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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장

어제 낮, 현광훈 동지의 장인이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왔다.

빈소는 어디에 모실지 아직 모르겠다는 대협국장의 얘기였다.

 

가만있자,

그렇다면 발인이 설날 아침이 되는구나,

고인의 가족들도, 문상객들도, 좀 답답해지겠네...

 

다시 연락이 왔다.

전주 외곽의 한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렸는데,

교통편이 여의치 않을테니 오지 말라는 현 동지의 연락이 있었다고.

 

서울에서 전주로 조문하러 내려오는 것은

설 연휴에 도저히 엄두를 낼 수 없겠지만

마침 내가 대전에 있으니 대표로 다녀오마,

부의금 전할 동지들은 내 계좌로 송금하시라,

이런 메시지를 사무처 동지들에게 보내고

어제 저녁의 선약을 이유로

오늘(28일) 낮에 전주에 다녀오리라 맘먹었다.

 

그리고 나서, 오후 4시쯤 현국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가족, 친지, 동네의 어른들과 상의를 해서

설 연휴라서 장례를 조촐하게 치르기로 했고

발인은 28일 아침에 하기로 했으니

길도 엄청 막히는데 오지 말라고 하는 얘기였다.

 

-그래서 문상객을 아예 안받는다는 얘기요?

=아니, 그건 아니지만요.

-그러면 갈께요. 대전에서 전주까지 1시간이면 되는데요, 뭘.

  내일 가려고 했는데 발인이 내일 아침이라면 지금 당장 가지요.

 

아무리 막힌다고 해도 대전 이남 지역이니까

전주까지 3시간쯤이면 넉넉히 다녀오겠지, 하면서 길을 나섰는데,

그게 아니었다.

호남고속도로와 논산천안간 고속도로가 만나는 교차로를 사이에 두고

1시간을 거의 서 있다시피 했고

서전주에서 순창으로 연결되는 길목도 엉금엉금 기어서 갔더니

3시간만에 간신히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빈소는 조용했다.

가족들과 친지들이 서너 무리로 나눠앉아 있었고,

우리 일행(기다리고 있던 연맹 전북본부장과 사무국장, 그리고 현 동지)이

한 자리를 차지했다.

 

=연세가 일흔일곱인데, 6개월전에 폐암판정을 받았지만, 아직 돌아가실 정도는

  아니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노환이 같이 왔나 봐요.

=장인이 워낙 깔끔한 양반이었고, 독실한 크리스찬이라서, 미리 주변에

  불편끼치지 말라는 말씀을 남기셨어요. 그래서 내일 아침에 화장하고,

  어머님(장모님을 가리키는 얘기겠지..)과 합장하시게 될 것 같습니다.

현 동지의 얘기였다.

 

4일장, 5일장, 7일장, 두루 겪어 봤지만

2일장은 처음이다.

살아남은 이들로서는 예의가 아닌 듯하여 고민도 컸을텐데,

그런 결정을 하게 한 고인의 뜻이 존경스러움 이상으로 와닿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덧붙임>

7시에 약속했던 동지들은 9시 30분이나 되어서 만날 수 있었다.

술 마시지 못하는 한 동지들 제외하고 네명의 동지가

소주를 여덟병이나 마시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내가 도착하자마자 간결하지만 무거운 주제의 회의를 마치고 나서

파하지 않고 남은 네 명은 5-6병쯤 더 마시고도 아쉬워하며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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