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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손을 내밀어 우리

56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4/30
    시켜 보니 잘 한다?(6)
    손을 내밀어 우리
  2. 2006/04/30
    관료(3)
    손을 내밀어 우리
  3. 2006/04/25
    다윗과 골리앗(3)
    손을 내밀어 우리
  4. 2006/04/21
    집권당 의원들의 점거농성(10)
    손을 내밀어 우리
  5. 2006/04/12
    4월(5)
    손을 내밀어 우리
  6. 2006/04/09
    밤샘(7)
    손을 내밀어 우리
  7. 2006/04/05
    (4)
    손을 내밀어 우리
  8. 2006/04/03
    잘못은 누구에게?(2)
    손을 내밀어 우리
  9. 2006/03/31
    지도교수(5)
    손을 내밀어 우리
  10. 2006/03/19
    고 홍성규 동지를 추모하며...(3)
    손을 내밀어 우리

시켜 보니 잘 한다?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대전에서 보령화력발전소 가는 길에

청양 어드메쯤에서 이런 걸 봤다.

 

"시켜보니 잘 한다 한번 더 시켜보자!"

 

현직 군수가 국민중심당 간판으로 또 출마하는 모양인데,

다른 건 아무 것도 없고 그저 한번 더 하고 싶은 마음만

적나라하게 내걸려 있다. 그냥 웃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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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

관료들을 너무도 싫어하는 한 동지가 있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현장과 아주 동떨어진 사고와 행동방식으로 고착화된

관료로 전락해버릴까봐 늘 노심초사했고,

그런 마음을 다스릴 작정으로 그랬는지 몰라도

늘 치열했다.

 

그런 그가 연락이 두절된 상태로 여러 날이 지나고 있다.

전화는 꺼져 있고

나는 지금 그에게로 가는 길을 모른다.

 

어젠,

그 동지와의 오래된 일들을 생각하면서

서해대교를 건넜다.

그리고 그 동지를 기억하거나 좋아하는

몇 동지들에게 그냥 전화를 했었다.




어제 오전 10시,

보령화력발전본부 강당에서

발전노조 2대 신종승 위원장의 이임식과

3대 이준상 위원장의 취임식이 있었다.

 

전날에 대의원 수련회가 있었기 때문에

연맹의 양경규 위원장이 달려가

민주노총과 연맹의 투쟁계획과 주요 사업들에 대해서는

충분히 얘기를 하고 난 뒤였다.

 

바쁜 임원들을 대신하여 내가 달려가기는 했지만,

격려의 말이라고 딱히 할 얘기도 없었다.

늘 하던 얘기야 전날에 위원장이 모두 해치웠을 것이고,

내 앞 순서에서 이준상 위원장이 한미FTA얘기까지 다 했다.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지금 통신이 두절된 동지에게

2주일 전쯤에 술자리에서 했던 얘기를 떠올리곤

그 얘기를 발전노조 대의원과 간부들에게 했다.

 

"현장의 조합원들을 만날 때

 조합원들의 얘기가 새록새록 늘 새롭고

 조합원의 말뿐만 아니라 표정과 목소리가 친근하게 느껴지고

 마냥 설레이는 마음으로 이어진다면,

 조합원들의 불만 가득한 얘기를 들으면서

 그 얘기들을 갖고 뭔가 새로운 일을 도모하고 싶어진다면,

 그 동지는 아직 쓸만한 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조합원들의 얘기를 이끌어내기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조합원들이 어렵사리 한마디 꺼낼 때마다

 그 말을 가로채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더 급한 듯하고

 아, 이 조합원들이 노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조목조목 반박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조합원들의 얘기가 늘 듣던 식상한 것들이며

 이미 나는 그 얘기들을 다 파악하고 있으므로 따로 고민할 것도 없다는

 그런 생각이 든다면,

 그 동지는 미안하지만, 낡고 경직되어 떠나야 할 때가 된 간부라고 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이렇게 단순하게 말해서 될 이야기도 아니고

 노조 간부들마다 저마다의 스타일이 다르기도 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제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간부 그만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동지가 있다면

 그래도 한번쯤은 더 생각해 봐도 됩니다.(무리들 웃음)

 

 발전노조의 새 집행부가

 조합원들에게서 힘을 얻고 조합원들과 더불어 일을 해나가기를

 바라는 마음, 믿는 마음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저나 연맹의 간부들도

 낡은 간부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뛰고 열심히 싸우겠습니다."

 

뭐, 이런 얘기를 짧게 하곤 내려왔던 것 같다.

이렇게 말한 나 자신이 찔리는 것도 많지만,

노조만 그렇겠는가,

명색이 조직의 간부며 활동가라면,

심지어 한 나라를 책임지고 있는 정치인들이라면,

제 얘기보다는 남 얘기에 진지하게 귀기울이는 것을

습관으로 삼아야 할 터.

 

그래, 그런 생각을 곱씹으면서

연락도 되지 않는 동지를 떠올리면서

어제, 나는 서해대교를 시속 120킬로미터의 속도로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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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골리앗

손을 내밀어 우리님의 [과학의 날에 반가운 선물 하나] 에 관련된 글.

산업기술평가원지부 동지들이

4년 세월 내내 밤낮으로 겪은 일을

원고지 8매에 가두어 내려니 참 버겁다.

 

오늘은 차별없는 서울 대행진 둘째날,

산업기술평가원지부와 조세연구원이 있는

강남지역에서 투쟁대오들이 행진을 하게 되는데,

한미FTA저지 대책위원회와 토론회가  하루 종일 이어지기 때문에

동지들에게 갈 수가 없다.

 

미안해라~



 

역삼동에 가면 한국기술센터라는 번듯한 고층건물이 있다. 산업자원부가 거두어들인 기술료 중에서 500여억원을 사용해서 구입한 것이다. 산자부 산하 정부출연기관의 조합원들이 정부가 국민의 세금을 탈법적으로 지출했다고 지적했고, 이 사실은 2002년 봄에 어느 신문에 실렸다. 이로 말미암아 산자부 장관은 예산감시국민행동으로부터 ‘밑빠진 독상’을 받았다.


올해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개발예산은 8조 9천억원 규모이고, 그 절반 가량을 과학기술부(2조 1700억원, 24%)와 산자부(2조원, 22%)가 집행하고 있다. 한국산업기술평가원(산기평)은 연구개발예산이 본래의 목적대로 쓰여질 수 있도록 관리하는 산자부 산하 연구관리 전문기관이다. 여기에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한국산업기술평가원지부(산기평지부)가 있다. 2002년 3월에 기술료의 부당한 전용사실이 보도된 후, 산자부는 산기평의 사용자에게 내부 고발자들을 찾아내어 해고하도록 종용하였다.


당시 산기평의 단체협약은 사용자가 임의로 조합원을 해고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어 산자부의 압박은 무위로 돌아가는 듯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산자부는 이성을 잃었다. 2003년에 산자부와 산기평은 근거도 없이 조합원들을 대기발령하고, 직위해제하고, 급기야 정리해고했다. 이러한 일들은 단체협약을 크게 개악하려는 시도와 맞물려 진행되었고, 노사관계는 파행으로 치달았다. 2004년 한해 사용자들이 자행한 대기발령, 직위해제, 정리해고는 (지방, 중앙)노동위원회와 행정법원에서 모두 부당하다고 판결이 났다.


산자부와 사용자는 집요했다. 정부와의 극한 대립관계를 불안해하는 조합원들을 회유하고 협박하여 대거 노조를 이탈하게 하고, 2004년 9월에는 탈퇴한 조합원들이 어용노조를 만들었다. 106명의 조합원이 졸지에 25명으로 줄어든 산기평지부는 쫓겨나서 근처 주택가에 임시 사무실을 마련했다. 산기평지부는 투쟁을 계속하는 한편, 어용노조가 불법이라는 소송에 돌입했다. 2005년 4월 21일 서울지방법원과 2006년 4월 14일 서울고등법원은 똑같이 어용노조 설립이 불법이라고 판결하였다. 노동위원회와 법원을 두루 거치면서 수많은 법적 다툼이 있었지만 노조가 100% 승소하는 진기록이 세워졌다. 반면, 노조 탄압을 저지른 산기평 사용자들은 최근 벌금형에 처해졌다.


그 사이 4년의 세월이 흘렀다. 산자부는 여전히 요지부동이고, 산기평의 4년여의 파행운영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은 없으며, 부당노동행위와 노조 탄압은 이루 열거할 수가 없다. 사용자는 합법적인 산기평지부를 외면하고 어용노조만 인정하고 있다. 파행적인 노사관계를 바로잡고 기관운영을 정상화하기 위해 산기평지부는 지난 2월 7일부터 두 달이 훨씬 넘도록 전면파업을 하고 있다.


90년대 이후 우리나라 국가과학기술정책은 공공적 연구의 결과들을 재벌의 사적소유로 귀속시키는 길로 달려왔다. 산기평지부의 투쟁은 민주노조를 지키는 투쟁이며, 거대 자본에 맞서 과학기술의 공공성을 지키는 투쟁이다. 다윗과 골리앗이 따로 있을까, 25명 동지들의 승리를 믿는다.(2006.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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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당 의원들의 점거농성

[국회] 열우당 의원 5명 법사위 회의장 점거 후

안에서 봉쇄/ 민노당 의원단 진입못하고 대치

9:18am

 

아침에 민주노총에서  온  문자메시지이다.

 

날치기당한 비정규법안을 법사위에서 저지하기 위해서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두차례인가 법사위를 점거했더니

오늘 법사위를 앞두고

점거를 무산시키기 위한 점거농성이

집권당 의원들에 의해 감행된 것이다.

(한나라당이 사학법 재개정을 요구하고 있어서

그걸  저지하겠다고 농성하지 않느냐는 추측도 있다.

아직 확인하지 않았으므로, 그냥 쓴다)

 

이 메시지들을 사무실 동지들에게 읽어주었더니

다들 푸하하하하 웃었다.

코메디같은 현실이다.

 

법사위 회의장은 안에서 걸어잠그면

문을 부수지 않고는 밖에서 들어갈 도리가 없단다.

그야말로 밀실에서 날치기하기 딱 좋은 조건이다.

 

날치기를 하기 위해서 회의장을 점거농성하다,

집권당 의원들로서는 나름대로 발상을 전환한 셈이다.

 

그렇다면 비정규직 법안 날치기를 저지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어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꺼나-?

 

총파업 결정과 지침은 뚜렷히 살아있지만

파업을 실제로 조직하려는 노력은

극히 일각에서만 목격되는 아침에,

나는 이율배반의 중심에 서서 어쩔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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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회의하고 술마시고

사람만나 술마시고

회의하고 술마시고

사람만나 술마시고

 

사람이 술을 마시기도 하고

술이 사람을 먹기도 하고

시간도 술처럼 술술 흘러가고

 

황사바람에 눈 부릅뜨고 사방을 살피니

하얀 목련은 어디 가고 누렇게 뜬 꽃잎이 날 불쌍타 보네.

 

- 그래도 생체시계가 아주 죽지는 않았는지

   취해서 쓰러져 자다가 눈을 뜨니 5시 30분이더라,

   오늘은 서울하고도 남산에서 아침 7시 30분에 회의가 있는 날;

   아침에 회의를 하니 술마시는 뒷풀이가 없어 좋구만.

 

- 바빠서 술마실 시간도 없다고 푸념하곤 했는데

  4월은 전혀 아니올시다.

  당분간은 이 기세로 갈 판이니, 하루쯤 휴가나 냈으면 좋겠는데...그게 맘대로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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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샘

기막힌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다.

 

토요일 오후, 소파에 기댄 채 두어시간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나니 날이 저물었다. 콩나물을 씻고 김치와 양배추를 채썰어 콩나물밥을 지었다. 냉이된장국을 끓이고 양념간장을 만들어 저녁밥을 먹었다.

 

7시에 약속이 있었는데, 식구들과 밥먹다가 1시간이나 늦었다. 미리 전화를 걸어 양해를 구했고, 뒤늦게 달려가니 다들 술집으로 옮겨 자리를 잡았다. 지역(노동계)의 가장 크고 심각한 현안문제(중의 하나?)에 대해서 이런저런 의견들이 오갔고, 다음 주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모임을 파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1시가 지나서야 잠이 들었다. 술을 여러잔 마셨기에 나도 뒤따라 잠들 줄로 알았다. 아니었다. 지난 일주일간 노트북에 업데이트된 이러저러한 파일들을 백업하다 보니 새벽 3시였다. (노트북은 언제라도 분실할 수 있으므로 주말마다 백업하는 것도 일이다.)

 

그래서 3시에 누웠다. 곧 잠이 들 것이라고 믿었지만 멀뚱멀뚱 천장만 올려다 보고 한참이 지났다. 낮에 노트북에 받아둔 티비드라마를 틀고 리시버를 귀에 꽂았다. 모든 인간관계가 다 뒤엉키고 어긋나더라도 사랑만 있으면 만사형통이란 게 예나 지금이나 티비드라마의 내용인 것을, 왜 갑자기 그걸 틀었을까.

 

보다 말다, 듣다 말다, 안경을 벗었다가 썼다가, 거실에 누운 채 그렇게 시간이 갔다. 그러다가 보면 나도 모르는 새 잠이 들 것이라는 믿음이 처음으로 깨졌다. 5시에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를 켰더니 인터넷이 점검중이었던지 먹통이다. 다시 누웠다. 6시가 오고 7시가 왔다. 와, 잠도 자지 않고 누워서 4시간을 까먹다니-

 

지난 일주일 생체리듬을 아랑곳않고 쏘다녔더니 벌이 내린 모양이다. 7시 30분이 되었고, 다시 인터넷 연결을 시도했다.

 

결국, 잠을 포기하기로 한다. 뭐할까? 산책이라도 나갈까? 오늘 하루의 식단을 짤까? 가족들이 깨기 전에 내 빈 뱃속이나 채울까? 아, 혼자라도 천복순대 본점에 가서 순대국밥에 청양고추를 겯들이는 건 어떨까?

 

어이없이 밤새고 난 아침에 피같은 밤잠을 놓쳐버린게 너무 억울해서 중얼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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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라도 KTX를 타면

서울에서 대전까지 오는 1시간 중에

15분쯤 깊이 잠에 빠져든다.

 

늦은 밤에 고속버스를 타면

서울에서 유성까지 오는 1시간 40분 중에

1시간 30분쯤 깊이 잠에 빠져든다.

 

왜 그렇지?

 

기차는 대전역을 지나서 부산까지도 갈 수 있지만

버스는 아무리 달려도 유성에서 끝나는 거니까?

 

아니야.

KTX 막차는 아무리 빨리 달려도

종점이 대전역인걸 뭐.

 

모처럼 고속버스를 타고 와서는

잠이 들지 않는 이유를 따지다 보니까

이러이러한 이유들이 달려드는데,

기차나 버스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문제더라

내가 사람들을 하릴없이 좋아한다는 사실이

문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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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은 누구에게?

작년에 김치파동이 있었다. 중국산 배추로 담근 김치에서 기생충알이 발견되었고, 온 나라가 난리났다. 당국이 부랴부랴  김치공장들을 단속했지만, 해가 바뀌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김치공장들은 목하 성업중이다. 그런데, 작년 그 김치들은 어디로 갔을까? 정말로 모두 싹쓸이해서 폐기처분했을까? 아니면 냉동창고 어디 깊숙히 처박혀 있다가, 요즘 잘나가는 '묵은지'로 환골탈태해서 약삭빠른 업자들을 배불리고 있을까? 설마, 푹 삭은 '묵은지'에 기생충이 자라지는 않겠지-

 

말라카이트 그린이라는 발암물질이 있다. 중국산 생선을 이걸로 처리해서 들여왔다고  작년에 난리가 났었다. 그래서 멀쩡한 생선들을 다 회수해서 폐기처분하니 어쩌니 했던 얘기를 들었는데, 업자들은 기민했다.  싱싱한 날것으로 팔기가 어렵게 된 장어들을 냉동고에 잘 보관했다가 양념장어구이로 부할시켰다. 시중에 유통되는 양념장어구이를 거둬들여 검사했더니 절반 이상에서 말라카이트 그린이 검출되었다는 소식이다. 기생충보다는 말라카이트 그린이 더 쎈 놈이긴 하다.

 

누구의 잘못일까? 정부? 보건당국? 업자? 냄비언론? 건망증 심한 우리네 서민들?

휴게실에 앉아 잠깐이나마 즐거운 상상에 빠지려 해도 현실은 늘 내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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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교수

3월 25일은 내 지도교수가 돌아가신지 17년 되는 날이었다.

 

고 정보섭 교수께서는

평택 대추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묻혀 계신데

혼자서는 정확히 찾아갈 수 없어서 죄송하기 짝이 없다.

 

생각난 김에 25일에

선배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가는 길은 아는데 설명은 못하겠단다.

 

세월이 가니까 다들 잊고 사는 듯하다.

 

다시 평택 근처로 가는 일 있으면

혼자라도 물어물어 찾아가 보리라.

 

지도교수의 기일임을 떠올렸다가

생각나서 쓴 글이 아래 글이다.

 

월간 네트워커에 보냈다.

 

 

 



 

황우석씨가 마침내 교수직에서 파면되었다. 그에 대한 최고과학자 지정도 취소되었다. 황우석 사건에 대해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와 언론은 끝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곧 새롭고 충격적인 사건들이 연달아 업데이트되면 이른바 ‘황까’나 ‘황빠’들을 제외하고는 황우석씨를 망각의 저편에 묻게 되겠지. 요즘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여론의 선망을 받거나 집중적인 포화를 받거나 세월이 흐르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진다.


황우석 사건에 관한 논란도 시나브로 잠잠해지고 있다. 과학자 사회에 대한 연구나 연구윤리에 관한 쟁점들은 전문가들의 연구주제나 토론꺼리로 계속 등장하겠지만, 일반 시민들에게 황우석 드라마는 일단 끝난 듯하다. 그러나 여론의 시선이 떠난 자리에서 후속 드라마가 진행되고 있다. 주인공들은 황우석씨를 지도교수로 삼았거나 프로젝트 책임자로 섬겼던 학생이나 연구원들이다. 황우석씨가 교수직을 사퇴할 때 배경화면으로 등장했던 그들이 이제는 제가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 험난한 인생행로에 직면하고 있다.


많이 알려진 것처럼 이공계 연구실에서 지도교수의 자리는 권력 그 자체이다. 지도교수가 생활습관부터 시작해서 논문, 취업, 해외연수 등 모든 것을 좌지우지한다. 지도교수와의 관계에 따라서 학위를 취득하는 기간이 달라지고, 심지어 교수의 필요에 따라 논문을 다 쓰고도 졸업을 미룬 채 더 일할 것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연구계획서 작성, 연구비 지출에 관한 영수증 처리, 인건비의 편법 집행과 비자금 관리 등등, 옳고 그름을 따질 겨를도 없이 학생들은 지도교수의 수족이 된다.


연구실적은 변변하지 않았지만 난자를 제공한 보답으로 휘하의 연구원을 어떤 의과대학의 교수로 취직시킨 황우석씨의 ‘권력’에 기대와 희망을 걸고, 밤낮으로 일에 몰두했을 학생과 연구원들은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잘못이 다 드러난 상황에서도 선뜻 기자회견장에 나와서 지도교수를 편들고자 했던 가상한 용기로 여전히 황우석씨를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치고 있을까? 새 지도교수에게 의탁하여 학위논문이나 빨리 끝내야지 하고 교수 연구실을 기웃거리고 있을까? 이 사건으로 인하여 받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을까? 혹시 단 한 사람만이라도 황우석씨와 인연을 완전히 끊고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개척하는 이는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니 황우석씨에 대한 분노와 학생들에 대한 연민이 더욱 커진다.


새삼 내 지도교수를 기억한다. 평생 차를 몰지 않고 학생들과 함께 걸어서 출퇴근했다. 학생들을 속박하거나 일체 간섭하지 않았다. 성실하게 공부하는 자세로 모범을 보였고 학문적으로 엄정했다. 과도한 연구비에 욕심내지 않았고 한 푼의 장학금이라도 더 주려 애썼다. 이 땅에 이런 교수들 많다. 그 중에 누군가가 황우석씨를 거둬들여 처음부터 다시 가르치면 이 어처구니없는 드라마가 끝이 날까? (2006.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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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홍성규 동지를 추모하며...

죽음은 늙음이나 아픔이나 마찬가지로 인간의 육체가 겪게 되는 한 현상이다. 한 현상이라기보다는, 실존의 범주이다. 죽음은 그가 앗아간 사람의 육체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서 그의 육체를 제거하여, 그것을 다시는 못 보게 하는 행위이다. 그의 육체는 그의 육체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환영처럼, 그림자처럼 존재한다. 실제로 없다는 점에서, 그의 육체는 부재이지만, 머릿속에 살아 있다는 의미에서, 그의 육체는 현존이다. 말장난 같지만, 죽은 사람의 육체는 부재하는 현존이며, 현존하는 부재이다. 

-김현 평론집 <말들의 풍경> 중에서

 

16일 새벽 2시 30분경에 나보다 겨우 여섯살 많은 홍성규 동지가 세상을 떴다고 그 날 아침에 연락을 받았고, 17일 밤에 장례식장에 갔고, 18일 아침에 영결식장에 갔다. 어제부터 오늘 새벽까지, 그의 밝은 영정사진 모습과 딸기코가 된 채로 크하, 푸하하하, 웃어제끼던 그의 너털웃음을 내내 떠올리며 술을 마셨고, 오늘 점심과 저녁과 이 밤에 약간의 술을 더했다. 그러면서 오래 전에 읽었던 김현의 글귀를 떠올렸다.

 

96년에 내가 멋모르고 과기노조 위원장을 맡았을 때, 전임자가 둘씩이나 있으니 한명은 본부 전임을 맡으라고 강권하다시피 해서 선전홍보국장을 맡겼다. 그리고 98년 겨울 지질자원연구원의 경영혁신이라는 이름을 빈 인원감축에 맞서서 우리가 원장실 점거농성에 들어갔을 당시 그 연구소의 지부장이 도중하차하고 대신에 지부장을 맡았다. 우리는 함께 싸우고 함께 벌금형을 받았었다.

 

예전에 백순환 전 금속연맹 위원장이 대우조선 위원장을 하던 시절에 왜 노조를 하느냐고 기자가 물었더니 노조를 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착해빠져서 (자기 앞가림한답시고) 노조를 떠나지 못한다고 했는데, 홍성규 동지는 그럴 때의 착함이 참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폐암으로 3년여의 투쟁생활을 하면서도 사람들을 늘 웃으면서 만났고, 걱정하는 동지들에게 괜찮다고 안심시키곤 했다. 최근 병세가 악화되기 직전까지도 출장을 다니고 광산에도 들어가고 했다고 들었다.

 

그에게는 아내와 두 딸이 있다. 지은이와 지영이었던가, 처음 만났을 때 초등학생들이었는데, 어제 갔더니 대학생과 고3이 되어 있었다. 지영이가  KBS 어린이합창단 단원이 되었다고 자랑스러워하던 홍성규 동지의 옛날 표정이 기억난다. 오랜만에 만난 지질자원연구원의 한 조합원은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두 딸을 다 키우지 못하고 떠나는 걱정을 하더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미 고인이 된 김현의 말마따나 고 홍성규 동지의 몸은 이 세상에 없고, 그를 기억하는 우리는 남아 '부재하는 현존'을 증거한다. 덕분에 어젠, 참 많은 동지들을 한꺼번에 만났다. 일찍이 여러 동지들을 사고와 병으로 잃었지만, 홍성규 동지의 죽음은 그 나이로 보나 죽음의 원인으로 보나 우리 또래들이 늙음이나 아픔이나 죽음 앞에 한 걸음씩 다가서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한 사건이다. 삼가 고 홍성규 동지의 명복을 빈다.

 

성규형, 잘 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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