 갈등까지 중첩되고 있다. 미국의 지배계급은 현재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위기 돌파의 비용과 부담을 단지 미국 내 노동자 민중들에 전가할 뿐만 아니라 제3세계 민중에 떠넘기고 있다. 이로부터 미국 중심의 제국주의 국가들과 제3세계의 갈등이 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석유 등 제3세계 지역에 부존된 자원을 강점하기 위한 군사 도발을 할 수 있다. 물론 제3세계는 이와 같은 도발에 맞설 것이고 이로부터 갈등이 심화될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전쟁의 위협은 커지고 있다.

얼마전 <한겨레>에 다카하시 데쓰야라는 도쿄대 철학교수가 프리터(free+arbeiter) 세대의 전쟁대망론이라는 제목의 기고를 했다. 통념과 달리 일본도 양극화와 빈부격차 문제가 심각하다. 일본에서는 '격차사회'라는 용어를 쓴다. 이 격차사회는 지난 10년 동안 계속 악화됐고 일본의 젊은이들은 한달에 고작 10만엔을 버는 프리터로 살아가면서 결혼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오로지 이 위기국면을 타개하기를 바라고 그래서 자신들의 처지를 타개할 기회로 전쟁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지배계급이 부추기게 되면 실제로 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 전쟁은 자본주의가 직면한 대위기를 돌파해주는 기능을 한다.

-얼마전에 G20회담이 합의문을 작성하고 마무리됐다. 회담 결과에 대해서 간략하게 평가한다면?

G20 그게 열리기 전만 해도 사람들은 기대를 했었다. 금융위기가 심화되면서 주류언론에서도 신자유주의는 끝났다,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는 금융기관의 부분 국유화를 제시했고 그가 주창했던 이른바 '신브레튼우즈'에도 힘이 실리는 듯 했다. 달러의 금태환 및 IMF=GATT 체제에 기초했던 브레튼우즈 체제는 2차 대전 후 자본주의가 장기호황을 지속할 수 있게 해줬던 국제 경제질서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50-60년대에 독일과 일본의 경제가 회복되고 경쟁력이 살아나면서 미국은 국제수지가 악화되고 달러의 금태환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몰린다. 그래서 1971년에 브레튼우즈는 공식 종료되고, 이후 변동환율제도로 이행한다. 이게 70-80년대 이후 지금까지 여러나라에서 직면했던 금융위기의 원인이 된다. 이번 세계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세계의 지배계급도 이러한 상태로 가서는 안된다는 데 컨센서스가 형성된 듯 하다.

이를 배경으로 신브레튼우즈 체제 수립의 구상이 나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G20 회담이 끝나고 보니 그게 대단히 어렵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G20 회담 전 만해도 초국가적인, IMF와 세계은행에 버금가는 초국가적 금융규제기구를 수립하는데 정상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고작 국가간 협의를 통해서 자유무역을 확대한다든지 각국별로 금융 규제와 감독 시스템을 강화한다든지 이런 수준에서 막을 내렸다. 사르코지나 브라운은 새로운 국제경제질서, 나아가 새로운 국제통화제도 도입을 요구했지만, 미국은 기존 체제 내에서 보완하는 게 미국의 이익에 합치된다고 생각한 거다. 각 국민국가들간의 대립이 노정된 것이다.

-오바마 이후 위기해결의 가능성을 기대하는 이들이 있다. 가능할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물론 오바마는 선거과정에서 변화를 슬로건으로 내걸었고, 정치에 무관심했던 젊은이들과 흑인들이 많이 투표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오바마의 당선이 지배계급 내에서의 정권교체이지만 이게 가능했던 게 아래로부터의 변화의 염원이었기에 의미가 깊다. 오바마도 대선 전 진보적 정책들, 복지를 확대한다든지, 위기의 수습책으로 서민 대중의 주택 안정, 생활 안정을 위한 지원 등을 주장했다.

그럼에도 오바마는 이미 대선 과정에서 폴슨과 버냉키가 제안했던 7천억 달러 구제금융안에 사인했다. 이 7천억 달러는 대부분 서민 대중이 아니라 금융위기의 주범인 월스트리트 투자은행과 금융자본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 각료로 임명하는 사람들의 면면들은 클린턴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내정된 임마뉴엘이나 국무장관 내정자 힐러리, 재무장관 내정자 가이스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 내정자 로렌스 써머스 등. 미국에서 신자유주의 시대를 사실상 확립한 것은 클린턴이라고 봐야 한다. 글래스 스티걸 법, 즉 투자은행과 시중은행의 분리를 규정했던 법을 폐지한 것, 그래서 신자유주의 투자은행 모델을 완성한 게 1999년 클린턴 정부, 특히 당시 재무장관 루빈과 FRB 의장 그린스펀이었다. 이게 어마어마한 금융 투기의 거품을 불러일으킨 거다.

대선 직전인 10월에만 해도 지배계급은 "투자은행 모델은 이제 끝났다" "우리 모두 케인즈주의자가 되었다"고 하면서 국가주의로의 복귀를 처방으로 주장했는데, 오바마 당선자는 클린턴 때 신자유주의 정책을 주도했던 인물들을 다시 기용하고 있다. 빈사 상태의 신자유주의 금융화 모델에 인공호흡기를 대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위기의 수습책이 될 수는 없다. 거품 붕괴를 약간 완화하고 위기를 약간 봉합할 수는 있어도, 해소하는 건 가능치 않다. 이 위기는 자본주의의 위기이니 기존의 신자유주의 정책이든 케인즈적 정책이든 그것이 지금 심화되는 위기를 저지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오바마는 이라크 전쟁에는 반대하지만 아프간에 미군이 계속 주둔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한미FTA도 보호무역주의적으로 고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대외적으로도 기존의 부시 네오콘 정부가 보였던 제국주의적 면모를 얼마나 불식할 지 회의적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경로들을 예상해볼 수 있을까?

현재의 불황이 단기적으로 수습될 거라고는 보지 않는다. 분명히 이것은 최소 일년 이상 지속될 것이다. 30년대 대공황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악화될 수도 있다. 30년대 대공황은 직전까지 이윤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조건에서 터졌다. 그런데 지금의 위기는 이윤율의 장기 저하 추세가 1970년대 이후 40년 가까이 지속된 후에 터진 것이라서 훨씬 더 심각할 수 있다. 또 1930년대 대공황 당시에는, 물론 별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뉴딜이라든지 나치즘이라든지 국가개입이라는 대안은 있었던 거다. 지금 위기는 그런 국가 개입 대안이 시도되어 본 후에, 그리고 그 시도가 위기 극복에 실패해서, 다시 시장주의로 즉 신자유주의로 전환해 본 다음에, 그리고 그 신자유주의 역시 위기 극복에 효과 없는 것으로 판명된 후에, 발발한 위기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즉 남아있는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책수단의 여지조차 거의 없는 상황이다. 미국 경우 연방기금 금리가 다시 연속 인하해서 1퍼센트 수준으로 거의 갔다. 이제 1퍼센트에서 0.75퍼센트로 내리면 그걸로 되겠나. 재정적자도 지금 1조 달러 수준이고, 이게 중국의 미국 국채 매입이라는 글로벌 불균형 구조, 즉 달러 위기 구조를 통해서 조달되는 것이라 케인즈적 경기부양 수단을 쓸 여지도 거의 없다. 클린턴 때만 해도 균형예산이어서 그 다음 부시 정권이 전쟁을 벌여 영구군비경제로 경기를 지탱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이런 정책 수단도 쓰기 힘들다. 그래서 현재 불황이 장기화 악화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추가로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어떤 효과를 가져올 지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달라.

많이들 얘기하듯이 이명박 정부는 역주행하는 거다. 세계 체제는 위기 속에서 기존의 신자유주의를 접고, 효과는 미지수지만, 케인즈주의로, 또 국가주의, 즉 금융 재규제로 나아간다. 그런데 이명박은 대선 때 내세웠던 복고적인, 잃어버린 10년에서 되찾자는 마인드가 지배적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의 사태를 진취적으로 해결해 나가려는 것보다 기존의 것을 회복하고 지키는 것이 주된 접근이다. 정책들은 몇박자씩 늦고 세계적인 흐름과도 거꾸로 가는 측면이 있다. 심지어 박정희 때의 권위주의적 정책들을 되돌이키려 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정책을 편다 하더라도 세계 위기 속에서 한국경제의 불황을 막기는 힘들다고 본다. 한국도 80년대말 90년대부터 장기적으로 이윤율이 저하됐다. 그 연장선에서 97년 위기도 터졌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하에서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자본의 수익성이 개선됐지만 이윤율 수준은 한국경제가 잘 나갔던 1970-80년대와 비교하면 한참 낮다.

지난 10년동안 거의 영미 수준에 버금가는 금융화가 이루어졌고, 그게 지금 금융위기에서 한국경제를 굉장히 취약하게 하는 요인이다. IMF 구조조정 속에서 경기회복의 돌파구를 수출 증진에서 찾았고 그래서 97년 이전보다 수출 의존도는 더 높아졌다. 때문에 세계 경제가 급격히 침체되면 한국경제는 다른 어떤 나라들과 비교해 보더라도 더 큰 충격을 받는 구조다.

그런데 오히려 이명박은 환율을 인상하고, 오히려 수출 의존도를 심화시키는 식으로 위기를 대처하려고 했다.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 것이다. 지금 또 자통법이나 부동산 완화 정책 같은 것들을 보자. 선진국이 금융과 부동산을 규제하는 것과 반대로 풀고 있다. 거품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거다. 그건 국민경제 전체의 이익보다는 거품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지배집단과 부유층이 원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불황으로 가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더 어마어마하게 거품이 터질 수 밖에 없다.

-경상대 정치경제학과 대학원 '학과 간 협동과정'이 만들어졌다. 간단히 소개해달라.

내년부터 맑스주의에 특성화한 정치경제학과라는 석박사 과정이 개설된다. 신입생을 모집했는데 많은 분들이 입학원서를 냈다. 그 동안 비제도권 쪽에서 사회과학대학원과 같은 비판적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대학원을 만들려는 노력이 꾸준히 있어왔다. 우리 시도에서 새로운 점은 이를 제도권에서 돌파했다는 점에 있다. 우리 대학은 2001년 이후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노동문제, 한국 자본주의의 문제, 대안적 경제체제 전략의 문제, 산별노조 건설 방안 등을 주제로 연구해왔다.

지금은 대안세계화 운동을 중심으로 젊고 훌륭한 연구자들이 모여서 연구를 하고 있으며, 2004년부터는 계간 <마르크스주의연구>를 간행해 왔는데, 이를 기반으로 하여 이번에 마르크스주의 연구 특성화 대학원을 열게 된 것이다. 얼마 전 서울대 김수행 교수님이 퇴임을 했는데, 후임을 뽑지 못했다. 우리나라 학계는 단지 서울대 경제학과만 그런 게 아니고, 거의 대부분의 대학 강단을 보수적인 주류경제학 입장의 미국 경제학박사들이 장악하고 있어서 맑스주의자와 같은 급진좌파 경제학은 물론 케인즈주의와 같은 온건 진보 경제학도 발을 붙이기가 힘들다. 다른 인문사회과학 영역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하지만 이번 세계경제위기에서 미국식 주류경제학, 주류 인문사회과학은 현실을 분석하고 대안을 강구하는 데서 완전히 무용지물이라는 점이 판명됐다. 이들은 단지 시장주의 체제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판명되었다. 그래서 현재 상황에 대한 총체적이고 구조적인 접근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주류경제학, 주류 인문사회과학이 기득권의 아성을 구축하고 있는 기존 학계는 여전히 이와 같은 사회적 요청을 외면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나서게 된 것이다. 세계대공황이 다가오면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넘어선 대안을 모색하는 급진적인 사상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맑스주의 방법론에 입각하면서도 21세기 변화된 조건에서 또 한국사회와 세계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용하기 위해 창조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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