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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훈 단지 사건과 노동조합의 독자성

이경훈 단지 사건과 노동조합의 독자성

 

[16일 오후 현대차 울산공장 본관 잔디밭에서 열린 조합원보고대회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이경훈 지부장이 연설도중 "함께 가겠다…조합원 여러분에게 단지(斷指)로 맹세하겠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왼손 새끼손가락 일부를 절단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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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훈의 단지 사건은 주간연속2교대제, 타임오프, 비정규직 철폐 등 계급적 현안 문제에 대한 조합원들과 노동자계급에 대한 협박 - "입을 다물라" -임과 동시에 집행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내부 권력투쟁의 일환이다.

 

미국의 국가부채와 유럽국가들의 부도위기, 세계대공황은 자본가들로 하여금 개량의 떡고물을 줄 수 없는, 타협의 여지가 없는 계급투쟁의 공간으로 내몰고 있다. 자동차산업 재편과 자본의 통제권을 장악하기 위한 투쟁에서 현대자본은 더욱 더 계급적으로 단호하다.

 

"독점자본주의는 시간이 갈수록 노동조합의 독자성을 허용할 생각이 없다. 그래서 독점자본은 자신으로부터 떡고물을 받아먹는 개량주의 관료와 노동귀족에게 이렇게 요구한다. 노동자들이 보는 앞에서 나를 위한 정치경찰이 되어라, 이러한 요구가 거부될 경우 독점자본은 노동관료집단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파시스트들로 채운다. 그런데 장기적으로 보면 제국주의 하수인이 되려는 노력을 아무리 해도 노동귀족은 결국 제국주의의 눈 밖에 날수밖에 없다"(트로츠키, [노동조합투쟁론], 풀무질, p.30)

 

노동조합허가제인 타임오프와 자동차산업재편과 자본의 현장통제권을 강화하기 위한 주간연속2교대제는 제조업 노동자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계급적 현안문제이다.

 

현대자본은 노동조합의 파업권을 완전히 무력화시키고 노동강도강화, 전환배치 자유화, 비정규직 대량해고를 통해 노동유연화를 완성시키고 자본의 현장통제권을 장악하려고 하고 있다.

 

이는 곧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을 노예노동으로, 생존의 벼랑으로 내몰게 될 것이며 정규직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해고의 문을 활짝 열어놓게 될 것이다.

 

제조업 생산라인에 수백명, 수천명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투입될 수 있는 유연화의 완성을 위해 이명박 정부와 자본가들은 이미 직업안정법을 개악했고 파견법을 재개악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자본은 이경훈에게 자본가의 개가 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모양새 좋게 노사상생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 있지 않다.

 

이경훈은 조합원들의 투표를 통해 선출된 합법적인 집행권력이고 조합원들의 운명이 걸려 있는 현안문제를 자본가들의 입맛대로 막 퍼 줄 수 없는 조건이다. 현대차노조 조합원들이 아무리 보수화됐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생존이 걸린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 결과들에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에게도 명분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현대자본은 이경훈 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자신의 파트너를 물색하고 선을 넣고 있다. 이경훈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개가 될 수 있는 자들은 다양하고도 많다. 어용세력 내부의 권력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이경훈의 단지 사건은 조합원들 내부의 불만을 통제하고 어용세력과 제조직들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손가락 자를 용기가 없는 놈들은 꼬리를 내려라, 회사는 내가 통 크게 결단할 수 있도록 개량의 떡고물을 던져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계급투쟁의 무장해제, 자본가계급에 대한 적극적인 협력, 그리고 이 배신의 댓가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권력투쟁의 산물이 이경훈의 단지사건이다.

 

이경훈의 단지 사건은 노사상생, 노사협력, 노사정 협약의 모델이 이미 과거지사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회사와 노조의 통합. 이것이 이명박 정부의 노동조합 정책이고 더욱 강화되고 있다.  

 

현시기 노조의 독자성 문제는  노동자계급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주요한 문제다. 이미 대공장 정규직 남성 중심의 민주노총운동은 이미 부르주아지배질서의 일부분이 됐다. 아래로부터의 계급투쟁을 통제 파괴한 기초 위에 세워진 개량화되고 관료화된 민주노총운동은 자본가계급에 대한 협력, 부르주아 지배질서의 유지와 연장 이상의 의미를 담기 힘들다.

 

따라서 노조의 독자성 문제는 개량화되고 관료화된 민주노총운동에 맞서 아래로부터의 계급투쟁일 수밖에 없으며 자본가계급이 노동운동 내에 도입된 수직적인 신분제도를 뿌리로부터 파괴할 수 있는 수평적인 연대(조합주의,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투쟁일 수밖에 없다. 이는 민주노조운동의 초창기의 성격이었던 자주성,  민주성, 계급성, 연대성, 전투성을 복원하는 것, 영국의 직장위원회 운동, 이탈리아의 공장평의회운동 등 공장위원회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고 이는 개량이 아니라 혁명의 문제, 국가권력을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 공황기 노조의 독자성 문제는 노조가 혁명의 지렛대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만 온전하게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  

 

이경훈의 단지 사건은 또 다른 측면에서 이경훈과 집행권력을 다투는 제조직에게도 경고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던지고 있다.

 

즉 이경훈처럼 손가락을 자를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집행권력을 잡을 생각을 말라는 것이다. 이는 다른 말로 입으로, 문자로 내거는 슬로건으로는 더이상 이경훈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고 이경훈과 다를 바 없는 현대자본의 파트너일 뿐이라는 것을 드러내 줄 뿐이다. 참으로 비참한 현실이다.

 

이경훈의 단지 사건은 타임오프 분쇄, 주간연속2교대제,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독자적인 실천투쟁, 집행권력과 대당하는 비공인 현장파업을 요구하고 있다. 이경훈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여전히 혁명적 주체는 새롭게 조직되고 재구성돼야 한다. 

 

-조성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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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창간준비 1호] 진보대통합, 처음엔 비극(悲劇) 이젠 소극(笑劇)!

 

진보대통합,  처음엔 비극(悲劇) 이젠 소극(笑劇)!

 

                                    - 남궁원

 

 

  한 가지는 분명하다. 최근 몇 년 동안에 일어난 급속하고 거대한 유럽 · 중동의 계급투쟁 흐름과 자본주의 경제위기는, 부르주아 계급이 이 위기 극복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알다시피 자본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통합되었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대다. 미국과 유럽 경제위기는 실시간으로 한국 자본주의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부르주아 언론에서도 양극화 (즉 노동자 궁핍화) 현상을 심각하게 언급하고 있듯이, 전 세계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서 한국 노동자라고 예외는 아니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계급투쟁이 부활하고 있는 모습이다. 올해 초에 미국 노동자와 학생, 시민들은 공공부문 정리해고, 임금삭감, 노동조합 단체협상권 박탈에 맞서, 1970년 베트남 전쟁 반대 이후 대규모 시위를 벌여 위스콘신 주 의사당을 16일 동안 점거 농성했다. 유럽과 아프리카 중동지역에서는 연일 시위와 광장 점거, 파업 상황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국은 조용하다.
  유성 기업 투쟁과 한진 중공업 정리해고 반대 크레인 농성투쟁 (희망 버스 투쟁), 반값 등록금 투쟁이 전개되고 있지만, 대대적인 파업과 가두 투쟁은 최근 몇 년 동안 시도조차 되고 있지 않다.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립된 공장점거 파업투쟁이 전개되었지만 연대 총파업으로 투쟁이 확대되지 못했다. 민주노총 차원에서의 총파업도 그 동안 실행되지 못하고 매번 ‘뻥파업’이라고 비난 받는 가운데 이젠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다. 민주노총은 현장 투쟁을 확대 발전시키는 것은 이제 아예 포기하고 오직 진보대통합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듯이 보인다. 물론 민주노총만이 문제가 아니다. 진보대통합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하는 세력들을 보면 계급투쟁을 확대시켜야 할 임무를 모두가 한결같이 포기한 모습이다. 투쟁 확대의 포기와 진보대통합 ‘올인’은 상호 연동되어 있는 것인가? 

 

지배계급의 위기관리 본능

  최근 우리는 지배계급이 내놓는 몇 가지 담론을 듣는데, “공정사회” “초과이익공유제” “반값 등록금” 등이 그 예다. 공정사회란, 말 그대로 MB정부가 정권 말기에 공직사회 ‘군기 잡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법과 질서를 엄격히 적용해서 노동자 파업이나 시위대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집회 참가자에게 날라드는 수많은 출두요구서와 최근 잇달아 터지는 강릉 청년단체협의회 , 인천지역 노동자, 민주노동자전국회의 국가보안법 사건들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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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초과이익 공유제”와 “대학생 반값 등록금”이다. 시민사회단체에서나 낼 법한 초과이익 공유제라는 재벌개혁 정책을 정부 ⁃ 여당에서 내놓고 논쟁을 하고 있다. 초과이익 공유제는, 말 그대로 “대기업이 초과이윤을 냈을 경우 그 이익을 중소기업과 나누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삼성 자본가 이건희는 “초과이익 공유제가 사회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 도무지 들어 본적이 없다”고 반발했다. 더 나아가 보자. 최근 한나라당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서 정통 보수 박근혜 측근은 “대학생 등록금 45% 지원을 약속하고, 보수보다는 진보에 강조”를 내걸고서 당 지도부에 선출됐다. 그 이면에는 지금과 같이 한나라당 운영을 보수적으로 했다가는 망한다는 생각이 짙게 깔려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가.
물론 립서비스 차원이겠지만, ‘노동자투쟁의 잠재적 폭발 가능성을 사전에 막기 위한’ 지배계급의 자본주의 위기관리 본능이 발동되는 것 같다. 보수적 진보(?)’를 말하며 이제 자본주의 경제위기에 대응해서 고도의 전략적 개입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보정당 대통합 논의

  지배계급의 정치세력 및 블록들 간의 이해나 갈등을 자본주의 경제위기, 계급투쟁과 연관시켜 총체적으로 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부르주아 정치평론가들이 즐겨 표현하는 인물주의나 지역 · 계파 중심으로 정치행위를 분석하는 오류에 빠지기 쉽다. 현재 자본주의 경제위기를 둘러싸고 지배계급은 대(對) 프롤레타리아 투쟁을 염두에 두며 ‘자본(주의) 재구성’을 위한 치열한 논쟁을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진보, 좌파,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최근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지난 5월31일에 진보대통합에 합의했다. 사회당은 진보대통합 합의문 서명에 불참하고 새로운 진보정당 구상에 나서고 있으며, 국민참여당은 진보대통합 참여의사를 밝히고 있다. 여기에 진보정당 통합 논의에 민주노총이 적극 참여하고, 진보정치세력의 연대를 위한 교수연구자모임(진보교연)이나 진보통합-복지국가를 위한 시민회의(시민회의)가 진보대통합 참여 논의를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개혁 진보 좌파 정치세력들의 정치행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 진보 좌파 정당 운동의 통합 역사와 행태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과거는 단순히 지나간 역사를 회고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되는 진보(정당)대통합 정치의 주체들의 역사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것이다. 
  

  선거를 겨냥한 과거 진보 · 좌파 통합의 실패

  91년 7월 인민노련, 노동계급, 삼민동맹 3파 연합은 <한국사회주의노동당 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공개적이고 합법적인 진보정당 결성을 추진하게 된다. 당시 <한사노당>은 “광범위한 좌파연합을 통한 대중정당 건설과 이 속에서 사회주의 세력의 독자적인 분립”이라는 기본테제를 확정한다. 이른바 3파 연합인 <한사노당>은 사상 노선에 대한 토론과 확립 없이 (이른바 좌파 연합을 통한 대중정당 건설을) 연방주의적으로 구성하는데, 92년에 <한국노동당 창당준비위원회>로 이름을 바꾼 뒤 민중당과 통합하게 된다. 그리고 통합민중당은 1992년 14대 총선에서 참패하고 해산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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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5년 인민노련 중심의 진보정당추진위(대표 노회찬) 와 민중정치연합 (대표 김철수)내 우파인 (사노맹이 외화된) 사회당 추진위 세력은 진보정치연합을 건설하고 곧 바로 96년 15대 총선에 나섰다. 당시 진보정치연합은 15대 총선방침을 논의하는 대의원대회를 열고 ‘진보정치연합은 개혁신당의 후보로 출마하는 것을 중심으로 15대 총선에 참여한다.’는 방안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 진정추 세력을 대표하는 노회찬은 개혁신당을 거쳐 ‘꼬마 민주당’ 당무위원으로 선출되고. 강서 을에서 조직책으로 선임된다. 그러나 노회찬은 96년 총선을 한 달 앞두고 최종적으로 사면복권이 되지 않아 출마자격을 얻지 못했다. 15대 총선 실패 이후 진보정치연합은 사실상 내부 갈등 관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식물’ 정치조직으로 존재한다. 이후 97년 전국연합과 국민승리21를 구성, 민주노동당에 참가한다.
  한편, 93년 민중회의에서 분화 발전한 우리청년회는 97년 대선 독자 후보 논쟁을 둘러싸고 정치연대를 탈퇴한 뒤, 98년 독자적인 <청년진보당>을 결성한다. 이들은 2000년 16대 서울 전 지역 총선후보를 낸 뒤, 이후 반(反)조선노동당 정체성을 기초로 한 사회당으로 개명한다. 사회당은 2002년 대선 독자 후보 활동을 한 이후 내부 사상투쟁에 휩쓸리고, 사회당 내 자율주의 세력이 이탈한다. 사회당은 특히 2007년 대선에서 ‘사회적 공화주의’를 핵심으로 내세우는데 , 사회적 공화주의 요체는 “국민 모두가 진짜 주권자” “민주주의” “평화주의” “신자유주의 반대” 등이다. 사회당은 몇 번의 선거에 독자 후보를 내지만, 의회 진입의 높은 벽을 매번 실감하고 실패한다.

  90년대 공개적으로 등장한 진보 좌파 주류 세력은, 군부파시즘 타도라는 역사적 시기를 걸쳐,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형성된 노동자정치세력화 열망의 일부 표현이기도 하다. 또한 민족해방파의 부르주아 (김대중 )비판적 지지에 맞서 투쟁한 점 또한 성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위에서 봤듯이 진보 좌파 ‘주류’ 세력은 전략적 과제로서 ‘선거 정치에 집착’하면서, 체제 내적 운동으로 전화된다.
  사실 진보, 진보정당, 좌파라는 단어는, 사회주의 정치 운동세력이 85년부터 89년 비합법 정치운동 시기에서 벗어나, 90년 공개 정치운동을 하면서 자신을 드러내면서 썼던 용어다. 한편에서는 90년 현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사회주의를 방어하면서 ‘진보 좌파 정당’ 용어를, 다른 한편에서는 NL(민족해방운동) ‘반정립을 위해 좌파’라는 말로 자기 정체성을 드러냈다. 진보/ 좌파라는 단어는 NL 운동에 대한 상대적 개념이며, 사상 이론 혼란에 따른 90년대 방어적 사회주의 정치운동을 관통하는 말 가운데 하나다.
다시 말해 진보/좌파는 사상 이념적으로 다양하게 해석되는 불명확한 개념이며, 이러한 인식에 기반을 둔 진보 좌파 정당 주류 세력은 역사적으로 사민주의 선거용 정당으로 나갔다.

 

  2008년 민주노동당과 분당한 진보신당은 개혁주의적 (노사모 수준) 성향의 촛불당원이 대거 들어와 그 옛날의 좌파 진보 정체성조차 불투명한 상태다. 특히 진보신당 안에는 이번 진보대통합과 관련해서, 아예 복지국가를 중심으로 민주당, 국민참여당까지도 함께 하자는 세력, 민주노동당과 통합하자는 세력, 사회당과 통합을 우선시하는 세력 등 다양한 세력이 존재한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진보 좌파로 표상되는 진보정당은 명확히 실패로 귀결되었다.
사회당은 진보 좌파의 전형을 보여주는 데, 그 정점이 바로 ‘반조선노동당’ 핵심 슬로건이다. 이는 당의 성격을 반국(半國) 관점에 근거한 것으로, 국제주의 관점과 세계혁명 전략을 스스로 제거해버린다. 또한 사회적 공화주의는, 자본주의 발전 역사에서 부르주아 국가와 민족주의 형성은 영토를 중심으로 한 (국민/민족) 주권, 민족자결권을 핵심으로 내세운다는 점에서, “국민 모두가 진짜 주권자”를 모토로 한 ‘사회적 공화주의’는, 사회당이 과연 사회주의자 정당인지조차 의심스럽다. 이른바 이들이 최근에 주장하는 ‘기본소득론’은 자본주의 ‘생산’ 문제는 외면한 채, ‘분배’ 문제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체제 내적인 전략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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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선 대선 판짜기: 진보대통합 논쟁의 의미

  민주진보대통합은 2012년 4월 총선과 대선 선거 정국 판짜기용이다. 그 정치적 귀결은 반MB 정권교체이며 2013년 연합정부다. 따라서 이를 위한 부르주아 정치가와 진보정당들 상층부 인사들의 ‘그림 그리기’와 이합집산이 상층부 차원에서 추구된다. 부르주아 계급정당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야4당 통합을 주장한다. 진보정당 상층부 일각에서는 연합정부 하에 장관자리까지 언급하고 있다. 시민단체 또한 진보대통합을 주장하고, 민주노총 현 집행부는 1만 추진위원을 제안하면서, “노동자 집권”, “노동자는 하나”, 그래서(?) “당도 하나”라는 1국 1정당론에 기초한 진보정당 대통합을 주장하고 있다.
  이른바 ‘민주진보 대 반민주’ 구도다. 여기서 더 나아가 민주진보세력의 총 단결인 ‘정당연합’을 추구한다. 이는 결국 대선시기 민주당 비판적 지지로 귀결되며, 이들은 다시 노무현식 대선 바람을 꿈꾼다. 한 정치연예인은 “국민의 명령”을 얘기하면서 백만 민란과 야권 통합을 위해 행동에 나서고, 발 빠른 부르주아 정치인은 자신의 지역구를 민주노동당 대표 이정희에게 물려줬다.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는 중앙위원회를 개최해서 만장일치에 가까운 진보대통합 추진을 이끌어 냈다. 여기에 민주진보대통합에 진보신당 스타급 연예인 심상정과 노회찬 참여. 이 ‘그림 그리기’는 과히 공상적이지도 않고 진보대통합을 둘러싼 정치 지형을 볼 때 현실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진보신당 당원중 상당수가 자유 개혁주의적 성향임을 볼 때 더욱 그렇다.
  여기에 민주노동당 NL파의 친 국민참여당 행보는 사실 80년대부터 노선적으로 예견되는 상황이었다. 민주노동당 NL파의 “우리민족끼리’로 표현되는 소부르주아 민족주의 정치노선은 이론적으로 ‘민족적’ 내용 확보가 핵심이며, 이는 언제나 국민경제를 둘러싸고 논의하게 된다. 그런데 ‘국민경제의 지배/종속’이라는 관점은 정확하게 말하면 부르주아 경제학의 관념이다. 우리는 현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수많은 부르주아 연구 · 정책 보고서가 어떻게 하면 국민경제를 대외 의존에서 벗어나 자립적인 경제구축 강화 방안을 모색하는 연구보고서를 숱하게 본다. 왜냐하면 국내 부르주아에게 국외 부르주아와의 경쟁과 상호 모순적인 협력은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부르주아 세력과 연합하기 위한, 민주노동당의 ‘사회주의 문구’ 강령 삭제는, 민주노동당의 ‘친 부르주아적 성격’을 더욱 강화한다. 

 

  새로운 진보정당, 아직도 신자유주의 반대?

  다른 한편, 보수- 개혁- 진보(좌파) 구도가 존재한다. 이들은 진보신당 (새로운 진보정당)독자파, 사회당, 새로운노동자정당추진위원회(새노추)로 표현되는 세력이며, 진보대통합에 반대하는 ‘새로운 진보정당 추진’ 세력이다. 이들은 대체로 반신자유주의 진보정당에 동의하며, 정치적 목표로 여전히(!) “신자유주의 극복의 대안과 전략”을 모색하면서 “진보정치 혁신세력과 연대하여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추구한다.
일부 좌파 사회운동 단체는 사회운동 관점에서 “통합진보정당 내부에서 좌파적 블록을 강화하고 노동운동의 중앙파 등과 협력하여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중심의 방침을 최대한 제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함께와 진보교연은 “진보대통합에 찬성하면서, 국민참여당 저지”로 요약된다.
  이들 세력들은 여전히 90년대 중반 이후 형성된 애매모호한 진보/좌파 정치 연장선상에 있으며, 앞서 역사적 과정에서 봤듯이, ‘자본주의의 나쁜 측면들’에만 반대하는 ‘윤리적 반자본주의(규제)’ 운동에 머무른다. 사회주의 / 공산주의 전망을 뒤로 미룬 채, 기껏해야 자본주의 국가기구 ‘좌파’의 역할에 머무른다.
  이들은 여전히 ‘신자유주의 반대’ 슬로건에서 멈춰서 있다. (2008년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글로벌 자본가 빌 게이츠조차 신자유주의 폐해/반대를 주장하면서 ‘창조적 자본주의’를 촉구하는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반대는 재벌의 특정한 정책을 반대하고 민주적인 경제정책을 제시한다는 일반론적 의미 수준에서 머무른다. 반이명박 정부에 머무르면서, 결코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도전과 침해를 감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리를 둔다. 신자유주의 반대에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다양할 수 있지만, 그 귀착은 서구의 계급타협인 사회민주주의 정책으로 수렴될 가능성이 높다.

 

  사회주의 / 공산주의 지향을 분명히 하는 당 운동에 나서야

  현재는 과거의 축적이며, 동시에 미래를 향한다. 역사적으로 선거를 앞두고 진보 좌파의 이합집산 세력은 실패로 끝났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진보대통합은 총선/ 대선 선거대응을 위한 개편이며, 기껏해야 서구에서 실패한, 노동자 투쟁을 배신한 인민전선 재판이다. 특히 통합진보정당론자들은 소부르주아 민족주의(NL)와의 동거를 통해 끊임없이 인민주의와 사실상 반혁명적 시각을 확산시킨다.
자본주의의 장밋빛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 노동의 미래를 제시하는 것은 오직 노동자의 계급투쟁 능력과 권력의지에 달려있다. 이른바 ‘부르주아 개혁 정치(제도권 민주주의)’, ‘윤리적 반자본주의(규제)’ 운동을 뛰어넘는 혁명적 시각과 실천이 절실하다. 자본주의 위기가 본격화되고 있는 지금 시점에, 좌파, 진보라는 애매한 규정에서 벗어나, 이제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전망에 기초한 당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는 실천적으로 가장 단호하고 언제나 계급투쟁을 추동하고, 이론적으로 노동자 투쟁의 조건과 경과, 결과에 대해 인식해야 한다.
여기서 일체의 머뭇거림을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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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강령 개정: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

민주노동당 강령 개정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

                         

                                                                                                          - 이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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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며

 “민주 평등 해방의 새 세상을 향하여 : 민주노동당은 외세를 물리치고 반민중적인 정치권력을 몰아내어 민중이 주인 되는 진보 정치를 실현하며,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평등과 해방의 새 세상으로 전진해 나갈 것이다.
우리가 만들 세상 : 민주노동당은 노동자와 민중 주체의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할 것이다.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사적 소유권을 제한하고 생산수단을 사회화함으로써 삶에 필수적인 재화와 서비스는 공공의 목적에 따라 생산되도록 한다.
민주노동당은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한편, 인류의 오랜 지혜와 다양한 진보적 사회운동의 성과를 수용함으로써, 인류사에 면면히 이어져 온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시켜, 새로운 해방 공동체를 구현할 것이다.” 「2000년 1월, 민주노동당 창당대의원대회 제정 강령 중에서」

 

“자주 평등 인간해방의 새 세상을 향해 : 진보적 민주주의가 이 땅에 구현되지 않는 한 민중의 삶은 억압과 수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에 민주노동당은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해 자본주의 폐해를 극복하고 민중이 참 주인이 되는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를 건설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민중주권을 실현하며 자주와 평등, 인간해방, 자연과 인간이 생태적으로 공존하는 새 세상을 향해 전진할 것이다.” 「2011년 6월, 민주노동당 개정 강령 중에서」

   지난 6월 민주노동당은 정책 당 대회에서 창당 당시의 강령을 폐기하고 위와 같이 새로운 강령을 채택했는데, 한마디로 애매모호한 사회민주주의 강령에서 부르주아 좌파정당의 강령으로 당의 지향을 분명히 한 강령개정이었다. 민주노동당은 원래 태어날 때부터 혁명적 사회주의가 아닌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채택했고, 당을 주도하고 있는 노선은 이른바 민족주의 노선과 사회민주주의 노선이 절충적으로 혼합되어 있다. 민주노동당은 계급적 기반으로는 노동자 대중정당을 표방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좌파 민족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강령과 정치노선에서 사회주의의 가치를 주장하든 사회주의를 참칭하든 그들이 말하는 사회주의는 노동자혁명, 노동자 권력과는 거리가 멀어 결국 자본주의 체제 내의 좌파 정치세력으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위의 개정 강령에서 말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란 사회민주주의보다 후퇴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것이며, 민주당 같은 자본가 정당과 함께 하는 “자주적 민주정부”를 통해 실현될 수 있는 것으로 상정되어 있다.

 

  19세기 초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를 언젠가 얻어야만 할 이상으로 여겼고, 그 실현을 인간의 선한 의지나 지배계급의 선의의 결과로 보는 경향들이 있었다. 하지만 맑스주의는 역사를 계급투쟁의 전개를 통해 설명하고, 자본주의의 소멸과 공산주의의 실현을 위한 물질적 조건과 전제를 파악하여 과학으로 정립하였다. 맑스주의는 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를 타파할 혁명의 주체이며, 그 자신의 해방이 보편적 인간해방의 밑바탕이 되는 것을 승인함으로써 유일한 노동자계급의 과학적 세계관으로 자리 잡았다.

 

  사회민주주의는 이러한 노동자계급의 과학적 세계관인 맑스주의로부터 가장 먼저 이탈했는데, 이들이 바로 노동자계급을 정치의 주체에서 통치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대리주의’를 탄생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대리주의는 노동자계급이 계급투쟁과 공산주의 혁명의 주체로 서는 것을 근본적으로 차단시키는 반노동자적 사상의 한 조류이다. 역사적으로 이들은 노동자계급이 혁명의 주체가 되어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노동자평의회가 전 사회를 지배하면서 모든 착취를 폐절해나가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과정을 폐기하거나 왜곡시켰다.

 

  대리주의는 사회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라는 양 극단으로 나타났다.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평화적 이행을 추구했지만 자본주의를 극복하기는커녕 자본주의 약점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면서 부르주아 진영의 한 축이 되었다. 한편 스탈린주의와 그것의 모든 변종들(김일성주의 포함)은 사회주의를 참칭하면서 당 독재와 국가자본주의를 탄생시켰고 서구 자본주의 체제와 경쟁하다가 결국 사적자본주의로 회귀하여 이들 또한 부르주아 진영에 완전하게 포함되었다. 민주노동당은 이러한 대리주의의 두 조류 중 사회민주주의를 공식적으로 추구하면서도 스탈린주의 변종 또한 인정하고 있다.

 

  최근 북한에서 자본주의의 상징인 코카콜라와 KFC를 받아들일 거라는 소식과, 민주노동당이 강령에서 사회주의를 삭제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최악의 가짜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서 단 한 번도 노동자혁명이 일어나거나 사회주의적이었던 적이 없었듯이, 가짜 노동자정당인 민주노동당이 단 한 번도 노동자혁명을 주장하거나 사회주의적 실천을 한 적이 없었던 것은 같은 맥락이며, 이제야 자신들의 계급적 본성을 드러내 제 자리를 찾아간 것이다.

 

  민주노동당 정치의 근원

  서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한국의 민주노동당 또한 위와 같은 대리주의의 폐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들 정치의 중심에는 대리주의가 자리 잡은 지 오래이며 노동자계급을 정치와 투쟁의 주체로 세우기보다는 존중해야 할(?) 득표의 대상으로 전락시켜버렸다. 민주노동당은 창당선언문에서 부터 노동자계급을 주체로 세우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진보세력과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개인의 총화”를 이루어낸다고 함으로써 노동자계급 정당의 성격을 분명히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자기 당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탈계급적인 대중캠페인, 대중동원, 표 구걸, 계몽주의 같은 정치형태가 민주노동당 운동의 전형이 되었다.

 

  이곳에서 노동해방, 인간해방이 이라는 사회주의 가치는 당이 지향하는 운동의 목표가 아니라 노동자 대중의 표를 얻기 위해 계도용으로만 필요했다. 이들에게 사회주의가 계몽과 이상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타도하고자 하는 강력한 실천이 요구되는 운동의 당면 목표였다면 처음부터 강령에 넣기조차 불편한 가치였을 것이다. 이것은 설사 민주노동당의 개정 전 강령에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시킨다’는 문구가 들어있었다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사회주의란 19세기의 공상적 사회주의자들과 같이 언젠가 얻어야만 할 이상일 뿐이라서, 사회주의를 실현시키고자 현실에서 투쟁하기보다는 점진적인 개량을 통하거나 지배계급에게 선의를 촉구하여 자본주의를 바꿔 나가고자하는 개량의 정치, 계급협조의 정치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자체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반대’ 정도의 자본주의 개조를 목표로 하여 진보대통합을 추진하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정치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강령에서 사회주의 가치라는 내용을 삭제한 것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반전 반자본주의 노동자운동’을 표방하는 다함께는 이번 강령개정을 ‘좌파적 사회민주주의 강령에서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으로 후퇴한 것’으로 판단하며, “정권교체와 집권을 명분으로 민주당과 동맹하고 당의 정체성을 후퇴시키는 것을 합리화”하고 있다며 비판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민주노동당은 여전히 돈과 인력을 주되게 노동조합과 그 지도자들로부터 충당하고 있는 개혁주의적 노동자당이다. 그리고 급진좌파는 민주노동당의 기반인 이 개혁적 노동자 대중에 개입해야 한다. 이 노동자들이 개혁주의에서 벗어나려면 ‘옆에서 함께’ 싸우며 대안을 제시하는 게 필요하다. 따라서 급진 좌파는 새로 만들어질 통합 진보 정당의 강령 제정 논의에도 적극 뛰어들어야 한다”라며 당의 강령 후퇴에도 불구하고 “그들 옆에서 긴밀히 개입하고 앞으로 건설 될 통합진보정당의 강령 투쟁에도 적극 뛰어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민주노동당이 설사 “개혁주의적 노동자당”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의회주의를 기본으로 한 대리주의 정치노선과 노동조합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한, 진보정당 운동에 대한 참여자체를 반대한다. 의회주의 정당이 조합주의를 극복할 수 없듯이 조합주의에 기반한 노동자정당이 결코 의회주의를 넘어설 수 없다. 이들은 타락한 조합운동과 개량화된 정치운동이 자본주의 체제 내로 편입된 결과물이며, 노동자조직, 노동자당을 참칭하고 있지만 현실은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 내에서 노동자계급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하면서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쇠퇴해가는 자본주의의 필연적 공생관계 속에 있다. 이들이 노동조합의 상층부를 장악하고 진보정당의 지분을 행사하며 자본과 권력에 타협하고,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을 비롯하여 수많은 계급투쟁에 중재자, 사회적 합의자로 나서 투쟁을 무너뜨린 행보를 보라.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강령 개정 의미

  이번 민주노동당의 강령개정의 의미는 두 가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첫째, 권력 재편기를 맞아 계급의식과 대중운동을 더욱 급진화 시켜 부르주아 정치와의 적대적 전선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탈계급적인 대중성을 좇아 자신들이 이미 공문구로 만들어놓은 사회주의라는 가치마저 삭제해버린 행위에 대한 판단이다. 이것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명백한 배신행위이자 나아가 적극적 공격행위로서 결국 위기에 처한 자본가계급에 도움을 주는 행위이다. 야권연대, 민주대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자본가 정당과 손잡기 위해 강령에서 ‘사회주의’를 삭제했기 때문이다. 민주당과의 연립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민주당이 꺼리는 ‘사회주의’를 일찌감치 삭제해서 민주대연합에 대한 걸림돌을 미리부터 제거해 버린 것인가? 자본의 위기전가로 생존권 위협과 생활수준의 급격한 하락에 직면한 노동자들의 고통마저 외면한 채, 오로지 선거와 득표를 위해 민주당 등 부르주아 정당과의 야합에 열중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이, 언제 자본가 정당과 손잡고 노동자계급을 공공연하게 공격할 것인가는 그 야합의 성공여부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둘째, 유럽, 북아프리카, 중동, 동아시아를 막론하고 세계 도처에서 계급투쟁의 부활이 확연해지면서 혁명의 현실성이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한국에서도 민족주의, 사회민주주의 세력과 명백히 단절한 혁명운동 세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아직 전면화 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당 건설의 주체로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주의라는 가치가 이제는 단지 이상으로서가 아니라 현실로서 직접 다가오는 것이 너무도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혁명적 실천을 강제하는 사회주의 운동 자체가 진보정당/조합주의 운동과는 맞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자신들을 사회주의라는 외피로 포장할 수없는 상황에 처해진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 쇠락해가는 운동들의 위기의식의 표현이자, 자기방어 행위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끝 모를 위기상황 속에서 위기의 결과가 혁명으로 진전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본가계급에게, 피할 수없는 일대격돌의 계급전쟁을 선포하고 강력한 투쟁을 전개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투쟁을 기피하고 혁명의 당위성마저 제거하여 체제 내로 편입하려는 민주노동당의 ‘사회주의’ 삭제는 자본가계급에겐 산소 호흡기를 달아준 행위이고, 노동자계급에겐 총부리를 겨눈 행위이다. 결국 사회주의 운동과 사회민주주의운동은 사상적으로 전혀 다른 운동이고, 계급투쟁이 격화되는 시기에는 서로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것이다.

 

  이와 같이 이번 강령 개정은 민주노동당이 아무리 노동자정당을 표방하고 노동자들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더라도 오로지 득표와 의석수, 집권을 위해서라면 노동자계급에 대한 배신도 불사하는 의회주의 정당의 본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따라서 이들과의 강령논쟁은 부분적인 논쟁으로 개선될 성격의 것이 아니라 강령 전체를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것만이 노동자계급과 사회주의 혁명을 방어하는 길이다. 나아가 노동자계급의 자립성과 정치적 독립을 훼손하고 계급의식을 갉아먹는 반노동자적인 사회민주주의 조류에 대해 타협 없이 투쟁해야 할 과제를 떠안아야 한다.

 

  다함께처럼 개혁적 노동자 대중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대리주의 정치에 개입하기보다 오히려 노동자계급을 그것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계급의식의 발전과 계급의 자립화를 앞당긴다. 이미 노쇠한 민주노동당-민주노총 운동에 발목 잡히지 말고, 새롭게 올라오는 노동자들의 투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의 질곡에 착목하라! 여전히 노동자들의 99% 이상은 민주노동당의 밖에, 90%이상은 민주노총의 밖에 있지 않은가? 의회주의와 조합주의에 물들지 않은 이들이 바로 노동자계급의 미래임을 명심해야 한다. 만일 민주노동당 안에 아직까지 사회주의자들이 남아 있다면, 적어도 노동자계급의 미래가 되어줄 이들에게 이미 오염되고 깨져버린 그릇을 내밀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대리주의의 기원과 본질

제2 인터내셔널(1889~1914)시기 사회민주주의는 공산주의 혁명을 위한 시기가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고 판단하면서 점진적으로 노동조합 조직 기반을 확대해나가고 당의 의회 의석수를 늘려나가는 데 전념할 필요를 강조했다. 영국의 사민주의자 에드워드 데이비드가 “혁명주의의 짧은 개화는 매우 다행히도 과거의 일이 되었다. 당은 의회에서 그의 권력을 긍정적으로 활용하고 확장하는 데 전념할 것이다”라고 강조한 이래, 베른슈타인(1850~1932)의 수정주의와 카우츠키(1854~1938)의 중도주의가 득세했다.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분리시면서 조합주의와 의회주의가 더욱 노골화되어 갔다. 카우츠키는 이미 1902년에 ‘점진적인 운동을 통해, 민주주의적이며 거의 알아차릴 수 없는 수단을 통해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를 주창했다. 프롤레타리아 당의 임무는, 이러한 점진적인 운동을 체제 내적에 강제할 목적으로 의회에 참여하는 것, 그리고 부르주아 국가를 평화적으로 정복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카우츠키에게 프롤레타리아 당은 노동자계급의 일부로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토록 하는 진정한 계급의 조직이면서도 동시에 혁명에 가장 앞장서는 전위이자 혁명기관이 더 이상 아니었다. 당은 통치기구가 되었고 노동자들은 당에 모든 것을 위임하고 그 당에 투표함으로써 자신의 정치 활동과 권력을 당에 위임해야 했다. 이것이 사회민주주의의 탄생 배경이며, 사회민주주의가 노동자계급에게 비극을 가져다 준 맑스주의 왜곡의 역사이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100여 년이 지난 현재에도 그들의 공공연한 목표로 부르주아 국가의 정복 또는 노동자정부의 창출을 말하지만, 노동자계급의 실질 권력인 노동자평의회와 같은 계급의 대중정치 조직과 직접정치는 언급하지 않거나, 과거 스탈린주의의 산물로 왜곡시켜 놓고 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스탈린주의와 구분되기 위해 민주주의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권력의 쟁취는 오직 당에 의해서만 획득되고, 그 당의 지도력과 물리적 힘은 대중들의 지지에 달려있기 때문에 대중들은 당에 투표하고 모든 정치활동과 권력을 그 당에 위임하기를 원한다. 혁명적 사회주의, 공산주의 운동은 이러한 사회민주주의에 맞서 싸워온 역사이기도 하다.

한편 스탈린주의 공산당들 또한 의회주의에 편입됨으로써 사회민주주의와의 결정적인 차이점마저 사라지게 되자, 이 두 조류는 대리주의 정치라는 공통점으로 인해 이제는 대중성을 얻기 위해 서로의 약점을 공격하는 경쟁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북한을 지지하는 스탈린주의 변종노선과 사회민주주의 노선인 진보신당, 사회당 류가 대립하고 경쟁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서로 대립하고 경쟁하면서도 동일한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은, 이들의 대리주의 정치가 자발적 계급투쟁을 가로막고 계급의식을 갉아먹는다는 사실이다.

 

  조직적 측면에서, 이들이 부르주아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이들의 모든 조직체계를 선거를 치르기 위한 조직으로 바꾸어 놓았고, 대중투쟁의 참여조차 자신들에 대한 지지획득과 정파적 이익을 위해 이용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부르주아 선거조직과 선거활동은 모든 것들을 경쟁의 대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노동자를 대변한다는 진보정당들의 부르주아 정치 참여는 오히려 계급의 단결을 저해하고 계급투쟁의 확산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해왔다.

 

  주체의 측면에서, 이들의 활동이 가장 왕성한 선거 시기조차 현장의 노동자들과 평당원들은 투표하고 돈 대는 일 말고는 직접 발로 뛸만한 일이 거의 없다. 실제 정치활동을 하고 싶어도 대부분 작업장에 갇혀 있거나 합법적인 틀 내로의 정치활동 제한으로 인해 노동자의 직접정치는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이들을 대신 할 상층지도부나 명망가가 나서는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에서 이들 중 일부가 대리정치를 이용하여 이러저러한 권력과 기득권을 행사하는 일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러한 부르주아 선거 정치와 타락한 노동조합주의가 만난 결과가 우리가 알고 있는 노동운동 내의 최악의 계급배신 행위들이었다.

  특히 민주노동당은 일상의 정치에서 노동자를 정치적으로 조직하고 대중투쟁을 일으키기보다는 민주노총 등의 배타적 지지에 기댄 채 관료적인 상층부 운동으로만 일관해 왔다. 여기서 현장노동자들은 투쟁의 주체에서 늘 대상화되거나 상부의 지침에 그저 열심히 따르는 수동적 당원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규모가 작은 진보정당들도 의회주의 정당이라는 틀을 유지하고 있는 한 동일하게 적용된다. 결국 이러한 수동화된 운동의 축적은 대중의 자발적 행동을 억누르는 역할과 노동자정치의 혁명성과 창조성을 유실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대리주의 정치의 본질은 혁명적으로 발전하려는 계급의식을 갉아먹는 부르주아 체제의 수호자 역할임이 밝혀졌다. 이제 모든 대리주의 정치와의 단절, 그리고 전면적 투쟁을 통해 이들에게 넘어간 노동자계급이 다시 계급성과 자립성을 회복해 전투적, 혁명적 계급운동 진영으로 넘어와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자립화를 위하여

  노동자계급의 자립성은 사회 내부의 모든 다른 계급들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독립성을 의미한다. 사회의 모든 계급들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자립성은 혁명으로 향한 계급투쟁의 전개에 있어서 제1의 전제조건이다. 인민전선과 같은 타 계급 ⁃ 계층들과의 모든 동맹들은, 특히 부르주아 정파들과 동맹은 그 어떤 종류의 것이든 오직 적들 앞에서 노동자계급을 무장 해제시키는 것을 초래할 뿐이다.

 

  이번 민주노동당 강령의 개정은 부르주아 정파들과의 동맹을 완전하게 열어둔 것이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의 자립성을 완전히 훼손시켜서 노동자정당이라는 성격조차 잃게 하였으며, 결국 부르주아 진영으로 투항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이제 노동자정당이 아닌 민주노동당에 남게 된 노동자들은 즉각 민주노동당과 단절하고 진정한 계급정당을 고민해야할 때이다. 계급정당에 걸맞게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계급의식이 실천적으로 반영되어 있는 혁명 강령을 중심에 두고 정치적 선택과 정치세력화를 고민해야 한다.

 

  노동계급에겐 스스로의 힘으로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공산주의 혁명을 완수할 수 있는 두 가지 조직이 있다. 전체 노동자계급을 투쟁을 통해 단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계급의 대중조직과, 계급의 가장 정치적으로 의식적인 부분들을 모아서 그들이 전체 계급투쟁에서 조직적인 역할들을 하게 만드는 계급의 정치조직이 그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자립성은 위와 같은 노동자계급의 두 가지 조직인 노동자평의회와 혁명당의 조직수준으로 판단할 수 있으며, 그 내용은 혁명당의 강령으로 표현된다.

 

  우리가 힘이 없고 기세가 약하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혁명적 원칙은 노동계급의 자립성과 자기조직화 전망이다. 모든 대리주의 정치를 넘어 노동자계급 스스로의 힘으로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첫째, 반노동자적인 사회민주주의를 넘어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 성과물인 혁명 강령이라는 무기를 들고 혁명당을 건설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단련되고 혁명적인 부위들은 혁명당으로 집결하여, 자본과 국가를 효과적으로 압박하고 투쟁의 힘을 집중시키기 위해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가장 활성화된 부분을 전취하여 투쟁에 활력을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투쟁과 계급의식의 꽁무니를 좇는 의회주의 정당들이 아닌 혁명당만이 계급의식을 발전시키고 노동자계급이 자신들의 정치적 전망을 설정하고 혁명적 무장을 준비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둘째, 갈수록 제도화, 관료화, 기구화 되어가고 있는 노동조합운동과 조합주의를 넘어 아래로부터의 직접행동과 노동자민주주의가 철저하게 실현되는 투쟁조직, 총회조직을 건설해야 한다. 공장의 담벼락과 업종의 울타리를 넘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넘어, 전체 노동자계급을 단결시킬 수 있는 계급의 대중조직을 창출해야 한다. 이러한 수평적 노동자조직들의 출현만이 계급투쟁이 전면화 되는 시기에 노동자평의회를 현실화 시켜줄 것이다. 이미 민주노동당과 노동조합운동의 상층부는 노동자계급의 분리와 분열을 용인하거나 조장하는 세력이 되어 버렸다. 이제 이들을 넘어서서 직접행동을 더 넓게 조직하는 것이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의 동력을 회복하는 새로운 길이다. 이런 기운들은 투쟁하는 노동자들로부터 자발적으로 생성되고 있으며, 이것들이 커지면 커질수록 타락한 운동들은 더욱 반노동자적 본색을 강하게 드러낼 것이다. 낡은 형식과 분열을 넘어 직접행동하고 계급의 단결을 만들어나가는 노동자들이 바로 노동자투쟁의 새로운 주체이다. 세계적으로 새로운 계급운동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으며, 혁명당은 이것을 토대로 건설되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노동자계급 자립화의 실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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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몸은 해로운 병균의 공격을 받으면 항상 반응을 한다. 사람의 몸은 나쁜 것을 점검하여 그것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병균을 파괴하는 항체를 만들어 낸다.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조직들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사람과 똑같은 반응을 한다. 비록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거센 공격이 있을지라도 혁명적 조직은 살아남을 수 있다. 노동자계급 안에서 자라난 혁명적 방어기제가 건강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든 조직이 노동자계급을 떠나는 순간 그 조직은 죽음을 면할 수 없다. 아니 살아남기 위해 부르주아의 대열에 합류하는 길 밖에 없다. 이 때 노동자계급은 단호하게 그 썩어가는 시체를 포기하고 새로운 투쟁의 무기를 재구축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의식으로부터 떠나간 진보정당은 부르주아 진영으로 넘어가는 길만이 남아있다. 사회민주주의, 민족주의, 조합주의의 온갖 합병증에 걸린 진보정당들에 남아서는 마지막으로 간직하고 있는 건강한 노동자성 마저 병들어 썩어 갈 것이다. 언제까지 썩은 시체를 부여잡고 있을 것인가? 

  진보정당운동 10여 년, 이제는 진보정당에 의해 만신창이가 된 노동자정치세력화를 딛고 노동자가 직접 스스로의 힘으로 정치의 주인이 되고 권력의 주인이 되고 역사의 주인이 되자! 그것은 대리주의를 걷어내고 지금 당장의 직접행동과 노동자 혁명당 건설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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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노동자들의 벗 -헝가리 Gondolkodo 서점에 연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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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idarity appeal for the renovation of Gondolkodo Autonom Antikvarium (Gondolkodo Autonomous Bookshop)


 

동유럽의 헝가리에도 한국의 [그날이 오면],   [풀무질] 같은 노동자계급과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만남의 장소, 소통의 공간이 있다고 합니다.  낡고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려는데 약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누구든 아래내용을 각자의 언어로 번역하여 홍보해주시고, 여력이 되시면 소액이라도 송금을 !!!

 

(우리는 구 사노련 재판투쟁시에 여러 국제주의조직들이 보여준 뜨거운 연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The Gondolkodo Autonomous Bookshop is the only distribution place of the workers’ movement, bookshop and meeting-place in the East Central European region (namely in Hungary) which has been functioning continuously for many years (now for 18 years). Now this place must be renovated because the walls are wet and mouldy, the mortar has been falling, the sets of shelves are rickety, the drainpipe is often clogged up etc. The condition of the bookshop has been worsening gradually and also the distribution of publications is harder under these circumstances. Since we can not pay for all the costs of the general renovation we ask for your financial help in order that we could do the renovation during the summer.

 

Please support this aim according to your possibilities (if you can send 10 Euros then do it, but if you have more money you can send bigger amount).

 

Comrades, activists and sympathisers, please spread our solidarity appeal and support us!

 

Thanks for your help in the name of internationalist proletarian solidarity!

 

The money should be sent to this bank account:

Banki Laszlo

HU23 1040 3301 8675 5557 8750 1003

Swift code: OKHBHUHB

 

Greetings,

Gondolkodo Autonom Antikvar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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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에서의 편지 -서평에 앞선 느낌 전달

알제리에서의 편지 -서평에 앞선 느낌 전달

 

 

 

칼 마르크스는 1882년 초 마르세이유 항에서 출발하여 알제로 가 그곳에서 3개월가량 머물렀으며, 5월4일 프랑스로 되돌아와 프랑스 리비에라에서 한 달을 보냈다.

마르크스의 삶속에서 위의 4개월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하는데, 이론을 새롭게 할 특이한 것이 없었다 하더라도, 체류할 때 마르크스라는 인물이 일상생활에서 나타내는 거동, 반응, 느낌 등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알제와 몬테칼로에서 띄운 편지에서 그가 늘 사용한 단어는 재발이다. 실제로 1882년 10월의 늑막염보다는 덜 위험하다고 진료했지만, 마르크스는 계속 질병 속에서 살았다. 그의 병환이 서신왕래의 중요한 주제이다.

 

그의 병환은 육체보다 지적활동을 더 이상 못하게 되었다는 정신적 고통에서 나왔다. 심한 우울증 때문에 가족을 제외하고는 가능한 한 인간들과 교류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줄여 나갔다. 마르크스는 결벽성 때문에 죽음이란 단어의 공적 해석을 피해갔다.

물론 모든 암시는 그의 둘도 없는 친구 엥겔스에게만 한 것이고, 그의 어떠한 감정도 숨기지 않고 토로하였으나 딸들에게 편지할 때는 그를 괴롭히는 병, 죽음 같은 상념을 버리고 싶었다.

 

마르크스에게 건강을 회복시켜주지는 못했으나 알제리와 프랑스 리비에라의 체류는 이 환자의 생명을 조금 연장하였다. 부인이 간지 1년도 안되어 가장 아끼고 사랑하던 그리고 누구보다 그의 곁에서 그를 돌봐주던 큰 딸을 잃자, 마르크스도 더 이상 오래살지 못했다. 폐렴이 그의 마지막을 재촉하였다. 1883년 3월 14일 오후 2시에 평온하게 눈을 감았다. 마르크스의 셋째 딸 엘레노어가 임종을 지켜보았다.

 

인생살이에 있어 중요한 문제는 여전히 육체적 건강과 죽음과 물질적 향유에 대한 상념이다. 이에 마르크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뜻을 같이하는 동지, 엥겔스의 물심양면의 도움이 있어도 부인의 죽음, 큰딸의 가난과 병환, 무위도식의 인상을 준 큰 사위 등에다 말년의 질병에 시달리면서 요양하러간 곳의 날씨 때문에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듯한 편지내용은 인간적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후대가 교조적으로 신격화한 끈을 유지하려고 했는지 지금까지도 그의 알제와 프랑스 리비에라에서의 편지가 왜 관심을 끌지 못했는지의 의문을 이 편지들이 풀어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르크스가 알제에 머물 때 예언자처럼 하고 다녔던 긴 수염을 면도하였고,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짧게 하였을까? 라는 의문은 마르크스 최후의 서한집인 [알제리에서의 편지  -빛나는 전망]을 끝까지 읽고 나서 판단해야 할 후세대들의 즐거운 상상력일 것이다.

 

그리고 몇 통의 편지 (우울증, 딸과 손자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역사적인 사진 한장)

 

 

 

엥겔스에게

 

1882년 3월 1일

 

친애하는 프레드(*엘겔스의 별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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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12월 날씨는 엉망이었으나 1월은 화창했다고 하네.  공교롭게도 2월부터 날씨가 춥고, 습기 차 제일 추웠던 2월20, 21, 22일 3일간 아주 혼이 났다네. 불면, 식욕저하, 심한 기침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할 지경이고, 덩치 큰 돈키호테처럼 심한 우울증으로 이리저리 헤매고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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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그렇고 소수의 사람들만이 나보다 더 감정표현을 싫어한다는 것을 자네는 알고 있지. 내 아내에 대한 추억을 내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 하는 것이겠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어!  런던의 내 딸들에게 이 늙은 닉에게 편지쓰라고 일러주게.  애비가 먼저 편지를 보내기를 기다리지 말고.

인간 창조라는 주요한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펌스는 어디있나? 내 안부를 전해주게.

헤렌, 무어 셜머, 모두에게도.

나의 고우에게

 

자네의 무어인

 

아참! 나의 친애하는 돈킨 의사에게 처럼 스테판 의사선생에게 줄 코냑을 잊지 마!

 

 

 

예니 롱게에게 (*마르크스의 큰 딸)

1882년 3얼 27일 월요일

 

내 사랑하는 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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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의 벤트너 마을에 있을 때는 아주 편했어. 반면 런던에서 엥겔스의 권고 극성이 아빠의 건강을 헤쳐버렸단다. (그리고 라파르그 이 허풍선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시원한 공기를 마시면서 "걷는것" 이라고 생각한 거야) 마다 할 수가 없었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런던을 벗어나야 하겠다는 조급함이 앞서거든. 너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도 너를 파멸시킬 수 있거든. 이와 같이 환자를 위험에 빠트리는 것이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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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올드 닉

 

재간 때 "자본론'을 다듬거나 고칠 생각하면 안 된다.

 

 

 

예니 롱게에게

 

1882년 4월 28일 (*알제리에서의 마지막 편지)

 

 

진정 사랑하는 애야,

두 줄만 쓰마. 이 바닷가가 가엾은 해리에게는 안성맞춤인데. 형편이 되면 걔와 그의 형제들을 늦기 전에 노르망디로 보내보지 그래. 내가 너희들, 예니, 너와 손자들을 노르망디나 파리 아니면 다른 곳에서 만나보지도 못하고, 영국으로 돌아가 버리지나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니 유치해지는구나.

내 건강은 많이 좋아지고 있어. 그렇지 않으면 스테판 의사선생이 나를 “아프리카”에 잡아 매어두지. 내 생각에는 한 보름간 프랑스 리비에라에서 통과 의례만 거치면 될 것 같아.

내 진정한 안부를 사랑하는 이이게.

 

올드 닉

 

 

 

라우라 라파르그에게 (*마르크스의 둘째 딸)

 

1882년 5월 6일 (*프랑스 리비에라에서의 첫 편지)

 

 

나의 사랑하는 카카두 (*둘째 딸 애칭)

이곳 몬테칼로에 도착한지 몇 시간 되었구나. 엥겔스에게 띄운다고 알린 편지내용도 살펴볼 시간이 없을 지경이다. (어쨌든 네가 받을 이 편지보다 하루는 늦게 받을 것이야)

이제 쓸 일용품을 사러가야 하는구나. 너와 프레드에게 사진 한 장씩을 동봉하여 보낸다. 어떤 예술도 사진보다 사람 모습을 이상하게 만드는 것은 없을 것이야.

 

늙은 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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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재판을 멈춰야 한다

사상재판을 멈춰야 한다

 

 사회주의자 재판 항소심 처음 진술

 

오세철( 가칭 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 회원)

 

 

 

2008년 8월26일 우리는 공안기관에 의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긴급 체포되었다. 그들은 우리를 대한민국 헌법과 자유민주주의 질서의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국가변란 선전선동 단체로 규정하고 쌍용 자동차, 현대 자동차, 이랜드, 뉴코아 등 노동자 투쟁, 용산 철거민 투쟁, 그리고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투쟁의 배후세력으로 지목하였다.
 

 

사노련 유죄판결은 사법부의 씻지 못할 오명
 

 

그러나 법원은 검찰의 두 번의 구속영장청구에 대해 명백하고 실질적인 위협이 된다는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영장기각 판결을 내려, 검.경의 체포와 영장청구가 얼마나 무모하고 자의적인지를 만천하에 밝혀주었다. 그런데도 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내려야 할 사노련 사건을 기소했고, 1심 재판부도 공소기각 되어야 할 사건에 유죄판결을 내려 씻지 못할 오명을 남겼다.
 

 

▲  1심 판결 직후 오세철 명예교수의 모습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1심 처음 진술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발언을 했다.
 

 

“맑스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노동자가 생산, 권력 그리고 역사의 주체가 되도록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맑스주의 운동과 노동자 운동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절대 다수의 노동자가 고통 없이 행복하게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당연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다수인 노동자를 적으로 규정하고 이들과 함께 하는 운동과 세력을 법으로 다스리는 사회가 21세기 대명천지에 존재한다면, 이 사회와 이를 유지하려는 법은 존재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맑스주의 사상과 실천을 법의 잣대로 재단하려는 시대착오적 행태를 끝장내는 역사적 재판이기를 바란다.”
 

 

1심 재판과정에서 검찰은 3만 쪽이 넘는 증거자료와 100명이 넘는 증인을 내세워 1년 가까이 지루한 재판을 끌고 나갔다.
 

 

그 과정에서 첫째, 노동자 투쟁의 배후세력으로 제시한 증거의 일부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전체적으로는 소명이 불충분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둘째, 여러 명의 맑스주의 연구자들과의 법정 논쟁에서 드러났듯이, 자본주의 위기, 자유 민주주의 본질, 역사적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민주주의, 대중의 봉기와 투쟁 등에 대한 검찰의 이해 부족과 시대착오적 해석이 드러났다. 사상 재판의 부당함이 밝혀졌다.
 

 

셋째, 수 십 개국의 세계 맑스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 그리고 국내 500명이 넘는 진보적 학자들이 사노련 재판의 부당함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고 무죄 판결을 권고하는 서명과 운동이 벌어졌다. 이를 계기로 희대의 악법인 국가보안법의 존재와 이에 맞서는 사회주의 세력의 투쟁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한국은 세계적인 비난과 수모의 대상이 되었다.
 

 

맑스주의 운동과 사회주의 실천의 정당성
 

 

그러나 검찰은 우리들에게 법정최고형을 구형했다. 우리는 최후 진술에서 다시 한 번 맑스주의 운동과 사회주의 실천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은 요지의 주장을 펼쳤다.
 

 

첫째, 사상, 학문,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을 철폐할 것. 둘째, 생산, 권력, 역사의 주체인 노동자계급과 함께 투쟁할 것. 셋째,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자유로운 개인이 연합하는 노동해방 사회 건설을 위해 전 세계 노동자의 단결 등을 주장했다.
 

 

우리는 유죄 판결을 내린 1심 결과에 대해 법리적 해석을 넘어 다음과 같은 근본적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재판과정에 제출된 수많은 증거 중에 오직 사노련이 발행한 기관지, 신문과 책자에 실린 글만이 판결의 대상이 되어 학교, 연구소 그리고 모든 사회운동 단체가 발간하는 출판물이 광범위하게 공안기관의 표적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이는 사법부의 가장 잘못된 선례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둘째, 국가변란의 명백하고 실질적 위협이 된다는 증거를 입증하지 않은 상태에서, 유죄판결을 내림으로써 ‘국가보안법’ 취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최악의 판결 선례를 남겼다는 사실이다.
 

 

셋째, 글 하나하나를 유죄, 무죄로 재단함으로써 재판부의 자의적 판단이 판결의 잣대가 되었다. 학술지에 실리는 이론적 논문까지 유죄로 판결하는, 웃음거리 판결이다. 논문 심사가 된 희화화된 판결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항소심 재판 과정의 첫머리에 서 있다.
 

 

긴급 체포 이후 3년을 지나는 동안 세계 자본주의의 총체적 위기는 더욱 심화되고 있고, 국가 부채로 인한 위기는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을 넘어 전 유럽으로, 그리고 동아시아, 남미를 넘어 미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긴축재정과 구조조정으로 표현되는 정리해고, 실업, 연금 삭감 등 전 세계 노동자들에 대한 자본의 공격은 노동자의 삶을 야만의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인간답게 살려는 노동자들의 몸부림은 계속되고 있고 이는 처절한 투쟁으로 솟아나고 있다. 그리스, 스페인 등 유럽에서, 이집트, 시리아, 예멘 등에서,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인도, 중국 등 아시아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현대 자동차 비정규직, 한진 중공업, 유성 기업, 재능 교육 등의 노동자 투쟁, 대학생의 반값 등록금 투쟁에 이르기까지 확산되고 있다.
 

 

사상재판을 멈춰야 한다
 

 

바로 이러한 세계정세와 우리나라의 정세 속에서 사노련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사노련은 1심 재판이 끝난 후 형식적으로 해산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맑스주의자, 혁명적 사회주의자로서 자본주의 위기와 모순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그 필연적 쇠퇴와 폐지를 말과 글로 표현할 것이다. 노동자들이 역사의 주체가 되려는 몸부림과 투쟁에 함께 할 것이다.
 

 

이 재판은 앞으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노동자들과 사회주의자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될 것이다. 위에서 1심 판결의 근본적 문제를 지적했지만, 항소심에서는 다시 한 번 사상재판을 멈추고 사상의 자유가 실현될 수 있는 역사적 재판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11년 7월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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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러갑시다] 반도체소녀 재공연 6.23~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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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의식, 계급무의식 그리고 혁명 - 오세철

쇠퇴기 접어든 자본주의, 혁명의 객관적 조건 만들어

좌파진영에서 모처럼 맑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의 관계 정립을 요구하는 견해가 제출돼 주목된다.

4일 오후 서울대(인문대학 3동 108호)에서 열린 제5회 맑스코뮤날레(그룹세션: 역사와 계급의식/사회실천연구소)에서 오세철 교수는 ‘계급의식, 계급무의식 그리고 혁명’ 제하의 주제발표를 통해, 맑스 이론의 변증법적 통합을 강조하면서 맑스, 트로츠키, 라이히 등 계급에 의해 조건화된 계급 무의식에 대한 이해를 통해 맑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의 올바른 관계 정립이 요청된다고 밝혔다.

오세철 교수는 “혁명주체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 체제의 억압의 산물”이기에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더 깊은 구조가 물질적 힘을 지니고 있다는 이론과 실천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객체이면서 주체인 프롤레타리아트를 구체적으로 해명할 수 없”다면서 이는 “계급무의식의 문제이며 맑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의 만남의 문제로 나아가게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맑스 이후 1세대 혁명가들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정신분석학을 방어한 사람은 트로츠키”로 프로이트 이론을 유물론으로 주장했으나, 스탈린주의자들에 의해 소부르주아적, 퇴폐적, 관념적 이론으로 비판 받았으며, “1930년 「인간행동대회」에서 쟐킨드가 사회주의 건설에 프로이트 사상이 해악적임을 비난하는 연설로 종지부를 찍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아울러 “소련보다 훨씬 정신분석학 이론 발전의 중심부였던 유럽에서는 훨씬 더 끈질기게 맑스주의와 정신분석의 만남이 지속되었다”며 “바로 그 중심에 빌헬름 라이히가 있다”고 소개하고 “러시아 혁명 이후 소련에 가서 공산주의 혁명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 성性혁명을 주장하고  다녔던 그는 결국 스탈린주의자들에 의해 축출 당했고 독일공산당에서도 제명당했다”고 밝혔다.  

오세철 교수는 “자본주의는 단발마적 고뇌에 빠지는 종말로 가는 쇠퇴기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한 다음 “세계혁명의 실패, 파시즘과 스탈린주의라는 반혁명적 세력의 등장, 두 번의 세계대전을 통한 생산력의 파괴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죽음, 2차 세계대전 이후 25년간의 일시적 호황, 신자유주의의 증장, 이른바 ‘현실사회주의국가’로 불리웠던 국가자본주의 국가의 몰락, 그리고 끊임없는 전쟁과 생태적 위기, 국가부채의 엄청난 증가를 통한 재정위기 등의 공황은 다사 한 번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을 가속화시키며 야만인가 혁명인가를 선택하게 하는 혁명의 객관적 조건을 만들고 있다”며 세 가지를 제안했다.

첫째, 맑스, 루카치, 그리고 가치형식 이론에 대한 이해를 통해 자본주의의 물상화가 프롤레타리아를 예속시키고 지배하는 기제와 방식을 철저하게 연구하는 동시에, 노동자가 가치증식을 넘어 실질적 부의 창조(공산주의 물질적 기초가 되는)의 주체로서 가치형식을 깨뜨리는 능력과 방식을 연구해야 한다.

둘째, 맑스, 트로츠키, 라이히 등 계급에 의해 조건화된 계급 무의식에 대한 이해를 통해 맑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의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욕망과 그 억압 그 구체적 형태에 대한 인식이 자본주의 철폐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사회건설 계획의 일부임을 확인해야 한다. 전도된 의식과 억압된 무의식으로부터의 해방은 분리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셋째,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의 주체임에 틀림없으나 위 두 가지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하면서 공산주의 사회의 원칙과 방향을 제시하고 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혁명의 주체가 되는 공산주의자 조직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 조직은 혁명당이며 그 강령과 혁명전략 전술은 물상화와 무의식에 대한 구체적 연구성과에 기반해야 한다.   (츨처 :한국인권뉴스)




▒ 발제문 전문

 

 

 

제5회 맑스코뮤날레 그룹세션 2011. 6. 4 서울대 / 역사와 계급의식 – 사회실천연구소

 

계급의식, 계급무의식 그리고 혁명

 

오세철 (사회실천연구소,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1. 여는 말

  하나.

  80년 광주항쟁 이후 맑스주의 이론에 대한 폭넓은 탐구를 하는 과정에서 맑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의 올바른 만남에 주목하게 되었고, 특히 그 가운데 프로이트의 한계를 넘어서서 맑스주의와의 변증법적 통합을 시도하고 나름대로의 혁명적 실천을 한 빌헬름 라이히를 만나게 되었다. 1983년  「현상과 인식」 봄 호에 「빌헬름 라이히의 사회사상과 정신의학의 비판이론」 이란 글을 실었다. 그 후 1986년 그의 가장 유명한 책  「파시즘의 대중심리」 를 우리말로 옮겨 출간했다.

  그 당시 여러 곳에서 맑스주의, 사회심리학, 혁명 사이의 관계를 발표하게 되었는데, 이른바 그 당시 운동권은 나를 맑스주의 또는 사회주의로부터 이탈한 강단 사회심리학자로 비웃었다. 나는 아직도 맑스주의자로 자처하며 공산주의를 향한 혁명적 실천에 함께하고 있으며,  「맑스주의 심리학」 이라는 부제를 단 사회심리학 과목을 맑스주의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둘.

  좌익 공산주의 혁명그룹의 하나인  「국제공산주의흐름」 이 펴내는 이론지  「국제평론」 에서는 「과학과 맑스주의 운동」 이라는 특집을 2009년부터 연재하고 있는데, 2009년에는 찰스 다윈 특집으로 안톤 판네쿡의  「다윈주의와 맑스주의」 를 포함시켰고, 2010년 140호에서는  「프로이트의 유산」 이라는 글을 실었다. 140호까지 나오는 동안 정신분석학에 대해 전혀 다루지 않던 정통 맑스주의 혁명그룹의 변화이다.

  이제야 우리는 사회주의(공산주의) 혁명, 혁명당, 그리고 계급의식을 공개적으로 말하고 그 구체적 실천을 고민하고 준비하고 있다. 사회실천연구소는 그러한 고민의 산물이었지만 이제야 회원들이 집단적으로 참여하여 공동의 주체인  「계급의식」 으로 이번 맑스 꼬뮤날레에 선을 보인다. 그 중에 한 사람으로 나는 지금까지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의 편린을 이 짧은 글에 드러내며, 이 중심 화두인  「계급의식」 을 붙잡고자 한다.

 

 

2. 맑스주의 올바로 세우기

 

  아직도 맑스주의 내부에서는 “청년 맑스”와 “장년 맑스”, “주체주의적 입장”과 “객관주의적 입장”, “기계론”과 “자율론”의 허구적이며 피상적 대립이 끈질기게 버티고 있고 공산주의 실천의 역사, 보기를 들어 제1,2,3 인터내셔널의 역사도 혁명 전략과 전술의 대립으로 점철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분법은 맑스에 대한 편향된 독해와 이해에서 비롯되었고 맑스의 저작에서 취사선택한 강조점의 차이이기도 하다. 맑스 역시 그가 살았던 자본주의 발전 단계의 역사적 한계에 갇혀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공산주의 혁명의 예견에 대한 성급함도 있었지만, 그것은 역사에 대한 총체적 인식으로부터 벗어나기는커녕 그를 더욱 구체적으로, 더욱 이론적으로 형성해 온 과정이었다. 특히 그것은 늦게 알려져 출간된  「요강」(Grundrisse) 으로 증명되었다. 보기를 들어 정치경제 분석과 의식의 통합은 「자본」 의 수고를 모은 「요강」에 잘 드러나 있다.

 

  젊은 “미성숙한” 맑스가 소외를 말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자본 1권에서 장년의 맑스의 「물신성」 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는 생산관계의 실현은 상품경제의 내부구조로부터 나오고 물신성은 사회의식의 현상일 뿐 아니라 사회적 존재의 현상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맑스 저작에서는 다양한 형식을 취한다. 1844년  「경제학철학수고」 에서는 공산주의가 인간 본성의 회복이라 하면서 내용에서는 헤겔을 비판하지만 개념은 헤겔로부터 빌려오며, 1855년  「포이에르바흐에 대한 테제」 에서는 오히려 역사 밖에서 추상적으로 남아있는 인간 본질을 비판하면서 사회관계의 총체로서의 현실을 말한다. 물론 그 사이 1845~46년,  「독일 이데올로기」 와 1847년  「철학의 빈곤」 에서 인간을 보다 구체적 의미로 사용하여 구체적 인간활동과 창조적 활동의 세계로 사물의 세계를 사고한다.

 

  우리는 맑스주의 올바로 세우기에서 다시 한 번 총체성을 획득하는 맑스주의 방법론으로 나아가야 하며, 이를  「계급의식」 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는 데에는 두 가지 흐름, 하나는  「물상화」 의 이론적 발전을 통한 계급의식의 획득과 혁명의 가능성으로, 다른 하나는 맑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의 만남을 통한 계급무의식과 혁명의 가능성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3. 물상화, 계급의식 그리고 혁명

 

  맑스의 비판이론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회관계가 도치되어 사물의 관계로 보이는 “교란” 되거나 “변태적” 형식의 가치에 기반한 문명과 생산양식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교란된 형식”을 재생산하는 것은 노동계급의 추상노동이다. 게오르그 루카치는  「역사와 계급의식」(1923) “물상화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장에서 이러한 상품물신성이 결합되어 가치형식의 효과가 사회를 장악하는 상품물신성이론을 발전시켰다. 맑스의 방대한 “경제적” 수고가 출간되기 전에 루카치의 업적을 통한 이론적 돌파는 의미 있는 진전이었다.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적으로 더더욱 높은 수준에서 스스로 경제적으로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것과 같이 물상화의 구조는 인간의 의식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더 운명적으로, 더 결정적으로 가라앉는다.”

 

  그러나 루카치는 주체이며 객체인 프롤레타리아트가 물상화의 예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 그에게는 부르주아지의 의식이 사회적 상황의 즉시성만 이해할 수 있는 자본에 의해 부과된 물상화된 형식 안에 갇혀 있는 반면, 노동자는 상품으로서의 자신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상품 안에서 노동자는 그 자신뿐만 아니라 그 자신과 자본과의 관계를 인식하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루카치에게 노동자가 예속된 물상화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을 위한 탈출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그 가능성이 노동과정 자체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프롤레타리아트가 물상화된 의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루카치의 당위론적 주장은 이론적으로나 사회학적으로나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 존재의 변증법적 본질을 깨닫게 되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삶과 죽음의 문제인 반면, 부르주아지는 일상생활이 역사적 과정의 변증법적 구조를 감추기 위해 물상화의 추상적 범주를 사용한다...”

 

  그러나 존재의 변증법적 본질을 깨달을 “필요성”이 어떻게 프롤레타리아트가 물상화의 효과를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 루카치가 이 글을 쓴 지 1세기가 된 지금 어떻게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의 물상화 경향을 극복하고 실천을 통해 상품물신성의 사슬을 끊어낼 수 있는지는 맑스주의가 부딪히고 있는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의 기초는 루카치 시대에 대부분 출간되지 않은  「자본」 의 1861~63 수고인  「요강」 에 있다 (잉여가치론 포함됨). 그리고 “생산의 직접과정의 결과”와  「자본」 의 독일어 초판(1867)의 1장과 부록[상품의 이중본질(추상가치와 사용가치)과 그를 생산하는 노동(추상노동과 구체노동)]에 있다.

  이러한 쟁점은 가치형식 이론가들에 의해 이론적으로 정교화 되었다. 야페는 루카치의 주장에 직접 도전한다.

 

“결정의 자유를 가지기 위해 족쇄는 상품 형식 밖에 있어야 한다. ... 그러나 물상화된 사회에서는 자율적이고 의식적인 주체는 있을 수 없다. ... 가치는 생산의 형식으로 존재하는데 제한되지 않는다. 가치는 의식의 형식이다. 그것은 칸트의 의미로 선험적 형식이다. 주체가 의식하지 않는 틀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역사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다르게 말하면 가치에 의해 형성된 주체가 생각하고, 상상하고, 원하고 행하는 것은 항상 상품, 화폐, 국가권력, (법적) 권리의 형식 아래에서 보이기 때문이다.”

 

  야페의 분석에서 분명한 것은 루카치와 반대로 외부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스스로” 자본주의에 존재론적으로 반대되는, 프롤레타리아트를 포함한 주체는 없다. 그러나 그가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물상화된 의식의 영향력에 대한 루카치의 주장에 강력한 도전을 하지만, 그 또한 이론적으로는 자본주의적 사회형식의 전복에 필요한 의식을 발전시키는 것으로부터, 즉 물상화된 사회관계를 파괴하는 것으로부터 노동계급을 제외시키지 않았는가를 자문해야 한다. 상품물신성은 신비화, 허위의식, 그리고 노동자 스스로 그리고 당을 통해 찢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사회적 존재의 국면, 즉 현실적 자본주의 사회관계의 결정요인이기 때문이다.

 

  야페와 비슷하게 포스톤도 임노동, 임노동계급, 그리고 계급투쟁이 자본주의 역사적 발전의 추동력임을 말하지만 그 투쟁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행동양식이기보다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요소라고 본다. 두 사람은 자본 자체도 “자동적 주체”라고 보고 임노동과 노동계급 모두 자본을 구성하며 그 안에 갇힌다고 본다.

  그들에게 계급투쟁은 자본주의 사회관계 내에서 구체적인 경제, 정치 형식에 영향을 미치는 변화와 수정을 가져오지만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전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퇴로가 없는 자본주의의 궤적에 대한 프랑크푸르트 학파, 특히 아도르노의 분석과 같은 “패배주의적” 위험성을 안고 있다. 맑스의 예측과 반대로 계급양극화와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을 부정한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호르크하이머가 종교로, 아도르노가 미학으로 눈을 돌림으로써 계급의식 이론을 포기했으며 혁명적 맑스주의로부터 우울한 베버좌파로 이동했다. 이와 같은 좌파비관론은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다시 말해 물상화가 총체적이라면 비판도 스스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자본주의 사회가 기계와 기술에 종속되어 생산과정이 시공간으로 분열될 수밖에 없다는 군터 앤더스의 입장과 유사하다. 이와 같은 비관론을 반박하기 위해서는 현대 자본주의 노동과정 내에서 이를 깨드릴 수 있는 실제적 가능성을 분석해야 한다.

  

  그런데 야페나 포스톤 같은 가치형식 이론의 비관론적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불가능성은 프롤레타리아트가 맑스의 분석에서와 같이 가능한 비자본주의의 미래(공산주의)의 사회적 대표(주체)라는 입장을 부정하는 데 있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를 가치의 원천으로만 보고 물질적 부의 원천으로는 보지 않는다. 맑스는 전체 역사의 시기동안 가치형식은 그 소외된 형식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부의 엄청난 발전을 위한 조건임을 보았고 자본의 궤적은 가치증식과정과 실질적 부의 확장 사이의 모순을 필연화한다고 보았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비관론적 입장을 지닌 야페나 포스톤과는 반대로 인간행동과 노동에 초점을 맞춘 가치형식 이론가들의 입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들 중 본펠드는 “노동은 자본주의의 변태적 세계의 형식 자체에 맞서며 존재하는 ‘구성하는 힘’이다”라고 말하고 자본은 스스로 자기증식하지 않고 집합노동자의 노동에 의해 생산된다고 주장한다. 라이헬트는 가치와 사용가치의 상품의 이중본질이 노동의 이중성격에 상응하는데 사용가치가 구체노동의 객관화라면 가치는 추상노동의 구체화라고 본다. 

 

맑스의 「자본」 (1권) 독일어 초판에서 보인 바와 같이 그것은 “상품에 잠재된 노동의 두 가지 다른 유형을 의미하지 않고, 동일한 노동이 상품의 사용가치에 관련되는가 아니면 단순히 객관적인 표현으로서 상품가치에 관련되는가에 따라 다르고 심지어 모순적임을 의미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어떻게 노동이 자본관계와 가치형식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가의 문제는 맑스 이론의 또 하나의 중요한 영역이다. 계급의식과 자본주의에서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노동의 생산력이 자본 안에 갇힌 물상화된 양식을 흔드는가의 문제이다. 이는 인간본질에 대한 형이상학적 문제나 철학적 인류학의 문제도 아니고 존재론적 문제도 아니다. 라이헬트에게 인간의 본질은 개인과 유적존재의 통일이며 혁명적 실천을 통해 철폐되어야 하는 전도된 형식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의 실천 그리고 집합노동자의 실천의 요소를 바라보아야 한다. 자본주의는 가치증식을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실질적 부”의 생산을 위해서 필요하다. 그 실질적 부의 성장은 공산주의 사회의 물질적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들 요소는 축적 과정에 필수불가결할 뿐만 아니라 그를 파괴하는 전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은 살아있는 노동으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오직 자율적인 것은 노동력에 있다. ... 자본이 노동 안에 그리고 노동을 통해 존재하지만 노동은 자본 안에 그리고 자본에 대항하여 존재한다. ... 노동의 사회적 실천은 자본에 대항하여 존재할 뿐만 아니라 자본의 존재의 계기이기도 하다.” (Werner Bonefeld)

 

  여기서 우리는 노동이 단지 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형식을 만드는 불꽃”이라는 강력한 주장(Marx, Grundruisse)을 매우 중요한 출발점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가치 증식과 실질적 부의 증진의 모순 속에서 가치형식을 깨뜨리고 새로운 형식, 즉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한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이루어내는 노동의 실천은 단순한 비관론과 낙관론을 넘어서는 맑스주의자의 입장이다.

 

  이제는 가치형식이론 진영 안에서의 논쟁이 맑스에 수렴되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현존하는 혁명세력이 이 문제에 어떠한 입장을 가지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계급의식과 공산주의 혁명에 대한 다양한 입장들이 혁명 조직 내에 존재하지만 여기서는 좌익 공산주의 그룹 중의 하나인 「국제공산주의흐름(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의 (다음) 입장을 보기로 든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힘과 실천은 노동자들이 부르주아지의 사상에 종속된 채 남아있는 한 휴면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잠재력을 효과적인 위력으로 바꾸는 것이 바로 계급의식이다. 노동자들은 그들의 실천을 통해서, 자신들이 하나의 계급을, 즉 자본에 의해 착취되는 특정한 계급을 형성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러한 착취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자본에 대항해 싸워야 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자신들의 투쟁을 통해서 경제 체제를 이해하고, 그들의 적들과 그 동맹들이 발견할 그 사회를 알게 된다.

 

“계급의식이 본질적으로 계급의 경험의 산물이자 실천적 투쟁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진실로 계급 전체의 행동이 대체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혁명의식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해방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들 자신의 일이다. ...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매우 단순히, 프롤레타리아트가 생산과정에서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의식할 때, 그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복잡성과 야만성의 본질에 대한 모든 것을 의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공산주의 의식은 신비스런 것이 아니며, 오히려 매우 구체적이고 인간적인 사실이다. 그리고 공산주의 의식과 행동은 혁명강령과 혁명조직 없이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 이러한 필요성은 공산주의와 프롤레타리아 의식의 본질에 의해 부과된다. 만약 공산주의 혁명과 사회의 변혁을 이뤄내려 한다면,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역사적 이해관계를 파악하는 방법에 있어서 질적 발전 없이는 불가능하다.”

 

  위에 인용한 몇 단락을 보면 프롤레타리아가 계급의식이 균질적이지 않고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오랫동안 지배당해 왔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계급의식의 획득이 계급투쟁과 실천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맑스주의의 핵심 주장을 담고 있지만 계급의식의 질적 발전을 돕는 혁명가와 혁명가조직의 필수불가결한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혁명가들을 명확한 강력의 기초 위에 ‘별도의 정치적인 당’ 속에 조직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의식적으로 투쟁의 주인이 되려는 자생적인 의지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소이다. ‘조직적 문제는 정치적 문제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레닌)는 간단한 이유 때문이다. 조직적 문제 자체가 정치적 문제이다.”

 

“공산주의자의 역할은, 계급투쟁의 밀물과 썰물에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러한 투쟁 속에서 불꽃은 없이 연기만 피고 타고 있는 혁명적 경향들을 촉진하기 위해서 그들 스스로를 조직하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은 그들 계급의 살아있는 산물이자 동시에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성숙에서 능동적 요소이다.”

 

“당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또는 당은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거나, 당의 책무가 ‘사건들의 과정을 강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그들의 계급의식을 획득하는 실제 과정에서 모든 생명을 죽여버리게 된다.”

 

  이들은 공산주의 혁명의 주체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확고한 인식과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갇혀있지만 계급투쟁을 통해 혁명적 잠재능력을 발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신뢰하는 맑스주의의 기본원칙을 견지하면서도 가치형식 이론가들의 이론적 문제를 넘어서서 혁명을 환수하는 공산주의자와 그 조직인 당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흔히 이들의 원칙적 입장을 계급주체를 고려하지 않은 객관적 노선으로 왜곡하는 것은 오히려 주체주의적 역편향의 부정확한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를 포함한 프롤레타리아트를 계급의식과 물신성의 틀 속에서만 인식하고 혁명적 실천적 가능성을 구체화시키는 데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음을 느낀다. 그것은 혁명주체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 체제의 억압의 산물이라는 점에 있다.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더 깊은 구조가 물질적 힘을 지니고 있다는 이론과 실천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객체이면서 주체인 프롤레타리아트를 구체적으로 해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계급무의식의 문제이며 맑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의 만남의 문제로 나아가게 한다.

 

 

4. 자본주의의 억압, 계급무의식 그리고 혁명

 

  맑스주의와 심리학의 만남은 부르주아 심리학이 개인에 기반하여 역사와 계급의 구조적 맥락과 분리되고 개인의 합이 사회라는 개인주의의 함정에 빠져 결국 자본주의 체제의 유지에 봉사한다는 비판적 문제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가치, 윤리, 종교, 심리, 예술, 교육, 오락 등의 영역은 모두 그 사회의 계급적 기초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미 맑스는 실재와 경험의 신비화로서의 허위의식으로, 보기를 들어 가난은 자본주의에 대한 신념이 없는 사람을 벌주는 신의 방법이라고 보는 개념으로, 소외의 개념으로, 상품의 물신성으로 이야기 한 바 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요강」에서 정치경제의 의식의 통합을 말함으로써 맑스 이후의 조야한 경제결정론과 그에 대한 왜곡된 반작용으로서의 자발성주의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맑스주의자가 인간 의식과 삶이 무의식적 동기에 의해 지배되고 있음을 아는 것은 극히 자연스런 일이며 이미 지배 이데올로기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 이전의 모든 사회의식을 구성하고 있음도 자연스런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높은 단계의 사회를 생각하지 못하는 부르주아지의 무능력이 대표적 보기가 된다. 루카치는 이를 “계급조건화된 무의식”이라고 불렀다. 바로 이러한 무의식의 문제를 유물론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정신분석학이다.

 

  맑스 이후 1세대 혁명가들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정신분석학을 방어한 사람은 트로츠키이다. 그는 1908년 비엔나에 머무는 동안 프로이트 이론과 만났으며 프로이트 이론이 유물론임을 주장한다.

“비엔나 정신분석학파인 프로이트 학파는 다른 방식으로 (파블로프와) 나아간다. 심리과정의 가장 복잡하고 섬세한 과정의 추진력이 생리학적 욕구라고 가정한다는 점에서 유물론적이다.”

 

볼셰비키 내에서도 정신분석학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었지만, 이에 대한 박해와 탄압은 유럽에서는 나치에 의해, 소련에서는 스탈린주의에 의해 이루어졌다. 나치는 1933년 프로이트, 맑스, 아인슈타인, 카프카, 토마스 만의 저작물에 대한 분서갱유를 단행했고, 스탈린은 혁명 이후 진행된 예술, 교육 등의 사회생활 분야의 실험을 중단하고 맑스주의에 조응하는 프로이트 이론의 주창자들에 대한 마녀사냥을 단행했다.   

 

정신분석의 목적과 방법에 우호적인 혁명가는 루나르차르스키, 부하린, 트로츠키였고, 이론가로는 레온 비롯츠키, 알렉산더 루리아, 타티아나 로젠탈 등이 있다. 스탈린주의자들은 파블로프의 「조건반사」를 유물론적 심리학으로 칭송하고 프로이트 이론을 소부르주아적, 퇴폐적, 관념적 이론으로 비판했다.

 

스탈린의 최종 승리는 1930년 「인간행동대회」에서 쟐킨드가 사회주의 건설에 프로이트 사상이 해악적임을 비난하는 연설로 종지부를 찍었다. 이는 결국 5개년 계획과 국가자본에 봉사하기 위해 인간의 개성과 노동의 저항을 분쇄하려는 반혁명세력의 의도라고 규정할 수 있다.

 

  맑스주의와 정신분석의 실질적인 수렴은 인간심리(정신)가 자연의 실질노동의 물질적 산물이며 세계 바깥에 존재하는 힘이 아니라 그보다 선행하고 그를 결정하는 무의식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한 마디로 무의식의 지배로부터 인류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공산주의 사회의 중심적 계획이 된다.

 

  러시아 혁명 이후 반혁명적 스탈린주의가 맑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의 올바른 만남을 통한 맑스 사상과 그 실천을 압살했다면 유럽에서는 나치즘이 그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소련보다 훨씬 정신분석학 이론 발전의 중심부였던 유럽에서는 훨씬 더 끈질기게 맑스주의와 정신분석의 만남이 지속되었다. 바로 그 중심에 빌헬름 라이히가 있다.

 

러시아 혁명 이후 소련에 가서 공산주의 혁명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 성 혁명을 주장하고 다녔던 그는 결국 스탈린주의자들에 의해 축출당했고 독일공산당에서도 제명당한다. 그는 독일 공산당이 성을 금기시하는 부르주아 윤리와 동일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지니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선 라이히는 유물론적 심리학, 그리고 정신분석과 사회주의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정신분석의 자본주의적 존재양식은 정신분석을 안팎으로 목졸라 죽이고 있다. 프로이트가 자신의 과학이 파괴되고 있다고 한 것은 옳지만, 우리는 거기에 부르주아 사회라고 덧붙인다. ... 정신분석이 부르주아 사회에 적응한다면, 맑스주의가 개량적 사회주의자들의 손에서 겪은 것과 같은 죽음, 즉 천박화에 의한, 무엇보다도 리비도 이론의 폐기에 의한 죽음을 겪을 것이다. ...

  정신분석이 희석되지 않고 적용되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손상을 가하기 때문에, 그리고 더욱이 사회주의 경제는 지성과 성생활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바탕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정신분석은 사회주의에서만 미래를 가진다.“

 

  “요약해 보자. 변증법적 유물론을 심리학의 영역에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우리에게 임상적 정신분석의 성과들을 가져다주었다. 이러한 성과들을 사회학과 정치학에 적용함으로써 맑스주의적 사회심리학에 이를 수 있다. 반면에 심리학 방법을 사회학 및 정치학의 문제들에 적용하면 틀림없이 형이상학적이고 심리학화하는 그리고 더욱이 반동적인 사회학으로 귀결될 것이다.”

 

라이히의 맑스주의 심리학자에 대한 이론적, 방법론적 입장은 그의 「성 정치」 실천으로 연결된다. 특히 그것은 파시즘의 대중심리에 대응하는 맑스주의 성정치운동으로 구체화되고 그 당시 독일공산당의 부르주아정치에 대한 비판의 일환으로 나타난다.

 

그가 작성한 성정치강령은 자본주의 체제의 성억압과 성빈곤에 초점을 맞추었다. 1923년 10월 16일, 드레스텐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청년조직 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결의안을 발표했다.

 

1. 당과 당 조직들이 성 정치 문제를 분명히 할 것. 개인적인 문제와 정치적인 문제의 분리가 아니라 결합, 즉 성적 존재의 지속적인 정치화가 필요하다.

2. 성 정치 영역에서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간의 휴전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사실상 부르주아지만이 이러한 영역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 휴전을 깨야만 한다.

3. 모든 정치적 지향의 청년들은 성 문제와 관련하여 동원하고, 이들은 다른 조직들에 침투해야 한다.

4. 이것의 전제조건은 혁명 청년 조직들이 마주한 어려움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분명히 하는 것이다.

 

  1933년 히틀러의 권력 장악, 제4인터내셔널의 성 정치의 중요성에 대한 소극적 태도를 경험하고 라이히는 1934년 계급의식에 대한 중요한 글을 발표한다. 그는 독일에서의 사회주의 운동의 패배가 다른 나라에 불리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파시즘의 도처에서 혁명 운동에 대해 빠르게 우세를 점하고 있다고 보았다.

“제2, 제3 인터내셔날은 자기비판의 부족과 잘못된 태도를 완고하게 고집하고 무엇보다 그 자신의 진영 안의 관료제를 뿌리 뽑을 수 없기(부분적으로는 의지의 부족으로) 때문이다”라고 진단하고 있다.

 

  그러면서 라이히는 자본의 몰수, 생산수단의 사회화, 자본가들에 대한 노동자, 농민, 병사, 피고용인의 지배확립 등은 알고 있는 낡은 개념이기 때문에 더 중요한 질문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 우리는 스스로를 우리의 관료제에 의해 질식되도록 내버려 두었는가, 왜 대중은 진정으로 자신들의 이익과 반대되는 히틀러가 권력을 획득하도록 행동했는가라고 묻고 있다.

 

그리고 그는 지도부의 계급의식과 대중의 계급의식을 구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지도부는 혁명의식을 대중 안에 가져와야 한다고 우리는 듣는다. 의심의 여지없이 그래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우리가 물을 차례다) 우리가 혁명의식이라고 할 때 의미하는 것을 아직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면 어쩔 것인가? 독일에는 마침내 대략 3천만명의 반(反)자본주의적인 노동자들(사회혁명을 일으키기에 숫자로는 충분한 것 이상인)이 있었다. 그러나 바로 가장 완강한 반자본주의적인 심성의 도움으로 파시즘은 권력을 장악하였다. 반자본주의적 심성은 계급의식인가 아니면 단지 계급의식의 시작일 뿐인가, 단지 계급의식이 만들어지는 전제조건일 뿐인가?”

 

  그러면서 라이히는 광범위한 대중 안에 계급의식의 존재를 알지만 그것은 혁명 지도부의 계급의식과 다르기 때문에 그 둘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지도부는 객관적인 역사과정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획득하는 것 이외에 다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1) 각기 다른 사회층, 직업, 연령 집단, 성별에 속한 사람들 안에 잠재해 있는 진보적인 욕망, 관념, 그리고 생각은 무엇인가?

(2) 이러한 진보적 욕망, 생각 등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욕망, 두려움, 사유, 관념(전통적 속박)은 무엇인가?

 

  라이히는 혁명에 기여하는 것은 무엇이든 윤리적이며, 혁명에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비윤리적이라는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윤리에 대한 태도를 다른 방식의 질문으로 정식화한다.

“부르주아 질서에 모순되는 것은 무엇이든, 전복의 싹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 계급의식의 요소로 간주할 수 있다. 부르주아 질서와의 유대[속박]를 창출하거나 유지하고 부르주아 질서를 지지하고 강화하는 것은 무엇이든 계급의식의 방해꾼이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와 부르주아 질서에 의해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예속되고 억압당하는 구체적 기제와 그와 관련을 맺으면서 살고 있는 노동자들의 계급 무의식에 대한 실재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실패한 혁명을 지속가능한 혁명의 성공으로 이르게 하는 길임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대중의 계급의식에 대한 변증법적 이해 없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필연성만 강조하는 과거의 이른바 “혁명정치”는 결국 부르주아 정치의 쌍생아에 불과하다는 것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는 라이히는 두 정치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혁명정치와 부르주아정치의 차이는 전자는 대중의 욕구 충족에 기여하기 위해서 나서는 반면에 후자는 대중의 구조적인, 역사적으로 조건 지어진 무능력에 전적으로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라이히는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가능성은 혁명의 주체인 노동계급의 계급의식에 대한 철저하고 폭넓은 이해에 기반한 혁명지도부(혁명당)의 계급의식의 변증법적 결합이라고 주장한다. 대중의 계급의식은 인류의 존재를 지배하는 역사적인 혹은 경제적인 법칙들에 관한 인식이 아니라

 

⓵ 모든 영역에서 고유한 삶 욕구들에 관한 인식

⓶ 그 욕구들을 만족시킬 방법들과 가능성들에 대한 인식

⓷ 사회경제적 사회질서가 그 욕구만족을 방해하는 장애꾼들에 대한 인식

⓸ 자신의 삶의 필수품들과 그것의 방해물에 대해 단절하려는 데 대한 자신의 금지와 불안에 대한 인식

⓹ 대중의 통일이 이루어질 때 억압자의 권력에 대항해 불굴의 힘을 만들어낸다는 인식

 

이다. 반면 혁명지도부의 계급의식은 대중이 스스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대중을 대신해 말할 수 있는 능력과 지식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며 자본의 멍에로부터의 혁명적 해방은 혁명지도부가 삶의 모든 측면에서 대중을 이해하기만 하면 충분히 발전된 대중의 계급의식에서 자발적으로 성장할 총괄적 행동이다.

 

  최근 「국제공산주의흐름」 이 발간하는 이론지 「국제평론」 (2010년) 140호에서 「과학과 맑스주의 운동」 이라는 연속주제 아래 그들은 특집의 취지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조직은 과학적 지식과 연구에 대한 관심을 고무시킬 책임이 있다. 특히 인간사회에 관련된 분야, 인간과 심리에 관련된 분야, 지배계급이 몽매주의를 개발하는데 관심을 가지는 영역이다.”

 

  지금까지 30년동안 한 번도 정신분석학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던 혁명조직이 최근 이러한 관심과 변화를 보이는 것은 맑스주의의 혁명적 실천을 위해 지극히 바람직한 일이다. 무의식으로부터의 해방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공산주의 사회의 그것과 결합된다는 의미는, 공산주의 초기단계에서의 인류의 우선순위가 노이로제와 정신고통의 원천이 놓여있는 무의식의 깊은 층위에 대한 관심이라는 점이다.

 

  물론 오늘날 공산주의자들은 프로이트의 사상에 동의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프로이트를 반대하는 현재의 캠페인에 대해 극도의 불신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리고 트로츠키가 주창한 열려진 접근으로 바로 서야 한다.”

 

 

5. 나오며

 

  백여년 전 공황이라는 순환적인 자본주의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생산력이 증진되는 상승하는 자본주의가 그 정점에서 제국주의 전쟁을 통한 파괴와 살육을 통해 체제를 유지하려는 시기에 새로운 생산양식으로 혁명적 전환을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과 공산주의자들의 헌신이 세계를 뒤흔들었다.

 

자본주의는 전쟁인가 혁명인가, 야만인가 사회주의인가의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었다. 러시아 혁명은 성공했지만 세계 혁명은 실패했고, 자본주의는 단발마적 고뇌에 빠지는 종말로 가는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세계혁명의 실패, 파시즘과 스탈린주의라는 반혁명적 세력의 등장, 두 번의 세계대전을 통한 생산력의 파괴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죽음, 2차 세계대전 이후 25년간의 일시적 호황, 신자유주의의 증장, 이른바 ‘현실사회주의국가’로 불리웠던 국가자본주의 국가의 몰락, 그리고 끊임없는 전쟁과 생태적 위기, 국가부채의 엄청난 증가를 통한 재정위기 등의 공황은 다사 한 번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을 가속화시키며 야만인가 혁명인가를 선택하게 하는 혁명의 객관적 조건을 만들고 있다.

 

  여기에 「역사적 계급의식」 이라는 의제가 모든 공산주의자들과 프롤레타리아트 앞에 놓여 있으며 우리는 100년 전에 실패한 세계혁명과 그 이후의 반동적 역사를 반성하고 야만의 자본주의 문명을 철폐하고 진정한 문명의 세상인 공산주의를 건설할 구체적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맑스의 초기 사상과 후기 사상 이론의 분리가 아닌 변증법적 통합으로 인간의식과 정치경제에 대한 분석을 해야 하고, 혁명의 당위론적 낙관론이나 혁명불가능의 자조적 비관론 모두를 넘어서는 맑스주의자와 공산주의자로 거듭나야 한다.

 

첫째, 맑스, 루카치, 그리고 가치형식 이론에 대한 이해를 통해 자본주의의 물상화가 프롤레타리아를 예속시키고 지배하는 기제와 방식을 철저하게 연구하는 동시에, 노동자가 가치증식을 넘어 실질적 부의 창조(공산주의 물질적 기초가 되는)의 주체로서 가치형식을 깨뜨리는 능력과 방식을 연구해야 한다.

 

둘째, 맑스, 트로츠키, 라이히 등 계급에 의해 조건화된 계급 무의식에 대한 이해를 통해 맑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의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욕망과 그 억압 그 구체적 형태에 대한 인식이 자본주의 철폐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사회건설 계획의 일부임을 확인해야 한다. 전도된 의식과 억압된 무의식으로부터의 해방은 분리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셋째,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의 주체임에 틀림없으나 위 두 가지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하면서 공산주의 사회의 원칙과 방향을 제시하고 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혁명의 주체가 되는 공산주의자 조직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 조직은 혁명당이며 그 강령과 혁명전략 전술은 물상화와 무의식에 대한 구체적 연구성과에 기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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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위의 정치적 해산을 선언한다!

 적색과 회색의 분리

 

                                                                                                                            

 

 

 사노위의 정치적 해산을 선언한다!   

    - 강령 통일과 조직 통합에 실패한 사노위, 이제 그 공동실천을 종료하며

 

 

 

 

사노위 3차 총회는 끝내 해산을 거부했다.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공동실천위원회(사노위)는 그 출범 과정에서 공개적으로 대중 앞에 약속하고 선언한 “1년 안에 강령/전술/조직 상의 통일을 통한 당 추진위 건설”에 최종 실패함으로써 공동실천위원회로서의 그 시효를 마감했다.


이에 우리는 ‘강령 통일 실패에 따른 조직 해산’을 총회에 상정했지만 구 사노준을 비롯하여 의견그룹 이탈세력을 포함하는 다수파는 형식적 민주주의를 앞세운 표결로 이를 기각시켰다. 이로써 사노위 조직의 수명은 형식적으로 연장됐지만, 이러한 무원칙한 연장과 동거로 당건설 공동실천위원회의 파산을 감출 수는 없다.


우리는 이제 ‘사노위를 통한 당 건설 공동실천’이 실패한 데 대한 우리 자신의 책임 또한 막중함을 인정하며, 공식적으로 사노위의 정치적 해산 및 공동실천의 종료를 선언한다.

 

 

사노위가 실패한 것은 단지 강령 문구상의 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때문이 아니다. 강령 상의 불통일은 혁명이냐 개량이냐와 관련한 총노선의 차이를 드러냈으며, 이는 ‘어떤 당’을 건설하고 ‘어떤 정치활동’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좁힐 수 없는 간극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강령 논의를 3개월 더 연장한다고 해서 해소될 수 있는 차이가 아니다. 더군다나 그 3개월을 계급 속에서의 공개적인 강령 논쟁을 배제한 상태에서 무조건적인 단일화를 전제한 몇몇의 밀실 논의를 통해 단일안을 만들어내겠다는 것은 정치적 통일에 기초한 당 강령의 정립이 아니라 조직 보존주의를 앞세운 야합일 따름이다.


혁명적 강령으로의 통일을 비웃고 조직만 유지, 보존하면 된다는 이러한 정치 냉소주의에 바탕한 무원칙한 동거로는 결코 사회주의 혁명정당을 건설할 수 없다. ‘깨져서는 안 된다’, ‘사노위만이 유일한 대안이다’라는 맹목적인 조직보존 논리는 ‘강령에 입각한 당 건설’ 원칙을 사실상 폐기하는 논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강령 통일이 당 건설의 모든 것이라고 보는 강령 만능주의자가 아니다. 우리는 지난 가입원서 건과 소책자 비평 건 등 회원 조직활동 문제와 민주집중제 문제를 놓고도 비타협적인 투쟁을 전개했다. 무엇보다 우리는 강령 문제가 ‘어떤 정치활동’을 할 것인가, 회원들이 현장, 부문 등 각각의 영역에서 어떻게 사회주의 정치활동을 전개할 것인가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음을 제기하며 실천의 지침으로서의 강령을 정립해야 한다고 거듭 호소해 왔다.

 

노동자 투쟁에 결합하고 연대하는 것은 사회주의 조직으로서 당연한 임무이지만, 정치활동이 결코 이것으로 제한되어서는 안 되며 사노위 정치원칙인 “강령(이행요구)에 입각한 노동자투쟁 조직화”로 우리의 정치활동을 끌어올려야만 조합주의와 부문운동주의를 극복하고 당 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거듭 제기했었다. ‘연대만으론 안 된다. 강령에 입각한 지도력 발휘가 필요하다’고 말로는 모두가 인정한다. 그러나 결국은 조직보존 논리 앞에서 모두 공문구로 전락하고, 이제 다수파 앞에는 ‘주체형성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조합운동과 부문운동들을 병렬적으로 모아놓는 연방주의, 추수주의 조직으로 가는 길밖에 없다.

 

 

혁명적 강령 정립이 당 건설의 모든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것만이 지금 절박한 노동자계급 지도력의 위기 속에서 새로운 대안 지도력을 만들 수 있는 출발점이다. 사노위는 이 대안 지도력 건설의 출발점에서 실패했다. 지난 사노위 건설 당시 공개제안서에서 분명하게 밝힌 바 있는 이 점을 우리는 오늘 사노위 실패 속에서 비통한 심정으로 다시 확인한다.

 

 

사노위 실패에 대한 책임에서 우리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안다. 이러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온전히 떠안고 가는 길은 먼저 사노위 운동 1년에 대한 냉정하고 객관화된 평가와 함께 이로부터 당 건설투쟁의 올바른 교훈을 끌어내는 길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교훈이든 현 시기 진보정당들이 민주대연합을 통해 자본가 정당과 손잡으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만신창이가 되고 노동자계급 지도력의 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박한 이 엄중한 정세 속에서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을 향한 우리의 발걸음은 조금도 늦출 수가 없다.

 

그 동안 사노위를 통한 우리의 당 건설투쟁을 응원하고 지지해 준 동지들, 그리고 함께 하진 못했지만 이 시도를 관심 있게 지켜봐 온 동지들께 연대의 정을 전하며 다시 책임 있는 모습으로 동지들 앞에 인사드릴 것을 약속한다.

 

 

 

                                           2011년 6월 1일

 

 

                고민택, 구재보, 김남명, 김대환, 김병효, 김운용, 김창연, 남궁원, 박준선,

                양효식, 오세철, 유승철, 윤문호, 이근조, 이승렬, 이승찬, 이지윤, 이형로,

                이효성, 임천용, 정현철, 최철, 한송우, 현철민 등 총28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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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총회는 ‘사노위 해산’ 총회가 되어야 된다

 3차 총회는 ‘사노위 해산’ 총회가 되어야 된다

 

 

2010년 5월 9일 사노위 출범 총회에서 결의하고 밝힌 1년 또는 1년 3개월 안에 ‘강령/조직/전술’ 상의 통일(통합)을 이뤄 적어도 ‘단일조직’, 나아가 ‘추진위’로 전환한다는 목표는 그 원인과 과정 그리고 책임이 여하하든 간에 달성되기 어렵게 되었다.

 

현 사노위를 유지, 연장하는 것을 통해 목표 달성을 다시 시도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가능하지 않은 것은 그럴 수 있는 주객관적 근거와 동력을 현 시점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이며,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이런 상황에서의 유지, 연장은 사태를 더 악화시킬뿐더러 그나마 있을 수 있는 미래의 가능성마저 더 갉아먹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금 사노위가 취해야 하는 그나마 최선의 방안은 사노위 ‘해산보고서’를 사노위 조직의 이름으로 제출하는 것을 통해 사노위 운동을 스스로 객관화하는 일이다. 단지 ‘해산했다’는 사실 보도가 아니라 해산에 따른 ‘(정치)보고서’를 공동으로 제출하는 것까지를 자신의 임무로 감당해야 한다.

 

 

 4차 중앙위 결정을 규탄한다.

 

4차 중앙위는 마지막으로 지켜야 할 사노위 운동의 정당성마저 짓밟는 행위를 저질렀다. 4차 중앙위는 세상을 속이고 자신마저 배반하는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사노위 운동은 실패했다. 이 엄연하고 냉정한 사실로부터 누구도 도망갈 수 없다. 아무리 아프고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일단 실패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패했다고 해서 사노위 운동이 추구하고 시도했던 것 자체마저 부정하거나 부정당해야 하는 것인가의 문제는 아직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이르다.

 

사노위의 실패는 예정된 실패가 아니다.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는 계기와 과정이 교차했으며 혼재해 있었다. 최종적으로 성공에 이르지 못했을 뿐이다. 누가 어떻게 사노위 운동의 경험과 교훈을 살려 나가냐에 따라 사노위 운동은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도 계속해서 부딪쳐야 하는 문제이다.

 

4차 중앙위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과 여지를 앗아갔다. 사노위 운동 전 과정의 결말을 희화화시키고 있다. 해프닝, 에피소드로 전락시키고 있다. 3차 총회에서 강령단일안이 성원 모두의 동의를 통해 또는 모두가 인정한 상태에서 최종적으로 표결을 통해서라도 결정을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현실 앞에서 3개월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강령단일화를 이루기 위한 시도를 마지막으로라도 한 번 더 하자는 취지로 4차 중앙위 결정을 이해해 보려고 한다 하더라도 “강령초안을 유보없이 채택한다”거나 “단일안 작성을 전제로 강령기초위원을 선출한다”는 방안은 도저히 그런 취지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유보 없이 채택한다”는 결정은 적어도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된다는 것을 전제할 수밖에 없다. 하나는 4차 총회에 상정할 ‘강령단일안’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하며 또 하나는 4차 총회에서는 표결을 통해서라도 찬반을 묻겠다는 것에 모두가 동의해야 한다. ‘특정한 배제’를 전제하지 않고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진정성 있는 취지라면 다음과 같은 정도가 필요하다. 먼저 기본 인식과 태도를 모두가 공감해야 한다. 첫째 지금까지의 토론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해야 한다. 부족하지 않은데 더 토론을 진행시켜야 할 이유는 없다. 둘째 모두가 강령단일화를 이루기 위해 실질적,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그럴 생각이 없이 시도할 필요는 없다. 셋째 결과적으로 강령단일화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표결 처리를 하는 것밖에 남는 것이 없다.

 

다음으로 방법을 합의해야 한다. 첫째 기존 강령기초위원은 자신이 원할 경우 새롭게 구성되는 ‘000’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에게 책임을 물어 소환하는 정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000’은 자원자를 포함하여 구성해야 한다. ‘000’은 토론의 장이지 표결의 장은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 기존 제출된 3개안도 스스로 거두지 않는 한 선 폐기하지 않고 새롭게 구성할 ‘000’ 안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논의해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넷째 ‘000’ 운영/진행 방안과 전조직적, 대외적 토론 방안에 대한 기본적인 가닥을 총회에서 결정해야 한다.

 

그 위에서 8월까지의 조직운영과 지도부의 성격 및 구성에 대한 원칙을 일치시켜야 한다. 8월까지의 기간은 일상적 기간일 수 없다. 작게는 사노위의 진로가 걸려 있으며 크게는 당 건설 노선과 전망에 영향을 미치는 비상한 기간이다. 따라서 조직운영의 초점을 강령 토론에 실어야 한다. 또한 지도부의 성격은 ‘3기’가 아닌 ‘과도기’를 담당하는 것으로 설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추진위’ 건설 방안을 포함한 조직의 진로와 관련된 사안은 ‘실무적/행정적’ 문제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보류해야 한다.

 

 

사노위의 이름으로 해산보고서를 제출하고, 사노위 운동을 우리 스스로가 객관화해야 한다.

 

결국 4차 중앙위 결정의 취지가 이런 진정성 있는 방안과는 달리 시간을 연장해 8월에 가서 모든 것을 ‘표결 처리’ 할 것을 전제하고 제출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시간 낭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쁜 결과를 낳을 것이 분명하다.

달리 방안을 도출할 수 없다면 사노위는 해산하는 것이 마땅하며, 그것이 마지막 취해야 할 최소한의 방안이자 태도이다. 사노위는 ‘단일조직’이 아닌 ‘공동실천위원회’로서 ‘단일조직’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 조직 진로를 결정해야 할 상태에 놓여 있는 바, 옳고 그르고, 좋고 싫고, 유리하고 불리하고를 떠나 해산만이 유일한 방안이다.

 

해산이 곧 실패나 파국 자체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해산은 새로운 출발과 시도를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 될 수 있으며 이후로도 또 다른 형태로 만나고 헤어질 수 있는 가능성과 여지를 남겨두기 위한 적극적 방안이기도 하다. 해산이 정말 아프고 힘든 일일 수는 있지만 마냥 부끄러운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해산이 아닌 4차 중앙위 결정 방안은 부끄럽기까지 한 일이다.

 

사노위가 설립 본래의 목적에 맞게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어렵다면 사노위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노력은 사노위의 이름으로 ‘해산보고서’를 제출하는 일이다. 사노위 출범의 의의와 지난 사노위 활동을 스스로 객관화해야 한다. 사노위 바깥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적어도 사노위는 자기 자신에 대해 밝혀야 한다. 그 전제 아래에서 각자는 또 각자의 논리를 더 구체화하고 강화하여 세상에 내 놓으면 된다. 단 한 문장이든 장문의 글이든 사노위의 이름으로 ‘해산보고서’를 제출하고 그 다음을 각각 진행시켜야 한다. 이 또한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거기까지가 사노위가 해야 할 몫이다.

 

 

                                                 2011년 5월 22일

 

                      고민택, 구재보, 김대환, 김병효, 남궁원, 박준선, 양효식, 오세철,

                      유승철, 윤문호, 이형로, 임천용, 조영태 등  사노위 회원 25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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