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대화 - 홍세화 vs 고종석, '사회연대'

 
"'불관용'마저 '관용'할 순 없다"
  '대화' <2> 홍세화 vs 고종석, '사회 연대' (상)
  2004-06-02 오후 1:42:07
  사회주의자 홍세화
  
  잘 알려져 있듯이 홍세화(57) <한겨레> 기획위원은 살아온 궤적이 남다르다. 1979년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으로 조국을 등진 그는 가족과 함께 프랑스에서 망명객 생활을 20년 이상 했다. 이 망명 생활 동안 그는 '삼중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가난한 외국인에게 닥친 물질적 어려움이 겉으로 드러난 고통이었다면, 고국에서 온갖 고초를 겪고 있을 동지들에 대한 죄책감과 동포들의 외면과 따돌림은 속 깊은 상처로 남았다.
  
  이 '삼중의 고통'은 그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경기중.고, 서울대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그는 한국사회에서 최상층에 속할 수도 있었던 사람이다. 이런 그에게 프랑스에서의 긴 망명 생활은 스스로와 한국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의 계기가 됐다.
  
 그는 1995년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창비 펴냄)라는 다소 낭만적인 제목의 책으로 망명 15년 만에 고국을 찾았다. '삼중의 고통'을 온 몸으로 떠안는 삶을 감동적으로 보여 준 이 책이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그는 '똘레랑스(tolerance : 관용)'라는 화두를 한국 사회에 던졌다. 그 후 그는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홍세화의 빨간 신호등>(이상 한겨레신문사 펴냄) 등의 책을 통해 '똘레랑스'로 시작된 그의 목소리를 '공공성(공익)'에 대한 강조로 확장하고 있다.
  
  망명객이 꿈꾼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그의 존재가 한국 사회에 큰 복임은 틀림없다. 그는 2002년 2월 영구 귀국 후, 사생활을 희생하면서 강행군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가장 민감한 주제들인 언론 개혁, 교육 개혁, 양심적 병역거부의 최전선에 항상 그가 있었다. <한겨레>의 칼럼니스트이자 기획위원, '학벌 없는 사회' 공동대표, 병역 거부자들과 지지자들의 모임인 '전쟁 없는 세상' 후원회장 등 그가 현재 맡고 있는 직함이 그 증거다.
  
  그는 스스로 사회주의자임을 자임하는 지식인 중 한 명이다. 그는 "소수가 혁명적인 생각을 갖는 것보다 다수의 생각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 더 혁명적"이라는 이탈리아의 사회주의자 그람시의 말에 동의한다. 그는 척박한 한국 사회에서 '사회주의자'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보다 사회민주주의 개혁을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믿는다. 그가 2002년 한겨레신문사 내에서 당적 보유 논란을 겪으면서도 민주노동당 당원의 정체성을 고수하고 있는 것도 이런 전략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자유주의자 고종석
  
  고종석(45) <한국일보> 논설위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자유주의자다. 역설적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하는 한국 사회에서 자유주의자라고 내세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좌ㆍ우 양쪽에서 환영 받지 못하는 어정쩡한 위치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어려운 '포지션'을 기꺼이 자청했고, 비교적 그 전략은 성공했다.
  
  한 문학평론가의 다음과 같은 얘기는 그에 대한 가장 정확한 묘사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어떤 좌파들보다도 더 좌파적이었고, 어떤 우파들보다도 우파적이었다. 인간과 세상의 진보를 아니 진보의 험난한 좌절들을 진실로 아파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그는 충실한 좌파였고, 많은 좌파들을 부끄럽게 만들 줄 안다는 의미에서 또한 충실한 우파였다."
  
 
  고종석 <한국일보> 논설위원 ⓒ프레시안

  당대 가장 독특한 문장을 소유한 이로 꼽히기도 하는 그는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책을 낸 에세이스트이자 세 권의 작품을 낸 소설가이기도 하다. <책읽기, 책일기>(문학동네 펴냄), <감염된 언어>(개마고원 펴냄), <언문세설>(열림원 펴냄), <국어의 풍경들>(문학과지성사 펴냄), <코드 훔치기>(마음산책 펴냄)는 많은 인문주의자들의 애독서로 자리 잡았고, <기자들>(민음사 펴냄), <제망매>(문학동네 펴냄), <엘리아의 제야>(문학과지성사 펴냄) 등의 소설 역시 평단과 대중 양쪽으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특히 그는 최근 <엘리아의 제야>에 대한 <조선일보> 동인문학상 심사를 거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본업은 기자이다.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한겨레신문>을 거쳐 1999년부터는 <한국일보>에 몸담고 있다. 그가 재직하던 당시 <한겨레신문> 문화면은 "가장 빛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21세기에 '희망의 원리'보다는 '책임의 원리'에 관심을 기울일 것을 요청한다. "윤리는 선에 대한 욕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악에 대한 저항에서 나온다. 선을 증진시키려는 노력은 악을 감소시키려는 노력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그는 스스로를 철저한 '휴머니스트'로 규정한다. 그가 "우리는 모두 이라크 인"이라고 주장할 때, 파병 반대 집회에 사람들이 적게 모이는 것에 마음 아파할 때, 그의 정체성이 확연히 드러난다.
  
  사회주의자와 자유주의자의 만남
  
  띠 동갑인 홍세화 위원과 고종석 위원은 남다른 인연을 갖고 있다. 1992년 고종석 위원이 언론인 연수를 프랑스에서 받으면서 처음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고 위원이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유학을 가면서 더욱 사이가 긴밀해졌다. 고 위원은 프랑스에서 "홍세화 선배에게 기대 살았다"고 그 때를 회고했다. 그 때문에 고 위원의 소설에는 홍 위원을 짐작케 하는 인물이 등장해 독자들을 즐겁게 하곤 한다.
  
  이런 각별한 관계를 미리 알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불꽃 튀는 논쟁 같은 건 기대하지 않았다. '사회 연대'를 화두로 진행된 대화는 엇나가기보다는 한 목소리로 모아지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우선 두 사람은 선거를 통한 정치적 변화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똬리를 틀고 있는 기득권 집단에 맞서 각 분야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언론 개혁, 교육 개혁, 빈부 격차의 심화에 대한 대응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이런 개혁에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또 그 지지자들이 좀더 나서지 않는 데 대해 아쉬움을 표시했다. '개혁', '실용주의' 같은 말보다는 행동이 필요한 때에 소모적인 논쟁에 시간을 허비하면서 개혁을 주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두 사람이 가장 큰 이견을 보인 것은 북한 체제의 개혁을 어떻게 이끌어 낼지에 대한 문제였다. 두 사람 다 공통적으로 한반도와 세계 평화에 끼치는 미국의 해악에 대한 인식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정부의 대미종속적인 외교ㆍ국방 정책에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고 위원이 그것과 함께 북한의 인권 문제와 민주화에 대한 문제제기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과 달리, 홍 위원은 미국의 규정력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이의제기가 더 시급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후배 기자들 앞에서 다소 어색하게 시작된 대화는 금방 활기를 띠어 대담 장소의 영업시간이 끝날 때까지 4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프레시안

  대담 전문을 2회에 나누어 싣는다.
  
  "기자 정당 가입 자유로워야 언론 감시 가능"
  
  프레시안 : 최근에 홍세화 선생의 '똘레랑스'에 관한 기사가 <프레시안>에 실렸는데, 감정적인 댓글이 많았다. 홍세화 선생의 민주노동당 지지 활동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주로 노무현 지지자들인 것 같은데,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언론인의 정당 활동에 부정적이다.
  
  홍세화 : 나는 <프레시안>이나 <한겨레>나 일종의 견제 언론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현재 상황에서 진보정당은 견제 세력이지 주도 세력은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내가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과 민주노동당 지지를 밝히는 것은 좀 차원이 다른 문제일 것이다.
  
  고종석 : 그런데 홍 선배의 논리를 더 밀고 나가면 언론인이 주도 세력인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에도 가입할 수 있다.
  
  홍세화 : 물론 앞으로는 그렇게 돼야지. 이제 앞으로 기자들의 정당 가입 여부가 관심거리가 안 되는 상황이 올 것이다. 또 그렇게 (기자들의 정당 가입이) 자유로워야 오히려 언론에 대한 감시가 가능하다.
  
  프레시안 : 고종석 선생은 기자들의 당원 가입 문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인 것 같다.
  
  고종석 : 사실 생각이 없다. 현재도 당적이 없고, 앞으로도 당적을 가질 가능성은 없을 것 같다. 원래 '당' 자체에 별로......
  
  홍세화 : (웃음) '당'이 일종의 '무리'잖아. 고 형은 '무리'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이야.
  
  프레시안 : 그것과 관련해 기억에 남는 고종석 선생 말씀이 있다. 지난 목요일(5월20일)에 방송된 에서 고 선생은 "나는 한번도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된 적이 없었다"고 얘기했다.
  
  덧붙여 고 선생은 "인간이 선천적 측면이 더 지배적이냐, 후천적 측면이 더 지배적이냐. 선천적인 게 더 큰 것 같은데 이렇게 얘기하면 위험하니까 후천적인 측면이 더 크다고 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인상 깊게 들었다.
  
  홍세화 : 사실 맞는 말이지.
  
  "인간은 다른 존재 배제하려는 '저급한 속성' 가져, 끊임없는 성찰 필요"
  
 
  ⓒ프레시안

  프레시안 : 최근 한 강연에서 홍세화 선생도 그런 뉘앙스의 말을 했다. "인간이 끊임없이 이성을 통한 자기 성찰을 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자기와 다른 존재를 배제하고 억누르려는 '저급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고 선생도 방금 언급한 말과 같은 맥락에서 "이제 인간은 '희망의 원리'보다는 '책임의 원리'를 강조해야 할 때"라며 "인간은 언제든지 추악해질 수 있기 때문에 이제 어떻게 하면 덜 추악해질 수 있을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런 얘기는 사회생물학자나 진화심리학자들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
  
  고종석 : 나는 사회생물학은 일종의 '이데올로기'로 몰아붙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과 우익 인종주의자들의 논리 체계의 유사성을 부각시켜 비난하지 않으면, 약육강식을 합리화하게 된다.
  
  프레시안 : 역설적이게도 미국의 진화심리학자들의 상당수는 민주당 지지자들이다. 그들도 홍 선생이나 고 선생의 주장처럼 '이성의 자기 성찰'을 중요하게 여긴다. 인간은 가만히 두면 '진화의 흔적'이 남아 있어 언제든 동물 상태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이성의 자기 성찰'과 제도를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고종석 : 물론 그런 식으로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딱 그 논리에서 더 나아가지 않으면 언제든지 우익 인종주의자들에게 이용당할 수 있다. 그 점을 우려해야 한다.
  
  프레시안 : 연관해서 교육의 효과에 대해서도 시각차가 있을 것 같다. 홍세화 선생의 경우 교육을 통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굉장히 강조하시는데 고종석 선생은 생각이 좀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고종석 : 교육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정도에 대한 입장 차이가 있을 거다. 홍 선배가 좀더 낙관적이다. 난 충분히 교육을 해야 하지만 들인 노력에 비해 변화는 좀 덜하지 않나 생각한다. (웃음) 하지만 일란성 쌍둥이도 환경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으니까 교육이나 환경이 사람을 변화시킬 여지는 많다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자라면 국가보안법 폐지 앞장서야"
  
  프레시안 : 고종석 선생은 한국의 대표적인 자유주의자로 꼽힌다. 본인은 이런 규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고종석 : 남들이 다 그렇게 얘길 하는데, 내가 생각해봐도 자유주의자가 가장 적당한 것 같다.
  
  홍세화 : 한국에서는 '자유'라는 말이 아주 이상하게 쓰인다. '자유세계'처럼 '자유'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해오지 않았나. 자유의 이름으로 사실상 억압하는 시대였던 셈이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다. 대표적으로 국가보안법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고종석 : 한국은 냉전의 최전선에서 독재정권이 주도해 성장을 해온 나라이다. '자유세계'라는 수사 뒤에 실제로 자유를 끔찍하게 억압하는 체제가 있었던 셈이다. 이렇게 '자유'가 오용되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어서, 일본의 우익들도 자기들 사관을 '자유사관'이라고 주장한다.
  
  자유주의자라면 국가보안법은 완전히 없애자고 얘기해야 한다. 대체 입법하는 식이 아니라 완전히 없애야 한다. 간첩죄는 형법으로 다 처벌이 가능하다. 송두율 선생도 국가보안법만 아니면 감옥에 가 있을 이유가 없지 않는가?
  
  "집단에 기대 있거나 숨어 있는 '벌(閥)'을 잡아야"
  
 
  ⓒ프레시안

  프레시안 : 자유주의를 얘기하기 위해서는 '개인주의'에 대한 사회적 기반이나 합의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한번도 개인주의에 대해서 제대로 고민을 해본 경험이 없다.
  
  고종석 : 제대로 된 시민혁명을 거치지 못한 탓이다. '독립적이면서 연대하는 개인들'을 시민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시민들이 사실상 부재했다. 프랑스나 영국은 왕의 목을 날려본 경험이 있지만 우리는 그런 적이 없다. 그러다보니 국가나 집단에 자기를 동일시하게 됐고. 단적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 같은 독재자가 죽었을 때 우리나라 국민들이 정말 '엉엉' 운 사실을 상기해보라.
  
  오늘 주제인 '사회 연대'는 상당히 프랑스적인 개념이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프랑스 제 3공화정에 레옹 부르주아라는 정치인이 있었다. 온건좌파로 국회의원도 여러 번하고 나중에 총리도 했다. 그때 부르주아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사이의 제3의 길로 '연대주의'를 주창했었다.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사회보장제도와 같은 제도를 매개로 사회를 통합해 나가는 방식. 이것이 바로 부르주아가 생각한 집단과 개인 사이의 제3의 길인 '연대주의'다.
  
  프랑스인들이 흔히 하는 말 중에 '서로 동화되지 않으며 힘을 합치기(se rassembler sans se ressembler)'라는 말이 있다. 이게 개인과 집단 사이의 연대와 통하는 것 같다.
  
  홍세화 : 개인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사회적 연대가 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은 중요한 출발점이다. 우리의 경우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 사촌쯤 되는 걸로 인식한다. 우리나라는, 이게 실상인지 허상인지 따져 봐야 할 부분이 있긴 하지만, 공동체ㆍ집단에 개인들을 끊임없이 동일시해 왔다. 이것을 국가, 민족 등의 개념을 통해 독재 권력과 같은 기득권 집단이 이용해왔고. 그러다보니 결과적으로 '집단 속에 숨어있는 이기주의자'들만 양산됐다. '사회 연대'라는 부분이 빈 데서 생긴 결과이다.
  
  고종석 : 동의한다. 개인들은 이기적이고, 이 이기적인 개인들이 흉측한 집단으로 통합된 사회가 바로 한국 사회이다.
  
  홍세화 : 집단에 기대 있거나 집단에 숨어 있는 '벌(閥)' 같은 것들. 이 '벌'을 잡아야 한다. 재벌, 학벌, 족벌, 파벌처럼 '벌' 속에 숨어서 '벌'을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는 것, 이것을 개혁하지 않으면 결코 한국 사회의 개혁과 성숙을 모색할 수 없다.
  
  "자유주의 세력인 열린우리당은 '벌(閥)'을 얼마나 잡을까"
  
  프레시안 : 정치적으로는 스스로를 자유주의 세력으로 규정하는 열린우리당이 의회 권력을 장악했다. 하지만 개혁은 정치를 바꾸는 것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소득격차의 심화, 교육문제, 언론개혁, 지역차별 등 자유로운 개인이 바로 서는 것과 사회 연대를 가로막는 많은 문제들이 산재한다.
  
  고종석 : 넓게 보면 열린우리당은 자유주의 세력이다. 엄밀히 말하면 미달하겠지만. 이들이 정말 자유주의 정치 세력인지는 홍 선배가 말했던 벌을 타파하는데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판별할 문제다.
  
  그러나 사회 연대라는 측면에서 열린우리당은 턱 없이 모자라는 정당이다. 열린우리당은 프랑스와 비교하자면 시라크를 정점으로 한 현재 프랑스 집권당인 우파 정당과 비슷한 이념적 스펙트럼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무래도 사회 연대를 강조하는 것은 사회주의자들이다. 사회민주주의는 사실 이론적인 이념 체계라기보다 유럽 사민주의 정당의 정책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폭이 아주 넓다. 적어도 프랑스 사회당 정도의 이념적 스펙트럼과 정책을 가지고 이어야 사회 연대를 구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지금 열린우리당에게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이 개인들을 각종 '벌'로부터 해방시키는 계기를 마련할 수는 있지 않을까?
  
  홍세화 : 열린우리당이 지'벌', 즉 지역주의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분명하다. 또 구닥다리 문'벌'에 반대해 호주제 등을 폐지하는 것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만큼 다른 '벌'들에도 단호한 모습을 보여줄지는 좀 두고 봐야겠다.
  
  특히 자유주의와 관련해 한국 사회의 재'벌'에서 '벌'적 성격을 뺄 수 있을 것이냐, 또 학'벌'에 반대할 수 있을 것이냐, 이게 굉장히 첨예한 문제가 될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또 사회 연대가 필요한데, 열린우리당이 그런 세력은 못 되는 것 같다.
  
  고 형이 프랑스 우파와 열린우리당이 비슷하다고 보는 시각에 한편 동의하면서도,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부분이 있다. 프랑스의 경우엔 공화주의 전통이 있었고 이게 우파에도 담겨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이 우리에게는 비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사회 연대를 주로 좌파 정당이 강조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꼭 연대라는 말이 아니더라도 공화주의에는 '공익성'이 포함돼 있다. 한국에는 이런 공화주의가 제대로 정립돼 있지 못하다. 이 부분이라도 열린우리당이 제대로 해주길 바란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 선언만 있고 내용 없어"
  
  고종석 : 홍 선배가 말씀하신 공화주의를 열린우리당에서 기대하기는 좀 어렵지 않나 싶다. 공화주의는 시민혁명의 결과로 조금씩 쌓여온 것이다. 우리는 그런 시민혁명의 전통이 없다. 거기다 우리는 미국을 추종하는데, 미국을 프랑스와 비교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미국이 공화주의 국가가 아니다"라고 종종 얘기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상징적인 것인데, 프랑스에서는 대통령이 선서를 헌법 앞에서 한다. 미국 사람들은 성경을 놓고 한다. 거기서부터 큰 차이를 드러낸다. 프랑스는 미국보다 훨씬 세속적, 비종교적이다. 종교가 사회생활에 침투하지 않는다.
  
  또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프랑스의 공화주의에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보다 사민주의적 자본주의의 가치가 더 많이 들어가 있다. 경제적 가치보다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고, 막연한 자유보다 연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처럼 유럽의 공화주의 정신을 우리나라에 도입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홍 선배가 공화주의를 얘기하는 건 참 적절하다고 본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선언만 있고, 선언의 내용을 채워 넣기 위한 노력이 지금까지는 없었다. 홍 선배가 얘기한 공화주의 정신, '공익성'에 대한 강조를 열린우리당과 같은 자유주의 정파나 민주노동당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홍세화 : 한 나라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사회 구성원들이 그 가치를 공유하고 다듬어나가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한국사회 구성원들은 헌법 제1조에서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규정했다. 그런데 그런 규정을 통해서 과연 구성원들이 무슨 가치를 공유하고 있느냐, 참으로 참담하다. 나는 그것을 역사적 맥락에서 본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결국 공화주의가 강조하는 것은 그 어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공적인 이익이다. 공익성이 공화국의 출발 정신이다. 프랑스에서 흔히 얘기하는 공화주의는 바로 공익성에서 출발해 그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이게 그들이 연대로 갈 수 있는 기본적인 토대이다.
  
  그건 마치 우리 조상이 홍익인간이라는 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과 상통한다. 가령 우리 조상들이 갖고 있었던 가치를 토대로 해서 정치를 제도화했다면 그 제도에는 분명 홍익인간이라는 정신이 살아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이라고 규정한 이상 적어도 그 어원에 담겨있는 정신은 같이 공유할 수 있도록 교육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사회 구성원들이 공화국을 통해 인식하는 것은 오직 대통령을 뽑는 것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공화주의의 공익성을 강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고종석 : 프랑스 사람들은 '통합되고 나뉠 수 없는' 공화국이란 표현을 자주 쓴다. 그 안에는 '벌'로 나누어 배제하는 게 아니라 다 끌어안는, 사회 연대라는 가치가 담겨져 있다.
  
  "앵똘레랑(불관용)마저 똘레랑(관용)할 순 없다"
  
  프레시안 : 똘레랑스는 홍세화 선생을 통해 한국에서 중요한 사회 원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것에 대해서 잠시 얘기해보자.
  
  고종석 : 홍 선배가 유행어를 만들었다. (웃음) 볼테르가 했다는 유명한 말도. '난 네 견해를 반대한다. 그렇지만 네 견해 때문에 네가 탄압을 받는다면 네 편에 서겠다.'
  
  프레시안 : 홍세화 선생이 똘레랑스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부에서는 프랑스 맥락에서 쓰이는 똘레랑스를 한국 사회에 그대로 대입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홍세화 : 프랑스에서 똘레랑스가 강조되는 것은 그 사회가 그만큼 엥똘레랑스하다는 걸 반영하는 것이다. 네덜란드와 비교해보면 특히 그렇다. 네덜란드의 경우 동성애자의 결혼권이 인정되고, 연성 마약도 허용되고 있는데 프랑스는 금지돼 있다.
  
  프랑스가 과거에 너무 엥똘레랑스가 많았기 때문에 똘레랑스가 요구된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도 대단히 엥똘레랑스한 사회기 때문에 똘레랑스를 얘기하는 것이다. 내가 똘레랑스를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프레시안 : 고종석 선생은 똘레랑스에 대한 이견은 없나?
  
  고종석 : 전혀 없다.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똘레랑스라는 개념에는 앵똘레랑(intolreran : 불관용)을 똘레랑할 수 없다는 게 포함돼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서 우리 사회의 극우파, 스탈린 시기의 소련, 문화혁명 시기의 중국, 크메르루즈 시기의 캄보디아, 이런 것에 대해선 결코 똘레랑해서는 안 된다. 안 되면 힘을 써서라도 제거해야지. (웃음)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직면한 문제 중 하나가 북한이다. 북한은 현재 주석이 가장이고 나머지 인민들이 가족과 같은 하나의 체제를 이루고 있어서 그 체제와 민중을 분리하기가 참 어렵다. 이런 북한 체제에 대해서 나는 어떤 이유로든 용납하기 어렵다. 물론 50여년동안 미국의 경제적 봉쇄를 겪고, 지금은 없지만 핵무기가 휴전선에 배치돼 있는 위협 속에서 정상적인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것을 고려해도 용납할 수 없다.
  
  북한은 그야말로 자본주의 이전 봉건 왕조 국가다. 물론 용천역 폭발 사고로 불행을 당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또 계속해서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 하지만 북한 인권 문제 역시 거론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에 짓눌린 북한, 현재가 최선인가"
  
 
  ⓒ프레시안

  프레시안 : 그런 주장은 '북한민주화네트워크' 같은 우파의 주장과 연결될 수 있다.
  
  고종석 : 나도 우파적 시각과 겹쳐 찜찜하다. 홍 선배는 어떤가?
  
  홍세화 : 글쎄...... 나는 지금 북한 체제에 대해서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게 유효한가, 이런 의문이 든다. 나도 물론 북한 체제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고 형도 얘기했듯이 더 중요한 것은 미국과의 관계라고 생각한다.
  
  고종석 : 그 부분에 대해서는 홍 선배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문제의 크기를 비교하자면 그게 훨씬 더 큰 문제다. 미국에 짓눌려 북한 체제가 뒤틀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 뒤틀린 정도와 형상이 저렇게 추해도 되는가, 그 상황에서 과연 저런 모습이 최선이었는지 안타깝다.
  
  홍세화 : 그건 역사적 맥락과 관련이 있다. 북한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민 혁명을 거치지 못했다. 그런데 북한은 조선시대까지는 정말 변방이었다. 그들은 반상구분에 따르면 '상놈'이었다. 반란도 항상 그 지역에서 일어났고, 또 항상 실패했다. 늘 객체였는데 비로소 주체 대접을 해 주는 권력이 들어섰다. 그게 북한 인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수세기에 걸쳐 처음으로 자기들이 주인인 사회를 만든 것이다.
  
  고종석 : 초기 북한은 어땠을지 모르지만 현재 북한 인민은 동질적이지 않다. 그 안에도 공산주의 하에 노멘클라투라(관료)처럼 특권층이 있을 것이다. 또 평양을 중심으로 존재하는 특별한 인민들과 그렇지 못한 인민들이 있다.
  
  홍세화 : 나는 현재 그런 체제를 강요한 것에도 미국에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고리는 역시 미국이다. 북한이 '악의 축'이 아니라, 미국이야말로 항상 악의 축이 필요한 국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북미관계에 남북관계를 종속시키고 있는 점에서 참여정부가 김대중 정부보다 훨씬 뒤떨어진다. 북핵문제가 북미 간 문제라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그런 미국이 만든 판에 묶여 있으니...
  
  고종석 : 미국이 이라크에서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후세인 정권을 우리가 지지하지는 않는다. 이라크 전쟁의 동기를 포함한 모든 것에 대해서 미국을 비판해야 하지만 그것이 후세인 정권에 대한 동정으로 가서는 안 될 것이다. 사실 둘 다 사이좋은 동업자 사이였는데, 힘센 쪽에서 배신을 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북한도 마찬가지 아닌가?
  
  홍세화 : 그 부분은 좀더 정확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과연 한반도 평화를 바랄까? 절대로 바라지 않는다. 현재 남한은 북한보다 여러모로 우위에 있다. 남한이 이렇게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쥐고 있을 때 북한의 인권 문제나 민주화에 대한 요구를 해야 할 것이냐, 이것은 굉장히 고민되는 부분이다.
  
  고종석 : 나도 그런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까 나왔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그런 맥락 속에 배치돼 버리는 게 꺼림칙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체제 자체가 굉장히 비정상적이고 조금이라도 교정해야 할 체제인 것은 사실이다. 홍 선배 말대로 미국이 평화를 원하지는 않겠지만 한반도 자체가 미국의 영향권 하에 드는 통일을 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평화적으로 안 되면 무력으로라도 말이다.
  
  홍세화 : 그 지점에서는 생각이 다르다. 한반도의 긴장이 지속될수록 미국 자본의 이익이 극대화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나?
  
  통일된 한반도를 미국이 자신의 영향권하에 두고 싶을 때는 중국에 대한 견제가 노골화된 뒤일 것이다. 지금은 중국에 대한 견제를 노골화하지 않은 채 북한에 대한 견제를 빌미로 일본을 끌어들일 수 있고, 또 일본과 남한에 MD를 팔아먹을 수 있다.
  
  "미국-중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가 최선"
  
  프레시안 : 우리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미국 헤게모니에서 벗어나 중국, 일본과 함께 동북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일이다.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과연 미국 헤게모니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능할까? 고종석 선생은 비관적으로 보는 것 같다. 홍세화 선생도 결코 쉽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다. 설사 미국 헤게모니에서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중국과 일본의 팽창적 민족주의에 저항해야 할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고종석 : 이건 국제문제 전문가들이나 할 수 있는 얘기인데. (웃음) 나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비록 통일이 된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헤게모니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통일 자체가 미국 헤게모니를 극복하는 지난한 과정이 될 수도 있고.
  
  또 통일이 된다고 하더라도 중국이나 일본과의 관계가 문제가 될 텐데, 특히 향후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강대국 중국과의 관계는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중국에 대해서는 그게 그 나라가 가진 속성이든, 큰 나라의 속성이든 미국보다 우리나라에게 좀더 친절할 거라는 확신은 없다. 통일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가 지금 미국과의 관계보다 더 좋을 것 같지 않다.
  
  프레시안 : 현재 <프레시안>에 연재되고 있는 박노자ㆍ허동현의 '한국근대 1백년 논쟁'에서 두 사람이 미국을 보는 시각은 사뭇 다르다. 허동현 교수는 "우리나라가 미국 헤게모니 밑에 있는 게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물론 박노자 교수는 이에 반대해 미국 헤게모니에 벗어나야 할 당위를 얘기했고.
  
  고종석 : 물론 우리가 미국에 대해 적대감을 갖는 것은 정당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중국이 우리나라에게 결코 친절한 친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과거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서 '종속 관계'가 아니라 '동아시아 외교 질서'라고 주장을 할 수는 있겠지만, 과연 중국도 그렇게 생각할까? 중국이 우리나라를 보는 시각은 과거 속국이라고 보는 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한계이자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중국의 힘을 빌려서 미국의 힘을 견제하는 그런 방법 말이다. 장기적으로 국민국가가 해체되지 않는다면 이것은 우리가 계속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홍세화 : 결국 기본적인 출발점은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갈등의 정점에 분단국인 우리나라가 위치해 있다는 것일 테다. 대륙 세력은 러시아와 중국이 되겠고, 해양 세력이 미국과 일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반도국이 갖고 있는 일종의 운명이다.
  
  과거 유일한 강대국이었던 중국에 편입돼 있었던 것이, 해양 세력이 강해지면서 결국 갈등의 장소가 됐고 이것이 가장 나쁜 상태로 균형을 이루면서 분단으로 이어졌다. 그런 면에서 반도국이 갖고 있는 지정학적인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최근의 6자 회담도 결국 이런 한계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고.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또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 거기다 현재는 일본이 사실상 미국의 강한 영향력 하에 놓여 있다.
  
  우리나라가 강대국 사이에서 능동적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겠다. 방금 고 선생이 말씀하신 대로 양대 세력 사이에서 긴장 관계를 가지면서 나아갈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아까 잠시 얘기가 나왔지만, 참여정부의 외교ㆍ국방 정책은 그런 점에서 크게 미흡하다.
  
  "이라크전도 북핵위기도 모두 미국 문제"
  
  홍세화 : 그렇다. 특히 나는 동북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데 있어 미국이 큰 걸림돌이라는 인식을 절실하게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인식을 바탕에 깔고 지금이야말로 기존의 외교ㆍ국방의 변화를 조심스럽게 모색해야 할 때라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재 외교ㆍ국방 라인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 자체가 미국의 영향하에 있는 사람이라서 이런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개혁 세력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을 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과연 이런 외교ㆍ국방의 변화에 대한 긴장감 없이 말해지는 '동북아 번영' 이런 얘기가 얼마나 내실이 있을지 의심스럽다.
  
  현재 남북 교역은 북핵 문제의 원활한 해결을 위한 전제 조건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런데 현재 노무현 대통령 등은 '북핵 위기'라는 미국의 입장에서 나온 얘기를 그대로 믿고 있다. '북핵 위기'라는 말이 과연 온당한 말인가? '북핵 위기'가 어떻게 증폭됐는지를 살펴본다면 그것은 오히려 북한의 문제라기보다는 미국의 문제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마치 팔레스타인 문제를 이스라엘의 시각으로만 접근하듯이, 북핵 문제 역시 미국에 입장에서 세계 언론에 유포되는 균형 감각이 없는 얘기들만이 진실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다"는 식의 주장들에 국내 언론들도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또 한국 사람들도 여기에 많은 영향을 받고. 이런 상황에서 그런 새로운 국제 질서를 모색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고종석 : 리영희 선생이 1970년대에 이미 '베트남 문제가 아니라 미국 문제로 봐야 한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이라크 문제도 사실은 미국 문제이고, 북한 문제도 결국 미국 문제라는 얘기에 동의한다.
  
  홍세화 :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지정학적 위치에서 오는 한계 등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에 더욱더 남북관계를 북핵 문제란 북미관계에 종속적인 것으로 보기보다는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남북관계를 동북아 평화체제의 관점에서 보면서 자신 있게 밀고 나갈 때, 그것이 북미관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고, 그 속에서 북한 체제의 변화를 얘기할 여지도 생길 것이다.
  
  "미국은 유일하게 문화ㆍ역사적 우위 없는 제국"
  
  고종석 : 미국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이게 여전히 중요한 것 같다. 최근에 한 외신에서 '이라크 포로 학대'에 관한 특집을 봤다. 기자가 이번에 포로를 학대한 잉글랜드 일병의 고향을 찾아갔다. 물론 잉글랜드 일병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상당수 주민들은 "잉글랜드는 소풍간 게 아니라 싸우러 간 것이다. 이라크도 테러로 우리 시민들 수천명을 죽이지 않았느냐", 이렇게 얘기하더라.
  
  놀랍게도 9ㆍ11 테러에 이라크가 연루돼 있다고 믿는 미국 시민들이 많다. 세상 사람이 다 아는 진실을 미국인들만 모른다. 여기에는 미국의 자본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언론 탓도 크겠지만. 미국 유권자들의 이런 현실은 참담하다.
  
  홍세화 : 고 형이 좋은 지적을 했다. 한 프랑스 지식인이 "지구의 미래가 어둡다"는 얘기를 했다. 미국 얘기를 한 것이다.
  
  그는 미국이 지금까지 존재했던 제국과는 큰 차별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누구한테도 견제당하지 않는 '전일적인 패권'을 가지고 있다. 또 전 지구를 파괴할 수 있는 강력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 지적은 매우 흥미로운데, 지금까지 존재했던 제국들은 정치, 경제, 군사적 우위와 함께 문화, 역사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의 경우에는 바로 이 문화, 역사적인 우위가 없다. 이것이 부시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이유일 테고, 고 선생이 지적한 미국 사람의 현 상황에 대한 인식 수준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국제법도 유명무실해졌고, 국제연합(UN)의 권위도 사실상 사라졌다. 이제 미국을 좀더 정확히 바라봐야 한다. 최근 이라크 파병 문제도 그렇고. 좀더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고종석 : 한 가지 덧붙여 얘기할 게 있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전후 변화가 매우 궁금하다. 미국과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 너무 달라지지 않았느냐?
  
  이 양반이 처음부터 거짓말을 했던 것인지, 당선된 후에 달라진 것인지... 이것은 혼자 해본 생각인데 미국을 방문해 '오버'할 때는 끔찍한 압력을 받은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런 게 아니고서는 이해가 안 됐기 때문이다. 줄 거면 주는 사람답게 당당하게 처신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국내 정치에서 당당한 모습과 너무 차이가 나서 기이했다. 홍 선배는 그런 생각은 좀 해봤나?
  
  홍세화 : 나도 미국에 대한 인식, 노사 관계 이런 면에서 왜 그렇게 쉽게 변했는지 잘 모르겠다. 지역 문제에 있어서는 그렇게 완고한데.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노무현 대통령이 여타 사안에 대해서 매우 피상적으로 인식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노사관계만 해도 사회구조적인 고민을 하기보다 인권변호사 활동하던 시절에 시혜적인 자세, 이렇게만 생각했고. 그것이 막상 대통령이 되자 편리한 방향으로 합리화됐고. 안타깝지만 이런 생각을 해본다.
  
  고종석 : 그를 지지했던 사람으로서 '피상적 인식'이라는 말을 들으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웃음) 혹시 육체적 공포를 느낄 정도로 미국이 강한 위협을 가한 게 아니겠느냐, 나는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노무현 대통령 복권 후 또 총선 후 열린우리당은 실용주의를 얘기한다. 이게 홍세화 선생이 앞에서 지적한 '피상적 인식'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홍세화 : 나는 잘 모르겠다. 구체적인 어떤 정책이나 이런 것으로 그 실체가 드러나야 하는데, 말만 무성하다. 말로 실용주의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미리 몸조심하는 수준에서 내놓는 면피용 아닐까? 잘 모르겠다. 내용이 있어야지.
  
  고종석 : 동감이다. 이제 개혁이란 말은 좀 안 들어도 좋다. 대신 국가보안법 폐지 할 건가, 말 건가, 이런 식으로 아주 구체적인 정책으로 얘기 했으면 좋겠다. 사법개혁도 말하지만 말고 구체적으로 뭘 할 건지, 그런 얘기를 듣고 싶다. 하는 일마다 개혁을 표방하는데 구체적 행동은 없고, 실제로 개혁되는 것이 없으니, 개혁이 이제 지겹다. '개혁 피로감'이란 말도 생기지 않았나.
  
  "뒤집힌 거 바로 잡을 때에 '김혁규 논쟁' 해야 하다니..."
  
 
  ⓒ프레시안


  홍세화 : '피상적 인식', 이런 말을 들으면 노무현 지지자들이 또 섭섭해 할 텐데. 갑갑하다.
  
  하지만 희망이 보이는 일도 있다. 어제(5월21일) 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를 선고했다. 이것은 대단한 진전이라고 본다. 앞으로도 계속 싸움을 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런 희망을 보여주는 일 때문에 21세기에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고종석 : 앞으로 상급 법원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역사적인 판결이었다.
  
  홍세화 : 그런 점에서 나는 노무현 지지자들한테 정말로 궁금한 게 있다. 이제 열린우리당이 의회 권력을 장악했다. 지금이야말로 참여정부가 진짜 개혁을 강하게 추진할 수 있을 때다. 그런데 왜 개혁을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주저하나? 또 노무현 지지자들은 왜 그것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안 하나?
  
  고종석 : 아직 17개 국회가 개원도 안 했다. 좀더 두고 보자.
  
  홍세화 : 고작 얘기되는 게 언론개혁이다. 이제 충분히 할 수 있는 힘을 부여받았는데 열린우리당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 안 보인다. 또 처음부터 지지자들이 적극적으로 견인하는 모습을 보여야 국회의원들도 좀더 긴장을 하지 않겠나? 그런데 이렇게 위태위태한데 그들은 왜 문제제기를 안 하는가? 나는 이렇게 신뢰가 안 가는데. 내가 노무현 지지자가 아니라서, 그들에게 보이는 게 안 보이는 걸까?
  
  프레시안 : 요즘 노무현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김혁규 총리 지명'이 큰 논란거리다.
  
  홍세화 : 그런 게 개혁 세력의 논란거리가 된다는 것 자체가 아직 우리나라에 아까 말했던 공화주의, 공익성이 부재한 탓이다. 나는 일제 부역 세력을 정리하지 못한 채, 민족을 배반한 그들이 다시 지배 세력이 된 데서 그 원인을 찾고 싶다. 그 때문에 사익 추구 집단이 지배세력이 됐고, 그 뒤로 모든 공적 행위가 공익성에 기반을 두기보다는 사익 추구 행위로 변질됐다. 지금은 바로 그 뒤집어 입은 옷을 바로 입을 수 있는 중요한 때이다. 그런 중요한 시기에 고작 그런 논란을 벌이고 있다니......
  
  고종석 : 나는 도무지 김혁규 씨를 총리로 지명하는 노 대통령의 사고방식이 정말 이해가 안 된다. 그래 일 잘할 수 있다는 거 인정하자. 선거를 위해서 영남 출신을 총리로 지명해야 한다는 정치공학적 사고도 인정하자. 그런데 왜 굳이 한나라당에서 온 사람한테 이 개혁 시기에 총리를 맡겨야 하나? 다른 영남 출신 중에도 총리를 시킬 만큼 능력 있는 사람들이 없지 않을 텐데. 왜 한나라당 사람을 총리를 만들어야 하는 건지.
  
  홍세화 : 그런 게 실용주의 아닌가. (웃음) 나 역시 이해가 안 된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인식 수준이 차이가 나는 게 아닌가 싶다. 도대체 능력이라는 게 뭔가? 김혁규 씨가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하더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능력이 아니지 않는가?
  
  고종석 : 반세기 만에 역사적 전환기라는 얘기도 들리고, 열린우리당이 의회 권력도 장악했는데, 요즘 노 대통령의 스타일을 보면서 또 한번 마음이 뒤숭숭하다. 당선 후 계속 실망스럽고 그렇다.
  
  프레시안 : 고종석 선생은 끊임없이 노 대통령에게 실망하고 있는 것 같다. (웃음)
  
  고종석 : 맞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은 어느 정당에서도 자유로운 것 같다. 민주노동당이 의미 있는 정당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안에 있는 많은 분파들 중에는 내가 감당하기 힘든 원칙주의자들도 많은 것 같고.
  
  홍세화 : 들어와서 바꾸면 되지. 감당하기 어렵다고 불평만 하고 있으면 그게 바로 시민의식이 부족한 거야. (웃음)
  
  "패권적 지역주의, 저항적 지역주의, 덩달아 지역주의"
  
  프레시안 : 노무현 대통령이 지역문제에 아주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 역시 지역주의 타파를 얘기하면서 지역주의를 이용한 측면이 있다.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한국에서 지역문제, 지역차별의 문제는 아주 뿌리 깊다. 지역주의라는 게 사실 시민 개개인의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지배 카르텔이 쳐놓은 망에 포섭된 거라고 볼 수 있는데 말이다.
  
  고종석 : 경제적, 정치적 이익은 아닐 수 있어도 정서적, 감정적 이익은 있을 수 있다. 나는 전라도 사람이어서 지역주의에 대해서 제대로 말할 자신이 없다. (웃음)
  
  나는 일단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민주당 분당 과정은 크게 잘못 됐다고 생각한다. 열린우리당을 주도했던 사람들의 논리는 민주당은 지역당, 구체적으로 호남당이어서 앞으로 다수당이 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영남 의석을 얻기 위해서 호남 의석을 버리는 것, 이것은 기존에 한나라당이 했던 '영남 지역주의'로 가자는 것과 다름 아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도 실패한 전략으로 드러났다. 열린우리당이 영남에서 많은 표를 얻었는가? 결코 아니다. 또 설사 이런 전략으로 열린우리당이 영남 표를 많이 얻을 수 있었더라도 이것은 명백히 지역주의에 굴복한 것이다.
  
  이번에 민주노동당이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덕분에 약간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그 비율이 너무 낮아서 혜택을 받았다고 하기가 민망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 지적하고 싶다. 영남 유권자 상당수가 지역구는 한나라당을 찍고 비례대표는 민주노동당을 찍었다. 이것은 절대 민주노동당의 지지표가 아니다. 제 정신이 아니라면 그런 투표 성향을 보일 수 있겠나. 이게 과연 민주노동당 지지인가? 대단히 회의적이다.
  
  홍세화 :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나라당에 간 지역구 표야말로 영남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지역주의 산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에도 민주노동당과 한나라당은 거의 1% 내외의 지지율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고 형은 영남의 민주노동당 표가 단순히 열린우리당을 반대하기 위한 표라는 걸 지적한 것 같은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남 유권자들이 민주노동당에 대해서 얘도 괜찮은 것 아닌가, 하고 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고종석 : 프랑스에서 사회당에 한 표 주고 르펭의 인민전선(FN)에 한 표 주는 투표가 제 정신인가?
  
  홍세화 : (웃음) 그건 프랑스의 예이고 우리나라와 전혀 다르다.
  
  일단 민주당이 궤멸한 것은 지역주의의 성격을 배반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지역주의는 세 개가 있다. 우선 영남의 가장 강고한 '패권적 지역주의'가 있다. 이것의 어떤 부류는 구제불능 수준이다. 두 번째 호남의 '저항적 지역주의'가 있다. 이것은 마치 민족주의가 팽창적 지역주의와 저항적 지역주의가 있는 것처럼 저항적 성격이 있다. 호남의 그것은 당연히 독재 정권 하에서 저항적 지역주의가 가진 상대적인 건강성을 가졌다. 이런 호남의 지역주의와 영남의 패권적 지역주의를 같은 선상에 놓고 볼 수는 없다.
  
  이 둘보다 훨씬 그 강고성이 약한 충청도의 '덩달아 지역주의'가 있다. 이것이 지역주의의 가장 약한 고리였는데, 이번에 행정수도 이전 등이 맞물리면서 선거 결과 사실상 해소됐다. 그럼 민주당이 왜 이렇게 궤멸됐느냐, 그것은 민주당이 저항성을 갖고 있던 호남 지역주의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한나라당과 공조한 탄핵은 패권적 지역주의와 순방향이다. 이것은 호남의 저항적 지역주의와는 완전히 역방향이기 때문에 결국 그 저항성을 스스로 배반한 결과가 된 셈이다. 그리고 그 공백을 열린우리당이 호남에서 어부지리를 얻은 것이다.
  
  고종석 : 지금까지 한나라당의 선거 전략은 호남에서 표를 안 얻는 게 선거 전략이었다. 이 쪽에서 얻으면 영남에서 깎이니까. 영남 인구가 많으니 호남 표가 필요 없었다. 나는 이런 호남 배제 전략을 민주당 분당 과정에서 열린우리당이 썼다는 게 정말 실망스러웠다.
  
  정치적 지역주의는 1971년 대통령 선거 때 시작됐다고 본다. 그것이 뚜렷하게 그 모습을 띠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1980년 5월 광주 학살이었고. 그래 좋다. 한나라당을 지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전제조건이 있다. 최소한 영남 유권자들이 전두환과 직접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 알아서 제거를 해줘야 하지 않느냐. 그런 학살과 연루된 사람들이 들어간 한나라당은 정서적으로, 윤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화해는 가해자 쪽에서 용서를 빌 때 시작되는데, 최소한 영남 유권자들이 그런 사람들은 정치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그 때 우파정당이라고 하더라도 반공화주의 세력은 아니구나, 이런 안심이 들고. 그런 수준이 돼야 한나라당 후보가 호남에 와서 지지를 호소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유권자뿐만 아니라, 그런 사람을 공천하는 한나라당 지도부도 문제가 있지만 말이다. 내가 전라도 출신으로 말하기 어려운 얘기긴 하지만, 한나라당이나 영남 유권자들은 호남 몰표 이게 뭐냐, 너희들 먼저 열어라, 이런 말할 자격은 없다고 본다.
  
  물론 민주당이 탄핵으로 용서할 수 없는 정당이 되면서 나는 내심 호남 유권자들의 반 정도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거의 다 열린우리당으로 갔는데 이게 바로 호남 유권자들의 한계라고 본다. 그런데 이것을 보고 호남 유권자들한테 왜 너희들은 한나라당 안 찍었느냐, 열린우리당이 호남에서 얻은 지지율이 더 높다, 이런 식의 반론은 사태를 왜곡해 보는 것이다.
  
  홍세화 : 나는 다시 한번 민주노동당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얘기를 해보고 싶다. 지금까지 개혁이니 뭐니 이런 얘길 하면서도 끊임없이 역사적으로 변질되고 왜곡 되는 데에는 그것을 떠드는 사람들이 왼쪽 날개가 아니라는 데 있다. 흔히 얘기되듯이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지금까지는 왼쪽 날개가 없었고, 그것은 다시 말하면 그것이 움틀 몸통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과 똑같은 말이다. 날개라는 게 몸통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몸통이 없으니 당연히 내가 말했던 공익성 같은 게 있을 턱이 없고. 이제 몇 번의 유산 끝에 막 아기가 태어나려고 한다. 이제 겨우 왼쪽 날개가 움트는 순간이다. 고 형도 감당 못 한다, 이런 얘기만 하지 말고 민주노동당에 들어와라. (웃음)
  
  고종석 : 홍 선배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도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고 노력해보겠다. 어쨌든 민주노동당 원내진출은 역사적이다. 진짜 잘해야 할 텐데. 기대는 하면서 계속 지켜볼 것이다. 4년 후에는 지금보다 더 많이 얻기를 바란다.
  
  "비례대표제 확대, 국민 대표성 실현 문제"
  
  홍세화 : 아까 고 형이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 이익을 봤다고 하던데, 지지율 13%에 10석이면 대표성이 왜곡돼도 너무 왜곡된 거다.
  
  고종석 : 맞다. 열린우리당이 해야 할 일인데 과연 해줄지 의문이다. 사실 열린우리당도 40%도 안 되는 지지율로 과반수를 얻은 셈이다.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다 현 선거제도의 수혜자다. 민주노동당이 원내에서 싸우고 밖에서 여론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열린우리당 지지자도 정당명부 비례대표 확대에 동참하는 것이 이익이다. 거창하게 나라를 위한다, 이런 얘기 할 것도 없이 열린우리당을 위해서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확대되면 한나라당을 위축시키고 자유주의 개혁 세력이 늘어나는 효과가 생길 수 있다.
  
  홍세화 : 한나라당의 박세일 씨가 처음 정치개혁협의회에서 비례대표 의석을 100석 제안했지 않느냐. 그런 수준으로 열린우리당이 개혁을 추진할지 한번 지켜보겠다. 바로 그런 게 열린우리당이 추구하는 게 개혁인지 아닌지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물론 또 그 때가 되면 열린우리당은 그것은 다른 사안에 비해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겠지만 말이다. (웃음)
  
  고종석 : 한번 기대를 해 보자. (웃음)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국민 대표성이 얼마나 실현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여러 가지 개혁 과제가 있겠지만 가장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언론개혁일 것이다. 이것은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도 꽤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오늘 우리가 얘기할 '사회 연대'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학벌ㆍ족벌ㆍ파벌, '벌(閥)'을 해체하라"
  '대화' <2> 홍세화 vs 고종석, '사회 연대' (하)
  2004-06-05 오전 9:04:27
  사회주의자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과 자유주의자 고종석 <한국일보> 논설위원.
  
  10여 년간 지인(知人)으로 서로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두 사람의 대담은 정치적 민주화는 확장됐지만 빈부 격차 등 사회ㆍ경제적 민주화는 오히려 축소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사회 연대'라는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 그 답을 찾는 것으로 모아졌다.
  
  앞서 두 사람은 시민혁명을 경험하지 못한 한국 사회는 각종 집단주의가 독재정권에 의해 정치 이데올로기로 왜곡되는 과정을 거쳐, 그 결과 '집단 속에 숨어있는 이기주의자'들을 양산했다고 입을 모았다.
  
  외부로부터 이식된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서 형성된 재벌, 학벌, 족벌, 파벌 등 집단에 기대 있거나 집단에 숨어 있는 '벌(閥)'을 해체하지 않는 한 우리 사회에서 '사회 연대'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두 사람은 이번 4월 총선을 통해 의회 권력이 보수 우익 세력에서 자유주의 정당이라 자처하는 열린우리당으로 넘어간 것에 일정 정도 의미를 부여했다. 단 열린우리당이 진정한 자유주의 세력이라면 '벌'을 타파하는데 앞장서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특히 이들은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지금이야말로 노무현 정부가 개혁을 강하게 추진할 수 있는데, 정작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개혁에 나서는 것에 주저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두 사람은 노무현 지지자들이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개혁 과제를 수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4시간 동안 진행됐던 두 사람의 대담 뒷 부분에서는 언론 개혁, 교육 개혁 등 구체적인 개혁 과제와 관련된 얘기가 주로 오갔다.
  
ⓒ프레시안

  다음은 대담 뒷 부분.
  
  "상층 부르주아로 포섭된 기자들"
  
  프레시안 : 여러 가지 개혁 과제가 있겠지만 가장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언론 개혁일 것이다. 이것은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도 꽤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오늘 우리가 얘기할 '사회 연대'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언론 개혁이 말해진 지는 굉장히 오래됐는데 가시적인 성과는 여전히 안 보이는 것 같다. 언론 개혁을 추진하는 내부에서도 이견이 많이 존재하고.
  
  고종석 :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이 (언론 개혁이) 될 것처럼 얘기하는데 별로 기대는 안 갖고 있다. 신기남 의장이 구상하고 있는 상위 몇 개 신문사의 시장 점유율을 제한해 현재의 왜곡된 시장 구도에 변화를 가하는 식의 제도적 조치들이 이뤄진다 해도 여론시장을 바꾸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다.
  
  과점 언론들 즉 조중동 논조가 왜 그렇게 보수적이냐. 사주들이 정말 친자본적이고 수구적인 사람이라서 그럴까? 난 그렇게 보지 않는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기자 개개인이 부르주아가 됐다. 그전까지는 기자들 월급이 한국 사회 평균이거나 더 아래였다. 그래서 아래에서 한국 사회를 볼 수 있었다.
  
  <조선일보> 등은 월급쟁이가 받는 최고 수준의 월급을 받는다. 이렇게 되면 이미 '결단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적 상층부에 기자들이 들어간 것이다. 편집권 독립을 얘기하는데, 기자들이 편집장을 뽑는다고 좀 다른 논조를 주장하는 편집장이 뽑힐까? 데스크 눈치 보지 말고 마음대로 기사를 쓰라고 하면 기자들의 논조가 바뀔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기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상층 부르주아에 포섭됐기 때문에 자기가 속한 계급의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다.
  
  홍세화 : 고 형이 잘 지적했다. 프랑스 <르몽드> 기자들의 평균 봉급은 2만4천프랑이다. 우리나라 돈으로 계산하면 월 5백만원, 연봉 6천만원 정도다. 프랑스와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을 감안하면 거칠게 환산할 때 한 연봉 3천만원 정도라고 봐야 할 것이다. 프랑스와 비교해볼 때 조중동이나 방송사의 임금 수준은 너무 높다.
  
  고종석 : 이미 기자 개개인이 부르주아화한 현실에서 언론 개혁이 쉽지 않을 것이다. 방송만 해도 그렇다. MBC는 노조가 잘 떠받들어줘서 사장이 바뀌어도 개혁적인 논조다. 개혁적 사장이 간 KBS보다 더 개혁적이다. 하지만 얼마나 갈지 알 수 없다. 정권이 바뀌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15대 대통령 선거 당시 우익잡지인 <한국논단>에서 사상 검증할 때 방송 3사가 다 생중계했다. 이게 1996년, 고작 8년 전 일이다. 정치적 성황이 달라지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한겨레>가 창간된 지 16년이 넘었다. 물론 <한겨레>가 사회를 이만큼 바꾸는데 많은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다. 나도 그 신문사에서 한 때 월급을 받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한겨레>가 시장점유율에서 조중동을 뛰어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단 자본력에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한겨레>에 엄청난 규모의 자본이 들어가면 <한겨레>의 성격이나 기자들의 성향이 변할 게 뻔한다. 아무래도 기자는 좀 가난해야 할 것 같다. 너무 가난해서는 안 되지만...... 여론을 만드는 사람들이 사회가 너무 안락해서 '이대로 살아도 괜찮네',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문제가 있는 거다. 기자들은 약간 부족한 상태가 좋은데...... 이런 걸 법으로 못 만드나. (웃음)
  
  '조선일보 품질이 좋다'는 건 '한나라당 품질 좋은 정당' 격
  
  프레시안 : (웃음) 자유주의자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최근에 민주노동당 노회찬 총장이 <조선일보> 기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해 논란이 됐다.
  
  고종석 : 민주노동당 노회찬 총장이 <조선일보> 노동조합을 대상으로 강연해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 같은데, 일부 언론에서 너무 심하게 몰아붙이는 것 같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홍세화 : 노회찬 씨한테 노무현 지지자들이 엉겨 붙어서.......
  
  고종석 : 다만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노조가 초청해서 간 게 무슨 잘못이냐', 이런 식의 해명은 사태를 잘못 보고 있거나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조선일보>에서 일하면서 노조 가입자라고 생각이 다를까. 너무 계급 환원적인가? 물론 나는 지식인이고 계급을 초월해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걸 감안한다면 노 총장이 '<조선일보> 노조 초청' 핑계를 대는 것은 찝찝하다.
  
  한 가지 더 지적할 것은 노무현 지지자들이 노회찬 총장을 비판하기 전에 열린우리당 인사들의 <조선일보> 인터뷰 등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열린우리당 인사들에게는 그런 기준을 적용 못 하나?
  
  홍세화 : 노무현 지지자들에게 아쉬운 게 바로 그런 부족한 균형 감각이다. '안티조선'이란 대의에서 출발했다면 그런 부분을 짚어줘야 한다.
  
  나는 노회찬 총장 사건과 관련해서 딱 한 마디만 하겠다. 나는 '<조선일보>가 품질이 좋다', 그건 받아들일 수 없다. 내가 <한겨레>에 몸을 담고 있어서 때문은 아니다. 그런 노회찬 씨의 말은 내가 민주노동당에 있는 노회찬 씨에게 '한나라당이 품질 좋은 정당'이라고 말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는 얘기다.
  
  고종석 : 노회찬 씨가 잠을 못 이루겠다. (웃음)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신문사에서도 <조선일보>는 안 본다. 그래서 품질이 좋은지 안 좋은지 모르겠다. 내 경험 공간에 <조선일보>가 없기 때문에 관심 끄고 산다.
  
  "언론 개혁, 결국 국민 의식 문제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홍세화 선생이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없나?
  
  홍세화 : 고 형은 주로 기자들의 부르주아화에 주안점을 뒀다. 물론 중요한 부분이다. 조중동은 철저한 사익추구 집단이다. 그들이 가진 자본의 극대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그를 위해 언론 권력도 활용하는 것이다. 신문을 아주 성실하고 철저하게 자본의 극대화를 위한 무기로 사용한다. 그런 게 '편집이 좋다', 이런 걸로 나타나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개혁을 어떻게 할 것이냐, 제도화를 통해서 뭐가 가능할까? 그 폭은 아주 좁디좁다. 물론 좁은 폭이라도 제도적 개선은 꼭 필요하다.
  
  결국은 국민들 의식의 문제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프랑스에서 '국민의 신문' <한겨레신문>이 뜬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이제 정말 소통이 되고 올바른 여론이 만들어지겠다'는 기대를 가졌다. 뚜껑을 열어보면 그렇지 않다. 신문이나 언론이 (국민 의식을) 따라오는 것이지 언론만으로 변화가 가능한 게 아니다. 조중동은 특히 더욱더 그렇다. 언론 개혁도 그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고종석 : 신문 자체의 영향력이야 점점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권력이 신문에서 인터넷 매체로 간다고 해서 자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것이다. 지금은 거대 자본이 인터넷 매체에 뛰어들지 않고 있지만, <조선일보> 자체의 영향력이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조선일보> 자본이 인터넷 매체와 방송에 진입할 수도 있다.
  
  어려운 얘긴지만 언론 개혁은 작고 날렵한 게릴라 언론, 풀뿌리 언론, 이런 것들이 아주 많이 만들어질 때, 결국 인터넷 매체 형태가 되겠지만, 이런 매체가 여러 가지 분야에 포진해서 각개 약진할 때 가능할 것이다. 그나마 희망은 인터넷 매체에 있다.
  
  한 가지, 과점 신문에 바라는 건 악의적인 오보를 안 하는 것이다. '기자적 양심'에서 거짓말을 쓰지 않는 것 정도를 바랄 수 있을 것이다. '약자의 시각에서 봐라', '네 계급을 버리고 존재 이전을 해라', 이건 어려운 얘기이다. 미디어가 사회를 선도하는 건 여론 투쟁인데, 연대가 독립적 개인들이 서로 손을 잡는 것이듯 작은 언론들, 자본에 완전히 포섭되지 않는 언론들이 많이 생겨서 덩치는 안 되니까 수로 에워싸면서 싸우는 게 필요하다.
  
  홍세화 : 그런 면에서 독립 언론, 인터넷 신문, 비주류 신문, 공영방송의 노조가 정치적 입장의 차이가 있더라도 연대에 더 방점을 찍어야 할 것이다. 그런 게 참 힘들다. 경쟁대상끼리는 극복대상 앞에서 서로 차이가 있더라도 연대를 해야 한다. 이게 바로 기본 원칙이다.
  
  "우리는 모두 이라크인이다"
  
 
  ⓒ프레시안

  고종석 : 생물체로서 감각 기관에 한계가 있으니까 멀리 있는 것은 잘 안 보이는 법이다. 탄핵 정국에 수만명이 모여 광화문 촛불 시위하는 등 대처를 잘 했다. 요새 며칠 사이에 이라크 전쟁 반대 촛불시위를 했다. 오늘도 촛불 시위를 하는데 얼마나 모일지 걱정이다.
  
  전에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말하고자 하는 것은 별거 아니다. 우리는 '다 똑같은 사람이다'라는 얘기다. '우리는 모두 이라크인이다'라고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연대의 감수성이 인류 바깥으로 못 뻗어나간다는 점에서 난 철저한 '휴머니스트'이다. 그런 면에서 생태주의자들의 주장에 얼른 동감이 안 간다. 인간들 사이에 얼마나 문제가 많은데....... (웃음) 소말리아, 이라크, 팔레스타인에 억압받는 사람들, 아픈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그들에게 연민과 연대를 하기 위해 자기 감각을 열어놓으려고 애를 썼으면 좋겠다. 이라크도 문제지만 팔레스타인도 심각한 문제이다. 일제 시대 때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 팔레스타인이 처해 있다. 이스라엘은 사실상 미국 아닌가? 이스라엘, 영국, 일본은 사실 미국의 한 주나 다름없는 나라로 전락했다.
  
  프레시안 : 그런 면에서 언론에 불만이 많을 것 같다.
  
  고종석 : 프랑스 <르몽드>를 보면 바깥 문제, 특히 제3세계를 다룬 기사가 1면에 실리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우리 신문은 국제 소식이 크게 다뤄지는 경우가 드물다. 그런 점에서 '이라크 포로 학대' 문제를 <프레시안>에서 비중 있게 다룬 것은 잘한 것이다. 사실 나는 이 문제를 <프레시안>에서 처음 보고, <르몽드> 등을 들어가 봤더니 다들 난리더라. 근데 한국은 조용했다. 한국 신문이 그 문제를 도배할 때까지 한 2~3일이 걸렸다. 우리는 다 그리스인이고 이라크 인이다. 인류의 형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한다. 물론 자연에도 관심을 가지면 더 좋겠지만......
  
  홍세화 : 휴머니스트이니까 더욱더 생태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고 형도 말로는 그렇지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고 형 지적대로 한국 언론, 특히 공영 방송이 내놓는 외국 뉴스는 전부 토픽이다. 그걸 보고 참담했다.
  
  방금 '우린 모두 그리스인이다, 이라크인이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한국 사람은 그 부분에 있어서 한 가지는 돼 있다. 바로 '우리는 모두 미국인' 이런 식으로. 이라크인이나 그리스인은 못 될지언정 미국인은 다 돼 있다. 한국에서는 심지어 미국의 홍수, 정전 사태도 마치 한국의 일처럼 크게 다룬다.
  
  고종석 : 내 표현에 대한 뼈아픈 지적이다. 주를 붙여야겠다. '그리스를 미국으로 대치할 수는 없다' 이렇게. (웃음)
  
  홍세화 : 지난 9.11 테러 당시 장 마리 콜롱바니 <르몽드> 사장이 '우리는 바로 미국인이다'라고 얘기를 했다. 그래서 내가 칼럼에서 '우리는 뉴욕 사람일 수는 있지만 미국인이고 싶지는 않다'고 썼다.
  
  고종석 : 한국 사람들은 미국인 한 사람의 무게와 제3세계 한 사람의 무게를 같은 것으로 보지 않는다. 결국은 아주 정확하게 에너지 소비량과 맞먹는다. 나이지리아 한 사람이 미국 사람 한 사람의 150분의 1의 에너지를 소비한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나이지리아 사람 1백50명과 미국 한 명이 동일한 비중, 심지어 더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서울대 개혁, 우선 정원이라도 줄였으면"
  
  홍세화 : 아까 결국 의식이 문제라고 얘기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더 관심이 있는 것은 교육 개혁이다.
  
  고종석 : 홍 선배가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오라면 기꺼이 가신다는 얘기를 들었다. 홍 선배 전략은 그람시의 전략이라고 볼 수 있겠다. '헤게모니를 쟁취하자.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더 많은 동의를 얻어내자.'
  
  최근 서울대 폐지가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런데 서울대가 행사할 수 있는 실질적, 현실적 권력이 온존하는 한 이런 논의는 의미가 없다. 어떻게든 변화를 줘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지만 완전히 대학원 중심대학으로 가든가. 학부를 유지하더라도 순수 인문학, 자연과학 등 소수의 학생들만 뽑아 엘리트 교육을 시키고 나머지 대학은 평준화하는 등 개혁을 해야 하는데 이건 정말 쉽지 않을 것 같다.
  
  예전에 박정희 정권 시절에 고교 평준화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경기고 출신들이 얼마나 저항을 많이 했는데. 지금 서울대 출신들이 전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데 서울대에 변화를 주기란 어렵다. 서울대 출신이 아닌 상층부 사람들도 자기 자식들이 서울대에 갈 가능성이 높으니 더욱더 그렇다.
  
  나는 우선 서울대 학생수라도 지금보다 확 줄였으면 한다. 서울대가 규모도 크니까 점점 엄청난 권력 집단이 된다. 아주 뛰어난 사람들인데 수가 작다면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작을 텐데...... 최소한 지금보다 정원이라도 줄이라고 요구해야 할 것 같다.
  
  프레시안 : 서울대 개혁의 한 축이 돼야할 교수들도 너무나 기득권에 익숙해, 외부에서 서울대를 어떻게 보는지 전혀 인식하지 못 하고 있다.
  
  홍세화 : 나는 한국에서 교육자본이란 측면에서는 특혜자다. 한국에 계속 있었다면 인식 못했을지도 모른다. 프랑스에서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의 자녀인 내 자식들이 교육을 받는 것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단호하게 서울대 문제를 바라보게 됐다.
  
  정원을 줄이는 수준에서는 문제해결이 전혀 안 된다. 권력학교라는 게 무너져야 한다. 서울대는 지식과 부와 지위, 이 모든 걸 독점하는 거대한 기득권 집단이다. 여기에 속하지 못한 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에게 엄청난 박탈감을 안겨준다. 서울대의 권력독점 문제로 일어나는 사회악이 너무 심각하다.
  
  고종석 : 기득권을 누리는 세력의 저항도 엄청나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홍세화 : 그러니 싸워야 한다. 교육혁신위에서 공동학위제 얘기가 나오는 등 과거에 비해 논의가 진전되고 있다. 이 기회에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대학 서열화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판갈이가 있어야 한다.
  
  대학서열화로 고등학교 교육이 완전히 왜곡돼 있다. 유엔 아동권리위에서 제기했듯 교육과정 자체가 인권침해 과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자라면서 인권 의식을 가질 수 없다. 또 아주 심한 경쟁체제라서 연대 의식을 가질 수도 없고.
  
  "한국은 사회구성원들이 일생동안 두 번만 긴장"
  
 
ⓒ프레시안

  고종석 : 끔찍한 계급투쟁의 연속이다. 입시는 계급투쟁이다. 궁극적으로어느 대학이든 들어가기는 쉽고 졸업하기는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 그게 경쟁력하고도 부합한다.
  
  홍세화 : 동의한다. 입시 위주 교육으로 경쟁의식만 가득 차고 비판의식은 갖지 못한다. 기득권 세력들은 엘리트 교육과 교육 경쟁력을 얘기하곤 하는데, 한국의 엘리트가 엘리트냐. 엘리트는 능력과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 한국의 엘리트는 능력도 부족하고 사회적 책임 의식도 없다. 극심한 경쟁 과정을 통해서 선택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보상 심리만 있다. 이게 서울대 출신 기득권자가 보여주는 모습이다. 경쟁력은 경쟁력을 외친다고 나오는 게 아니다. 단적으로 서울대가 학문 경쟁력이 있는가?
  
  고종석 : 입학만 하면 졸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세화 : 대학이 서열화 돼 있기 때문에 입학과 동시에 경쟁이 이완된다. 졸업장만 받으면 되니까 자기 성숙은 절대 모색 하지 않는다.
  
  한국은 사회 구성원들이 일생에 걸쳐 딱 두 번밖에 긴장하지 않는다. 대학 입시와 취업. 경쟁력이란 사회 구성원들이 자기 성숙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계발하는 것에서 나온다. 이런 게 없으니 한국은 애초 석학이나 뛰어난 과학자가 나올 수 없는 구조다.
  
  경쟁력을 위해서도 권력 학교인 서울대는 퇴출돼야 한다. 아니면 권력과 관계없는 인문학, 기초과학 이런 부분에서 소수의 엘리트를 양성하기 위해 남든지. 그것도 자신 없으면 국ㆍ공립대 평준화를 통해 걸러진 아이들이 학문 공동체 속에서 연마되는 식으로 가야 한다.
  
  고종석 : 학벌 사회와 학벌 없는 사회는 사회 전체 행복의 총량이 큰 차이가 날 것이다.
  
  홍세화 : 프랑스는 대학입학자격 시험을 통해 대학에 들어간다. 대개 고교 졸업자의 70%가 시험을 봐서 70% 정도가 합격한다. 이 중 1학년에서 2학년으로 바로 올라가는 학생이 28%에 불과하다. 2년 과정을 3년 안에 마치지 못하면 대학을 떠나야 한다. 유급은 한번만 인정한다. 결국 56%가 하지 못한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이력서에 대학입학자격 시험을 보고 몇 년 만에 수료했는지를 아주 중요하게 기재한다. 그러니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중ㆍ고등학교 때 공부에 흥미가 없는 아이들은 미리부터 직업학교를 선택한다.
  
  물론 프랑스도 엘리트 교육 한다. 프랑스는 아주 소규모로 일종의 직업 전문학교를 운영해 엘리트 교육을 한다. 그게 서울대와 같은 학교는 절대 아니다. 그들이 패거리를 지어봐야 아주 작은 규모도, 또 그들끼리 좌ㆍ우 이념에 따라 경쟁을 한다.
  
  고종석 : 권력과 학위가 유착돼 있는 것도 문제다. 프랑스의 엘리트 양성 학교라 할 수 있는 고등사범학교에서는 박사 학위를 못 받는다. 여기 출신은 무조건 국립 중ㆍ고등학교 선생을 일정 기간 해야 한다. 그것을 안 하면 그간 받은 돈을 물어내야 한다. 그리고 학위를 받고 싶으면 일반 대학으로 가야 한다.
  
  홍세화 : 일부에서는 서울대가 없어지면 금방 연ㆍ고대가 그 역할을 대신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번 생각해보자. 서울대 없앤다고 해서 서울대 졸업생이 없어지나? 서울대 졸업생이 '연ㆍ고대가 제2의 서울대가 되는 것'을 막을 것이다. 또 서울대를 없애는 것 자체가 이미 엄청난 싸움이고, 만약 우리가 그것을 극복할 역량이 있다면 연ㆍ고대 중심으로 학벌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
  
  "공교육 획일성, 평준화가 문제가 아니라 국가주의가 문제"
  
  프레시안 : 우리나라는 평준화 교육을 지향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평준화를 옹호하는 전교조와 평준화 해체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세력이나 수구 기득권 세력이 대립해왔다.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자면 평준화를 근간으로 하는 공교육이 자율성이나 창조성과는 배치돼 평균적인 국민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고종석 : 나는 당연히 평준화에 동의한다. 평준화가 아니라면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을 입시전쟁에 내몰게 된다.
  
  평준화라기보다는 공교육이 국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이중체제가 되어야 한다. 여러 종류의 사립학교를 만들 수 있도록 하고 사학에는 국가에서 일체 지원을 안 하는 식으로. 국가에서 지원하는 공교육은 철저히 평준화로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
  
  홍세화 : 사회 구성원의 사회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게 교육이다. 교육 과정에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본적 소양을 갖춘다는 점에서 시민 의식이 기본 출발점이 돼야 한다. 사립학교도 시민의식을 갖춰야 한다는 약속은 지켜줘야 할 것이다.
  
  지금 공교육이 창의성, 개성을 죽이는 이유는 평준화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 있는 국가주의 때문이다. 주입식 또는 의식화 교육, 과거에는 반공 의식화를 계속하지 않았나.
  
  그 다음에 중요한 부분이 국가의 재정 지원이다. 이는 무상교육 문제와 결부되는데, 공화주의 관점, 시민의식이란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고종석 : 이게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다. 학교 바깥에서 국가주의가 척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교가 국가주의, 애국심의 함양기관이 되기 쉽다. 학교 바깥의 시민의식이 충만해 있으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우리나라 역시 국가주의가 학교를 통해 쉽게 주입되지 않나.
  
  홍세화 : 교장 임용 제도 등 각종 제도를 개혁하는 것이 그래서 필요하다. 국가 권력 요구를 충실하게 따를수록 교장, 교감이 되고 학교를 반(反)민주주의적이면서 권위적인 구조로 온존시키고 있다. 교장이 국가주의 교육의 충실한 마름이면서 단위학교의 제왕이 돼 있는 구조다. 이게 상당히 중요한 고리다. 이를 제도 속에서 분쇄해내는 게 개혁정권이 해야 할 일이다.
  
  우리가 다니는 학교는 병영구조다. 실제 이 땅에 근대학교를 세운 게 군국주의 일본인데, 일본이 뭘 본 따서 만들었겠냐. 바로 군대이다. 정말 나쁜 의미의 국가주의 교육이다. 반세기동안 축적돼 있는 이런 부분에 대한 반전이 있어야 한다.
  
  "한국교육 과잉상태, 무상교육하고도 남아"
  
 
  ⓒ프레시안

  프레시안 : 홍세화 선생은 아까 무상교육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했다.
  
  홍세화 : 내가 연대와 관련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상교육 문제다. 정말 한국의 교육계가 얼마나 무책임한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게 경제력이 커가는 것과 비례해서 무상교육이 전혀 진전되지 않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무상교육 제도는 흔히 말하는 '사회 연대'의 구체적 실현의 모습이다. 서민들의 고통의 주요 내용이 교육비 문제다. 또 사교육비 문제에 있어서도 궁극적으로 공교육을 무상으로 하는 게 그 해결의 중요한 열쇠다.
  
  지금 50여년간 공교육 제도를 하면서 얼마나 물적 토대가 늘어났나. 그 과정에서 법적으로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의무 교육화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미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대학교육까지 받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학교육까지 받지 않고는 사회구성원으로 제 역할을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를 강제하고 있는 사회다. 그런데 그 비용의 대부분을 개인에게 맡기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 있어야 된다.
  
  이미 한국의 교육은 과잉상태다. 왜곡돼 있기 때문에 과잉이 된 거다. 그만큼 비용이 들어가고 있다. 그 얘기는 뭐냐면 무상교육을 하고도 남을 상황이라는 것이다. 현재 우리 교육은 결핍이 아니라 과잉상태다. 대학까지 무상교육은 가능한 일이고 해야 되는 일이다.
  
  프레시안 : '사회 연대'의 측면에 더 주목해서 얘기해보자.
  
  홍세화 : 무상교육을 통해 '사회 연대'라는 중요한 가치가 실현되는 것이다. 무상교육은 계층 간 '사회 연대'이고, 세대 간 '사회 연대'의 실현이다. 교육자본의 사회화라는 개념이 개입할 가능성이 열린다. 지금은 각자 획득한 교육자본이 사유화 돼 있다. 그러나 부모 세대로부터 또 국가와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은 성원들이 쌓은 교육 자본은 자기 것만이 아니라 사회의 것이다.
  
  지금처럼 자기 자본을 들여, 자기가 잘나서 치열한 경쟁에서 이겼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는 사회적 책임 의식을 기대하는 것도, '사회 연대'도 불가능하다. 무상교육 제도를 갖추는 것은 그 사회의 책임 의식과 '사회 연대'의 가능성을 연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고종석 : 앞에서 얘기한 레옹 부르주아도 무상교육을 '사회 연대'의 중요한 가치로 보고 있다.
  
  홍 선배 말대로 교육과 관련해 우리사회 개혁 과제 중 중요한 두 가지는 학벌 카르텔을 타파하기 위한 서울대 폐지와 교육 자본의 고스란한 재생산을 막을 수 있는 대학 교육까지의 무상화일 것이다.
  
  "계층 고착화로 '개천에서 용 난다' 불가능"
  
  홍세화 :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개천에서 용 난다' 이런 얘기를 했는데 요새는 불가능하다. 계층의 고착화가 이뤄지기 전에는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성공하고 출세한 사람도 나왔다. 그러나 계층의 고착화가 돼 가는 과정에서 강남 얘들이 점유하고 있다.
  
  이런 부분은 프랑스의 피에르 부르디외가 상층 계급이 경제적 자본에 의해 상징 자본도 같이 점유해나가는 문제를 지적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사회도 불평등 구조가 더 심화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서울대 혁파와 무상교육 문제는 더욱더 중요하다. '사회 연대'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고종석 : 교육 자본을 포함해 상징 자본과 경제적 자본 사이에 파열을 내야 한다. 다 고스란히 독점하는 게 아니라.
  
  좀 다른 얘기지만 예전에 김영삼 정부에서 권력과 부를 같이 갖지 못하도록 하겠다면서 고위 공직자들 재산 신고를 하도록 제도화했다.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여러 형태의 자본을 가진 사람이 한꺼번에 그것들을 다 갖는 게 아니라, 이런 자본이 있으면 저런 자본은 좀 덜 갖도록 하는 제도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은 경제적으로 좀 모자르게 하는 그런 제도 말이다. 이것 참, 자유주의자가 할 소리는 아닌데...... (웃음)
  
  홍세화 : 그러니까 말로만 하지 말고, 민주노동당에 가입하라니까. (웃음)
  
ⓒ프레시안

  "경제적 민주화 진전하기 전에 '2004년 체제' 말할 수 없어"
  
  프레시안 : 오늘 대담 내용만 놓고 보면 고종석 선생은 자유주의자가 아닌 것 같다. (웃음)
  
  마지막 주제로 넘어가겠다. 우리 사회가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는 많이 진전했을지 모르지만 실질적 민주주의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그중 하나가 경제적 격차가 심해지면서 개인이 이 사회에서 행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권리가 제약받는 일이다. 이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이다.
  
  고종석 : 최근 <한겨레21>에서 탄핵 정국의 결과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된 현 상황에 대해 '2004년 체제'라는 말을 썼다. '1987년 체제'가 끝나고 '2004년 체제'라는 얘기인데, 전혀 말이 안 된다.
  
  1987년에는 두 가지 상징적인 사건이 있었다. 6월10일을 기점으로 정치적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 항쟁을 통해 6월29일 노태우 씨가 6ㆍ29선언을 했고 그 이후 정치적 민주주의의 틀이 만들어졌다.
  
  또 그해 7, 8월 노동자들의 파업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위해서 그렇게 일어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홍세화,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한겨레신문사 펴냄) ⓒ프레시안

  '1987년 체제'라는 게 있다면 바로 이 두 개의 큰 축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6ㆍ10으로 시작한 정치적 민주화의 흐름과 7ㆍ8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시작하는 사회ㆍ경제적 민주화.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정치적 민주화의 측면은 '1987년 체제'가 꽤 진화했다. 지금도 국가보안법, 사회보호법이 있지만... 녹음기 앞에서 노무현 대통령 욕을 노골적으로 할 수도 있으니 세상이 많이 좋아진 게 아닌가? (웃음)
  
  그러나 또 하나의 축인 7ㆍ8월 노동자 투쟁이 던진 과제는 진전이 없다. 신자유주의가 유행처럼 들어오면서 또 국내 경제가 흔들리는 과정에서 '노동의 유연화'니 이런 것들이 한국사회를 점령했다. 정치적으로는 민주화 되는데 빈부격차는 더 거치는 과정에 서 있다. '1987년 체제'의 기둥이 나란히 가는 게 아니라 기울어서 가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을 '1987년 체제'를 극복한 '2004년 체제'의 출발이라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1987년 체제'에서 그 다음 체제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프레시안 : 그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고종석 : 맞다. 사회ㆍ경제적 민주화는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세계체제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 해결이 쉽지 않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항해 '아래로부터의 세계화'를 강조하는 이들이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탄핵 시위 이상의 이라크 파병 반대 시위가 있어야 한다. 또 우리나라에 와있는 이주 노동자들을 옹호하는 시위가 그 정도 열정으로 일어나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의식과 감각을 다 쏟아 부어 '1987년 체제'를 완성시켜 나가야한다. 그게 언제 될지는 모르지만.
  
  이게 단순히 남한 민중의 힘으로 안 되는 것이기에 더욱더 국제 연대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이라크 인이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다. (웃음)
  
  홍세화 : 지금 애기하는 걸 들어보면 민주노동당에 왜 안 들어오는지 이해를 못하겠어. (웃음)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그것을 지향하는 당은 버겁다고 그러는지.
  
  프레시안 : (웃음) 고종석 선생을 옹호해야겠다. 고 선생은 책에서 "집단화되지 않는 불우한 개인들"에 관심이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당'으로 포괄하지 못하는 영역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사회 연대'는 측은지심의 일반화"
  
  홍세화 : 결국 17대 국회가 개원하면 가시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시민권 차원의 문제다. 호주제, 국가보안법, 언론 개혁, 공무원들의 정치적 자유 등은 어느 정도 티격태격하는 중에 진전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적 권리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또 한국이 가지고 있는 대외 의존도 등을 감안할 때 참 한계가 많다. 거기다 이라크 파병 반대 목소리도 아주 작고. 참 어려운 과제이다. 긍정적인 전망을 하기가 어렵다.
  
  고종석 : '사회 연대'는 결국 자기가 있는 처지에서 사회ㆍ정치적, 상징적 자본이 모자란 사람들과의 연대를 의미한다. 그걸 연민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 나는 '연민'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다 못났는데 못난 사람들끼리 한번 통해보자, 이렇게 말이다. 맹자가 얘기한 어짐의 끝머리는 측은지심이다. '사회 연대'가 측은지심의 일반화가 아닐까?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민음사 펴냄)이라는 책에서 지적한 열림도 연대의 태도고 측은지심의 일반화가 아닌가 싶다.
  
 
  고종석, <엘리아의 제야> (문학과지성사 펴냄) ⓒ프레시안

  홍세화 : 그런 '열림'을 '열린'우리당에 요구해야 하는데 말야. (웃음)
  
  고종석 : 내가 열린우리당 당원도 아니고, 노무현 지지자도 아니라서 요구하기가 참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으로 해야겠다. (웃음)
  
  홍세화 : 한국사회 구성원들이 왜 연대 의식과 멀어졌나. 인권과 관련해 부채 의식이 있다고 본다.
  
  바로 한국전쟁기에 있었던 학살 문제이다. 지금 자라나는 세대는 모르지만 민간인에 대한 엄청난 학살이 있었다. 왜 죽었는가. '공산당'의 '공'자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 문제를 정리하지 못한 게 일제 부역세력을 정리하지 못한 것만큼 큰 상처를 남겼다.
  
  하나는 가해자들에게 공격성을 더 줬다. 피해자에 속하는 사람들에게는 부채 의식을 줬고. 어떻게든 누명을 벗겨줬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이런 것들이 결국 한국 사회 구성원들을 '사회 연대'보다는 이기주의에 기반을 둔 추한 자본주의 신봉자들로 몰고 갔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지적하자면 그런 의미에서 6ㆍ25 특별법 제정은 대단히 중요한 과제다.
  
  고종석 : 시간이 많이 지나갔다. 정작 중요한 얘기는 다 못한 것 같아서 많이 아쉽다. 마지막으로 내가 고백 하나 해야겠다. 나는 사실 '추빠(추미애 전의원 지지자)'라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이다.
  
  그에 대해 여러 가지 평가가 있지만 나는 아주 호감을 갖고 있다. 최근의 행보는 안타깝지만 또 연민이 가기도 한다. '추빠'로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추미애 씨가 적극적으로 그 제정에 관여했던 '4.3 특별법'도 방금 홍 선배가 지적한 그런 치유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웃음)
  
  프레시안 : 앞으로 한번 더 얘기를 나눌 기회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웃음)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