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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8/07
    외물(外物)
    흑무
  2. 2009/08/07
    꿈을 안고....
    흑무
  3. 2009/08/07
    '10분만 문밖에서 기다려라'
    흑무
  4. 2009/08/07
    두 가지 삶
    흑무
  5. 2009/08/07
    아는 만큼 보인다?
    흑무
  6. 2009/08/07
    먼 길을 가네
    흑무
  7. 2009/08/07
    2도 변화
    흑무
  8. 2009/08/07
    사람이 항상 고상할 필요는 없다
    흑무
  9. 2009/08/07
    사랑하다 헤어질 때
    흑무
  10. 2009/08/07
    내 서른살은 어디로 갔나
    흑무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때때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십시오.
자신이 겪고 있는 행복이나 불행을
남의 일처럼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순간순간 맑은 정신으로 지켜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행복과 불행에
휩쓸리지 않고 물들지 않습니다.


- 법정의《일기일회(一期一會)》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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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인내

결혼과 인내


결혼은 사실 냉혹한 현실입니다.
그것은 삶에 대한 십자가를 지는 체험이지요.
나는 당신이, 자신을 압박하는 필연적인 운명에
대항해서 싸우기보다는 인내를 배우기 바랍니다.
그래야만 당신은 중심에 설 수 있습니다.


- 융C. G. Jung의《사랑에 대하여》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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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놈의 정신머리

근데 정신머리가 뭐지.. 정신이 없는데 그런 정신을 낮추어부르는 말인가..?

 

나는 정말 물건을 잘 잃어버리고 또 못찾는다.

우선 잃어버리는 문제는.. 나는 내가 기억하는 한, 내 돈주고 지갑을 사본적이 없다. 엄마에게 선물로 들어온 지갑, 심지어 아빠 지갑을 얻어서 쓴다. 왜? 잃어버릴 때를 대비하야 아까우니까.. 지금껏 중학생때부터 몇 개의 지갑을 사용해왔는데 지갑이 바뀌는 이유는 단, 단, 단 하나. 이전 지갑을 잃어버려서 이다.

 

덜렁거려서 아무곳에서 쓴 물건, 예를 들면 학원에 다녀와서 문제집을 아무데나 두고 그 뒤로 못찾아서 학원을 안가는 이런식.. 성질을 더러워서 분명 어제가져온 문제집이 어디있는지 찾아지지 않으면 울며불며 책장을 다 뒤집고 찾다가 학원시간이 끝나 못가는 그런 케이스..

 

지금은 그렇지는 않은데(울지는 않는다는 뜻) 막 열이 가슴으로 쑥 쑥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그럼 옆구리에 손을 얹고 큰 숨을 쉬며 물건을 찾는다. 예를들면 엠피쓰리 케이스에 열쇠를 넣어놓고 아무리 찾아도 열쇠가 없다거나 지금 입고 있는 바지에 챕스틱을 넣어놓고 미친듯이 찾아다닌 다던가 손에 핸드폰을 쥐고 핸드폰을 찾아다닌 다던가.. 늙으면 치매올까 무섭다. 미리 치매 보험을 들까.. 쳇.

 

이번엔 여권이다. 도대체 여권을 어디에 뒀는지 모르겠다.그간의 경험이 비추어 이전에 여권등록을 한 날이 언젠지 찾아봤다. 7월 초. 그 날은 집에 있던 날이다. 시간도 딱 집에 있을 시간.(고마워, 니 덕에 단서를 찾았어, 적어도 집에 있다는 얘기..) 사무실을 뒤져도 없기에 홈페이지를 뒤져보니 시간이 나와 뒤질 곳은 한 곳으로 줄었다. 어제 형과 함께 냉장고도 열어보고 속옷장도 뒤져봤지만 형과 나의 여권이 보이지를 않는다. 우리집이 넓지도 않다. 형과 나는 이구동성으로 이 좁은 집에 도대체 갈 곳이 없는데 어디갔느냐,를 외치며 찾다 지쳐 잠들었다. 한참동안 여권은 구경도 못해본 형에게 당신 사무실을 뒤지라 지침을 내리고서는 말이다..

 

아. 집만 뒤져도 되는 것은 고맙다.

아. 그런데 집에는 없단 말이다.

아. 속옷장까지 뒤져보면 그래도 꽤 뒤진것 아닌가.

어디있는가, 나의 여권아. 그리고 형의 여권아. ㅠ.

 

형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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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의 수요편지 - 자유인인가, 마름인가

젊은 벗에게,

   일곱 명의 고대생들에 대한 출교 처분이 내려진 지 한달이 지났습니다. 수구신문들은 교수들을 ‘감금’한 학생들에 대한 출교 처분은 당연한 일이라는듯 주장하기도 했습니다만, 방송을 중심으로 ‘감금’한 게 아니라 ‘붙잡거나’, ‘앞을 막았다’라고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감금’이든(구체적으로 어떻게 감금했는지?) ‘붙잡거나’ ‘앞을 막았건’, 학생들에 대한 출교 처분이 학교 당국의 자발성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과거와 다른 면을 보게 됩니다.

   19세기에 자유정신의 확산을 우려한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는 대학을 폐쇄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엔 그럴 필요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대학은 산업’이 되었고, 대학 당국자들은 신자유주의의 마름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초중고에서는 여전히 국가주의 이념에 충실한 마름이어야 교장, 교감이 될 수 있는데, ‘산업’이 된 대학에서는 신자유주의의 충실한 마름이어야 총장이 될 수 있고 또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국가주의 이념의 마름이든, 신자유주의의 마름이든, 교육자이기를 포기한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마름의 속성은 ‘자발적 복종’에 있습니다. 16세기에 18세의 젊은 나이로 ‘자발적 복종’이라는 문제작을 쓴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우리를 은밀히 노예로 만드는 유혹이다. 이에 비하면, 폭력으로 통치하는 방법은 그다지 겁나지 않는다.”

   저도 개인적으로 대학에서 제명 처분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학적부에서 ‘이름을 없앤다’라는 뜻의 ‘제명’ 처분과 ‘출교’ 처분이 거의 같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당시 침묵을 강요당했던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장기집권을 획책하는 독재 권력에 항거하자는 내용이 담긴 선언문을 작성하여 교내에 뿌렸다는 이유로 검거되고 중앙정보부와 대공 분실에 ‘감금’되어 조사받은 뒤에 풀려났는데, 곧 학교 당국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저에 대한 제명 처분을 알려주려 함이었습니다. 그 때 학교 당국자는 제 앞에서 당당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학교는 권위주의 독재 권력의 요구를 거역하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자발적으로 학생들을 억압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의 말을 인용한 이유가 이 점에 있습니다. 과거보다 오늘날의 마름들이 ‘자발적 복종’에 더 적절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민주화된 시대’는 신자유주의와 결합되어 ‘마름들의 시대’가 된 듯합니다. 마름들이 가장 경계하고 싫어하는 대상이 자유인입니다. 고대생들에 대한 출교 처분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자발적 복종’을 내면화한 마름들이 자유인들을 억압하는 시대상을 반영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왜 싸워야 하는지, 다시금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의 말을 인용해 봅니다.

   “많은 선 가운데 단 하나의 고결한 선이 있다. 그것은 자유이다. 우리가 만약 이것을 잃어버린다면, 곳곳에 악이 창궐하며 남아 있는 다른 선에서도 어떠한 맛과 흥미를 느낄 수 없게 된다. ‘자발적 복종’은 모든 것을 망가뜨리며 자유만이 유일하게 선을 정당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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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을 정리하다 발견한 2006.05.24자 [홍세화의 수요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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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속에 잠이 들고, 기쁜 마음으로 일어났다

눈물 속에 잠이 들고, 기쁜 마음으로 일어났다


"눈물 속에 잠이 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꿈속에서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존재들이 나를 위로하고
즐겁게 해주어서, 나는 늘 새로운 기분과
기쁜 마음으로 일어났다." (괴테)


- 스티븐 라버지의《루시드 드림》중에서 -

 

요즘 꿈을 너무 많이 꾼다. 자고 일어나면 잠을 안잤다고 느껴질 정도.  왜 그럴까.

예전에 누군가와 이야기하며 '연금술사에 보면, 꿈이나 기타 등등 으로 우리에게 영감 혹은 길을 보여준다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자꾸 외면하니 결국에는 그 영감이나 반짝임이 사라지는 거라고 하잖아. 궁금해, 외면 안하면 뭘 보여줄지.. ' 라고 했었는데 그 뒤로 겁내 꿈을 꾼다. 겁이 많은 나는 '내가 그렇게 말해서 그런가.. ㅠ_ㅠ 자꾸 뭘 보여주려는 건가...' 하며 겁내하기도 하지만..

 

내일부터 만나는 꿈 속 주인공들을 다시 살펴봐야겠다.

 

참, 내 후배의 이야기. 그 친구는 늘 피곤해했다. 왜 그리 피곤할까.. 하다 늘 피곤한 이유 중 하나로 우리는 꿈을 꼽았다. 매일매일 꿈을 꾸는데 꿈이 우주전쟁, 지구전쟁이란다. 그래서 힘들단다. 푸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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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출 수 없는 이유

멈출 수 없는 이유

"바다에 사는 수많은 물고기 가운데
유독 상어만 부레가 없다. 부레가 없으면
물고기는 가라앉기 때문에 잠시라도 멈추면 죽게 된다.
그래서 상어는 태어나면서부터 쉬지 않고
움직여야만 하고, 그 결과 몇 년 뒤에는
바다 동물 중 가장 힘이 센
강자(强者)가 된다."


- 장쓰안의《평상심》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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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청소


청소는 매일 하는 데 의미가 있다.
때때로 한꺼번에 몰아서 하는 청소는 그 효과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나 자신도 매일 청소함으로써
'달성'의 소중함을 체감하고, 실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청소처럼 재미라고는 전혀 없는, 당장 어떤 도움도
주지 않고 대가도 없는 일을 착실히 매일 꾸준히
계속하는 것이 살아가는 데 무엇보다
큰 힘임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 가기야마 히데사부로의《머리 청소 마음 청소》중에서 -

 

글 보다, 우리집의 청소상태가 생각났다. 무지 더럽다. 먼지가 가득가득 쌓여있다. 널부러진 물건은 발에 채이고 더 지저분해 보임으로 마음이 동할때 하나씩 둘씩 치우는데 청소를 하는 것은 정말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청소도구는 친구들이 사준 청소기와 엄마가 사진 먼지제거기와 배우자의 강요로 산, 한 번쓰고 고장난 대걸레와 손걸레가 있지만 왜 그 어느것도 집고 싶지가 않을까.

 

손님이 와야, 온다고 해야 겨우겨우 치우게 되는데 손님이 집에 도착할때 쯤이면 반짝거리는 집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푸푸. 집이 좁다고 궁시렁댈때도 있지만 이 좁은 집 하나도 건사하는게 너무 힘든데 큰 집은 무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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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미터를 더 뛰었다"

그렇다고 내가
집안 배경이 좋거나
학벌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남들보다 훨씬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
내세울 만한 점은 10미터를 더 뛰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더 뛰다 보니 어느 시점부턴가
비약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걸 임계점이라고 하지 않는가.
임계점이 올 때까지 계속 10미터씩 더 뛰어보자.
6개월만 그렇게 해도 확실한 성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믿는다.


- 김영식의《10미터만 더 뛰어봐》중에서 -

 

바이올린을 꾸준히 하고 있는 둘째언니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고 연습하고 연주하는 것은 큰 행복인듯 하다. 주변의 시선이 좀 불편할때도 있지만 그것을 극복해나가며 바이올린 연주 자체를 즐거워한다. 음, 좋아보이고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에, 일상의 기쁨을 누리기에 아주 좋은 방법이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운동이든, 읽기 쓰기든간에.

 

그런데 그 바이올린 선생님이 언니가 연습을 해도 잘 안되는 스킬에 대해 말하길, 100번하면 어느새 그 연주를 할 수 있게 될텐데 사람들은 90번 95번까지만 연습해서 그 연주를 하지 못하고 흥미를 잃고 포기한다, 는 이야기를 했단다. 지난 달 수영을 배우며 안되는 팔젓기와 호흡을 연습하며 그 이야기가 퍼뜩 떠올랐었다. 친절하게 앞으로 10번만 혹은 100번만 더하면 팔젓기와 호흡을 잘 할 수 있다고 알려주면 더 좋을텐데 말이다. 풋, 내욕심이 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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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09.08월 - 은희경 인터뷰

소설가 은희경 “무거운 문학 벗고 가벼워지고 싶어요” 

 


한 원로 작가와 한국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뜬금없이 그가 물었다.
 
“그런데 요즘 은희경은 뭐한대?” 요즘 소설가 은희경(50)의 소식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1년에 한 권씩의 책을 낼 정도로 부지런한 그녀가 평소보다 조금 긴 쉼표를 찍고 있다. 신경숙, 공지영과 함께 ‘여성 작가 트로이카’로 불리며 1990년대를 풍미했던 은희경이었다. 신씨와 공씨가 요즘 서점가에 나란히 이름을 장식하고 있어 그녀의 소식이 더욱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은씨는 2007년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를 펴냈지만 장편소설은 2005년 <비밀과 거짓말>이 마지막이다.

태풍이 데려온 비구름이 장대 같은 비를 쏟아내던 날,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은씨는 근황을 묻는 기자가 무색하리만치 새로 시작할 일들에 대한 말을 쏟아냈다.

“오는 9월부터 문학동네 인터넷 커뮤니티에 새 장편소설을 연재하기로 했어요. 4년 전부터 쓰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잘 안 풀려서 고생했습니다. 이 소설을 해결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을 것 같아 연재를 결심했어요.”

지난 4년 동안 은희경을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은 15년간 스스로 쌓아올린 작가로서의 무거움이었다. 그래서 그의 요즘 화두는 ‘가벼움’이다. “작가로 데뷔한 지 15년 됐는데, 제 자신이 자꾸 무거워지는 거예요. 그런데 문학은 기본적으로 무거우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문학은 가르치거나 다 알고 있는 것을 말해주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발견해내고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자꾸만 이미 성취한 것들을 깊게 천착하는 단계로 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이제 첫 장편소설 <새의 선물>을 썼던 그 서툴고 불안하고 미숙했던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간 은희경의 ‘첫 소설’은 힙합을 좋아하는 17살 소년의 이야기다. 은씨는 “영원히 자라지 않는 남자들의 소년성”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제목은 ‘소년을 위로해줘’. 남자다움을 강요하고 과도한 책임을 요구하는 가부장제의 폭력에 대한 반대로서의 ‘소년성’에 관한 글이다.

“아들이 즐겨듣는 힙합 노래를 듣고 제가 경직돼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정제되지 않은 형식으로 쏟아내는 걸 듣고 진실된 힘과 에너지를 느꼈습니다. 소설은 굉장히 정제된 스타일의 완성도를 추구하는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제 스타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고요.”

새로운 문학의 몸과 마음을 얻기 위한 은씨의 뒤척임은 지난 몇년 간 그녀가 꾸준히 발표해 온 단편들에서도 그 징후를 읽을 수 있다. 그동안 은희경 소설의 키워드는 냉소와 위악이었다. 특유의 삐딱한 시각으로 세상의 모순과 인생의 비의를 심각하지 않은 문장으로 예리하게 드러냈었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쿨하다’는 말이 따라다녔다. 그러나 최근 그녀의 시선은 많이 둥글어지고 덤덤해졌다.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와 최근 계간지에 발표한 단편들을 보면 소설 속 주인공들은 세상의 비의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고독하게 자신의 좌표를 찾아 헤맨다.

“두려움과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필요한 태도”로써 애써 ‘쿨’하려고 했다면, 이제 긴장과 두려움에서 한결 자유로워진 그녀의 관심사는 ‘페어’, 즉 공정함으로 바뀌었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도 한 쪽이 덜 사랑하면 갈등이 일어나죠. 그때 쿨할 수는 없거든요.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하려면 내것을 유보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필수적으로 고독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죠.” 상대방의 감정을 내 것과 똑같이 인정하고, 상대방이 채워줄 수 없는 존재 본연의 고독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그녀가 말하는 ‘페어’의 뜻이 아닌가 짐작해본다.

1995년 서른여섯살에 등단해 그 해 첫 장편 <새의 선물>을 발표하며 한국 문단의 스타가 된 은희경. 지금도 문학에 대한 사랑에 신열을 앓으며 새로워지기 위한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문학이 왜 저한테 고맙냐면, 문학은 답이 아니라 질문이기 때문이에요. 답이라면 그대로 하려고 굉장히 경직됐을 텐데 문학은 질문이기 때문에 삶이 훨씬 유연해질 수 있어요. 항상 새로운 걸 발견하고 사고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제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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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노트

꿈노트


뭔가 특별한 고민이 있지만
똑 부러지게 해결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시간이 계속될 때,
그와 연관된 꿈을 꾸고 그것을 노트에 적어나가는
과정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직관과 통찰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보라.
당신 안에는 탐구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새로운 길들이 있다. 꿈에 관한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작업도 그 일환이다.


- 셰퍼드 코미나스의《치유의 글쓰기》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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