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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연대·대학문화성폭력사건대책위원회와 기호2번 선본과 주고받은 공문을 공개하며 우리의 요청에 대한 선본의 빠른 답변을 촉구합니다.

지난 11월 7일 노동자연대·대학문화성폭력사건대책위원회는 가해조직인 노동자연대가 참가하고 있는 민주노총 지도부 선거 ‘기호2번 한상균-최종진-이영주’ 선본과 선본에 참여하고 있는 각 단체들에게 가해조직인 노동자연대와 연대를 재고하고 성폭력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지난 답변 시한으로 제시한 11월 17일 자정을 30분 정도 남겨 놓고 ‘기호2번 한상균-최종진-이영주’ 선본에서 노동자연대의 선본 배제를 결정할 수 없으며 노동자연대와 선본, 대책위가 참가하는 3자 대면을 통해 대화하자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이에 대책위는 이런 조치가 사건의 본질조차 파악하지 않으려는 편의적인 답변이며 이 사건에 대해 피해자와 대책위의 구체적인 진술과 요구를 바탕으로 사건을 접수하고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여 사건을 처리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현재 ‘기호2번 한상균-최종진-이영주’ 선본은 이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는 중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 가해조직인 노동자연대는 또 다시 대책위 입장서에 대한 악의적인 반박문을 작성해 유포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책위는 그동안 기호2번 선본과 주고받은 공문 세 건을 모두 공개하며 우리의 요청에 대한 선본의 빠른 답변을 촉구합니다.

그리고 기호2번 선본에 참여하고 있는 제 활동가단체 역시 선본 차원의 입장과 별도로 이 사건에 대한 조직의 입장을 빠른 시일 내에 밝혀주시기를 덧붙여 요청 드립니다.

 

 

2014년 11월 21일

 

노동자연대·대학문화성폭력사건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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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폭력 사건 가해조직인 노동자연대의 선거대책모임 참여 재고에 관한 협조의 건

수신: 가칭) 직선제 승리, 민주노총혁신, 총파업투쟁을 위한 민주노총 선거대책모임

일자: 2014년 11월 7일

 

 

 

1. 귀 직선제 승리, 민주노총혁신, 총파업투쟁을 위한 민주노총 선거대책모임(가)(이하 선거대책모임)의 발전과 승리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 귀 선거대책모임에 저희 노동자연대(구 다함께).대학문화 성폭력사건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성폭력사건의 가해조직인 노동자연대가 연대조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많은 동지들이 이미 인지하다시피 노동자연대는 지난 3년간 다함께(현 노동자 연대). 대학문화 성폭력 사건을 방임하다 못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소송을 건 성폭력사건 재판에 해당 조직(노동자연대) 중앙 등이 조직적으로 참여하면서 위증을 했습니다. 또한, 본 사건을 운동 사회 내 양성평등, 반성폭력 규약 일반 원칙에 따라 운동적으로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집단적으로 2차 가해를 한 사실과 정황들이 계속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3. 직선제 승리·민주노총 혁신·총파업을 위한 전국 활동가 승리 결의대회 자료집(2014.11.1)에서 귀 선거대책모임이 발표하신 <혁신6>에는

 

 

- 여성의제의 부차화 극복. 여성사업 대폭강화. 여성위원회 위상 제고.

- 개점휴업상태로 전락한 성평등 위원회 활성화를 통한 조직문화 쇄신.

- 성폭력예방 교육을 넘어서 여성주의에 기초한 전 조합원 교육.

 

 

이라는 여성정책공약이 있습니다. 저희는 그동안 노동자연대 측에 2차 가해 중단과 사과, 가해자 징계 및 부르주아 사법기구를 통한 고소. 고발 철회, 가해자들의 성폭력 교육 이수, 성폭력 내규 제정을 요구하였으나 노동자연대 측은 이를 계속 무시했습니다.

 

 

따라서 가해조직인 노동자연대가 연대세력으로 함께 한다는 것은, 귀 선거대책모임이 발표하신 여성정책공약과도 모순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4. 저희 또한, 이 상황에 대해 귀 선거대책모임에 좀 더 빨리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이후 저희는 무려 3년이나 계속되었던 노동자연대 측의 2차 가해와 성폭력사건 재판에 조직적으로 참여한 사실에 대해서 계속 진실을 폭로할 예정입니다.

 

 

혹여라도 노동자연대의 성폭력 사건이 귀 선거대책모임의 행보에 누가 되지 않을지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거듭 심사숙고하시어 성폭력 가해조직인 노동자연대가 귀 선거대책모임에 참여하는 것에 관해 재고해주실 것을 아래와 같이 요청합니다.

 

 

<요청사항>

 

 

하나, 성폭력 사건 가해 단체인 노동자연대의 선거대책모임 참가에 대한 선거대책모임 차원의 공식논의와 입장표명

 

 

둘, 선거대책모임의 여성정책(공약)에 근거한 노동자연대(구 다함께).대학문화 성폭력사건 처리에 대한 이후 계획

 

 

5. 저희 요청에 관해 귀 선거대책모임 동지들의 많은 관심과 진정성 있는 논의와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6. 답신은 위 대책위 메일로 11월 17일까지 보내 주시기 바라며, 다른 사정이 있으면 진행 상황을 통보해 주십시오.

 

 

7. 본 사건 관련자료는 다음의 다함께. 대학문화 성폭력사건 해결을 위한 포험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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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2번 한상균-최종진-이영주’ 선본의 "귀 대책위원회의 공문에 대한 답변"

일자 : 2014년 11월 17일

 

 

 

 

1. 귀 대책위원회의 본 선대본에 대한 관심과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2. 귀 대책위의 요청에 대한 기호 2번 선대본의 논의 결과를 보내드립니다.

 

 

가. 귀 대책위가 요청하신 노동자연대의 선대본 참가 문제에 대한 입장표명입니다. 우선 본 선거대책본부의 조건과 사정은 귀 대책위가 제기하신 사안에 대한 전반적 파악이 물리적으로 어려운 현실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상황에서 본 선거대책본부는 귀 대책위가 요청하신 노동자연대의 선대본 참가배제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 귀 대책위의 양해를 요청드립니다.

 

 

나. 그럼에도 귀 대책위가 제기하신 문제에 대해 본 선거대책본부는 심사숙고 하였습니다. 이에 본 선거대책본부는 이 사안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귀 대책모임과 노동자연대 그리고 본 선거대책본부의 이영주 사무총장 후보가 참여하는 3자 연석회의를 제안합니다.


이 연석회의를 통하여 장기간 진전이 없었던 문제의 해결 방안을 모색하였으면 합니다.

 

 

다. 귀 대책위원회가 위 나 항을 수용한다면 3자 연석회의에 참석할 귀 대책위의 대표 또는 대리인을 선임하여 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그 대표 또는 대리인과 곧바로 3자 연석회의의 개최 일정과 의제에 대하여 협의하였으면 합니다. 귀 대책위원회의 적극적인 검토를 기대합니다.

 

 

기호 2번 한상균, 최종진, 이영주 선거대책본부 드림
연락담당: 사무총장 후보 이영주 (전화: 010-8206-3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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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위의 "귀 선대본의 11월 17일자 답변에 대한 대책위의 입장"
일자: 2014년 11월 19일

 

 


1. 먼저 민주노총 임원 직선제 선거로 바쁘신 와중에도 본 대책위의 11월 7일 자 공문(성폭력 사건 가해조직인 노동자연대의 선거대책모임 참여 재고에 관한 협조의 건)에 대한 답변을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2. 귀 선대본의 답변에 대한 우리 대책위의 입장은 아래와 같습니다.

 

 

- 아 래 -

 

 

하나, ‘성폭력 사건 가해 단체인 노동자연대의 선거대책모임 참가에 대한 입장표명’ 요청에 대해 귀 선대본에서는 ‘선대본의 조건과 사정이 대책위에서 제기한 성폭력 사건에 대한 전반적 파악이 물리적으로 어려운 현실’이라는 답변을 해오셨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 대책위에서는 성폭력 사건을 대하는데 있어 ‘피해자 권리’를 고려하지 않은 귀 선대본의 태도에 강력한 유감을 표합니다.

 

 

앞선 11월 7일 자 공문에서 밝혔듯이 우리 대책위에서는 이 사건을 ‘운동 사회 내 성평등, 반성폭력 규약 일반 원칙에 따라 운동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성폭력 사건에 있어 피해자의 권리를 확보하고 피해자 입장에서 사건을 처리하려 노력하는 것은 운동적 해결의 기본입니다. 또한, 사회적으로 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가해자(가해 단체)의 경우 공식적인 활동과 행사에 참여시키지 않는 것이 피해자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입니다.

 

 

그런데 귀 선대본에서는 ‘물리적으로 어려운 현실을 이유’로 사건처리를 회피했을 뿐 아니라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대책위는 귀 선대본이 무엇보다 먼저 본 사건에 대해 피해자와 대책위의 구체적인 진술과 요구를 바탕으로 사건을 접수하고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여 사건을 처리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합니다. 또한, 피해자가 2차 가해를 당하지 않도록 가해 단체의 귀 선대본 활동을 즉각 중단시켜 줄 것을 요청합니다.

 

 

둘, 귀 선대본이 제안한 가해 단체가 포함된 ‘3자 연석회의’는 ‘장기간 진전이 없었던 문제의 해결 방안을 모색‘ 하는데 있어 매우 부적절합니다. 장기간 진전이 없었던 것은 전적으로 가해 단체가 피해자와 대책위의 정당한 주장과 요구를 무시해왔을 뿐 아니라 2차 가해를 저질러 온 결과입니다.

 

 

우리는 명백한 사실을 근거로 ‘노동자연대(구 다함께)’를 가해 단체로 규정했고, 귀 선대본에 운동 사회 내 성평등, 반성폭력 규약 일반 원칙에 따른 가해 단체에 대한 조치를 요구했던 것이지, 가해 단체와 피해자 측이 동등한 자격으로 테이블에 앉아 귀 선대본의 중재를 받고자 했던 것이 아닙니다. 가해 단체가 포함된 3자 연석회의는 사건을 당사자 간의 문제로 협소화시키고 가해 단체에게 처음부터 면죄부를 주는 제안이라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대책위에서는 귀 선대본의 결정사항에 큰 실망을 느끼며, 운동적 해결을 위한 재논의와 진정성 있는 답변을 다시 요청합니다.

 

 

지금이라도 귀 선대본에서 이 사건에 대한 올바른 운동적 해결을 원하신다면, 원칙에 따라 사건을 접수하시고, 사건 해결을 위한 별도의 기구를 구성하여 정당한 처리절차를 밟아주시기 바랍니다. 귀 선대본에서 가해 단체를 배제하고 정당한 처리절차를 진행하신다면, 대책위는 귀 선대본과 직접 만나는 것을 포함하여 귀측에서 요청하는 모든 과정에 적극 참여, 협조할 것이며, 결과에 대해서도 공동으로 책임지겠습니다.

 

 

2014년 11월 19일


노동자연대·대학문화성폭력사건대책위원회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6&document_srl=178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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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련공대위 및 사노련사건 피고인 일동 성명서

[사노련공대위 및 사노련사건 피고인 일동 성명서]

 

사노련 사건 대법원 판결에 굴하지 않고,  정치사상의 자유와 노동자 민중의 생존과 안전을 위해 투쟁할 것입니다!

 

대법원 2부는 오늘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노련) 사건에 대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일부 집시법 위반 혐의만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을 뿐, 이번 재판의 핵심인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이것은 1심, 2심 판결에 이어, 정치사상의 자유에 대해 또 한 번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다.


정부가 이미 해산한 사노련을 4년째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모두 실업, 가난, 해고, 비정규직 제도 등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참상을 해결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 정부들은 선령 제한을 풀고, 세월호의 설계변경을 허용하며, 과적과 안전시설 미비에 대해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이 정부들은 수많은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산업재해들을 방치하고 있다. 오직 유병언을 비롯해 한 줌 회장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반대로 이 정부들은 노동자 민중에 대한 더욱 거센 탄압을 통해 한줌 가진 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려 발악하고 있다. 민주주의에 재갈을 물리려고 집회 시위, 파업, 정치사상의 자유를 억압했다. 언론을 장악하려는 시도는 물론이요, 국정원을 동원해 대선 개입도 서슴지 않았다.


구 사노련은 이에 대해 전면적으로 반대해왔다. 경제파탄의 책임을 노동자 민중에게 떠넘기지 말 것을, 오히려 투기와 노동자에 대한 착취강화에 여념이 없는 자본가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명을 위협하는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했고, 일터의 광우병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했다. 유가폭등 물가폭등으로 신음하는 노동자 민중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4대 정유사를 비롯한 재벌 대기업들의 영업비밀 폐지, 국유화 조치를 주장했다. 탐욕에 사로잡혀 있을 뿐 무능력하기 짝이 없는 자본가들이 아니라, 노동자가 직접 일터를 통제 감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도 이명박 정부라는 암초를 제거하지 않는 한 노동자 민중의 삶에 희망은 없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나아가서 몇몇 회장들의 천문학적 이윤을 보호하기 위한 비인간적 경제체제가 아니라 가난한 노동자 민중을 위한 새로운 사회적 공동체경제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너무나 정당했다. 오늘날 이 사회에서 생명의 안전을 위해, 그리고 정의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유병언 일족의 이윤이 아니라 승객들과 선원들의 안전이 우선이었다면, 세월호는 선령 연장 없이, 설계변경 없이 진즉 해체돼 이미 고철이 되었을 것이다. 선원들과 고박 노동자들이 세월호를 통제 감독할 수 있었다면 과적은 없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세월호 대학살극은 없었을 것이다. 대기업들의 영업비밀이 폐지되고, 박근혜 정부가 물러났다면, 또한 모든 정부 기구의 정보들이 투명하게 공개되었다면 세월호 학살의 책임자들은 모두 정의의 심판대에 올려졌을 것이다.


사노련의 주장은 오늘날 경제파탄과 세월호 학살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분노를 전면적으로 대변한 것일 뿐이다. 대법원 판결은 현 정부는 민주주의와 정의,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과 절대 양립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것이다. 그렇기에 정부의 유죄판결에도 불구하고, 사노련 피고인들과 사노련 공동대책위는 자본가들과 억압적 정부에 맞선 투쟁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다. 국가보안법을 들이밀어 사회주의 사상과 정치활동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시도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박근혜 정부의 몸부림은 가망 없는 애처로운 짓일 뿐이다!


우리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진상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라”는 요구를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현 정부의 실체가 분명하다면, 고통 받는 노동자 민중이 스스로 일어나는 것만이 진실과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정치사상의 자유를 비롯한 민주주의의 권리도 노동자 민중 스스로의 투쟁을 통해서만 쟁취할 수 있다고 믿는다. 노동자 민중의 투쟁에 굳건히 연대하고, 이들과 함께 우리는 민주주의와 사회정의, 인간다운 공동체를 향해 전진할 것이다. 대법원 판결은 우리를 조금도 멈추게 할 수 없다!

 


사노련 회원들에 대한 유죄판결, 즉각 철회하라!

 


국가보안법 폐지하고 정치·사상의 자유 보장하라!

 


사회주의 정치활동의 자유 쟁취하자!

 


노동자투쟁에 대한 탄압 분쇄하자!

 


세월호 진상위에 기소권과 수사권 보장하라!

 


2014년 8월 20일

 


사노련탄압 분쇄와 정치사상의 자유 억압하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사노련사건 피고인 일동(박준선, 양준석, 양효식, 오민규, 오세철, 정원현, 최영익, 고 남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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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글씨] 공개토론회 :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새로운 주체와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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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지 [붉은글씨]  공개토론회

 

<주제>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새로운 주체와 실천

 

<발제>

 

-점거투쟁의 새로운 정치적 주체, 프레카리아트 운동에 대해 (사회주의노동자신문 독자회원 이정인)

 

-노동조합을 넘어선 새로운 노동자운동을 제안하며 (국제코뮤니스트전망 정현철)

 

*토론자 : 김혜진(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사회자 : 김운용(국제코뮤니스트전망)

 


일시 : 7월 12일(금요일) 오후 7시

 

장소 : 경향신문사 별관 2층, 민주노총 사무연맹 회의실 (5호선 서대문역)


주최 : 붉은글씨를 만드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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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6일] 재능투쟁 승리와 노동자연대를 위한 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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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투쟁 승리와 노동자연대를 위한 문화제]


일시 : 4월 6일(토) 오후 4시부터

 장소 : 재능지부 시청농성장 (시청광장 옆 재능사옥)

 

 

다시 철거당한 시청농성장!    거리농성  1934일!

 

시청농성장 사수와  노동자연대의 복원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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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실험과 국제주의자들의 어제와 오늘

[북한 핵실험과  국제주의자들의 어제와 오늘]

 

2006년 10월 한국에서  처음으로 혁명적 맑스주의자(공산주의자) 국제대회가 열렸다. 현재의 국제코뮤니스트전망(ICP)의 토대가 된 두 흐름인 사회주의정치연합이 주최하고 노동자평의회 그룹 멤버들이 함께 했다. 해외의 국제주의 조직은 국제공산주의흐름(ICC)과 국제주의자전망(IP), 그리고 로렌골드너(현 반란자노트 그룹) 등이 참여했다. 한국에서는 현재의 노건투와 노혁추, 사노위 활동을 하는 (구)당건투 동지들과 울산배움터 그리고 서울, 울산의 현장동지들이 참석, 참관했다.

 

이때가 지금과 비슷하게 북핵 문제가 터진 시기였고, 한반도의 전쟁위협이 고조되던 때라서, 국제대회 기간 중 긴급하게 북핵문제에 대한 국제주의자 선언이 제안되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중요하고 진지한 토론을 거쳐 선언서가 채택되었고, 이때 참가한 국제주의 조직들은 전원 기꺼이 선언에 서명했다.  안타깝게도 당시에는 한국의 혁명적사회주의자들 일부는  북한을 포함한 민족문제, 제국주의 문제에 대해 단호한 국제주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 못했었다.  사회주의정치연합과 노동자평의회 그룹, 그리고 울산의 몇 동지 이외의 동지들은 이러저한 이유로 인해 선언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 후 핵과 제국주의 문제에 대한 원칙에 대해서는 사노위와 노혁추 강령토론에서도 여전히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다행히 북한 문제에 있어서는 상당한 의견통일이 이루어진 상태다. (적어도 북한을 모종의 노동자국가라고 판단하는 흐름은 이제 다수가 아닌 소수가 되었다)

 

벌써 국제주의 선언 이후 6년이 지났다.  북한은 여전히 예측할 수 없고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고, 한국은 무능하며 제국주의 세력과 이해를 같이 하고 있다. 예전에도 지금도 오로지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연대와 대대적인 투쟁만이 전쟁 위협을 막아낼 수 있다.

 

동지들은 아직도 이 선언에 동의하지 못하는가? 아직도 한국의 특수한 상황이 노동자 국제주의 원칙보다 먼저 고려될 상황이라 생각하는가?

 

(이후 이 선언을 지지한 아시아지역 노동자와 국제주의자들을 기억하며 일본어, 영어 번역본도 함께 올린다)

 


 

<전쟁위협에 대항하여 한국으로부터의 국제주의자 선언에 대한 ICC의 멘트>

 

 

2006년 10월말, 국제주의적 조직들, 그룹들 및 투쟁가들의 대회가 한국의 서울과 울산에서 사회주의정치연합(SPA)에 의해 개최되었다. 참가자의 수적인 면에서 소규모였지만, 사회주의정치연합은 극동아시아에 있어서 좌파공산주의를 원칙으로 하는 (우리가 아는 한) 최초의 표현이었고, 이 대회는 확실히 이런 공산주의자들의 역사상 최초의 대회였다. 이렇게 이것은 역사적인 의의를 가지며 ICC는 대표단을 파견함으로써 진심으로 이 대회를 지지하였다.

 

그런데 대회 며칠 전 북한의 최초의 핵폭탄의 실험에 의해 그리고, 특히 이 지역의 여러 국가들(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한국) 측에서 이어진 기동연습에 의해 야기된 이 지역에서의 제국주의간 긴장의 극적 첨예화에 의해 이 대회의 목표들의 장기적인 정치적 중요성이 그늘지워졌다. 그래서 이 문제는 대회에서 상세히 토론되었다. 그 결과로, 아래에 그 명단이 공개된 대회 참가자들은 다음과 같은 입장을 표명하기로 결정했다.

 

 

<전쟁위협에 대항하여 한국으로부터의 국제주의자 선언>

 

북한의 핵실험에 관한 소식에 이어, 서울과 울산에서 회합을 갖고 있는 우리들, 공산주의 국제주의자들은:

 

1. 또 하나의 자본주의 국가의 손 안에서의 새로운 핵무기 개발을 비난한다: 핵폭탄은 제국주의자들 간의 전쟁에서 최종적인 무기이다. 그 유일한 기능은 일반 민간인의 특히 노동자계급의 대량학살이다.

 

2. 자본주의 국가 북한에 의해 자행된 전쟁으로 향한 이러한 새로운 단계를 전적으로 비난한다. 이때 북한은 자신이 노동자계급이나 공산주의와는 전혀 무관함을 그리고 군사적인 야만주의로 향한 쇠퇴한 자본주의의 전반적 경향의 가장 극단적이자 괴기한 판본에 지나지 않음을 (필요하기라도 한 것처럼 )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3. 그들의 적 북한에 대항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위선적인 캠페인을 가차없이 비난한다. 그러한 캠페인은, 오늘의 이라크에서와 같이 노동자인민이 결국은 그 주요 희생자가 될 선제공격들의 개시 – 그들이 이렇게 할 능력을 갖고 있다면 –를 위한 그들의 이데올로기적인 준비에 불가하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민간인을 절멸했을때의 그 미국이 지금까지 전쟁에서 핵무기를 사용한 유일한 세력임을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

 

4. 중국과 같은 다른 제국주의 갱스터들의 비호 아래 출현할 수 밖에 없는 이른바 평화발의 “peace initiative“들을 가차없이 비난한다. 이것들은 이 지역에서의 평화가 아니라 그들 자신의 자본주의적 이해관계의 옹호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노동자들은 어느 자본주의 국가의 어떤 ”평화적인 의도들“도 믿을 수 없다.

 

5. 국가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옹호라는 미명아래 남한 부르주아계급이, 국제주의적 원칙을 방어하는 노동자계급에 또는 그 활동가들에 대항하여 억압적 조치들을 취하려는 모든 시도들 가차없이 비난한다.

 

6. 발생하게 될 군사행동으로 인해 제일 먼저 고통당할, 남북한의, 중국의, 일본의 그리고 러시아의 노동자들과의 우리의 전적인 연대를 선언한다.

 

7. 자본주의 아래의 인류를 엄습하는 야만주의의의, 제국주의 전쟁의, 그리고 핵파괴의 위협을 영원히 종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노동자들의 전세계적인 투쟁임을 선언한다.

 

노동자들에게 있어 수호해야할 국가는 없다!

전 세계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2006년 10월26일

국제공산주의흐름/사회주의정치연합/국제주의자전망/SJ(노동자평의회 서울그룹)/MS(노동자평의회 서울그룹)/LG/JT/JW(울산)/SC(울산)/BM

 


 

 

<戦争の脅威に対する、韓国からの国際主義者宣言>

 

 

 

北朝鮮における核実験に関する報道に続き、我々、ソウル市とウルサン市で結集した共産主義国際主義者は、以下の項目を宣言する:

 

1)さらなる別の資本主義国の手による、新たな核兵器能力の開発を糾弾する。

 

核爆弾は帝国主義国家間戦争における最終の武器であり、その唯一の機能は一般に民間人の大量殺戮であり、それはとりわけ労働者階級の殺戮を意味する。

 

2)北朝鮮の資本主義国家によって踏み出された戦争への新たな一歩を、断固として糾弾する。北朝鮮は、このようにして、自らが労働者階級や共産主義と全くかけ離れたものであることを再度新たに示し(それが必要であったとして)、実際は、軍国主義の野蛮へ向かう衰退的資本主義の一般的傾向の、単なる極端でグロテスクなバージョンであることを実証した。

 

3)米国およびその同盟国による偽善的キャンペーンを断固として糾弾する。

 

それらの目的は、解放の単なるイデオロギー的な準備以外の何物でもなく、今日のイラクにおける状況と同じく、その可能性があれさえすれば、労働者がそのまま主要な犠牲者にとなる、自分達の先制攻撃を仕掛けることにある。私たちは、米国が、広島と長崎の民間人を絶滅させた時、核兵器を戦争に使用した唯一の大国であったことを忘れてはいない。

 

4)いわゆる「和平工作」を断固として糾弾する。

 

中国等、他の帝国主義的暴力団の庇護下で現われ始めているこれらの工作は、平和などとは全く無関係な、その地域における自らの資本主義的利益に専心したものでしかない。労働者は、いかなる資本主義国の「平和的意図」にも、微小なりとも信頼を寄せることはできない。

 

5)韓国のブルジョワジーによるあらゆる試みを断固として糾弾する。

 

彼らの企ては、国家の自由、又は民主主義の擁護という口実の下、国際主義者の原則を守るために闘う労働者階級及び活動家に対する抑圧措置をとることにある。

 

6)北朝鮮、韓国、中国、日本およびロシアの労働者との完全なる連帯姿勢を断言する。軍事行動が発生した場合に最初に苦しむこととなるのは彼ら労働者達である。

 

7)世界的規模の労働者の闘いのみが、資本主義下の人類の上に降りかかる野蛮さ、帝国主義的戦争、および核による崩壊の脅威に対し、永久に終止符を打つことができると宣言する。

 

 

プロレタリアには防御する国家はない!

 

万国のプロレタリアよ、団結せよ!

 

 

この宣言は以下の組織およびグループによって署名された:

 

社会主義者政治同盟(Socialist Political Alliance)(韓国)、2006年10月26日のソウルのグループ会議国際共産主義潮流(CCI)国際主義者パースペクティヴ(internationalist Perspectives)

 

会議に出席した数名の同士は、さらに個人単位で上記宣言に署名した:

 

SJ(労働者協議会のためのソウル市グループ)MS(労働者協議会のためのソウル市グループ)LGJTJW(ウルサン市)SC(ウルサン市)BM

 

 


 

<Internationalist Declaration from Korea against the threat of war>

 

Following the news of the nuclear tests in North Korea, we, the communist internationalists meeting in Seoul and Ulsan:

 

1.Denounce the development of a new nuclear weapons capability in the hands of another capitalist state: the nuclear bomb is the ultimate weapon of inter-imperialist warfare, its only function being the mass extermination of the civilian population in general and the working class in particular.

2.Denounce unreservedly this new step towards war taken by the capitalist North Korean state which has thereby demonstrated once again (if that were necessary) that it has absolutely nothing to do with the working class or communism, and is nothing but a most extreme and grotesque version of decadent capitalism's general tendency towards militaristic barbarism.

3.Denounce unreservedly the hypocritical campaign by the United States and its allies against its North Korean enemy which is nothing but an ideological preparation for unleashing – when they have the capacity to do so – their own preemptive strikes of which the working population would be the principal victim, as it is today in Iraq. We have not forgotten that the United States is the only power to have used nuclear weapons in war, when it annihilated the civilian populations of Hiroshima and Nagasaki.

4.Denounce unreservedly the so-called "peace initiatives" which are bound to appear under the aegis of other imperialist gangsters such as China. These will be concerned not with peace, but with the protection of their own capitalist interests in the region. The workers can have no confidence whatever in the "peaceful intentions" of any capitalist state.

5.Denounce unreservedly any attempt by the South Korean bourgeoisie to take repressive measures against the workng class or against activists in their defense of internationalist principles under the pretext of protecting national freedom or democracy.

6.Declare our complete solidarity with the workers of North and South Korea, China, Japan, and Russia who will be the first to suffer in the event of military action breaking out.

7.Declare that only the world wide workers' struggle can put an end for ever to the constant threat of barbarism, imperialist war, and nuclear destruction that hangs over humanity under capitalism.

 

The workers have no country to defend!

Workers of all lands, unite!

 

This declaration was signed by the following organisations and groups:

 

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

Socialist Political Alliance (Korea), Seoul group meeting of 26th October 2006

Internationalist Perspectives

 

A number of comrades present at the Conference also signed the declaration on an individual basis:

SJ (Seoul Group for Workers’ Councils)/MS (Seoul Group for Workers’ Councils)

LG/JT/JW (Ulsan)/SC (Ulsan)/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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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is it so difficult to struggle, and how can we overcome these difficulties?

Why is it so difficult to struggle, and how can we overcome these difficulties?

 

 

At first sight, everything seems to favour an explosion of working class anger. The crisis is obvious and no one can escape it. Less and people believe that it’s coming to an end despite the daily assertions to the contrary. The whole planet seems to be in a desolate state: wars, barbarism, famine, epidemics, the devastating manipulation of nature and our health in the name of profit.

 

With all this in front of us, it’s hard to imagine that any feeling other than indignation and revolt could seize hold of our minds. It’s difficult to think that workers can still believe in a future under capitalism. And yet the masses have not fully taken the path of struggle. Are we to conclude that the game is up, that the steamroller of the crisis is just too powerful, that there’s no going beyond the demoralisation it has brought with it?

Major difficulties

 

It can’t be denied that the working class today is experiencing major difficulties. There are at least four reasons for this.

 

The first, and by far the most crucial, is quite simply that the proletariat is not conscious of itself, that it has lost its ‘class identity’. Following the fall of the Berlin Wall, the 1990s saw a huge propaganda campaign to convince us that we had witnessed the historic failure of communism. The boldest – and most stupid – commentators even announced ‘the end of history’, and the final triumph of peace and democracy. By amalgamating communism and the rotting carcass of the Stalinist monstrosity, the ruling class sought to discredit in advance any perspective aimed at the overthrow of the capitalist system. Not content with trying to wipe out any prospect of revolutionary change, it went on to portray any kind of working class struggle as no more than a ‘cultural memory’, like dinosaur fossils or the cave-paintings of Lascaux.

 

Above all, the bourgeoisie has insisted over and over again that the working class in its classical form has disappeared from the social and political scene[1]. Sociologists, journalists, politicians and tabloid philosophers peddle the idea that social classes have disappeared, lost in the shapeless magma of the ‘middle classes’. The bourgeoisie has always dreamed of a society where the proletarians see themselves as mere ‘citizens’, divided into a whole series of socio-professional categories – white collar, blue collar, employed, casual, unemployed, etc – who are separated by divergent interests and who can only express themselves politically by trooping one by one into the election booths. And it’s true that the barrage about the disappearance of the working class, pumped ceaselessly from books, papers, TV and internet, has served to prevent many workers from seeing themselves as an integral part of the working class, still less as an independent social force.  

 

In the second place, this loss of class identity makes it extremely difficult for the proletariat to affirm its own struggle and its own historical perspective. In a context where the bourgeoisie itself has no perspective on offer except austerity, every man for himself and a scramble to survive, the ruling class takes advantage of the lack of class consciousness by setting the exploited at each others’ throats, by dividing them and blocking any unified response, by pushing them towards despair.

 

The third factor, a consequence of the first two, is that the brutality of the crisis is tending to paralyse many workers, who fear falling into absolute poverty, fear being unable to feed their families and ending up on the street, isolated and exposed to repression. Even if some of them, with their backs to the wall, have been driven to express their anger openly, like the ‘Indignados’ in Spain, they still don’t tend to see themselves as a class in struggle. Despite the relatively massive character of these movements, this limits their capacity to resist the mystifications and traps created by the ruling class, to re-appropriate the experiences of history, to step back and draw lessons with the necessary depth.

 

There is a fourth important reason to explain the current difficulties of the working class to develop its struggle against the system: the whole arsenal of bourgeois control, whether the openly repressive parts, like the police, or more insidious and much more effective ones like the trade unions. On the last point in particular the working class has still not overcome its fears of struggling outside the domination of the unions, even if less and less workers have deep illusions in the capacity of the unions to defend their interests. And this physical containment is reinforced by an ideological containment which has been more or less mastered by the unions, the media, the intellectuals, the left parties, etc.

 

The key to this ‘mind control’ is without doubt the ideology of democracy. Every significant event is exploited to vaunt its benefits. Democracy is presented as the framework where freedom can flower, all opinions can be expressed, and power is legitimised by the people; where everyone can take initiatives, have access to knowledge and culture. In reality, democracy only offers a national framework for the cultivation of the power of an elite, the power of the bourgeoisie. All the rest is illusion, the illusion that by entering the ballot box you are exercising some kind of power, that the voice of the population can be expressed by voting for its ‘representatives’ in parliament. We should not underestimate the weight of this ideology, just like the shock caused by the collapse of the Stalinist regimes at the end of the 80s, which greatly strengthened the hold of democracy.

 

We should also add the influence of religion to this ideological arsenal. It’s not new, since it has accompanied humanity from its first attempts to make sense of the world around it, and has long been used to legitimate all kinds of hierarchical power. But what’s different about today is the role it plays in diverting the thought of a part of the working class confronted with the need to understand a capitalist system in a state of bankruptcy, in particular by explaining the ‘decadence’ of the current order by showing how far it has strayed from the values elaborated thousands of years ago by religion, especially the monotheistic religions. The strength of religious ideology is that it does away with the extreme complexity of the situation. It offers simple answers, easy to follow solutions. In its fundamentalist forms, it only convinces a minority of the proletariat, but it general it feeds like a parasite on the reflection going on in the class.         

 

And a huge potential

The picture we have painted might sound a bit desperate: faced with a bourgeoisie which knows how to use its ideological weapons, with a system which threatens most of the population with poverty, when it’s not already deep inside it, is there still room to think positively, to find some hope? Is there really a social force that can undertake a radical transformation of society, no less? We can answer this question without hesitation: yes! A hundred times yes!

 

It’s not a question of having blind confidence in the working class, a semi-religious faith in the writings of Karl Marx, or of gambling desperately on a revolution. It’s a matter of taking a certain distance, serenely analysing the situation and going beyond the immediate, trying to understand the real meaning of the present struggles of the class and studying in depth the historic role of the proletariat.

 

In our press we have already argued that since 2003 the working class is in a positive dynamic compared to the retreat it went through after the collapse of the eastern bloc. This analysis has been drawn from a number of more or less significant struggles, but all of them have the characteristic of showing that the working class has been tending to rediscover its historic reflexes, like solidarity, collective discussion, or more simply an enthusiastic response to adversity.

 

We saw these elements at work in struggles like the one against the ‘reform’ of pensions in France in 2003 and 2010, in the struggle against the CPE, again in France, in 2006, but also in a less extensive way in the Britain (the wildcats at Heathrow, the Lindsey refineries), the USA (New York subway), Spain (steelworkers of Vigo), in Egypt, Dubai, China, etc. The Indignados and Occupy movements in particular reflected something more general and ambitious than the struggles in the enterprises. What did we see in the Indignados movement? Workers from all horizons, unemployed, part-time, full-time, coming together to take part in a collective experience and to get a better understanding of what’s at stake in this period. We saw people regaining their enthusiasm simply from being able to discuss freely with others. We saw people talking about alternative experiences and considering their gains and limits. We saw people refusing to be no more than victims of a crisis which they didn’t bring about and which they refuse to pay for. We saw people coming together in spontaneous assemblies, adopting forms of expression‍ that favour reflection and the confrontation of ideas, and which put limits on those who come to disturb or sabotage debate. Finally and above all, the Indignados movement gave rise to an internationalist sentiment, an understanding that everywhere in the world we are subjected to the same crisis and that our struggle crosses all frontiers.

 

Certainly we did not hear many talking explicitly about communism, proletarian revolution, working class and bourgeoisie, civil war, etc. But what these movements did show is above all the exceptional creativity of the working class, its capacity to organise itself, which derive from its inalienable character as an independent social force. The conscious reclaiming of these characteristics is still at the end of a long and tortuous road, but it is undeniably in motion. It will inevitably be accompanied by a process of decantation, reflux, partial discouragement. But it will fuel the thinking of minorities who are placed in the avant-garde of the struggle of the working class on a world scale, and whose development has been visible and quantifiable in the last few years.     

 

Finally, even if the difficulties facing the working class are enormous, nothing in the situation permits the conclusion that the game is up, that the working class will no longer have the strength to engage in massive and then revolutionary struggles. On the contrary, the living expressions are multiplying, and by studying what they really are, not on the surface where only their fragility is obvious, but in depth, then the potential, the promise for the future that they contain can be grasped. Despite their sporadic, dispersed, minority character, we should not forget that the main qualities of a revolutionary are patience and confidence in the working class[2]. This patience and this confidence are based on an understanding of what the working class is, historically speaking: the first class which is both exploited and revolutionary, and has the mission of liberating the whole of humanity from the yoke of exploitation. This is a materialist, historical, long-tern vision. It is this vision which enabled us to write, in 2003 when we were drawing up a balance sheet of our 15th international congress:

 

“As Marx and Engels said, ‘it’s not a question of considering what this or that proletarian, or even the proletariat as a whole, takes to be true today, but of considering what the proletariat is and what it will be led to do historically, in conformity with its being’. Such an approach shows us that, faced with the blows of the capitalist crisis, which will give rise to more and more ferocious attacks on the working class, the latter will be forced to react and to develop its struggle”. http://en.internationalism.org/wr/264_15cong.htm

 

GD, 25.10.12  

 


[1]. This is not to say that there have been no important material changes in the shape of the working class in the last few decades, above all through deindustrialisation and the relocation of traditional industries to the ‘peripheries’ of the system, or that these changes have not added to the difficulties of the working class in maintaining its class identity. We will return to this in another article. 

 

[2]. Lenin would have added a sense of humour!

 

 

 


 

 

 

Submitted by WorldRevolution on November 8,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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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노동자는 정말 하나인가?

[성명서] 노동자는 정말 하나인가?

 

 

1998년 7월 파견법이 시행된 이래 수많은 노동자들은 중간 착취와 주기적 해고라는 불안을 강요당해 왔다. 이에 맞서 현대차 비정규직 동지들은 대량해고와 구속, 손배·가압류 등 정권과 자본의 탄압에도 8년째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악순환을 끊어낼 절호의 기회가 눈 앞에 와 있다.

 

그런데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이하 현대차지부)는 12월27일 불법파견 특별교섭 중단과 관련하여 ‘지부장 긴급성명서’를 발표했다.

 

현대차지부는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이하 현대차비지회)에 대해 아래와 같은 말들을 쏟아냈다.

 

‘비지회 조합원들의 교섭 봉쇄로 교섭이 진행되지 못한 것은 유감을 떠나 용납 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비지회의 교섭 봉쇄는 불법파견 정규직화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비정규직 불법파견 정규직화 어떠한 논리로도 가로막아선 안 됩니다!’

 

현대차지부에 묻겠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불법파견으로 인정된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현대차비지회의 요구를 신규채용으로 둔갑시켜 회사와 합의하려는 행위가 노사대타협인가?

 

당신들의 비민주적이고 오만한 태도에 대해 항의하는 현대차비지회에게 교섭결렬의 책임을 떠넘기고 현대차비지회가 정규직화를 막고 있다고 덤터기 씌우는 것이 노동자연대정신인가?

 

지금 울산에서 노동자는 하나가 아니다.

 

대공장정규직노조의 이기주의와 편의주의에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눈과 귀와 손과 발이 모두 철저하게 봉쇄당하고 있다.

 

현대차지부가 현대차비지회의 의견을 무시하고 끝끝내 신규채용에 합의한다면 그것은 지난하고 고단했던 불법파견 투쟁의 성과를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드는 역사적 죄악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정규직노조를 쳐다보면서 웃다가 우는 서커스를 이제 멈추자.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연대정신을 가지고 있는 고용형태, 나이, 성별, 국경을 뛰어넘는 모든 노동자들은 이제 한계에 봉착한 낡은 노동조합운동을 넘어서는 새로운 노동자운동의 실물을 스스로 창출할 시기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전체 노동자계급의 수평적 연대를 실현하고 투쟁의 주체가 모든것을 결정하는 노동자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고민이 이 고통속에서 선명하게 꽃피우기를 희망한다.

 

정규직,비정규직,조합원,비조합원을 넘어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노동자계급의 수평적 연대를 실현하자!

 

투쟁의 주체가 모든것을 결정하고 직접행동하는 노동자민주주의를 실현하자!

 

 

2012년 12월 29일

 

국제코뮤니스트전망 (http://communistleft.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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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부르주아 대선에 맞선 코뮤니스트노동자의 입장 - 변혁모임과 대선 공동기구, 노동자 후보 전술에 대하여

2012 부르주아 대선에 맞선 코뮤니스트노동자의 입장

-변혁모임과 대선 공동기구, 노동자 후보 전술에 대하여

 

국제코뮤니스트전망

 

 

대선 공동기구, 태생적 한계와 선거주의

 

연출이 시작됐다.

 

변혁모임이 전국활동가대회를 통해 ‘노동자대통령 공동선거투쟁본부’를 제안하면서, ‘반자본주의, 반신자유주의, 야권연대 반대, 노동자 민중후보 완주’ 기조로 한 진보좌파·사회주의 그룹(노동전선, 노혁추, 진보신당, 사노위, 좌파노동자)간의 대선 공동기구는 형식적으로 현실화됐다. 물론 진보신당의 선거용 ‘임시(가설)정당’ 정치옵션에 대한 태도를 둘러싸고, 여전히 전망은 불투명하다.

 

그동안 대선을 앞두고 일군의 사회주의 그룹은, 대선 공동기구를 구성하기 전부터, ‘답안’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그 첫 번째가 진보정의당, 통진당과의 분별정립이며, 두 번째는 야권연대 비판, 공동전선 촉구다. 여기에 수식어가 첨가되는데, 다름 아닌 대중투쟁과 선거운동의 결합이다.

 

이 ‘답안’은 처음부터 가짜였다.

 

첫째, 진보신당은 총선정국에서 야권연대에 자신을 넣어주지 않는다고 항의하던 세력이 아닌가. 더구나 진보신당 내 주요 지도부 발언과 상당수 평당원 흐름이 진보정의당 정치 철새인 노회찬, 심상정류와 통합을 원한다는 것은 운동가 사이에서 공공연한 사실이다. 다른 한 축으로 구사회당 계열은 과거 10여 년간 조직 정체성을 선거주의로 일관해왔는데, 이번 대선 과정을 통해 그 체질이 바뀐다? 게다가 97년 대선 시기 국민승리21의 페이퍼 정당과 다를 바 없는 진보신당 가설정당에 대해, 사회주의 그룹은 공개적인 반대조차 밝히지 못하고 있다. 더 나아가, 노혁추는 동상이몽적인 일괄타결(대선 기조, 강령, 투쟁) 운운하면서, 가설정당까지 진지하게 검토할 수 있다고 한다. (2012.10.10. 노혁추 입장) 이쯤 되면 이들이 말하는 노동자 후보 전술은 기껏해야 정치적 수사를 동원한 전형적인 선거주의다.

 

둘째, 과연 야권연대를 반대하는 대중투쟁이 선거공간에서 후보를 내세워 인위적으로 창출할 수 있는가? 이들은 대중투쟁이 일군의 사회주의자들의 필요에 따라 호출하면 되는 요술 방망이쯤으로 생각한다. 야권연대 정권교체 열망 현상은 현 권력에 대한 뿌리 깊은 불만의 결과이자, 동시에 부르주아 선거에 대한 환상의 표현이다. 따라서 야권연대를 근본적으로 반대하기 위해서는 후보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선거 환상 자체에 대한 폭로와 비판을 전개해야 한다.

 

투쟁의 공간에서 대중을 정치의 주체로 세우고 자기조직화를 통해 투쟁을 발전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수많은 실패 속에서 계급이 단련되고 스스로 전망을 가질때 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비정규, 미조직 노동자 투쟁에서의 자기조직화와 직접정치는 더욱 어렵다. 그래서 정치조직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정치투쟁과 강령실천은 소홀히 하면서 손쉬운 선거개입으로 조직화를 이루려는 세력들이 많다. 선거철만 되면 바빠지고 활동력이 높아지는 정치조직이 여기에 속한다. 투쟁은 회피한 채 선거에서는 최대의 능력을 발휘하는 노동자 조직도 여기에 해당한다. 투쟁을 조직하는 것은 어렵지만, 조직동원과 자금모금으로 표현되는 선거의 조직은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가보안법의 탄압에도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사회주의 정치활동이 본격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사민주의자들도 상당수 수용하는 경제 요구를 노동자계급의 행동강령이라고 내걸고, 그들과 기꺼이 연합하면서 부르주아 정치 공간에서 벌이는 선거개입이야말로 사회주의운동을 급격하게 퇴보시키는 정치적 타락행위이다.

 

 

변혁모임, 계급정당 건설?

 

그간 진행된 변혁모임을 보면, 통진당에 대한 반정립 슬로건만 있을 뿐, 노동자계급정당 ‘실체’ 논의는 사라지고, 보통명사인 계급정당만 외치고 있다. 자신의 전략적 과제와 정치적 전망인 당에 대한 최소한의 강령적 원칙내용은 토론은 고사하고, 선거참여를 해야 한다는 선당위론만이 팽배하다. 그리고 그들은 선거 절차와 기술적인 문제로 이동하면서, 대선후보군을 확정했다. 노동자계급정당의 그간의 정치적 성과와 정치적 강령을 전체 계급에 제출하는 문제의식은 실종되고, 대선후보군 상층 지도부의 ‘순교자적’ 투쟁만이 요구된다. 내용 없는 현장변혁, 계급정당 선거를 역순 한 일정 박기 투쟁, 선거용 희망버스를 호소한다. 결국, 선거정치 희망버스에 동원되는 대중은 자신의 현장 정파적 이해에 맞는 조합원으로 한정될 것이다.

변혁모임 내부에는 당에 대한 다양한 이질적 흐름이 존재하는데,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차이조차 스스로 밝히지 않은 채, 뭉뚱그려 노동자후보만을 얘기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대선 통일전선 이상을 뛰어넘기 어렵다.

 

강령에 입각하지 않고 우파에 대한 상대적 반정립으로 자신들을 규정한 좌파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활동가 당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계급정치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정당의 이름으로 조합주의를 보호해줄 뿐이다. 이들이 활동가 당을 만들겠다고 하는 순간, 강령에 입각한 실천을 통해 노동조합 배후정치와 확실한 단절을 이뤄내겠다는 선언은 공문구가 되어 버렸다. 혁명당의 역할은 공산주의 정치와 노동자계급을 직접 만나게 하는 것이지, 중간에서 활동가(조직)를 통해 배후조종하거나 대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의 계급투쟁과 공산주의 혁명의 최종목표 사이에 어떠한 중간단계나 대리과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노동자계급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야만 하며, 그 목표에 이르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의식적인 투쟁에 달려있다.

 

혁명당 건설은 철저한 강령 원칙과 실천 검증에 따른 혁명적 공산주의 세력의 재구성을 통해,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새로운 주체들과 공산주의 운동이 계급투쟁 속에서 직접 만나, 계급 안에서 혁명적 주체를 세우고 자기 조직화를 이루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 그런데 운동을 과거로 돌리고 있는 사노위와 노혁추 등은 강령적 실천과 혁명적 주체의 자기 조직화라는 본질을 망각한 채, 조급한 정세대응으로 일관하거나, 아니면 자기 조직 유지와 양적 확산만을 위해 강령원칙을 폐기하면서 당 건설 운동을 후퇴시켜왔다. 이들은 진공상태에서 당 건설을 할 수 없다면서, 변혁모임의 이른바 노동자계급정당 흐름에 영합하고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착취체제가 지속하는 한 계급투쟁에 진공상태는 없으며, 오히려 계급투쟁과 혁명적 계급의식을 담아낼 그릇이 부족할 뿐이다. 계급투쟁과 계급의식의 발전 없이 혁명당 건설은 불가능하다. 계급투쟁의 깊이는 당 건설의 주체를 담보해주고, 계급의식의 발전은 강령으로 표현된다. 당 건설의 주체와 강령을 포기한 당 건설이야말로 진공상태의 당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전술 문제에 대해

 

노동조합(민주노총)이 정치방침으로 결정했던 노동자 정치세력화, 진보정당 운동은 파탄 났다. 이러한 결과가 초래한 근본적 원인은 노동자 해방으로서 이념 부재, 소위 80년대 소부르주아 이념인 NL(민족해방) 노선 추구, 개혁적 사민주의와 선거·의회를 주축으로 한 활동이었다. 따라서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논의는 기존의 구도를 반복한다는 점에서 공허한 주장이다. 결국, 새로운 조직적 대안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이와 관련한 우리의 입장은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을 제안하며>를 참조하기 바란다.)

 

몇 년 전부터, 소위 사회주의자 내부에서는 전술적 문제를 놓고 대립하기 시작했는데, 이 전술적 운용의 실천적인 대립은 선거 시기 진보신당과 같은 의회주의 좌파를 포함하는 공동전선(통일전선) 문제였다.

 

우리는 여기서 ‘원칙 중심의 전술’과 ‘기회주의적 전술’을 구분한다. 한마디로 기회주의 전술의 특징은 단기 목표의 강조, 현재 시점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고려하지 않는다. 기회주의의 모든 전술은, 미래의 격동을 준비하면서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발전시키는 대신, 주로 특정 시기만을 위한 정파적 이해와 실천 운동 역량에만 관심을 둔다. 반대로 원칙중심의 전술은 혁명 운동 발전의 총체적 과정을 염두에 두면서, 운동의 근본적 임무와 계급투쟁의 방향, 미래를 향한 장기적 실천을 전개한다.

 

2008년 이후 현재까지 정세를 관통하는 핵심은 자본주의 쇠퇴와 위기, 새롭게 올라오는 대중행동 투쟁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사민주의 세력은 자본주의 재구축을 위해 나서고 있다. 한국 또한 마찬가지다. 이들은 자본주의 ‘생산의 문제’는 도외시한 채 오직 ‘분배 정의’만을 외치고 있다. 노동자계급이 생산을 직접 통제해야 한다는 어떠한 언급도 없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역사적인 파산이 명백해졌고, 공산주의 사회의 전망은 노동자들의 투쟁에 점점 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제 공산주의라는 대안 사회가 인류의 단순한 희망과 꿈이 아니라 역사발전의 물질적 필요성이며, 우리가 실현해야 할 역사적 과제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 세계적인 계급투쟁은 다시 한번 혁명의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새롭게 분출되는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이 보여준 용기와 결단, 그리고 깊은 연대의식은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세계가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공산주의는 실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부르주아 선거판에 ‘진보정당’ ‘노동자 후보’의 이름으로 끼어들어 노동계급을 배신하고 부르주아의 한 분파로 행세하는 세력들이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이보다 왼편에는 노동자정치를 주장하면서도 부르주아 정치를 흉내 내는 세력들이 소수로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노동자정치를 노동자계급 고유의 영역인 투쟁의 장에서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선거공간에서 할 수 있다면서 그 속에서 선전선동과 조직화를 꿈꾸며 선거운동을 선거투쟁으로 미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 계급을 위한 어떠한 성과도 선거나 그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없다.

 

현시기 대선 정국을 둘러싼 사민주의와 동거, 의회 선거정치 몰입은 계급적 대중행동을 저해할 뿐이다. 대중에게 선거는 자신의 삶과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선택지(후보) 중 하나를 고르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선거 결과가 마치 계급 대중 의지가 실제 실현되는 것 같은 환상을 만든다. 이것이 부르주아 선거제도의 핵심 기제가 아니었던가!

 

그동안 선거에 개입했던 노동자정당, 진보정당들은 완전한 의회주의 정당으로 자리 잡았고, 이들을 지지했던 민주노총의 정치는 파산상태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에 대한 수많은 배신과 운동권 출세주의를 양산했다. 통진당, 진보정의당류와 진보신당의 차이는 백지 한 장 차이다. 또한, 이들과의 정치적 공동전선이나 입당전술을 사용하는 자칭 사회주의 세력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아무도 반성하지 않는다.

 

말로는 선거주의를 비판하면서 자신들이 참여하는 선거는 훌륭한 전술로 둔갑한다. 선거에 휩쓸리지 않고 대중투쟁을 중심으로 선거 이후를 준비하는 운동의 흐름은 아직도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선거주의자들이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건강한 노동자와 혁명세력을 대기주의, 기권주의로 몰아가면서 모든 운동을 대선 블랙홀에 밀어 넣으려 하고 있다. 이것이 운동마저 삼키는 부르주아 선거다. 부르주아 선거의 본질은 지배계급의 위기를 평화롭게 넘기는 것이며, 격화되는 대중 투쟁을 잠재우고 대중의 불만표출을 잠시 멈추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선거에 휩쓸리지 말고 투쟁의 동력을 유지해 선거 이후 더욱 강력한 투쟁으로 지배계급에 맞서야 한다.

 

선거는 짧다. 두 개의 노선은 대립하고 있다. 사민주의와 동거, 선거정치 몰입이냐, 계급적 대중행동 투쟁 촉구냐?

 

이제라도 부르주아 잔치판에서 뛰쳐나와 노동자계급의 자리에서 자본주의가 인류 참상의 원인이고, 이를 넘어서는 공산주의 사회만이 대안이라고 대중적으로 공개적으로 말하고 싸워야 한다. 고통당하고 억압받는 노동계급과 함께 투쟁하고 그들을 정치의 주체로 내세워야 한다.

 

선거유세용 집회나 이벤트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대중총회를 개최하자. 대중총회, 대중집회를 통해 노동자들이 정치적 의사표현과 투쟁의지를 제한 없이 표출하는 ‘수평적 노동자 직접행동’, ‘노동자 직접정치’를 실현하자!

 

선거시기만큼이라도 모든 것에서 소외되었던 비정규 중소 영세노동자, 장애인, 소수자, 빈민, 실업자, 이주노동자 등 미조직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에 집중하자. 노동자투쟁과 미조직 프롤레타리아트들의 직접행동이 결합하는 ‘아래로부터의 프롤레타리아 행동(연대)’을 실현하자!

 

선거에 참여하는 대선투쟁이 아니라 부르주아 대선 자체에 맞선 분노한 노동자들의 직접행동을 조직하자. 대선자금을 모금하지 말고 직접행동의 장에서 노동자 대중행동 기금을 조직하여 선거 이후의 투쟁을 준비하자!

 

새로운 지배자의 당선을 발표하는 날, 생산의 주인인 노동자들은 자본가 지배를 거부하고 자본가 권력과의 전면전을 선포하자!

 

자본가대통령 취임식 날,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투쟁과 권력의 주체임을 선언하는 ‘노동자평의회’를 향한 노동자계급총회를 개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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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정치의 실종

사회주의 정치의 실종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대통령 선거를 향한 부르주아 선거판이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진보·보수를 망라하고 지면과 화면을 도배하고 해외 언론도 한국 정치에 호들갑스러운 관심을 보인다. 모든 모임의 중심 화두는 대선 후보 사이의 경쟁과 찬반 토론이다. 매년 5년마다 부는‘선거 중독증’의 유난스러운 모습이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월가점령 1년을 기념하는 대중들의 직접행동이 벌어지고 전 세계 노동자들의 아래로부터 투쟁은 지속되고 확산되고 있다. 무엇이 진정으로 새로운 세상을 바꾸는가? 그것은 부르주아 선거가 아니라 노동대중의 직접행동임을 역사가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인물의 선택이 아니라, 세력의 대체가 필요하다. 혁명적 탈바꿈.

 

나는 1992년 민중대통령 선거대책위원장이었다. 총선과 대선이 한 해에 치러지는 20년 전 일이다. 군사정권이후 이른바 3김이 각축하는 판에 진정한 제3세력으로 사회주의 강령과 투쟁으로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닌 소련과 동구 제국의 몰락을 맑스주의와 사회주의 패배로 몰아세운 전 세계 부르주아지와 사이비 진보세력의 혼란에 맞서, 사회주의의 기치를 다시 들고 그 대리인인 부르주아 정치에 맞서자는 뜻이었다. 그 이후 세 번의 대선이 있었다. 김대중, 노무현의 이른바 민주· 참여 정권 그리고 이명박의 보수 정권을 지나, 지금 부르주아 세력들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선거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어쩌자는 것인가?

 

5년 전 우리는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아 경제를 살리겠다는 포퓰리즘에 현혹돼서 온갖 정치· 경제·이데올로기적 억압과 고통 속에 살아왔다. 지배세력의 세련된 구호와 대중조작에 영합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환상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런데 또 다시 정치의 주체로 나서지 못하고, 그들 세력에게 맞장구치며 환호할 것인가? 정말 눈을 부릅뜨고 냉철하게 따져보자.

박근혜 세력은 누구인가? 대자본의 세력이며 경제성장과 반공이데올로기로 무참히 민주세력을 탄압하고 그야말로 40년을 잃어버리게 만든 세력이다. 복지와 통합으로 포장된 현대판 자본의 이데올로기는 세련된 유신과 파시즘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면 문재인 세력은 누구인가? 대자본과 중소자본의 연합세력이며 정치·이데올로기 면에서 민주세력으로 스스로를 규정한다. 이명박 세력이 김대중·노무현 계보에 10년을 잃어버렸다면, 노동자세력은 이른바 민주세력 때문에 노동자 정치를 10년 잃어버렸다. 그 10년 동안 얼마나 가혹한 노동자 탄압과 실질적 민주주의 후퇴가 있었는지를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박근혜 세력에 대한 민주· 반민주 대립구도로 세상을 바꿀 수 없음을 인식하고, 우리가 진정으로 잃어버린 10년을 다시 찾기 위해 어떻게 환골탈태할지를 노동자 앞에 밝혀야 한다.

그러면 안철수 세력은 누구인가? 중소자본의 세력이며 부르주아 양당 정치를 대신할 제3의 시민정치세력으로 스스로 포장하고 있다. 그러나 부르주아 정치의 한 종류일 뿐이다. 이념을 초월한 중도정치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 주장 자체가 제3의 물결과 같은 현대판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이며, 다른 형태의 부르주아 정치를 열망하는 대중 정서의 반영일 뿐이다.

 

이 모두를 대체할 정치와 세력은 사회주의 정치와 노동자 계급이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자본주의가 인류 참상의 원인이고 이를 넘어서는 자유로운 개인이 연합하는 사회(공산주의)라고 대중적으로 공개적으로 말하고 싸우고 있는가? 고통당하고 억압받는 노동계급과 함께 투쟁하고 그들을 정치의 주체로 내세우고 있는가? 부르주아 정치판에 ‘진보’ 정당의 이름으로 끼어들어 노동계급을 배신하고 부르주아의 한 분파로 행세했음을 반성하고 있는가? 일부에서 ‘노동자 민중후보’ 를 내세우자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지금이 후보전술을 쓸 때인가? 제발 좀 반성하자. 부르주아 정치를 흉내 내지 말자. 선거가 아닌 대중의 직접행동으로 맞서자.

 

노동자 대중의 열망과 사회주의 정치의 무능력의 틈을 파고드는 것이 파시즘이다. 사회주의(공산주의) 정치의 진정한 복원만이 파시즘을 이기는 길이다.

 

<경향신문 기고>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10152102075&code=9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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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을 출범하면서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을 출범하면서

 

 

국제코뮤니스트 전망

 

 

1. 낡은 것과 새로운 것

 

더 이상‘통합진보당’,‘진보정치’,‘좌파정치’운운하면서 고리타분한 대립을 논하지 말자. 가까이에서 보든, 멀리에서 보든, 우리 주변에 펼쳐진‘노동자 투쟁 정치’와 미디어에 비친‘진보정치’는 그 어느 것도 공통점이 없다. 정확히 말해, 96-7년 노동자 총파업 투쟁 이후,‘민주노총 정치방침’으로 형성된‘진보정당(정치)’시대는 끝이 났다. 그러나 여전히‘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말하면서,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진보정치가 노동자계급의 발목을 잡고 있다. 낡은 것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물론 지금 필요한 것은, 진보정당에 제물을 올리고 축문을 읽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렇다고 야권연대 진보정당을 비판하면서, 이른바‘지도력’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공동전선(통일전선)을 통한 ‘노동자독자정당’이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정치노선적으로 실체도 불분명한 민족해방 좌파, 중앙파, 현장파를 포함한 공동전선 당은 무엇보다, 한국 프롤레타리아 정치운동의 위기를‘계급정치의 부활’이 아닌‘지도력의 정치’에서 찾는 점에서 노동자계급에게 치명적이다. 또한 통일전선 당은 그간에 진행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당 건설 공동 활동 경험과 노력을 폐기처분한다. 대선 정국과 맞물려 진행되는 공동전선 당 전략은 기껏해야 ‘계급성과 혁명성도 애매한 진보좌파연합’으로 수렴될 것이다.

계급투쟁의 무기력함에서 오는 비관주의와 조급성, 여러 차례 패배의 자책감 등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미래를 내다보고 활동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보다 자본주의 위기가 눈앞에 진행되고 있으며, 국제적인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부흥을 목도하고 있다. 파업과 거리투쟁을 통해서 동지를 찾아내고, 자본과 노동의 적대적 투쟁을 통해서 새롭게 올라오는 대중의 잠재적 힘을 주목해야 한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다시금 혁명운동의 정치원칙을 강인하게 사고해야 할 때다.

여기서 우리는 세계혁명운동의 역사와 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평가와 원칙을 되새기려 한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무엇을 반대하는 존재’가 아니라, 한국에서‘노동자국제주의’관점에서 코뮤니스트 운동을 생성해나가려는 주체로서 자신을 정립하려고 한다.

첫째, 8-90년대, 아니 아직도, 여전히 한국 운동사회의 이론적 전통으로서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이른바 ‘맑스-레닌주의’ (혁명적 맑스주의와 구분되는 스탈린주의에 입각한 공식 전통)에 근거한 혁명이론과 실천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전제로 한다.

한국의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민족해방 해결을 주요 실천투쟁으로 전개한 다수파인 NL운동(스탈린주의 변종)은 한국 자본주의 지배계급으로 편성되거나 개혁적 부르주아지와의 통일전선 형성으로 귀결됐다. 또한 NL노선과 대립했던 이른바 80~90년대의 ND, PD운동의 이론적 뿌리가 사실은 소부르주아 민족경제론, 국민경제에 근거한, 소련 관변학자들의 반독점민주변혁론 -> (관제고지 선점으로서) 재벌 국유화-> 권력장악 -> (일국)사회주의 노선이었다고 성격을 규정짓는다.

 

둘째, 1917년에서 1920년대는 전 세계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 봉기 상황이었으며, 1917년 러시아혁명은 세계혁명의 그 첫 단추로, 러시아 혁명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노동자 봉기시도가 어떻게 좌절됐는가가 혁명적 맑스주의 실천운동의 복원과 연관되어 있다. 이 점은‘사회주의 조국 소련을 방어하자’는 일국사회주의 노선의 실천적 결과로서 소련의 대외협력기구로 전락한 코민테른에 대한 평가이기도하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세계 프롤레타리아 투쟁과 더 이상 연결되지 않은 코민테른은 공산주의 좌파, 혁명운동 세력을 배제하고, 국제주의를 포기한다. 독일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의 등장과 함께 반혁명의 시기가 열리고,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는 결국 패배했다.

 

한국사회의 이론적 실천적 풍토에서, 레닌의『좌익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에서 일방적으로 혹평된 좌익공산주의 운동은, 역사적으로 혁명적, 비타협적 맑스주의 이론과 실천운동으로 재조명되어야 한다.

더욱, 발본적으로, 러시아혁명에서 ①‘프롤레타리아 독재와 국가자본주의 도입’을 통한 사회주의 건설의 모순 (레닌) ② 혁명의 타락으로서 만들어진 사회는 (국가) 자본주의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이른바 모종의 사회주의, 타락한 노동자 국가라는 규정에 대한 비판을 분명히 한다. 또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관료주의를 어떻게 낳았는가? 노동자평의회는 어떻게 무너졌는가, 그 과정에 볼셰비키 당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가 이론적으로 검토, 직시되어야 한다.

따라서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사회주의 활동가를 짓누르고 압박하는 이른바 보편적‘혁명 모델’로서 러시아 혁명 상황의 일반화는 분명히 지양되어야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실천과 사상 이론에 대한 논쟁을 시도하고 모색해야 한다.

 

셋째, 현재 통합된 세계자본주의 체제, 자본주의 쇠퇴의 경제위기 정세와 점증하는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 투쟁, 국제주의에 입각한 세계혁명을 향한 혁명적 실천과 이론적 과제를 한국사회에서 혁명적 꼬뮤니즘 운동으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노동자 자기해방으로서의 사회주의’라는 혁명적 맑스주의 정치실천과 이론 복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운동과 코뮤니스트 정치조직

 

첫째, 자본주의 쇠퇴의 새로운 국면(대공황)은, 68혁명 이후 부활하기 시작한 세계적인 계급투쟁의 파고를 2008년 이후 혁명의 현실성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전쟁과 야만이냐, 혁명과 꼬뮤니즘이냐가 여전히 유효한 시대적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둘째, 한국에서의 1950년~1990년대의 반혁명, 반공이데올로기의 길이와 깊이는 냉전체제 해체와 젊은 세대의 등장으로 얕아지고 있다. 대신 민족주의, 애국주의 등 파시즘의 요소는 언제든 창궐이 가능하다. 이렇듯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반공과 극단적 스탈린주의에 물들지 않은 새로운 세대들과 프롤레타리아 계급내의 젊은 저항세력과 코뮤니스트의 소생은 혁명운동의 새로운 조건이다.

한편, 1987년 이후 성장한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민주노조운동과 1990년 후반 등장한 사민주의(진보정당)운동은 퇴보의 길을 걷다가, 현재는 총체적 파산 상태를 맞이하고 있다. 다른 한편 이러한 양 운동의 흐름을 거부하는 노동자들의 전반적 불신 현상, 새로운 운동에 대한 요구, 그리고 기성운동에서 소외된 비정규노동자, 실업자, 빈민, 장애인, 소수자들은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운동 출현의 기반이다.

 

셋째, 자본주의 경제위기로 인한 불안정노동의 증대와 한국에서의 1998년 이후 노동자운동의 패배의 연속은, 노동자 조직화의 기나긴 정체현상과 계급운동의 자신감 결여를 초래했다. 하지만 이것은 계급투쟁의 퇴조 현상이 아니라, 낡은 운동의 자연스러운 몰락과정이자 새로운 계급투쟁의 부활이 예열되는 과정이다. 또한 계급투쟁의 최종목표를 분명히 하면서 오랜 기간 계급 안에서 튼튼히 뿌리내린 혁명적 정치(조직)운동과 아래로부터의 투쟁의지가 직접 관철되는 평의회적 계급조직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위의 모든 상황은 조합주의, 사민주의 등 제도권운동과 지역/국내운동에 갇혀있는 노동자 정치운동에 새로운 조건의 창출과 전망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이 쇠락하는 낡은 운동과 철저히 단절하고, 아래로부터의 계급운동을 촉진하고 국제주의적 전망을 제시하며, 혁명의 현실성과 실현가능한 공산주의의 정치적 목표를 분명히 하는 조직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 정세는 이러한 코뮤니스트 노동자 정치조직의 출현과 새로운 프롤레타리아트 운동을 공세적으로 펼쳐나갈 것을 모두에게 요구하고 있다.

 

3. 사회주의 정치 운동 평가와 전망

 

1992년부터 자의적이거나 타의적이거나 공개영역으로 나온 사회주의 서클들은 선거주의와 의회주의로 경도되면서 합법·개량주의로 나아갔다. 특히 1997년은 양날개론으로 표현되는 민주노총의 건설과 그에 기반한 민주노동당의 건설로 혁명적 사회주의의 비공개영역과 적대적으로 분리되었다. 2002년의 대선은 이러한 관계설정을 마무리하는 과정이었다. 그 당시 「노동자의 힘」과「사회당」은 선거전술에 집착하여 혁명정당 건설을 통한 혁명주의의 복원으로부터 이탈했다. 혁명적 사회주의 서클과 함께 혁명당을 건설하려는 노력은 무산되었다.

 

2003년 「사회주의 정치연합」은 중도주의와 선을 긋고 혁명적 사회주의 세력의 연대와 단결을 위한 매개로서의 역할을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노력의 일환으로 2005년 7월 「혁명적 맑스주의자 모임」의 제안이 있었다. 그 제안은 다음의 몇 가지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첫째, 자본주의의 표면적 사멸이라는 역사유물론에 입각하여 비맑스주의의 역사적 오류를 비판·극복해야 한다는 점,

둘째, 자본주의의 객관적 구조와 혁명적 주체의 변증법적 결합을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변증법적 유물론에 입각하여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실천을 통한 진정한 계급혁명을 이룩해야 할 역사적 과제를 인식했다는 점,

셋째, 과잉생산이라는 자본주의의 축적위기가 자본의 전략으로 모면될 수 없고 전쟁과 파시즘이라는 야만에의 회귀로 나아가, 결국 인류의 파멸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인식했다는 점,

넷째, 1920년대 초반의 세계 혁명의 실패, 스탈린주의의 등장은 반혁명의 역사적 반동으로 나아갔고, 이러한 역사적 퇴행에 도움을 주었던 사회민주주의, 무정부주의, 민족주의는 자본주의와 부르주아지의 유지·강화를 보완하는 반혁명적 이데올로기로 기능했고, 혁명세력의 복원을 가로막았다는 점,

다섯째, 지금까지의 인터내셔널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진정한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건설을 목표로 한 각각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당 건설의 과제가 우리에게 놓여 있으며,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권력기관인 노동자평의회와 변증법적 결합으로 혁명을 실천해야 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얻었다는 점이다.

 

그 모임의 제안은 세계혁명을 향한 세계 혁명적 맑스주의(사회주의) 진영의 국제주의 실현을 위한, 세계 코뮤니스트 연대를 위한 것이며, 그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의 혁명적 맑스주의자(사회주의자)들도 함께 하면서, 우리의 혁명적 운동을 복원해내고 고립·분산되어 각개약진하고 고군분투해왔던 세력들이 새로운 각오로 힘차게 연대 전진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을 하자는 취지였다. 2년간에 걸친 진지하고 열띤 토론을 기반으로 이 모임은 「사회주의 노동자 연합」을 공개적으로 제안하고 동의한 주체들을 중심으로 2008년 2월 출범하게 된다.

혁명적 사회주의와 혁명당 건설을 공개적으로, 대중적으로 선언하고 계급투쟁을 통해 실현하겠다는 이 흐름은 새로운 시도로 한국의 공산주의 운동사에서 획기적인 것이었다. 물론 국가보안법상의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재판 투쟁을 통한 사상 투쟁과 줄기찬 혁명주의 선전·선동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사노련」은 서클연합으로 출범했기 때문에, 결합하지 못한 서클과 혁명주의자, 그리고 중도주의 세력 속의 혁명인자들이 다시 한 번 공동실천을 통해 한 걸음 전진하자는 「사노위」 결성제안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으며, 1년 반 동안의 공동실천은 결국 강령, 조직, 전술의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며 종지부를 찍는다.

「사노위」와 분화된 세력이 「노혁추」와 「노동해방」으로 각개약진하고 「사노련」의 잔존그룹은 「노건투」로 각각 실천하게 된 것은 혁명 세력의 분열이 아니라, 오히려 독자적인 실천을 하면서 계급으로부터 검증받는 과정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2012년 총선 선거전술 문제로, 「노혁추」에서 좌익공산주의 세력이 분화한 것은,‘종파적 철수’가 아니라‘정치적 차이’의 결과였다. 그 차이는 혁명당 건설을 둘러싼 정치활동의 전망에 있었다. 이후「노혁추」세력은 스탈린주의, 사회민주주의, 조합주의, 중도주의를 포괄한 ‘공동전선 당’을 제안한다.

 

우리는 혁명주의 세력의 노선 투쟁을 통한 경쟁과 연대·단결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동안 혁명세력이 반혁명적 스탈린주의 세력이나 민족주의 세력, 각종 기회주의 세력과 대적 전선을 공고히 하는데 주력해 온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독자적인 사상노선으로 논쟁하고 계급으로부터 검증을 통해 신뢰를 획득하는 단계로 나아가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러한 노선투쟁의 역사가 이미 유럽과 러시아 등지에서 100년 전부터 있었음을 상기하고 있다. 세계 혁명당 건설을 목표로 노동자 국제주의를 실현하려는 현 단계 한국의 혁명적 맑스주의(사회주의) 세력은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맑스주의 사상과 실천의 원칙을 분명하게 내세우고 노선투쟁을 해야 하고, 진정한 의미의 정치 원칙·강령의 통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공산주의 운동의 역사에서 「공산주의 좌파」의 원칙과 투쟁을 계승· 복원하고, 다른 혁명주의자들과 논쟁하고 토론하며 다시 연대하고 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바로 여기가 로두스다.

 

4. 코뮤니스트(공산주의자)의 역할에 대해

 

첫째, 여전히 노동자계급을 지배하는 여러 분열적이고 반혁명적 경향의 민족주의와 개량주의의 영향력으로부터 노동자운동이 근본적으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현실의 계급투쟁 속에서 혁명적 계급의식을 획득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 과정은 공산주의 좌파 운동의 전통을 계승 방어하면서 현실의 계급투쟁에 끝까지 전략적으로 함께하는 정치조직을 필요로 한다. 여기서 현실의 계급투쟁과 혁명적 사회주의를 직접 만나게 하는 정치활동이 코뮤니스트 조직의 일차 역할이다.

 

둘째, 정세측면에서 현 자본주의 쇠퇴기, 경제위기 상황에서 발생한 세계적인 계급투쟁의 물결에 세계혁명운동의 일부로써 조응하고, 와일드 캣 투쟁과 점령운동으로 표현되는 아래로부터의 프롤레타리아트 운동에, 코뮤니스트 조직은‘노동자계급 스스로의 과업과 자기해방’이라는 명확한 공산주의 전망을 가지고 개입해야 한다.

 

셋째, 과거 <사노련-사노위-노혁추>의 당 건설운동 과정을 철저히 평가하고, 그간의 성과이자 한계였던 '철저한 강령 원칙과 실천 검증'에 따른 혁명적 공산주의 세력의 재구성을 지속해나가야 한다. 그것은 혁명(당)조직이 당면한 계급투쟁에 개입함에 있어‘강령적 실천’이라는 장기적 본질과 혁명적 주체의 자기조직화라는 전략적 원칙을, 조급한 정세전술대응으로 놓쳐버리는 당면주의 경향을 극복해야 한다. 또한 조직 유지와 양적 확산만을 위해 강령원칙을 폐기하거나, 당면의 경제투쟁에만 몰입하는 노동자주의와 전투적 조합주의 모두를 극복하고,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을 건설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신들이‘가장 올바르다’거나‘세계에서 유일하다’라는 종파주의는 자신의 입장의 타당성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증거이다. 공산주의자는 결코‘진리의 담지자’가 아니기 때문에 토론과 사상투쟁에 있어 모든 것을 열어놓아야 한다. 이것은 조직 안과 밖으로부터 모든 비판적이고 건설적인 공헌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코뮤니스트 노동자들의 집단적이고 집합적인 정치적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다.

 

5.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을 제안하면서

 

첫째, 제 정치세력에 대한 평가와 진보좌파(정당)운동에 대한 평가와 비판을 전제로 한다.

 

둘째, 현 자본주의 체제는 자본주의 쇠퇴기, 자본주의 공황의 시기임을 인식하고, 계급투쟁의 부활, 낡은 운동(사민주의, 조합주의, 스탈린주의)의 쇠퇴와 새로운 프롤레타리아운동(와일드 캣, 점령 운동)이 소생하는 시기임에 주목한다.

 

셋째, 현 정세는 프롤레타리아(대중)투쟁과 혁명적 공산주의 정치가 직접 만나야하는 시기다. 모든 문제가 ‘당 지도력 위기’로 환원되는, 따라서 절대적인‘당 지도력’을 우선시 하는 것은, 우리의 목적이 될 수 없다. 노동자계급의 조직과 계급의식 형성,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조직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다.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은 다가오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정치를 역사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넷째, 위와 같은 정세인식과 국제주의적인‘세계혁명’관점에서,‘혁명은 지속된다.’는 국제적 계급투쟁의 흐름에 복무하기 위해 우리는 아래와 같이‘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을 제안한다.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의 위상에 대해

 

1)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은 노동자평의회의 국제적 권력을 향한 운동을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혁명(당)조직, 코뮤니스트 노동자조직 건설을 목표로 한다.

2) 인터내셔널 건설을 향한 혁명세력의 조직화를 위해 혁명 강령 건설과 혁명적 공산주의진영과의 국제적 연대를 실현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은 모든 상황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 안에서 국제주의 원칙을 고수하고 세계혁명의 전망을 제시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3) 자본주의 사회 관계 폐지(임금노동, 상품생산, 화폐)를 위해, 현실 계급투쟁에 적극 참여하여 계급투쟁의 확산과 계급의식의 발전에 공헌해야 한다. 또한 새로운 아래로부터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촉진하고, 프롤레타리아트 자기조직화를 실현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4) 여성, 가부장제, 소수자, 장애인, 생태문제에 대하여 철저하게 맑스주의 관점에 입각하여 인간해방을 향하는 정치운동 조직이어야 한다.

 

5) 부르주아 정치에 참여하면서 자본의 좌익에 위치하는 정치적 반정립 운동이 아닌, 부르주아 정치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이들의 조력자들에 대한 근본적인 사상투쟁을 통해 노동자운동이 부르주아 영향으로부터의 독립, 자기조직화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6.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제안하며

 

지난 수십 년간 사민주의(의회주의), 민족주의, 조합주의 등 노동자계급 내부의 장애물들은 노동자계급 고유의 무기인 단결력과 전투성, 그리고 계급투쟁에서의 창발성을 무기력화시켰다. 자본의 공격은 강화되는 반면 노동자계급의 저항과 투쟁은 부르주아 국가기구와 자본가, 그리고 계급 내부의 적들에 의해 여전히 여러 장벽에 막혀있다. 따라서 자본주의 착취에 대항하여 혁명적으로 투쟁하는 노동자계급의 모범이 없이 그 어떤 출구도 만들어낼 수 없다. 최근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 직접행동은 자본주의 위기 상황에서 생활수준의 급격한 하락과 생존의 위협을 받는 수많은 프롤레타리아들과 노동자계급의 오래된 세대들을 자신의 주변으로 끌어 모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낡은 조합주의, 의회주의 세력 운동의 쇠락 속에서도 새롭게 소생하는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전망하면서,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새로운 분출을 촉진하는 아래로부터 실천을 제안한다.

 

1) 제도권 노조운동을 넘어서는 자립적 노동자운동이 현실화되어야 한다. 이것은 기존의 노조/현장운동을 넘어서는 새로운 노동자운동일 수밖에 없다. 자본이 만들어내고 관료화된 노조운동을 넘어서야 한다. 정규직. 비정규직, 조합원. 비조합원을 구분치 않고, 투쟁하는 노동자 모두를 평의회적으로 포괄하는‘수평적 노동자 직접행동’, 노동자투쟁과 실업자, 빈민, 청년, 소수자들의 직접행동이 결합하는‘아래로부터의 프롤레타리아 행동(연대)’을 제안한다.

 

2)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조직형식은 내용과 형식이 통일되는 노동자민주주의와 직접행동에 기반해야 한다. 이것은 투쟁하는 주체들에 의해 직접 선출/소환 가능한 대중총회, 파업/투쟁위원회, 노동자평의회의 형식과 같아야 하며, 노동자민주주의의 완전한 실현과 노동자국제주의에 기반한 직접행동만이 계급투쟁의 확산과 자기조직화를 보장해줄 수 있다.

 

3) 현재의 자본주의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분출하는 새로운 노동자운동은 운동의 주체와 최종목표가 불분명한 반자본주의 운동이 아니라, 노동자계급 자기해방의 최종목표를 분명히 밝혀주는 공산주의를 전망하는 운동이어야 한다. 이 과정은 지난한 계급투쟁의 과정 속에서 주체들이 혁명적 계급의식의 획득을 획득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단련되며 이 과정은 매우 길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노동자투쟁과 계급의식의 꽁무니를 쫒아 다니는 사민주의, 조합주의, 중도주의 정치세력들이 아닌, 계급투쟁의 최종목표를 전망하는 코뮤니스트 정치와 아래로부터의 프롤레타리아 직접행동이 만나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계급의식의 발전과 노동자계급이 자신들의 정치적 전망을 설정하고 스스로를 혁명적으로 무장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코뮤니스트 정치와 계급투쟁이 직접 만나는 일이다. 아래로부터의 프롤레타리아 직접행동의 분출과 코뮤니스트 노동자들의 집합적 존재여부가 중요하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촉진하고 실천 속에서 준비하고 장기적인 전망을 세워, 새로운 주체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할 새로운 운동이 필요하다.

 

코뮤니스트 정치조직과 계급조직(노동자평의회)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코뮤니스트 직접 정치운동을 실천하자!

 

2012년 10월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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