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39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8/03
    삶의 방식의 재구축이라.....
    우중산책
  2. 2009/07/29
    휴가...단속...신입..
    우중산책
  3. 2009/07/29
    한적하게 느끼다.
    우중산책
  4. 2009/07/28
    난 혼자는 못산다..!!
    우중산책
  5. 2009/07/27
    여름이군....!!
    우중산책
  6. 2009/07/24
    한달이군...!!(2)
    우중산책
  7. 2009/06/27
    블러그 쉽니다...^^;;(3)
    우중산책
  8. 2009/06/24
    [액체근대]..일과 공동체...너무덥다.
    우중산책
  9. 2009/06/23
    [액체근대](4)..시공간에 대하여
    우중산책
  10. 2009/06/22
    [액체근대(3)]..무거움과 가벼움..ㅎㅎ
    우중산책

삶의 방식의 재구축이라.....

  • 등록일
    2009/08/03 15:59
  • 수정일
    2009/08/03 15:59

[소비에트 건축 : 구성주의 건축운동].....아나톨 콥 지음.......발언

 

7월의 거의 끝자락에 읽게된 책이다.
건축 혹은 공간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지 몇년이 흘렀는데

 

(한옥답사를 다니면서 가지게 된 건축에 대한 관심이

결국 한옥 만드는 목수 일을 배우게 되고
지금은 공간 혹은 건축을 가지고 아이들과 수업을 하고 싶은 욕구에 까지 다다랐다.
 

어찌보면 나의 집착일 수 도 있지만 그만큼 공간 혹은 건축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내가 꿈구는 어떤 삶들을 구현하는 데

내가 가지지 못한 무언인가를 던져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음...단순히 인문 혹은 철학관련 공부만으로 해소되지 못한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꿈들을
건축 혹은 공간을 공부하면서 구체화시킬 수 있는 어떤 시사점들을 발견하게 해준 달까..?

결국 [하비]가 이야기하는 지적 비관주의를 넘어서서 낙관주의로 나아가는 길에서
건축 혹은 공간 공부는 나에겐 새로운 에너지이다.)
 
그렇게 공간에 대한 이런저런 책들을 찾아서 혼자 공부한지 몇해동안

나름 잼나고 나에게 깊은 의미를 던져주던 책은 몇권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소비에트건축이라는 책은

전혀 다른 식의 즐거움을 주는 책인것 같다.

뭐랄까 ...?...

건축관련 책임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인문학 책처럼

내가 똑바로 던지지 못했던 궁극의 질문들을 던져주는 책이랄까 ?

가끔 술한자 하면서 던져보던 질문들을 구체적인 현실에서

건축적으로 실현시키려 했던 그들... 1920년대 러시아 구성주의 건축가들의 삶에서

나름 아 !...하는 전율과 슬픔을 동시에 맛보게 해주는 책이었다. 

이렇게 재미난 책을 이제서야 읽다니 하는 반성을 무쟈게 하면서
책을 읽었다.

 

1920년대 러시아 구성주의자들의 고민과 활동에 대한 이야기다.
뭐 구성주의하면 미술에서의 칸딘스키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건축에서의 구성주의자들을
알진 못했었는데 새삼 나의 무지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들이 가진 고민들이 여전히 유의미함을 넘어서
지속적인 실천적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서 일종의 전율을 느꼈다.

미술에서의 한 조류로 평가받는 구성주의라는 전문적인 미술사조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고

구성주의자라는 것으로 묶여 있던 당시의 새로운 활동가들의 이야기이다.

즉, 혁명이후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실현하고 재구축하여야 하는 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현실화 작업을 고민하던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이다.

 

볼세비키 혁명이 있은 후 러시아에서
긴즈부르크를 필두로한 구성주의 건축가들이
사회주의의 삶으로써의 재구성을 위한 다양한 기획과 노력은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라고는 단지 종이와 그들의 삶에 대한 에너지 뿐이라는 사실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나지만
어쩌면 구현될 수 없었던 꿈을 그렇게 치열하게 삶의 과정으로 구현하려는 건축의 힘들을

느끼도록 해주는 듯 싶다.

 

건축가는 더이상 자신이 삶을 장식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조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긴즈부르크

 

이말처럼 그들은 결국
현실화된 혁명이후의 삶을
구체적인 현실속에서 건축을 통하여 재조직하려 했었던 것 같다.

 

1920년대 러시아
이제 막 혁명이 성공했지만 그 혁명세력인 노동자들이 다수를 차지하지도
그리고 그들이 주장하였던 계급평등사회를 구현할 어떤 물적 토대도 가지지 못했던 그 시절에
아니 다들 구시대의 삶으로의 회귀나 혹은 구시대적 삶의 형태들을 답습하며 살아가는 사회에서
그들은 건축 혹은 예술을 통하여 혁명의 이념을 구현하는 것
그것도 강제가 아닌 환경의 변화가 그런 삶들을 가능하리라는 믿음을 밀고 나가는

그들의 혁명에 대한 자세는
오늘날에도 많은 생각거리들을 주는 듯 했다.

 

특히 당시 구성주의자들이 가진 생각들 중에서
 

" 구성주의자들은 합리화의 분야에서 새로운 사회적 필요를 규정하는 것과 같은 어떤 선동도 조심스럽게 피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들은 노동계급이 어떤 마력이나 계급적 자각을 통해서 내부의 지식을 유도해낼 수 있다고 보지않았고, 프롤레타리아의 자연발생적인 창조성을 믿지 않았다.

암암리에 그들은 다음과 같은 공식적인 발표에 찬성하였다.
 

노동대중들은...합리화하는 것을 찬성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합리화를 시작하는 의미와 중요성을 계속적으로 설명해야 하고,
이미 성취된 결과와 성공들을 노동대중에게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노동대중이 자연발생적으로 혁명의 주체 혹은 창조적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을 가지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은 환경의 변화 그리고 대안적인 삶의 구현 혹은 교육을 통해서만이 이러한
노동대중의 혁명적 삶들이 가능하리라는 생각들을 한 것 처럼 보인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많은 생각과 일종의 에너지 혹은 슬픔 등...
일종의 전율 같은 감응들을 가진 것은
그들이 가진 질문인듯 싶다.

 

- 인간은 경제적인 일에 자신을 희생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존재하기 위해 경제와 노동을 이용한다는 의미에서 경제적 과업은 우리의 최종 목적을 구성하지는 않는다.....루나챠르스키

 

- 공동체의 과업은 사회주의의 적극적인 옹호자이면서 사회주의의 창조자인 새로은 집단적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공동체의 과업 중 하나는 사회주의적인 새로운 삶의 방식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 공동체의 일상생활, 활동, 노동은 새로운 사회주의 삶의 방식에 대한 건설을 추구하기 위해 더욱 바람직한 조건을 지향한다.
  경제의 급격한 변동, 사회적 관계의 격변은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고,
  사회주의적 삶의 방식을 도입하기 위한 실천적인 행동을 통하여 그것을 선전해 나가는 수단이다.....

               .................소르킨과 마르코비치

 

-우리는 가끔 명령을 부여하여 새로운 삶을 창조하고자 한다.
 그 명령들은 읽혀지고 받아들여지고 얘기될 것이다. "삶의 방식의 재구축에 대하여"라는 말은 매우 아름다운 문장이다.
그것은 몇 개의 단어로 구성된 전체적인 혁명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식이 확고한 기반에 근거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겁은 주지만 작동하지 않는 총에 불과하다. 
그리고 "삶의 방식의 집단화를 위한" 명령은 진지하게 계획을 세우고 공동체를 건설하지 않는다면 위와같은 총임을 입증할 것이다

                                   .....붉은청년학생

 

- 사회주의 사회를 위해 삶의 방식의 재구축을 추구하는 건물의 새로운 형태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인간 거주지를 창조해나가야 할 필요성을 믿고 있었다.
그들은 또한 지역계획에 관한 마르크스적 기본원리에도 동의하고 있었다.
도시 거주자들과 농촌거주자들에게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관점에서 동등한 생활조건을 제공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논제는 앵겔스의 주장 그자체이다.
"도시와 농촌 간의 모순을 해결하는 것은......농업생산을 위해 필수적인 것처럼 공업생산에도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아울러 공공위생을 위한 필수조건이 되었다.
도시와 농촌간의 융합만이 현존하는 대기, 토질, 그리고 수질오염을 제거할 수 있다.
오직 이 방법만으로 우리는 도시의 나약한 대중을 일으켜서 더 이상 그들의 오물이 질병의 원인이 아니라 농업생산에 기여할 수 있게 할 수 있다....반듀링론  "

 

- 모스크바 지하철과 같이 공공복지를 위한 거대한 프로젝트가 계획되었다. 우리는 수많은 아파트를 건설하고 있고,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개인주택과 조합주택의 건설을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과연 계속 진행시켜 나가야 하는가 ?'
'과연 우리는 자본주의 도시가 이미 걸었던 길을 통해서 발전과정을 따라잡으려고 하고 있지는 않은가 ?'
'아니면 우리는 몇 년 후에 우리가 파괴해야만 하는 건물을 짓고 있지는 않은 가 ?'
'우리는 우리 경제에서 가장 비용이 많이 들고 값비싼 길을 택하고 있지는 않은 가 ?'
...............사브소비치

 

- 개인주의적이고 쁘띠부르주아적인 삶의 방식을 혁파하기위해서 우리는 욕구충족을 집단화시켜야 한다..... 쁘띠부르주아의 개인주의적 삶의 방식은 집산화의 결과로 차츰 소멸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유형의 도시 중심부가 삶의 방식의 집단화를 그 기반으로 해서 이루어져야만 하는 이유이다.
또한 이것이 기존의 도시, 촌락, 마을을 대체하게 될 새로운 도시 중심부가 이러한 삶의 방식을 위하여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다.....사브소비치

 

- 긴즈부르크는 기존의 풍습과 날카롭게 대립하지 않는 것이 건강한 것이고,
삶의 방식의 집단화는 격려되어야 하는 것이지
강요되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이론적으로 반도시주의자들이 공동체 속의 개인을 강조하고 그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옳으나 현실적으로 그들은 개인에 대한 공동체의 역할을 자신들의 계획에서 잊고 있다.
반도시론자들에 의해서 제안된 인간주거에는 개별주택의 급증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공동체를 해체하며 인위적으로 개인을 소외시키며 사회적 본능을 질식시킨다.
우리는 소위 반도시주의자들의 역사적 전망에 반대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의 역사적 미래는 현실을 은폐하기 때문이며 그들은 미래를 계획하나 명쾌하고 경제적이며 정당화될 수 있으며 지금 적용가능한 현실적 상황과 가능성은 전혀 의식하지않고 있기 때문이다....하이거   
 
==========

이들 1920년대 러시아구성주의 건축가들에게 주어진 것은 

혁명이라는 현실이었다.

 

모든 것들이 주어지지 않은 

최소한의 생필품도 부족한

따라서 건축이라는 것을 시도해 볼만한 어떠한 경제적 기반도 없었던

그러면서도 그런 것을 받아들여서 건축을 해야하는 

종이와 연필만 가진 건축가들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종이와 연필을 가지고

지금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삶의 방식을 재구성하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그것이 권력의 강요나 명령이 아닌

우리들 각자의 격려와 삶의 에너지로 실현하려는 방식은 무엇이고

그것이 일상적인 삶에서 어떻게 보여질 것인가 ?

 

나는 이 문제에 답할 수 있을까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휴가...단속...신입..

  • 등록일
    2009/07/29 17:53
  • 수정일
    2009/07/29 17:53

휴가철이다...

길고 긴 장마도 지나고 드뎌 휴가철이다.

 

우리 회사는 한여름이 고비다.

아니 쏟아지는 물량에 심신이 피곤해지는 시기이다.

 

시청에서 대대적인 단속을 나온단다.

무엇인가 하청 업체들에게서 꼬뚜리를 잡으려 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신입사원이 들어왔는데

일하려는 의지는 많은데 며칠째 수거코스를 외우질 못해서

신입이나 나나 죽을지경이다....!!

 

오늘 간만에 주중에 쉬는 날이다.

간만에 쉰다는 것이 퍼득 와 닿지 않지만 그래도 좋아라 하며 싱글벙글

이런저런 밀린 일들을 처리하자는 조금은 퍼진 생각을 아침부터 했더랬다.

그렇게 이책저책 정리할 것들을 한아름싸 짊어지고 사무실에 나와서

담배 피워물고 룰루 랄라 시간 죽이기를 왕창하고 있는 터에 도형이형에게 전화가 왔다.

 

" 오늘 시청에서 대대적인 단속을 나온단다....

아무래도 신입을 믿고 맡기질 못하겠다....

힘들겠지만 오늘 출근해서 특근 한번만해라....."

 

".....^^;;.....음.....신입은...?"

 

"그냥 니가 수거코스 한번 더 가르쳐준다는 셈 치고 일하면 될 듯 한데...?.."

 

"....음....알았어......"

 

젠장이다.

도대체 남들 다 설레이는 이 휴가철에

있는 하루 쉬는 날도 못쉬게

그모누 단속은 왜 또 나온다는 것인지......띠벌이다.....

 

그러고 보면

올해 여름은 쉬는 날 없이 쭈욱갈 모양새다.

이젠 쉰다는 것을 포기하는 것도 익숙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짜증이 왕창이다.

아마도 몸이 조금은 힘든 모양새다....

 

출근준비해야 겠다.....

근데 정리하려고 가져온 저 책들은 또 어쩌나....^^;;;....에구구 ....띠발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한적하게 느끼다.

  • 등록일
    2009/07/29 07:01
  • 수정일
    2009/07/29 07:01

뭐 별다른 것은 없다.

다만

공부방 아이들과 공룡 친구들이

2박 3일로 미디어컨퍼런스 캠프에 참여하러 아마도 오늘 아침에 출발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갑자기 동네가 조용하게 느겨지고 한갓지게 느겨지는 것은 왜일까...??

 

어제 공룡친구들과

[공간]에 대한 수업 방향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

다들 다소 피곤한 기색이지만 난 내심 부러웠다.

음...너무너무 부러웠다....ㅎㅎ

 

그러고 보니 밤에 쓰레기 치우는 일을 하면서

나에겐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한 것 같다.

나 스스로 이리저리 궁리하거나 좋아라하는 책읽는 시간은 그럭저럭 넘쳐나지만

세미나나 혹은 캠프...뭐 이런 것들을 갈 수 없는 것이다.

무엇인가 사람들과 역동적으로 관계를 맺어가는 어떤 것들이

많은 제약을 받는 상황이다.

 

그나마 공룡친구들 혹은 몇몇 지인들의 도움으로 그나마 지금 별려놓은

몇가지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잘알고 있고

또 언제나 그에 대해서 고마워 하지만

그럼에도 매번 아쉽다는 생각을 한다.

음...나도 저런 모임에 가고 싶다 라는 부러움이 마구마구 든다는 거다.

 

물론 이뿐만 아니다.

누군가를 만나서 신나게 이야기하다보면 어느새

밤근무 준비를 해야하는 상황이 매번 반복되면서

실은 조금 외로움을 타는 경향이 생긴 것이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과 생활패턴이 전혀 다르다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ㅎㅎ

 

여튼

공부방 아이들과

공룡 친구들이 컨퍼런스에서 잼나는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오기를 빌어본다.

그리고 그 즐거움을 나도 언젠가 조금이라도 맛볼 수 있기를 빌어 본다....ㅎㅎ

 

다들

잘 지내다 와요.....ㅎㅎ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난 혼자는 못산다..!!

  • 등록일
    2009/07/28 05:58
  • 수정일
    2009/07/28 05:58

잠을 못잔지 48시간이 지나고 있는 듯 싶다.

일이 끝난 시간이 새벽 4시인데 이대로는 도저히 잠을 못잘듯 싶어서

성수형 꼬셔서 소주한잔을 했다.

각자 한병씩 마셨는데

난 정신이 점점더 말똥말똥....잠을 못자고 있다.

이러다가 정말 큰일날 것 같은 조바심이 드는데도

여하튼 잠은 안온다.....^^;;

 

성수형과 이야길 했다.

 

성수형 왈

"난 자식한테 올인했어...

내가 늙어서 혼자 외롭게 살 각오도 했다.

나에게 행복한 것은 내 자식이 잘되는 것....

그거면 난 모든 것이 행복할 수 있어...."

 

나 왈

" ....그건 아닌듯...늙어서 혼자 살수 없기때문에

조금이라도 형이 늙어서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준비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지금은 자식이 모든 것일 수 있어도 나중에

아무리 형 자식이 효도를 한다해도

형에게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수 도 있어...

적어도 마음맞는 누군가와의 관계들을 지속하려는 노력은 하셔야 하지 않을까...?..."

 

이 이야기하면서

나를 생각해 봤다.

 

난 속직히 혼자서 살아갈 수없는 놈이다.

난 마음맞는 누군가가 없으면 당장 지금도 살아갈 수 없는 놈이다,

솔직히 혼자 살아간다는 것 만큼 끔직한 것이 없고

그것만큼 나를 공포감에 떨게 하느ㅜㄴ 것도 없다

나는 누군가와 같이 살아가야만 행복할 수 있는 놈이다...

나에겐 자립심 혹은 독립심이 없는 걸까...?

 

성수형과 논젱아닌 논쟁을 하면서

스스로 나를 생각해 본다.

나......언제나 마음 맞는 누군가가 필요한 인간이다...라는 생각을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여름이군....!!

  • 등록일
    2009/07/27 15:28
  • 수정일
    2009/07/27 15:28

여름이다.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간다.

 

오늘은 아침에 해를 보고 퇴근해서인지

자려고 누웠는데도 잠이 오질않아서

그렇게 3시간을 눈감고 누워있다가 일어났다.

 

여름엔 도통 잠을 더 못자는 것 같다.

그만큼 몸도 많이 피곤하고 힘들다.

 

항시 좋아라 하던 책도 며칠째 진도나가지 못하고

정신이 멍한 것이

큰일이다 싶을 정도다.

 

재빨리 정신차리지 않으면 큰일날 것 같은데.....^^;;;....에구구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한달이군...!!

  • 등록일
    2009/07/24 18:02
  • 수정일
    2009/07/24 18:02

내 블러그를 쓰지 않은지 한달이 되어 가는 군...ㅋㅋ

 아!! 물론 공룡 블러그에 간간이 쓰기는 했는데

정리를 핑계로 그리고 나 스스로 무엇인가 다잡을 필요를 느끼면서

블러그를 잠시 쉬자고 결심한지 ㅎ나달이 되어간다는....ㅋㅋ

 

그런데 정리는  ??

전혀 되지 않았음..

아마도 머리로 정리하려드는 습관이 아직도 몸 여기저기에 덕지덕지 붙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여하튼

다음 주 정도면 왠만한 것들은 정리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은 조금 편해진 상태....

 

조금더 부지런 떨면서 살아야 겠다는 생각과

주변에 놓치고 가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다시한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스스로 나의 길을 가야한다는 것

자꾸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이름하에

나 스스로를 속박하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난 ....

어쩌면 그렇게 나일수 밖에 없지 않을가 하는 거다

다른 누군가가 나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것은

나 스스로를 기만하는 착각의 한 증상일뿐

언제나 나는

나일 수 밖에 벗었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그렇게 나로 살아가야 할 것라는 믿음이 조금은 생겼다.

아니 나 자신에 대한 그리고 나의 몸뚱아리와

나의 삶에 대한 믿음을을 복구하는 중이다.

 

다소

이기적일 순 있어도

결국 그럴 수 밖에 없는 것

 

그것이

 

바로 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블러그 쉽니다...^^;;

  • 등록일
    2009/06/27 22:52
  • 수정일
    2009/06/27 22:52

이제 블거그를 쉴까 합니다.

개인적으로 정리할 것들이 너무 많은데

스스로 너무 정리하고 살질 않은듯해서

이것저것 정리하고

결정할 것들  빠른 시일에 결정하며 살아야 할듯해서....ㅎㅎ

 

여튼

그냥 사라지면 욕먹을 것 같은 마음이 들 정도로 그동안

이 블러그가 소중했었던 듯 싶네요...ㅎㅎ

 

여튼

저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 공간에서 잠시 떠남니다,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고

또 꼭 돌아온다고 말하기도 그렇고....ㅎㅎ

 

여튼 그동안 즈래도 즐거웠다는 것 만으로도

이 공간이 제게는 너무 소중한 듯 하네여...ㅎㅎ

 

여튼

언젠가 만날날이 있겠져....ㅎㅎ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액체근대]..일과 공동체...너무덥다.

  • 등록일
    2009/06/24 12:30
  • 수정일
    2009/06/24 12:30

너무 덥다.....

완전 덥다.....

그래......

덥다.......

 

제 4장 일

-- '진보'는 역사의 특징이 아닌, 현재에 대한 확신을 의미한다.

    가장 심오하고 아마도 유이한 진보의 의미는 두가지 서로 긴밀하게 연관된 믿음,

    '시간은 우리 편이다'라는 믿음과

    그리고 '어떤 일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우리'라는 믿음으로 구성된다.

    이 두 가지 믿음은 공존 공생한다.

    그리고 이 둘의 공존은 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행위에 의해 뒷받침되면서

    어떤 일을 이루어지게 할 힘이 있는 한 계속 유지된다 .

    알랭 페르피트는, "가나안 땅의 황무지를 변화시킬 유일한 자원은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갖는 확신이며

      그들이 공유하게 될 미래의 모든 것에 대한 신뢰이다"라고 적고 있다.

 

-- 변화를 만들어 낼 힘이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에게, '진보'는 자명한 것이다.

    반면에 일이 자신들의 손을 벗어나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진보란 개념은 떠오르지 않을 것이며 어쩌다 그런 말을 들어도 비웃어 넘길 것이다.

 

-- 지금 시대는 '현재를 단단히 부여잡고 있다'는 확신감이

   진보에 대한 믿음이 자리할 유일한 기초라면,

   우리 시대에 믿음이 불안정해지고 취약해진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먼저 '세상을 앞으로 가게끔 하는' 힘이 뚜렷하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해답이 요원한 질문은 (세상을 더 나은, 더 행복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그 일을 할 것인가'이다.

   두번째로, 실천주체가--어떤 실천주체이든지 간에-- 세상을 개선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자꾸만 불분명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 확실히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이론이 아닌 실재

      즉,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할것인가 혹은 누구랑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것같다.

       특히, 지방에서 산다는 것은

       이런 실행의 주체의 문제가 언제나 운동/활동 전체의 문제로 둔갑하고는 한다.

      할수 있고 해야할 일들이...이런 기획들과 아이디어가 부족한 적은 없다.

      언제나 부족한 것은 "누가"이고 "누구"이다.

 

 

-- 진보 역시 '개인화'되었다.

    좀더 핵심을 말하자면 진보 개념에서 공적인 성격이 빠져나가고

    사적인 것만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진보, 그것은 이제 공적인 성격이 사라졌다.

    이는 지금 현실을 '업그레이드'하려는 제안들이 다종다양해졌기 때문이고,

    기발하고 새로운 것이 정말 개선을 의미하는가라는 논쟁이

    그것이 도입되기 전후로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고

    선택된 연후에조차도 논박당할 여지에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개선이란 문제가 이제는 집단이 아니라 개인 차원의 기획이 되었기 때문에

    사적인 것이 되었다.

    이제 자신들의 지혜와 자원과 근면함을 이용하여

    스스로를 좀더 만족스러운 조건으로 끌어 올리고,

    불쾌한 현재의 조건들을 수수방관하는 것은 바로 개개 남녀들이기 때문이다.

 

==> 최근 지역의 활동가들을 만나거나

       아니면 과거의 지인들을 만나면 공통된 현상이 이것이었다.

       우리가 추구하던 '진보'라는 것이 사적인 것으로 되어 버렸다는 거다.

       심지어는 요즘 무엇인가 함께하고자 하는 나의 주변 지인들마저도

       이렇게 '진보'를 사적인 것 화...개인화하여 다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처럼 강박일 정도의 공공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진 않더라도

       이렇게 개인화하는 진보란 실은 자기만족을 위한...자기방어의 목적이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어보이고 심지어는 칙칙한 패배자의 이미지마저 묻어나는대도

       개인화의 길로 나아가는 모습은 옆에서 보는 이들마저 질리게 만드는 경향인 것 같다.

 

--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현재를 부여잡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를 고수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설계도에서 '미래'를 포용할 여지는 적어진다.

 

-- 통상 '중심'을 전적으로 지배하게 된 경향은

    '주변'에 속한 곳들에서 가장 즉각적으로 탐지되고 가장 분명하게 발언된다.

    문명의 중심 그 외곽지대에 산다는 것은 현상을 분명하게 관찰할 만큼,

    그것도 현상을 '객관화'해서 볼 만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며,

    그리하여 그 인식을 개념화하여 빚고 응축시키기에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 이 중심을 주변에서 파악하는 문제는 새삼스럽진 않다.

        우리 개인들의 삶속에서도 충분이 눈치챌수 있는 보편화된 현상이랄까...?

        이 중심을 주변에서 파악해 보는 것때문에 요즘 내가 힘든 것 같다.

        ...??......??.....^^;;

        그냥 우연찮게 주변에서 서성이다보니 보인다는 거다

        그 활동 혹은 삶의 중심적 경향이.....ㅎㅎ

        그래서 걱정하고 우려하고.....나까지 힘들어하는 건지도 모르겠다....?....ㅎㅎ

         이런 나를 보면서 가끔은 이게 뭐하자는 거냐..?...싶어진다.....크크크

 

-- 현재의 일상은 (지위와 자격과 생계의) 불안정과

    (이것들이 지속되고 미래에도 안정적일지에 대한) 불확실성,

    그리고 (일신상의, 우리 자신을 포함한 우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들,

    즉, 소유물, 이웃, 지역사회의) 불안함을 결합한 것이다.

 

-- 유대와 동반관계는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소비되는 것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5장. 공동체

 

-- 다르게 표현했다는 것이 중요하며,

    그렇게 달리 표현한 것 자체에 때로 신랄한 실용적 여운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나는 '[현재] 그러함'의 담론을 측량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다른 것은 '되고 있음'의 담론을 판단하기 위한 것이다.

 

-- 필리페 코엔은 당대의 삶의 고난들에 대한 치유책으로

    그들이 고아원, 감옥, 혹은 정신병동같아 보인다고 결론지었다.

    코엔의 말은 타당하다.

    해방의 가능성은 공동체주의자들의 관심사였던 적이 없다.

    장래의 공동체가 치유하길 바라는 고난들은 바로

    해방의 과잉, 안락함을 누리기에는 너무나도 큰 해방의 가능성이 누적되어 생긴 침전물이다.

    자유와 안전 사이의 올바른 균형을 오랜 기간 결론없이 모색하면서,

    공동체주의는 후자의 편에 확고히 서 있다.

    인간이 소중히 여겨온 이 두가지 가치가 서로 충돌하고 반대 목적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

    한 쪽을 맛보려면 다른 쪽의 일부, 아니 어쩌면 큼지막한 부분을

    반드시 양보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바이다.

    공동체주의자들이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한 가지 가능성은

    인간의 자유를 넓히고 파고들어가게 되면 인간 전체의 안전의 합이 늘어날 수도 있고,

    자유와 안전이 상호 공존 속에서 각각 증대됨은 물론이고

    이들이 같이 성장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 새삼 등장한 몸의 우선성은

    공동체 이미지(확실성을 겸비한 안정감을 주는 공동체, 안전의 온실과도 같은 공동체)를 형성할 때

    몸이 이상적으로 보호되는 유형을 따르는 공동체를 만들려는 경향에서 반영되고 있다.

 

 

====

우하핫 ...드뎌 정리 끝...^^;;

읽으면서 그때 그때 재빨리 정리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다.

읽자마자 정리해야 머릿속에 그나마 잠깐씩이라도 떠돌던 생각들을 남겨놓을 수 있을 터인데

이렇게 시차를 두고 정리하다 보면

점차로 그저그런 생각들만 머리에서 맴돈다...

그러니 결국 책을 읽고 정리하는 것도 시간에 따른 부지런함이 있어야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다....ㅎㅎ

 

분발하자....크크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액체근대](4)..시공간에 대하여

  • 등록일
    2009/06/23 12:44
  • 수정일
    2009/06/23 12:44

정리가 서서히 지겨워진다.

이 책 읽기는 다 읽었고 재미도 상당했었는데

문제는 정리하는 것이 지겨워지는 거다...ㅎㅎ

 

뭐 딱히 이걸 왜 정리하려고 할까 하는 의구심도 뭉게뭉게 피어난다...ㅎㅎ

게으른자의 최후처럼 하기 싫으니까 온갖 핑계거리들이 마구마구 쏟아진다...ㅎㅎ

 

하지말까..?

 

3장. 시공간

 

-- 도시라는 것은 이방인들이 서로 마주칠 만한 장소를 뜻한다.

    덧붙이자면 이 말은 이방인들은 이방인으로서 만나게 되는 것이고 그 등장 뿐 아니라

    사라짐도 갑작스럽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 상대를 보호해주면서 상대와 즐길 수 있게끔 하는 활동, 가면을 쓰는 것이 예의의 본질이다.

    각각의 가면들은 그 가면을 쓴 이들이 권력과 불쾌감, 개인적 감정과는 거리를 둔 순수한

    사회적 친분을 가능케한다.

     예의의 목표는 남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자신으로부터 타인을 보호하는 것이다.

     (물론 이 목표는 자신도 그만큼 보답을 받으리라는 희망속에서 추구된다.)

 

-- 예의의 기술을 개인적으로 습득하여 실천하기 전에, 그것은 우선 배경이 되는

    사회의 특성이 되어야 한다.

    만일 어느 도시의 주민들이 예의의 그 지난한 기술을 터득하려 한다면,

    예의바른 것이 되어야 할 것은 바로 그 도시의 환경인 것이다.

 

-- 그리하여 개인이 아닌 '공공의 가면'을 쓰는 것은 일종의 적극적 결속과 참여 행위가 된다.

    즉, 가면을 쓰는 일은 상호 교류하고 관련을 맺는 삶에서 이탈하여

    그냥 나를 좀 가만 내버려두라고, 그냥 이렇게 살자는 식으로 전혀 개입하지 않거나

      '진정한 자아'를 몰수해버리거나 하는 것이 아니게 된다.

 

==> 결국 액체근대에서 각 개인들이 선택할 문제는 각 개인의 가면을 쓸 것인가

        아니면 공공의 가면을 쓸것인가를 선택하는 문제와 예의바르게 되기위하여

        나 자신을 바꾸어 갈것인가 아니면 도시를 예의바른 환경으로 만들것인가 하는 문제인 듯 싶다.

        액체근대 즉, 유동하는 근대에 있어서 지나치게 개인의 능력과 책임으로 파편화되는 일상들을

        어떻게 공공의 문제로 집단화 할것인가가 첨예한 문제라면

       우리는 언제나 적극적인 결속과 참여의 방식으로써의 공공의 가면을 고민해 봐야 할 듯 하다...ㅎㅎ

       가면 무도회라도 열어보아야 하는 것일까...?...푸하하하

 

-- 공적 공간이면서도 예의바르지 않은 두번째 공간은 소비자들을 위한 역할, 정확히 말해서

    도시 거주자들을 소비자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소비자들은 흔히 별다른 실제적 사회 교류 없이도

    물리적 소비 공간을 서로 공유한다. 그러한 공간들은 상호적이지 않은 행위를 장려한다.

 

-- 쇼핑은 기본적으로 공간 여행이며 시간 여행은 부차적인 것이다.

    카니발은 변형된 도시, 더 엄밀히 말하면 변형된 도시가 원래의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동안의 시간의 틈이다.

 

-- 카니발은 현실이 겉으로 보는 것처럼 가혹하지는 않으며,

    도시가 돌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소비의 사원들은 일상적 현실의 무미 건조한 견고함과 난공불락의 성격말고는

    어떠한 본질도 드러내주지 않는다. 소비의 사원은 미셸 푸코의 '보트'처럼

    "홀로 존재하며 문을 닫아건 동시에 망망대해의 무한함에 몸을 내맡기고 있는,

         부유하는 공간의 조각이자 장소 없는 장소이다"

 

==> 소비 혹은 쇼핑에 대하여 좀더 많은 고민들을 해야겠다.

우선 소비는 자본주의의 내성, 본질로서의 [교환]이라는 것에 대한 고민들이 필요한 것 같고

쇼핑은 공적공간 혹은 자본의 공간에대한 점유 형식으로서의 고민들을 해봐야 겠다.

음....아무래도 조금은 무거운 공부가 되려나 ...?....ㅎㅎ

어쨋든 열공....ㅎㅎ...언젠가는....ㅎㅎ

 

-- 공간은 그것이 통제될때 진정 '소유되었다'.

    그리고 통제는 무엇보다도 '시간을 길들이는 것',

    시간 속에 존재하는 역동성을 무력화 시키는 것이었다.

 

-- 시간의 새로운 즉시성은 인간의 공존 양식을 바꾸어 놓는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인간이 공동의 일에 주의를 기울이는 방식

    (혹은 때에 따라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방식),

     인간이 어떤 일들을 공동의 일로 만드는 방식(혹은 그렇게 하지 않는 방식)에서 일어난다.

 

-- 즉시성의 시대에 '합리적 선택'은 결과를 회피하면서 만족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결과가 내포하고 있는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뜻한다.

    오늘의 만족을 위해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내일 만족할 기회를 저당잡힌 것이다.

    지속은 자산을 부채로 바꾸어 놓는다. 

   모든 육중하고, 고체이고 무거운 것들--이동을 가로막고 제한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 시간, 즉시성, 저당잡힌 시간에 대한 고민은 진즉부터 했었다.

        시간이 현대인들 특히, 우리같이 마을의 새로운 생성에 대한 고민들을 하는 부분에 있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인 듯 싶다.   

        특히 시간을 기록하고 그 속의 사람들의 공존의 방식들을 탐구한다는 것은

        보다 엄밀한 시간에 대한 분석들을 필요로 하기때문이다...ㅎㅎ

        이래저래 공부할 것들만 풍족해지는 삶이다...아니 나의 시간이다...ㅎㅎ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액체근대(3)]..무거움과 가벼움..ㅎㅎ

  • 등록일
    2009/06/22 13:10
  • 수정일
    2009/06/22 13:10

작정하고 정리는 하는데 더워지는 만큼 귀찮아지는 듯...ㅎㅎ

읽는 재미는 솔솔했는데 막상 정리하려니 조금은 귀찮아지는....ㅎㅎ

아마 더위 탓이겠지...?....ㅎㅎ

 

2장. 개인성

-- "생각하는 자에게 이 세상은 한편의 희극이고, 느끼는 자에게 이세상은 한편의 비극"...호레이스 월폴

 

--"수단을  알지 못하는데서 오는 불확실성이 아니라

                   목적을 알지 못하는데서 오는 불확실성이다....게르하르드 슐츠

 

-- 새로운 상황에서 어려운 점은 개인이든 집단이든 대부분의 인간의 삶이,

    돌아볼 것도 없이 자명한 목적들을 위한 수단을 찾아내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목표를 선택할지의 문제를 고민하면서 보내게 될것이라는 점이다.

    그 이전의 자본주의와는 대조적이게도, 가벼운 자본주의는 가치-강박적일 수밖에 없다.

    '구직란'에 나온 출처가 의심스러운 작은 광고 -- "차를 가져라, 그러면 여행할 수 있다."--는

    오늘날의 과학기술 연구기관들과 실험실의 총수들이 던지는 질문인

    "우리는 해결책을 찾았다. 그러니 이제 문제를 찾아보자"라는 말과 나란히,

    새롭게 등장한 삶의 문제점을 집약해주고 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행동을 지배하게 되면서

    "어떻게든 내가 꼭 해야만 하는 일을 제일 잘하는 방법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왜소화시키고 밀어버렸다.

 

==> 무거운 자본주의, 무거운 근대를 대표하는 양식인 포드주의에 대하여 좀더 고민해 봐야겠다.

   여하튼 이제까지의 자본주의 혹은 근대의 삶이 포드주의라는 갇힌 구조와 연결된 사슬안에서

   강한 고리들을 형성하면서 자연스레 수단들에 집중된 삶의 방식이었다면

    가벼운 자본주의, 유동하는 근대는 결국 목적을 잃어버린세대...그럼으로써 목적들을 찾아가는데

   막대한 삶의 에너지들을 소비하도록 하는 사회인 것 같다.

   결국 이런 목적들을 상실함으로써 근대체제에 저당잡혀버리는 삶은 어떻게 탈주할 수 있을까..?

   아니 어떻게 집단적인 삶의 목적들을 상정할 수 있을까..?

 

-- 그들의 사적인 문제들,  그와 비슷한 내 자신의 문제들은 공적으로 토론하기에 적합하다.

    그렇다고 그 문제들이 공적 이슈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문제들은 정확히 사적이슈라는 테두리안에서 토론된다.

 

-- 공공의 의제에서 '사적이지 않은' 다른 모든 문제들을 밀어내는 것이다.

-- 과거에는 사적인 것으로 분류되어 대중적, 공개적 표출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던 문제들이 공적 영역을 식민화하는 것 같다는 말이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은 사적영역과 공적영역 사이의 그 악명 높을 정도로 쉽게 이동하는 경계를

    단지 새롭게 재조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공적 영역을 사적 드라마가 상연되거나 공개적으로 전시되고

    관람되는 영역으로 재규정하는 문제이다.

    대중매체에 의해 유포되었지만 이제는 거의 모든 사회 영역에서 널리 용인되고 있는

    '공공의 이익'이라는 말의 현재 정의는 그러한 드라마를 공개석상에서 상연해야 할 의무와

    그 공연을 관람할 대중의 권리를 지시하고 있다.

-- 결국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에서 잘못된 것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실수 때문이라는 것,

    자신들이 잘못해서 그렇게 된 것이고

     자신들의 수단과 노력으로 뜯어고쳐야만 한다는 말을 매일 듣는다.

     따라서 이들이 어떻게 도구를 사용하고 노력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것이

     '사정을 아는' 척하는 사람들이 가장--아마도 유일하게--쓸모 있게 되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해도

     그다지 놀라울 것이 못된다. 이들이 '사정을 아는'사람들한테 거듭 들은 말은,

     그들 각자가 따로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이렇게 가벼운 자본주의하에서의 개인성은 결국 사적인 영역의 공적영역에서의

        일방적인 소비인것 같다. 교류 혹은 공유가 아닌 개인적 사적 영역들의 소비...

        가장 끜직한 이런 상황들이 결국 공적영역의 결핍으로 나타나고

        이런 결핍이 더욱더 개인들을 고립/파편화 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런 사적 영역의 공적 영역의 침탈을 막는 방식은 무엇일까..?

        과거로...무거운 근대로...혹은 잘 짜여진 포드주의적 삶은 아닐테고

        그렇다면 구체적인 방식의 구현은 무엇일까...?

 

--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한 방향으로 달리고 있으면 두가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그들이 쫓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어디로부터 달아나고 있는가...?

    소비....

    건강한 몸과 균형잡힌 몸

    쇼핑에 대한 고민들....

-- 오늘날 기준에 대한 복종을 얻어내는 것은 강제가 아닌, 유인과 꼬드김이다.

    외부에서 가해지는 하나의 압력임을 드러내기보다는 마치 자유의지를 실천하는 것처럼 위장된다.

 

==> 결국 우리는 따로 떨어져 쇼핑한다....

 

요약 하자면 이렇다.

'쇼핑하고 다니는'식의 삶을 특징짓는 정체성의 이동성과 유연성은 해방의 도구가 아니고,

자유의 재분배이다.

때문에 이러한 삶은 절반의 축복이라 하겠다.

그것은 불쾌감이 들고 두려운 만큼이나 달콤하고 갈망의 대상이 되는,

그리고 가장 모순된 감정들을 불러일으키는 축복이다.

이 축복은 앞뒤가 안 맞고 거의 신경증적인 반응을 낳게 되는, 지극히 모호한 가치이다.

소르본의 철학자 이브 미쇼의 표현대로

 "기회들이 과도해짐에 따라 파멸과 파편화, 해체의 위협이 점증하고 있다."

자기 정체성을 찾는 과제는 첨예하게 분열적인 부작용을 낳는다.

이 과제가 갈등의 초점이 되고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충동들을 촉발한다.

모두가 이러한 과제를 떠맡게 되지만, 문제의 해결은 각 개인들이 대단히 다른 환경에서

제각기 구해야 하기 때문에,

이는 협력과 유대를 발생시키는 쪽으로 인간조건을 통일시키지 못하고

인간의 처지들을 분할하고 흉포한 경쟁들을 야기하는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