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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선거의 본질 1] 선거는 이벤트다!!!

‎1. 선거는 이벤트의 연속이다. '국민경선' '모바일경선' '야권연대 엠비심판' '청년비례대표 위대한 진출' '노동자대표' '급진좌파후보' '사회주의후보' ...개나소나 뺏지 뺏지 다 빼앗지...

이벤트가 감동적이고 화려할수록, 노동자(유권자)의 마음과 손은 덫에 걸려든다. 권력이 교체된다는@@ 내가 주인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부르주아 선거!   하지만 늘 이벤트의 주인공은 자본가!  들러리는 노동자!

2. 이벤트를 할때는 단지 감동받는 구경꾼이었지만, 이벤트가 끝나면 노동자는 그들의 노예가 된다. 노동자들이 표를 누구에게 던졌던, 노동자 스스로 세상을 바꾸지 않는한, 여전히 노동자는 착취당하고 지배받고 배고플 것이다. 선거는 가장 합리적이고 정교한 자본주의 지배시스템일 뿐이기 때문이다. 나와 당신이 던진표는 결국 자본주의 체제가 삼켜버리고, 권력은 그들에게 위임될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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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idarity with the Greek Proletariat

Solidarity with the Greek Proletari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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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ek crisis: Bosses united, Workers Divided. For How Much Longer?

 

 

 

For the Greeks, who are paying for the economic catastrophe of their country, their enemies have a name and a surname: They are called the European Union, European Central Bank and International Monetary Fund, and together form the so-called troika , the capitalist leadership of the Old Continent that won’t allow any further “autonomy” for the Greek parliament or its Government.

 

On 21 February, in fact, the troika released the ?130 billion that will go to Greece until 2014. The agreement provides that the Greek government continues to wage war on the working class through:

  • a further, radical “deregulation” of the labor market, which will allow massive scope for sackings;
  • reduction of 22% in the minimum wage;
  • further cuts in pensions and health expenditure;
  • reduction in public investment of ?400 million;
  • privatisation of oil, gas and water;
  • 15 000 redundancies in the public sector to be carried out by 2015.

All this heaped on a proletariat already on its last legs: poverty wages, high unemployment, long lines at soup kitchens and employment. Add to this the arms that Greece is obliged to buy from France and Germany in exchange for European aid, “arriving annually at the equivalent of 3% of GDP ” (see Il Manifesto February 17).

 

In these two years of frenzied attacks on their living and working conditions, the Greek working class have not just stood and watched: strikes, very harsh fights with the riot police, the creation of local assemblies and committees that decide from the bottom up the forms of struggle that have to be adopted, are all on the Greek agenda. The guerrilla warfare which burned Athens on Feb. 12, when 100,000 demonstrators besieged the parliament as it approved the measures demanded by the Troika, has demonstrated that most combative sectors of the street movement (which the bourgeois papers continue to define in bad faith as the Black Bloc) are by no means isolated and even gaining more and more support from those who are mobilising in the streets.

 

But how long can the Greek working class stand alone? On one side, the bourgeoisie are advancing together: the European ruling class is closing ranks to save the banks and the Greek capitalists, by continuing their aggression against the world of labour. On the other hand, the proletarians of Europe are divided, they mobilise — in a way which is quite inadequate to the seriousness of the situation — always within a national perspective and thus on the back foot from the start given that it is clear that economic policies that have long been established by the international bourgeoisie, are at the very least on a continental scale.

 

The attack on the Greek proletariat should be seen as a step in the onslaught that each national government, on behalf of the bosses, is bringing to the whole European proletariat. Why not go on strike in, say, Italy against the attacks on the Greek working class? The answer is all too simple: those who don’t even go on strike against the Monti government are not going to take to the streets on behalf of the Greek workers!

 

Incidentally, the varied world of the left, from the institutional to the so-called militant, have not proposed anything to promote national initiatives in support of the Greek proletariat: in last few years there have been (quote rightly) large demonstrations against the war, but against this real war on the working class — and, in part, the middle class — in this social and political laboratory of the bourgeoisie, they have not raised a finger: who cares about proletarian internationalism?!

 

But internationalists have to condemn this great weakness of the world and, in this case, European, proletariat, the lack of unity. Mobilising as a class means fighting in an international perspective, that is to go in the opposite direction to those unions — however they are organised — who ask instead for “the _revival of the country’s economy_”: the maxim of interclass and nationalist serv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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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lso run the serious risk that this supranational “interference” exacerbates this nationalism, promoting the false opposition between the treacherous and foreign banking capital on the one hand, and the healthy and productive national capitalism on the other. Fascistic venom is always ready to re-emerge, in order to prevent proletarian discontent from remaining on a class basis.

 

The letter of one of the main unions of the Greek police, the Poasy, circulated on the internet in recent days, states that

"under no circumstances will we accept orders to kill our brothers…"

 

and says it is ready to issue an arrest warrant for the representatives of the Troika

"for their secret effort to eliminate or undermine our democratic political system and national sovereignty…"

 

is a sign that the crisis in Greece has reached a point of no return. Either the class struggle can get out of the union swamp to go beyond national boundaries and involve other sectors of the proletariat at least on a continental scale, or the nationalist ” anti-European ” drift could become a real threat.

 

For the Communists the task is to accelerate the formation of a revolutionary party rooted in the working class, without which every revolt, however great, will never find the way out of capitalism.

G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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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를 민주화할 것인가? 아니면 파괴할 것인가?

자본주의를 민주화할 것인가? 아니면 파괴할 것인가?

 

 

 

 ‘자본주의를 민주화하자’라는 슬로건이 세인트 파울성당 점거시 텐트시티 유니버시티 측에서 나타나서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결국은 그 기치가 내려지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세인트 파울성당, UBS 그리고 다른 모든 곳에서의 점거들이 현 사회체제에 불만을 갖고 대안을 모색하는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풍요로운 토론공간을 제공했음을 보여준다. ‘자본주의를 민주화하는 것’은 실제적인 옵션은 아니지만, 점거운동과 그로 인해 생겨난 회합들에 참가하는 많은 사람들의 시각을 반영한다. 부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만든다면, 은행가들이 보너스를 포기한다면, 금융시장들이 더 잘 통제된다면 또는 국가가 좀 더 직접적으로 경제의 운영에 관여한다면 자본주의가 더 인간적으로 되도록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이러한 생각은 반복해서 제기되어왔다.

 

그러나 자본의 정치가들로부터 유래하는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자본주의가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알아보는 것을 방해하려는 공허한 잡담, 연막에 불과하다.

 

자본주의는 사사로운 개인들에 의한 부의 소유로 축소될 수 없다. 그것은 단순히, 훨씬 적은 노력에 비해 훨씬 많은 보상을 받는 은행가나 부유한 엘리트들의 문제가 아니다.

 

자본주의는 인류문명사에서 한 단계 전체이다. 소수에 의한 다수의 착취에 기반한  일련의 사회들 중에서 마지막 사회이다. 모든 생산이 시장에서 이윤실현욕구에 의해 추동되는 최초의 인류 사회이다. 그래서 모든 피착취자들이 그들의 노동할 능력,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자들에게 팔아야하는 최초의 계급으로 양분된 사회이다. 봉건사회에서 농노들이 그들의 노동이나 생산물을 영주에게 직접적으로 받치도록 무력적으로 강제당했던 반면, 자본주의에서 우리의 노동시간은 더 교묘하게 임금체제를 통해 우리들로부터 뽑아내진다.      

 

그래서, 착취자들이 사적인 사장들로서 조직되어 있건 아니면 중국이나 북한에서와 같이 ‘공산당’ 관리들로 조직되어있건 전혀 차이가 없다. 임노동이,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맑스가 썼듯이, “자본은 임노동을 전제로 한다. 임노동은 자본을 전제로 한다”(임노동과 자본)

 

자본은, 그 본질에 있어서 임노동자계급(실업은 이 계급의 조건의 일부이기에 실업자를 포함)과 착취계급사이의 사회관계이다. 자본은 노동자들에 의해 생산된 소외된 부 – 그들에 의해 창조되었지만 그들에 대항해 무자비한 적으로서 마주선 힘 - 이다.

 

 

자본주의는위기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자들이 이러한 조정을 통해 이득을 보는 반면 그것을 진정으로 통제하지는 못한다. 자본은 궁극적으로 자본가들의 손에서 빠져나가고 그들을 지배하는 일반적인 힘이다. 이때문에 바로 자본주의의 역사가 경제위기의 역사이다. 20세기초 자본주의가 세계적인 체제가 된 이래, 이 위기는 세계대전의 형태로든 세계대공황의 형태로든 간에 다소 영구적으로 되어버렸다.

 

그리고 지배계급과 그것의 국가가 어떤 경제정책을 시도하든, 케인즈주의든, 스탈린주의 또는 국가를 등에 업은 ‘신자유주의’든 간에, 이 위기는 더 심화되고 해결이 더 불가능해졌을 뿐이다. 경제의 막다른 골목으로 인해 절망에 내몰린 채, 지배계급의 상이한 분파들과 이러한 분파들이 조직된 여러 민족국가들은 무자비한 경쟁, 군사적 충돌 그리고 환경파괴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고, 이로 인해 그들은 이윤과 전략적 잇점의 사냥에서 점점 덜 ‘도덕적’으로 되고  점점 더 ‘약탈자’의 면모를 띨 수 밖에 없다. 

 

자본계급은 침몰하는 선박의 선장이다.  지구에 대한 그것의 명령권을 박탈할 필요성이 이렇게 절박한 적은 결코 없었다.  

 

그러나 인간의 소외에서 그 최극점인 이 체제는 또한 새롭고 진정으로 인간적인 사회의 가능성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변모시켜 모두의 이득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켰다.  그래서 화폐나 시장의 매개없이 직접적으로 소비를 위해 조정될 수 있는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세계를 통합했거나 적어도 그 진정한 통합을 위한 전제들을 마련했다. 그래서 전 체계안에서 민족국가들을 그들간의 끊임없는 전쟁들과 함께 제거하는 것이 실행가능하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세계인류공동체라는 오랜 꿈을 필요성이자 가능성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이러한 사회를 공산주의라 부른다.

 

피착취계급, 즉 임노동계급은 그것이 맞서있는 현체제에 관한 환상들에 빠져드는데 어떤 관심도 없다. 그것은 잠재적으로 이 사회의  무덤을 파는자이자 새로운 사회의 건설자이다.  자본을 개량하거나 ‘민주화’하는  것에 대한 생각들은 이러한 선명성에 많은 장해물들이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자본주의를 더 인간적으로 만드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은 오늘날 민주주의를 찬성한다고 주장하고, 사회가 더 민주주의적으로 되기를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관념을 그것의 액면가대로 받아들일 수 없고,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어떤 추상적인 관념으로 생각한다.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에도 역사가 있다. 정치체제의 하나로서의 고대 아테네에서의  민주주의는 노예제 그리고  여성배제와 공존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하에서 의회민주주의는  경제적인 부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사고 (그리고  투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도구들까지도  독식한 소수에 의한 권력독점과 공존할 수 있다. 

   

자본주의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사회를 반영하는데, 이는 다시 우리 모두를 시장에서 경쟁하는 고립된 경제단위들로 만들어버린다. 이론상으로 우리 모두는 동등한 여건에서 경쟁하지만,  실제로는 부가 점점 더 소수의 손안에 집중된다.우리는 개별 시민으로서 투표소에 들어갈 때 고립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실제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것으로부터도 거리가 멀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스페인, 그리스 및 미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점거와 공공집회운동으로 활성화된 논쟁들에서 두가지 입장들사이에서 다소 지속적인 대립이 있어 왔다. 한편으로 현체제를 좀 더 민주적으로 만드는 것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무바라크와 같은 폭군을 제거하고 의회제도를 도입하거나, 또는 기성의 정당들에 압력을 행사해서 그들이 거리의 요구들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게 만든다는 목표에서 멈춰버리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비록 지금 소수이긴 하지만, 다음과 같이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집회들에서 스스로를 직접적으로 조직할 수 있다면 왜 의회가 필요한가?  의회선거가 뭔가를 바꿀 수 있는가? 우리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도록 공공광장에서뿐만 아니라 들판에서, 공장에서, 작업장에서 집회와 같은 형식들을 사용할 수는 없을까?

 

이러한 논쟁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1차 세계대전 말 러시아혁명과 독일혁명 당시에 있었던 논쟁들을 반향한다. 자본주의 체제는 전쟁터에서 수백만을 살육함으로써 인류를 위해 유용한 역할을 해내기를 멈췄음을 이미 보여주었고, 이 체제에 대항해 수백만이 일어났었다. 그러나 어떤이들은 그 혁명들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하는 것이상 더 나아가서는 안된다고 말했던 반면, 그 당시 상당수에 달했던 다른 이들은 의회는 지배계급에 속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집회를, 즉 공장위원회들을, 소비에트들(선출되고 소환될 수 있는 파견위원들을 가진 총회에 기반한 조직들)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조직들이 권력을 잡게 될 것이라고 그러면 그 권력은 우리의 손안에 남아 있을 수 있고, 이는 사회의 완전한 재조직화의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혁명들이 고립과 내전 그리고 내부 퇴행으로 인해 파괴되기 전 아주 잠깐 동안, 노동자계급의 기관, 소비에트는 러시아에서 권력을 장악했다.  

  

그것은 인류에게 전대미문의 희망의 순간이었다. 그것이 패배당했다는 사실이 우리를 막을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의 패배로부터 그리고 과거의 실수로 부터 배워야 한다. 우리는 자본주의를 민주화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괴물같고 파괴적인 힘이라서 우리가 그것을 파괴하지 않은 다면 세계를 파멸로 이끌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괴물을 자본주의 자체의 제도들을 이용해서 제거할 수 없다. 우리는 새로운 조직들이 필요하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고 우리의 유일하게 진정한 희망으로 남은 혁명적 변화를 향하게 할 수 있는 조직들이 필요하다.    

 

Amos 25/1/12     

 

 

 

 

Democratise capitalism or destroy it?

 

The slogan ‘democratise capitalism’ appeared on the side of the Tent City University at the St Paul’s occupation, provoking sharp debates which eventually led to the banner being taken down.

 

This outcome shows that the occupations at St Paul’s, UBS and elsewhere have provided a very fruitful space for discussion among all those who are dissatisfied with the present social system and are looking for an alternative. ‘Democratising capitalism’ is not a real option, but it does reflect the views of many people participating in the occupations and the meetings they have generated. Again and again, the idea is put forward that capitalism could be made more human if the rich were made to pay more taxes, if the bankers lost their bonuses, if the financial markets were better controlled, or if the state took a more direct hand in running the economy.      

 

Even the top politicians are jumping on this bandwagon. Cameron wants to make capitalism more moral, Clegg wants the whole world to be like John Lewis, with workers owning more shares, Miliband is against ‘predatory’ capitalism and wants more state regulation.

 

But all this, coming from the politicians of capital, is empty chatter, a smokescreen to prevent us seeing what capitalism is not, and what it is.

 

Capitalism can’t be reduced to the ownership of wealth by private individuals. It is not simply about bankers or other wealthy elites getting too much reward for too little effort.

 

Capitalism is a whole stage in the history of human civilisation. It is the last in a series of societies based on the exploitation of the majority by a minority. It is the first human society in which all production is motivated by the need to realise a profit on the market. It is therefore the first class-divided society where all the exploited have to sell their capacity to work, their ‘labour power’, to the exploiters. So while in feudalism, the serfs were compelled by force to directly surrender their labour or their produce to the lords, under capitalism, our labour time is taken from us more subtly, through the wage system.

 

It therefore makes no difference if the exploiters are organised as private bosses or as ‘Communist Party’ officials like in China or North Korea. As long as you have wage labour, you have capitalism. As Marx put it: “capital presupposes wage labour. Wage labour presupposes capital” (Wage Labour and Capital).

 

Capital is, at its heart, the social relation between the class of wage labourers (which includes the unemployed, since unemployment is part of the condition of that class) and the exploiting class. Capital is the alienated wealth produced by the workers – a force created by them but which stands against them as an implacable enemy. 

 

Capitalism is crisis

But while the capitalists benefit from this arrangement, they can’t really control it. Capital is an impersonal force which ultimately escapes and dominates them as well. This is why the history of capitalism is the history of economic crises. And since capitalism became a global system round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this crisis has been more or less permanent, whether it takes the forms of world wars or world depressions.

 

And no matter what economic policies the ruling class and its state tries out, whether Keynesianism, Stalinism, or state-backed ‘neo-liberalism’, this crisis has only got deeper and more insoluble. Driven to desperation by the impasse in the economy, the different factions of the ruling class, and the various national states through which they are organised, are caught in a spiral of ruthless competition, military conflict, and ecological devastation, forcing them to become less and less ‘moral’ and more and more ‘predatory’ in their hunt for profits and strategic advantages.

 

The capitalist class is the captain of a sinking ship. Never has the need to relieve it of its command of the planet been so pressing.

 

But this system, the most extreme point in man’s alienation, has also built up the possibility of a new and truly human society. It has set in motion sciences and technologies which could be transformed and used for the benefit of all. It has therefore made it possible for production to be geared directly for consumption, without the mediation of money or the market. It has unified the globe, or at least created the premises for its real unification. It has therefore made it feasible to abolish the whole system of nation states with their incessant wars. In sum, it has made the old dream of a world human community both necessary and possible. We call this society communism. 

 

The exploited class, the class of wage labour, has no interest in falling for illusions about the system it is up against. It is potentially the gravedigger of this society and the builder of a new one. But to realise that potential, it has to be totally lucid about what it is fighting against and what it is fighting for. Ideas about reforming or ‘democratising’ capital are so many obstacles to this clarity.

 

Capitalism and democracy

Like making capitalism more human, everyone nowadays claims to be for democracy and wants society to be more democratic. And that is why we can’t take the idea of democracy at its face value, as some abstract ideal that we all can agree to. Like capitalism, democracy has a history. As a political system, democracy in ancient Athens could co-exist with slavery and the exclusion of women. Under capitalism, parliamentary democracy can coexist with the monopoly of power by a small minority which hogs not only the economic wealth but also the ideological tools to influence people’s thinking (and voting).

 

Capitalist democracy mirrors capitalist society, which turns all of us into isolated economic units competing on the market. In theory we all compete on equal terms, but the reality is that wealth gets concentrated into fewer and fewer hands. We are just as isolated when we enter the polling booths as individual citizens, and just as remote from exercising any real power.

 

In the debates that have animated the various occupation and public assembly movements from Tunisia and Egypt to Spain, Greece and the USA, there has been a more or less continuous confrontation between two wings: on the one hand, we have those who want to go no further than making the existing regime more democratic, to stop at the goal of getting rid of tyrants like Mubarak and bringing in a parliamentary system, or of putting pressure on the established political parties so that they pay more heed to the demands of the street. And, on the other hand, even if they are only a minority right now, we have those who are beginning to say: why do we need parliament if we can organise ourselves directly in assemblies? Can parliamentary elections change anything? Could we not use forms like assemblies to take control of our own lives – not just the public squares, but the fields, factories and workshops?

 

These debates are not new. They echo the ones which took place around the time of the Russian and German revolutions, at the end of the First World War. Millions were on the move against a capitalist system which had, by slaughtering millions of the battlefronts, already shown that it had ceased to play a useful role for the human race. But while some said that the revolutions should go no further than instituting a ‘bourgeois democratic’ regime, there were those – a very sizeable number at that time – who said: parliament belongs to the ruling class. We have formed our own assemblies, factory committees, soviets (organisations based on general assemblies with elected and revocable delegates). These organisations should take the power and then it can remain in our own hands – the first step towards reorganising society from top to bottom. And for a brief moment, before their revolution was destroyed by isolation, civil war and internal degeneration, the soviets, the organs of the working class, did take power in Russia.      

 

That was a moment of unprecedented hope for humanity. The fact that it was defeated should not deter us: we have to learn from our defeats and from the mistakes of the past. We can’t democratise capitalism because more than ever it is a monstrous and destructive force which will drag the world to ruin unless we destroy it. And we can’t get rid of this monster using the institutions of capitalism itself. We need new organisations, organisations which we can control and direct towards the revolutionary change which remains our only real hope.  

 

Amos 25/1/12        <번역: 국제공산주의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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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의 마오주의의 환상과 적색 테러

중국에서의 마오주의의 환상과 적색 테러   

 

 

오세철

 

 

1. 들어가며

 

  <<공산주의 흑서 (Black Book of Communism)>>에서 중국 관련 부분을 쓴 장-루이 마골린(Jean-Louis Margolin)은 ‘중국 공산주의’에 대한 분석이 두 배나 중요하다고 하면서 1949년 이래 베이징 정권이 붉은 깃발 아래 사는 인민의 3분의 2를 지배했고, 1991년 소련이 몰락하고 동유럽이 그들의 ‘공산주의’를 포기했을 때에도 인민의 10분의 9를 지배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베이징은 1960년 중·소 분쟁 이후 맑스주의-레닌주의의 제2의 로마였지만, 실제로는 대장정 이후 옌안의자유지역 탄생 이후(1935-1947)였다는 것이다.1)

  중국에서의 계급억압과 테러, 그리고 중국식의 파시즘을 이해하는 데는 우리의 지난번 <연재 3> 소련 분석에서 견지했던, 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로 보는 맑스주의의 관점을 유지하면서 맑스주의 사상과 실천으로부터 유리된 문화, 이데올로기와 사회심리적 조건들을 검토할 것이다. 중국의 역사를 개관하는 데는 1927년 노동계급의 패배까지의 중국 프롤레타리아 혁명사와 그 이후의 반혁명, 그리고 제국주의 전쟁 시기(1923-1933)를 명백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노동계급의 패배 위에서 건설된 이른바 “중국인민혁명”은 중국의 농민 대중을 제국주의 전쟁에 봉사하도록 한 부르주아 신비화였다. 한 마디로 중국 혁명 과정은 전(前)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부터 임노동에 기초한 국가자본주의와 같은 것으로가는 이행에 불과했다.

  중국공산당(CPC) 내에서 마오의 정치적 흐름은 1930년대에 나타났는데, 이 시기는 반혁명의 중간지점이었다. 마오주의는 노동계급을 압살한 반혁명으로부터 출현했다는 것을 빼놓고는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마오의 공산당은 그 후 부르주아지의 근본적 이해에 봉사했다. 마오는 코민테른 상임위의 퇴행에 따르는 경향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기회주의 세력의 일부분이었다. 1927년 3월 상하이 봉기가 국민당 군대에 의해 유혈로 억압당한 날, 그리고 CPC의 혁명 세력이 처절하게 국민당과의 동맹을 끝내려고 하는 동안, 마오는 장제스를 칭송하고 국민당의 행동을 인정했다.2) 1928년부터 노동자는 더는 집단으로 당에 참여하지 않았고 당이 더는 공산주의당이 아닐 때 적군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농민과 룸펜프롤레타리아트가 당에 들어왔다.

  ‘중국인민혁명’은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반제국주의적’이고 ‘혁명적’ 서사시로 기술된다. 그러나 실질적 목적은 십여 곳에 흩어져 대지주와 투쟁하던 농민 게릴라 세력을 정규군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대장정이 마오에 의해 조직되고 지도되었다는 것도 진실이 아니다. 마오는 와병 중이었고, 대장정을 준비하는 기간 왕밍(?明)의 분파에 의해 고립되어 있었다. CPC와 적군의 유일한 결속요인은 “돌아온 학생들”(러시아 유학생 또는 볼셰비키)이 제시한 소련의 제국주의 정책이었다. 그것은 스탈린 체제의 정치, 외교 및 군사적 지원에 전적으로 달렸었다.

  1936년과 1945년 사이의 일본과의 전쟁기간 동안 옌안에서 마오는 공산당과 적군을 지배하게 되는데, 세 단계를 거친다. 옌안 기지 창설 그룹의 제거, 마오 분파의 강화, 그리고 왕밍 분파와의 공개적 갈등이다. 이른바 ‘시안 사건’의 배경은 장제스가 포로가 되었을 때, 스탈린의 압력으로 CPC와 국민당의 새로운 동맹을 협상하라는 미끼가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산당과 국민당 사이의 동맹은 명백하게 부르주아적이며 제국주의적이었고, 결국 소련정부나 장제스 사이의 군사 협정으로 끝난다. 적군의 주요부대(제4 및 제8)는 장제스의 군대에 통합된다.

  1941년 독일군대가 소련을 침공하고 스탈린은 새로운 전선이 열리는 것을 피해 일본과 불가침 조약을 맺는다. 그에 따라 국민당에 대한 소련의 군사지원은 끝났지만, 일본이라는 적과 협력한 책임을 지고 공산당 내의 왕밍의 스탈린주의 분파가 몰락한다. 10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은 미국이 태평양 지역을 통제하게 하였고, 이러한 사건들은 국민당과 공산당(특히 마오 분파)이 모두 미국에 접근하게 하였다.

  마오는 ‘돌아온 학생들’에 대한 전면 공격을 단행하고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정화 운동”을 한다. 마오는 이들을 “중국에 맑스주의를 적용하는 데 교조적이고 무능력하다.”라고 비판했다. 이들에 대한 숙청도 1943년 정점에 달했는데, 코민테른의 공식적 해소와 공산당과 국민당 사이에 대한 미국의 중재와 맞아떨어졌다.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틀 속에서 “정화 운동”은 공산당이 미국에 접근하게 하였다. 이는 마오 진영의 부르주아적 본질을 의미할 뿐이었다.

  1945년 4월 숙청이 “공식적”으로 끝남에 따라 마오와 그 분파가 당과 군을 통제하게 되었고, 마오는 당 주석이 되었으며 마오주의, 즉 “마오쩌둥 사상”을 ‘중국에 적용된 맑스주의’로 선언했다. 여기서 우리는 마오주의가 어떻게 농민 대중을 기반으로 한 전통적 중국사상과 접목하면서 인민과 영합 되었는지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중국의 전통문화와 마오주의의 영합

 

  중국에서 문화의 개념은 인류학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아니라 마오 사상 특유의 개념으로 정의된다. 문화는 밖의 세계를 인식하거나 개념화하는 방식의 구체적 표현일 뿐만 아니라 그를 강화시키고 영속화하는 것이며, 세계를 지각하고 인식하는 ‘올바른’ 방식으로서의 세계관을 의미한다.3) 사상은 독립적 존재로서 맑스주의 상부구조 개념 안에서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사상은 반드시 경제적 토대에 따를 필요가 없으며 사회주의가 자동으로 프롤레타리아 사상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인간의 정신 상태는 그가 사회계급에서 갖는 성원자격을 결정하는데, 맑스주의로 바뀐 부자는 프롤레타리아이며 옛날 관습에 매달리는 빈농이나 노동자는 부르주아에 해당한다. 모든 물질적 장애를 극복하는 주체적 능력은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는 인간의 힘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인간 자원을 지나치게 혹사하는 문제와, 맑스주의와의 이론적 충돌을 가져온다는 점이며, 둘째는 유교와 신유교가 말하는 마음(心)의 개념과의 유사성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理)가 더는 외부에 존재하지 않고 마음 자체라고 하는 왕양명(1492-1529)의 사상은 이러한 ‘중국식 공산주의 사상’과 일치하고 있다. 하나는 인간의 완전성이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다는 것으로 이념적 자기규율에 의해 평등주의가 유지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지식과 행위의 통일(知行合一)을 주장함으로써 올바른 사상을 통해 객관적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마오 사상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유교와 마오 사상의 차이는 마오 사상이 형이상학 체계가 아니라 당에 개인을 연결하는 수단이며, 신유교의 마음(心)이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유지하는 것이라면, 마오 사상은 투쟁의 수단으로 자연과 사회적 환경을 변화시킨다는 점이다.4)

 

  전통 중국과 중국인민혁명 이후의 중국은 문화주의로부터 혁명적 민족주의로, 가족주의로부터 사회주의적 형식을 가진 집합주의로, 관료주의로부터 당의 규율로 바뀌었지만, 문화(이데올로기)가 수행하는 기능은 같다. 인민의 수동성을 생산적 에너지로, 가족에 대한 충성을 국가에 대한 충성으로 변형시키면서 국민성의 나쁜 부분을 고치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요구한다.

  중국에서의 지성사를 더듬어 볼 때 독창성보다는 전통의 종합을 바람직한 것으로 보았다. 유교에서의 사회와 합리성에 대한 강조와 도가에서의 개인과 행동의 직감적이고 비합리성의 강조를 갈등으로 보기보다는 두 전통을 통합하려고 한 보기를 들 수 있다.5)

  물론 전통문화에 대한 중국 공산주의자의 태도를 이중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전통의 철저한 파괴로 해석하는 견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6) 그러나 대체로 중국에 대한 학자들의 인식은 전통과의 연계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 다른 서방의 논문에서는 권력투쟁으로 보는 견해,7)  맑스주의를 중국문명의 장구한 역사 속에서 우연한 현상으로 보는 견해,8) 스탈린주의 같은 정치적 변태로 보는 견해9) 가 있을 수 있다.

  전통 중국에서 유교가 수행했던 문화 이념의 역할은 그대로 마오 사상에서도 수행됐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정치조직의 기반으로 정치사회화의 내용을 제공하고 정치분석의 방법을 제공하며, 인민과 관료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고, 우선순위와 희망에 따라 사회를 결속시키며, 규범과 의사소통의 경로가 되고 행동과 제도를 합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10)

  그런데 전통 중국 사상 중에서 유교와 도교가 강조했던 조화와 고요라는 유산은 버려야 할 유산으로 중국 공산주의자들은 보았다. 인(仁), 충성심, 이타심은 오히려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 다스리는 사람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조화시키려고 했다는데 문제가 있다고 보았으며, 도교에서 궁극적으로 반대가 사라진다는 주장도 변증법 입장에서 배격되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형제라는 대동(大同)은 유교의 슬로건인 동시에 공산주의적이고 사실로서 존재하는데, 이는 19세기 말 캉유웨이(康有爲)가 부활시켰으며, 마오 사상의 뿌리가 되었다.

  먼로는 전통 중국 사회의 의식적인 유산으로서 음양오행설에 기초한 초보적 유물론, 무신론, 그리고 미완성의 변증법을 들고 있는데, 음양 철학과 변증법은 비슷한 구조로 인식되기는 하나, 음이 양의 반대가 아닌 보완물이나 반영으로 보는 점이 다르다는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변증법은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는데 마오에게 모순은 사물 사이가 아닌 사물 안에 내재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또한, 무의식적 유산으로는 도덕적 훈련으로서의 교육이 인간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열쇠라는 생각이며, 이를 통하여 사회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는 것이다.11)

  도덕적 훈련으로서 교육이 지니는 의미는 기존의 규범에 대한 인민의 태도를 바꾸게 하는데 중점을 둠으로써 통제를 내면화시킨다. 공자는 올바른 정신의 탈바꿈이 행동으로 나타난다고 하였으며, 왕양명(王陽明)의 지행합일과 마오주의 주의주의의 유사한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는 이론과 실천의 관계에 대한 마오 사상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이론은 몇 가지 방식으로 실천에 의존한다. 첫째, 실천은 이론보다 우선한다. 실천적 활동의 원초적 국면은 생산이며, 사회적 실천은 계급투쟁, 정치활동, 그리고 과학적·예술적 추구를 포함한다. 둘째, 개별이론도 실천과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사물에 대한 지식은 그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의 경험을 통하여 습득되기 때문이다. 셋째, 이론은 자기의 생활을 개선하려는 능력으로부터 인간을 위한 가치를 창출하는데 이는 이론이 실천으로부터 나오며 실천을 통하여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전통 중국 사상에서 인간의 본질적인 사회성에 대하여 과거와 현재 사이에 보존의 연속성이 있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맑스 이론이나 소련의 이론을 넘어서는 중국의 인간이해는 사람들의 개성과 능력이 무한히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계급 내의 동질성에 대한 맑스주의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게 만들었다. 인간성의 본질을 이해하는 유교적이며 마오주의적 관점은 정부가 어떠한 형태로 존재해야 정당한가 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부가 자기 의무를 실행하는 데는 어떠한 방법이 정당한가를 보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결합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 결합성은 세 가지 정신현상, 인식, 감정, 그리고 행동의지의 결합을 수반한다.12)

  물론 결합성 속에 포함된 심리학적 사실들의 상세한 구성요소에 관하여 유교는 마오주의자들과 다르게 설명하지만 앎, 감정, 의지 등의 마음의 구성요소가 서로 밀접하게 결합하여 있다는 믿음은 동일하다. 즉 현재의 중국 철학자와 심리학자들은 인식과 감정을 결합시킨다. 중국에서 심리적 사실이 계급의 표시라고 말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어떤 신념이나 감정이 본래부터 한 인간의 의식에 들어가 있다는 것이며, 둘째, 인간의 계급의식이 많은 심리적 활동을 조절한다는 것이다.

  자아개조라는 말은 도교와 유교의 ‘수신’과 자화(自化)라는 말과 비슷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중국에서는 공식적인 외부의 교육기관에 순응하는 정도가 크지만, 전통 사상에서는 개인적인 의무에 의존하는 폭이 넓다는 점일 것이다. 중국인의 입장은 올바른 사상, 소망과 같은 내적 요인들이 물질세계를 변화시키는데,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유교는 인간이 가지고 태어난 중요한 속성, 즉 모든 사람이 배울 수 있다는 천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믿음은 국가 양성이 성공할 수 있다는 신뢰를 심어 주었다. 따라서 인간에게 선천적인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에게 선천적인 결함이 없어서 진실을 이해할 수 있는 잠재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낙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잠재능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통치자들에게는 대중을 학습시킬 의무가 있는 것이다. 유교에서 연약함 속에 강력함의 근원이 있다는 원칙은 외형적으로는 약해 보이나 실제적으로는 덕망 있는 통치자가 모범이 됨으로써 인민의 마음을 끌고 강대해 질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였으며 인민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통치자의 의무라고 보았던 것이다.13)

  여기서 소련과 다른 중국적 특징은 대중 노선을 사용하는 것이다. 양성의 개념과 같이 대중 노선은 소련의 이념과는 모순된다. 또한, 중국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이 도덕 지식과 관계를 맺게 하려고 모든 사람에게 정치적이고 도덕적인 교육을 한다는 점도 소련에서 발견할 수 없는 중국의 특징이다.

  또 하나의 유교의 전통은 정당성의 기준을 마련해 주었다는 점이다. 신유교에 있어서 성인(聖人)은 마음속에 사실과 가치가 항상 적절하게 결합하여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기준은 그대로 중국에서 지속하였다. 하나는 홍(紅)과 전(專)의 결합으로 나타났다. 일부 학자들이 홍과 전을 이분법으로 보고 이를 대립적 관계로 파악한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14)

 

“홍과 전의 관계는 상대적인 것들의 융합이다. 그들은 밀접하게 연관되고 나누어질 수 없다. 그들은 서로 물리치지 않는다. ‘홍’은 정치이다. 그것은 모든 과업의 정신이고 지도자이다. ‘전’은 전문적인 직업이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도구이고 무기이다. 이 두 가지는 밀접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그럴 때에만 그들의 위대한 효용성을 발달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 이것은 노동자 계급의 지식인이 발달시켜야 할 재질과 미덕을 결합하는 기준이다.”15)

 

  송영배 교수는 유교의 영향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모택동에게서 드러나는 ‘중국화 된’ 맑스주의의 본질적 특징은 ‘주체적 능동성(또는 혁명적 의식)’을 크게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유교가 ‘모택동 사상’에 연속적으로 영향을 미쳤으며, 따라서 유교의 ‘전통적’ 사상이 모택동에게 무의식적으로 각인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 유가 또는 2천 년 이상을 ‘유교적’으로 교육되어 온 중국인들에게는 사물들이 인간의 ‘주관적 윤리적’ 의지에 의해서 처리되고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자명하다. …모택동에 의한 주관적 능동성의 강조는 전통적 유교사상에 깊이 뿌리박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후진적 경제상황과도 연관되며, 또한 그것은 사실상 상부구조, 생산관계 등에 우선적 의미를 주는 방향으로 기울어졌다. …모택동의 ‘주관적 능동성’에 대한 높은 평가가 사회주의 건설, 다시 말해 물질적 생산, 사회 생산력, 과학 기술 등등을 촉진하는 과정에서도 과연 ‘필연적’이었고, 또한 ‘효과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평가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16)

 

  마오주의가 맑스주의와 전혀 관련이 없는 절충주의적 견해임을 다음에 더 구체적으로 지적할 텐데, 이를 통해 우리가 검토한 중국의 전통사상과 문화가 오랫동안 중국인, 특히 농민의 심리구조 속에 뿌리박혀 있었고, 그를 중국 농민 혁명과정에서의 지배도구로 활용하고자 한 마오의 전술이 대중에 영합하면서도 대중에 대한 무의식적 억압이었는지를 잘 파악할 수 있다.

 

 

3. 마오주의의 본질과 중국혁명

 

  처음부터 마오주의는 마오나 그 분파가 당에 대한 전면적 통제를 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권력 유지를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또한, 마오는 국민당, 귀족, 군벌, 대부르주아지와 모든 제국주의 국가들과 함께 전쟁에 당이 참여하는 것을 정당화했다. 자본의 도구로서의 당의 새로운 정체성은 마오주의에 의해 ‘이론적’으로 정당화되었다.

  이렇게 마오주의는 제국주의 전쟁에서 애국의 깃발 아래 노동하는 대중(특히 농민)을 동원하는 부르주아 전선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공산당이 권력을 장악하자 마오주의는 중국 ‘인민의 국가’의 공식 ‘이론’, 즉 중국에 확립된 (국가) 자본주의 이론이 되었다. 국공합작을 했을 때 마오는 쑨원이 제시한 대로 민족 부르주아지의 이해에 종속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쑨원의 1911년 ‘혁명적 민족주의’는 중국 부르주아지의 제국주의적 이해를 감추려는 신비화에 불과했다. 결국, 마오주의는 공식적 스탈린 교본의 세속적 표현이고, 스탈린 반혁명의 이념적 체계를 적용한 것에 불과했다. 마오주의가 맑스주의를 어떻게 위조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마오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말할 때, 그것은 오직 ‘부르주아 혁명’ 내에 존재한다. “1924-1927년의 혁명은 잘 정의된 강령을 기초로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 두 당의 협력으로 이루어졌다.”라는 것은 거짓이다. 1924-27년 시기는 ‘민족 혁명’이 아니라 봉기의 지점에까지 이르게 한 중국 대도시의 노동계급의 혁명적 물결이었다. ‘북방 정벌’은 혁명적 승리가 아니라 도시를 통제하고 노동계급을 학살하기 위해 고안된 부르주아지의 공작이었고 그 정점에 국민당에 의한 노동자의 학살이 있었다.

  둘째, ‘노동자는 조국이 없다.’라는 것은 1848년 이래 맑스주의의 원칙인데, 이는 마오주의에서 정반대가 된다. 그에게 애국주의와 국제주의는 같다. “공산주의 국제주의자는 또한 애국자가 될 수 있는가? 그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애국자이며 우리의 표어는 조국을 방어하기 위한 공격자에 대한 투쟁이다.” (민족 전쟁17) 에서의 공산당의 역할, 1938년, 10월) .

  셋째, 마오는 혁명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적 역할을 언급했지만, 계급투쟁에 대한 마오주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피착취계급의 이해를 착취계급의 이해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계급투쟁의 이해는 저항 전쟁의 이해에 종속되어야 한다. …우리는 계급 사이의 관계에서 재조정의 적절한 정책을 적용해야 한다.” (민족 전쟁에서의 공산당의 역할, 1938년, 10월)

  넷째, 마오주의의 ‘맑스주의의 발전’은 저개발국을 위한 혁명적 경로로 제시된 ‘새로운 민주주의’ 이론을 통해 국가의 문제에서 드러난다. ‘신민주주의 혁명은 부르주아지의 독재로 이끌지는 않지만,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로 여러 혁명계급의 통일전선 독재로 이끈다.’라는 말은 중국에서의 제국주의자, 협조자, 그리고 반동분자의 지배를 패배시킬 수 있는 사회주의 혁명과는 다르다. 마오는 새로운 국가 유형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어떤 특정계급의 도구가 아니라 계급 간 전선이나 동맹이다. 이는 계급지배의 형식일 수는 있지만 맑스주의와는 관련이 없다. ‘신민주주의’ 이론은 인민 즉 모든 계급의 정부를 주장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새로운 유형이다. 이는 공산당의 통제 아래 여러 지역의 대다수 농민을 통제하는 수단이었다.

  다섯째, 마오의 ‘철학적 저작물’은 대학 서클에서 ‘맑스주의 철학’으로 가르쳐졌다. 그러나 그것은 맑스주의 방법과 관련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이다. 스탈린의 통속화에 의해 고무된 마오의 철학은 정치적 왜곡의 정당화일 뿐이다. 제국주의와 문제의 국가 사이의 모순은 주요 모순이 되고 국가 내의 다른 계급 사이의 모순은 잠정적으로 이차적이고 종속적 수준으로 격하된다. ‘대체된 모순’의 마오의 이론은 프롤레타리아트가 민족적 이해의 이름으로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투쟁을 포기할 수 있고 포기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적대적 계급은 제국주의 살육의 틀 안에서 통일되고 통일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피착취 계급은 착취자의 이해에 굴복할 수 있고 굴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요약하면 마오주의는 노동계급의 투쟁, 그 의식, 그들의 혁명조직과 전혀 관련이 없고, 맑스주의와도 관련이 없다. 즉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론 발전의 내부 경향이 아니고 그 자체도 아니다. 그것은 모든 혁명 원칙을 버리고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을 혼동시키고 가장 어수룩하고 편협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 대체시킬 뿐이다.

  그러면 마오 체제 아래에서의 국가 자본주의 발전단계는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온다.’라는 마오의 슬로건은 농민 게릴라에 기초한 사회주의로의 새로운 길이라고 주장했지만, 그것은 노동계급 없는 농민혁명을 통한 부르주아 혁명이었다. 실제로 마오의 중국은 세계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주요 기둥 중의 하나였다. 1949년의 마오 체제는 진정한 사회주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으며 ‘2단계 이론’이라는 스탈린의 민족주의 관점에서 중국공산당은 농촌으로 나아가 이른바 ‘농촌 소비에트’를 세워, 도시 노동계급을 포기하고 농민을 포용함으로써 부르주아지와 동맹하는 급진적 민족주의 운동으로 전환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마오의 농민 ‘적군’이 부패한 장제스 독재를 패퇴시킨 것은 몇 가지 유리한 조건 때문이었다. 소련의 스탈린 관료주의가 극동에 그들의 방패막이를 세우려 했지만, 일본 제국주의의 공격으로 국민당 체제는 극도로 약화되었다. 그런데 스탈린이 기회주의적 동맹을 한 것은 장제스였다. 스탈린의 계획은 마오를 양쯔강에 멈추게 하고 장제스와 분할하기를 원했다. 토지 개혁 때문에 농민의 지지를 얻은 마오는 부르주아지에게도 대안세력이었다. 1949년의 ‘민주’ 정부의 수립은 공산당이 십여 개의 부르주아 당과 함께 한 것이며, 사회주의 또는 노동계급의 정권을 선언한 것이 아니었다.

  마오는 한국 전쟁 이후, 미국과의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산업 대부분을 접수하고 관료적 계획 경제를 강제하면서, 1950년대 후반 자급자족 코뮌이라는 집단 농업의 강제라는 ‘대약진 운동’을 전개하는데, 이 운동은 중국을 강대국으로 만들어 선진 자본주의 국가를 추월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다시 말해 혼합경제와 점진적인 자본주의 발전은 한국 전쟁으로 흔들렸고, 미 제국주의로부터 민족 혁명의 성과를 보존하기 위해 중공업을 통한 급속한 산업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명령경제와 국가자본주의를 활용하여 노동의 지시, 8등급 임금체계, 낮은 가격의 농산물 구매, 농민의 세금 인상을 단행하게 되었고, 노동자, 농민, 하급 관리의 소득을 최소화시켰다. 다수 노동자를 위해 단 웨이(單位)체제18)와 ‘철밥통 정책’으로 복지를 해결하면서 잉여생산물을 중공업과 군비에 집중했다. 마오시대에 국민총생산의 30%가 투자되었고, 1957년에는 50%까지 상승했다.

  그런데 1950년대 중반까지 급속한 산업화를 유지하는 계획은 전통적 중국 농업의 낮은 생산성이라는 한계에 직면하게 되었다. 중국 도시의 작업장을 특징짓는 사회조직의 형식인 단웨이 제도는 당과 국가에 노동계급을 포함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현대 영농기술, 농업의 기계화에 기반을 둔 농업의 집산화는 부유한 ‘쿨락’ 농민 계급을 출연시켰다. 공업화와 집산화의 ‘두 다리로 걷는다’라는 마오의 국가자본주의 정책은 대약진운동(1958-61), 문화혁명(1966-69) 시기를 제외하면 연평균 성장률을 10%로 유지했고, 중국을 세계 6위의 공업국으로 끌어올렸다.

 

  요약하면 마오시대는 제국주의 위협에 대항하는 민족 정체성의 유지나 노동자, 농민에 대한 높은 착취를 기반으로 하는 자급자족적 명령경제를 확립함으로써 자본주의의 다음 단계로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마오의 중국은 1930년대 근대화와 산업화를 향한 ‘제3세계’의 모델이었다. 그러나 1978년 자유시장 경제개혁으로의 이행은 수억의 중국 인민이 보건혜택을 못 받게 하고, 수천만의 실업자와 노숙자가 넘쳐나는 중국으로 변모시켰다.

 

 

4. 중국의 농민, 지식인, 그리고 관료주의

 

  마오주의가 전통적 중국문화의 절충적 선택을 통하여 맑스주의의 원칙과 관련 없는 유토피아적 환상이 된 데에는 절대다수의 인민인 농민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마오는 맑스주의 원칙을 주장한 진독수(陳獨秀: 1880~1942)보다 농민이 중심이 되는 신중국 건설을 주장한 이대교(李大釗: 1889~1927)에 더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중국공산당은 정권을 장악하고 나서 많은 잘못을 저질렀지만, 가장 큰 잘못은 빈곤한 농촌과 남루한 농민들의 실상을 외부세계에서 볼 수 없도록 한 것이었다. 이는 아마 집안 문제를 숨기는 중국의 전통적인 허위의식에서 나왔거나 나쁜 일을 감추려는 공산당의 과장된 자존심에서 나왔을 것이다.19)

  대약진운동도 그 목적이 최종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지 않았고, 유토피아적 환상을 실현하는 데 있었다. 대약진을 향해 분투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정신이 더 아름다워지고 더 깨끗해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대약진이 실패하자, 자본주의가 급속하게 확산하였는데, 이는 허황된 마오식 공산주의에 대한 징벌이었다. 농민들은 도둑질, 유랑, 진20)향 단위암시장 등과 같은 수단으로 정권에 도전하였다. 도시의 노동자에 기반을 둔 계급의식의 발전이 아닌 농민의식에 기댄, 유토피아 건설의 허황함이 드러나는 과정이었다. 이는 중국 농민의 근본 정서, 다시 말해 원시적인 아름다움, 세상과 동떨어진 한가함, 자급자족으로 근심 걱정 없는 농촌 생활을 하는 찬란한 몽상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마오는 신과 동등한 권위를 지니고 있었으므로, 마오의 ‘학대채 운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전국의 몇 억 농민들과 천만의 생산대가 대체와 같아지면 중국은 이 지상에서 공산주의 낙원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마오가 말년에 저지른 실수인 문화 대혁명도 지도자의 공적을 무조건 긍정하고 미신으로 발전시키며, 새로운 교조로까지 신성시하는 우상숭배와 봉건적 지배관계의 무의식구조가 뒷받침되었다고 본다.

  1990년 설 후의 「인민일보」는 돈을 벌려고 일을 찾아다니면서 광주나 상해 등지의 기차역에 체류하는 농민이 수십만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유민 물결이 사회의 화약고와 다름없다고 보는 루이링거는 이를 다음과 같이 심리학적으로 분석한다.21)

 

“수십만 명이 부유하는 상황에선 서로의 공감으로 사람들이 이유 없이 강한 피해의식과 보복심리를 갖게 된다. 개개인의 이러한 정서가 뭉쳐서 지도자도 없고 목표도 없는 파괴적인 운동을 언제라도 촉발시킬 수 있다. … 그래서 이때 과격하고 종교적이며 반권위적인 사상이나 신념이 인간 의식의 깊은 곳에 아주 쉽게 뿌리내릴 수 있다.”

 

  중국의 농민 범죄 가운데는 인질을 잡아놓고 협박하여 돈을 요구하는 범죄율이 높고, 인신매매의 경우, 특히 여자를 팔아넘기는 범죄가 만연하여 중국 농촌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계급의식이 없는 농민을 중시하는 마오주의의 중국은 자연스럽게 반지성주의와 연결된다. 1957년 여름 ‘반우파운동’에서 중국의 지식인과 공산당 사이에 감정이 악화되었다. 물론 마오는 지식인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와 관용의 정신을 표현했지만, 결국 총칼로 정권을 획득한 농민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편협한 사고와 오만한 심리를 버리지 못했다. 마오의 제자이며 중국 공산당 원로 가운데 한 명인가경시(柯慶施)는 중국의 지식인들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첫째는 게으르다. 평소 그들은 스스로 다그치지는 않고 오히려 항상 꼬리만 치켜세운다. 둘째는 얄팍하다. 사흘만 그냥 내버려두면 자신을 대단하다고 여긴다.” 그가 지식인을 경멸하고 적대시하는 태도는 농민 출신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공산당 내부의 성향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22)

  루이링거는 중국 지식인의 민족의식에는 그 특수한 발전과정 때문에 심각한 결함이 생겼으며, 다음과 같은 증세가 나타난다고 보았다.23)  첫째는 인격의 독립성 결여이다. 군중을 향하고 세속을 향하는 경향이 짙다. 쉽게 과격해지고 외부의 선전에 좌우되며, 권위적인 지도를 갈망하고 권위를 보호한다. 따라서 모든 민중민주 운동은 똑같이 민주적인 성격을 갖추고 있지 않다. 둘째는 자율정신의 결여이다. 도덕 수양과 자주 의식이 없어서 중국 청년 지식인들의 단체 행동에는 저급한 도덕수준과 천연덕스런 위법성이 나타난다. 셋째는 정치 평등의식의 결여이다. 전체 사회의 정치적 평등이라는 원칙에 맞지 않다. 1957년의 공산당 영도권의 포기 요구, 서단장(북경 서 단대의 회색 벽돌담)의 삼권 분립 요구(1966년 대자보 유행), 1989년의 언론 개방 요구 등은 민주의 껍데기를 쓴 소수 엘리트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 전체 구성원의 공동 이익이나 보편적 복리가 아니었다.

  위와 같은 농민과 지식인의 특성은 중국의 뿌리 깊은 관료주의와 연결된다. 중국의 보수파 이론가들은 당대의 계급투쟁이 단지 마오의 신경쇠약성 의식 속에서만 존재했을 뿐, 결코 보편적 사회모순은 아니었다고 본다. 자신의 정신 질환도 치료할 수 없었던 마오가 이러한 모순을 해결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좀 더 극단적인 견해에 따르면 당내의 계급투쟁과 간부의 부패 현상에 대한 마오의 두려움과 긴장은 강철, 강생 등이 그의 귀에 대고 쉴 새 없이 떠들어댄 결과였다는 것이다.24) 이는 마오가 상해 꼬뮌의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우려를 나타낸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중국의 관료주의는 상층보다 생명력이 더 강한 하층 소유 사회의 정치에 의해 좌우되었다. ‘우량화’는 ‘정화’로 바뀌었다. 권세가 있는 기층 지도자들은 이를 빌미로 자신과 견해를 달리하는 자들을 배제하고 자신의 권력 환경을 정화하였으며, 자신에게 보복하려는 자와 권위에 위협이 되는 자들을 제거하였다. 권력은 우량화 된 이후 다시는 감독받지 않았다. 우량화 된 지도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부패하고 공공연하게 뇌물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서방의 나라들은 법률상으로 권력에 대한 도덕적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권력에 대한 감독과 통제를 제도적으로 철저하게 규정하여 권력이 제멋대로 행동할 수 없다. 그러나 중국의 전통은 관리들의 도덕적 양심을 믿고, 관리들의 사상, 도덕 교육을 중시하므로 권력을 감시, 통제하는 제도의 제정에 대해서는 소홀히 했다. 이 때문에 권력이 이익에 유혹되고 매수될 기회가 서방국가보다 훨씬 많다. 따라서 ‘의심스러우면 쓰지 않고, 일단 사람을 쓰면 의심하지 않는다.’라는 중국의 용인철학은 잘못되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철학적 명언들은 비상품 사회에서 생겨난 것이고, 현재 중국은 상품경제 사회인 자본주의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루이링거는 1987년 중국의 맛보기 식 정치체제 개혁이 대단히 어렵고 유감스런 일인데, 이는 덩샤오핑이 지도한 이 개혁의 진정한 어려움은 인민의 이익을 건드리면 인민이 반기를 들 것이라는데 있다고 보았다. 인민이 물가, 정치, 자유화, 주택 등과 같은 것에는 양보할 수 있지만, 두 가지 기본요소, 사회주의 국가가 부여한 평균 수준의 생활보장제도와 심리적으로 획득된 주인의식을 굳게 지키려고 한다는 것이다.25)

 

 

5. 중국에서의 테러와 노동계급에 대한 억압

 

  1927년에서 1946년까지 중국 혁명은 테러와 분리될 수 없다. 1927년에서 1928년의 몇 달은 문화혁명의 시기와 맞먹는 ‘민주적 테러’ 체제의 확립시기였다. 펭 파이(P’eng P’ai)가 이끄는 중국의 농촌 소비에트는 반혁명분자인 지주에 대해 대대적 공개재판을 통해 대부분을 사형시켰다. “죽여라 죽여라”를 외치면서 희생자를 갈기갈기 찢었고, 요리해서 먹었으며 살아있는 가족에게도 먹였다.이는 고대 동사이사의 전형인 복수축제의 열광이었다.26)

  1931년 총살당한 펭 파이는 군사화 된 농촌의 공산주의자였는데, 도시 노동자 운동에 기반을 둔 공산주의의 대안으로 자신의 농촌 소비에트를 주장했으며, 마오가 이를 받아들여 1927년 ‘후안에서의 농민운동 보고서’에 이론화되었다. 1949년 마지막 승리까지 중국 공산주의의 주요 모델은 국가 건설에 혁명의 에너지를 집중하고 적을 분쇄하기 위해 강력한 군대를 만드는 것이었으며, 군사적이고 억압적 기구가 처음부터 존재한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1927년-31년까지 대략 18만 6천 명의 희생자를 낸 중국 소비에트의 테러는 스탈린의 대테러(1936-38)보다 훨씬 먼저 벌어졌기 때문이다.

  1946년에서 1957년 시기는 농업 개혁과 도시에서의 숙청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학살을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운동으로도 생각했지만, 마오는 1952년 11월 한국 전쟁에 중국 군대를 보내면서 그들을 성역화하기 위해 급진화 시기 동안 학살을 좋은 일이라고도 생각했다. “우리는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반동분자를 죽여야 한다.”라는 것이다. 그것은 농업 개혁이라는 목적보다는 지식인, 부르주아지 소상인, 비공산주의 투사, 독립적 공산당 간부를 포함하는 모든 집단을 공산당의 전제주의적 통제를 위협하는 집단으로 보고 대중운동을 통해 도시에서의 숙청을 확산시킬 목적이었다. 1949-52년 동안 공산당 공식 통계로는 2백만 명이 숙청당했다.27)

  1950년 7월에 시작하여 1951년으로 이어지는 숙청은 반혁명분자 제거운동으로 三反(반 낭비, 반부패, 반관료주의)과 五反(뇌물, 사기, 탈세, 거짓말, 국가기밀누설), 그리고 서구화된 지식인을 대상으로 한 ‘사상개조’였다. 억압은 1955년까지 계속되었고, 특히 지식인을 겨냥한 “숨겨진 반혁명분자”를 제거하는 새로운 운동(sufan)이 전개되었다. 1957년 5월의 ‘벽화운동’은 마오가 몇 주간의 자유화 기간에 형성된 낙관주의를 파괴할 목적으로 일으킨 ‘독 있는 풀잎’ 제거였으며, 수만 명의 공산주의 지식인이 덫에 걸렸고, 40만-70만의 간부(지식인, 기술자, 엔지니어)가 20년간 투옥되었다.

  라오가이(Laogai 勞改)는노동을 통한 인간개조로 그 시기 중국에는 1천 개의 대규모 수용소가 있었고, 유치장은 셀 수가 없었다고 한다. 수용소는 대규모 공기업으로 위장되었다. 라오가이는 마오가 수천만 인민을 눈멀게 한 블랙홀이라고 했다. 1980년대 중반까지 5천만 명이 이 제도를 거쳐 갔고, 그곳에서 상당수가 죽고 매년 천만의 감금자(인구의 1.2%)가 있었다. 그들이 내세운 ‘새로운 인간’의 추구는 새로운 복귀 가능성이 없는 감금이었고, 세뇌 기법이 동원되었다. 개인 표현의 기회를 박탈하고 저항을 약화시키기 위해 체계적인 음식 덜 먹이기, 자유 시간 박탈과 개인 공간의 축소(과다 인원, 밤샘 조명, 사유물 금지) 등이 이루어졌다.

  한 번 범죄자는 영원한 범죄자라는 중국식 딱지 붙이기는 잘 알려졌다. 중국에서는 죄가 있기 때문에 체포되는 것이 아니라 체포되었기 때문에 죄가 있다는 것이다. 모든 체포는 공산당이 주도하고 마오가 통제하는 ‘인민 정부’의 경찰이 수행했다. 노동수용소에서의 평균 음식량은 1개월 12-15kg의 곡물이었는데, 이는 19세기 프랑스 감옥보다 적고, 소련 수용소보다 적고, 1935-77년 베트남 수용소와 비슷했다. 비타민과 단백질 부족이 심각했다.28)

  1966년부터 1976년의 문화혁명은 무정부적 전체주의 시기이다. 이 시기의 사망자는 40만-100만이라고도 하고, 어떤 학자는 100-300만이라고 주장한다. ‘억압적 반역’의 상징인 홍위병은 국가 기구를 공격하는 목표를 지닌 마오의 작품이었는데, 1966-67년에는 지식인과 정치 간부에 대한 폭력, 1967-68년에는 대결과 분파의 행위, 1968년에는 질서회복의 잔인한 억압 시기로 나뉜다. 홍위병은 14-22세 사이의 교조적이고 불만에 가득 찬 마오의 열광적 지지자들이다. “세계는 여러분의 것이고, 중국의 세계는 여러분의 것이다.”와 ‘당은 우리의 아버지요 어머니’라는 이들의 노래가 지니는 파시즘의 광기를 엿볼 수 있다.

  중국공산당의 반지성주의는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홍위병은 어느 곳에서나 그들의 슬로건을 반복했다. “자본가 계급은 피부다. 지식인은 피부에 자라는 털이다. 피부가 죽으면 털도 없다.”29)

  여러 번 자아비판을 했기 때문에 지식인은 저항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문화 혁명 기간 천8백만 간부 중 3-4백만이 투옥되었고, 인민 해방군 내에 홍위병을 금지했지만, 40만 군인이 투옥되었다. 지식인 가운데 14만 2천의 교수, 5만 3천 명의 과학자와 기술자, 500명의 의대 교수, 2천6백 명의 예술가와 작가가 투옥되었고, 그 중 대부분은 살해되거나 자살했다.

  문화 혁명의 명백한 실패는 도시 거주자들이 정치에 신뢰를 잃어버리게 하였다. 젊은 세대가 더욱 그러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을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조소, 범죄, 이기주의가 모든 곳에서 규범이 되었다. 중국인은 지쳤고 두려워했다.

  유교 전통에서 마음의 평화는 선한 행동에서 오지 않고 올바른 곳에서 올바른 말을 하는 것한테서 온다는 말이 있다. 이는 아시아 공산주의에 두 가지 영향을 미쳤다. 하나는 이념의 과도한 확장이고, 다른 하나는 의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다. 즉 새로운 사회가 다시 만들어지는 것을 통해 유교와 공산주의의 조합 위에서 분류되고 재조직화하는 열광으로 나타나고, 다른 한 편으로는 개개인의 마음이 새롭고 더 좋은 생각으로 가득 차고, 이러한 개인들의 행동은 새로운 지식에 근거한다는 생각에 의존함으로써 전 세계의 변혁을 꾀한다는 점이다. 결국, 그것은 말의 향연과 관념론에 빠지고 과도한 의지주의에 근거한 폭력과 열광으로 나아가 파시즘적 토대를 형성한다. 마오주의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6. 마오 시대 이후의 중국에서의 자본주의의 발전과 노동자 계급의식

 

  덩샤오핑의 ‘자유주의 시장개혁’ 정책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마오의 ‘2단계론’에 근거하고 있다. 사회주의라는 머나먼 미래를 위해서는 장기간의 자본주의 발전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또한, 그는 ‘올바른’ 마오 노선으로 공산당을 되돌린다고 항상 강조했다. 1970년대 말부터의 ‘시장개혁’은 생산을 지구화하는 넓은 과정의 부분이라고 보았다. 전후 시기 부르주아 운동은 ‘반제국주의’ 수사학을 포기하고 값싼 노동기지로 중국을 전환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1989년 6월 천안문 사태까지의 시기를 덩 시대의 1차 개혁으로 볼 수 있다. 마오 시대에는 보건과 복지의 개선이 있었지만, 첫째, 1950년 이후 대다수 노동자의 개인 소득이 오르지 않은 점, 둘째, ‘농민을 위한 교육’을 위해 청년을 농촌으로 보내는 인기 없는 정책의 포기로 당 간부 자녀의 도시 실업문제가 발생한 점이 드러났다. 1차 개혁 시기에는 소비재 공업으로의 확장이 이루어졌는데, 1980년대 말에는 1950년대 건설한 중공업의 내구연한이 끝나 중공업 시설도 새롭게 대체되어야 했다. 노동 생산성을 향상시키려 했지만 마오 시대의 명령 경제는 장애가 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자유주의 개혁은 세 가지였다. 첫째, 특별기업지역(SEI), 둘째, 중앙계획의 폐지, 셋째, 국가 금융 및 개혁의 재조직화였다. 핵심 산업을 제외한 중소기업은 당과 국가기구의 하급 수준으로 위양하여 이윤분배협정을 맺고 지방관리와 공장관계자의 이윤추구를 허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천안문 사태로 다시 경제에 대한 직접 통제로 전환된다.

  1990년대 초 서구의 관측통은 동유럽의 개혁처럼 ‘시장사회주의’ 단계를 거친 ‘자유시장경제’로의 점진적 이용이 실패할 것으로 보았으나, 중국의 개혁 초기의 성공은 다른 자본주의 국가와 다른 중국 특유의 당과 국가의 분권화 구조에 맞는다고 볼 수 없다. 또한, 잘 규정된 상법 등의 법체계 없이 사업에 필요한 상호신뢰가 중국의 전통적 ‘관시’로 이루어졌다는 것도 성공 원인이다. 그 결과 1980년대 경제 개혁으로 나타난 자본가계급은 당과 국가의 틀 속에 포괄되었고, ‘관시’로 연결된 국가 관료주의에 종속되었다.

  이 새로운 계급은 권위주의적 일당국가의 정치적인 ‘현상유지’를 방어하는 공통 이해를 지닌다. 일당국가의 지속적 지배와 중국 부르주아지의 응집성과 배타성 때문에 1990년대 초 이후 일어난 경제개혁에서 중국의 새로운 자본가 계급은 중심적 구실을 하고 있다.

199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두 번째 개혁이 진행되고 있다. 동구 블록의 해체 중에 이루어진 천안문 사건으로 중국은 1차 개혁 물결에 느슨해진 중앙통제를 다시 강조하게 되었다. 중국은 단지 값싸고 복종적인 노동력 때문뿐 아니라 마오 시대와 덩 시대의 1차 개혁에서의 자본축적의 결과 비교적 발전한 동아시아 경제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국유기업과 초국적 기업 사이의 합작이 이루어졌고, 이윤은 국가와 초국적 기업 사이에 분할되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중국이 경제성장을 지속하려면 정치 개혁이 이루어지고 일당국가가 종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30년간 중국의 자유주의 경제 개혁은 경제 관계의 상품화와 화폐화로 이행하고 있으며, 이는 지구적 자본축적으로 통합됨으로써 거대한 노동력을 착취할 수 있고 계급투쟁을 봉쇄하여 산업 평화를 유지하는 중국 정부(자본)의 능력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세계 자본주의 자본축적에서의 미국과 중국이 차지하는 역할을 살펴보면서 세계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세계혁명의 가능성과 세계전쟁을 통한 야만의 가능성을 모두 예견해야 한다. 1960년부터 미국 경제는 일본과 유럽에 자신의 기반을 침식당해 왔으며 1980년대의 세계 최대 채권국이었던 것이 80년대 말 세계 최대의 채무국이 되었고, 경제 성장은 채무로 유지되었다. 그런데 1990년 일본이 거품경제로 그 기반이 약화된 반면, 미국은 레이거노믹스로 점점 힘을 얻었고, 미사일 방어체계와 같은 프로젝트를 통해 높은 군사비를 지출하게 되었다. 또한, 미국의 주요 산업이 동북부의 노조가 있는 제조 산업 중심으로부터 남부와 서부의 노조 없는 컴퓨터 산업으로의 이전은 1930년대부터 쌓아온 노동계급의 지위를 약화시켰다. 그 결과 임금이 유지되었고, 절대적 잉여가치를 증가시켰다. 1990년대 이윤율은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전후 경기 붐에도 볼 수 없었던 수준까지 증가했다. 그러나 이는 부채 기반의 소비거품 때문으로 자본 축적의 취약성을 은폐하고 있으며, 이는 최근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부실로 표현된 공황으로 그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거대한 국가부채는 미국 자본주의의 약점이 아니라 강점으로 작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미국은 아직 과학기술의 세계적 중심이며, 1980년대 구조조정에도 세계의 광범위한 산업기지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미국 시장은 세계의 최대시장이라는 점 때문이다. 서유럽의 노동계급의 지위는 동유럽의 거대한 산업예비군의 통합으로 침식당하지만, 미국은 당분간 잉여가치의 생산과 실현의 중심으로 남을 것으로 예상한다.

  1980년대 자본축적의 재구조화의 본질은 세계경제 주변부의 이른바 ‘신흥공업국’에 생산적 자본을 재할당하는 것이었는데, 노동집약 산업으로 방적, 의류, 신발, 장난감을, 새롭게 발전하는 산업으로 정보통신, 컴퓨터를 분할했으며, 1980년대 말까지는 일본이 그리고 1990년대에는 미국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 중국은 1990년대 말까지는 동아시아 상품 생산의 노동집약적 조립단계를 이어받으면서 아시아 자본축적에 진입한다. 1998년 이후 중국은 세계 시장을 향한 아시아 상품의 제조단계로 상승했다.

  이윤율 저하와 선진 자본주의 내에서 투쟁적 노동계급 사이에서 짓눌려 있던 1970년대와 1980년대 자본은 주변부의 값싸고 복종적인 노동력을 찾아야 했고, 그것이 신흥공업국에서 중국으로 이동한 것이다. 중국은 세계인구의 5분의 1에 달하는 인구, 50년간 급속한 민족자본의 축적, 그리고 값싼 노동력의 거대한 저수지일 뿐만 아니라 노동의 높은 사회적 생산성에 필요한 하부구조를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의 합작기업은 중국정부가 얻은 잉여 이윤 가운데 상당 부분을 얻을 수 있었다. 중국 노동력 착취수단의 증가는 생산수단의 원가 절감과 생존수단의 저렴화로 일반화된다.

  중국의 출현과 지구적 자본축적에의 통합은 1970년대, 80년대 구조조정으로부터 촉발된 자본주의 재활성화를 연장하고 심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결국, 중국의 부상은 미국의 경제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헤게모니를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문제는 희소한 천연자원에 대한 경쟁이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신자유주의 대안으로 불리는 ‘베이징 컨센서스’는 중국의 정치, 사회적 환경과 전통을 기반으로 자신들의 방식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하는 ‘떠오르는 시장경제’의 원리라고 볼 수 있다. 에너지를 위한 중국의 요구가 중요한 것은 15년간의 수출지향을 통한 성장으로 새로운 공장시설, 원자재의 투입 증가로 나타났다. 2004년 중국은 세계에서 원유소비 7.4%, 석탄 31%, 철강 27%, 철광석 30%, 알루미늄 25%, 시멘트 40%를 점하고 있다.

  중국의 공업화는 거대한 수출단지로 중국을 이용하는 초국적 기업과 서구시장(특히 미국)의 거대한 할인소매점의 합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이 제너럴 모터스라면 지금은 월마트이다. 2002년 미국이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제품의 10% 이상을 월마트가 차지하고 있다. 월마트는 한 편으로 중국의 수천 개의 노동착취 공장에서 이윤을 얻을 뿐 아니라, 미국에서 저임금을 강요하면서 미국과 중국의 노동자 사이의 공동전선의 필요성을 드러내고 있다.

  매년 600억 불 이상이 수천만 농민의 프롤레타리아화로 이루어진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중국으로 쏟아지고 있다. 자본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거대한 노동예비군은 임금 인하의 지속적인 압력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에서의 본질적 문제는 당면한 경제 문제보다 시장의 무정부성으로 인한 사회적 재앙과 특정 계층으로의 부의 집중이다. 중국은 1949년 혁명으로 얻은 사회적 성과인 공공교육, 공공보건이 해체되고 있고, 탈규제화로 세계최악의 공해와 안전부재국이며, 세계최대의 온실가스 생산국이다.

  한 마디로 중국 자본주의는 노동집약적, 노동억압적, 불평등하고 무정부적이고 환경파괴적인 자본주의이다. 부패의 만연, 알코올 중독, 매매춘, 모든 사회적 악이 1949년 이래 노동자의 독립적 역할을 억압했고, ‘시장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중국은 중국 자본가와 세계 자본 이해의 집단적 대리자이며 노동계급을 자본의 논리로 무자비하게 착취하는 국가 자본주의 국가이다.

  중국 노동계급의 투쟁은 지속되고 있으며, 더욱 규모가 커지고 광범위하게 전개되고 있다. 중국은 당과 정부를 앞세워 이 계급투쟁을 관리할 뿐만 아니라 이들을 향해 무자비한 억압과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이를 뚫고 일어서는 중국의 노동계급은 앞으로 세계혁명의 주요 주체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투쟁을 통해 강화되는 계급의식이 민족주의로 변질하여 세계전쟁으로 비화하여 중국 노동자를 살육하고 전쟁터의 총알받이로 내몰고 중국식 파시즘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중국과 미국의 노동자 연대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노동자 연대를 통한 노동자 국제주의를 통해 세계 혁명으로 진군하는 앞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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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주>

 

1) Jean-Louis Margolin, “China: A Long March into Night”, in Stéphan Courtois et al.(eds.) 「The Black Book of Communism: Crimes, Terror and Repression」, Harvard University Press, 1999, 464쪽.
2) Report on an investigation into Human peasant movement, Mao Zedong, March, 1927.
3) James Chieh Hsiung, 「Ideology and Practice: The Evolution of Chinese Communism」, New York: Praeger, 1970, 127쪽
4) 윗 책, 131-132쪽.
5) Jean-Louis Margolin, 앞 글, 466쪽.
6) Wang Hsȕeh-Wȇn, 「Legalism and Anti-Confucianism in Maoist Politics」, Taipei, Taiwan, Institute of International Relations, 1975, 이 책은 공자를

비판하고 진시황을 찬양한 내용을 부각시키고 있다.
7) C.P. Fitzgerald, 「The Chinese View of Their Place in The World」, London, Oxford, 1964.
8) T. Wang, “Power struggle in Peking: Plot and Counterplots”, Far Eastern Economic Review, January 25, 1968.
9) 맑스 이전의 프랑스 혁명가 루이 블랑키(1805-1881)와 같은 혁명적 낙관주의로 평가하는 경우를 말한다.
10) James D. Seymour, 「China: The Politics of Revolutionary Reintegration」, New York: Thomas Y. Crowell, 1976, 47-52쪽.
11) Donald J. Munro, 「The Concept of Man in Early China」, Stanford University Press, 1969, 167쪽.
12) 도널드 먼로 지음(김덕중 옮김), 「현대 중국의 인간이해」, 서울:청사, 1982, 57쪽.
13) 윗 책, 148쪽.
14) Tu Wei-ming, “Confuciansim: Symbol and Substance in Recent Times”, R.W. Wilson, et al.(eds.) 「Value Change in Chinese Society」, N.Y.:

Praeger, 1979, 23-25쪽.
15) 도널드 먼로, 「현대 중국의 인간이해」, 196쪽.
16) 송영배, 「중국사회사상사」, 서울: 한길사, 1986, 483쪽.
17) 여기서 민족 전쟁은 2차 세계대전이다.
18) 작업장 중심의 공동체로써, 중국의 국가자본주의에서는 단웨이 체계를 통해 국가의 복지기능 대부분이 개별 국가-자본 또는 기업에게 양도되었다.
19) L. 루이링거 지음, 김용권 옮김, 「중국을 보는 제3의 눈」, 소나무, 1995, 53쪽.
20) 향급행정구(鄕級行政區, 제4급)로. 향(鄕)이나 진(鎮) 등으로 불린다. 영어에서는 향은 township, 진은 town으로 번역된다.
21) 윗 책, 95쪽.
22) 윗 책, 112쪽.
23) 윗 책, 191-2쪽.
24) 윗 책, 206쪽.
25) 윗 책, 285-6쪽.
26) Jean-Louis Margolin, “China: A Long March into Night”, in Stephane Courtois et al. 「The Black Book of Communism: Crimes, Terror, Repression」

, Harvard Univ. Press, 1999, 470쪽.
27) 윗 책, 476-477쪽.
28) 윗 책, 511쪽.
29) 윗 책, 5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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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alinist welcome to a Nazi intervention into a workers strike in Greece

A Stalinist welcome to a Nazi intervention into a workers strike in Greece

 

 

http://www.leftcom.org/files/images/2011-12-07-helliniki-halyvourgia-struggle.preview.jpg

The workers of Elliniki Halivourgia (‘Greek Steelworks’) have been on strike for 111 days. Elliniki Halivourgia is a steel factory in Aspropyrgos, an industrial outskirt of Athens. The same firm has another factory in the city of Volos.

 

The management announced a plan to enforce a 5-hour working day with a subsequent pay cut of 40%. On October 30, 2011 the workers’ general assembly in the factory of Aspropyrgos unanimously rejected the cuts. On the other hand, the unionised factory of Volos accepted the proposals of the company. The management immediately announced the dismissal of 34 workers in Aspropyrgos. In response, the workers decided to go on an indefinite strike and picketed the factory gates . Their demands are for the rehiring of their fired co-workers and the cancellation of the cuts plan. After a month’s strike the company has decided to fire another 16.

 

The strike is under the control of the factory union but the final decisions are taken by the workers’ assembly. On December 6, 2011 a general 24-hours general strike took place in the local industrial area and on January 17 the General Confederation of Greek Workers (GSEE) called a 24-strike in Atiki (Athens, Piraeus).

The strike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in the last few years. However, it remains isolated and the trade union has already accepted the plan of the company and asks for the rehiring or the early retirement of the fired co-workers. Nevertheless, the employer remains adamant.

 

PAME, the trade union coalition of the Greek Communist Party (KKE) has played a key role, trying to promote their fighting prestige (‘make all Greece into Elliniki Halivourgia’) and using it as a weapon for their trade union and electoral tactics.

 

On Friday 17 February a group of the notorious fascist party ‘Xrisi Afgi’ (‘Golden Dawn’) visited the factory; they passed unmolested through the gate, took the microphone and made a speech to the strikers expressing their ‘solidarity’ in the presence of some members of the union. Then, the president of the factory trade union welcomed the fascists, saying that ‘all Greece is with us’.

 

See a full video below.

 

First you see the Nazis making a speech and then the president welcomes the Nazis. The union’s president, Giorgos Sifonios, is a member of PAME and he was a candidate of the KKE in the district elections in 1998. Until now PAME haven’t given any explanation, and they haven’t tried to dissociate themselves from that event. So, it is justified to assume that the president acted according to party policy. Otherwise, they would have expelled him immediately.

 

Doing this the Stalinist KKE have brought the fascists into the workers movement. For the time being I can not explain their stance. I suppose that this is due to the active intervention of anarchists in that strike. As a matter of fact, many anarchist groups energetically supported the strikers and expressed their solidarity with them through many actions. As supporters of spontaneity they may idealize such a strike. So, maybe it will be a great discouragement on their part after that event.

 

‘Golden Dawn’ is a well known fascist group. They started as pure ‘national socialists’ and later they mixed Nazism up with the traditions of the Greek far-right. But, anyway, they are famous as pro-nazi. They are responsible for many attacks against immigrants. Clearly, it is a ‘para state’ group and they have close connections with the police and army. They have a growing influence especially in popular and workers areas and they are expected to win a good percentage (about 3-4%) in the upcoming elections.

 

A. 201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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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ikes and solidarity

strikes and solidarity

 

If this year’s strikes are to have power, we must take our lead from the electricians, bypassing union attempts at defusion by offering each other solidarity in new ways and across artificial divides, writes Deb Harris.

Solidarity is illegal. Thatcher said so. She only permits us to strike if we have a specific and identifiable common complaint – we are not allowed to strike together in recognition of the general horror. In 2011, submissive as ever, the unions found the only thing that the public sector can legally unite around – pensions – and conveniently forgot that everyone is angry about a lot more than that. Their speeches, placards and leaflets were all about pensions. As if we had given up on anything but retirement.

 

As if pensions were isolatable from the stress and drudgery of work. And as if work was not stress and drudgery at all. As if it was something to be celebrated, defended. The TUC anthem for the strike, ‘Let’s Work Together’ shows a lot of happy public sector workers winking at each other while they dance through their jobs. The strike was in defence of work as it is. And it was bounded by work: it began when work began and was over when work ended. The strikers were meant to stay at the work door until the pre-planned marches through city centres. We were not meant to move beyond these boundaries, to strike out in other ways, with other people, in other places, and into the night.

 

As if pensions were isolatable from everything else – increasing rents, prices, repression. The unions try to separate the strikers from the broader causes of their anger, and from the rest of the population. The day, as we were reminded by a Unison rep on one picket line, was a focus on ‘her’ members. It wasn’t about anyone else, anything else, it was about pensions and the public sector’s patronised heroes. Those who don’t have a job, let alone a pension, who couldn’t strike legally even if they wanted to, should do nothing but go home and reflect on the ‘important work that the public sector do’.

 

Of course thousands rely on the welfare state in order to survive, but, as public sector workers know only too well, any real reflection on state-run services reveals their contradictions, reminds us what else they are important for. It is unlikely that many of those forced to use the state’s services – people claiming job seekers allowance, people on probation, school children – were weeping into their cornflakes over the temporary loss of the public sector, distraught at the thought of being able to go back to bed. It’s much more likely that they enjoyed the short taste of freedom, would like to strike out too.

 

It is no surprise that a call for solidarity from people who had no right to strike was ignored by local union leaders. A demonstration in Hackney which had used the rupture provided by the strike to block the bus depot and roads as it marched from picket line to picket line, which had met with support from strikers, bus drivers, car drivers, passers-by, was now being kettled by the police at the picket line outside the CLR James Library in Dalston. Two people had been violently arrested and more than thirty were about to be arrested. At the rally for the strike at Hackney Town Hall, a call was made to come to the library to support. The people listening were interested, asked questions.

 

But standing on the steps above, the local union leaders just blew their horns louder, made speeches more frantically, and told everyone to go to Homerton Hospital – where those who had been kettled would have gone if they hadn’t been stopped. There was no question that people might be offered other options. It was Homerton Hospital or home. ‘You have your tactics, we have ours’. ‘We don’t even know who you are.’ Solidarity is illegal.

 

Of course there were a few people who disobeyed the megaphone, a noisy crowd of ten who joined the passers-by who had gathered around the kettle. And later that evening, a demonstration outside Stoke Newington Police Station in support of those arrested was much larger: people from the local Kurdish community who earlier that week had been protesting in front of the same police station over the brutal arrests of some of their members; passers-by who had their own reasons to hate the police; and many more who had been striking that day, gathered together in support. Now the strike was over, everyone could show their solidarity as they wished, free from the dictates of the megaphone.

 

But we don’t need to wait until the union leaders have gone home – we can refuse them even while they stand over us: electricians have shown how this is done – defying legal strikes and dead-end marches with wildcat strikes, road blocks and occupations.  When things become more desperate, it will become increasingly clear that we need to break free from union control – that our anger can no longer be channelled into sectors and causes, damned up in slogans and negotiations, locked into laws and stewarded through marches.

 

As more and more people adopt and expand the tactics of the electricians, we will start to present a much greater threat to the way things are, and the police will be a much larger presence. We will be caught in many more unpredictable situations, in which we will need to fight together whether or not we know each other and whether or not we planned to. It is this sort of solidarity that will frighten the police. It is this, also, that frightens the union leaders.

 

 

<출처>  http://thecommune.co.uk/2012/02/03/strikes-and-solidarity/#more-7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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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cupy America

Occupy America / #OccupyA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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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cupyAmerica // Have the Occupy Wall Street protests that sprung up across the country this fall already passed? Shot in NYC, Oakland, and Cincinnati, this short explores the state of the #OWS protests now that local governments have removed permanent encampments, and asks what the future will be for this still-young nationwide movement.

Produced and edited by Chase Whiteside (interviews), Erick Stoll (camera), and Liz Cambron.

Additional Camera:
Kasey Hosp
Jay Taylor (http://youtube.com/OccupyCincy)

Includes excerpt from "Monday Morning in Zuccotti Park,"
Directed by Steve Bognar (http://youtube.com/watch?v=XRonkn6L6u4)

Additional Oakland Footage:
Karl Baumann (http://vimeo.com/user1542672)
Raleigh Latham (http://vimeo.com/user193922)

Additional NYC Footage:
David Phelps (http://youtube.com/davidpphelps)
George Lyter (http://youtube.com/GeorgeLyter)
Casey Neistat (http://youtube.com/watch?v=mhQCpXM-Sm4)
NY Daily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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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위한 투표가 아니다 (1%를 위한 투표일 뿐이다)

우리를 위한 투표가 아니다 (1%를 위한 투표일 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선거가 끝나면 >

 

아무도 선거때 약속한 공약들을 지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선출한 사람들의 직접통제(상시적인 소환)를 받지 않는 한, 그를 선출해준 사람들을 위해  국가나 권력에 맞서  끝까지 싸우는 것이 아니라,  결국엔 그들이 소속된 국회와 그들이 수호할 부르주아 국가를 위해 일하도록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으므로)

 

아무도 당신들의 근심걱정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눈과 귀는 이미 새로운 인맥과,  당신들보다 잘 조직되고 이해관계가 명확한 집단의 로비스트들과, 화려한 보좌진들과, 전문적인 정책 자료들과, 법질서 체계와 복잡하고 미묘한 부르주아 의회제도 안에 갇히게 될테니까)

 

아무도 가난과 실업을 해결해줄 수 없다  (자본주의는 이미 치명적인 불치병에 걸려서,  빚을 내어 가난을 해결할 수도, 이윤과 착취를 줄이는 대신 실업을 해결할 수도 없는,   부르주아 국가간.기업간.지역간의 물고 뜯기는 목숨을 건 경쟁과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끊임없이 위기를 전가하면서 생명을 유지할수 밖에 없는,  모든것이 고장난  쇠락의 끝자락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즉, 이 체제를 근본적으로 타도, 파괴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아무도 당신을 돌봐주지 않을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앞으로 더욱더 국가권력은 소외된 당신을  돌보아주기는 커녕 적대적으로 멀어져갈 것이다)

 

 

 


< 이번 선거에서는 >

 

우리손으로 아무도 뽑지 않는것이 모두에게 더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누구든 뽑아준다면 우리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합법적인 권력에 복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선거에 뛰어드는 순간 아무도 이런 사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자신들에 대한 지지가 노동자계급에 대한 지지라 착각하는,  그 이름이 노동자정당이던 사회주의 정당이던 공산주의자 조직이던 혁명조직이던, 그들이 힘든 투쟁 대신  쉽게 대중을 전취할수있다고 생각하는 선거를 중요시하는 한...혁명을 주장하는 정치세력이 그토록 싫어하는 의회주의, 사민주의는 사실 혁명세력에 대한 지지율이 높아짐으로써 약화되는게 아니라 투표율 자체가 낮아질수록(투표거부자가 많은수록) 힘을 잃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모든 투표가 나쁜것은 아니다.  반드시 필요한 투표도 있다.  하지만 죽어가는 자본주의 체제에 산소호흡기를 달아주는,  그들의 지배방식인 의회주의를 공공히 해주는 투표는 프롤레타리아계급 모두에게 독약이다."

 

이제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  선거에 대한 장미빛 환상이 아니라,  혁명의 현실성과  프롤레타리아계급의 혁명적 잠재력에 대해  진실되게 말해야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투표대신 투쟁을!    집권이 아닌 혁명을!   

 

노동자와 그 가족들, 그리고 다수의 인민들이 일방적으로 희생당하는  모든 제국주의, 부르주아 전쟁이 아닌  다수의 프롤레타리아계급이 한줌 안되는 부르주아계급을 그들이 독점한 물리력(군대, 경찰, 경비, 생산수단, 법적보호 등)으로부터 무장해제시키는 계급전쟁을!

 

 1%가 독점하던 권력을 프롤레타리아트 모두가 모든 곳에서 (작업장에서 거리에서 평의회에서 지역에서 가정에서)  집단적으로 행사하는  공산주의를!

 

자본주의 쇠퇴의 국면이 깊어지고 계급투쟁의 부활이 현실화 된 2012년 오늘,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행동을  직접 조직하는 운동,  노동자를 대리하지 않고 노동자계급을 역사와 혁명의 주체로 세우는 운동만이,  진정으로 노동자권력을 향한 노동해방을 위한  운동이다.
 

 

 

 

Occupied Barcelona: The Spanish Election Rejection

 바르셀로나 아큐파이 : 스페인 선거거부 흐름은  현재의 기권과  포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혁명적 분출로 다시 일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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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룩셈부르크를 추모하며, 야만의 자본주의에 의해 살해당한 노동자들을 추모하며

로자 룩셈부르크를 추모하며,  

야만의 자본주의에 의해 살해당한 노동자들을 추모하며,

혁명을 희망하며...

 

 

Rosa Luxemburg - then and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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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년 1월15일 리프크네히트와 로자가 사민당의 개머리판에 의해 살해당하다.


2003년 ~ 2007년 친서민 개혁을 표방한 노무현정권에 의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살해당하다.


2008년 ~ 2012년 노골적인 부르주아 프렌들리를 표방하던 엠비정권에 의해 수많은 노동자빈민들이 공개적으로 학살당하다.

 

그리고 2011년 말 살해당하고 학살당한 노동자들을 대변하고 대표한다던 민노당과 노동조합 관료 다수파가, 독일의 사민당보다 못한  자신들을 살해한 세력과 손을잡다.

 

그리고 93년이 지난 오늘 혁명가들에 대한 탄압과 노동자들의 죽음은 여전이 진행중이다.

 

 


[1919년 로자 룩셈부르크의 최후]

 


독일혁명의 폭풍 속에서 혁명의 패배가 분명해진 순간에도 로자는 자신의 원칙과 방법을 포기하지 않고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베를린은 유지되고 있다]라는 논설에서 그녀는 혁명의 와중에, 반혁명의 승리의 환상 속에 있더라도 아직 혁명적 노동자는 사건에 대한 검토를 거듭하고, 경과와 결과를 역사의 척도로써 측정 할 것을 요구했다.

1월 이후, 그녀의 심신의 피로는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고 혁명에 대한 의욕과 의지가 간신히 그것을 지탱하고 있었다. 최종적인 승리를 눈앞에 두고 과로와 병세로 쓰러질 수도, 아니면 반혁명군의 총검에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 순간까지도 로자는 대중을 신뢰하고, 대중에게 미래를 걸었다. 그리고 이렇게 썼다.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이번 투쟁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대단히 날카로운 데 반해서 혁명이 발전할 수 있는 초기 단계에 필요한 전제 조건이 모자랐으며 그런 모순을 안고 따로따로 맞붙은 싸움이 시작되어 결국은 패배로 끝났다. 그러나 혁명이 가진 특수한 생명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거듭되는 패배를 통해서만이 최후의 승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질서가 베를린을 지배한다"

 

"지도자는 대중에 의해 거부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지도자가 대중 속에서 만들어질 수가 있고 또한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최후의 결정자는 대중이다. 대중은 혁명의 최후의 승리가 쟁취되는 전장이다. 그들은 이 패전으로 인해 국제 사회주의 사회의 과시이며 힘인 역사적 패배의 연속의 일환이 되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패배로부터 미래의 승리가 꽃필 것이다." (로테 파네 1919.1.14 )

 


1월 16일의 [폴베르쯔]는 리프크네히트가 도망치려고 하여 사살되었고, 로자 또한 분노하여 광폭한 대중에 의해 살해되어 스스로 죽음을 초래했다는 뉴스를 보도했다. 그 전날 밤 9시경, 리프크네히트와 로자는 만하임가의 은신해 있던 집에서 체포되어 에덴호텔로 연행되었다. 바프스트 대위가 두 사람을 심문했는데, 살해의 준비는 이미 끝나 있었다. 호텔을 나서는 순간 한 명의 수병이 개머리판 으로 리프크네히트을 때려 넘어뜨렸다. 정신을 잃은 상태의 그는 차속에 실려져 틸가르텐 호수근처에서 차에서 끌어 내려져 그곳에서 학살되었다. 시체는 신원불명자로 취급하였다. 이어 로자가 호텔에서 끌려 나왔다. 그리고 그녀의 최후역시 비참하게 마감되었다. 이 학살에 대해 슬픔과 격노에 찬 요기헤스는 사실자료를 모아 공개하고 그들의 범죄를 폭로하였다. 그것 때문에 그도 역시 3월10일 체포되어 경시청의 감방 안에서 형사에 의해 학살 되었다. 기력이 다한 늙은 메링도 역시 칼과 로자의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독일혁명은 비극의 막을 내렸다.

 


그리고 비극의 역사는 반복되었다. 세계 최고와 최대의 사회주의세력으로 성장하고 국제 노동운동의 지도적 지위를 확고히 차지했었던 독일 사회민주당이었지만, 배신과 학살에 의해 독일혁명의 실패를 초래하더니, 결국 그 사회민주당이 독일 파시즘을 탄생시키고 육성하게 된 것이다. 그 탄생과 양육의 부모였던 사회민주당은 과거 자기들이 로자와 동지들을 학살할 때 사용했던 방법에 의해 그들이 기른 자식에게 조직 자체가 압살되는 운명을 겪었던 것이다.

1933년 나치는 자본의 지지와 원조 하에 권력을 장악하고 국회의사당을 방화하고 그 죄를 사회민주당과 공산당, 노동조합에 전가했고, 사회민주당은 이 상황에서도 나치의 눈치 보기에 급급했고 공산당의 총파업 요구는 거부되었고 결국 세 곳 모두 결사금지의 탄압을 받게 된다. 이런 나치의 만행은 죽은 자의 묘를 파헤치고 일련의 사회주의 문헌과 함께 로자의 모든 저작을 불태우고야 만다.

 

결국 전 인류의 불행과 파멸을 초래했던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로자의 묘지는 해방되었고, 아직도 그녀의 저작과 사상, 혁명을 향한 실천은 복원중이며 현재진행형일 뿐이다.

 

 

 

 

 

[2012년 분노하는 겨울, 노동자시인이 격렬한 희망을 노래하다]

 

 

격렬한 희망

 

  임 성 용

 

"희망이란 어찌 이리 격렬한가!" - 아폴리네르

 

 

폭력의 힘에 맞서는 수단이 희망이라면

그 희망의 전부가 오로지 비폭력적 희망으로 존재한다면

희망이라는 힘이여!

우리에게도 격렬한 희망을 다오

격렬을 뛰어넘어, 망각과 평화와 저항마저도 뛰어넘어

희망에게도 폭력적인 희망이 존재할 수 있게 해다오

희망의 이름이 적대성을 잃어버린 분노 대신에

제발, 장미꽃처럼 건네주는 사랑의 약속이 아니기를

피가 도는 밥을 먹으리라던 맹세가 채 끝나기도 전에

제발, 가차없이 버려진 노동의 식은 밥이 아니기를

얼음덩어리로 굳어진 배반의 시간이여!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는 희망의 밥통이여!

죽어도 썩지 않을 슬픔이 일천 오백 일을 노숙하는 동안

그럼에도 아무도 문제삼지 않는 이 겨울을 그만 용서하기를

그럼에도 이런 일들을 너무나 달게 받으라는 특권층이 아닌

이런 일이 내 일이 아니라는 암묵적인 동조자들에게

격렬한 희망의 눈동자가 한 번이라도 반짝 빛나게하기를

철장 속에 꽁꽁 갇혀버린 시여!

어눌하게 혼자 추방당한 시인이여!

이 겨울을 마치 '동지 섣달 꽃본듯이' 반겨맞으시라

희망을 빼앗고 절망조차 넘겨받은 힘없는 희망들이

이제 곧 격렬한 희망으로 길바닥 나뒹구는 돌맹이가 되리니...

 

 

 

 

 

분노하라, 이 겨울을

 

 -  임 성 용

 

겨울이다

혹한의 칼바람 살을 에는 겨울이다

이 겨울, 깡깡 얼어붙은 얼음나무들이 있다

길바닥에 주저앉아 떨고있는 사람들

뼛속까지 드러난 투명한 핏줄들이

저 높은 철탑과 크레인 위에

맵찬 바람 하늘끝 고공의 둥지 위에

아스팔트에, 보도블럭에, 펄럭이는 비닐막 찢어진 천막에

나뒹구는 침낭 속 싸늘한 숨결로 있다

뜬눈으로 역류하는 잠들지 못하는 잠, 꿈같은 생시로  있다

 

 

지금, 지상에서 그들이 머물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인간과 자연이 지닌 모든 것들을 도륙해버리는

이 악마와도 같은 자본주의,

생산과 노동의 소중함은 단 한시라도 안식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었다

경제를 살리고 4대강도 살리고 무엇이든 살리고 살리고

이른바 죽은 좃도 살린다는 MB노믹스,

인간이 누려야할 최소한 삶의 가치를 송두리째 뽑아내고

포클레인과 덤프트럭과 재개발과 홀딱 벗고 드러누운 싹쓸이 개방과

그리고, 입만 열면 새빨갛게 덧칠하는 거짓말, 거짓말!

 

 

아, 우리는 하나님을 본 게 아니었다

궁상스런 궁민(窮民) 모두를 철저하게 배제하는 악령의 힘을 보았다

악마에게는 사랑을 말할 수가 없다

악마에게는 우리가 지켜야할 가족과 피맺힌 노동을 이야기할 수 없다

악마와 그 악마의 집단에게 우리는, 우리들의 쉴 시간을 허락해달라고

어찌 하소연하고 매달릴 수 있겠는가

21세기 대명천지, 고도의 문명과 순도 높은 행복이 넘쳐나는 시대에

과연 이 지구상 어느 나라에서 노동자들이 자기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분신하는 나라가 있단 말인가

과연 전세계 어느 선진국, 어느 미개한 국가에서

일년이면 수십명의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을 매달아 자결하고

숯덩어리 불길로 타죽는 나라가 있단 말인가

 

 

여기, 섬뜩하게도 그런 나라가 있다

그것은 세계10대 경제대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그것은 오로지 서민들 걱정에 잠이 안 온다고 하는

이명박 정권하에서 자행되고 있는 일이다

돌이켜보라, 그는 중세 이후 너무나 야만적인 형벌이라고 해서 금지된

잔학무도한 화형제도를 버젓이 부활시켰다

갈 곳 없이 내쫒겨 망루에 올라간 용산철거민들을

하루 아침에 복날 개잡듯 불에 태워죽이지 않았던가

그들의 불에 구운 영혼이 구천을 떠돌아도

공장에서 쫒겨난 노동자들이 무려 열아홉 명이나 죽어나가도

이래도, 이래도 눈썹 하나 깜짝하지 않는 대통령!

이래도, 이래도 이 정권의 수명이 다하도록 유지시켜 주는 국민들!

이게 진정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란 말이더냐

이게 진정 우리의 아이들이 자라나 또다시 이런 더러운 국민이 되란 말이냐

 

 

아니라면, 이것만은 결단코 아니라고 한다면

노동자여, 전민중이여! 이 얼어붙은 겨울을 분노하라

얼음장밑 강물처럼 차디찬 분노를 흐르게 하라

탐욕에 대한, 배반에 대한, 절망에 대한, 무관심에 대한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도도한 저항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바로 분노의 도가니로 뛰어드는 일이다

보아라, 간악한 적들은 사람들을 1%와 99%로 나누었다

99%를 다시 집주인과 세입자로 나누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만만한 노동자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었다

비정규직을 다시 용역, 파견, 시간제로 나누고 또 나누었다

적들의 끊임없는 분열 앞에, 노동자여!

한솥의 용광로에서 들끓는 노동의 쇳물결이여!

그 어떤 세월이 와도 우리는 결코 길들여지지 말자

노동계급의 유전자는 절대로 분열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자본이여!

너희가 년간 70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해서

메머드급 경쟁력으로 아무리 우리를 묶으려고 해도

우리는 결코 묶일 수 없다

너희가 14조원의 돈다발을 투자해 세계적 글로벌기업으로

아무리 우리를 가두려고 해도 우리는 갇힐 수 없다

현대차 / 비정규직노동자 / 상경 투쟁 / 승리를 위하여/

절절하게 떨리는 생의 목숨으로 다짐하나니

승리의 날은 멀지 않았다

우리 승리하리라!

우리 승리하리라!!


2012. 1. 14.  현대차 양재사옥 앞, 투쟁문화제 연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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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강령으로 출발한 노혁추, 노동자계급의 무기로 거듭나야 한다

혁명강령으로 출발한 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

 

노동자계급의 무기로 거듭나야 한다

 

 

이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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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29일 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이하 노혁추)이 공식출범했다. 작지만 뜨거웠던 이날의 출범식이 역사적이었던 까닭은 자본주의의 끝 모를 위기 속에서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혁명’에 대한 전망과 계획을 공산주의 강령과 노동자혁명당 건설이라는 목표에 담아 공개적이고 공세적인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이다.‘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의 일이며, 자본주의 체제를 일소하는 공산주의 노동자혁명을 통해서만 노동해방이 가능하다’는 공산주의 강령을 채택하며 출발한 노혁추는 앞으로 자본가계급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에게 혁명 강령과 혁명당이라는 무기를 제공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할 것이다.

 

 

혁명 강령이란 무엇이며 왜 필요한가?

 

  쇠퇴하는 자본주의는 이미 막다른 길목에서 마지막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그 위기와 고통을 노동자계급에게 전가하여 노동자들의 삶을 벼랑으로 몰아가고 있지만, 자본주의 근본모순은 공산주의혁명 이전에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자본주의 모순이 사라지지 않은 한 억압받는 노동자계급의 저항과 투쟁의 물결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자본에 맞선 노동자들의 수많은 투쟁들이 자연적으로 혁명적인 투쟁과 노동자 혁명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바로 노동자 투쟁을 혁명의 길로 일관되게 이끌어갈 실천의 지침인 혁명 강령이 노동자계급 속으로 깊이 뿌리내릴 때에만 비로소 혁명을 향한 진정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혁명 강령이란 노동자계급 투쟁의 궁극적 목표인 공산주의 혁명을 이론적으로 밝혀줄 뿐만 아니라, 계급투쟁의 역사와 발전에 대한 세세하고 구체적인 분석이자, 사회·경제·정치적 상황을 자본주의 물질적인 토대에 근거하여 철저하게 분석한 것이다. 또한 강령은 노동자 계급이 실현해야 할 공산주의라는 목표로부터 규정 받고, 이러한 목표의 일부를 이루는 전략전술들을 동시에 일관되게 정의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전술들은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나오는 실제 조건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필요에 완벽하게 부응해야 하고, 강고한 계급투쟁의 현실로부터 그 풍부함을 이끌어내야 한다. 바로 이 때문에 강령은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행동의 지침이자, 노동자계급 전체의 실천의 결실인 것이다. 따라서 혁명 강령은 신비스런 기원을 가진 것도 아니고 변하지 않은 규칙도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노동자계급 자신의 투쟁의 산물이며 투쟁의 무기다.

 

 

혁명 강령을 방어하는 혁명당의 역할

 

  그런데, 자본주의 아래서 노동자들이 일상적 투쟁의 과정에서 얻게 된 계급의식은 혁명적 의식으로 진전될 수도 있지만, 투쟁의 시기가 지나면 다시 되돌아가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에게는 계급의 모든 역사적·이론적인 성과들을 온전히 담아내는 강령을 가진 조직인 혁명당이 필요하다. 따라서 혁명 강령 없는 혁명조직(당)은 존재할 수 없으며, 이 때 당은 투쟁하는 노동자계급과 조직적으로 함께 해야만 혁명적으로 유지될 수 있고, 계급의식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항상 노동자 계급투쟁에 복무해야 한다.

 

  혁명당이 노동자계급의 계급의식을 바꾸고 혁명으로 이끄는 일은 당이 제공하는 신비하고 마법 같은 묘책이나 환상에 있지 않다. 단지 혁명당의 명확한 정치적 지향이 명백하고 보편적인 용어로 노동자들의 실제 필요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트로츠키의 <<러시아혁명사>>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어보라.

 

“선원 코린은 그의 회고록에서, 스스로를 사회혁명당 당원들로 생각하는 뱃사람들이 어떻게 현실에서 볼셰비키의 강령을 방어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어떻게 이러한 허약한 조직과 미미하게 배포된 당 출판물로, 볼셰비키의 생각과 슬로건이 사람들을 휘어잡을 수 있었는가? 설명은 매우 간단하다 : 계급과 시대의 예리한 요구에 상응하는 이러한 슬로건들은 그들 자신을 향한 수천의 채널들을 만들어낸다.”

 

“붉게 달아오른 혁명적 매체는 사상의 뛰어난 전도체이다. 볼셰비키 신문들은 큰 소리로 읽혔고, 세세한 부분까지 읽혔다. 가장 중요한 기사는 외어졌고, 인용되고, 다시 복사 되었으며, 가능한 곳에선 어디든 다시 인쇄되었다. 볼셰비즘의 성공에 대한 일상의 설명은 대중들의 욕구와 맞아떨어지는‘슬로건의 단순함’이란 표현으로 요약 설명되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그들의 투쟁에서 그들의 요구와 필요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의 경험에 의해 인도되었다. 볼셰비즘은 대중의 독립적 경험에 대한 귀족주의적 냉소에 절대 오염되지 않았다. 반대로 그들은 이러한 경험을 그들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것이 그들의 탁월함을 엿볼 수 있는 뛰어난 지점 중 하나였다.” 트로츠키, <<러시아혁명사>> 2권.

 

  러시아 혁명의 사례에서와 같이, 볼셰비키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존재하는 요구와 필요를 명백하고 간단하게 표현했고, 투쟁의 경험들 속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보편적이고 역사적인 열망들을 감안하여 전체 운동에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였기 때문에 계급의 혁명적 경향들을 가속시킬 수 있었다. 계급의식을 바꾸고 혁명으로 향하게 하는 일, 이것은 신비스럽거나 불가사의한 이상이 아니다. 현재의 조직 상황이 허약하고 작더라도 명확한 정치적 지향이 있다면 즉시 가능한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혁명적 이론과 노선을 실천의 무기로 만들어내야 할 의무가 혁명조직에게 있는 것이다.

 

 

혁명당 건설과 혁명 강령 채택의 의미

 

  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은 이와 같이 노동자계급의 강력한 무기인 혁명당을 건설하기 위해, 아직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필요에 완벽하게 부응하지는 못하지만, 강고한 계급투쟁의 현실로부터 풍부함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우리의 현 상황에서 가장 원칙적이고 혁명적인 노동자계급의 역사적·이론적 성과들을 담아 강령초안을 마련하고 실천적 결의로 채택하면서 출발하였다. 이것은 혁명당과 혁명 강령 건설이 멀리 떨어져 있는 먼 훗날의 일이 아니라,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에서 노동자계급의 가장 전투적이고 혁명적인 계급의식의 정치적 표현이어야 함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건설할 혁명당은 반드시 전체 노동자계급의 해방이라는 공산주의 강령을 방어하면서 건설되어야 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지배체제 하에서 당분간 노동자계급 내 소수일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인정한다. 하지만 혁명당이 방어하는 공산주의 강령은 전체 노동자계급에 의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그것은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자신의 과업이기 때문이며, 그 때문에 우리가 건설하려는 혁명 강령은 노동자계급의 혁명투쟁에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은 단절되고 짧은 한국의 혁명적 사회주의·공산주의 운동의 역사와 경험 속에서, 비록 혁명적 계급운동의 대대적인 출현 속에서 혁명당 건설을 전면화 시키면서 출발하지는 못했지만, 혁명당 건설을 위한 험난하면서도 거침없었던 고난과 각성의 과정을 겪으면서 혁명 강령 건설과 강령에 입각한 정치활동을 분명한 목표로 삼았기에, 강령채택을 기반으로 혁명당 건설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당 건설운동에서 질적인 전환이었다. 한국사회에서 혁명적 사회주의·공산주의라는 명확한 정치적 지향을 가진 혁명세력들이 형성된 시점이 바로 즉각적인 혁명당 건설을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자 당 건설 운동의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인식했었기에, 각각의 정파와 써클 속에 갇혀 있던 정치적 지향들을 강령적 수준으로 통일시키면서 강령에 입각한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05년 이후 혁명적 맑스주의자 모임, 사노련, 사노위, 그리고 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으로 이어지는 혁명당 건설을 위한 과정은 바로 그 과정의 일부이자, 구체적 발현태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쇠퇴의 시기, 혁명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이때에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객관적 정세가 명확한 정치적 지향을 갖는 혁명당 건설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에 부응하는 일이기도 했다.

 

 

노동자혁명당 강령의 원칙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노동자혁명당의 강령이 방어해야 할 혁명적 원칙들은 무엇인가? 이 원칙들은 노혁추가 채택한 강령 초안의 내용을 대부분 규정해 주고 있다.

 

  그것은 첫째, 혁명 강령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체제인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그 모순을 밝혀내고 총체적으로 판단하여 계급투쟁의 동학, 공산주의 혁명의 주체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또한 자본주의가 더 이상 생산력 발전을 위한 체제이기를 멈추고 이제 생산력 발전에 족쇄가 되는 시대, 즉 자본주의 쇠퇴의 시대에 진입함에 따라 공산주의가  현실의 일정에 오르기 시작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에서는 쇠퇴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끝 모를 위기의 본질과 자본주의 쇠퇴가 만들어 놓은 물질적 조건(생존권 위협과 생활수준의 급격한 하락 등)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계급의식과 조직의 상태를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를 밝혀냄으로써, 노동자계급에게 새롭게 창출되는 운동과 계급투쟁의 부활 속에서 다시 한 번 혁명적 전망을 가질 수 있도록 계급의식을 자각케 하는 일이다.

 

  둘째, 공산주의 사회로의 이행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필연성을 인정하며, 노동자평의회로 조직된 전체로서의 노동자계급만이 모든 권력을 갖는다는 원칙이다. 이것은  공산주의는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으로, 아래로부터의 노동자평의회 권력의 창출과 강화를 통해 가능하기 때문에 혁명의 시작과 함께 사회의 모든 권력을 노동자계급이 집단적으로 행사하는 노동자평의회 권력을 수립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것이며, 노동자평의회가 모든 정치와 경제와 산업을 장악하고 노동자평의회가 전 사회에 걸쳐 모든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노동자계급의 혁명은 먼저 자본가 국가를 타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이것은 자본가 국가의 폭력에 대항하는 노동자계급의 무장력과 무장봉기를 통해서 이룰 수 있다. 자본가 국가를 타도하는 길은 오직 노동자계급의 조직력과 무장력에 의존하며, 노동자계급의 자립적 조직인 노동자평의회와 혁명정당을 건설해야만 혁명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셋째, 이른바 ‘현존 사회주의’라고 불리어 온 스탈린주의 체제들을 사회주의로 인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 · 억압 체제, 노동자혁명에 의해 타도되어야 할 또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 체제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을 단호히 지지하고, 그리고 혁명 패배의 교훈과 이로부터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승리의 조건을 찾아내고자 하는 후세대 혁명가들의 의무이자 과제인 것이다.

 

  넷째, 노동자계급의 혁명은 국제적이어야 한다. 세계혁명은 세계혁명당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세계혁명이 진행되기 전에 혁명적 공산주의 진영을 다시 규합하고 강령을 통일하여 세계혁명당(인터내셔널)을 반드시 건설해야 한다는, 세계혁명과 노동자국제주의에 대한 확고하고 구체적인 원칙을 강령에 담는 것이다. 이것은 노동자 혁명당이 건설되는 과정에서 세계혁명당 건설에 복무해야 하며, 세계적인 강령통일을 과제로 안고 있음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위의 원칙에 바탕을 둔 ‘노동자계급 권력 장악을 위한 이행요구’를 실천 지침으로 제시하고 있다. 헤어날 수 없는 위기에 빠진 쇠퇴하는 자본주의는 노동자계급의 의식적인 행동으로 혁명적으로 타도할 때만이 폐절시킬 수 있다. 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을 위한 12 항목의 이행요구는 바로 쇠퇴하는 반동적 자본주의 아래서 노동자계급이 현실에서 투쟁으로 즉각 쟁취해야 하는 요구들이자, 이 요구들을 전진시켜 권력 장악과 자본주의 철폐로 이어지게 하는 행동 강령이다.

 

 

결론

 

  일찍이 마르크스는 임노동을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공산주의에서의 노동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통찰을 우리에게 제공했다. 이른바 비인간적인, 자유가 없는, 소외된 노동에 대한 가차 없는 비판에서부터 더 나은 세상의 가능성, “삶에 대한 선언으로서의, 따라서 삶의 향유로서의 노동”에 대한  마르크스의 통찰은 자본주의 사회라는 악이 존재하는 한 계속 살아남아 노동자계급에게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을 밝혀주고 있다. 이러한 마르크스의 혁명적 가치를 계승한 우리는 노동자계급의 진정한 해방을 위해 공산주의 강령을 전면에 걸고 투쟁하는 노동자계급과 함께 썩어가는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고자 나섰다.

 

  노혁추 출범식에 축시를 낭송한 노동자시인의 시 구절처럼,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존재하게 하는 것이 혁명이고, 용서할 수 없는 착취계급에 대해 결코 타협하지 않고 용서하지 않는 것이 노동자의 계급의식이다. 오랜 침체기를 지나오면서 고통과 절망이 지배했던 노동자계급의 현실 속에서 혁명의 가능성은 더 나은 세상,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투쟁하는 노동자계급이 혁명적으로 부활하고, 세계적으로 새로운 계급투쟁의 장이 열리고 있는 것은 공산주의 혁명의 현실적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공산주의 혁명은 노동자계급 스스로의 과업이고, 노동자계급의 행동 중에 가장 의식적이고 총제적인 행동이므로 단순한 분노와 직접행동만으로는 혁명으로 나아갈 수 없다. 분노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으로, 좌절은 혁명에 대한 자신감으로 바뀌어야만 한다. 이렇듯 노동자계급이 역사와 혁명의 주체로서 새로운 사회를 스스로 창조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혁명의 현실성을 담은 것이 바로 공산주의 강령이다. 혁명의 성공은 노동자혁명당의 강령과 그것을 행동에 옮길 노동자 계급의 혁명적 계급의식에 달려있다.

 

 

  쇠락해가는 자본주의, 야만이냐 혁명이냐의 시대, 노동자계급의 시대적 필요에 부응하는 혁명당 건설에 즉각 착수하자!
 

 

  노동자계급에겐 무기가 되고 자본가계급에겐 실질적 위협이 되는 공산주의 혁명 강령을 건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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