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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노동운동사[5장]제국주의(1876~1916) 2

세계노동운동사 [5장] 제국주의 (1876~1916) 2

대량 생산 대량 소비

◀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올림픽 호와 타이타닉 호 (1910)

기술 혁명으로 민중의 소비 생활이 보다 풍요로워진다.

자본이 불황을 탈출하는 방법 중에 하나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 생산력을 높이는 것이다. 그리고 불황은 기술 개발을 더 재촉하게 만든다. 이런 이유로 불황을 거치며 획기적인 기술 혁명이 이루어진다. 전기와 내연기관 같은 새로운 동력이 증기력을 대체하기 시작하고 유기 화학과 합성수지가 개발되고 새로운 합금을 이용한 더 정밀하고 강력한 기계가 만들어진다.

이 첨단 기술들이 대중의 가정생활용품을 생산하는 데까지 응용됨으로써 많은 분야에서 대량 생산이 이루어진다. 특히 포드는 1907년에 ‘T모델’ 자동차를 대량 생산하기 시작하여 대량 생산 시대의 상징이 된다. 기술 혁명에 의한 대량 생산, 이를 ‘2차 산업 혁명’이라 한다.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모든 산업이 연쇄로 급속히 확장된다. 그만큼 노동자의 수도 급속히 늘어난다. 이에 따라 노동자의 임금도 어느 정도 상승한다.

그러나 생산성이 급속히 증가함에 따라 초과로 획득되는 엄청난 이윤에 비하면 임금 몇 푼 올려주는 것은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그러니 총 이윤 중에서 자본가가 차지하는 몫은 점점 더 커지고 당연하게도 노동자가 차지하는 몫은 점점 작아진다. 다시 말해 노동자들은 성장의 혜택을 조금 밖에 못 누리면서 (사회의 높아진 평균 생활수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는 점점 더 빈곤해진다.

일관 생산 작업이 확대되고 ‘테일러 방식’의 노동 통제가 가해지면서 작업 속도가 증가함에 따라 그만큼 노동 강도가 세어지면서 노동자들의 불만이 고조된다. 이런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온정적인 정책들이 고안되어 실시된다. 철강·자동차·탄광·철도 산업처럼 자본이 풍부한 대기업들은 노동자공제기금·주택·학교·교회·스포츠클럽·음악회 같은 기업 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포드 자동차는 다른 일반 기업에 비해 두 배나 되는 임금을 지급한다.

이처럼 실질 임금이 증가하고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됨에 따라 다양한 소비품이 등장하고 대량 소비가 이루어진다. 더불어 상업적인 오락도 발전한다. 그리고 대중의 대량 소비는 대중매체·광고산업·신용거래를 창조하고 발전시킨다. 영국의 신문들은 1890년대에 최초로 100만 부를 돌파하고, 대중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광고 산업이 중요한 산업으로 부각되고, 수입이 적은 사람들도 값비싼 상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할부 판매가 실시된다. 그리하여 진공청소기·가스·주방기기·바나나·백열등·아스피린·전화·무선전신·축음기·영화·자전거·자동차·비행기 등이 생활의 한 장면이 된다.

그리고 유럽 여성들은 아이를 적게 낳고 여성 중등 교육이 확대되고 자유롭게 스포츠를 즐길 수 있게 됨으로써 사회적 지위가 보다 개선된다. 그래서 상품 시장도 이들 여성들에게 주목하게 된다. 그렇지만 여성들은 정치에서는 오히려 배제되어 집안으로 물러나 앉게 된다.

제조업이 급속하게 팽창하고 서비스업이 성장하기 시작한다.

기계에 의한 대량 생산으로 인해 동일한 양의 제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 시간과 노동력은 급격히 감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수는 호황기 동안에 인상적인 비율로 증가한다. 특히 급격히 팽창하던 거대 도시들의 하부 구조를 구축하는 건축이나 기본적인 에너지원을 생산하는 석탄 산업은 엄청난 수의 노동자 집단을 만들어낸다.

도시는 제조업의 중심지가 되어간다. 10만 이상의 큰 도시에서 직업을 가진 인구 가운데 3분의 2가 제조업에 종사한다. 그러나 영국의 런던, 소련의 상트페테르부르크,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를 제외하면 그 나라의 수도가 산업 중심지인 경우는 거의 없다.

대량 소비가 이루어짐에 따라 이제 막 등장한 다양한 서비스 부문―그러나 미국은 이때 이미 서비스업의 노동자 수가 육체노동자 수보다 많다―이 빠르게 성장한다. 유럽에서 초등학교 교사들의 수는 1870~1914년 사이에 몇 배로 늘어난다. 관료제 역시 더욱 확대된다.

서비스업과 사무직에 종사하는 ‘화이트칼라’는 육체노동자들과 자신들을 구분하고 거리를 둔다. 육체노동자들도 아직 동질의 집단은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노동자계급들이라고 단수가 아닌 복수로 이야기하곤 한다. 스스로 노동자라고 느끼기는 하지만 체코인 노동자, 폴란드인 노동자, 가톨릭 노동자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수작업 노동자들이 도시와 농촌을 가득 채우고 있고 제조업은 매우 제한된 범위에 분포되어 극도로 지역화해 있으며 민족·종교·언어의 차이로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개량을 실시하여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한다.

제국주의 국가의 자본가들은 (긴 불황에 뒤이어 찾아온) 엄청난 호황에 따르는 막대한 이윤과 식민지에서 초과 착취로 얻은 초과 이윤을 재원으로 하여 자기 나라의 노동자들에게 생활 조건의 개선을 선사한다. 공연히 노동 쟁의에 휘말려 떼돈을 왕창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보다 임금 조금 더 올려주고 일을 더 시키는 것이 훨씬 더 낫기 때문이다.

각 나라의 정부는 노동자가 불가피하게 인구의 대다수를 점하게 될 거라는 점을 의식하면서 노동자를 배려하는 정책을 편다. 그리하여 독일·프랑스·영국·미국에서는 ‘여성과 아동노동 제한, 노동 시간 단축, 산재 보상, 실업과 질병에 대한 배려, 노후 대책’에 대한 법률이 만들어진다.

각 나라의 지배계급은 보통 선거를 도입하여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한다. 물론 민중들의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계속 있었기 때문에 보통 선거가 도입된 것이기는 하지만 보통 선거를 혁명의 도구가 아니라 지배 체제를 안정시키는 도구로 이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프랑스의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유럽에서 성인 남자의 30~40%가 선거권을 가지게 되고 이 비율은 더욱 확대되어 간다. 또한 여성 참정권이 1890년대부터 미국의 와이오밍 주, 뉴질랜드, 남부 오스트레일리아, 핀란드, 노르웨이 등에 도입된다.

그렇지만 이렇게 정치 민주화를 추진하면서도 한편에는 여전히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적절한 통제 장치를 마련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독일에서는 의회에 최소한의 권한만 부여된다. 영국에서는 세습적인 성원들로 구성된 상원이 선거로 선출된 하원의 결의를 무산시킬 수 있는 양원제를 구성하고 고등 교육을 받은 시민에게 가중치를 부여하고 특정한 정파의 이해를 위해 선거구를 조작―게리맨더링―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또한 많은 나라가 비밀 투표제를 도입하지 않고 공개 투표를 진행함으로써 자유로운 선택을 곤란하게 만든다. 아니면 투표 연령을 높여 선거인을 줄이기도 한다.

의도야 어쨌든 민주화가 확대되자 중요한 정치 문제는 공개적인 정치 토론의 장에서 사라지고 엘리트들끼리 교제하는 주말의 시골별장·클럽·사교모임·사냥연회와 같은 권력의 회랑에서나 다루어진다. 대중 앞에서는 그저 좋은 말만 늘어놓는다. 이처럼 정치에서 위선이 판을 침에 따라 정치 풍자가 만발한다. 그리고 대중 선거 유세는 1879년 선거 때에야 비로소 영국의 글래드스턴이 유럽에서 처음으로 사용한다. 한편 대중들은 여전히 지도자를 숭배하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숭배하는 이유가 개인의 인물 됨됨이가 아니라 그들이 공유하는 신념 때문이라는 점에서는 과거와 다르다.

아무튼 이런 과정을 거쳐 지배계급은 1880~1914년 사이에 의회 민주주의가 자본주의 체제의 안정과 양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한다. 이 과정에서 극우와 극좌 세력은 고립된다. 그렇지만 지배계급의 체제가 온전하게 안정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독일 보수당의 경우 선거에서 표의 71%가 시골에서 나오고 대도시에서는 5%밖에 획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국가는 체제에 대한 충성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여러 가지 상징을 이용한다. 미국 정부는 1880년대 말부터 국기 게양식을 전국의 학교에서 일상 의례로 실시하게 하고 영국 왕은 노동자들의 축제인 축구 결승전에 매년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부르주아들은 상당수가 ‘유한계급’이 되면서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다. ‘승리하는 부르주아’라는 이미지는 이자 소득과 식민지 민중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살아가는 기생계급의 이미지로 바뀐다. 이로 인해 진보·개혁·자유주의에 대한 부르주아의 신념은 위기에 처한다. 그래서 자유주의 부르주아는 세계 공황으로 인해 1870년대를 거치면서 권력에서 밀려난 뒤에는 일시적으로 권력을 탈환한 것을 제외하면 다시는 권력의 중심에 오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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