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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xico 이야기 1

"...통탄해서도 안 되고, 비웃어서도 안 되며, 혐오해서도 안 된다. 오직 이해하는 것만이 필요하다..."

 

부르디외(P. Bourdieu)가 편저한 [세계의 비참] 첫머리에 인용된 스피노자의 말이다.

참으로 어려운 이야기다.

다른 인간의 고통을 대면하는 우리의 자세란....

 



0.

Mexico City 는 그야말로 혼돈과 무질서의 왕국이자, 삶의 절박함이 넘치는 곳이었다.

결코 낯설지 않은....

 

미국에 머무는 동안 잠시 잊고 있었던 까만 코딱지 ㅡ.ㅡ (저녁에 코 풀면 시커먼 먼지..)

폐차장에서 수거해온 듯한 낡은 차량들로 가득찬 거리...

보행자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이 바쁘게 질주하는 무지막지한 차들... (양보의 미덕이란 다 먹고 살만해야 생기는 거다). 우리 둘은 살아남고자(ㅜ.ㅡ) 꼭 건널목 파란불에서만 길을 건너는 아주 문명화된(^^) 습관을 실천했는데... 안타깝게도... 파란불이라고 차들이 꼭 멈춰주는 건 아니더라.. 일방통행로에서 택시가 역주행해서 기겁을 한 적도 있는데, 택시 기사 아저씨 왈, 이렇게 안 하면 도대체 저 막힌 길을 뚫고 나갈 수 없다고...ㅜ.ㅜ  입이 쩍 벌어졌다...

 

지하철.... 노선도 촘촘하고 배차 간격도 짧고, 심지어 나름 청결하기도 해서 상당히 맘에 들기는 했는데.... 에스컬레이터가 없는게 정말 쥐약이었다. 계단은 어찌나 많은지.... 짐가방 들고 오가느라 죽는 줄 알았다. 하지만 뭐 돌아보면 불과 몇 년 전 서울의 모습 아닌가... (웃긴 일도 있었는데, Matthew 가 내 가방까지 끌고 다니는게 미안해서 낑낑대며 나혼자 어찌 해보려고 노력하는데, 한 청년이 내 가방을 번쩍 들어 옮겨주더니,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자기는 쿠바에서 왔다고 멕시코 사람과는 다르다며 친절함을 왕 과시하더라 ㅎㅎㅎ).

 

지하철 안은 그야말로 백가쟁명의 시대였다. 다리를 끌고 기어다니며 노래로 구걸하는 장애인들, 형형색색 형광펜셋트, 우산 세트, 각종 알 수 없는 상품들을 믿기 어려운(!) 가격에 파는 상인들... 나중에 피라미드 가려고 시외버스 탔을 때는 금팔찌를 불과 25페소 (2천 5백원)에 파는 아자씨도 있었다. Matthew 한테 "혹시, 원래 저게 시내 유명 백화점에 납품하던 물건인데 회사가 부도나서 할 수 없이 싸게 파는 건 아니래?" 하고 물어보니까 "아직, 그 이야기는 안 했어. 조금 있다 할 거야. 그리고 틀림없이 저 아저씨 애가 여섯 명인데, 그 중 한 아이가 아파서 병원비가 필요할 걸?" 그 아저씨 내리고 나서 이번에는 약장사 아자씨가 탔는데 물에 타서 마시면 몸을 정화시키는 약이란다. Matthew 의 통역에 의하면, "이게 병을 치료하는 것은 절대 아니고 몸을 정화시켜 병을 예방할 뿐이지만,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이걸 복용하고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를 나한테 했다"고.... 지구 반대편에서 어쩜 이렇게 똑같은 스토리....

 

시내 보도는 그야말로 넘치는 노점들 덕분에 오가기가 힘들 정도... 파는 물건의 종류도 진짜 각양각색인데... 특히 돗자리 하나 펴놓고 초라하게 과자나 과일 등속을 파는 이들은 대개 인디오들로 보였다. 이들 노점 덕에 길거리에서 맛난 또르따스나 꿰사디야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고, 신기한 열대과일과 신선한 과일쥬스들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여기 오렌지는 한국 귤만큼 작은 크기인데 무지무지 싸서, 그 자리에서 갈아 주스를 만들어주고 6페소... 웃긴게, 쥬스를 컵이 아니라 그냥 비닐 봉다리에 담아 묶어 빨대 꽂아 주는데, 그거 쭉쭉 빨면서 지하철에 타니까 사람들이 다 쳐다보더라. ㅡ.ㅡ)

 

1.

 

멕시코 경제는 지금 말이 아니란다.

한국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NAFTA 도 그렇고, 최근에는 강화된 미국의 이민규제가 직격탄을... . 비공식 통계에 의하면 멕시코 경제의 1/3이 미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송금에 의해 유지된다고 하더라....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이번 선거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하다. (그래도, 월드컵에서 멕시코 탈락 전까지는 사람들이 축구 이야기만 했단다 ㅜ.ㅜ)

하지만, 시내 도심은 물론이거니와 시골 방방곡곡 전봇대와 버스 정류장마다 선거 포스터로 도배가 되어 있는 모습이 과히 맘편하지는 않았는데, 도대체 저 돈이면.....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근 Oaxaca 지방에서 교사 노조가 파업을 일으켜  경찰의 폭력 진압 끝에 몇 명의 교사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아직 현재 진행 중). 교사들에 대한 처우가 말할 수 없이 후진데, 여기 시티에도 시급이 시간당 겨우 12페소(약 천원)에 불과하다고 하더라...  단돈 몇 페소가 아쉬운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저 포스터와 현수막에 투자한 돈의 반만이라도 공공지출에 직접 쓰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그래도 Matthew는, 정치에 냉소적인 미국 사회보다는 사회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정치토론을 즐기는 멕시코 사회가 훨씬 건강하지 않냐고...  맞는 이야기지...

 

멕시코 독립 영웅인 Juarez 동상... 그 주변의 정치 포스터들... 선거 결과가 조작되었다는 Obrador  진영의 대자보가 함께....


 


 

시시각각 다른 결과를 보여주던 길거리 신문들...

Matthew는 재밌는 해석을 하기도 했는데... 여기 사람들이 셈에 하도 약해서... 저 정도의 표 차이는 순전히 덧셈 실수만으로도 가능한 결과라고... ㅜ.ㅜ

 

 


 


 

사빠띠스따에서 붙였던 선거 포스터...

"누가 승리하던간에 너네가 지는 거다", "스스로를 조직하고 투쟁하자"고 써 있다.  사빠띠스따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정서를 물어보니까, 대체로 호의적이란다. 한편으로는 현실 정치에 대한 실망이기도 하고, 또 거침없는 그들의 사회비판이 공감을 얻기도 하고... 하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단다.

 

 


 

사실 떠나기 전날 저녁에, Matthew 친구인 Ignacio 집에 놀러가서 이런 저런 정치 이야기들을 좀 들어볼까 했는데.. 엉뚱하게도(!!!) 이 양반이 자기가 최근 좋은 DVD 를 한편 구했다고, 같이 영화를 보자는 거다.

무슨 영화?

오리지널 버전 "링"....

세상에, 멕시코에 와서 내가 사다코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어디 꿈 속에서라도 상상이나 했으랴.... ㅜ.ㅜ 하여간, 불 다 끄고 밤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사다코를 만나느라 정치토론이고 뭐고.... ㅡ.ㅡ  (이 날 스타일을 좀 구겼다. 그동안 줄곧 의연한 모습을 보여왔는데, 망할 놈의 사다코 땜에.... 흠...) 

 

2.

 

어디에나 사람들이 일상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들이 존재하고,

그 속에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놀랄만큼의 유사성, 다른 한편으로 그 사회만의 독특한 구석들이 있다.

이걸 "남루한 일상" 운운하며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바보 같은 짓이고,

"불쌍해서 어쩌나" 하며 동정하는 것도 가당찮은 짓이다.

 

평범한 멕시코인들이 보여주던 따뜻한 마음,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변화의 열정, 그리고 그 풍부한 문화의 저력을 모아...

다함께, 조금씩 앞으로... 또다른 세계가 가능함을 보여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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